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明堂 - 서울과 평양 : 월간조선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주요 후보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자신이 책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도 있지만 그들의 면면을 보면 그럴 자격이 충분해 보이기도 한다. 대권(大權)을 놓고 오리무중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 중 누군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누군가가 이끌어 가게 될 대한민국. 그를 지도자로 삼아 우리 국민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은 어떠할까. 그 수명은 언제까지일까. 그 답을 찾는 일은 너무나 벅차고 민감한 문제다.

이 세상에 영원한 나라는 없다. 로마 제국도 10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결국 지상에서 사라졌고, 그 로마제국보다 더 강력한 파워로 세계를 지배해온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도 기우는 석양과 같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언젠가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그 끝은 언제쯤일까.

낭림산맥에서 발원해 서해로 빠지는 서남향(西南向)의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의 운세는 서울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것은 수도 서울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힘이고 요체다. 따라서 풍수가의 눈에는 서울의 지리학적 요건이 대한민국의 명운과 직결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경주)은 1000년, 고려의 수도 송악(개성)과 조선의 수도 한양(서울)은 각각 500년 동안 나라의 중추로서 역할을 다해 왔다.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비롯해 이들 도읍지는 저마다 풍수지리학상 명당의 형세를 갖추고 있다. 명당이기는 하지만 그 기운이 쇠했느냐 생기가 있느냐에 따라 현재의 기능과 미래의 역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은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도 식민통치의 수도였고 8·15 광복 후에도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까지 국가 수도에 대한 별다른 고뇌 없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한양을 국가의 수도로 삼아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아니다.

서울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손색없는 역할을 오늘날까지 감당하고 있는 것은 이 도시가 지닌 생기가 조선왕조 초기와 크게 다름없이 아직도 살아서 넘치기 때문이다. 즉 서울은 버리고 떠나야 할 죽은 도시가 아니라 아직도 기가 살아 있는 젊은 도시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번영과 통일은 현재의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수도권의 비대화를 걱정해 수도이전을 주장하나 풍수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매우 경박한 행위로 보인다. 아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분단국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비상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원동력이 서울이 지닌 생기, 즉 풍수지리학상의 기운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본다.

허드슨江에서 도나우江으로

풍수지리학을 비롯한 동양사상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역학(易學)에 따르면 1984년 이후는 후천세계(後天世界)로 분류된다. 이전의 선천세계(先天世界)가 양(陽)의 세계였다면 후천세계는 음(陰)의 세계다. 선천세계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물이 흐르는 서출동류(西出東流)의 순수(純水)에서 발전하는 시대였다면 후천세계는 동출서류(東出西流)의 역수(逆水)가 지배하는 세계다.

문명의 중심이 뉴욕의 허드슨강이나 워싱턴의 포토맥강처럼 서출동류하는 강에서 도나우강처럼 동출서류하는 역수 주변에 자리 잡은 유럽이 다시 문명의 주도권을 쥐고 나설 것이라는 예측의 근거다.

마찬가지로 한강은 하구(河口)인 강화도에서 볼 때 동남방에 위치한 태백에서 발원해 서울을 보듬고 서북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역수의 표본과 같은 강이다. 그중에서도 한강의 서쪽 지방에 해당하는 용산과 김포 및 파주시 교하(交河)가 새로운 역사의 동력원으로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동강과 보통강이 동출서류하며 하상(河床)에 빚어 놓은 평양이 서울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대동강은 서북으로 흐르는 강이 아니라 낭림산맥에서 발원해 평양을 지나 남포에서 서해로 빠지는 서남향의 강이기 때문에 서울과 평양을 단순 비교하는 것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내부에 청계천이라는 순수를 끌어안고 태극문양의 대명당을 빚으며 북한산과 인왕산의 기맥이 천하 대국(大局)을 형성한 서울을 기맥이 쇠잔한 평양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풍수지리학상 서울은 지기(地氣)를 빼먹은 노쇠한 땅이 아니라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혈기왕성한 땅이다. 이 땅을 중심으로 살아온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통일대업이 성취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명백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통일 대한민국의 수명은 어디까지일까.

풍수지리학은 운명론적 결정론이 아니다. 모든 것은 운명지워져 있다는 결정론과 달리 풍수지리학은 주어진 운명을 인간 개인과 공동체의 노력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풍수를 ‘탈신공 개천운(奪神攻開天運)’이라고 한다. 천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노력을 통해서 국가의 수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천하명당 대한민국

남산에서 바라본 북한산 인왕산 안산의 모습. 서울을 감싸고 있는 북한산과 인왕산의 기맥은 천하 대국(大局)을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앞에 ‘신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공동체에서 신생국가의 시행착오로 인한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주던 시절은 지났다. 신생 대한민국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라는 방법을 통해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택했다. 그러나 나라가 탄생한 지 100년이 안된 지금 전국의 토지는 5% 이내의 사람들이 70%를 소유하는 집중현상, 즉 부의 편재현상이 위험할 정도로 진행됐다.

이런 부의 편재현상을 보며 필자는 우리가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우를 가질 수밖에 없다. 500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은 제9대 성종 때까지 79년 동안 개국공신 52명, 정사공신 29명, 좌명공신 46명, 정난공신 43명 등 8번에 걸쳐 375명의 공신을 책정했다. 또 공신의 자제와 사위 등에게 내리는 원종공신으로 책봉된 자들도 2000명이 넘었다. 이렇게 공신이 남발되면서 균전제 등으로 단행했던 토지개혁은 서서히 물거품이 됐고 나라가 망할 때까지 토지 소유의 편향은 갈수록 심화됐다. 조선이 특권층만의 나라가 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도 정부수립 후 채 70년도 되지 않아 5% 이내의 사람들이 70%의 토지를 소유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토지뿐이겠는가. 자본의 집중현상도 결코 토지 편재 현상에 못지않을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런 말을 했다. “금융자본이 생산자본을 좌지우지할 때 자본주의는 종말에 가깝다”고 말이다. 그의 예언이 맞든 안 맞든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가 얼마나 건강한지 따져 봐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천하명당을 수도로 삼고 지기가 왕성한 기회를 잡고 있지만 우리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제 아무리 천하명당에 나라를 세워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명은?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수명 이야기로 돌아가자.

중국의 통일국가는 수명이 고작 200~300년에 불과했다. 물론 진나라나 수나라는 그것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1000년을 버틴 신라를 제외하고도 400~500년을 버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일일 뿐이고 지금처럼 모순과 갈등이 첨예화하고 문명의 발전속도가 빛의 속도로 내달리는 상황에서는 국가의 수명이 길어야 300년 정도일 것이다. 대한민국도 거기서 크게 예외는 아닐 것이다.

풍수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은 한강을 중심으로 한 수도 서울의 지기가 천년 도읍지라는 것이다. 풍수전문가들의 판단대로라면 정도(定都) 1000년이 되는 2300년대에 가면 이 나라의 국체(國體)에는 중대한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전까지는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기운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견인할 것이다. 따라서 서울의 팽창하는 기운을 억지로 누르고 분산시키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선순환을 통한 보완으로 나라 전체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지혜일 것이다.

어떤 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위를 둘러싼 지형 구도를 대국(大局)으로 보고 일본 열도를 청룡, 중국을 백호, 그리고 호주 대륙을 안산으로 보고 그 너머에 있는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외청룡, 외백호로 파악한 후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며 이것이 신의 섭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저 국수주의자의 자기만족이거나 기대와 현실을 혼동하는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풍수지리학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주장이다.

지구상 가장 수려한 산천을 지니고 있는 데다 명당에 대한 의식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지기를 충분히 활용한다면 앞에서 말한 주장이 단순한 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좋은 땅, 곳곳에 명당이 있는 금수강산에 태어난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올바른 지혜와 경세(經世)의 철학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하늘이 내려준 땅의 기운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혜를 저버리고 국민과 지도자가 엉뚱한 짓을 한다면 이 나라의 앞날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그런 점을 알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조선 시대처럼 공신만 남발하지 않아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구술 정리 : 金成東月刊朝鮮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