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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년6개월 만에 출소한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

“찬탄·반탄 논쟁보다 박근혜 석방운동 통해 서로 상처 치유하고 통합의 길 찾아야”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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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청와대의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1년6개월 복역
⊙ “국가의 먼 미래, 내 자식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려보며 의연하게 가겠다”
⊙ 두 차례 구속, 첫 번째는 학생운동 시절 갇혔던 방의 옆방에, 두 번째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있던 방에 수감
⊙ 김기춘, “공무원들이 反체제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 않는 것은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소홀히 하는 것” 강조
⊙ 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 “북한 대량아사의 근본원인은 수령 체제”라는 것 느끼고 전향
⊙ “뉴라이트운동, 反共 매개로 한 보수주의 세력과 철저하게 결합하지 못해 실패”
⊙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文정권의 장기집권 전략 막는 것”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收監)됐던 허현준(許鉉俊・50)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지난 10월 1일 만기(滿期) 출소(出所)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이란, 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가 보수우파(保守右派) 단체들을 지원하도록 전경련에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박근혜 정권의 조윤선・현기환 정무수석비서관, 신동철・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 등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허현준 전 행정관도 이 사건으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1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6개월, 합계 1년6개월을 복역(服役)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허현준 전 행정관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항변(抗辯)했다.
 
  허현준 전 행정관은 2017년 10월 17일 구속영장심사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권력의)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넘어지는 집단이 있다. 국민의 기본권은 이미 넘어지기 전에 쓰레기통에 버린 집단이다.
 
  난세에 겪는 갈림길에서 당장 눈앞의 이득만을 앞서 생각하지 않겠다. 국가의 먼 미래, 내 자식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려보며 의연하게 가겠다.
 
  신의를 버리느니, 수모를 겪느니 의로움을 택하고 고생을 하겠다.〉
 
 
  ‘박근혜의 마지막 忠臣’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2017년 10월 12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허현준 전 청와대 행정관. 사진=뉴시스
  2017년 10월 19일 구속됐던 허 전 행정관은 2018년 4월 21일 보석(保釋) 결정으로 석방됐지만, 같은 해 10월 5일 1심 재판에서 법정(法廷)구속됐다. 이날 허 전 행정관은 가족을 통해 페이스북에 ‘서울구치소를 향하며’라는 글을 올렸다.
 
  〈원하지 않았으나 피할 수도 없었던 길이다.
 
  결국 발길이 다시 서울구치소를 향하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간다.
 
  나는 검찰이 쳐놓은 그물과 짜놓은 거짓 프레임에 순응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과 어긋나는 창작된 story에 맞춘 거짓 자백으로 구속을 피하거나 형량을 줄이는 등의 선처를 바랄 생각도 없었다. 검찰은 그런 나의 정당한 불복에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재판부에 엄벌해달라고 요청했다.
 
  ‘궁예의 관심법’의 망령이 살아나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도 “묵시적 청탁”이라며 대통령을 구속하는 상황에서, 힘도 없는 나를 또 구속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짜놓은 적폐청산 게임판에 던져진 졸인데 말이다.
 
  지금의 이 폭정은 급진적 좌익들이 오랫동안 준비하고 예정하던 것이다. 겉으로는 인권과 민주주의, 차이의 존중, 다양성 등의 미사여구로 위장하지만 그들의 정신세계의 근본은 ‘계급투쟁’에 잇닿아 그들이 설정한 ‘적대계급의 파멸’을 목표로 한다.
 
  급진적 좌익의 독존(獨存)은 우리 사회의 근본을 흔든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잘못이 아니다’라는 교만과 독선적 행위가 윤리적 질서를 해체하고 있다. 민주공화국 내부의 경쟁자는 ‘적’으로 간주하고, 주민을 노예로 지배하는 독재자는 ‘친구’가 되는 도덕적 파괴가 거침이 없다.
 
  고모부와 그 가족을 고사포로 총살하고, 이복형을 독극물로 피살하고, 리설주 성추문이 알려졌다 하여 은하수악단 단원들을 화염방사기로 태우고, 체제를 비난했다고 간첩으로 몰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고, 폭력을 동원한 극한의 훈련으로 어린 아이들의 집단체조를 연출하여 수령 체제를 선전하는 패륜적 범죄자 김정은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불굴의 지도자라고 부추기고 김정은과의 포옹에 열광하는 저들의 모습에서 절정에 이른 급진적 좌익 세력의 사악한 정신세계가 드러난다.
 
  지금은 소의 등에 말안장을 얹는 것만큼 힘든 상황이지만 만물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툭툭 털고 일어나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자유가 만개하는 ‘열린사회’는 저절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나도 내 방식으로 감옥에서 싸울 것이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내 마음에 새겨진 투지와 희망을 어루만진다.
 
  다시 시작하자!〉
 
  그보다 높은 위치에 있던 공직자들조차도 검찰에 불려가거나 법정에 서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해 하는 모습을 보일 때, 허현준 전 행정관의 이런 결연한 모습은 많은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에게 별명이 하나 붙었다. ‘박근혜의 마지막 충신(忠臣)’이라는….
 
 
  23년 만에 다시 들어간 서울구치소
 
  11월 4일 허현준 전 행정관을 만났다. 지난 6월 말 서울구치소에 면회를 가서 만난 지 4개월여 만이었다.
 
  ― 건강해 보이네요. 이제 다 끝난 건가요.
 
  “1, 2심에서 선고한 형량(刑量) 1년6개월을 다 채우고 나왔습니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상고(上告), 계류 중입니다.”
 
  ― ‘화이트리스트 사건’과 관련, 정확한 죄목이 뭡니까.
 
  “전경련이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그들의 고유사업인데, 청와대가 요청한 단체에 지원을 하도록 요구한 것이 직권남용이고, 전경련에 강요해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으니 권리행사 방해이고 강요라는 것이죠.”
 
  ― 구치소에서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2017년 10월 첫 구속 때나, 2018년 10월 법정구속 때 모두 구속 자체는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국(時局)의 상황, 정부의 정치보복에 대한 의지나 강압 정도를 고려할 때, 그리고 제가 소위 ‘화이트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박영수 특검(特檢)과 검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것을 감안할 때, 석방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감옥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도 생각해두었고요.”
 
  ― 무엇을 할 생각이었습니까.
 
  “크게 세 가지, 즉 성찰(省察)하고, 학습하고, 미래를 준비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생활관리・체력관리·시간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변 수용자들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서 상황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을 보니, 경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북대 총학생회장이던 1994년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2017년 10월 구속됐을 때 들어간 방이 공교롭게도 대학 시절 들어간 방의 바로 옆방이었습니다. 23년 만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작년 10월 두 번째로 구속됐을 때 들어간 방은 이재용 전 삼성 부회장이 수감됐던 방이라고 하더군요. 24시간 내내 감시카메라가 돌아가는 방이었습니다. 교도소 측은 요주의(要注意) 인물에게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까 봐 대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누군가 자신이 하는 일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구치소에서 만난 사람들
 
허현준 전 행정관은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간 복역한 후 지난 10월 1일 만기 출소했다. 사진=뉴시스
  ―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들었습니까.
 
  “각 방에 TV가 설치되어 있어 평일 저녁 7시에는 KBS 뉴스를, 주말 저녁 8시에는 MBC와 SBS를 바꿔가며 틀어주었습니다. 공중파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속이 터졌습니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를 통해 세상 동향 등을 알고 있었는데, 공중파가 얼마나 편파 방송을 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그 안에서 이른바 적폐수사로 수감된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까.
 
  “접견시간, 운동시간, 변호인 접견시간에 이동하는 과정에서, 혹은 대기실 같은 데서 마주치면 인사드리는 정도였습니다.”
 
  ― 그분들은 어떻게들 지냅니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현기환 전 정무수석이었습니다. 위트가 있고, 교도관들과의 관계도 굉장히 좋은데다가 다른 수용자들 인생상담도 해주면서 잘 지내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오가면서 자주 뵈었는데,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전형적인 장군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평소에도 굉장히 온화한 분이었는데, 만나는 사람들을 늘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곤 했습니다.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는 그 안에서 수염도 기르고, 뒷마당에서 산책하는 것처럼 편하게 걷는 등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었습니다.”
 
  ―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습니까.
 
  “이정현 전 정무수석과 최홍재 전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추천했다고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행정관들의 신상을 일일이 다 확인했다고 합니다. 국정원・검찰・경찰・선관위・국세청 등 약 10개 기관에서 개인 신상에서부터 평판, 사상적 검증까지 탈탈 털 정도로 검증을 했다고 하는데, ‘고집이 세고 원칙주의자’라는 평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 청와대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초기에는 좀 자리가 안 잡혔다가 김기춘 실장님이 오면서 조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김기춘 실장님은 실장 주재 전 직원 조회나 수석실, 비서관실 시스템을 통해 ‘청와대 비서진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대통령 비서는 자유민주 체제 수호하는 첨병”
 
  ―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대통령 비서는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수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첨병(尖兵)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반(反)정부・반체제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국가・사회를 위해 필요한 정부정책을 널리 알리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김 실장님은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제시해주고, 실제 업무 과정에서도 그런 정신에 입각해서 일관되게 일했습니다. 나중에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도 그런 바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블랙리스트 사건’은 어떻게 된 겁니까.
 
  “2013년 10월경 감사원이 민간단체보조금 유용실태를 발표했습니다. 언론에서도 폭력・공안 사건으로 문제 있는 단체들에도 국고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에게도 ‘시민단체와 관련, 보조금이 잘못되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정리해서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비서관실 내 다른 담당자가 문화체육부 관련 단체들 중에서 문제가 있는 단체들이 어떤 단체들인지 정리해서 보고한 게 나중에 ‘이런 단체들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블랙리스트’로 알려진 것입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
 
  ― ‘블랙리스트’에는 간여하지 않았습니까.
 
  “네. 제가 문제가 된 것은 ‘화이트리스트’였습니다.”
 
  ― 그건 어떻게 된 사건입니까.
 
  “2013년부터 보수 원로들이 김기춘 실장님을 만나 전경련이 애국 진영 단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루트를 만들어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국민소통비서관이 지원 규모와 대상 단체 확대를 전경련에 요청한 것입니다.”
 
  ― 허 행정관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2014년 4월 이후에는 보수 단체 지원과 관련된 전경련 실무자와의 협의 등 일체의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큰 차원에서 국민소통비서관과 전경련 전무 등이 합의를 하면,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일을 처리했습니다. 전경련이 ‘이러이러한 단체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하면 다 수용을 해서 전경련 의사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전경련과 피(被)지원단체 간에 불협화음이 나면 양측에 연락해서 알아보고 해결되도록 중간다리 역할도 하고….”
 
  ― 전경련은 얼마나 지원을 했습니까.
 
  “검찰 기소장에는 2014~16년 3년간 69억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래 전경련은 우리가 요청하지 않아도 연간 30억~40억원은 지원했어요. 거기에 30억 정도가 플러스 된 것입니다.
 
  지원단체도 전경련이 연간 100여 개 단체 정도 지원했는데, 우리가 1차 연도에 요청한 것은 21개 단체였습니다. 그중에는 이미 지원하던 단체와 중복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15년에는 30개, 2016년에는 40개로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죠.”
 
  ―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엇입니까.
 
  “‘월드피스연합’이라는 단체에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노동개혁 홍보 캠페인을 했습니다. 그 단체에서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당시 야당(현 여당) 의원들의 지역구 등에 내려가 비판운동을 했는데, 자기들의 활동내용을 제게 이메일로 알려왔습니다. 그런 것이 저와 그 단체가 특정 야당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공모(共謀)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박근혜 대통령, 자유민주 체제 지키려는 의지 확고”
 
허현준 전 행정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자유민주주의 체체 수호 의지가 확고했던 이들로 기억했다. 사진=뉴시스
  ―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기회는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우리 직원들과 대통령님이 교감할 수 있는 간담회 같은 자리를 만들어주십사 정무수석에게 건의도 드렸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기회를 못 가진 게 제일 아쉽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를 지키려는 의지가 확고한 분이었습니다. 수석님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통해 대통령님은 늘 ‘자유민주 체제를 확고히 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라’ ‘자유민주주의와 관련된 단체들에 소홀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당부했습니다. 또 수석이나 비서관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현안에 대해 질문을 한다는 얘기에서 대통령님의 일에 대한 열정이나 헌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최순실 사태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청와대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요.
 
  “2016년 10월 이후 최순실씨 관련 사건이 터졌을 때,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최순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 에이, 그게 말이 됩니까.
 
  “2013년 정윤회씨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정윤회씨 부인이라는 것 정도만 언론 등을 통해 알고 있었지, 최순실씨가 청와대나 국정(國政)과 관련해 실질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님이 1차 사과 발표를 했을 때, ‘민간인인 최순실씨가 정말 국정과 관련된 일을 했다는 얘기냐’ 해서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 그런 비상상황에서 청와대가 너무 무기력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관계, 사실관계의 원인제공자 등이 파악되어야 그에 어떻게 대처할지, 외부 오피니언 리더나 국민들에게 어떤 방향으로 홍보할 것인지 등 대책을 마련할 텐데, 무엇이 진상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떠밀려가는 안개정국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역할을 하는 것이 난망(難望)했다고 생각합니다.”
 
  ― 시민단체를 담당하는 행정관인데, 밖에 나가서 돌아가는 민심을 파악하라든지 하는 지시는 없었습니까.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민정수석실이나 치안비서관실 같은 데서 그런 일을 하게 되어 있는데, 특히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는 비서실이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관망해보자는 분위기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석방운동 벌여야”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놓고 우파가 심하게 의견이 갈려 있습니다.
 
  “정권교체가 된다면 탄핵에 대한 진상규명, 관련 사건에 대한 재조사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국가적 위기상황을 넘는 것입니다. 보수 정권 몰락과 관련해서 책임 있는 사람들이 책임지는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은 좋지만, 내부 분란 때문에 지금의 국면이나 총선에서 패배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 보수 통합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지금은 찬탄파와 반탄파로 나뉘어 싸우기보다는 박근혜 대통령님 석방 운동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바른미래당・우리공화당 등 야권에 있는 정당들이 함께 박근혜 대통령 석방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자는 것입니다. 함께 박근혜 대통령님 석방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그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의 바탕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일각에서는 현 정권이 총선(總選)을 앞두고 보수 세력의 분열을 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략적(政略的)으로 석방, 사면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현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석방할 이유도, 석방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도 없고, 그 내부에서 지지층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럴까요.
 
  “첫째, 박 대통령님을 석방하면 좌파 장기집권 전략에 차질이 생깁니다. 저들의 표현대로 하면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은 저들의 장기집권에 도덕적 정당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단 박 대통령님을 석방하고 난 후에는 이 프레임을 3년 후, 5년 후에도 계속 쓰기 어렵습니다.
 
  둘째, 박 대통령님이 석방된 후의 행보에 대해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박 대통령님을 석방했을 때 그것이 우파의 분열로 이어질지, 우파의 강력한 통합으로 이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막연히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석방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셋째, 박 대통령님을 석방할 경우, 촛불세력 내부에서 조국(曺國)사태를 능가하는 내부 분열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민노총이 격렬하게 항의할 것이고, 특히 통진당 세력은 ‘이석기는 석방하지 않고 박근혜를 석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할 것입니다.”
 
 
  ‘바보들의 잔치’
 
1996년 8월 범청학련통일대축전과 관련해 연세대에서 벌어진 폭력시위로, 당시 한총련 집행위원장이던 허현준 전 행정관은 수배대상이 됐다. 사진=조선DB
  허현준 전 행정관은 ‘586’운동권이다. 전북대 총학생회 회장, 한총련 집행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후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2004년 뉴라이트운동단체인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하자 청년국장을 맡았다.
 
  ― 학생운동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가난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6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가난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 때문에 대학에 들어간 후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그 자본주의 구조를 깨야 한다는 운동권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거기에 5・18, 통일 문제 등 감성적 문제가 더해졌지요.”
 
  ― 주사파(主思派)에는 어떻게 가담하게 된 것입니까.
 
  “당시에는 이미 운동권 내에서 NL(민족해방・주사파)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니까요.”
 
  ― 민족통일에 대한 관심 같은 건 그렇다 치고, 수령론(首領論)이 받아들여지던가요.
 
  “대학에 들어가 1학년 중반기를 넘으면 루이제 린저 등 북한을 미화(美化)하는 책을 집중적으로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북한이 굉장히 인간적인 사회인 것처럼 느껴지면서 북한에 대한 경계가 무너집니다.
 
  그다음으로 운동론(運動論)을 공부하게 되면 지도(指導)와 대중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배우게 되는데, ‘다수(多數)의 대중을 이끄는 선구자에 의해 역사는 발전해간다’고 배웁니다. 여기에 영웅주의적으로 포장된 김일성 혁명역사를 배우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수령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지금 생각하면 다 ‘바보들의 잔치’였습니다.”
 
  허 전 행정관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운동을 개혁해보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1993년 전북대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비폭력선언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염병 던지고 쇠파이프 휘두르는 걸 전투적・혁명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군사정부가 아니라 ‘민간정부’인 김영삼 정부와도 계속 물리적으로 충돌해서는 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옌볜에 가서 탈북자들과 만나
 
  ― 좌파운동에서는 어떻게 해서 멀어지게 됐습니까.
 
  “1995년 북한의 대량아사(餓死) 사태 소식과 탈북자(脫北者)들의 증언을 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북한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차에 1996년 수배를 당해 잠적하게 되면서 운동권과 멀어졌습니다.”
 
  ― 수배는 왜 당하게 된 겁니까.
 
  “1996년 연세대 사태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폭력사태를 막으려는 온건파였지만, 집행위원장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수배 대상이 됐습니다. 숨어 지내는 동안 북한에 대한 책들을 보면서 북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1998년 수배가 풀린 후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주는 루트를 통해 중국 옌볜(延邊)에 가서 탈북자, ‘꽃제비’들을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대량아사를 유발한 근본적 원인은 인간을 노예화하는 수령 체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 〈강철서신〉의 김영환씨와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다가 전향한 것은 아닌가요.
 
  “저는 김영환씨가 책임자로 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에 소속된 조직원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민혁당 조직원들이 우리 대학 내에 있는 ‘반미구국학생동맹’의 중책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그들과 함께 학생운동을 하기는 했습니다. 민혁당은 서울대 89학번 1명을 조직원으로 영입한 이후 포섭을 중단했고, 이후 해체 과정을 거쳤다고 들었습니다. 즉 그 이후 세대 중 민혁당 성원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2004년 뉴라이트운동단체인 자유주의연대(대표 신지호)가 발족하자, 허현준 전 행정관도 여기에 참여했다.
 
  ― 자유주의연대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된 후 한동안 북한인권운동, 북한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탈북자 인권에 대한 조사에 참여하기도 했고, 1999년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생길 때에는 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인권운동단체의 활동만으로는 대중적 기반의 운동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자유주의운동을 한다기에 새로운 사회운동과 북한인권운동을 결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뉴라이트운동의 실패 원인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씨.
  뉴라이트운동은 한동안 각광을 받았지만 결국 2007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유야무야됐다. 몇몇 활동가는 금배지를 달거나 청와대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 뉴라이트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반공(反共)자유민주주의 노선으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려는 노력을 확실히 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뉴라이트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이념(理念)운동으로 뿌리를 내리려 노력하기보다는, 운동형식이나 양태(樣態)를 세련되게 바꾸는 쪽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 당시 자유주의연대에서 뉴라이트운동을 하던 이들 중에는 반공, 올드 라이트(Old Right)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죠. 김영환씨는 이따금 국내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기는 했지만, 90%는 북한인권, 북한민주화운동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북한 수령 체제를 붕괴시키는 혁명을 해야 한다’는 의식은 강했지만, 가능한 한 한국 사회의 문제와는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자유민주주의 노선과 그에 입각한 현안들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거나 고민하는 일이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계급의식·빈부격차 등에 대한 좌파적 사고(思考)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사회민주주의 언저리에 의식이 머물러 있었다고 봅니다.”
 
  ― 허 행정관은 어땠습니까.
 
  “저도 북한인권운동으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현대사 문제, 건국 문제, 이승만 대통령 등을 계속 공부하다 보니, 대한민국을 이만큼 일으킨 것이 자유민주주의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2008년 이후 저는 ‘반공을 매개(媒介)로 한 보수주의 세력과 철저하게 결합해야 한다, 그분들에게 역사의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김영환씨 등과 멀어졌습니다.”
 
  김영환씨 그룹은 2016년 최순실 사태 이후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 때문에 김영환씨 그룹을 의혹의 눈으로 봐오던 우파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것 봐라. 역시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 김영환씨 그룹은 탄핵에 찬성했고, 허 행정관은 ‘박근혜의 충신’이 됐습니다.
 
  “김영환씨 등은 2015년, 2016년 국정교과서 얘기가 나왔을 때에도 비판적이었습니다. 반공에 대해 부정적이기도 했던 그들로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경직된 거 아니냐’는 생각이 있었고, 그게 결국 탄핵 찬성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그 문제로 당시에도 의가 상할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태극기 집회, 우파에게 자신감 심어줘”
 
허현준 전 행정관은 2012년 5월 23일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의 ‘종북세력 국회 입성 반대’ 집회에서 “야권 통합을 통한 종북세력의 2012년 집권 시나리오는 10년 전부터 계획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선DB
  허현준 전 행정관과 만나기 전, 우파 인사들의 카카오톡방 등 SNS에는 “태극기 집회 어르신 한 분이 대견해서 이 사람(허현준 행정관-기자 주)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했는데, 취중진담인지 이 사람이 ‘박근혜는 탄핵당해도 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르신이 어이가 없고 어쩔 줄 몰라 당혹해했다고. 또 이 사람은 수감되어 있는 동안 시대정신(자유주의연대의 후신) 출신 하모 의원(하태경 의원-기자 주)하고 끊임없이 연락을 했다고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이 돌자 예의 “역시 전향자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이 함께 돌았다.
 
  ― SNS에 도는 글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출소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돼 대부분의 약속을 기억하는데, 태극기 집회 어르신과 술과 식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취중진담 정도의 얘기를 할 만한 자리가 애초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제가 제 스케줄 목록을 다 확인해 보았지만, 그런 분은 없었습니다. 수감 중에 하태경 의원이 접견을 온 적도 없고, 편지 한 장 교환하거나 소식을 전한 적도 없습니다. 만일 그런 분이 있다면 제게 말씀해주셔도 좋고 공개적으로 발표해주셔도 좋습니다.”
 
  ― 태극기 집회는 열심히 나갑니까.
 
  “첫 태극기 집회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출소 후에도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 그걸로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만으로 정권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기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청와대의 집권 세력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고 여론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정권 내부의 불협화음, 핵심 측근이나 가족비리 같은 일들이 발생하면, 이렇게 팽팽하던 상태는 저쪽을 압도하는 상태로 바뀔 수 있습니다.
 
  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야권을 견제하고, 긴장하게 하고, 채찍질하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 장기집권 전략 막아야”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권의 폭정(暴政), 장기집권 전략을 막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광장싸움이 좀 더 대중적이고 광범위하게, 강력하게 일어나도록 돕고 싶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여러 가지 반국가적・반국민적・반경제적・반안보적 행태를 계속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일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아울러 내년 총선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범(汎)우파의 통합 전략, 혁신 전략을 짜는 일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 정치를 할 생각입니까.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를 받았기 때문에 피선거권이 5년간 제한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잘 되면 저는 이 바닥을 떠날 생각입니다.”
 
  ― 우파 통합, 제대로 될까요.
 
  “난제(難題) 중의 난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쪽 끝에는 탄핵을 찬성한 사람과는 세상을 같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탄핵을 수용하지 않고는 정치적으로 같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거는 5개월 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이 일부 누수현상이 있기는 하지만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사회 각 계층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견고하게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방송·사법기관·경찰·노조 같은 기관 곳곳에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거기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인적(人的) 쇄신도 적극적으로 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반면에 우파는 내부 싸움, 명분 싸움에 머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걸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양쪽을 다 만족시키는 해법은 없겠지만, 저는 통합의 조건을 몇 가지는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한발씩은 물러나야”
 
  ― 그 조건이 뭡니까.
 
  “첫째, 서로가 한발씩만 물러난다는 것입니다. 모두 양보하지는 않겠지만 한발씩만은 물러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둘째, 아까 얘기한 박근혜 대통령님 석방운동을 함께 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탄핵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간에 보수 정권의 몰락,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 당시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성찰하고, 정치적으로 잘못했음을 시인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셋째, 총선 이후 탄핵에 관련해서 진상규명, 조사 작업을 당 차원에서 하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넷째, 자유한국당이 가지고 있는 공천권 등 기득권을 내려놓고 범우파 통합정치기구 같은 것을 한국당 밖에 만들어서 통합과 혁신의 프로그램, 공천의 기준을 결정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여기서 후보단일화를 결정하면, 자유한국당은 그 후보를 자유한국당 후보로 받겠다고 해야 합니다. 자유한국당이 다른 당보고 자기 당에 들어오라거나, 당대당(黨對黨) 통합을 하는 복잡한 방식보다는 이런 식으로 새로운 벌판에 거점을 만들어 일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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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현    (2019-11-24) 찬성 : 23   반대 : 2
아무리 전 정권당시 청와대 근무를 했었다하더라도 저짝동네 출신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경악스러울 만큼 놀랍군요...죄다 삶은소머리 수육을 좋아 하는 사람들안 있는줄 알았는데...아무쪼록 건강 챙기시고 반드시 좋은날이 올겁니다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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