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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종교 리더

高明鎭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

“김장환 목사의 후임은 아무나 하나요”

글 : 이근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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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특징 중 하나가 앞 세대와 다음 세대가 화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모범적인 세대교체로 교회성장을 이루고 칭찬과 부러움을 동시에 받고 있는 수원중앙침례교회. 일절 참견하지 않는 김장환 원로목사를 존중하며 열심히 달리는 고명진 목사를 만났다

⊙ 세대교체의 모범답안으로 칭찬받으며 성장하는 교회
⊙ 매년 헌금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김장환 목사
⊙ 임산부 학교ㆍ아기 학교 운영해 출산율 높이려는 국가시책에 동참
⊙ 비전과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가치는 ‘영성, 인격, 역량, 건강’

高明鎭
⊙ 1958년생.
⊙ 수도침례신학교 목회학과, 성결대·同 대학원 졸업. 중앙대 대학원(경제학석사), 미국 리버티
    침례신학교 박사과정 수료. 미국 댈러스 침례신학대학교 명예신학박사(2008).
⊙ 오산침례교회 담임목사 역임.
⊙ 現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중앙학원 이사장, 중앙복지재단 이사장, 극동방송 이사,
    한국 YFC 이사.
  한국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최근 몇 년 사이 줄줄이 은퇴했다. 각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많아 강력한 카리스마의 전임목사 사역을 누가 이어받을 것인지 교계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5년 전, 세대교체를 한 수원중앙침례교회에 대해서는 한 가지 궁금증이 더 있었다. 김장환(金章煥) 목사의 두 아들 가운데 한 명이 교회를 물려받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2005년 1월 수원중앙침례교회로 아들이 아닌 제자 고명진(高明鎭·52) 목사가 부임했다. 11년간 이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일했던 고 목사가 1990년에 오산침례교회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15년 만에 복귀한 것이다.
 
  세대교체 이후 몇 차례 목사가 바뀌는 홍역을 치른 후 겨우 안정을 찾은 교회가 적지 않다. 그래서 이 교회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는 교계뿐만 아니라 앞 세대와 뒤 세대가 화합하는 일에 서툰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은퇴하는 목사들이 후임목사를 고명진 목사한테 보내 수업(?)을 받게 하고, 이 교회의 새로운 프로그램 공개를 요청하고 자료를 제공받는 발길이 이어지는 중이다.
 
  ―큰 교회 후임으로 오는 것에 부담이 있었나요.
 
  “명장 뒤의 후임은 항상 어렵습니다. 김장환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향력 있는 분입니다. 김 목사님 사역에 누를 끼치지 않고 연착륙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임 김장환 목사는 2000년부터 5년간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을 역임했다. 단일 교단으로 가장 큰 침례교단의 교인은 1억6000만명이고 그 가운데 5000만명이 미국인이어서 영향력이 매우 크다.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총회장을 선출하는데 김장환 목사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수장 자리에 올라 제3세계의 존경과 갈채를 받았다.
 
  지난 5년간의 교회 성장세에 대해 질문했을 때 고명진 목사는 “예배인원과 헌금은 늘어났고, 1년 평균 2000여 명 새 신자가 등록한다”는 정도로만 얘기했다. 교회 관계자가 건네준 자료에 의하면 고 목사 부임 당시 1만5000명이었던 등록교인이 3만명으로 늘었고 매주일 1만1500여 명이 출석하고 있었다.
 
  ―부임한 지 6년이 다 되었는데 전임목사의 그늘을 벗어난 것 같습니까.
 
  “그건 벗어날 수가 없어요. ‘김장환 목사님 후임이라는 얘기 들으면 기분이 어떠냐’고들 하시는데 김 목사님 후임은 아무나 하나요. 오히려 영광스럽지요. 어제의 우리 교회가 없이 오늘의 우리 교회는 있을 수 없어요.”
 
 
  후임에게 간섭 안 하는 쿨한 원로목사
 
  ―김장환 원로목사는 교회 일에 어느 정도 관여하나요.
 
  “중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공부하셔서 미국적 사고를 갖고 있어요. 인사권과 재정권을 처음부터 저한테 다 주신 뒤 아예 교회에 오지를 않아요. 간절히 부탁드려야 설교를 해주시는 정도인데 그것도 1년에 한두 번 정도지요. 어디 가시면 저를 ‘우리 담임목사’라고 소개하시고, ‘교회는 담임목사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주보에 제 이름을 먼저 쓰고 그다음에 원로목사님 이름을 넣으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을 만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난 요즘 고 목사 눈치 보기 바빠’ 그러세요.”
 
  김장환 목사는 매주 아들 김요셉 목사가 담임하는 원천침례교회에서 1부 예배 설교를 한다. 중앙기독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공간을 이용하는 원천침례교회는 작은 교회 9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김장환 목사가 담당하는 1부 안디옥교회에 400여 명이 출석하고 있다.
 
  ―큰 결정을 내릴 일이 있을 때 김장환 목사와 의논합니까.
 
  “전혀 관여를 안 하시니 제가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여쭤보면 그제야 얘기를 조금 하십니다. 45년 시무하셨는데 얼마나 하실 말씀이 많겠어요. 그런데 ‘내 세대는 여기서 끝이야’라고 하시며 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십니다.”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매년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장환 목사라고 소개했다.
 
  “해외집회에 많이 초청되는데 사례비를 받으면 다 교회에 헌금하십니다. 아드님 교회에서 설교하시지만 매년 몇억 원씩 우리 교회에 헌금하시죠. 김 목사님이 워낙 특별하지만 미국인인 트루디 사모님이 균형을 잘 잡아주시고 두 아드님 요셉·요한 목사님이 아버지를 잘 보필하시죠. 가장 모범적인 목사 부자(父子)라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靈的 인프라 구축이 장점
 
교회로서는 드물게 비전체계를 세우자 프로그램 공개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김 목사의 낙점을 받을 당시 고 목사는 등록교인 3000여 명에 출석교인이 1600명인 오산침례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인구 10만명이 안되는 오산시에서 부임 10년 만에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고 목사는 김 목사로부터 후임목사 초청을 받고 여러 차례 고사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시무하던 교회보다 5배 큰 교회로 옮겼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교회가 쌓아놓은 거룩한 명예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컸지 사이즈에 대한 부담은 없었어요. 1979년 400명 정도였을 때 여기 왔다가 2500명일 때 오산으로 갔어요. 300명 교회에 가서 3000명으로 늘어났는데 계속 성장하는 분위기 속에 있어서 그런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어요. 저는 10명도 1만명처럼, 1만명도 10명처럼 생각하고 목회합니다.”
 
  ―큰 교회로 옮겨와서 달라진 점이라면 어떤 게 있습니까.
 
  “단순히 큰 교회가 아니라 영향력이 큰 교회여서 사회봉사를 큰 규모로 할 수 있어 좋고,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분들과 교류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국회조찬기도회나 경찰청 같은 관공서에 초대되어 설교할 기회가 많아, 영적 인프라가 구축된 셈이지요. 국무위원이 제 설교를 듣고 국정에 반영하면 제가 국무위원이 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김진표(金振杓) 의원은 이 교회 장로이고 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은 집사이다. 고 목사는 “교회 들어서는 순간 두 분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아닌 예배당 당원”이라며 웃었다.
 
  ―부임 이후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1970~80년대 급성장을 이룬 교회들의 특징은 카리스마적 지도력과 순종형 성도입니다. 지금도 그 지도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들어요. 목사보다 탁월한 성도가 많기 때문에 이제는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워야 합니다. 부임 이래 앞으로 어떤 교회가 되겠다는 청사진을 구체화시키는 데 열중했습니다. 설계 없이 오두막은 지을 수 있겠지만 빌딩은 불가능합니다. 감독 혼자 설계도를 머리에 넣고 있는 것보다 도면을 나눠주고 다 같이 일하는 것이 빠릅니다.”
 
  고명진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비전목회연구원을 개설하여 행정학과 출신 전도사와 KT 부사장을 지낸 평신도 지도자를 영입했다. 연구원과 교역자들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세리 CEO 과정에 보내 이수하도록 했다.
 
  2007년 10월 14일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수원월드컵 경기장을 빌려 3만5000명이 모인 가운데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수원시장과 국회의원, 수원 시민을 초청하여 20년 후 수원중앙침례교회 비전을 밝히며 결의를 다졌다. ‘지역사회의 자랑이 되고, 한국교회의 긍지이자 대안모델이 되며, 민족의 소망을 위하여 인재를 양육하고, 복음의 빛을 세계에 널리 비추는 등불’이 되자는 것이 이 교회의 4대 비전이다.
 
  “우리 교회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사람을 존귀하게, 과연 그 교회!’입니다. 비전과 목표가 사실 좀 앞서가는 것도 있지만 수원의 자랑인 화성, 삼성과 함께 우리 교회도 ‘과연 그 교회!’로 인정을 받겠다는 각오를 갖고 출발한 겁니다.”
 
  고 목사는 비전선포식을 한 후 구체적인 실천안에 대해 20주 연속 설교했다. 비전과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가치는 ‘경건한 영성, 성숙한 인격, 탁월한 역량, 건강한 체력’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4가지 프로젝트를 ‘예수 프로젝트(영혼 구원), 솔로몬 프로젝트(사역 체계 구축), BK 프로젝트(인재 양성), 요셉 프로젝트(섬김과 나눔)’로 정했다.
 
  “우리 교회 교인이라면 누구나 비전과 목표, 핵심가치를 외워야 합니다. 모든 설교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사람을 존귀하게, 과연 그 교회’에 맞춰서 하고 기도문도 작성하여 나눠주었습니다. 교회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비전을 모두 알고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기업체에서나 필요할 것 같은 비전과 목표, 핵심가치 등을 구체화시킨 것은 고 목사의 전공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지역사회개발을 전공해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섬김과 나눔운동 정착
 
   2년10개월에 걸쳐 비전을 세우고 3년간 실행한 결과는 어떠할까.
 
  “4대 프로젝트 가운데 요셉 프로젝트가 제일 큰 변화입니다. 2009년에 사회복지법인 중앙복지재단을 설립하여 중증장애인 보호시설인 주간장애인보호센터,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굿윌, 호스피스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수원시와 연계하여 수원장애인종합복지회관, 수원버드내복지회관, 수원외국인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셉프로젝트에 소요되는 1년 예산은 약 100억원이다. 이 교회가 오래전에 많은 투자를 했고, 자체 수익이 있는 데다 수원시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교회가 1년에 지원하는 금액은 5억원 정도이다. 1년 내내 교인들이 각 기관에 나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수원중앙침례교회는 김장환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극동방송과 교회에서 설립한 중앙기독초등학교, 기독중학교에 정기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와 장애인 사역, 불우이웃 돕기, 장학사업 등은 이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김장환 목사님이 하시던 사역을 이어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제일 잘하고 있는 것이 임산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임산부 학교에 21분이 다니고 있는데, 교인이 아닌 분들도 와요. 8주 프로그램으로 건강검진, 전문의 특강 같은 걸 하고 있죠. 앞으로 20주, 30주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분유업체 등과 연계하여 전문강의도 듣고 출산 전후 입원하고 물건을 구입하면 할인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려고 합니다.”
 
  임산부 학교를 비롯하여 베이비케어센터, 아기 학교를 운영해 출산율을 높이려는 국가시책에 동참하고 있다.
 
  고명진 목사는 비전선포식을 할 때 오산침례교회에서의 열정을 떠올렸다고 한다.
 
  “제가 부임할 때 오산침례교회는 300명으로 규모가 작아 오산시민들이 잘 몰랐습니다. 불신자들이 우리 교회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 ‘아! 그 교회’라며 감탄을 해야지 ‘음… 그 교회’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1989년 1월 1일에 시로 승격한 오산시는 당시 막 성장을 시작하던 때였다. 먼저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매일 도시락 전해주는 일부터 했다.
 
  “감동적인 일이 많았어요. 교회 앞에 쌀 포대나 생선박스를 말없이 놓고 가는 분들도 계시고 오산시 불교 여신도회에서 교회가 좋은 일 한다며 쌀 두 가마도 보내주셨어요. 무 하나에 2000원 하던 겨울에는 다른 교회 다니는 분이 열 가마를 가져오셨어요. 그 뒤로부터 그분이 겨울마다 김장하라며 배추를 1000포기씩이나 보내주셨어요. 우리가 열심히 하자 오산시장님이 저한테 ‘언제 출마하냐’는 농담을 하셨지요.”
 
  교인들이 입양도 많이 했다는데 당시 고 목사도 혼자 지내던 고등학교 1학년생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했고, 지금 그 학생은 청년이 되었다.
 
 
  후임목사 자리 여러 차례 고사
 
아들이 아닌 제자에게 대형교회를 물려준 김장환 목사(오른쪽).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그는 친가로는 3대, 외가로는 4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라 장로교회를 다녔다. 1976년 침례교신학대학 1학년 때 그는 김장환 목사에게 침례를 받았다. 그 인연으로 안양성결교신학대학 재학 시절 김장환 목사가 설립한 경기신학교 영어성서과 야간에 입학했다. 영어를 배우겠다는 일념에 주간 신학교를 마치고 수원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눈여겨본 김 목사가 그에게 학생부 전도사 자리를 맡겼다.
 
  “초창기 때부터 저를 훈련시키셨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전도사 때 제게 주일 낮 예배 설교를 맡겼어요. 당시 3부 예배를 드릴 때인데 1부부터 3부까지 내리 맡긴 적도 있습니다. 새벽기도 때 나흘 연속 기도를 시킬 정도로 사랑을 많이 해주셔서 질투도 좀 받았습니다.”
 
  김장환 목사가 고명진 목사에게 후임목사 제의를 처음 한 건 2002년의 일이다. 오산에서 즐겁게 목회하고 있었던 고 목사는 “둘째 아들 요한 목사한테 교회를 맡기는 게 어떠냐”고 했다가 “나한테 그런 말하는 사람은 마귀야”라는 야단만 들었다고 한다. 6개월 후 김장환 목사가 “나는 기도 끝났다”며 다시 결심을 재촉했다.
 
  고 목사는 결심을 못한 상태에서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갔다. 1년2개월간 공부하고 2004년에 돌아왔을 때 김 목사가 “교회에서 벌써 절차를 밟고 있다”며 또다시 결심을 촉구했다. 김 목사는 2004년에만 고명진 목사에게 11차례나 설교를 맡겨 교인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정지작업을 했다.
 
  “결심을 굳히고 오겠다고 말씀드리자 김 목사님께서 ‘내가 집회 다니느라 교회를 많이 비웠으니 교회를 좀 잘 지켜라. 그러면 교인들이 좋아할 게다. 나를 알고 찾아오는 외부 목사님들을 좀 대접하라’ 딱 두 가지 당부만 하시더군요.”
 
김장환 목사(오른쪽) 생일을 축하하는 고명진 목사(왼쪽).
  고 목사는 ‘김장환 목사 45년 사역계승’을 목표로 세웠다. 부임하자마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20일’이라는 주제로 새벽 4시40분과 밤 9시, 두 차례에 걸쳐 특별기도회를 열었다. 인터넷 동시 접속자까지 합쳐 하루에 5000여 명이 예배 드리면서 뜨거운 열기가 고조되었다.
 
  “김장환 목사님이 평소 ‘우리 교회를 아는 사람, 영어 잘하는 사람, 국제감각이 있는 사람’을 후임으로 정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답니다. 전 세계에서 교인이 1만명 넘는 교회는 30개이고 세계 50대 교회 안에 우리나라 교회가 22개 포함된다고 합니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국제감각도 별로 없는데 세계 50대 교회 안에 드는 교회로 왔으니 각오를 단단히 했지요.”
 
  고 목사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모 경제단체 최고위 과정에 지원했으나 “목사는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세계 100대 기업 가운데 우리나라는 3개밖에 못 들어간다. 50대 안에 들어가는 과학자, 음악가가 몇 명이나 있나, 세계 50대 교회 안에 들어가는 교회인데 왜 안 받아주나 항의했더니 오라더군요. 내년에 갈까 생각 중입니다.”
 
  그는 틈틈이 베스트셀러를 읽고, 가능한 한 많은 얘기를 듣기 위해 애쓴다고 했다.
 
  “교회에 명사를 초청하거나 교계 선배 목사님을 모실 때면 기사를 안 보내고 제가 가려고 애씁니다. 앞선 분들과 직접 대화할 때 배울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교역자 시절에도 김장환 목사의 국제감각을 배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1988년도 호주 침례교아시아대회 때 여행경비 200만원을 마련해서 목사님을 따라갔습니다. 서너 달 사례비에 해당하는, 저로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죠. 김 목사님이 국제무대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인간관계는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였죠. 다른 분들은 공식집회가 끝나면 관광을 다녔지만 저는 9박10일 동안 목사님 곁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따라다녔습니다. 인간관계, 스테이지 매너, 성회 준비하는 모습 등을 유심히 봤죠. 국내에서 외국인들을 접대하는 자리에 따라가서 김 목사님의 매너를 배우기도 했어요.”
 
 
  학교 지어 강당을 교회로 사용할 계획
 
상담학을 전공한 김춘자 사모가 고 목사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현재 수원중앙침례교회의 당면과제는 공간 확보 문제이다. 1984년에 지은 교회가 너무 좁고 주차장 시설이 열악해 오는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없다는 애로점이 있다. 논의 끝에 학교를 지어 강당을 예배장소로 활용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장소에서 7km 떨어진 광교신도시에 영어기숙학교를 지을 예정이다.
 
  “콘서트홀과 실내체육관의 벽을 이동식으로 만드는 좀 특별한 건물입니다. 주일(일요일)에 교인이 많이 올 때는 벽을 트고 체육관에 의자를 갖다놓으면 많이 앉을 수 있잖아요. 교인들이 매일 사용할 수 있는, 활용도가 높은 건물로 지어야지요.”
 
  일주일 전에 설계의뢰를 했고 2013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어기숙학교는 경기도에서 원하는 학교입니다. 우리가 정말 세우고 싶은 학교는 목사님들의 재교육을 위한 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낙오하는 학생들을 수용하는 학교입니다. 매년 4만~4만5000명의 청소년이 학교를 떠난다고 합니다. 이 중에 일부라도 데려와 성경, 윤리, 중국어, 장사하는 법을 가르치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고 자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는 후임목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너무 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고, 그동안 달려왔던 속도가 지금 스타트하는 속도보다 훨씬 세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 힘을 무시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전임자가 하지 않았던 획기적인 걸 하면 당장 눈에 띄죠. 연속성과 단절성의 조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명진 목사는 강대상(講臺床·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탁자)이 너무 길고 웅장하다고 생각했지만 3년이 지나서야 양옆의 화분 얹는 탁자를 치웠다. 그렇게 했더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주보를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꾸기 위해 일곱 단계의 의견을 청취했을 정도이다.
 
  “원로목사님, 장로님들, 권사님들, 제직회, 교인들한테 다 여쭤봤죠. 흑백으로 바꾸었더니 1년에 6000만원의 인쇄비가 절약되었습니다. 대신 흰 종이보다 약간 비싼 재생용지를 선택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성원에게 의견을 물으면 다들 “목사님이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반드시 테스트 과정이 있습니다. 원로목사님이 저한테 포지션을 주셔도 파워는 교인들이 주는 겁니다. 아직도 멀었지만 5년 지나니까 신뢰가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김장환 목사님이 늘 ‘고 목사만 한 목사 없어’라며 과분한 응원의 말씀을 해주셔서 버티고 있습니다.”
 
  고명진 목사는 오산침례교회에 있을 때 전임목사와의 갈등이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60세였던 전임목사님이 은퇴를 하신 게 아니라 스스로 선교목사 사역을 원하셔서 제가 거기로 가게 된 겁니다. 전임목사님과 부딪치진 않았으나 알게 모르게 갈등이 생겨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그때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세심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최선을 다하는 걸 넘어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까’를 생각합니다.”
 
  수원중앙침례교회는 2010년 성도 2만5000명, 2013년 성도 3만5000명 리더 1만명, 2016년 성도 4만5000명 리더 2만명, 2020년 성도 6만명 리더 3만명으로 목표를 세웠다. 특히 2020년에는 200개 교회 개척, 200명의 선교사 파송, 20개의 선교센터 설립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수원중앙침례교회의 비전선포식에 교계 많은 교회가 관심을 보였다. ‘콘퍼런스를 열어달라, 자료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프로그램 가운데 ‘예닮삶’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년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자료를 받아간 교회들이 많다.
 
  “비전과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 가치인 ‘영성, 인격, 역량, 건강’에 관한 내용입니다. 자료는 이미 제공을 하고 있는데 반응이 뜨겁습니다. 전체 프로그램은 좀 더 있다가 공개할 예정인데 몇 년간 준비했기 때문에 자료가 방대합니다. 콘퍼런스를 열면 PPT까지 다 제공할 계획입니다. 미국의 새들백교회와 윌로우크릭 교회를 배우러 많이 가는데 우리 실정에 다 맞는 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 실정에 맞는 모델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원중앙침례교회가 ‘과연 그 교회!’라고 인정받는 그날까지 열심히 달리겠다는 것이 고명진 목사의 각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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