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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국내영업 포기하고 해외로 뛰어 성공한 金良枰 GMP회장

“중국의 불법 카피업자들이 ‘당신 물건 최고’라 합디다”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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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良枰 회장은 경쟁사 신제품이 나오면 반드시 분해해 봐야 직성이 풀린다.
모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쓴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다.
김 회장은 1985년 회사 설립 이후 ‘남이 사용한 기술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鐵則으로 삼고 있다


⊙ 전 세계 라미네이팅 시장 30% 점유, 발명특허만 70개 보유
⊙ 스위스·미국의 메이저급 파트너와 협력관계 체결하는 방법으로 해외시장 공략
⊙ 지난해 매출액 700억원… 2013년 1억 달러 수출 목표
⊙ “초·중·고 교과서에 독극물 ‘UV잉크’ 들어 있어… 교과부는 유해성 여부 밝혀야”

金良枰
⊙ 62세. 조선대 기계공학과 졸업.
⊙ 광일농산 전무이사, 대산기계 창업(1985년), 이비코코리아 사장, 대산프라스틱기계 대표이사
    (1991년 GMP로 개칭),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 역임.
⊙ 특허: 초박막 라미네이팅필름 개발(2000년) 등 발명특허 70여 개 보유.
⊙ 現 파주상공회의소 소장, GMP 대표이사회장.
  ‘라미네이팅’(Laminating)이라면 몰라도 ‘코팅’(Coating)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코팅은 종이나 사진 등에 비닐을 씌우는 라미네이팅, 비닐액을 바르는 코팅으로 나뉜다. 요즘 같은 디지털인쇄 시대에는 코팅보다 라미네이팅이 대세라고 한다. 종이나 사진 표면을 라미네이팅 처리하면, 자외선에 색이 누렇게 변하는 ‘황화(黃化) 현상’을 막아준다. 군인(軍人)들의 신분증 보호를 위해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시작된 라미네이팅은 오늘날 사진, 간판, 심지어 맥주광고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1조원 규모의 전 세계 라미네이팅 시장에서 직원 230여 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 인쇄 강국 독일·일본·미국을 제치고 정상(頂上)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기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 라미네이팅 시장의 30%를 쥐고 흔드는 김양평(金良枰·62) GMP 대표이사 회장은 국내외 관련 업체 사람들에게는 인기 연예인만큼이나 잘나가는 명사(名士)다.
 
  지난 6월 말, 파주시 교하지구 문발공단의 GMP 본사를 찾았다. 지엠피(GMP)는 ‘Global Manufacturing Pioneer’의 이니셜이다. 김양평 회장 사무실에는 그가 보유한 각종 특허인증 120여 개가 걸려 있었다. 독일 바이어와 유창한 영어로 상담 중이던 그가 기자를 보자, 상담을 위해 테이블에 펼쳐놓았던 컬러풀한 라미네이팅 출력물을 서둘러 치웠다.
 
  지난해 매출액 700억원을 올린 GMP는 알짜 중견기업이다. 1985년 회사 설립 때부터 해외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김 회장은 2000년 50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하는 등 회사 매출의 85%를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 지엠피는 영국·독일·프랑스 등 3개국에 현지법인을, 전 세계 35개국에 판매 거점을 구축해 놓고 있다.
 
 
  日製가 이렇게 조잡하다니… 創業 결심
 
김양평 회장이 독일 바이어와 상담 때 펼쳐놓았던 라미네이팅된 그래픽 출력물을 보여주고 있다.
  김양평 회장은 전남 여수에서 고(故) 김임봉(金任奉·1982년 작고)씨의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대 중학 시절부터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분해하고, 모터를 직접 제작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여수수산고를 졸업한 그는 조선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한다.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은 아버지”라며 “훗날 경영자로 홀로서기 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된 회계와 경영을 배우도록 하셨다”고 했다.
 
  광주(光州) 공병대에서 군 생활을 마친 그는 중소 규모의 통조림 제조 수출회사인 전북 정읍의 광일농산 공무담당 사원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양송이 통조림 살균기계를 개발하는 등 동기들보다 ‘튀기’ 시작했다. 공무과로 입사한 그가 2년 만에 주임과 대리를 뛰어넘어 총무과장과 경리부장을 겸직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버지 덕이었다. 1977년 그는 29세의 나이에 종업원 600명을 거느린 중견기업의 상무이사 겸 공장장이 됐다.
 
  김 회장은 “회계는 경리팀에서만 하는 게 아니고, 경영을 감각으로만 하게 되면 금방 한계가 드러난다”면서 “‘장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비즈니스계의 진리는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982년 10여 년 동안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둔 그는 사업 구상을 위해 서울로 상경, 충무로 인근 점포에서 일본산 ‘후지프라’ 라미네이팅 기계를 접하게 된다. 김 회장은 “일본산임에도 구식 온도조절기가 부착된 조잡한 기계였다”면서 “‘이것을 전자식으로 바꾸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985년, 그는 일을 벌인다. 자본금 500만원을 마련해 직원 3명으로 GMP의 모체인 ‘대산기계’를 설립했다. 국내에서 아직 라미네이팅이란 개념조차 생소할 때였다. 그는 라미네이팅 기계에다 세계 최초로 전자식 온도제어 시스템을 달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전자동 전자식 온도제어’ 라미네이팅 기계를 만든 것이다.
 
  회사 설립 첫해, 그는 매출 1200만원을 기록했고, 1989년 34억원으로 불렸다. 회사 규모가 4년 만에 약 280배 이상 커진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자금난이 쓰나미처럼 덮쳤다. 그는 간신히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받아내 은행대출로 고비를 넘기곤 했다.
 
  그해 그는 필름 관련 발명특허들을 획득하고, 필름 압출(壓出)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창업 5년 만에 ‘임대공장’에서 벗어나 773㎡(234평) 규모의 ‘자가공장’을 마련하게 된다. 어려움 중에도 연구개발에 투자해 발명특허를 내는 한편, 독일의 TUV/GS, 미국의 UL, 캐나다의 CSA 등 각국의 안전규격을 획득해 수출을 위한 사전준비를 차분하게 진행했다. 이 무렵, 그는 라미네이팅 기계의 대표적 소모품인 필름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아예 필름을 자체조달하기로 하고 공장을 건설하는 순발력을 발휘한다.
 
  김 회장은 “GMP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품질’보다 ‘로비’를 중시하는 관공서와 기업의 관행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양평 회장의 말이다.
 
  “조달청에도 등록해 납품해 보고, 국내업자들도 상대해 보았지만, 중소기업이 넘어야 하는 산이 너무 높았습니다. 관공서에 납품할 때, 독자개발한 물품도 규정 때문에 경쟁입찰을 시키더군요. 너무 황당했어요. 그때 마침, 라미네이팅 해외 시장점유율을 조사해 보니 한국은 1%밖에 안 되더군요. 물건만 성실하게 잘 만들면 거래가 되는 해외 블루오션을 놔두고 내가 왜 국내시장에서 아등바등하느냐는 생각이 들었죠. 이럴 바엔 해외로 나가자고 결심했어요.”
 
 
  스위스 IBICO와 파트너십 체결해 유럽시장 진출
 
김양평 회장이 회장실 벽에 걸린 발명특허 70여 개를 비롯해 실용신안, 상표등록 등 각종 특허 120개가 걸린 액자 앞에 섰다.
  1986년 7월, 김양평 회장이 설립한 대산기계는 세계최대의 라미네이팅 제조업체인 미국 지비시(GBC)의 라이벌 스위스의 이비코(IBICO)와 협력관계를 맺을 기회를 잡게 된다. 이비코는 ‘스프링 바인딩’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기업이다. 당시, 대산기계를 포함해 국내 몇몇 생산업체가 해외에 라미네이팅 기기 수출을 모색하고 있었고, 스위스의 이비코도 한국과 일본을 순회하며 협력업체를 발굴하고 있었다. 김양평 회장의 말이다.
 
  “당시 대산기계는 직원 8명에 165㎡(50평)의 공장을 사무실 겸 개발실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기업 이비코가 협력을 위해 공장을 방문한다는 건 엄청나게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사진용 핫롤러(Hot Roller) 라미네이터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기술력이 있으니, 기회를 달라’고 솔직하게 얘기했죠. 다른 업체는 협력관계를 얻기 위해 접객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까지 동원해 조립라인에 앉혔으나, 이비코 사람들은 여성들의 매니큐어와 화장, 스타킹을 보고는 대번에 알아봤다더군요.”
 
  1986년 9월 18일, 추석날이었다. 이비코 측은 김양평 회장의 개인적인 신상까지 캐물으며 계약조건을 물었다고 한다. 당시 김 회장은 “품질과 가격이 맞으면 거래하는 거지 무슨 조건이 필요하냐”고 했고, 이비코 측은 “다른 업체는 허세를 부렸지만, 당신의 솔직한 태도가 오히려 신뢰가 간다”며 최종 파트너로 대산기계를 선택했다. 김 회장은 이비코가 요구하는 유럽시장의 품질수준과 디자인에 맞추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고 한다. 이비코도 일본 주재 이비코 기술자문역인 헵티 씨를 대산기계에 보내 기술지도를 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왔다.
 
  2년 이상의 연구개발을 거쳐 거대한 유럽시장에 한 발 내디딜 때쯤 또다시 자금난이 찾아왔다. 1989년 여름 어느 날, 극심한 자금난에 한숨을 몰아쉬던 김 회장의 계좌로 10만 달러라는 ‘거금(巨金)’이 입금됐다. 김 회장이 송금자를 확인해 보니 이비코의 헵티 씨가 스위스에서 송금한 것이었다. 김 회장은 헵티 씨를 “godfather(대부)”라고 부르며, 더 심혈을 기울여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이비코와 협력하면서 유럽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게 된 김 회장은 제품에 ‘GMP’라는 고유브랜드를 사용해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세빗(CeBit)’, 쾰른의 ‘포토 키나(Photo Kina)’, 뒤셀도르프의 ‘드루파(Drupa)’, 프랑크푸르트의 ‘페이퍼 월드(Paper World)’, 영국의 ‘아이펙스(IPEX)’, 스페인 등 유럽 전시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라미네이팅의 元祖, 미국 GBC와 합작해 미국시장 공략
 
조선대 기계공학과 학생 시절 캠퍼스에서 친구와 함께. 오른쪽이 김양평 회장.
  1994년 여름, 김양평 회장에게 라미네이팅의 원조(元祖), 미국 지비시(GBC)와 합작할 기회가 찾아왔다. 지비시는 풋조이, 타이틀리스트 등의 브랜드를 보유했던 ‘아쿠시네트’와 함께 ‘포천브랜드’의 자회사였다. 협력관계이던 이비코가 지엠피와의 계약을 어기고 자체적으로 라미네이팅 기계를 개발해 중국시장을 개척하면서 두 회사의 관계가 이미 금이 가고 있을 때였다. 김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시회에 참가하던 중 한 호텔에서 지비시 관계자에게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김 회장은 “그들은 GMP의 제품이 엄청난 속도로 미국시장을 잠식하자 OEM 방식으로 수출하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고, 기업 인수합병(M&A)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불쾌한 제안을 받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김 회장은 “우리는 판로를 개척하러 왔으니 우리와 거래를 하는 게 어떠냐”고 역으로 제안했다. 김 회장은 지비시 간부들을 전시장으로 안내해 전시 중인 GMP 제품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GMP의 첨단 제품들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고 한다.
 
  1996년 7월, 지비시 사장단이 방한해 GMP와의 합작투자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당시 GMP의 최대 거래처였던 스위스의 이비코사는 지엠피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하고 있었고, 지비시는 이비코사와 ‘바인딩 시스템’ 부문에서 최대의 경쟁자였다.
 
  김 회장은 “지비시는 GMP와 합작투자를 통해 이비코와 GMP의 연결고리를 끊고, 미국보다 생산원가가 낮은 한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한편, GMP가 개발한 많은 신제품을 연구개발 투자없이 신속하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1석3조’의 효과를 노렸다”고 했다. GMP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은 셈이었다.
 
  지비시와 3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GMP는 1996년 10월 합작을 하기로 했고, 지분 3분의 1을 지비시에 양도하고 1000만 달러 투자를 이끌어냈다. GMP는 하루아침에 부채비율 1400%에서 380%로 내려가는 건실한 기업이 됐고, 라미네이팅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 진출할 교두보까지 마련했다.
 
  그 무렵, 김양평 회장은 전 세계를 돌며 GMP 제품을 소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김양평 회장은 300kg이나 되는 필름 샘플과 기계들을 담은 가방 5개를 들고 직원 1명과 함께 미국을 순회했다.
 
  그는 “미국은 대형수퍼나 면세점에서도 라미네이팅 기계가 판매될 정도로 보편화돼 있었다”면서 “미국 시장은 자국업체들이 시장에 안주(安住)하고 있었고,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보다는 저가형 중심으로 보급돼 있었다”고 했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보스턴,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덴버를 거쳐 로키산맥을 넘어 샌프란시스코, LA 등 보름 동안 20개 도시를 렌터카로 직접 순회하며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는 “길을 헤매다 약속시각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문전박대를 당한 경우도 있고, 밤새 차를 달려 한숨도 못자고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도 있었다”면서 “신기술로 무장한 신제품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우리가 미국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암시를 받았다”고 했다.
 
 
  “핵심부품은 직접 생산”
 
김양평 회장은 스위스 이비코를 유럽시장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진은 김 회장이 1996년 9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CeBit)박람회에 참가했을 때 설치한 부스.
  현재 라미네이팅 수요가 급격히 늘어 전 세계 라미네이팅 시장 규모는 약 1조원이라고 한다. 김양평 회장의 GMP는 최근 트렌드인 그래픽 프린팅에 주력해 왔고, 현재 세계 라미네이터 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창업 15년 만에 세계 시장을 선점한 것이다. GMP의 연구개발(R&D) 비용은 매출액 대비 7.5%, 연간 50억원 규모다.
 
  GMP가 제조하는 대당 1억원이 넘는 고가 기계는 즉석출력과 제본이 가능한 기계인 ‘프린트 FOD(세계 1위)’, 인쇄 라미네이팅 기계인 ‘오프셋 프린트(세계 2위)’, 옥내외 광고물 라미네이팅 기계인 ‘그라픽스 앤 사인(세계 1위)’ 등이다.
 
  필름 분야에서는 산업용 열접착 라미네이팅 필름인 ‘서멀 필름(Thermal Film)’, 그래픽용 라미네이팅 필름인 ‘힛 실 필름(Heat-Seal Film)’, 콜드 라미네이팅 필름인 ‘프레서 센서티브 필름(Pressure Sensitive Film)’ 등을 생산하고 있다.
 
  김양평 회장은 “1990년 무렵 일본을 추월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마저 따라잡는 등 최소한 라미네이팅 관련 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기술과 노하우가 있다”면서 “향후 2~3년간 출시할 최신 모델들을 개발해 놓고 있기 때문에 해외의 경쟁사가 어떠한 제품을 내놓더라도 자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GMP는 순수 국내기술로 제품의 주요부품은 물론 디자인까지 자체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면서 “라미네이팅 기기의 핵심부품인 실리콘 롤러, 히터, 온도와 모터속도 제어회로, 테프론 코팅(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는 코팅), 온도센서 등 모든 주요부품을 직접 생산한다”고 했다. 그는 “핵심부품을 직접 생산하는 이유는 외부 하청에 의해 품질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야만 개발단계부터 심혈을 기울인 독자적인 기술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보호·육성할 수 있다”고 했다.
 
 
  “초중고 교과서에 독성 강한 UV코팅 하지 말아야”
 
GMP 생산공장에서 마지막 공정을 기다리고 있는 최신 라미네이팅 모델들.
  김 회장은 최근 휴렛팩커드(HP)가 디지털인쇄기를 만들면, GMP는 디지털인쇄를 라미네이팅하는 기기를 공급하기로 한 계약을 한 것에 고무돼 있었다. 그는 “앞으로 휴렛팩커드의 프린터가 가는 곳이면, GMP의 라미네이팅 기기도 따라간다”면서 “3년 이내에 5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이 예상되므로 2013년이면 대망의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게 된다”고 했다. 김 회장이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또 하나의 핵심기술은 실리콘 롤러다. 길이 2.5m, 직경 300mm의 초대형 실리콘 롤러는 진공(眞空)에서 성형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공기 없고, 주름 없는 꿈의 라미네이팅 제품을 얻을 수 있다.
 
  김양평 회장은 경쟁사 신제품이 나오면 반드시 분해해 봐야 직성이 풀린다. 모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타사가 사용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 회장은 1985년 회사 설립 이후 “남이 사용한 기술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불필요한 자존심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감’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그가 1989년부터 매년 두 차례에 걸쳐 35개국 60여 명의 바이어를 초청해 40시간 코스의 기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는 것도 ‘King of Lamination’이란 자부심 때문이다.
 
  그는 “중국에 가면 GMP의 라미네이팅 기계를 카피한 것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면서 “이젠 특허침해 소송을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불법 카피업자들은 나를 만나면 GMP의 라미네이팅 기기를 카피해 만들었노라며 당당하게 말한다”면서 “카피업자들이 ‘당신 물건 최고’라고 한다”며 웃었다.
 
김 회장이 전 세계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기술세미나에서 강의하고 있다. GMP는 1989년부터 매년 두 차례에 걸쳐 35개국 바이어들을 초청, 40시간 코스의 기술세미나를 열고 있다.
  김양평 회장은 “우리나라 초·중·고 교과서에 독성이 강한 UV코팅액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UV 코팅’은 UV액이 도포된 표면에 울트라 바이올렛 자외선이 닿으면 표면의 UV잉크가 딱딱해져 유리처럼 광택을 내는 것이다. 문제는 종이 속에 스며든 UV액에는 자외선이 닿지 않아 독성(毒性)을 띤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단행본 표지를 기자의 코에 대며 “잉크 냄새가 아닌 알 수 없는 냄새가 바로 UV잉크 냄새”라며, “다이옥신, 톨루엔, 메틸알코올이 주성분”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은 책을 코팅할 때 열을 가해 필름을 입히는 ‘서멀(Thermal) 라미네이팅’을 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만 무해성이 입증되지 않은 UV코팅을 하고 있다”면서 “UV코팅액은 호흡기 질병이나 아토피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독극물을 포함하고 있어 교육과학부는 하루빨리 실태조사를 통해 유해성 여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양평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재수’와 ‘운(運)’이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B와 D 사이에 C가 있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곤 한다. B는 탄생(Birth), D는 죽음(Death), C는 선택(Choice)이다. 김 회장은 “지난 25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1989년 필름공장 건설, 1995년 세계 최대 라미네이팅 기계 생산공장 건설, 세계 최대의 라미네이팅 기기 제작사인 이비코·지비시와의 협력 등 수없는 선택의 순간을 거쳐왔다”면서 “그 선택의 마지막 순간마다 따라다닌 문구가 ‘내가 한 만큼만 돌아온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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