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인간탐험

‘앵커의 시선’에서 투사의 눈으로, 신동욱 의원

“윤석열과의 절연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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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교각살우의 위기… 민주주의를 죽일지 모른다”
⊙ 한동훈 징계 문제, “실타래는 안 풀립니다. 어떡합니까? 잘라 내야죠”
⊙ “이재명 정권이 실패하길 바라지만, 정부는 성공하길 바랍니다”
⊙ “현직 당협위원장(이혜훈)을 야반에 보쌈하듯 데려갔는데, 보니까 잘못 데려왔더라? 이건 협치가 아니죠”
⊙ TV조선 ‘앵커의 시선’ 1516회 방송… “사실을 전하는 말보다, 여운을 남기는 말이 더 오래간다”
⊙ “여당이 지방선거 앞두고 ‘바람’을 일으키려는 작업을 할 텐데, 그게 남북관계”

申東旭
1965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同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 SBS 기자·국제부장, TV조선 보도본부장·뉴스총괄프로듀서 상무 역임. 現 제22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 / 바른말보도상(2007년), 한국참언론인대상(2015년), 서울대언론인대상(2021년), 한국바른언론인대상(2023년) 수상
사진=조준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먼저 울렸다. 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사진기자의 손이 공기를 가르며 움직였고, 국회 의원회관의 형광등 아래에서 그의 얼굴은 잠시 정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빛이 얼굴을 고르고, 어깨의 각도가 정해지고, 손이 어디에 놓일지가 결정되는 동안, 말은 잠시 대기한다. 정치는 말로 시작되지만, 그 말은 언제나 몸에서 먼저 반응한다.
 
  지난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서초 을)은 잠시 서 있었다. 사진기자의 사각 앵글을 향해 그는 어깨를 돌렸다. 금세 카메라가 원하는 각도와 그가 익숙한 각도가 절묘하게 겹쳐 있었다.
 
  그는 ‘말’을 오래 다뤄 온 사람이다. 말을 던지기보다 고르고, 쏟기보다 남기고, 설명하기보다 버려 온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한때는 방송기자였고 뉴스 앵커였으며, 지금은 정치인이다.
 
 
  “말은 전달이 아니라 남김”
 
  신동욱이 TV조선 ‘앵커의 시선’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낮아졌다. 사실을 전달하는 말보다 여운을 남기는 말이 더 오래간다고 했다. 정답을 지시하는 언어는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사람은 지시받을 때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때 움직인다고 그는 믿는다.
 
  기자의 언어는 칼날처럼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 숨을 남겨야 한다. 신문을 쓰는 사람들, 특히 칼럼을 쓰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말은 너무 약하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그는 그런 지적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언어가 지닌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말을 끝내지 않는 언어, 결론을 독자에게 넘기는 언어. 그것이 방송이라는 매체의 성질이고, 자신이 택한 방식이라고 믿었다. 여백은 종종 오해를 불렀고, 때로는 공격을 받았으며,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사람의 마음을 붙들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치적 절망이 깊어졌던 시간에 누군가는 그의 말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두고 반복해 들었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그의 말을 들으며 하소연하듯 울었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방송 인생에서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밤을 조금 덜 외롭게 만든 말이었다.
 
  2023년 12월 29일 TV조선 ‘뉴스 9’의 ‘마지막 앵커의 시선’을 좀 길지만 인용한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유심초가 고쳐 부른 이 명시에서 별은 외로움과 그리움, 만남과 헤어짐의 상징입니다. 별은, 따르고 싶은 표상이기도 하지요.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 주는 그런 사람….’
 
  저도 그런 꿈을 안고 ‘앵커의 시선’을 시작한 지 6년 열아흐레에 이르렀습니다. 돌아보니 별이 밤하늘을 그으며 떨어지는 순식간 같습니다만, 그사이 1516개의 ‘시선’이 세상을 향했습니다. 나라를 뒤흔든 격변의 순간들, 그때마다 요동치는 민심,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운 우리네 사는 이야기까지….
 
  그중에 유튜브 조회수만 따져 가장 많은 분이 눈을 맞춰 주신 시선이 ‘윤석열이 왜 두려운가’였습니다. 총선을 석권한 민주당이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를 시작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핍박에 끝까지 앞장서던 추미애 장관 이야기도 넷째로 많은 조회를 기록했습니다. 정권과 집권당의 그 필사적 탄압 덕분에 검사 윤석열은 ‘별의 순간’을 잡았지요. 그리고 세계 정치사에 드문 일대 반전 드라마를 써 냈습니다.
 
  그다음 조회수 2위가 ‘법무장관 한동훈’입니다. 법무장관에 지명된 그가 대통령의 팔다리가 아니라, 목에 걸린 생선뼈처럼 강직한 신하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제목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른 이는 조국 전 장관입니다. 정권이 스러지고 새 정권이 태어나는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조국 사태였으니까요. 하지만 여태 그를 향한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법학자라는 그가 저주에 가까운 악담과 선동을 그치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세상 살 만하다’는 위안의 시선도 꾸준히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담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정치부터 일상까지 세상이 그만큼 모질고 각박해진 것이겠지요. 그래도 따스한 사연을 찾을 때마다 보내 주신 뜨거운 화답은, 그간 누린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얼마 전 공인회계사회가 이 ‘연탄’ 이야기를 보고 연탄 10만 장을 기부한다고 했을 때가 그랬지요. 그렇게 6년 세월을 지나 이윽고 마지막 날에 다다랐습니다.
 
  부처가 열반에 들며 말씀했듯, 생명은 스러지고,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지요.
 
  이제 다시 별을 우러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 이 어둠을 반짝이겠는가. 믿음은 별이라서, 작아도 모두 반짝인다.’ 늘 지켜보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의 작은 믿음들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리라 믿으며, 다시 뵐 날을 기다립니다.
 
  2023년 12월 29일, 마지막 ‘앵커의 시선’이었습니다.〉

 
 
  왜 정치였는가
 
  신동욱은 ‘앵커의 시선’ 마지막 방송을 그렇게 마쳤다. 2017년 시작해 1516회에 이른 장기 코너였다. 훗날 이 시간들을 두고 “굉장히 고독한 날들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앵커는 매일 밤 혼자 카메라 앞에 섰고, 그날의 정치와 사회를 한 문장, 한 비유로 담아냈다. 환호보다 침묵이 길었고, 박수보다 반발이 먼저 돌아오는 자리였다.
 
  “중간광고도 붙었잖아요.”
 
  그는 짧게 덧붙였다. 코너 앞에 30초 광고가 들어가고, 코너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장면으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걸 그는 성공담처럼 말하지 않았다. 매체가 인정한 시간이고, 시청자가 허락한 시간이었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그렇게 담담하게 말했다.
 
 
  ‘여백의 미’
 
TV조선 ‘뉴스 9’ 앵커 시절의 신동욱. 스튜디오 조명 아래 원고를 들고 서서 메인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여백의 미’를 꺼냈다. 그 말은 방송인에게는 기술이고, 작가(예술가)에게는 태도이고, 정치인에게는 아직 먼 꿈처럼 들린다.
 
  “방송 언어는 매체 특성이 다르니까, 여백의 미가 있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습니다.”
 
  효율이라는 단어가 의외로 거기 붙어 있었다. 여백은 낭만이 아니라 기능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여백을 ‘멋’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백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이며, 사람의 마음이 들어올 수 있는 빈자리일지 모른다. 그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는 말의 속도에 채찍을 던졌고 때론 고삐를 당겨 결론을 늦췄다. 그 늦춤이 누군가에게는 약함으로 보였고, 누군가에게는 위로로 남았다.
 
  완결되지 않은 말이 남긴 것은 결론이 아니라 여운이었다. 그 잔광 같은 여운이 아직도 누군가의 귀 안쪽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앵커의 시선’ 마지막 날, 신동욱은 ‘별’로 스스로의 시간을 정리했다. 외로움과 그리움, 만남과 헤어짐의 은유이자,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믿음의 표상이 별이다. 그는 별을 ‘따르고 싶은 표상’이라 불렀고,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별이 될 수 있을지를 자문했다. 그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던 지난 6년여의 시간 동안 나라를 뒤흔든 격변과 민심의 요동, 기쁨과 분노, 슬픔과 위로를 담아낸 ‘시선’들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처럼 스쳐 갔다.
 
  그의 회고는 동시에 자기성찰이었다. 가장 많이 회자된 ‘시선’들이 특정 인물과 권력의 흥망을 다뤘다는 사실, 그리고 미담보다 갈등의 서사가 더 많았다는 고백에는, 한국 정치와 사회가 놓인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믿음’을 말했다. 작고 미약해 보여도 각자의 믿음이 별처럼 반짝일 때, 어둠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는 확신이었다.
 
  그는 앵커 기자였다. 가감 없이 사실을 드러내고, 권력을 지적하고, 모순을 기록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지적만으로는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비판한 뒤 뒤돌아서서 모든 책임을 남에게 넘기는 삶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책임을 택했다. 보람을 버리고 부담을 택했다. 정치는 보람의 자리가 아니라 짐을 지는 자리라고 깨달았다. 정치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신동욱은 이제 투사(鬪士)의 자리에 있다. 여당 의원에서 눈 깜짝할 사이 야당 의원이 됐다. 야당이 되자 공무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료 협조는 더디고, 후원은 조심스러워졌다.
 
 
  눈 깜짝할 사이 야당 의원 돼
 
신동욱 의원은 스스로를 투사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정치는 결국 싸움의 자리라는 걸 깨닫는다. 규탄대회 현장에서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신 의원.

  스스로를 투사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정치는 결국 싸움의 자리라는 걸 깨닫는다. 정치는 타협의 언어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을 대신해 싸우는 자리가 정치라면, 싸워야 할 때 물러서는 것은 책임이 아니다. 그는 말한다. “전쟁이 벌어졌는데 후방에서 보급만 하겠다? 그건 정치인의 덕목이 아니다”라고. 그래서 그는 요즘 자신의 말이 거칠어졌다는 것을 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단어가 직선으로 변하고, 그 결과 말이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매일 반성한다고 했다. 방송이 끝난 뒤 자신의 말을 다시 들여다본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나 후회는 없다고 했다. 싸워야 할 순간에 싸우지 않는다면 정치에 들어선 이유가 사라진다고 했다.
 
  요즘 대통령의 말에 큰 실망을 했다. ‘말=권력’이란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대통령의 언어는 통합의 언어여야 합니다. 솔직하고 서민적인 표현은 필요하지만, 조롱과 멸시, 편 가르기의 말은 국가를 분열시키는 언어입니다. 대통령은 적장(敵將)의 언어를 써서는 안 됩니다. 국민에게 대통령은 어느 진영의 수장이 아니라 공동체의 얼굴이기 때문이죠.”
 
  그는 직설의 힘을 부정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어를 예로 들며, 직설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직설이 칼이 될 때, 그 칼은 결국 국가를 다치게 한다”고. 때로 말은 가장 쉽게 사람을 찢고, 그 상처는 가장 늦게 회복된다.
 
 
  ‘경제의 속살’
 
  — 대선 때는 협치와 통합을 강조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정권 교체 후 뭐가 달라졌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숨을 잠시 고르고 대답하는 그 짧은 말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단단한 말이란, 더는 덧붙일 게 없다는 뜻이다.
 
  —경제위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진짜 위기입니까?
 
  그는 경제의 ‘속살’이라는 말을 꺼냈다. 속살은 살점이다. 칼을 대야 드러나는 것이다.
 
  “저도 경제의 속살을 다 들여다보는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만… 제 상식과 제가 가진 경제학 지식, 그리고 언론에서 오래 지켜본 것들을 보면요, 지금 가장 큰 위기는 성장은 정체돼 있는데 국가 재정의 수요는 자꾸 커지는, 그 언밸런스에 있다고 봅니다.”
 
  성장이 멈춰 서 있는데 돈을 써야 할 자리는 자꾸 늘어난다. 그 틈이 벌어지면 나라살림은 흔들린다. 흔들리는 살림은 늘 ‘돈’이라는 단어를 크게 만든다.
 
  “대통령은 ‘돈을 풀자’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는 ‘적극재정’이란 표현을 쓰는데, 저는 그게 적극재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아니라고 보십니까?
 
  그는 ‘적극재정’의 큰 모양을 먼저 그렸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었다.
 
  “적극재정이라는 건, 당장은 어렵더라도 허리띠를 좀 졸라매고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를 국채를 발행해 늘리는 것 같은 겁니다. 또는 위기 국면에서 재정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는 전통적 의미의 정책이죠. 지금 이재명 정부가 생각하는 ‘적극재정’은 미래 투자나 위기 극복을 위한 게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한 적극재정이라고 봅니다. 소위 포퓰리즘이지요.”
 
  멍이 드는 건 겉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병의 증상은 더 늦게 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아직은 괜찮다’고 말한다. 그는 그 ‘아직’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 이혜훈 전 의원을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발탁한 것에 대한 국민의힘 반응 중 ‘찌질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는 되물었다. 되묻는 말은 방어가 아니라 선을 긋는 행위다.
 
  “우리 반응이 찌질하다고요?
 
  첫 번째로, 이혜훈 전 의원은 동료나 동지에 대한 기본 의무를 저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비난하는 걸 ‘찌질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이혜훈, 협치의 이름으로 불린 인사
 
  그는 ‘배신’이라는 말을 오래 굴렸다. 정치에서 배신은 흔하다. 그럼에도 늘 낯설다.
 
  “두 번째로 민주당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혜훈 후보자의 과거 행적, 재산 형성, 언어 문제를 두고 ‘그건 국민의힘 때 일이다’라고 말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달라집니까? 국민의힘에 있을 때의 일이라도, 그 사람은 지금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사람입니다. 그때 있었던 게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연속선상에 ‘이혜훈’이라는 사람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말 전체가 책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면 검증을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죠. ‘대한민국 장관으로서 검증을 잘못했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다. ‘국민의힘 때 일이니 문제없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는 국민의힘이 무엇을 따지는지 두 줄로 정리했다.
 
  “하나는 ‘저희를 배신한 이혜훈’이라는 측면이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 장관 후보자로서 이혜훈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입니다.”
 
  — 그러면 결론은 뭡니까?
 
  “이 정도면 본인이 결단을 내리든지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든지, 그게 국민에 대한 예의입니다.”
 
  — 협치·통합 관점으로 보면, 보수 인사를 모셔오는 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협치’라는 단어를 밀어냈다.
 
  “협치라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표현이 아닙니다. 정권을 잡고 보니 상대 진영에도 훌륭한 인재가 있으니, 예를 들어 경제 분야에서 당신네 철학을 가진 인사가 장관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 추천을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협치입니다.”
 
  그는 이번 일을 ‘야반 보쌈’이라고 말했다. 말이 거칠어 보이지만, 정치에서는 거친 은유가 더 또렷하게 읽힐 때가 많다.
 
  “현직 당협위원장을 야반에 보쌈해 가듯 데려갔는데, 데려와 보니 잘못 데려왔더라? 이건 협치가 아니죠. 며칠 전까지 이재명 대통령 나쁜 사람이라고 외치던 사람을 데려가는 게 협치입니까? 그건 철학의 파괴고, 개인을 파괴하는 짓입니다.“
 
  — 이 정권이 실패하길 바라십니까?
 
  그는 웃지 않았다. 정치인은 이런 단언적인 질문 앞에서 웃으면 손해를 본다. 그는 솔직함과 계산 사이의 선을 탔다.
 
  “정권은 태생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정부는 성공하길 바랍니다.”
 
  정치인의 문장이면서도 시민의 문장이었다. 정권은 상대이고, 정부는 나라다. 정권이 실패해도 나라는 실패하면 안 된다. 그는 그 두 단어를 분리해 놓았다.
 

“이 아이는 말로 먹고살 겁니다”


신동욱의 고향은 경북 상주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교사가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말로 먹고살 아이입니다.”
 
  그 말은 오래 남았고, 그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는 국어를 잘했다. 수학도 잘했지만 국어에서 더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다가 반수를 해 경영학과로 옮겼다. 그리고 방송기자가 됐다. 경영학과 출신 기자는 흔치 않다.
 
  경상도 억양을 고치기 위해 볼펜을 물고 꾸준히 발음을 연습했다. 성악 발성도 배웠다. 긴 시간 이어지는 생방송을 견디기 위해 몸으로 소리를 만들었다. 말은 재능이 아니라 훈련이었다. 그리고 버팀이었다.
 
  학창 시절 발표 수업은 기억에 또렷하지 않다고 했다. 학생회 활동은 열심히 했으나 서클 활동은 하지 않았다.
 
  술은 거의 마시지 않는다. 피하는 것도 아니다. 소주 한두 잔, 맥주 한두 잔이면 그만이다. 노래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즐겨 불렀다.
 
  늘 마음에 두고 사는 말이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이 눈앞에 보일 때마다 복병이 있는 법이니까. 이로운 것을 곧장 좇을수록 낭패가 따랐다. 그래서 그는 이익이 보일 때마다 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묻게 됐다고 했다.
 
  기자 생활을 하며 그 생각은 더 굳어졌다. 국회에 들어와서는 더욱 잦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견리사의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국회는 의로움보다 이로움에 더 반응하도록 짜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좋다’는 말
 
  —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민주당이 저렇게 똥볼을 차는데, 국민의힘이 좀 잘하면, 예를 들어 유승민 한동훈 장동혁 이준석… 딱 머리를 맞대고 화합하는 모습만 보여도 보수가 힘이 생길 텐데 왜 저러냐고요. 계엄과 대선 패배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의 지금 위치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는 “위험합니다”라고 바로 말했다. 말끝을 흐리지 않았다. 위험하다는 말은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말이 아니다.
 
  “굉장히 위험한 위치에 와 있죠. 우리가 부인할 수 없습니다.”
 
  — 왜 그렇게 보십니까?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시켰기 때문입니다. 한 10년 사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멀쩡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멀쩡하지 않은 겁니다.”
 
  그는 ‘탄핵’이라는 단어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다른 단어들을 얹었다. 자신감, 자존심, 철학. 정치의 말들은 대개 추상인데, 그 추상이 무너졌다는 말은 어떤 구체보다 무겁게 들릴 때가 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우리 보수 정당이 가져 왔던 자신감, 자존심… 국가를 이끌어 왔다는 자신감, 앞으로도 우리 철학대로 끌고가면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그 철학이 상당 부분 무너져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다만 현실 정치라는 게, 격변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게 되어 있잖아요. 누가 잘못했느냐, 누가 잘했느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거죠.”
 
  — 지금도 단일 대오로 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장동혁 이준석 한동훈 유승민… 그렇게 손을 잡으면 가장 좋지 않을까요?
 
  그는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거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여의도에서 ‘좋다’는 말은 ‘어렵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가장 좋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것들을 묶어 내기 위한 노력은 거저 되는 게 아닙니다.”
 
  — 하고 있긴 합니까?
 
  “하고 있습니다.”
 
  그는 ‘될 것이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정치인의 낙관은 대개 비용이 든다. 그는 그 비용을 계산하는 눈빛이었다.
 
  “분명히 말씀드릴 건, 그저께(1월 7일) 장동혁 대표가 사과를 했고, ‘이기기 위한 변화’라는 표현을 썼거든요. 이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해 보이는데요.
 
  “6월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그 선거에서 졌을 경우 우리가 받을 타격, 그 공포감을 지금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그런 말도 하죠. 다음 주라도 만나서 ‘잘해 보자’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초등학생들도 한번 싸우면 화해시키는 데 노력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의 의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각각의 진영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같은 당 지지자들이지만, 안에서 생각이 너무 다릅니다.”
 
 
  장동혁 대표의 계엄 사과
 
  — 장동혁 대표의 계엄 사과를 어떻게 보나요? 잘했다고 봅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라는 표현,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표현에, ‘단절’과 ‘계엄의 강을 건너겠다’는 의지가 다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윤 어게인 세력과 절연’한다는 말이 없잖아요.
 
  “구체적인 단어로 자꾸 규정해 버리면 그 단어 속으로 또 갇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언어가 참 무서운 겁니다.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 그래서 우리는 사과했고 앞으로 간다’, 이 큰 틀이 저희가 원하는 바입니다.”
 
  그의 말 속에는 ‘프레임’이 들어 있었다. 정치의 말은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분석하는 말이 되었다. 말은 ‘사과’로 시작해서 ‘프레임’으로 끝난다. 사과는 마음의 일이지만, 프레임은 기술의 일이다. 정치의 말은 마음과 기술 사이를 오간다.
 
  — 그럼 앞으로 더 뭘 하겠다는 건가요?
 
  그는 ‘더’라는 말을 싫어하는 듯했다.
 
  “그 방향으로 분명히 갈 겁니다. 다만 당 안팎, 언론에서 ‘그것만으로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나오면, 어떤 점이 부족한지 겸허하게 생각해서 그런 여론이 10%, 10%, 10%씩 줄어들 수 있는 길로 노력하겠습니다.”
 
  10%가 세 번 나왔다. 숫자는 정치의 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전투적으로도 들린다.
 
  — 윤 어게인 지지자들과의 절연이 불가피하다고 보세요?
 
  그는 먼저 선을 그었다. 그러나 그 선은 사람을 내쫓는 선이 아니었다. 내쫓는 선은 쉬운데, 품은 채로 선을 긋는 일은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요, 그분들이 ‘윤 어게인’을 주장하든, 탄핵과 계엄을 찬성하든, 어쨌든 이분들이 당원으로 들어와 있거나 당을 지지한다고 하는데 ‘너희는 생각이 이러니까 나가’, 이건 못 합니다.”
 
  정당은 문을 닫아걸 수 없다. 문을 닫는 순간 정당이 아니라 동호회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 그럼 어디까지는 가능하고 어디부터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까?
 
  “당(黨) 대 당, 집단 대 집단으로, 예를 들어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모임’과 소통하거나 지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당의 공식 입장은요?
 
  그는 ‘끝났다’라는 말을 꺼냈다. 끝났다는 말은 대개 끝나지 않은 일에서 나온다. 끝났다고 말해야 끝나기 때문이다.
 
  “이미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은 끝났습니다. 이미 (국민의힘은) 절연을 선언했고, 윤 전 대통령이 탈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으로 안타깝다라든지, 이런 것까지 하지 말라고는 저는 못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건 양심의 자유에 개입하는 것이죠.”
 
  그는 ‘양심’이라는 말을 꺼냈다. 정치에서 양심은 드물게 등장한다. 등장할 때는 대개 마지막 방어선이다.
 
  “양심의 자유까지 개입해 ‘그것도 하지 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엉킨 실타래 잘라 내야”
 
  — 사법 판단은요?
 
  “사법적 판단은 법원으로 넘어가 있는 것이니 지켜보겠다는 겁니다. 다만 정치적 공격의 일환으로 불공정하게 진행되거나 인권이 침해되는 건 아니어야겠죠.”
 
  모든 것을 법원에 넘겨 놓는 태도를 ‘중립’이라 부를 수도 있고, ‘회피’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의 뼈대는 분명했다. 정치가 법을 집어삼키면, 정치는 결국 자기 몸부터 썩는다.
 
  — 정리하면, ‘절연은 이미 되었다’는 의미인가요?
 
  “네. 절연은 됐다고 봅니다. 어제도 언론인들을 만나서 ‘왜 자꾸 우리 당을 윤어게인당이라 표현하느냐’ 물었더니 ‘국민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방송 활동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겁니다.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 눈에 그렇게 보이는 부분을 어떻게 불식할지 고민을 계속 해야 합니다.”
 
  기자는 곧장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당 전체를 흔드는 도끼처럼 쓰이기도 하는 이름이다.
 
  — 어제 만난 어떤 정치 패널이 그러더군요. 한동훈 전 대표가 징계를 받아 당권이 정지되면 사실상 ‘퇴출’ 아니냐고요.
 
  그는 먼저 당 윤리위를 말했다. 윤리위는 정치에서 책임을 넘기는 책상이다.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일이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인다.
 
  “징계 문제는 윤리위에 맡겨 놓은 부분이긴 합니다. 한 전 대표는 당의 자산이다, 부담이다, 의견도 갈리고요.”
 
  그는 이어 “안타깝다”고 했다.
 
  “시각 차이가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지자들은 ‘권력을 잡는 데 내세울 후보’를 봅니다. 지금 압도적인 우위의 대선 후보가 뚜렷하진 않지만, 일부라도 지지하고 있는 한동훈이라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는 ‘디테일’과 ‘본질’을 갈랐다. 기자는 디테일을 좇고, 정치인은 본질을 말하는 척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구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기자 출신인 그가 본질 쪽을 파고들었다.
 
  “한 전 대표는 당원게시판 문제를 두고 ‘디테일’을 따져서 ‘내가 한 것 아니다’라고 하죠. 그런데 당원이 묻는 건 그게 아닙니다. ‘당신이 우리가 믿어도 좋은 지도자감이냐’를 묻는 겁니다.
 
  우리는 잘못했으면 인정할 줄 아는 도량이 넓은 지도자를 원합니다. 싸움 잘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군인도, 법률가도, 검사도 많잖아요. 지도자는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실타래를 말했다. 국회에서 실타래가 풀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엉킨 실타래를 풀겠다고 달려드는 손이 많을수록 더 엉킨다.
 
  “실타래입니다. 지금 당 내부 문제는 실타래라서 풀 수가 없습니다. 안 풀리면 어떡합니까? 잘라 내야죠.”
 
  국민의힘 당 윤리위는 1월 14일 한 전 대표에 대해 제명 결정을 내렸다.
 
 
  “제 말뜻을 잘 해석해 달라”
 
  그는 곧장 이렇게 이어 갔다.
 
  “풀 수 없는 부분을 풀겠다고 이쪽에서 풀고 저쪽에서 푸는데 (결국) 안 풀립니다. 그래서 그 양쪽을 잘라 냅니다(잘라 내야 합니다). ‘징계 문제는 잘라 내야 한다’는 제 말뜻을 잘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치인은 말을 던지고, 해석을 부탁한다. 해석을 부탁한 순간부터 그 말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니다. 해석은 냉철한 시각에 열려 있다.
 
  — (한동훈 전 대표가) 지도자감은 아니라는 말씀인 거죠?
 
  “적어도 우리 당원들이 지도자로 인정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꼭 (당의) 자산이라고 하면, 지도자만을 자산으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의 자산이라는 부분을 100%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전 대표는 이미 지도자로서 쓰임새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논하는 레벨로 올라가는 분이기 때문에 조금 더 큰 정치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봅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지방선거 질문을 꺼냈다.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지만 중앙정치 성과를 가지고 지방에 내려가 치르는 시험이다.
 
  — 지방선거 전망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
 
  그는 “어렵다”고 말하고, 곧바로 “절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절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대개 절망이 이미 한번 지나간 흔적이 배어 있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 그 근거는 어디에 있나요?
 
  “선거의 3대 여건-바람, 인물, 구도-세 가지가 다 유동적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5개월여 남았고 결국 공천으로 가는데, 공천 과정이 주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큽니다.”
 
  그는 공천을 ‘감동’으로 이어지게 하겠다고 했다. 공천에서 감동이 나온 적이 있었나? 그러나 감동이 없으면 표도 없다. 그 말은 희망사항이기도 하고, 다짐이기도 하다.
 
  “무난하게 가서 관심 못 받는 공천으로 가기보다는,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다 나와 치열하게 경선을 하고, 그게 국민적 감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는 여당이 만들 ‘바람’을 남북관계라고 짚었다. 바람은 늘 국경을 넘어온다. 북풍이라는 말이 낡았다고 해서 바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람은 이름을 바꾼다.
 
  “여당이 지방선거 앞두고 바람을 일으키려는 작업을 할 텐데, 저는 그게 남북관계라고 봅니다. 남북관계 개선 문제가 중국, 북미 관계까지 포괄하니까요.”
 
  — 그럼 낙관은 어렵고….
 
  “탄핵 이후 1년 만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아무 근거 없이 잘될 것이라 믿으면 제정신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는 몇 배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공천도 잘해야 합니다.”
 
  — ‘내란몰이’ 구도는 벗어났다고 보십니까?
 
  “저는 거의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변수’를 인정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 과정이다. 정치는 법정 앞에서 늘 불안하다. 판결문이 나오기 전에 이미 여론의 판결이 나고, 그 여론의 판결이 다시 정치인을 흔든다. 마치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꼬리를 무는 순환이다.
 
  “재판 결과가 미칠 영향은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민주당이 그걸로 계속 선거를 치르면 국민적 역풍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상당히 버거운 것도 사실”
 

  — 공천을 참신하고 개혁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그게 이번 지방선거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호남권을 제외하고 이겼기 때문에 다 지키기는 상당히 버거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거점들, 특히 서울과 부산, 또 충청도의 일부 지역들은 수성(守城)을 하기 위해서 저희도 최대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 현역 단체장도 교체할 가능성이 있나요?
 
  “당내 분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위적인 교체보다,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분들이 경선 현장으로 나와 주기를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든 유승민 전 의원이든 경선에 함께 참여하면 시너지가 의외로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저는….”
 
  그러더니 이런 말을 보탰다.
 
  “당 지지자들 중에 그분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툭 던지기는 어렵습니다. 흔히 요즘 하는 얘기로 ‘빌드업’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만약 오늘 이 인터뷰가 앵커의 뉴스 클로징이라면,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한 문장을 던지고 싶습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 말로 마무리를 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 눈앞의 작은 잘못을 두고 다투다가 민주주의를 죽일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 빨리 빠져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의 손에 난 상처를 보았다. 상처는 작았지만 흰 손등 위에서는 그 자국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정치를 시작해 아직 반환점도 채 돌지 못했는데, 그가 마주한 국회 현장은 피가 튀고 살이 터지며 ‘교각살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되풀이되는 곳이다. 어떻게 난 상처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상처투성이의 정치판에서 그는 점점 칼잡이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말의 여백을 포기하지 않는 쪽을 바라봤다.
 
  — 여전히 정치에서 시적(詩的) 여백의 언어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과거 명(名)대변인의 말은 사자성어 같은 두세 문장이었죠. 지금은 그 시대가 아닙니다만.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잘 정리된 언어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의 언어는 전투의 언어에 가깝다. 단문은 직설이 되고, 설명은 공격이 된다. 그러나 그가 말한 ‘돌아감’은 후퇴가 아니라 회복에 가깝다. 싸우기 위해 날을 세우되, 언젠가는 다시 문장을 닦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피로 얼룩진 현장에서조차 여백을 잃지 않는 말, 상처 위에서도 별처럼 남는 언어. 그것이 그가 정치에 남기고 싶어 하는 마지막 그림일지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은 남는다. 이 싸움의 불길이 너무 거세어, 돌아갈 자리가 남아 있을지, 그리고 별이 내려앉을 자리는 고요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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