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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안함 故 민평기 상사 어머니 윤청자 여사

(화장실 옆방을 가리키며) “저기가 (민)평기 방이었어요. 아직도 잘 못 들어가”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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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인처럼 살았던 날들… 마지막 소원 못 이루면 죽어서도 눈 못 감아”
⊙ 尹 대통령 오찬 자리서 ‘폭침 사실 교과서 실어달라’ 부탁
⊙ 文 대통령의 北 소행 발언 진정성 없어… 아직도 음모론 난무
⊙ “날 쏘아보던 김정숙 여사와 화해? 바로 밀어냈다”
⊙ 손주들까지 학교서 죄인처럼… 교사, “천안함 유족인 것 알리지 마라”
⊙ 이명박 대통령에게 들은 ‘폭침 사실 교과서 게재 어려운 이유’
⊙ 딸 잃은 슬픔에 제대로 못 먹인 게 아직도 恨
  팔순 노모의 기억은 그랬다. 엊그제 일은 희미해도, 수십 년 전 일은 선명했다.
 
  “세상에, 요(손바닥)만 한 애가 태어났어요. 어찌 작은지, 창새기(창자)가 다 보일 정도였어요. 옛날 가난한 집에 우유가 있어, 뭐가 있어. 영양실조에 걸려서 젖도 안 나오지, 밥 넣어놓은 물, 그 밥물을 떠다가 설탕 조금 타 먹이고 그랬다고요. 양이 안 차니 그 불쌍한 것이 만날 울었어.”
 
  되감아 올라가자, 그간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한(恨)도 나왔다.
 
  “그 시절 시골에는 자갈, 모래 채취한다고 파놓은 구덩이가 있었어요. 제때 메우지 않으면 물이 들어차는데, 우리 첫째 딸이 열 살 때 거기 빠져서 먼저 갔어요. 딸 보낼 때 막내(고 민평기 상사) 임신 여덟 달 됐을 땐데, 음식이 넘어갑니까. 보고 싶어 미치겄는디.
 
  만삭 임신부가 삐쩍 마르니 주변에서 볼 수가 없어 병원에 데려갔어요. 의사선생님이 ‘아이일랑 포기허고, 산모부터 살려야겠다’고 했어요. 절대로 안 된다고 병원서 도망쳐가지고 집에서 낳은 아이예요, 평기가. 애를 잘 못 먹이니, 보다 못해 친정에서 돼지 발목을 고아서 갖다주고 그랬어요. 그걸 먹으니 젖이 조금 나와. 그제야 방긋방긋 웃는디, 얼메나 예뻤다고요. 말도 못 해요. 아이고, 니가 스스로 살았구나, 니가 나를 살리는구나, 했지.”
 
  가슴에 묻은 아들은 여전히 나이를 먹는다.
 
  “그런 애가 가버린 거예요. 딸을 익사로 보내서 내가 물이라면 징그러워. 그래서 해군을 그리 반대를 했었는데…. (살아 있었으면) 올해 마흔여덟 됐겠네. 곧 있으면 평기 생일(음력 8월)잉게.”
 
 
  호국영웅 초청 오찬
 
지난 6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호국영웅 초청 소통식탁’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는 윤청자 여사. 사진=뉴시스
  매년 3월과 6월 반짝 주목받지만, 이들의 삶은 이렇게 지속된다. 어제에 이어 다시 쓴침을 삼키는 날의 연속이다. 천안함 승무원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尹淸子·80) 여사도 그중 하나다. 2년 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천안함 폭침 사건이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은 인물이다.
 
  충남 부여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한참 가야 하는 한 시골마을. 오후 한때 34도까지 올랐던 7월의 어느 날, 그는 더운 줄도 모르고 살고 있었다. 단출한 단층 주택에 들어서자 “멀리서 손님이 오셨으니…”라며 에어컨을 틀어줬다. 누렇게 바랜 에어컨 앞에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보낸 꽃바구니가 있었다. 분홍 리본에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영웅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9일 ‘호국영웅 20인 오찬’에 윤 여사를 초청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시 “과거 정부처럼 정치적 환경에 따라 호국영웅들이 국가에 냉대받고 소외당하거나 평가절하되는 일이 없이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합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자리”라고 했다.
 
  ― 고운 한복을 입고 가셨더군요.
 
  “그 한복이 우리 큰아들 장가갈 때 입었던 거예요. 둘째 딸 결혼식 때도 꺼내 입었고, 이번에 또 꺼내 입었지. 싸구려 정장은 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래도 대통령님 만나러 가는 건데, 찍어 바르고 채리고(차리고) 갔지. 내가 학교서 배운 건 없지만 친정집에서 배운 건 있거든요. 윤 대통령은 (파평 윤씨) 35대손이고 나는 36대손이라 아저씨뻘이에요.”
 
  ―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호국·보훈을 강조했죠.
 
  “대통령 되기 전부터 천안함 유족들을 만나셨어요. 지난해 11월에 모였을 때는 나는 다리가 아파 못 갔는데 ‘민평기 상사 어머님 오셨느냐’고 찾으셨대요. 그날 유족들에게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모시겠다고 했고,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킨 거지요.”
 
  ― 이날 대통령이 “군 최고 통수권자인 제가 여러분을 지켜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요, 마음이 어떻던가요.
 
  “편안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가족끼리 하듯이 이야기를 나눴지요.”
 

  ―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습니까.
 
  “저는 우선 천안함 폭침 내용을 교과서에 좀 자세하게 실어달라고 했어요.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 기억은 남는 법이거든요. 어제 일은 가물가물해도 6·25 때 일은 생생하잖여. 학생 때 이런 내용을 제대로 배워야 해요.”
 
  ― 윤 대통령 반응은 어땠습니까.
 
  “반응은 좋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여럿이 계시니까, 이에 대해 긴 말씀은 못 하셨어요.”
 
  ― 적극적으로 추진해보겠다라든가 그런 말은 없었나요.
 
  “그 자리에서 확답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충분히 이해해요. 잘 생각해보겠다고 하셨어요.”
 
 
  김정숙 여사의 표정
 
지난 2020년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윤 여사는 문 전 대통령에게 ‘천안함이 누구의 소행인지’ 물었다. 사진=뉴시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정권이 바뀌니 윤 여사 얼굴이 달라졌다’며 한복 차림으로 윤 대통령을 만난 사진과, 2년 전 문 대통령에게 다가갔던 사진이 나란히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2020년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때 그는 분향을 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 폭침 사건이 누구 소행이냐”고 읍소하듯 물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북한 소행이라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 아닙니까.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9분30초가량의 기념사에서 ‘북한’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 여사는 이날 기념식 직후 스트레스성 심장부종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다.
 
  “나는 그날 대통령이 오는지도 몰랐어요. 2018년, 2019년에도 오지 않았으니까요. 이때를 놓치면 기회가 없겠다 싶어서 얼른 손을 붙들고 ‘우리 아이들 누가 죽였는지 말씀 좀 해달라’고 한 거지요. ‘우리 정부에서는 인정하고 있다, 인정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좀 확실히 듣고 싶었는데….”
 
  ― 그때 찍힌 사진이 굉장히 널리 퍼졌는데, 특히 김정숙 여사의 표정에 이목이 쏠렸지요. 당시 김 여사의 시선을 느꼈습니까.
 
  “경황이 없어 그때는 몰랐어요. 나중에 사진으로 봤지.”
 
  ― 사진으로 보니 어떤 표정으로 해석되던가요.
 
  “쏴대는(쏘아보는) 눈치더라고. 자기가 나한테 어떻게 쏘아댈 사람이여. 위로를 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폭침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놈(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불러다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꽃다발 주며 환영을 하고 말이어요. 그런 게 너무 싫은 거여.”
 
 
  김 여사와 화해? 계획된 그림
 
2021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김정숙 여사가 윤청자 여사를 안았지만, 윤 여사는 곧 밀쳐냈다. 사진=뉴시스
  문 정부 당시에는 현충일 행사 때 천안함 유족들이 자리를 배정받지 못하고, 헌화 대표 명단에서 빠지거나, 국군의 날 행사에서 주빈석에서 제외되는 등 ‘유가족 홀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 그 이듬해인 2021년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도 문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지요. 그때 김정숙 여사와 대화로 풀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끌어안는 모습도 보였다고요.
 
  “나를 째려봤다는 것이 하도 여기저기서 말이 많으니까 다음 해에 되돌려보려고 한 것 같은데, 바로 밀쳐내면서 쓴소리를 했어요. 행사 전에 당시 보훈처장이 나한테 미리 부탁을 하더라고요. 이번 행사 때 김정숙 여사 옆자리에 앉으시라고. ‘내 자리가 어찌 대통령 부부 바로 옆이요? 유족회장님도 있는데’라고 했더니 좌우지간 그냥 옆자리에 앉으시라고, 그리고 김 여사가 좀 붙들고 안아주걸랑 받아주시라고. 받아주기는, 바로 밀쳐내 버렸지.”
 
  ― 어떤 쓴소리를 했습니까.
 
  “저 멀리서 나한테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까, (보훈처장이) 간곡히 부탁을 했건, 말건 눈이 뒤집혀요, 안 뒤집혀요? 한번 올려쳐도 속이 안 풀릴 판인데, 안으려 하잖여? 대번에 밀어내면서 ‘나는 문재인 대통령 싫다고,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어제(2021년 3월 25일)도 북한이 미사일을 쐈는데 왜 숨기느냐, 왜 자꾸 북한에 벌벌 떠나, 대한민국은 누가 지키느냐’고 잔소리를 마구 했어요. 감정에 받쳐서 한참 쏘아붙였는데 뭐라 했는지 다 기억도 안 나요.”
 
  ― 김 여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이고, 그게 아닙니다, 어쩌고 했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이때 옆에 앉아 있던 윤 여사의 큰아들 민광기(53)씨가 말을 보탰다. 그는 주말마다 홀로 있는 어머니를 찾는다고 했다. 민씨는 “김 여사가 어머니를 안는 순간 청와대사진기자단이 기다렸다는 듯 촬영을 했고, 청와대에서 그 사진을 언론에 배포한 것”이라면서 “어머니가 김 여사를 밀쳐내자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두 분을 죽 지켜보던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더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러더니 이날 청와대에서 서해수호용사에게 보낸 55개의 추모 화환이 웬일인지 하루 만에 모두 치워졌다”면서 “통상 시들 때까지 둔다”고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선거(2022년 대선)를 의식한 행사’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진정성 없는 인정
 
  ―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 천안함이 북한 소행임을 몇 차례 언급했지요. 앞서 2015년 새정치연합 대표 때 비공식 발언을 통해, 올 초에도 ‘문재인의 5년’ 대담에서 “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는 한 번도 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없었는데 이명박·박근혜 때는 천안함, 연평도, 목함지뢰와 같은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고 했고요.
 
  “위기 모면식,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이지요. 북한의 소행이라면서 어떻게 김영철을 초대해 꽃다발을 줄 수가 있지요? 더군다나 군사도로를 개방해서요. 사과를 요구해야지요. 북한한테 사과를 받아야지요. 그때 김영철이가 온다고 해서 청와대 앞에서 다른 유족들과 핏대 올리면서 같이 데모하고….”
 
  숨을 고르자, 민광기씨가 말을 이어받았다.
 
  “진정성을 보여야죠. 2015년 때는 선거를 앞둔 시기였고, 올 초에 한 발언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저격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잖아요. 인정한다면서도 정작 정부·여당의 행보는 달랐고요. 본인 정권에서 북한의 도발이 없었다? 희생 장병이 없었을 뿐이고, 또 그만큼 많은 걸 퍼줬잖아요. 북방한계선(NLL) 지역을 서해평화수역으로 만든다지를 않나, 9·19 군사합의다 뭐다 해서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 때 서해에 가면 해상 함포·해안포의 포구·포신에 하얀 덮개가 씌어 있었어요. 멀리서 보면 백기(白旗)처럼 보였다고요. 그 근처에서는 사격훈련도 안 했고 우리는 미군과 연합훈련도 안 했잖아요.
 
  완전히 당나라 군대로 만들어놓고 거기다 종전선언까지 하겠다고 했어요. 그게 잘한 겁니까. 그렇게 해놓고 군사적 도발이 없었다는 걸 자랑이라고 하나요. 도발을 못 하게끔 강력한 힘이 있어야지요. 평화, 평화 하는데 전쟁할 각오가 돼 있을 때 평화가 오는 겁니다. 문재인이 말한 평화는 비굴한 평화였어요. 그런 식으로 자국을 무력화시키면 언젠가는 더 크게 맞을 수 있는 겁니다. 당장 본인 정권 때 군사적 도발이 없었다? 앞으로 더 크게 맞을 가능성을 만들어놓고 할 말입니까.”
 
  듣고 있던 윤 여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북이 그리 좋으면 거기 가서 살지, 왜 대한민국을 망치려는지….”
 
 
  천안함 없는 교과서
 
윤 여사는 “김정숙 여사의 눈빛을 나중에 사진으로 봤다”면서 섭섭함을 드러냈다. 사진=뉴시스
  천안함 폭침 사건은 지난 2010년 3월 26일 일어났다.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됐다.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한국 5개국 전문가가 대대적으로 조사한 끝에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침몰’로 결론 냈다.
 
  그런데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국민의힘 의원실 등에 따르면 2020년 한국사 교과서를 새로 선정한 전국 고교 1893곳 가운데 약 70%(1310곳)의 교과서가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폭침당한 사실을 기술하지 않았다. 그중 절반 이상은 ‘천안함’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고, 언급된 곳도 대부분 ‘침몰’ ‘사건’ 등으로 북한 책임을 사실상 외면했다. 민광기씨에게 물었다.
 
  ― 혹자는 “누구의 소행이건, 나라를 지키다 순직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말 속에는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들어 있으니 문제인 겁니다.”
 
  ― ‘그 혹자’에게 북의 소행인 것을 꼭 짚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자면요.
 
  “이는 단순히 한 가족의 참사가 아니라, 분단국의 국가적인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북한의 소행임을 밝혔고, 이후 5·24 조치가 들어갔죠. 대화를 하다 하다 안 돼서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개성공단까지 닫았잖아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대북관, 대북 정책을 정립하는 영속성 차원에서 이해해야 해요. 사과를 요구할 때 강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지루한 진실공방, 음모론부터 잠재워야 하는 거고요. 결국 교육의 문제로 귀결되는 거죠.”
 
  ― 일각에서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라고 계속 주장하는 이유를 뭐라고 봅니까.
 
  “주사파 인사들은 진실이든 아니든 본인들 유리한 대로 국민들을 호도해야 지지 세력을 확충할 수 있으니까요. 되게 단순한 사실이거든요. 만일 북한 소행이 아니라면 문재인 정부가 가만히 있었을까요. 사실관계가 다른 게 있었다면 공식적으로 뒤집으려 했겠죠. 인양 후에는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 국정원, 모두 가만히 있었잖아요.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많은 유족과 생존 장병들이 증명하잖아요. 그들 중 민주당 지지자가 없겠습니까.”
 
 
  아직도 난무하는 음모론
 
지난 4월 12일 고 민평기 상사의 형 민광기씨는 천안함 좌초설 등 음모론을 제기해온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을 사자명예훼손, 모욕죄 등 혐의로 고소했다. 민씨 옆에는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사진=뉴시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신상철 전 천안함 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다. 민씨는 지난 4월 12일 신 전 위원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지난 2010년 《천안함은 좌초입니다!》를 펴낸 신 전 위원은 민주당 추천으로 합조단에 위촉됐지만, 단 1회만 회의에 참석했다. 신 전 위원은 ‘이명박 정권은 선체 조기 인양과 생존자 구출을 원하지 않았다’며 정부와 군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은폐·조작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 천안함이 1차로 좌초하고 불상(不詳)의 선박 혹은 미국 군함과 충돌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010년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 또한 신 전 위원의 주장이 ‘허위사실’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처벌에 있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6월 9일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신 전 위원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비접촉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했다. 좌초 후 잠수함 등과 충돌하여 침몰했다는 피고인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 또한 12년 만에 ‘북한의 소행’임을 밝힌 셈이다. 계속되는 민광기씨와의 문답이다.
 
  ― 지난 12년간 꾸준히 좌초설을 제기했는데, 올 들어서야 고소한 이유가 뭡니까.
 
  “그간 국방부 전 장관 등의 고소 건이 진행되고 있었으니까요.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법정에는 몇 번 가서 봤어요. 어느 날은 이해찬 전 대표가 찾아와 신씨의 어깨를 격려하듯 토닥이더군요. 그러면서 ‘(재판을) 끝까지 보고 싶은데 한명숙 전 총리 재판 방청을 가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무죄가 난 것은 본인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뜻이 아닌데 유튜브 등을 통해 ‘무죄를 받았다’는 것을 강조, 반성의 기미도 없이 다시금 음모론을 확산시키고 있기에 참을 수 없어서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을 비롯한 생존 장병들 또한 지난 3월 31일 신 전 위원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최 전 함장은 고소장을 제출하며 “제발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장병들이었다는 걸 믿어주시고 앞으로 천안함으로 편을 가르거나 정쟁(政爭)을 일삼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나”
 
  앞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신 전 위원은 2020년 9월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에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의 이인람 당시 규명위원장은 진정인 자격도 없는 그의 진정을 수용했다. 지난 5월 29일 감사원은 “진상규명위는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재조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이인람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 결국 무산되긴 했지만, 재조사 결정 당시 심경이 어땠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진짜 대한민국이 맞나?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입장은 변함없다’고 얘기했는데도, 대통령 직속기관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껍데기만 대한민국이지 속은 완전히 공산국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천안함 용사는 따로 있는데, 지루한 정쟁 등으로 늘 다른 사람에게 조명이 돌아간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생존 장병의 ‘보수는 (천안함을)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는 말도 공감되고요.
 
  “진보는 외면이 아니라 왜곡한 거죠. 왜곡 정도가 아니라 피멍이 들게 하고, 대못을 박았죠. 현충원에서도 다른 분들은 손잡고 인사를 해주는데 민주당 사람들은 우리 쪽으로 고개도 안 돌렸다고요. 무슨 의미에서 ‘이용했다’는 말을 한지 압니다. 정치가들이니,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가 있을 수 있겠죠. 다만 잊지 않고 매해 찾아주는 분들 중에는 정말 진심을 다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때 몇몇 정치인의 이름을 나열했다)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예요.”
 
 
  미안해한 이명박 전 대통령
 
  다시 윤 여사와의 대화다.
 
  ― 앞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폭침사실 교과서 기재를 제의하신 걸로 압니다.
 
  “하다마다요. 두 분께 다 말씀드렸지요. 특히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좋은 생각이다, 잘 한 번 해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참 애를 많이 쓰셨는데, 못 했어요. 그나마 애쓴 덕에 고 한주호 준위의 희생정신은 교과서에 실렸지요.”
 
  천안함 피격 1주기였던 지난 2011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실종 용사들의 수색 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에게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고, 그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 ‘생활의 길잡이’ 2단원 학습사례(책임을 다한 숭고한 삶)에 한 준위의 이야기가 수록됐다.
 

  ―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왜 폭침 사실은 반영이 안 됐습니까.
 
  “교육계를 좌파, 진보학자, 전교조가 장악하고 있으니 쉽지가 않았던 거지요. 교과서심의위원회는 단독 기관이라 정부서 개입도 못 한다더라고요. 노무현 정부 때의 위원회 인사들이 5년 임기를 채우고 나가면서 후임을 추천하는, 소위 ‘알박기’ 인사 때문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도리가 없었던가 봐요. 희생 장병들 모교에 흉상을 건립하는 것도 전교조 교사들이 극심히 반대해서 못 했지.
 
  임기 마지막 해인가…. 현충원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마주쳤어요. ‘대통령님, 교과서 문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했더니,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하며 지나가기에 섭섭한 마음이 있었어요. 퇴임 후 어느 날 직접 연락을 해왔습니다. 서울 삼성동에 사무실을 차렸는데, 한 번 만나고 싶다고요.”
 
  ― 무슨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왜 그러시냐, 했더니 ‘잘 지내시나 궁금하기도 하고 못 한 이야기가 있다’고요. 며칠 뒤 비서를 보내왔어요. 빈손으로 가기 뭣하니 봄이라 쑥을 뜯어서 만든 송편을 요만치 만들어 갔더니 소탈하게 맨손으로 집어 잡수면서 그러더라고요. ‘대통령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할 수 있었다면, 했을 거라고요. 죽기 살기로 반대를 하니, 어떻게 안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때 현충원에서 고개만 끄덕였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대요. 이렇게라도 말씀을 드려야 마음이 풀리겠더라고, 또 놀러 오시라고요.”
 
 
  손주까지 죄인처럼 지내
 
  ― 말대로라면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는데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안보 문제에는 여야가 있어서는 안 돼요.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나라가 둘로 쪼개졌어요. 이 나라는 나, 아니면 적이에요. 하나가 돼야지요. 그러려면 어렸을 때부터 안보 교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젊은이들이 오래도록 기억돼야지요. 그래야 후손들이 안보관을 바로 세웁니다.”
 
  ― 천안함 역사교과서 문제는 항상 세월호와 비교됩니다.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교재까지 출간된다면서요.
 
  “세월호 때는 저도 팽목항(현 진도항)에 찾아가서 같이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자식 보낸 부모 심정을 아니까 아이고, 오죽하겠나 싶어서 농사지은 녹두로 죽을 쒀서 도시락 60개를 만들어 갔어요. ‘겪어보니까 죽을 것 같더라, 뭐라도 드셔야 한다’면서 서로 끌어안고 울고 그랬어요.
 
  자식 보낸 어미가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냐마는, 지금 소원은 천안함을 꼭 교과서에 싣는 거예요. 정치하시는 분들, 대한민국을 위해, 내 국민을 위해주세요. 나는 6·25를 겪었기 때문에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다. 북한 인민군이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질렀어요. 사람이 무서워서 피란을 가면서도,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논두렁에 숨었다고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비극은 계속됐습니다. 가족 잃은 사람들이 인민군에게 밀고했던 앞잡이들을 매질하고, 이빨로 물어뜯고, 말도 못 합니다.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돼요. 내가 배운 게 없고 무식해도 국방만큼은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무슨 정치가 이런 정치인지, 나는 그걸 알 수가 없어요.”
 
  ― 손주가 있습니까.
 
  “큰 손주들은 이제 대학생, 고등학생이지. 평기 갈 때 다섯 살, 일곱 살이었는데 그 어린 애들이 삼촌, 삼촌 하면서 얼메나 울던지.”
 
  ― 손주들은 학교에서 삼촌이 겪은 일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갖지 않던가요.
 
  “가르치지만 않았으면 다행이게요. 어느 날은 교사가 불러다가 ‘○○(손주 이름)가 천안함 유족인 걸 몰랐다. 괜히 난처한 일 겪을 수 있으니 교내에 알려지지 않게 주의해달라’고 했답니다. 교사 딴에는 챙긴답시고, 걱정한답시고 말했다는데, 애가 죄인이 된 것 같지 않았겠어요. 삼촌이 나라 지키다 간 것을 마음껏 자랑스러워도 못 하고, 어찌 그런답니까.”
 
 
  지독한 가난에도 보상금 기탁
 
지난 2011년 3월 25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영주함에서 열린 ‘3·26 기관총 기증식’. 이를 위해 보상금을 기탁한 윤 여사가 기관총을 살펴보고 흐느끼고 있다. 사진=뉴시스
  ― 민 상사와의 마지막 대화 내용 기억하시지요. 뭐였습니까.
 
  “나하고 전화 통화하고 닷새 만에 그리됐어요. 어느 정도 진급하고, 석·박사도 따고 할 테니까 하여튼 엄니는 내 걱정 말라고. 내가 엄니 호강시켜줄 테니까 걱정 말라고. 만날 하던 소리였어요. 배를 타야 진급하고, 수당이 더 나온다, 그래야 엄니 호강시켜줄 수 있다.”
 
  그는 “안 아픈 손가락 어디 있겠냐마는 특히 애지중지한 아들이었다”고 했다.
 
  “내가 안 먹고 낳았는데도 머리가 좋았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계속 1등만 했어요. 중학교 때는 영어시험도 1등 했고요.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는데, 과 수석도 했어요. 시골이라서 학원도 안 보내고 공부하라는 소리도 안 했는데요. 우리 집 주변이 천지 밭이니까, 학교 갔다 오면 밥 먹이고 옥수수 따는 것 시키고 그랬다고요. 괜히 시켰다 싶어요. 옥수수 따는 것, 힘든데 괜히 시켰어요. 어느 날은 그게 후회돼서 막 울었어.”
 
  ― 그 옛날 못 먹인 게 응어리로 남았군요.
 
  “잘 못 먹인 게 마음에 걸려서 학교 다닐 때도 평기 도시락에만 계란 프라이를 넣어줬어요. 우리 애들이 속이 깊어서 막내 도시락만 다른 걸 알면서 티도 안 냈어. 지들 반찬은 만날 쉬어 빠져서 꼬부라진 짠지만 넣어줬는데도 섭섭하다는 소리도 안 했어요. 다들 막내를 참 예뻐했지.
 
  우리 집 양반도요. 첫째 딸 보내고, 내가 울고 있으면 ‘자식도 못 지킨 것이 운다’고 호통 쳤는데, 평기 보내고 나서는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면서 벌써 자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그렇게 매일같이 술에 의지하더니…. 결국 몇 해 전 암으로 먼저 가셨어요.”
 
  ― 유언을 남기셨나요.
 
  “원체 말이 없는 양반이라, 그런 거 없었어요. 한번은 그러더라고요.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고. 우리 친정은 잘살았거든요. 할아버지께서 의금부도사를 했고, 조카 중에도 교장이 둘이나 있고.
 
  시집와서 보니까 지독히 가난한 집이었어요. 아버지는 시집이 잘살고 못 살고 안 따지고 양반집인가만 봤어요. 영감이 공무원이었으니까 당시엔 양반이라 쳤다고요. 친정 오빠들이 ‘너 공부 안 해서 가난한 집에 시집가는 거라고, 나중에 쌀일랑 얻으러 오지 마라’며 알밤을 놓고 그랬지. 그 옛날 공무원은 월급이 몇 푼 안 됐어요.
 
  (남편이) 효자인 데다, 동네서 ‘밥 상무’로 소문나서 여기저기 퍼 주고 나면 점심 값도 안 남았어요. 그러니 내가 억척스레 일을 할 수밖에요. 아는 거라곤 농사밖에 없었으니 팔 걷어붙이고 밭만 맸어요. 지독하게 살았지. 자식들 음식, 옷도 다 얻어다 먹이고, 입히고.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 내 발등 내가 찍은 거지, 누구 탓을 하겠소.”
 
  ― 그런데도 1억원이 넘는 보상금을 기탁하셨지요.
 
  그는 유족보상금 중 1억원과 국민성금으로 받은 898만8000원을 방위성금으로 기탁했다. 해군은 심사숙고 끝에 이 성금을 포함해 5억원을 들여 K-6 기관총 18정을 구입, ‘영주함’ 등 2함대 소속 9척에 2정씩 장착했다. 총신에는 ‘3·26 기관총’이라고 새겼다. 윤 여사는 제2기 국민추천포상에서 ‘국민포장’에 선정됐다.
 
  “내 품 팔아서 번 돈도 아니고 국민들이 준 건데 다시 돌려주는 게 맞지요. 그렇다고 다는 아니고 1억원 조금 넘는 돈이었지. 우리 대한민국이 젊은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니까, 총알 하나라도 튼튼할 걸로 썼으면 싶었어요. 더 이상 이북한테 변을 당하면 안 되잖아요. 나 같은 어미가 또 안 나왔으면 좋겠어. 우리 집 양반도 그렇고 애들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어요. 나는 돈 필요 없어요. 애들 보고도 그랬어요. 돈 많다고 좋은 거 아니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 아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마음이 편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품지도 못하고
 
윤 여사는 태어날 때 아들을 잘 먹이지 못한 것이 여전히 한이 된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천안함 희생자 100일 추도식에서. 사진=뉴시스
  ― 민 상사도 이 집에서 함께 살았었나요.
 
  “여기가 100년도 넘은 집터예요. 시집올 때는 오두막집이었고, 초가집으로 새로 지었다가 방 세 개짜리 양옥이 된 거예요. 이만하면 살 만허지. 옛날엔 여기서 전기도 없이 살았어요. (화장실 옆방을 가리키며) 저기가 평기 방이었어요. 아직도 잘 못 들어가.”
 
  ― 계속 생각 날 텐데 이사 갈 생각은 안 했습니까.
 
  “자식 앞세우고 무엇을 더 편하자고 그런답니까. 그저 가슴이 쓰리고 아픈 것이지.”
 
  ― 민 상사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평화(平) 통일의 기초(基)를 잡으라는 의미예요. 우리 집 양반이 그렇게 지었어.”
 
  ― 의미와 운명이 참….
 
  “그때 입었던 해군복을 몇날 며칠 빨았는데, 세제를 두통이나 썼는데도 기름때가 안 빠졌어요. 어찌나 아팠을까. 한 달 만에 아들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바닷속에서 얼마나 추웠으면 붓지도 않았어요. 너무 추워 보여서 안으려고 했는데, 손을 못 대게 했어요. 마지막 가는 길에 한 번 품어보지도 못했지.”
 
  ― 가끔 꿈에서 만나기도 합니까.
 
  “꿈에서라도 좀 봤으면 좋겠는데, 야속하지요. 한 번도 안 나왔어요. 딱 한 번 이런 꿈을 꿨어요. 집에 있는데 동네 사람이 찾아와서는 ‘평기가 아프대요. 아파서 저짝(밭)에 엎어져 있대요’ 하기에 울면서 현관문을 차고 나가는 꿈이었어요. 그러고 한 몇 년을 가슴이 아파서 잠을 못 잤어요. 이 불쌍한 것이 아직도 아픈가 싶은 게.”
 
  ― 여기서 혼자 계속 지내시기 괜찮겠습니까.
 
  “내가 무서울 게 어디 있어요? 호랭이가 무섭겠어요, 구신(귀신)이 무섭겠어요. 몸이 말짱한 데가 없는데 아직도 하늘에서 안 데리고 가는 걸 보면, 천안함 교과서에 실리는 것 보고 죽으라는 거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죽는다고 해도, 눈은 못 감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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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16604    (2022-08-05) 찬성 : 0   반대 : 0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어 호국, 보훈을 강조하고 정상 국가로 돌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고인의 희생에 감사드리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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