⊙ 세계 최초 무패 우승팀은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12승 6무)
⊙ 현 최강 중 한 팀인 레알 마드리드, 1931~32시즌에 무패 우승(10승 8무) 달성
⊙ 아스널의 무패 우승이 전무후무하다고 평가받는 이유
⊙ 이탈리아 프로축구의 자존심 AC밀란과 유벤투스도 각각 한 번씩 달성
⊙ 네덜란드의 아약스, 스코틀랜드의 셀틱, 레인저스 FC, 포르투갈의 포르투, 벤피카 등도 대기록
⊙ 국내에서는 울산 현대가 K리그 사상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 신화 이뤄
⊙ 현 최강 중 한 팀인 레알 마드리드, 1931~32시즌에 무패 우승(10승 8무) 달성
⊙ 아스널의 무패 우승이 전무후무하다고 평가받는 이유
⊙ 이탈리아 프로축구의 자존심 AC밀란과 유벤투스도 각각 한 번씩 달성
⊙ 네덜란드의 아약스, 스코틀랜드의 셀틱, 레인저스 FC, 포르투갈의 포르투, 벤피카 등도 대기록
⊙ 국내에서는 울산 현대가 K리그 사상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 신화 이뤄
1996년 9월 아스널 사령탑에 오른 아르센 벵거 감독은 2018년 5월 아스널과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프랑스인으로 6개 국어를 구사하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2년간 아스널을 이끈 아스널 그 자체였다. 벵거 감독이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창단 110년 만의 첫 외국인 감독이었던 그는 AS모나코, 나고야 그램퍼스 등을 거쳤지만, 잉글랜드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다. ‘아르센, 누구?’라는 헤드라인은 그의 위치를 보여준 대표적인 문구였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아스널을 단숨에 바꿨다. 이전까지 지루한 축구를 펼치던 아스널은 대단히 공격적인 축구로 변모했다. 술과 기름진 음식에서 채소와 생선 위주로 바꾼 식단부터 다양한 기법을 도입한 훈련법까지, 벵거 감독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부임 첫해 리그를 3위로 마치며 가능성을 보인 벵거 감독은 이듬해인 1997~98시즌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정점은 2003~04시즌 무패(無敗) 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 것이었다. 아직도 당시의 무패 우승은 회자(膾炙)되고 있다. 흔히 축구에선 ‘공은 둥글다’라고 말한다. 강팀이라도 얼마든지 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아스널과 같은 무패 우승팀이 나온다. 유럽축구에선 이런 팀을 일컬어 ‘무적(The Invincible)’이라고 칭송한다. 과연 아스널처럼 리그를 씹어 먹었던 무패 우승을 기록한 팀은 얼마나 있을까.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세계 최초 무패 우승팀은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다. 이 팀은 잉글리시 풋볼 리그 디비전 원(1888년 창설·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전신)의 첫 시즌(1888~89)을 18승 4무로 우승했다. 당시 리그에 참가한 팀은 12개 팀이었다. 프레스턴은 이 시즌에 FA컵도 우승해 최초의 더블 우승팀으로 기록돼 있다. 프레스턴은 1863년에 크리켓팀으로 시작, 1875년에 럭비팀으로 바뀌었다가, 1880년에 축구팀으로 전환했다. 1888~89시즌 무패 우승팀이었지만 1892년 풋볼 리그가 디비전 제도로 정립되고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팀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프레스턴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1960~61시즌을 끝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현재도 챔피언십(2부 리그)에 속해 있다. 프레스턴은 1938년 FA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메이저 트로피를 따내지 못한 채 무관 상태에 머물고 있다.
아틀레틱 클럽
아틀레틱 클럽은 스페인 프로축구리그 라리가 출범 첫 시즌(1929~30)에 12승 6무로 무패 우승을 이뤘다. 아틀레틱 클럽은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프로축구 클럽이다. 현재는 아틀레틱 빌바오(Athletic Bilbao)다.
1898년에 영국에서 돌아온 바스크인 유학생에 의해 창단됐으며, 1901년에 빌바오 FC의 구성원들과 함께 카페 가르시아에서 통합을 논의하였고, 이듬해에 두 팀은 ‘클럽 비스카야’라는 연합팀을 만들어 코파 델 레이에서 바르사를 꺾어 첫 우승컵을 가져갔고, 이후 두 팀이 통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축구계에서 머니 게임이 치열해지자 구단의 특성 때문에 점차 전력이 약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중위권 성적은 찍어주고 있다. 이 팀에서 명성을 날린 선수로는 전설의 골잡이 라파엘 피치치 모레노와 텔모 사라, 90년대 스페인 국가 대표팀의 골키퍼 안도니 수비사레타와 공격형 미드필더 훌렌 게레로, 라파엘 모레노 아란자디, 호세바 에체베리아 등이 있다.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는 라리가 1931~32시즌에 무패 우승(10승 8무)을 달성했다. 1902년 소시에다드 마드리드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레알 마드리드는 1920년 ‘레알’(REAL·왕립이라는 뜻)이라는 단어를 앞에 달았다. 마드리드가 스페인 국왕컵 4연패를 달성한 1920년 알폰소 13세는 영어로 국왕(Royal)을 뜻하는 ‘레알’을 하사했다. 스페인에서는 아무 팀이나 ‘레알’을 쓸 수 없다. 스페인 국왕이 하사해야만 한다. ‘레알 소시에다드’나 ‘레알 베티스’ 모두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레알’을 받았다. 이 팀들의 엠블럼에는 ‘왕관’이 놓여 있다. ‘레알’을 하사받았다는 의미다. 왕실의 공인을 받은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며 언제나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최고의 선수라면 한 번쯤은 레알을 거쳐 갔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현 레알 명예 회장)를 필두로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 카카 등이 레알에 몸담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언제나 ‘공격 앞으로’다. 공격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레알 마드리드의 철학이다. 현재 홈구장 명칭으로 사용 중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수용인원 7만5000명)는 50년대 최전성기를 누렸을 당시 구단주 이름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최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을 앞세워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발족한 후 최초로 3연패를 달성했다.
아스널 FC
2004년 5월 16일 영국 런던의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종 라운드.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스널 홈구장 그라운드 위로 하얀색, 빨간색의 꽃가루가 흩날렸다. 한 달여 전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 지은 아스널은 3만8000여 홈 관중 앞에서 역사적인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38전 26승 12무, 팀 최다 득점과 최소 실점까지 챙기며 완벽한 기록으로 우승했다. 간판 골잡이 티에리 앙리는 30골을 넣어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105년 전인 1889년, 프레스턴 노스 엔드가 18승 4무로 무패 우승을 거뒀지만, 당시에는 경기 수가 22경기뿐이었고 이제 막 축구 리그가 창설된 것이어서 팀 간 전력 차가 극심했다. 아스널의 무패 우승이 전무후무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아스널은 특별한 팀이다. 역사가 이를 대변해 준다. 1920년부터 무려 91년간 EPL에 잔류해 있다. 이 부문 최다 기록이다. 아스널은 세계 최고의 더비 경기를 갖는 팀이기도 하다. 홈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과 불과 30여 분 거리의 화이트하트레인을 홈구장으로 쓰는 토트넘과 갖는 경기는 ‘북런던 더비’로 불리며 세계 축구팬의 이목을 끈다. 1920년부터 이어진 양 팀 간의 반목은 10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토트넘에서 활약했던 이영표도 당시 아스널전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토트넘전 외에도 맨유·리버풀 등 전통의 라이벌과의 맞대결도 항상 화제가 되고 있다.
아스널에서는 티에리 앙리와 데니스 베르캄프 그리고 토니 애덤스 등 최고의 선수들이 뛰었다. 아스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장이었던 토니 애덤스는 강인하면서도 매우 믿음직스러운 수비수였다. 앙리와 베르캄프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스널 유니폼을 입었던 역대 최강의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앙리는 아스널에서 8년간 380경기에 출장하여 226골을 성공하면서 클럽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네덜란드 국적의 베르캄프는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마술 같은 발재간과 탁월한 볼 컨트롤로 슈팅 기회를 만들거나 팀 동료에게 황금 같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 주는 킬패스를 성공하곤 했다.
AC밀란
AC밀란은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 1991~92시즌 때 22승 12무로 우승을 차지했다. AC밀란의 ‘AC’는 ‘Associazione Calcio’의 약자다. Associazione는 모임, Calcio는 축구를 뜻한다. 즉 밀란 축구 연합이라는 뜻이다. AC밀란은 1899년 밀란 크리켓 앤 풋볼팀으로 창단됐다. 초창기 블루칼라 노동자가 서포터스의 중심이던 AC밀란은 이탈리아 자국 선수와 축구 종주국 영국 출신 선수를 주로 기용하는 시스템을 고수했다. 1899년 창단 이래 세리에A에서 18회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자국 축구연맹(FA)컵 대회인 코파 이탈리아는 5번 제패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선 무려 7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려 이탈리아 구단 중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파울로 말디니, 마르코 반 바스텐, 안드리 첸코, 루드 굴리트, 카카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다수가 AC밀란을 거쳤다. 현재는 잔루이지 돈나룸마, 레오나르도 보누치 등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수 소속돼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AC밀란의 홈구장은 약 8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산 시로’이다.
유벤투스
이탈리아 북부의 자동차 산업 중심지 토리노를 연고지로 하는 유벤투스는 지난 1897년 창단했다. 유벤투스라는 이름은 청춘의 여신 유벤타스(Juventas)에서 따온 것이다. 강팀이었던 유벤투스의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리그 우승 27회, 컵대회 우승 9회를 차지했던 이탈리아 최고 명문팀 유벤투스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승부 조작 파문. 2006년 7월 루치아노 모기 전 유벤투스 회장이 심판위원장에게 일부 경기에 특정 심판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공개되며 이탈리아 축구계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유벤투스는 많은 것을 잃었다. 세리에B(2부 리그)로 강등되며 1897년 팀이 창설된 이래 1부 리그에서만 뛰었던 전통이 깨졌고, 2004~05, 2005~06시즌 우승의 영광도 함께 박탈당했다. 더 큰 것은 사람을 잃었다는 것. 자존심 강한 스타들이 강등과 함께 줄줄이 팀을 떠났다. 하지만 ‘명문’ 유벤투스는 곧 이름값을 했다. 2011~12시즌 무패 우승(23승 15무)을 달성한 것. AC밀란은 18팀 체제에서의 무패 우승이었지만 유벤투스는 20팀 체제에서의 무패 우승이었다. 유벤투스는 현재 리그 7연패와 더불어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4번 연속 우승하며 4시즌 연속 더블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레인저스 FC와 셀틱 FC
레인저스 FC는 1898~99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시즌 때 전승(18승 무패)으로 우승했다. 클럽명 ‘Rangers’는 1872년 창단 당시, 연고지 글래스고에서 가장 유명했던 럭비팀의 이름을 그대로 채용한 것이다. 전승 우승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체코 최고 팀 가운데 하나인 AC 스파르타 프라하가 1920년부터 23년까지 무려 4연속 전승 우승을 따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리그의 공식 기록은 1925년부터 기재, 불분명하다는 평가다.
2016~17시즌의 셀틱은 완벽했다. 34승 4무라는 압도적 성적으로 스코틀랜드 리그를 정복했다. 스코틀랜드 최고 명문인 셀틱은 유럽 최초로 무적이라 불렸다. 윌리 멀레이 감독의 지도 아래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무려 62경기(49승 13무)에서 패배를 몰랐으니 그럴 법하다.
셀틱은 1887년 글래스고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 노동자들에 의해 창단됐다. 적은 임금과 종교적인 갈등(아일랜드는 가톨릭교, 스코틀랜드는 개신교)으로 타지에서 고생하고 소외당하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셀틱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 오랫동안 큰 활약을 펼쳤던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미드필더 로이 킨이 은퇴 전 자신의 마지막 팀으로 셀틱을 선택한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일한 라이벌은 레인저스 FC. 아일랜드 사람들은 셀틱의 승리 속에 타지 생활의 설움을 달래며 자부심을 지켜나갔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자기들 땅에서 기고만장한다며 싫어했고 이러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셀틱의 라이벌이었던 레인저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창단 배경 때문에 셀틱의 유니폼은 지금도 아일랜드 국기를 상징하는 녹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같은 연고지를 두고 있으면서도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라는 핏줄의 차이에다 가톨릭교(구교)와 개신교(신교)라는 종교적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셀틱과 레인저스의 대결은 유럽에서도 가장 치열한 더비 매치로 손꼽힌다.
AFC 아약스
네덜란드 프로리그 에레디비시의 명문팀 아약스는 1994~95시즌 27승 7무로 우승을 차지했다. 에레디비시는 중소 리그이기에 빅 리그에 비해 무패 우승이 쉬울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에레디비시의 수준은 높았다. 1900년도에 창설된 아약스는 네덜란드 최대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을 연고로 하는 클럽답게 ‘국민의 팀’으로 통한다. 지난 1918년 첫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33회나 네덜란드 리그를 석권했다. 대부분의 네덜란드인이 자신의 연고팀을 응원하면서도 절반은 아약스의 팬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럽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아약스는 요한 크루이프, 프랑크 레이카르트, 데니스 베르캄프, 마크 오베르마스, 야프 스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여 빅 리그로 공급하는 축구 사관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SL 벤피카
벤피카는 포르투갈 축구 리그 1972~73시즌 때 흑표범 에우제비우를 앞세워 28승 2무로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30경기에서 101득점이라는 화력을 자랑했으며 에우제비우는 40득점을 하는 괴물 같은 득점력을 보여줬다.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는 한국과의 추억도 있다. 1970년 9월 그의 소속팀인 포르투갈 벤피카가 아시아 투어를 오면서 국내 국가대표팀인 청룡, 백호팀과 친선 경기를 치렀다. 에우제비우는 대표팀 2진 격이었던 백호를 상대로 30m 넘는 거리에서 프리킥 골을 꽂아 넣는 등 팀의 5대0 승리를 이끌었고, 청룡 팀을 상대로는 후반 막판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하며 1대1로 마무리 지었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을 연고로 하는 벤피카는 1933년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2부 리그를 경험하지 않았을 만큼 전통과 실력을 겸비한 구단이다.
FC 포르투
포르투는 포르투갈 리그에서 2010~11시즌 27승 3무, 2012~13시즌 24승 6무, 2회 무패 우승이란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 냈다. 1893년 창단된 포르투는 스포르팅 리스본, 벤피카와 함께 포르투갈의 3대 명문 클럽으로 꼽힌다. 포르투갈 1부 리그에서 우승만 27번을 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조제 모리뉴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03~04시즌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도 올랐다. 포르투갈 리그는 네덜란드 리그와 함께 유럽 축구 4대 리그로 통하는 잉글랜드와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클럽에 많은 선수를 이적시켜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포르투는 유럽 빅리거를 많이 배출한 구단이다. 페페, 하메스 로드리게스, 라다멜 팔카오, 니콜라스 오타멘디 등이 포르투를 교두보 삼아 빅 리그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울산 현대
울산 현대는 K리그 사상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 신화를 이뤘다. 총 12경기에서 10승 2무를 기록했다. 울산 현대 호랑이 축구단은 1983년 12월 국내에서 네 번째 프로축구팀으로 창단했다. 마스코트는 동물의 왕인 호랑이로 국내 프로축구계를 평정하고 호령하는 강한 구단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초기 의지대로 울산 현대는 창단 이후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며 팬들과 선수들에게 사랑받는 매끄러운 구단 운영을 통해 모범적인 프로축구단으로 성장해 왔다.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유럽 구단 중 최다 경기 무패 기록을 보유한 팀은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루마니아)다. 부쿠레슈티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104경기 동안 패배를 몰랐다. 부쿠레슈티는 1985~86시즌 유럽 정상에 올랐고 1987~88시즌 4강, 1988~89시즌 2위에 각각 랭크되며 유럽을 지배했다. 당시 국내 리그에서는 5시즌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에메리크 에네이, 안겔 이오다네스쿠가 당시 부쿠레슈티의 ‘골든 에이지’를 이끈 루마니아 최고 명장들이다.
GNK 디나모 자그레브
디나모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크로아티아 축구리그 2014~15시즌 26승 10무 무패 승점 88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911년 창단한 이 구단은 통산 19회의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크로아티아 최고의 구단답게 자국 최고의 선수들이 뛰었던 팀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다보르 수케르와 이비차 올리치, 루카 모드리치, 마리오 만주키치, 데얀 로브렌, 마테오 코바시치 등이 있다.⊙
부임 첫해 리그를 3위로 마치며 가능성을 보인 벵거 감독은 이듬해인 1997~98시즌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정점은 2003~04시즌 무패(無敗) 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 것이었다. 아직도 당시의 무패 우승은 회자(膾炙)되고 있다. 흔히 축구에선 ‘공은 둥글다’라고 말한다. 강팀이라도 얼마든지 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아스널과 같은 무패 우승팀이 나온다. 유럽축구에선 이런 팀을 일컬어 ‘무적(The Invincible)’이라고 칭송한다. 과연 아스널처럼 리그를 씹어 먹었던 무패 우승을 기록한 팀은 얼마나 있을까.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 |
잉글리시 풋볼 리그 디비전 원(1888년 창설·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전신)의 첫 시즌(1888~89)을 18승 4무로 우승했던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팀. 사진=유튜브 캡처 |
아틀레틱 클럽
아틀레틱 클럽은 스페인 프로축구리그 라리가 출범 첫 시즌(1929~30)에 12승 6무로 무패 우승을 이뤘다. 아틀레틱 클럽은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을 대표하는 프로축구 클럽이다. 현재는 아틀레틱 빌바오(Athletic Bilbao)다.
1898년에 영국에서 돌아온 바스크인 유학생에 의해 창단됐으며, 1901년에 빌바오 FC의 구성원들과 함께 카페 가르시아에서 통합을 논의하였고, 이듬해에 두 팀은 ‘클럽 비스카야’라는 연합팀을 만들어 코파 델 레이에서 바르사를 꺾어 첫 우승컵을 가져갔고, 이후 두 팀이 통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축구계에서 머니 게임이 치열해지자 구단의 특성 때문에 점차 전력이 약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중위권 성적은 찍어주고 있다. 이 팀에서 명성을 날린 선수로는 전설의 골잡이 라파엘 피치치 모레노와 텔모 사라, 90년대 스페인 국가 대표팀의 골키퍼 안도니 수비사레타와 공격형 미드필더 훌렌 게레로, 라파엘 모레노 아란자디, 호세바 에체베리아 등이 있다.
레알 마드리드
![]() |
스페인의 명문팀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 1931~32시즌에 무패 우승(10승 8무)을 달성했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골잡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골을 넣고 환호하는 모습. |
최고의 선수라면 한 번쯤은 레알을 거쳐 갔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현 레알 명예 회장)를 필두로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 카카 등이 레알에 몸담았다. 레알 마드리드는 언제나 ‘공격 앞으로’다. 공격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레알 마드리드의 철학이다. 현재 홈구장 명칭으로 사용 중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수용인원 7만5000명)는 50년대 최전성기를 누렸을 당시 구단주 이름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최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을 앞세워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발족한 후 최초로 3연패를 달성했다.
아스널 FC
![]() |
아스널의 간판 티에리 앙리. 아스널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2003~04시즌 무패(無敗) 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
아스널은 특별한 팀이다. 역사가 이를 대변해 준다. 1920년부터 무려 91년간 EPL에 잔류해 있다. 이 부문 최다 기록이다. 아스널은 세계 최고의 더비 경기를 갖는 팀이기도 하다. 홈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과 불과 30여 분 거리의 화이트하트레인을 홈구장으로 쓰는 토트넘과 갖는 경기는 ‘북런던 더비’로 불리며 세계 축구팬의 이목을 끈다. 1920년부터 이어진 양 팀 간의 반목은 10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토트넘에서 활약했던 이영표도 당시 아스널전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토트넘전 외에도 맨유·리버풀 등 전통의 라이벌과의 맞대결도 항상 화제가 되고 있다.
아스널에서는 티에리 앙리와 데니스 베르캄프 그리고 토니 애덤스 등 최고의 선수들이 뛰었다. 아스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장이었던 토니 애덤스는 강인하면서도 매우 믿음직스러운 수비수였다. 앙리와 베르캄프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스널 유니폼을 입었던 역대 최강의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앙리는 아스널에서 8년간 380경기에 출장하여 226골을 성공하면서 클럽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네덜란드 국적의 베르캄프는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마술 같은 발재간과 탁월한 볼 컨트롤로 슈팅 기회를 만들거나 팀 동료에게 황금 같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 주는 킬패스를 성공하곤 했다.
AC밀란
![]() |
AC밀란 로고.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명문 AC밀란은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 1991/92시즌 때 22승 12무로 우승을 차지했다. |
유벤투스
![]() |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2011~12시즌 무패 우승(23승 15무)을 달성하고 환호하는 유벤투스 선수들. 우승트로피를 들고 있는 선수는 당시 간판 선수였던 델피에로. |
유벤투스는 많은 것을 잃었다. 세리에B(2부 리그)로 강등되며 1897년 팀이 창설된 이래 1부 리그에서만 뛰었던 전통이 깨졌고, 2004~05, 2005~06시즌 우승의 영광도 함께 박탈당했다. 더 큰 것은 사람을 잃었다는 것. 자존심 강한 스타들이 강등과 함께 줄줄이 팀을 떠났다. 하지만 ‘명문’ 유벤투스는 곧 이름값을 했다. 2011~12시즌 무패 우승(23승 15무)을 달성한 것. AC밀란은 18팀 체제에서의 무패 우승이었지만 유벤투스는 20팀 체제에서의 무패 우승이었다. 유벤투스는 현재 리그 7연패와 더불어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4번 연속 우승하며 4시즌 연속 더블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
레인저스 FC와 셀틱 FC
![]() |
레인저스 FC는 1898~99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시즌 때 전승(18승 무패)으로 우승했다. 사진은 당시의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
2016~17시즌의 셀틱은 완벽했다. 34승 4무라는 압도적 성적으로 스코틀랜드 리그를 정복했다. 스코틀랜드 최고 명문인 셀틱은 유럽 최초로 무적이라 불렸다. 윌리 멀레이 감독의 지도 아래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무려 62경기(49승 13무)에서 패배를 몰랐으니 그럴 법하다.
셀틱은 1887년 글래스고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 노동자들에 의해 창단됐다. 적은 임금과 종교적인 갈등(아일랜드는 가톨릭교, 스코틀랜드는 개신교)으로 타지에서 고생하고 소외당하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셀틱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 오랫동안 큰 활약을 펼쳤던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미드필더 로이 킨이 은퇴 전 자신의 마지막 팀으로 셀틱을 선택한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일한 라이벌은 레인저스 FC. 아일랜드 사람들은 셀틱의 승리 속에 타지 생활의 설움을 달래며 자부심을 지켜나갔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자기들 땅에서 기고만장한다며 싫어했고 이러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셀틱의 라이벌이었던 레인저스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창단 배경 때문에 셀틱의 유니폼은 지금도 아일랜드 국기를 상징하는 녹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같은 연고지를 두고 있으면서도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라는 핏줄의 차이에다 가톨릭교(구교)와 개신교(신교)라는 종교적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셀틱과 레인저스의 대결은 유럽에서도 가장 치열한 더비 매치로 손꼽힌다.
AFC 아약스
네덜란드 프로리그 에레디비시의 명문팀 아약스는 1994~95시즌 27승 7무로 우승을 차지했다. 에레디비시는 중소 리그이기에 빅 리그에 비해 무패 우승이 쉬울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에레디비시의 수준은 높았다. 1900년도에 창설된 아약스는 네덜란드 최대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을 연고로 하는 클럽답게 ‘국민의 팀’으로 통한다. 지난 1918년 첫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33회나 네덜란드 리그를 석권했다. 대부분의 네덜란드인이 자신의 연고팀을 응원하면서도 절반은 아약스의 팬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럽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아약스는 요한 크루이프, 프랑크 레이카르트, 데니스 베르캄프, 마크 오베르마스, 야프 스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여 빅 리그로 공급하는 축구 사관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SL 벤피카
벤피카는 포르투갈 축구 리그 1972~73시즌 때 흑표범 에우제비우를 앞세워 28승 2무로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30경기에서 101득점이라는 화력을 자랑했으며 에우제비우는 40득점을 하는 괴물 같은 득점력을 보여줬다.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는 한국과의 추억도 있다. 1970년 9월 그의 소속팀인 포르투갈 벤피카가 아시아 투어를 오면서 국내 국가대표팀인 청룡, 백호팀과 친선 경기를 치렀다. 에우제비우는 대표팀 2진 격이었던 백호를 상대로 30m 넘는 거리에서 프리킥 골을 꽂아 넣는 등 팀의 5대0 승리를 이끌었고, 청룡 팀을 상대로는 후반 막판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하며 1대1로 마무리 지었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을 연고로 하는 벤피카는 1933년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2부 리그를 경험하지 않았을 만큼 전통과 실력을 겸비한 구단이다.
FC 포르투
![]() |
FC 포르투는 포르투갈 리그에서 2010~11시즌 27승 3무, 2012~13시즌 24승 6무, 2회 무패 우승이란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 냈다. 포르투의 석현준(왼쪽)이 첫 골을 기록한 뒤 환하게 웃자 동료들이 축하하는 모습. |
울산 현대
![]() |
울산 현대는 2012년 K리그 사상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패 우승 신화를 이뤘다. |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유럽 구단 중 최다 경기 무패 기록을 보유한 팀은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루마니아)다. 부쿠레슈티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104경기 동안 패배를 몰랐다. 부쿠레슈티는 1985~86시즌 유럽 정상에 올랐고 1987~88시즌 4강, 1988~89시즌 2위에 각각 랭크되며 유럽을 지배했다. 당시 국내 리그에서는 5시즌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에메리크 에네이, 안겔 이오다네스쿠가 당시 부쿠레슈티의 ‘골든 에이지’를 이끈 루마니아 최고 명장들이다.
GNK 디나모 자그레브
디나모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크로아티아 축구리그 2014~15시즌 26승 10무 무패 승점 88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911년 창단한 이 구단은 통산 19회의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크로아티아 최고의 구단답게 자국 최고의 선수들이 뛰었던 팀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다보르 수케르와 이비차 올리치, 루카 모드리치, 마리오 만주키치, 데얀 로브렌, 마테오 코바시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