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街)가 작고, 또 닫힌 공간이었기 때문에, (평양 주재)외교관끼리 대단히 자주 만났고, 서로 매우 잘 안다. 사실 평양에서 그런 것 외에 할 일이라곤 거의 없기도 하다.”
피터 휴즈(Peter Hughes)
⊙ 58세. 런던 출생.
⊙ 1976년 영국 외무부 입부. 이후 카리비안과, 국방과, 인사과 등 근무.
⊙ 해외근무로는 이슬라마바드, 로마, 바르샤바, 시드니, 카스트리스, 콜롬보, 카불 등지 근무.
⊙ 1994~98년 영국 외무부 한국과장 역임.
피터 휴즈(Peter Hughes)
⊙ 58세. 런던 출생.
⊙ 1976년 영국 외무부 입부. 이후 카리비안과, 국방과, 인사과 등 근무.
⊙ 해외근무로는 이슬라마바드, 로마, 바르샤바, 시드니, 카스트리스, 콜롬보, 카불 등지 근무.
⊙ 1994~98년 영국 외무부 한국과장 역임.
2008년 9월 북한 주재 영국대사로 부임해 3년간의 평양 생활을 마치고 지난 9월 26일 서울에 온 피터 휴즈(Peter Hughes) 대사가 9월 28일 오후 《월간조선》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평양 생활과 북한 정권의 현황 등에 대해 두루 견해를 밝혔다.
휴즈 대사는 그 전날인 27일에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영국은 2000년 말 북한과 수교했으며, 처음에는 평양 대사관에 대사를 두지 않고 대사대리를 두었다가 2002년 10월부터 대사를 부임시켰다. 휴즈는 3대(代) 대사였다. 그동안 북한주재 영국 대사대리나 대사들이 서울에 온 경우는 많이 있었고, 그럴 때 언론인들과도 비공식적으로 만난 적은 더러 있었지만, 관훈토론회 같은 공개 행사나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휴즈 대사는 1시간20여분간 진행한 인터뷰에서 비교적 거리낌없이 자신의 평양 생활 경험, 북한 사람과 북한 정권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평양에서 1~2주 동안 우유를 구할 수 없는 때도 많았다”
―평양 주재 대사로 임명될 거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했나.
“대단히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1990년대 중반에 외무부 한국과에 근무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다뤘고, 특히 전혀 외교관계를 갖고 있지 않던 북한과의 수교 문제도 그때 좀 다룬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한반도 문제를 다루게 되고, 특히 평양 주재 대사로서 북한과의 관계 증진 업무를 맡는다니 대단히 기뻤다.”
―평양 같은 폐쇄된 도시에서 근무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물론 나는 평양이 근무하기 힘든 도시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양 근무는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고, 또 어디서든 우리가 사는 곳에서 삶을 꾸려 가는 것 아닌가. 그게 외교관들의 일이다.”
―평양 근무가 끝나게 될 거라고 통보를 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상당한 정도로 슬펐다(a certain amount of sadness)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에 애착을 갖고 몰두하게 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싶은 법인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까. 많이 노력했고 다소의 진전도 있긴 했지만, 또한 일정 부분 퇴보도 있었다. 주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의 세계 속에서 평양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도시로서 말하자면 평양은 완전히 인공 도시라는 점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평양 바깥의 삶은 평양과는 완전히 다르다. 평양은 하나의 진열장(showcase)이다. 김일성을 기념하는 건축물들, 노동당을 찬양하는 포스터들, 큰 건물 등이 그러한 장치의 일부이다. 평양의 실제 삶은 구식(舊式·timeworn)이다. 나라 전체가 발전하지 못한 것처럼, 평양에서도 시설이 결핍되어 있고 레크리에이션도 결여되어 있어서, 지금의 평양 생활이 1970년대와 80년대의 베이징(北京) 생활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평양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거나 혹은 어려운가.
“외국인들은 생활하기가 반드시 그리 나쁘지 않다. 모든 나라 외교관들이 하나의 외교단지에 모여 산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별도의 단지에서 생활한다. 우리에겐 전기와 물의 공급도 괜찮고, 생활 여건도 괜찮다. 상품 가게들도 있어서 웬만한 물건들은 살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 구역은 대개 전기와 물이 공급되지 않고, 난방조차 안되는 경우도 있다. 평양 바깥에서는 아예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도시들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외국인들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식품 구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나.
“외교단지 내에 수퍼마켓이 2개 있고, 거기에 기본적 식품들은 있다. 외교단지 바깥에도 여러 가게들이 있어서 기본적인 상품들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밖의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한곳에서 필요한 모든 식품을 다 살 수는 없다.”
―수퍼마켓은 큰가.
“한국이나 영국처럼 그렇게 큰 것은 없다. 대단히 작다. 공급되는 상품도 제한적이고, 종종 공급이 떨어져 없는 물건도 있다. 가령 평양 시내에서 1~2주일 동안 우유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꽤 자주 있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상품은 평양에서 구할 수가 있다. 공급이 중단되는 품목들도 얼마 지나면 다시 구할 수가 있게 되는 식이다.”
외국인은 북한 주민들의 시장에 못 가
―차량 연료 주입은 어떻게 했나.
“외교단지 밖에 주유소가 있다. 차를 몰고 가서 주유를 하면 된다. 우리 같은 외교관들에겐 별 문제가 없다.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주유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름값은 유로화(euro貨)로 지불하나.
“그렇다. 우리는 모든 비용 지불을 유로로 한다. 외국인들은 북한 화폐로 지불할 수 없다.”
―다른 외화도 받나.
“미국 달러화와 중국 런민비(인민폐)도 들어오고 있다. 내가 2008년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일본 엔화도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약 1년 전쯤부터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도 사용되고 있다.”
―아플 때는 어떻게 하나. 의료 서비스는?
“유엔이 의사 1명을 둔 작은 클리닉을 갖고 있다. 그게 1차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인데, 치료를 요하는 질병일 경우는 베이징으로 나온다. 북한의 의료 서비스는 대단히 기본적(very basic)이기 때문이다.”
―평양에 외국인 병원도 있나.
“외교단지 안에 ‘우애 병원(Friendship Hospital)’이 하나 있지만, 작은 의원급이다. 유엔 의사들의 평가는, 인원이나 장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서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이징으로 나와야 한다.”
―평양의 물가 수준은 다른 외국 도시와 비교해서 어떤가.
“일반적으로 평양의 물가는 런던보다 높다. 대체로 베이징 수준이다. 우리가 구매하는 물품들은 대개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도 물가가 대단히 높다. 특히 신선 식품 같은 것은 매우 비싸다.”
―대사가 이야기하는 물가는 외국인들에 관한 것 아닌가. 북한 사람들이 가는 시장의 물가는 어떤가.
“아직까지 외국인들은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에는 접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시장의 물가는 잘 모른다. 다만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시장보다는 물가가 싸다고 알고 있다.”
―북한 사람들이 가는 일반 시장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가.
“평양의 시장에는 가 본 적이 없지만, 해주를 방문했을 때 그곳 시장에 가 본 적은 있다. 상당히 다양한 물품들이 나와 있어서 인상적이었고, 물가도 평양보다 훨씬 쌌다. 7월이었는데, 쌀은 볼 수 없었지만 다른 상품들은 있었다. 의류, 각종 도구, 전자제품 등 다양했다.”
외교관은 영화관에 갈 수 없다
―평양에서 외국인들은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여가시설은 거의 없다. 15개 레인(lane)의 볼링장, 외교관 전용 식당 3개, 그 외에도 우리가 갈 수 있는 10여 개의 한식당, 외국인들을 위한 두어 개의 노래방, 우리가 갈 수 있는 국제 호텔들, 골프장 한 곳, 호텔 한 곳의 테니스장, 그리고 두어 개의 수영장 등이 전부다. 영화극장들이 있지만, 외교관들은 갈 수 없다. 국제영화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야 한다. 오페라 공연도 있지만, 초청을 받지 않으면 표를 살 수 없다.”
―왜 외교관들은 영화관에 갈 수 없나.
“추측일 뿐인데, 아마도 우리가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자기네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하는가.
“함께 가 볼 수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북한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경우라고는 가령 국제영화제가 열릴 때 내가 우리 대사관의 북한 직원들을 함께 가자고 초청해서 데려갈 수 있을 뿐이다. 북한 직원들이 나를 함께 가자고 초청할 수는 없다.”
―국제영화제가 여럿 열리나.
“2년마다 열리는 평양국제영화제가 있다. 내년(2012년)에 또 열릴 차례다.”
―영화제는 대개 어떤 내용을 주제로 하는가.
“주제는 영화제 때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주제에 초점을 두느냐라기보다 어떤 것에 초점을 두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제 참가 영화들은 정치적인 내용이어서는 안되고 체제 비판적인 내용이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외국은 그저 영화를 제출하고, 북한 당국은 그걸 받아들이든가 받아들이지 않든가 한다. 영국 영화도 그 영화제에서 수상한 적이 있었는데, <베컴처럼 내질러라>와 <엘리자베스:황금기(黃金期)>였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다른 범주의 영화였지만, 북한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다고 그들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평양에서 음악 공연이나 예술 공연 같은 것은 자주 열리나.
“정기적으로 그런 공연들이 있다. 내가 초청받아 가 본 것을 근거로 이야기하자면, 석 달쯤마다 새로운 음악 공연이 열린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예술 공연도 1년에 한두 차례 있다. 발레단 같은 러시아인들의 공연도 1년에 한 차례쯤 있다. 북한인들의 오케스트라 공연도 1년에 서너 차례 열린다. 영화제도 있다. 음악회나 영화의 내용은 대개 정치선전의 색채가 대단히 농후하다. 음악회의 경우도, 인민군 음악대가 부르는 노래든, 연예인 집단이 하는 노래든, 주체사상과 김일성 김정일·군대·적(敵)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영화도 거의 마찬가지다.
축구 경기들도 있다. 일요일에는 축구 외에 곳곳에서 배구 경기를 하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조깅(jogging)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대동강이나 수영장 등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평양에 수영장이 그리 많지 않다. 김일성 대학에 꽤 큰 실내수영장이 새로 건립되었다. 그것 말고 일반 시민들이 갈 수 있는 대형 실외 수영장도 하나 있는데, 외국인들은 여름철에 토요일 오전에만 이용할 수 있다. 그 외에는 모른다. 내 추측인데, 아마도 서너 개의 대형 풀장이 평양시내에 있을 거라 본다. 여름에는 대동강에서 많은 사람이 수영하는 걸 볼 수 있다. 강바닥이 많이 퇴적돼 물이 깊지 않을 것이다.”
대사관에서 일하는 북한 직원 가족과도 만날 수 없다
―주말에 평양시민들은 대동강변 이외에 또 어떤 곳에 많이 가나.
“평양 안의 만수대와 모란봉 언덕 등이 있다. 평양 바깥으로 나가려면 여행허가증을 받아야 하므로 어렵다. 따라서 강변 공원이 주된 행선지다. 모란봉 언덕 바로 아래에 새로 지은 놀이공원(amusement park)이 있는데,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많이 간다. 많은 사람은 그냥 산보도 한다. 그런 정도다. 나의 평양 생활처럼, 평양 시민들의 생활도 대단히 제한적이고 단조롭다.”
―대사는 골프를 하나.
“한다. 평양에 골프장이 전에는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양각도 호텔에 있는 9홀 파3 코스였는데, 폐쇄됐다. 지금은 평양과 남포 중간에 있는 18홀짜리 하나만 있다. 나도 아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여름철에는 매주 거기서 골프를 치곤 했다. 다른 나라 대사들과 자주 쳤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주최의 연례 골프대회가 있었다. 나는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사들과 주로 골프를 쳤다.”
―북한 관리들과 친 적도 있나.
“한 번도 없었다. 아주 드물게 이따금씩 북한 사람 두셋이 골프를 치는 걸 보기는 했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절대 치지 않는다.”
―평양의 외교단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서방 대사관은 7개다. 유럽연합(EU), 영국, 독일, 스웨덴,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이다. 그 밖에 아세안(ASEAN) 국가들로 캄보디아·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영연방 국가들로 나이지리아·파키스탄·인도, 중동국가들로 이란·이집트·시리아·팔레스타인, 그리고 몽골, 중국, 러시아 등이 있다. 또 국제기구로 유엔과 국제적십자가 있다. 유엔 기구란, 세계식량계획(WFP),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인구기금(UNFPA), 국제아동구호기금(UNICEF), 세계보건기구(WHO) 등을 포함한다.”
―외교관과 국제공무원들을 모두 합하면 얼마나 되나.
“가족들을 제외하고 100명쯤 될 거다. 생활여건과 교육여건 때문에 많은 나라 외교관들이 대개 단신(單身) 부임을 한다. 가족들을 포함해도 많아야 120~125명 정도 될 것이다. 그 숫자는 중국과 러시아 외교관들은 제외한 것이다. 두 나라는 가족을 제외하고도 각각 100명 정도의 외교관을 평양에 두고 있다.”
―대사는 북한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나.
“평양에선 오직 관리들만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음식점 종업원이나 골프장 종업원, 그리고 우리 대사관의 북한 직원 등, 당연히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우리 대사관에 북한 직원 6명이 일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의 배우자나 자녀들과도 만날 수 없다. 나는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나 우리 대사관의 북한인 직원들과는 회식 등 사교적 모임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어울릴 수는 없었다.”
북한관리 만나려면 서면으로 1주일 전쯤 신청해야
―북한 관리들을 만나기 위한 절차는 어떤가. 얼마나 쉽거나 또는 어려운가.
“절차는 관료주의적이다. 서면으로 면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러면 일주일 정도 후에 면담 가능 여부에 대한 답을 받는다.”
―북한 관리들은 얼마나 광범위하게, 또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었는가.
“외무성 부상(차관)까지 만날 수 있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외무성 외무상은 각각 부임과 이임 때만 만날 수 있다. 그 밑으로 외무성 국장급은 한 달에 한두 번 만날 수 있었다. 영국과 관련 업무가 많은 교육위원회 국장급도 내가 직접 한 달에 한두 번 만날 수 있었다. 그 외의 관리들 면담 범위는 업무 성격에 달려 있다.”
―그 외엔 별로 없었나.
“문화성, 무역성 관리들과도 더러 만났다. 영국과 북한 사이에 교역은 없고, 문화 교류 사업이 두어 가지 있었을 뿐, 상호 관련된 업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주로 외무성 관리들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체육성 관리들도 만났다. 축구 교환경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의 접촉은 얼마나 자주 했나.
“대단히 자주 한다. 외교가(街)가 작고, 또 닫힌 공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대단히 자주 만났고, 서로 매우 잘 안다. 사실 평양에서 그런 것 외에 할 일이라곤 거의 없기도 하다.”
―서로 만나서 식사나 하고 그러는가.
“그렇다. 대개 같은 음식점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노래방에 가고, 그런 식이다.”
―외교관으로서 평양 근무는 대단히 단조로웠겠다.
“대단히 제한적(restricted)이었다.”
―평양 밖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얼마나 쉽거나 또는 어려웠나.
“평양 안에서는 내가 직접 마음대로 차를 몰고 다닐 수도 있고, 운전기사를 데리고 다닐 수도 있다. 물론 접근할 수 없는 지역도 있긴 하지만 평양 시내 대부분을 돌아다닐 수 있다. 평양 이외 지역으로는 남포에 내 혼자 또는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갈 수 있었다. 그 이외 지역으로 여행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원산이나 북·중 접경지역, 신의주 등지로 가는 것도, 북한 관계자와 함께 간다면 어렵지는 않았다. 그 이외 지역으로 여행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항상 허가가 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 허가 받으면 혼자 가나.
“북한 당국이 추천하여 우리 대사관에서 일하는 통역과 운전기사를 데리고 가야 한다.”
―그들이 대사의 행동거지를 모두 관찰하겠군.
“그들도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김정일 만나는 건 中·러 대사뿐
―그러니까 대사가 보통의 북한 주민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겠다.
“가능하지가 않다.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소규모의 농업, 위생 사업들이 있는데, 그런 일에 주로 유럽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이 일선에서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는 그런 접촉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북한 주재 외교관들이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전혀 볼 수조차 없는가.
“북한의 독특한 정치 체제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국가원수는 영원한 주석인 김일성이다. 우리(외교관들)는 1년에 네 차례씩 그 영원한 주석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금수산 궁전을 방문한다.”
―그러도록 요구받는가.
“그렇게 요구받는다(requested). 그렇게 하기를 기대받는다(expected).”
―1년에 네 차례나?
“그렇다. 신년, 김일성 생일, 김정일 생일, 국경일 등에 한다.
우리가 상대하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북한 체제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다. 외국 대사들은 처음 부임하면 그에게 신임장을 제정한다. 김정일은 노동당 비서이고 인민군 총사령관일 뿐, 명목상 국가원수나 주석은 아니다. 따라서 외교관들은 그를 방문할 수 없다. 지금 평양에서 외교관들 가운데 직접 김정일과 접촉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중국 대사와 러시아 대사밖에 없다.
김정은은 (공식적으로는) 한 사람의 장군일 뿐이다.”
휴즈 대사는 전날 관훈토론회에서는 김정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고, 아무도 김정은을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없다. 보통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북한 사람들이 항상 ‘김정일의 건강을 위하여’, 아니면 ‘김정은을 위하여’라며 축배를 들곤 한다. 그 이후에 내가 간부에게 ‘그러면 김정은이 누군가’라고 물으면 단지 ‘김정은 장군이다’라고만 이야기하지, ‘후계자’라거나 ‘새로운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확연하게 어떤 리더십의 방식이 바뀌었다든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더 김정은에게 충성을 할 수 있는 젊은 세력이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루머는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군사 쪽의 부수장으로 김영호가 지명되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가는 곳마다 그가 동행하는데, 그는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확연히 젊다는 것이 눈에 띈다.”
북한 주민 휴대전화 외국인과 연결 안돼
―런던의 외무부와는 어떻게 통신하나. 북한 밖에 있는 친지들과의 통신은?
“영국 외무부 자체의 위성통신 체제를 갖고 있다. 물론 현지(북한) 전화도 사용할 수 있으나, 대단히 초보적이고, 때로 잘 작동하지도 않으며, 이용료도 대단히 비싸다. 따라서 우리는 자체의 위성 통신 체제를 이용한다. 그걸로 통화는 물론 자료 교신까지 다 한다. 우리도 북한의 ‘코리아링크’가 운용하는 대단히 효율적인 휴대전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외국인들끼리만 사용할 수 있으며, 북한 주민들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의 휴대전화도 외국인들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이메일은?
“영국 대사관은 자체 브로드밴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국외의 이메일 이용자들과도 이메일 교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인터넷에 일절 접근할 수가 없다.”
―평양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는 누가 제공하나.
“우리는 자체의 위성 체제를 쓴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 인터넷은 외부의 것이지, 북한 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니다. 평양에도 외국인들을 위한 상업용 인터넷 서비스가 있으나, 대단히 초보적이고, (디지털이 아니라) 다이얼로그 방식이며, 아직 브로드밴드는 없다.”
―북한에서 인터넷, 이메일 등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대체로 별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나.
“북한 주민들에게 큰 변화는 휴대전화가 도입됐다는 점이다. 전에도 있긴 했으나 아주 원시적인 것이었는데, 지금은 60만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거리에서도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을 위한 휴대전화는 3G일 뿐이지만, 북한 주민들끼리는 화상 통화까지 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용료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대단히 비싸다.”
―휴대전화를 쓰려면 전기가 있어야 할 텐데, 평양의 전기 사정은 어떠한가.
“전기 공급은 연중 내내 간헐적이다. 단전(斷電)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여름보다 겨울에 많다. 북한 주민들 지역에서는 겨울에도 몇시간 동안 단전이 지속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우리가 북한 주민들 집에 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려움이 클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단전이 될 때 어떤 집에선 자동차용 배터리에 연결해서 전등불을 켜기도 한다고 들었다.
외교단지 내의 전력 사정은 평양시내 일반 지역처럼 열악하지는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외교공관들은 단전시에 대비한 비상 발전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외국 외교관들 가운데 일부는 북한 당국이 제공해 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다른 북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단전을 겪는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준비 안된 듯한 인상
―북한 관리들과 남북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 있나.
“늘 한다. 지난 몇 년간 남북 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하고 있다.”
―북한 관리들은 뭐라고 말하나.
“이슈에 따라 다르다. 지난 2~3년간 남북한 사이에 몇 가지 현안들이 있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개성공단 폐쇄 여부 등 서로 다른 여러 이슈들에 관해 북한 관리들과 논의했다. 우리의 일관된 입장은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남북이 대화 국면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아주 제한적이나마 남북 간에 대화가 이뤄지고 있어서 반갑게 생각하고 있다.
북한 관리들은 금강산 관광 문제에 대해, 이미 북한이 문제를 해결했으니 관광이 재개되고 남한 관광객들이 되돌아와야 하는데, 그게 왜 이뤄지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그들은 어떤 식으로도 관련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서는 남한이 먼저 포격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는 남측이 임대료와 토지사용료 등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남북한 관계의 앞날에 대한 대사 개인의 견해는?
“우리는 한반도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한반도 비핵화도 전적으로 지지한다. 영국은 6자회담 과정에 대해서도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 그것이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를 향한 가장 희망적인 방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남북한 당사자 사이에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대화 말이다.”
―지금 남북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정책 변화 때문이다. 북한 관리들의 말을 옮기자면, 한국에서 2008년 현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북 정책을 바꾸고, 그 전까지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한국이 기존 합의사항을 준수해야만 대화로 복귀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선 대화 자체를 재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 당국간 대화 외에 민간 차원의 교류와 경제협력에 대한 대사의 견해는?
“현재 남북간 경제협력은, 가령 4년 전과 비교한다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나는 이산가족 재회가 더 이상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크게 애석하게 생각한다. 이산가족 재결합이 통일에 앞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재회를 포함하여 남북한 국민들 사이에 더 많은 접촉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대사가 보기에,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북한 관리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나는, 정상회담은 우선 분위기가 성숙되어야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양쪽 지도자들이 모두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은, 북한측이 아직 그럴 태세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곧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를 나는 기대한다. 그것이 모든 대화 과정을 재개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사는 현재 북한측이 남북 정상회담을 다급하게 또 진지하게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가.
“아니다. 그들은 결코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북한 관리들, 援助해줘도 감사하단 말 하지 않아
―한반도의 장래에 관해 북한 관리들과 이야기해 보았나.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말을 한다. 통일을 원하고, 평화와 안정이 이뤄지는 비핵화를 바란다고 말한다.”
―공식적으로야 그렇게 말하겠지만, 좀 더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던가.
“공식적인 이야기 외에는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는다. 개인 의견을 내게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북한 관리들로부터 장래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나.
“못했다. 그들은 ‘지금 경제 건설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주민들의 생활 여건 개선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 관리들의 언급이나 북한 매체들의 보도 내용으로 볼 때 중국이 북한에 대해 차지하는 중요성은 얼마만큼 큰가.
“북한에 중국의 중요성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날로 커지고 있다. 김정일이 작년 5월 이래 4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그 앞서 20여 년간 모두 10차례 방문한 것에 비해 보더라도 양국 관계가 양측 모두에게 지극히 중요해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지금 북한 경제는 나쁜 상황이다. 북한은 이제 한국으로부터도, 미국으로부터도, 일본으로부터도 원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원조를 받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따라서 중국의 중요성은 자명하다.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얼마나 지원하는지는 우리가 안다. 북한에게 중국의 중요성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지금(인터뷰가 진행된 9월 28일 현재)도 북한 총리(최영림)가 중국을 방문 중이다. 양방향으로 고위층에서 상호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 비해 러시아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한동안 북·러 관계는 북·중 관계에 비하면 훨씬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북·러는 서로 관계 증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정일도 최근 러시아를 방문해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6자 회담 재개 문제는 물론, 북한을 통과해 한국에 이르는 러시아 가스관(管) 건설 방안, 러시아 전기의 북한 송전 문제 등을 논의하지 않았나.”
―북한 관리들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나.
“북한 내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려는 ‘제국주의적 적국(敵國)’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게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계속 내보내는 메시지다. 일본에 대해서는, 식민지배 시대와 제2차 대전 기간 중 조선에 대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 및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 건 당국이 주민들에게 하는 선전 아닌가. 북한 관리들의 속내는 무엇인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도 북한 관리들의 속내를 알았으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그들은 결코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이 아니라 북한 외교관들조차도 미국에 대해 적대적(敵對的) 태도를 보이나.
“외교관들도 그렇다. 대단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얼마 전까지도 인도적(人道的) 지원 등에 있어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원조국 아니었나. 적어도 북한 관리들은 그걸 알 텐데 고마운 마음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물론 북한 관리들은 미국의 원조를 알고 있다. 사실 한국도 얼마전까지 최대의 지원국이었다. 하지만 북한 관리들은 그런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英·北 간 민간교류는 아직 어려워
―유럽연합(EU)에 대한 북한의 시각은 어떠한가.
“북한은 다국(多國) 조직인 EU를 정치적 강국(political power)으로 보기보다는 경제적 대국으로 보는 편이다. 그래서 유럽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가려고 한다. 북한이 식량 원조를 요청했을 때 EU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1000만 유로(한화로 약 160억원 상당)를 지원했지만 북한은 더 받기를 원했다.
유럽의 개별국가들에 대해서는, 영국에 대한 그들의 시각만 말하겠다. 그들은 영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EU 회원국이며 영연방(英聯邦) 국가여서 많은 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를 중시한다.”
―영국과 북한의 상호 교류 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가장 큰 것은 영어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다. 현재 영국인 강사 4명이 평양의 3개 대학에서 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일성 대학, 평양외국어 대학, 김형직 사범대학 등이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고, 영국인 강사들은 1~2년마다 교체된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북한의 영어 교육 방법을 개선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교육 대상 기관을 3개 더 확대할 계획이다. 김책 공업대학, 김철주 사범대학, 통일중학교 등이다.
평양에는 프랑스인 1명, 독일인 1명, 이탈리아인 1명 등도 어학 강사로 있지만, 그것에 비해 보더라도 영국은 훨씬 많다.
또 해마다 북한 관리들 10명을 영국으로 초청하여 4주일간 어학연수를 받도록 해 주고 있다. 이들은 영국인 가정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거주지인 캔터베리의 경찰서, 법원 등 여러 시설로 견학도 다니면서 영국인들의 생활상을 본다.
또 북한 학자 2명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초청하여 강의를 듣고 연구하게 하는 장학 프로그램도 11월에 시작할 예정이다.
정치인들의 교류도 확대하려고 한다. 가령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지난 3월 런던을 방문했고, 영국 의회의 범정파(汎政派) 위원회 위원장 앨튼 경(卿)과 위원 콕스 남작(男爵)도 지난 2년간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다.
일반인들의 교류는 좀 더 어렵다. 영국은 작년 9월에 수교 10주년 기념으로 미들즈브러 여자 축구팀 선수 18명을 평양에 보내 북한 팀들과 두 차례 경기를 갖게 했다. 그 북한 선수들은 이전까지 외국인이라고는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친선경기의 영향은 크다.”
―영국과 북한의 경제교류는 어떠한가. 북한 내 투자라든가 교역은?
“영국 기업의 북한 내 투자는 전혀 없다. 영국과 북한의 교역도, 내가 아는 한 없다.”
―앞으로 영·북 교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나.
“그러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적 관계 진전도 필요하다.”
―그런 교류가 북한 사회에 미치는 효과는 무엇이라 보는가.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바깥 세상의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가치관을 알게 한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영국인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시각과 미국인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시각에 차이가 있다고 보나.
“있다. 그들은 영국인들을 그들의 적(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얼마나 많은 북한 사람들이 미국인들을 그들의 적이라고 믿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그렇게 주입시키고 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은 교육받은 대로 생각하지 않겠나.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북 관리들, “김정일이 건재한데 웬 승계냐”고 말해
―어제 관훈토론회에서 대사는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그런 발언이 한국 언론에 보도됐는데, 그게 평양에 새로 부임할 후임 영국대사를 어렵게 만들지 않겠나.
“내 말이 잘못 받아들여졌다. 내가 어제 말한 것을 정확히 되풀이하자면, 그 권력 승계에 ‘전반적인 지지(universal support)’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과 ‘폭넓은 지지(wide support)’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북한 주민 모두가 그 승계를 지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일(자신의 그 발언)이 평양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다. 내 말이 잘못 인용되었다면 그것은 당신들(한국 언론) 문제다. 하지만 내가 말한 그대로 전달되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나는 모든 북한 주민들이 북한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동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사 생각으로,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얼마나 확고히 인식되고 있나.
“우선 강조할 것은, 김정은은 아직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발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북한 주민 누구도 그가 후계자라고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아직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은 안 그렇지 않은가.
“물론 현실은, 북한 주민들도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남들과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없다(They can’t discuss it). 내가 알기로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가 과연 그렇게 될지 또는 아닐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문제는 내가 북한 관리들과 대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은 몇 년째 중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는 김정남의 존재에 관해 북한 관리들과 이야기해 본 적 있나.
“북한이 작년 10월 아리랑 공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들은 김정남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일반 주민들이 아니라 북한 관리들 말이다.
“북한 관리들은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들지 않는다. 우리는 2009년 내내 승계 문제에 대해 북한 관리들과 이야기해 보려고 했다. 그들의 대답은 늘 김정일이 건재한데 왜 승계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정일의 아들들에 관해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우리는 아들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김정남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걸 대사는 어떻게 아나.
“작년 아리랑 공연에 김정은이 나타났을 때, 우리 대사관의 북한인 직원들(6명) 가운데 누구도 김정일에게 그런 아들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더라. 북한 사람들은 이런 소문을 들을지는 모르지만, 사실에 대해 알지는 못한다. 김정일에게 아들이 3명이나 있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알 리가 없다. 2009년 초반에 한동안 김정일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우리가 북한 관리들에게 승계 문제에 관해 물어보았을 때, 그들 누구도 김정일에게 아들이 셋 있다는 걸 알지 못하더라.”
北 주민들, 김정남에 대해 전혀 몰라
―그러니까 북한 사람들이 김정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겠군.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외국 언론들은 김정남에 대해 보도를 하지만, 북한 내 매체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그러니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권력승계를 둘러싼 김정남과 김정은의 다툼에 관해 대사가 아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일본 언론에 보도된 것들을 읽어 보긴 했지만,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 내 여러 곳에서 김정일 부자를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되거나 유인물이 살포됐다는 소문들에 대해 대사가 알고 있는 것은?
“나도 그런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런 게 사실일지 아닐지에 대한 대사의 견해는 무엇인가.
“가능한 일이다(It’s possible).”
휴즈 대사는 관훈토론회에서는 ‘북한 내에서 체제 불만으로 집단 반발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가능성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북한은 아직 그런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았고,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핵심세력(core)이 형성될 수도 없으며, 그룹이 모이기도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고, 모든 것은 도청되거나 누군가가 엿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에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또한 북한은 매우 억압적이고 통제가 철저한 국가다. 심지어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이동을 할 때도 여행허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의 대응이나 반발이 있기는 어렵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집트와 리비아 등지에서 장기집권 권력자가 시민들에 의해 축출되는 사태가 진행되고 있었을 때, 대사는 대사관 내의 위성TV를 통해 상황을 잘 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럴 때 북한인 직원들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런 TV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았겠나.
“대사관 내에 TV가 있고, 이론적으로는 북한인 직원들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런 장면들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실제로 그들이 그런 장면들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나는 모른다.
북한 주민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바레인, 예멘 등지에서 벌어진 모든 사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일절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complete media black-out).”
―그렇지만 고위 관리들은 그런 사태 진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추측된다.
“물론 고위 관리들은 국제 TV와 언론 보도를 접할 수 있고, 따라서 사태 진전을 알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태에 대한 매체 보도를 전면 봉쇄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고위직이어야만 그런 바깥 세상의 사태에 대해 알까.
“어느 층부터 알 수 있을 거냐는 문제는 생각하는 것조차 어렵고, 아는 게 없다. 어느 층에서부터 알 것이고 어떤 사람들이 알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사태가 북한 정권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을지 대사는 추측할 수 있겠는가.
“중동 사태에 대해 내가 북한 관리들로부터 들은 유일한 코멘트는, 자기들이 보기에 카다피가 2003년에 핵무기 개발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시민 반군들을 지원하지 않았으리란 것이었다.”
―카다피 같은 독재자도 축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김정일과 그 아들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충격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나도 놀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자기 주민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는 이유 아니겠는가.”
―북한 당국은 간부들에게, 북한은 이집트나 리비아와 다르다고 교육시킨다는 보도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런 보도들에 대해 들어본 바 없다. 그러나 나는 북한 관리들이 ‘북한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으며 경제 건설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안다.”
김정은 승계까지는 10년쯤 걸릴수도
―우리가 북한 정권의 안정 혹은 불안정을 이야기할 때, 양 측면에서 각각 어떤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쪽으로든 못하겠다. 우리의 시야(視野)에 들어와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인데, 나는 그런 추측은 하지 않겠다.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 무렵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는, 최고지도자의 부재(不在)에 따른 불안정의 위험과 권력투쟁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증거가 없는 분석이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북한에 정치적 안정이 있느냐 혹은 없느냐를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다만 우리는 상당히 오랜 기간―지난 9~10개월여―동안 별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지 못했으니, 그걸로 본다면 북한의 정치 상황은 안정돼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워낙 폐쇄된 사회여서 우리가 어떤 현실적 증거를 갖고 판단할 수 없고, 이것도 그저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경제적 궁핍 상황은 정치적 불안정의 중요한 원인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게 반드시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북한 사람들은 1953년 이래 줄곧 어려운 생활을 해 왔다. 어떤 측면에서는 생활이 나아진 것도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 못해진 것도 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정치적 불안정이 초래될 거라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그만큼 곤경에 익숙하게 대처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사는 김일성이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신격화되어 있다고 느꼈는가.
“나는, 김일성은 북한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북한이 지금보다 더 튼튼하고 경제적으로 더 나았으며 안정되어 있던 시절을 통치했다. 그는 지금 ‘영원한 주석’이다. 따라서 그가 신격화돼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일반 주민들은 그를 존경하며, 해마다 그의 생일인 4월 15일에는 그의 묘소를 방문해 헌화를 하는데, 그에 대한 존경이 대단히 진지해 보인다.”
―북한 주민들이 자랄 때 학교나 교과서에서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교육을 받는지 대사는 아는 게 있나.
“내가 아는 바로는, 그들은 김일성의 모든 것을 존경하도록 배운다. 즉, 주체사상이 그로부터 나왔고, 나라의 힘이 그로부터 왔으며, 나라의 독립이 그로 인해 이뤄졌고, 따라서 그는 북한이라는 나라와 모든 북한 사람 개개인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각각 가지는 존경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것이라고 대사는 말하겠는가.
“김일성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전쟁을 이끌고 독립을 가져왔으며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지도자로 존경받는다. 김정일은 아직 생존해 있으므로, 죽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송덕문(頌德文)을 쓰지 않을 것이다. 현재 그는 선군(先軍) 정치를 통해 나라를 더욱 강한 쪽으로 이끌고 있으니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주민들은 배우고 있다. 김정은에 대해서는 현재 어떠한 이야기도 전혀 없다.”
―따라서 대사는, 장차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할 거라고 우리가 예견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보는가.
“나는 우리가 그저 기다리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정일이 죽기 전까지는 김정은이 승계하지 않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보며, 김정일이 죽기까지는 아직 오랜 시간이 있을 거라고 본다.”
―가령 한 10년쯤 더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인가.
“가능하다. 그의 아버지(김일성)도 80대까지 살았다.”
북 주민들, 남한 주민들을 美 노예로 생각 안해
―북한 사람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얼마나 알거나, 혹은 모르고 있나.
“상대적이다. 평양의 고위층 사람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주로 베이징으로이긴 하지만 국외 여행도 자주 다니므로 바깥 세상을 잘 안다. 평양의 중류층 사람들도, 남한이 북한보다 분명히 잘산다는 것, 중국이 북한보다 잘산다는 것, 미국이 반드시 적(敵)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특히 평양의 생활상이 좀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 등은 알고 있다. 그러나 도시든 시골이든 하류층 사람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거의 모를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바깥 세상에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는 주로 DVD나 메모리 스틱을 통해 전파되는데, 하류층은 그런 것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상품이나 TV 드라마, 노래 등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들은 바 있나.
“나는 그들이 ‘K-팝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나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의 TV 연속극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한국 상품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평양에서 한국 상품을 구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 사람들이 DVD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음악을 듣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가령 그들이 한국에서 만든 식품을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만, 한국이 대북 식량 지원의 일환으로 라면과 초코파이를 주겠다고 제안한 데 대해 북한 당국이 곤혹스러워했다고 알고 있다.”
―북한 사람들에 남한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걸까.
“나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아직도 남한 사람들을 미국인들의 노예라고 믿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사람들의 특성을 말한다면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최근까지도, 대단히 규율이 있고, 대단히 성실하며, 체제에 대해 충성하고, 대단히 가족지향적이다. 북한 정권은 나라를 가정에 비유해 설명하곤 한다. 위대한 지도자를 아버지로 묘사하는 식이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이러한 일체성(unity)이 부분적으로 조금씩 해이해지는 징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종전처럼 규율이 서 있는 것은 아니고, 또 종전처럼 그들이 주입받는 것을 다 액면 그대로 믿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가령 북한 주민들도 이제는 남한 국민들이 미국인들의 노예들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당국으로부터) 듣는 모든 것을 반드시 절대적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북한 사람들은 지금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다른 일에 할애할 여유는 별로 없다.”
―대사는 북한의 어린이들이나 학생들과 접촉해 본 적이 있나.
“제한적이긴 하지만 접촉은 있었다. 평양 바깥의 한 유치원과 협력사업을 하는 게 있는데 그곳에 두어 번 가 보았기 때문에 그곳 어린이들을 접해 보았고, 대학에서 영어 강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대학생들과도 만나 보았다.”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
“북한 어린이들에 대해 갖는 주된 인상은, 유치원의 어린아이들조차도 벌써 ‘위대한 지도자’를 존경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유치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3~4살 어린이들이 내게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나는 그게 그 또래의 아이들이 부를 만한 동요인 줄 알았다. 내가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았더니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대답하더라.”⊙
휴즈 대사는 그 전날인 27일에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에서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영국은 2000년 말 북한과 수교했으며, 처음에는 평양 대사관에 대사를 두지 않고 대사대리를 두었다가 2002년 10월부터 대사를 부임시켰다. 휴즈는 3대(代) 대사였다. 그동안 북한주재 영국 대사대리나 대사들이 서울에 온 경우는 많이 있었고, 그럴 때 언론인들과도 비공식적으로 만난 적은 더러 있었지만, 관훈토론회 같은 공개 행사나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휴즈 대사는 1시간20여분간 진행한 인터뷰에서 비교적 거리낌없이 자신의 평양 생활 경험, 북한 사람과 북한 정권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평양에서 1~2주 동안 우유를 구할 수 없는 때도 많았다”
―평양 주재 대사로 임명될 거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했나.
“대단히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1990년대 중반에 외무부 한국과에 근무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다뤘고, 특히 전혀 외교관계를 갖고 있지 않던 북한과의 수교 문제도 그때 좀 다룬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한반도 문제를 다루게 되고, 특히 평양 주재 대사로서 북한과의 관계 증진 업무를 맡는다니 대단히 기뻤다.”
―평양 같은 폐쇄된 도시에서 근무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물론 나는 평양이 근무하기 힘든 도시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양 근무는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고, 또 어디서든 우리가 사는 곳에서 삶을 꾸려 가는 것 아닌가. 그게 외교관들의 일이다.”
―평양 근무가 끝나게 될 거라고 통보를 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상당한 정도로 슬펐다(a certain amount of sadness)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에 애착을 갖고 몰두하게 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싶은 법인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까. 많이 노력했고 다소의 진전도 있긴 했지만, 또한 일정 부분 퇴보도 있었다. 주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의 세계 속에서 평양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도시로서 말하자면 평양은 완전히 인공 도시라는 점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평양 바깥의 삶은 평양과는 완전히 다르다. 평양은 하나의 진열장(showcase)이다. 김일성을 기념하는 건축물들, 노동당을 찬양하는 포스터들, 큰 건물 등이 그러한 장치의 일부이다. 평양의 실제 삶은 구식(舊式·timeworn)이다. 나라 전체가 발전하지 못한 것처럼, 평양에서도 시설이 결핍되어 있고 레크리에이션도 결여되어 있어서, 지금의 평양 생활이 1970년대와 80년대의 베이징(北京) 생활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평양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거나 혹은 어려운가.
“외국인들은 생활하기가 반드시 그리 나쁘지 않다. 모든 나라 외교관들이 하나의 외교단지에 모여 산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별도의 단지에서 생활한다. 우리에겐 전기와 물의 공급도 괜찮고, 생활 여건도 괜찮다. 상품 가게들도 있어서 웬만한 물건들은 살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 구역은 대개 전기와 물이 공급되지 않고, 난방조차 안되는 경우도 있다. 평양 바깥에서는 아예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도시들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외국인들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식품 구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나.
“외교단지 내에 수퍼마켓이 2개 있고, 거기에 기본적 식품들은 있다. 외교단지 바깥에도 여러 가게들이 있어서 기본적인 상품들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밖의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한곳에서 필요한 모든 식품을 다 살 수는 없다.”
―수퍼마켓은 큰가.
“한국이나 영국처럼 그렇게 큰 것은 없다. 대단히 작다. 공급되는 상품도 제한적이고, 종종 공급이 떨어져 없는 물건도 있다. 가령 평양 시내에서 1~2주일 동안 우유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꽤 자주 있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상품은 평양에서 구할 수가 있다. 공급이 중단되는 품목들도 얼마 지나면 다시 구할 수가 있게 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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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8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조선일보 한옥 복합문화공간 다사헌(多士軒)에서 피터 휴즈 대사가 김창기 월간조선 발행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다사헌은 조선일보사가 1989년 인수해 20년간 종로지국으로 사용해 온 것을 최근 복원했다. |
외국인은 북한 주민들의 시장에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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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북한을 방문했던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가 촬영한 북한 원산의 주유소 모습. |
“외교단지 밖에 주유소가 있다. 차를 몰고 가서 주유를 하면 된다. 우리 같은 외교관들에겐 별 문제가 없다.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주유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름값은 유로화(euro貨)로 지불하나.
“그렇다. 우리는 모든 비용 지불을 유로로 한다. 외국인들은 북한 화폐로 지불할 수 없다.”
―다른 외화도 받나.
“미국 달러화와 중국 런민비(인민폐)도 들어오고 있다. 내가 2008년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일본 엔화도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약 1년 전쯤부터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도 사용되고 있다.”
―아플 때는 어떻게 하나. 의료 서비스는?
“유엔이 의사 1명을 둔 작은 클리닉을 갖고 있다. 그게 1차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인데, 치료를 요하는 질병일 경우는 베이징으로 나온다. 북한의 의료 서비스는 대단히 기본적(very basic)이기 때문이다.”
―평양에 외국인 병원도 있나.
“외교단지 안에 ‘우애 병원(Friendship Hospital)’이 하나 있지만, 작은 의원급이다. 유엔 의사들의 평가는, 인원이나 장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서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이징으로 나와야 한다.”
―평양의 물가 수준은 다른 외국 도시와 비교해서 어떤가.
“일반적으로 평양의 물가는 런던보다 높다. 대체로 베이징 수준이다. 우리가 구매하는 물품들은 대개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도 물가가 대단히 높다. 특히 신선 식품 같은 것은 매우 비싸다.”
―대사가 이야기하는 물가는 외국인들에 관한 것 아닌가. 북한 사람들이 가는 시장의 물가는 어떤가.
“아직까지 외국인들은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에는 접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시장의 물가는 잘 모른다. 다만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시장보다는 물가가 싸다고 알고 있다.”
―북한 사람들이 가는 일반 시장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가.
“평양의 시장에는 가 본 적이 없지만, 해주를 방문했을 때 그곳 시장에 가 본 적은 있다. 상당히 다양한 물품들이 나와 있어서 인상적이었고, 물가도 평양보다 훨씬 쌌다. 7월이었는데, 쌀은 볼 수 없었지만 다른 상품들은 있었다. 의류, 각종 도구, 전자제품 등 다양했다.”
외교관은 영화관에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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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휴즈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가 지난 9월 2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여가시설은 거의 없다. 15개 레인(lane)의 볼링장, 외교관 전용 식당 3개, 그 외에도 우리가 갈 수 있는 10여 개의 한식당, 외국인들을 위한 두어 개의 노래방, 우리가 갈 수 있는 국제 호텔들, 골프장 한 곳, 호텔 한 곳의 테니스장, 그리고 두어 개의 수영장 등이 전부다. 영화극장들이 있지만, 외교관들은 갈 수 없다. 국제영화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야 한다. 오페라 공연도 있지만, 초청을 받지 않으면 표를 살 수 없다.”
―왜 외교관들은 영화관에 갈 수 없나.
“추측일 뿐인데, 아마도 우리가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자기네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하는가.
“함께 가 볼 수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북한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경우라고는 가령 국제영화제가 열릴 때 내가 우리 대사관의 북한 직원들을 함께 가자고 초청해서 데려갈 수 있을 뿐이다. 북한 직원들이 나를 함께 가자고 초청할 수는 없다.”
―국제영화제가 여럿 열리나.
“2년마다 열리는 평양국제영화제가 있다. 내년(2012년)에 또 열릴 차례다.”
―영화제는 대개 어떤 내용을 주제로 하는가.
“주제는 영화제 때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주제에 초점을 두느냐라기보다 어떤 것에 초점을 두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제 참가 영화들은 정치적인 내용이어서는 안되고 체제 비판적인 내용이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외국은 그저 영화를 제출하고, 북한 당국은 그걸 받아들이든가 받아들이지 않든가 한다. 영국 영화도 그 영화제에서 수상한 적이 있었는데, <베컴처럼 내질러라>와 <엘리자베스:황금기(黃金期)>였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다른 범주의 영화였지만, 북한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다고 그들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평양에서 음악 공연이나 예술 공연 같은 것은 자주 열리나.
“정기적으로 그런 공연들이 있다. 내가 초청받아 가 본 것을 근거로 이야기하자면, 석 달쯤마다 새로운 음악 공연이 열린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예술 공연도 1년에 한두 차례 있다. 발레단 같은 러시아인들의 공연도 1년에 한 차례쯤 있다. 북한인들의 오케스트라 공연도 1년에 서너 차례 열린다. 영화제도 있다. 음악회나 영화의 내용은 대개 정치선전의 색채가 대단히 농후하다. 음악회의 경우도, 인민군 음악대가 부르는 노래든, 연예인 집단이 하는 노래든, 주체사상과 김일성 김정일·군대·적(敵)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영화도 거의 마찬가지다.
축구 경기들도 있다. 일요일에는 축구 외에 곳곳에서 배구 경기를 하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조깅(jogging)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대동강이나 수영장 등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평양에 수영장이 그리 많지 않다. 김일성 대학에 꽤 큰 실내수영장이 새로 건립되었다. 그것 말고 일반 시민들이 갈 수 있는 대형 실외 수영장도 하나 있는데, 외국인들은 여름철에 토요일 오전에만 이용할 수 있다. 그 외에는 모른다. 내 추측인데, 아마도 서너 개의 대형 풀장이 평양시내에 있을 거라 본다. 여름에는 대동강에서 많은 사람이 수영하는 걸 볼 수 있다. 강바닥이 많이 퇴적돼 물이 깊지 않을 것이다.”
대사관에서 일하는 북한 직원 가족과도 만날 수 없다
―주말에 평양시민들은 대동강변 이외에 또 어떤 곳에 많이 가나.
“평양 안의 만수대와 모란봉 언덕 등이 있다. 평양 바깥으로 나가려면 여행허가증을 받아야 하므로 어렵다. 따라서 강변 공원이 주된 행선지다. 모란봉 언덕 바로 아래에 새로 지은 놀이공원(amusement park)이 있는데,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많이 간다. 많은 사람은 그냥 산보도 한다. 그런 정도다. 나의 평양 생활처럼, 평양 시민들의 생활도 대단히 제한적이고 단조롭다.”
―대사는 골프를 하나.
“한다. 평양에 골프장이 전에는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양각도 호텔에 있는 9홀 파3 코스였는데, 폐쇄됐다. 지금은 평양과 남포 중간에 있는 18홀짜리 하나만 있다. 나도 아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여름철에는 매주 거기서 골프를 치곤 했다. 다른 나라 대사들과 자주 쳤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주최의 연례 골프대회가 있었다. 나는 특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사들과 주로 골프를 쳤다.”
―북한 관리들과 친 적도 있나.
“한 번도 없었다. 아주 드물게 이따금씩 북한 사람 두셋이 골프를 치는 걸 보기는 했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절대 치지 않는다.”
―평양의 외교단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서방 대사관은 7개다. 유럽연합(EU), 영국, 독일, 스웨덴,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이다. 그 밖에 아세안(ASEAN) 국가들로 캄보디아·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영연방 국가들로 나이지리아·파키스탄·인도, 중동국가들로 이란·이집트·시리아·팔레스타인, 그리고 몽골, 중국, 러시아 등이 있다. 또 국제기구로 유엔과 국제적십자가 있다. 유엔 기구란, 세계식량계획(WFP),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인구기금(UNFPA), 국제아동구호기금(UNICEF), 세계보건기구(WHO) 등을 포함한다.”
―외교관과 국제공무원들을 모두 합하면 얼마나 되나.
“가족들을 제외하고 100명쯤 될 거다. 생활여건과 교육여건 때문에 많은 나라 외교관들이 대개 단신(單身) 부임을 한다. 가족들을 포함해도 많아야 120~125명 정도 될 것이다. 그 숫자는 중국과 러시아 외교관들은 제외한 것이다. 두 나라는 가족을 제외하고도 각각 100명 정도의 외교관을 평양에 두고 있다.”
―대사는 북한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나.
“평양에선 오직 관리들만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음식점 종업원이나 골프장 종업원, 그리고 우리 대사관의 북한 직원 등, 당연히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우리 대사관에 북한 직원 6명이 일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의 배우자나 자녀들과도 만날 수 없다. 나는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나 우리 대사관의 북한인 직원들과는 회식 등 사교적 모임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어울릴 수는 없었다.”
북한관리 만나려면 서면으로 1주일 전쯤 신청해야
―북한 관리들을 만나기 위한 절차는 어떤가. 얼마나 쉽거나 또는 어려운가.
“절차는 관료주의적이다. 서면으로 면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러면 일주일 정도 후에 면담 가능 여부에 대한 답을 받는다.”
―북한 관리들은 얼마나 광범위하게, 또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었는가.
“외무성 부상(차관)까지 만날 수 있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외무성 외무상은 각각 부임과 이임 때만 만날 수 있다. 그 밑으로 외무성 국장급은 한 달에 한두 번 만날 수 있었다. 영국과 관련 업무가 많은 교육위원회 국장급도 내가 직접 한 달에 한두 번 만날 수 있었다. 그 외의 관리들 면담 범위는 업무 성격에 달려 있다.”
―그 외엔 별로 없었나.
“문화성, 무역성 관리들과도 더러 만났다. 영국과 북한 사이에 교역은 없고, 문화 교류 사업이 두어 가지 있었을 뿐, 상호 관련된 업무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주로 외무성 관리들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체육성 관리들도 만났다. 축구 교환경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의 접촉은 얼마나 자주 했나.
“대단히 자주 한다. 외교가(街)가 작고, 또 닫힌 공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대단히 자주 만났고, 서로 매우 잘 안다. 사실 평양에서 그런 것 외에 할 일이라곤 거의 없기도 하다.”
―서로 만나서 식사나 하고 그러는가.
“그렇다. 대개 같은 음식점에서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노래방에 가고, 그런 식이다.”
―외교관으로서 평양 근무는 대단히 단조로웠겠다.
“대단히 제한적(restricted)이었다.”
―평양 밖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얼마나 쉽거나 또는 어려웠나.
“평양 안에서는 내가 직접 마음대로 차를 몰고 다닐 수도 있고, 운전기사를 데리고 다닐 수도 있다. 물론 접근할 수 없는 지역도 있긴 하지만 평양 시내 대부분을 돌아다닐 수 있다. 평양 이외 지역으로는 남포에 내 혼자 또는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갈 수 있었다. 그 이외 지역으로 여행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원산이나 북·중 접경지역, 신의주 등지로 가는 것도, 북한 관계자와 함께 간다면 어렵지는 않았다. 그 이외 지역으로 여행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항상 허가가 나는 것은 아니다.”
―여행 허가 받으면 혼자 가나.
“북한 당국이 추천하여 우리 대사관에서 일하는 통역과 운전기사를 데리고 가야 한다.”
―그들이 대사의 행동거지를 모두 관찰하겠군.
“그들도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김정일 만나는 건 中·러 대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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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 |
“가능하지가 않다.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소규모의 농업, 위생 사업들이 있는데, 그런 일에 주로 유럽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이 일선에서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는 그런 접촉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북한 주재 외교관들이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전혀 볼 수조차 없는가.
“북한의 독특한 정치 체제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국가원수는 영원한 주석인 김일성이다. 우리(외교관들)는 1년에 네 차례씩 그 영원한 주석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금수산 궁전을 방문한다.”
―그러도록 요구받는가.
“그렇게 요구받는다(requested). 그렇게 하기를 기대받는다(expected).”
―1년에 네 차례나?
“그렇다. 신년, 김일성 생일, 김정일 생일, 국경일 등에 한다.
우리가 상대하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북한 체제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이다. 외국 대사들은 처음 부임하면 그에게 신임장을 제정한다. 김정일은 노동당 비서이고 인민군 총사령관일 뿐, 명목상 국가원수나 주석은 아니다. 따라서 외교관들은 그를 방문할 수 없다. 지금 평양에서 외교관들 가운데 직접 김정일과 접촉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중국 대사와 러시아 대사밖에 없다.
김정은은 (공식적으로는) 한 사람의 장군일 뿐이다.”
휴즈 대사는 전날 관훈토론회에서는 김정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고, 아무도 김정은을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없다. 보통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북한 사람들이 항상 ‘김정일의 건강을 위하여’, 아니면 ‘김정은을 위하여’라며 축배를 들곤 한다. 그 이후에 내가 간부에게 ‘그러면 김정은이 누군가’라고 물으면 단지 ‘김정은 장군이다’라고만 이야기하지, ‘후계자’라거나 ‘새로운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확연하게 어떤 리더십의 방식이 바뀌었다든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더 김정은에게 충성을 할 수 있는 젊은 세력이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루머는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군사 쪽의 부수장으로 김영호가 지명되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가는 곳마다 그가 동행하는데, 그는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확연히 젊다는 것이 눈에 띈다.”
북한 주민 휴대전화 외국인과 연결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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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3월 영국을 방문한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영국과 북한간 인적 교류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
“영국 외무부 자체의 위성통신 체제를 갖고 있다. 물론 현지(북한) 전화도 사용할 수 있으나, 대단히 초보적이고, 때로 잘 작동하지도 않으며, 이용료도 대단히 비싸다. 따라서 우리는 자체의 위성 통신 체제를 이용한다. 그걸로 통화는 물론 자료 교신까지 다 한다. 우리도 북한의 ‘코리아링크’가 운용하는 대단히 효율적인 휴대전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외국인들끼리만 사용할 수 있으며, 북한 주민들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의 휴대전화도 외국인들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이메일은?
“영국 대사관은 자체 브로드밴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국외의 이메일 이용자들과도 이메일 교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인터넷에 일절 접근할 수가 없다.”
―평양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는 누가 제공하나.
“우리는 자체의 위성 체제를 쓴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 인터넷은 외부의 것이지, 북한 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아니다. 평양에도 외국인들을 위한 상업용 인터넷 서비스가 있으나, 대단히 초보적이고, (디지털이 아니라) 다이얼로그 방식이며, 아직 브로드밴드는 없다.”
―북한에서 인터넷, 이메일 등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대체로 별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나.
“북한 주민들에게 큰 변화는 휴대전화가 도입됐다는 점이다. 전에도 있긴 했으나 아주 원시적인 것이었는데, 지금은 60만명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거리에서도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을 위한 휴대전화는 3G일 뿐이지만, 북한 주민들끼리는 화상 통화까지 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용료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대단히 비싸다.”
―휴대전화를 쓰려면 전기가 있어야 할 텐데, 평양의 전기 사정은 어떠한가.
“전기 공급은 연중 내내 간헐적이다. 단전(斷電)이 자주 발생한다. 특히 여름보다 겨울에 많다. 북한 주민들 지역에서는 겨울에도 몇시간 동안 단전이 지속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우리가 북한 주민들 집에 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려움이 클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단전이 될 때 어떤 집에선 자동차용 배터리에 연결해서 전등불을 켜기도 한다고 들었다.
외교단지 내의 전력 사정은 평양시내 일반 지역처럼 열악하지는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외교공관들은 단전시에 대비한 비상 발전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외국 외교관들 가운데 일부는 북한 당국이 제공해 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다른 북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단전을 겪는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준비 안된 듯한 인상
―북한 관리들과 남북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 있나.
“늘 한다. 지난 몇 년간 남북 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하고 있다.”
―북한 관리들은 뭐라고 말하나.
“이슈에 따라 다르다. 지난 2~3년간 남북한 사이에 몇 가지 현안들이 있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개성공단 폐쇄 여부 등 서로 다른 여러 이슈들에 관해 북한 관리들과 논의했다. 우리의 일관된 입장은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남북이 대화 국면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아주 제한적이나마 남북 간에 대화가 이뤄지고 있어서 반갑게 생각하고 있다.
북한 관리들은 금강산 관광 문제에 대해, 이미 북한이 문제를 해결했으니 관광이 재개되고 남한 관광객들이 되돌아와야 하는데, 그게 왜 이뤄지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그들은 어떤 식으로도 관련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서는 남한이 먼저 포격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서는 남측이 임대료와 토지사용료 등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남북한 관계의 앞날에 대한 대사 개인의 견해는?
“우리는 한반도가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한반도 비핵화도 전적으로 지지한다. 영국은 6자회담 과정에 대해서도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 그것이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를 향한 가장 희망적인 방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남북한 당사자 사이에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대화 말이다.”
―지금 남북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정책 변화 때문이다. 북한 관리들의 말을 옮기자면, 한국에서 2008년 현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북 정책을 바꾸고, 그 전까지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한국이 기존 합의사항을 준수해야만 대화로 복귀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선 대화 자체를 재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 당국간 대화 외에 민간 차원의 교류와 경제협력에 대한 대사의 견해는?
“현재 남북간 경제협력은, 가령 4년 전과 비교한다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나는 이산가족 재회가 더 이상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크게 애석하게 생각한다. 이산가족 재결합이 통일에 앞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재회를 포함하여 남북한 국민들 사이에 더 많은 접촉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대사가 보기에,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북한 관리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나는, 정상회담은 우선 분위기가 성숙되어야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양쪽 지도자들이 모두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은, 북한측이 아직 그럴 태세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곧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를 나는 기대한다. 그것이 모든 대화 과정을 재개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사는 현재 북한측이 남북 정상회담을 다급하게 또 진지하게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가.
“아니다. 그들은 결코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북한 관리들, 援助해줘도 감사하단 말 하지 않아
―한반도의 장래에 관해 북한 관리들과 이야기해 보았나.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말을 한다. 통일을 원하고, 평화와 안정이 이뤄지는 비핵화를 바란다고 말한다.”
―공식적으로야 그렇게 말하겠지만, 좀 더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던가.
“공식적인 이야기 외에는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는다. 개인 의견을 내게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북한 관리들로부터 장래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나.
“못했다. 그들은 ‘지금 경제 건설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주민들의 생활 여건 개선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 관리들의 언급이나 북한 매체들의 보도 내용으로 볼 때 중국이 북한에 대해 차지하는 중요성은 얼마만큼 큰가.
“북한에 중국의 중요성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날로 커지고 있다. 김정일이 작년 5월 이래 4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그 앞서 20여 년간 모두 10차례 방문한 것에 비해 보더라도 양국 관계가 양측 모두에게 지극히 중요해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지금 북한 경제는 나쁜 상황이다. 북한은 이제 한국으로부터도, 미국으로부터도, 일본으로부터도 원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원조를 받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따라서 중국의 중요성은 자명하다.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을 얼마나 지원하는지는 우리가 안다. 북한에게 중국의 중요성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지금(인터뷰가 진행된 9월 28일 현재)도 북한 총리(최영림)가 중국을 방문 중이다. 양방향으로 고위층에서 상호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 비해 러시아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한동안 북·러 관계는 북·중 관계에 비하면 훨씬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북·러는 서로 관계 증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정일도 최근 러시아를 방문해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6자 회담 재개 문제는 물론, 북한을 통과해 한국에 이르는 러시아 가스관(管) 건설 방안, 러시아 전기의 북한 송전 문제 등을 논의하지 않았나.”
―북한 관리들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나.
“북한 내에서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려는 ‘제국주의적 적국(敵國)’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게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계속 내보내는 메시지다. 일본에 대해서는, 식민지배 시대와 제2차 대전 기간 중 조선에 대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 및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 건 당국이 주민들에게 하는 선전 아닌가. 북한 관리들의 속내는 무엇인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도 북한 관리들의 속내를 알았으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그들은 결코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이 아니라 북한 외교관들조차도 미국에 대해 적대적(敵對的) 태도를 보이나.
“외교관들도 그렇다. 대단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얼마 전까지도 인도적(人道的) 지원 등에 있어서 북한에 대한 최대의 원조국 아니었나. 적어도 북한 관리들은 그걸 알 텐데 고마운 마음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물론 북한 관리들은 미국의 원조를 알고 있다. 사실 한국도 얼마전까지 최대의 지원국이었다. 하지만 북한 관리들은 그런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英·北 간 민간교류는 아직 어려워
―유럽연합(EU)에 대한 북한의 시각은 어떠한가.
“북한은 다국(多國) 조직인 EU를 정치적 강국(political power)으로 보기보다는 경제적 대국으로 보는 편이다. 그래서 유럽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가려고 한다. 북한이 식량 원조를 요청했을 때 EU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1000만 유로(한화로 약 160억원 상당)를 지원했지만 북한은 더 받기를 원했다.
유럽의 개별국가들에 대해서는, 영국에 대한 그들의 시각만 말하겠다. 그들은 영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EU 회원국이며 영연방(英聯邦) 국가여서 많은 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를 중시한다.”
―영국과 북한의 상호 교류 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가장 큰 것은 영어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다. 현재 영국인 강사 4명이 평양의 3개 대학에서 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일성 대학, 평양외국어 대학, 김형직 사범대학 등이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고, 영국인 강사들은 1~2년마다 교체된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북한의 영어 교육 방법을 개선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교육 대상 기관을 3개 더 확대할 계획이다. 김책 공업대학, 김철주 사범대학, 통일중학교 등이다.
평양에는 프랑스인 1명, 독일인 1명, 이탈리아인 1명 등도 어학 강사로 있지만, 그것에 비해 보더라도 영국은 훨씬 많다.
또 해마다 북한 관리들 10명을 영국으로 초청하여 4주일간 어학연수를 받도록 해 주고 있다. 이들은 영국인 가정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거주지인 캔터베리의 경찰서, 법원 등 여러 시설로 견학도 다니면서 영국인들의 생활상을 본다.
또 북한 학자 2명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초청하여 강의를 듣고 연구하게 하는 장학 프로그램도 11월에 시작할 예정이다.
정치인들의 교류도 확대하려고 한다. 가령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지난 3월 런던을 방문했고, 영국 의회의 범정파(汎政派) 위원회 위원장 앨튼 경(卿)과 위원 콕스 남작(男爵)도 지난 2년간 두 차례 평양을 방문했다.
일반인들의 교류는 좀 더 어렵다. 영국은 작년 9월에 수교 10주년 기념으로 미들즈브러 여자 축구팀 선수 18명을 평양에 보내 북한 팀들과 두 차례 경기를 갖게 했다. 그 북한 선수들은 이전까지 외국인이라고는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런 친선경기의 영향은 크다.”
―영국과 북한의 경제교류는 어떠한가. 북한 내 투자라든가 교역은?
“영국 기업의 북한 내 투자는 전혀 없다. 영국과 북한의 교역도, 내가 아는 한 없다.”
―앞으로 영·북 교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나.
“그러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적 관계 진전도 필요하다.”
―그런 교류가 북한 사회에 미치는 효과는 무엇이라 보는가.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바깥 세상의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가치관을 알게 한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영국인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시각과 미국인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시각에 차이가 있다고 보나.
“있다. 그들은 영국인들을 그들의 적(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얼마나 많은 북한 사람들이 미국인들을 그들의 적이라고 믿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그렇게 주입시키고 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은 교육받은 대로 생각하지 않겠나.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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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친 피터 휴즈 대사가 다사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다사헌은 북촌의 ㅁ자형 도시한옥으로 방과 누(樓)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대청이 있는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 3칸으로 이뤄져 있다. |
북 관리들, “김정일이 건재한데 웬 승계냐”고 말해
―어제 관훈토론회에서 대사는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그런 발언이 한국 언론에 보도됐는데, 그게 평양에 새로 부임할 후임 영국대사를 어렵게 만들지 않겠나.
“내 말이 잘못 받아들여졌다. 내가 어제 말한 것을 정확히 되풀이하자면, 그 권력 승계에 ‘전반적인 지지(universal support)’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과 ‘폭넓은 지지(wide support)’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북한 주민 모두가 그 승계를 지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일(자신의 그 발언)이 평양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다. 내 말이 잘못 인용되었다면 그것은 당신들(한국 언론) 문제다. 하지만 내가 말한 그대로 전달되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나는 모든 북한 주민들이 북한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동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사 생각으로,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얼마나 확고히 인식되고 있나.
“우선 강조할 것은, 김정은은 아직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발표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북한 주민 누구도 그가 후계자라고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아직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은 안 그렇지 않은가.
“물론 현실은, 북한 주민들도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남들과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없다(They can’t discuss it). 내가 알기로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가 과연 그렇게 될지 또는 아닐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문제는 내가 북한 관리들과 대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은 몇 년째 중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는 김정남의 존재에 관해 북한 관리들과 이야기해 본 적 있나.
“북한이 작년 10월 아리랑 공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들은 김정남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일반 주민들이 아니라 북한 관리들 말이다.
“북한 관리들은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들지 않는다. 우리는 2009년 내내 승계 문제에 대해 북한 관리들과 이야기해 보려고 했다. 그들의 대답은 늘 김정일이 건재한데 왜 승계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정일의 아들들에 관해 물으면, 그들의 대답은 ‘우리는 아들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김정남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걸 대사는 어떻게 아나.
“작년 아리랑 공연에 김정은이 나타났을 때, 우리 대사관의 북한인 직원들(6명) 가운데 누구도 김정일에게 그런 아들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더라. 북한 사람들은 이런 소문을 들을지는 모르지만, 사실에 대해 알지는 못한다. 김정일에게 아들이 3명이나 있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알 리가 없다. 2009년 초반에 한동안 김정일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우리가 북한 관리들에게 승계 문제에 관해 물어보았을 때, 그들 누구도 김정일에게 아들이 셋 있다는 걸 알지 못하더라.”
北 주민들, 김정남에 대해 전혀 몰라
―그러니까 북한 사람들이 김정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겠군.“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외국 언론들은 김정남에 대해 보도를 하지만, 북한 내 매체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 그러니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권력승계를 둘러싼 김정남과 김정은의 다툼에 관해 대사가 아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일본 언론에 보도된 것들을 읽어 보긴 했지만,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 내 여러 곳에서 김정일 부자를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되거나 유인물이 살포됐다는 소문들에 대해 대사가 알고 있는 것은?
“나도 그런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런 게 사실일지 아닐지에 대한 대사의 견해는 무엇인가.
“가능한 일이다(It’s possible).”
휴즈 대사는 관훈토론회에서는 ‘북한 내에서 체제 불만으로 집단 반발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가능성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북한은 아직 그런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았고,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핵심세력(core)이 형성될 수도 없으며, 그룹이 모이기도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고, 모든 것은 도청되거나 누군가가 엿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에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또한 북한은 매우 억압적이고 통제가 철저한 국가다. 심지어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이동을 할 때도 여행허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의 대응이나 반발이 있기는 어렵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집트와 리비아 등지에서 장기집권 권력자가 시민들에 의해 축출되는 사태가 진행되고 있었을 때, 대사는 대사관 내의 위성TV를 통해 상황을 잘 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럴 때 북한인 직원들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런 TV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았겠나.
“대사관 내에 TV가 있고, 이론적으로는 북한인 직원들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런 장면들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실제로 그들이 그런 장면들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나는 모른다.
북한 주민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바레인, 예멘 등지에서 벌어진 모든 사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일절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complete media black-out).”
―그렇지만 고위 관리들은 그런 사태 진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추측된다.
“물론 고위 관리들은 국제 TV와 언론 보도를 접할 수 있고, 따라서 사태 진전을 알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태에 대한 매체 보도를 전면 봉쇄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고위직이어야만 그런 바깥 세상의 사태에 대해 알까.
“어느 층부터 알 수 있을 거냐는 문제는 생각하는 것조차 어렵고, 아는 게 없다. 어느 층에서부터 알 것이고 어떤 사람들이 알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사태가 북한 정권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을지 대사는 추측할 수 있겠는가.
“중동 사태에 대해 내가 북한 관리들로부터 들은 유일한 코멘트는, 자기들이 보기에 카다피가 2003년에 핵무기 개발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시민 반군들을 지원하지 않았으리란 것이었다.”
―카다피 같은 독재자도 축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김정일과 그 아들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충격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나도 놀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자기 주민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는 이유 아니겠는가.”
―북한 당국은 간부들에게, 북한은 이집트나 리비아와 다르다고 교육시킨다는 보도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런 보도들에 대해 들어본 바 없다. 그러나 나는 북한 관리들이 ‘북한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으며 경제 건설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안다.”
김정은 승계까지는 10년쯤 걸릴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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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즈 대사는 북한에서는 아직도 김정은이 정식 후계자로 선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나는 어느 쪽으로든 못하겠다. 우리의 시야(視野)에 들어와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인데, 나는 그런 추측은 하지 않겠다.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 무렵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는, 최고지도자의 부재(不在)에 따른 불안정의 위험과 권력투쟁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증거가 없는 분석이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북한에 정치적 안정이 있느냐 혹은 없느냐를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다만 우리는 상당히 오랜 기간―지난 9~10개월여―동안 별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지 못했으니, 그걸로 본다면 북한의 정치 상황은 안정돼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워낙 폐쇄된 사회여서 우리가 어떤 현실적 증거를 갖고 판단할 수 없고, 이것도 그저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경제적 궁핍 상황은 정치적 불안정의 중요한 원인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게 반드시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북한 사람들은 1953년 이래 줄곧 어려운 생활을 해 왔다. 어떤 측면에서는 생활이 나아진 것도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 못해진 것도 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정치적 불안정이 초래될 거라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그만큼 곤경에 익숙하게 대처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사는 김일성이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신격화되어 있다고 느꼈는가.
“나는, 김일성은 북한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북한이 지금보다 더 튼튼하고 경제적으로 더 나았으며 안정되어 있던 시절을 통치했다. 그는 지금 ‘영원한 주석’이다. 따라서 그가 신격화돼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일반 주민들은 그를 존경하며, 해마다 그의 생일인 4월 15일에는 그의 묘소를 방문해 헌화를 하는데, 그에 대한 존경이 대단히 진지해 보인다.”
―북한 주민들이 자랄 때 학교나 교과서에서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교육을 받는지 대사는 아는 게 있나.
“내가 아는 바로는, 그들은 김일성의 모든 것을 존경하도록 배운다. 즉, 주체사상이 그로부터 나왔고, 나라의 힘이 그로부터 왔으며, 나라의 독립이 그로 인해 이뤄졌고, 따라서 그는 북한이라는 나라와 모든 북한 사람 개개인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각각 가지는 존경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것이라고 대사는 말하겠는가.
“김일성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전쟁을 이끌고 독립을 가져왔으며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지도자로 존경받는다. 김정일은 아직 생존해 있으므로, 죽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송덕문(頌德文)을 쓰지 않을 것이다. 현재 그는 선군(先軍) 정치를 통해 나라를 더욱 강한 쪽으로 이끌고 있으니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주민들은 배우고 있다. 김정은에 대해서는 현재 어떠한 이야기도 전혀 없다.”
―따라서 대사는, 장차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할 거라고 우리가 예견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보는가.
“나는 우리가 그저 기다리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정일이 죽기 전까지는 김정은이 승계하지 않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보며, 김정일이 죽기까지는 아직 오랜 시간이 있을 거라고 본다.”
―가령 한 10년쯤 더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인가.
“가능하다. 그의 아버지(김일성)도 80대까지 살았다.”
북 주민들, 남한 주민들을 美 노예로 생각 안해
―북한 사람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얼마나 알거나, 혹은 모르고 있나.
“상대적이다. 평양의 고위층 사람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대단히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주로 베이징으로이긴 하지만 국외 여행도 자주 다니므로 바깥 세상을 잘 안다. 평양의 중류층 사람들도, 남한이 북한보다 분명히 잘산다는 것, 중국이 북한보다 잘산다는 것, 미국이 반드시 적(敵)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특히 평양의 생활상이 좀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 등은 알고 있다. 그러나 도시든 시골이든 하류층 사람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거의 모를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바깥 세상에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는 주로 DVD나 메모리 스틱을 통해 전파되는데, 하류층은 그런 것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상품이나 TV 드라마, 노래 등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들은 바 있나.
“나는 그들이 ‘K-팝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나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의 TV 연속극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한국 상품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평양에서 한국 상품을 구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 사람들이 DVD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음악을 듣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가령 그들이 한국에서 만든 식품을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다만, 한국이 대북 식량 지원의 일환으로 라면과 초코파이를 주겠다고 제안한 데 대해 북한 당국이 곤혹스러워했다고 알고 있다.”
―북한 사람들에 남한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걸까.
“나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아직도 남한 사람들을 미국인들의 노예라고 믿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사람들의 특성을 말한다면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최근까지도, 대단히 규율이 있고, 대단히 성실하며, 체제에 대해 충성하고, 대단히 가족지향적이다. 북한 정권은 나라를 가정에 비유해 설명하곤 한다. 위대한 지도자를 아버지로 묘사하는 식이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이러한 일체성(unity)이 부분적으로 조금씩 해이해지는 징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종전처럼 규율이 서 있는 것은 아니고, 또 종전처럼 그들이 주입받는 것을 다 액면 그대로 믿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가령 북한 주민들도 이제는 남한 국민들이 미국인들의 노예들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당국으로부터) 듣는 모든 것을 반드시 절대적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북한 사람들은 지금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다른 일에 할애할 여유는 별로 없다.”
―대사는 북한의 어린이들이나 학생들과 접촉해 본 적이 있나.
“제한적이긴 하지만 접촉은 있었다. 평양 바깥의 한 유치원과 협력사업을 하는 게 있는데 그곳에 두어 번 가 보았기 때문에 그곳 어린이들을 접해 보았고, 대학에서 영어 강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대학생들과도 만나 보았다.”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
“북한 어린이들에 대해 갖는 주된 인상은, 유치원의 어린아이들조차도 벌써 ‘위대한 지도자’를 존경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유치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3~4살 어린이들이 내게 노래를 불러 주었는데, 나는 그게 그 또래의 아이들이 부를 만한 동요인 줄 알았다. 내가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았더니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대답하더라.”⊙
장검
(201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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