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씨 訃告 듣고 든 두 가지 생각: 가짜뉴스? 음모론이 사실?
⊙ 5개월간 이어진 이씨와의 인연: 낙종도 단독도 모두 이씨 덕분
⊙ 이씨와 나눈 마지막 대화: “이재명씨는 민주화운동 한 적이 없잖아?”
⊙ 이씨가 말한 또 다른 녹음파일 내용: “A 변호사가 자랑스럽게 마치 무용담처럼…”
⊙ 이씨에 대해 바로잡고 싶은 두 가지: ▲대납설 유포자 ▲거짓말쟁이
⊙ 기자의 總評: 다혈질이긴 했지만 정의감 넘치고 순수했던 사람
⊙ 5개월간 이어진 이씨와의 인연: 낙종도 단독도 모두 이씨 덕분
⊙ 이씨와 나눈 마지막 대화: “이재명씨는 민주화운동 한 적이 없잖아?”
⊙ 이씨가 말한 또 다른 녹음파일 내용: “A 변호사가 자랑스럽게 마치 무용담처럼…”
⊙ 이씨에 대해 바로잡고 싶은 두 가지: ▲대납설 유포자 ▲거짓말쟁이
⊙ 기자의 總評: 다혈질이긴 했지만 정의감 넘치고 순수했던 사람
“조 기자님은 진짜 믿어도 되나요?”
“네. 믿어주십시오.”
“(녹음) 파일 주면 제 허락 없이는 절대 공개 안 한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지난 1월 12일 서울 양천구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이병철(향년 56세)씨와 기자가 2021년 12월 3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다. 이씨는 3개월간 기자가 집착에 가깝도록 쫓아다닌 인물이다. 그가 갖고 있는 몇 개의 녹음파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녹음파일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관련돼 있다는 정황이 담긴 이른바 ‘변호사비 의혹’과 관계된 것이었다. 3개월간 이씨를 설득한 끝에 ‘미공개 녹음파일’을 그에게서 받아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이씨와 마지막 연(緣)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悲報
이병철씨 시신이 발견된 12일 오전 8시경, 기자는 잠에서 막 깬 상태였다. 《월간조선》 기사 마감 관계로 전날 늦게 퇴근해, 회사에 조금 늦게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들어왔다. 이병철씨 부고(訃告)를 알리는 국회의 모(某) 비서관이 보낸 메시지였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번째는 이병철씨가 사망했다는 게 ‘가짜뉴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시중에 떠돌던 ‘불순한 음모론’이었다. 원래 음모론이라면 질색하는 기자지만, 이병철씨 경우는 달랐다.
전형적인 경상도(마산) 남자로 매사 당당하고, 자존심 하나만으로 먹고살던 이였다. 그런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기자 입장에선 ‘제로(0)’에 가까웠다. 이병철씨가 갖고 있는 녹음파일의 성격도 이런 의심에 한몫을 더했다. 그 파일엔 대선 정국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곧바로 이병철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 있어 울먹거리는 유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족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모텔에서 (이씨가) 피를 흘린 채 돌아가셨다’는 짧은 답을 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유족에게 사망 당시 상황을 더 물을 수 없었다. ‘지금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에는 이씨의 사망 기사가 아직 뜨지 않은 상태였다. 병원으로 가기 전 〈[단독] 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 폭로한 이모씨 숨진 채 발견〉이란 1보(報)를 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곧바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씨의 사망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준석 대표는 기사를 공유하면서 “왜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이분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도 안 합니다. 지켜보고 분노합시다”라고 썼다. 여기저기서 기사를 공유하는 바람에 조회 수가 급증했고, 《월간조선》 서버엔 과부하가 걸려 한때 접속이 마비됐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빈소가 거의 꾸려진 상태였다. 조문(弔問)을 하고 유족과 맞절을 한 뒤, 유족의 귀에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병철씨가 최근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아실 겁니다.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인(故人) 휴대폰을 잘 갖고 계셔야 합니다. 그 안에는 중요한 녹음파일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변호사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휴대폰을 절대로 줘선 안 됩니다. 이 점 꼭 유념해주십시오.”
빈소 입구엔 생전 이병철씨 사진이 걸렸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며 5개월 전 시작된 그와의 인연을 반추해보기 시작했다. 기자는 숨진 이병철씨와 최근까지 깊은 이야기를 하며 연락을 하고 지내온, 거의 유일한 기자였다.
낙종, 그리고 다시 찾아온 기회
기자는 2021년 8월 21일, 경기도 모(某)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20년 가까이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씨는 민주화운동 경력, 시민단체 활동 경험, 그리고 민주당 당내 상황 등을 진한 경상도 말투로 쏟아냈다. 말하는 속도가 빨라 알아듣기 힘든 대목이 여럿 있었다. 그래도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던 중 이씨로부터 ‘이재명 후보 변호사비 대납 관련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치 않게 들었다. 이씨에게 녹음파일을 건네 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그는 당시 하고 있던 사업과 신변상의 이유 등을 들어 거절했다. 대신 녹음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부만 들려줬다. 이씨는 그러면서 “11월까지만 기다려달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첫 만남 이후 기자는 이씨에게 특별히 공을 들였다. 변호사비 의혹의 핵심 인물인 A 변호사 관련 정보를 그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씨와 함께 취재를 하는 동시에 그가 기자에게 마음을 열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기자는 때때로 이씨에게 케이크와 커피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씨는 “뇌물이냐”고 농담을 했고, 기자는 “1만~2만원짜리 뇌물이 어디 있냐”며 웃음으로 되받아쳤다. 뇌물은 아니었지만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선물 공세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가 갖고 있는 녹음파일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내팽개칠 각오가 돼 있었다.
그러던 중 이씨는 점점 수세에 몰렸다. 자신이 즐겨 하던 소셜미디어에 변호사비 대납 의혹 관련 글을 올리는 바람에 지난해 9월, 이재명 후보 측으로부터 고발당한 것이다. 검찰 조사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이씨는 녹음파일 일부를 검찰에 제출해야 했다. 녹음파일의 존재는 이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고, 기자가 이씨에게 보낸 A 변호사 관련 자료 일부도 노출됐다. 기자만 몰래 알고 있던(?) 특종거리를 최초 제보자(이병철)로 인해 빼앗긴 꼴이 되고 말았다. ‘죽 쑤어 개 준 꼴’이었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기자가 무능한 탓이었다.
그와 별개로 이씨에게 화도 났던 게 사실이다. 첫 만남에서 기자는 이씨에게 “《월간조선》이 (녹음파일을) 책임지고 보도하겠으니 보안 유지를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었다. 그가 소셜미디어에 녹음파일 관련 글만 올리지 않았다면, 기자는 특종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병철씨는 기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씨에게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기자는 2021년 10월 19일 이병철씨에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녹음파일의 존재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고, 이씨는 고발 건으로 인해 심적으로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기자가 보낸 메시지 일부다.
〈이병철 선생님께.
월간조선 조성호입니다.
저는 이 선생님을 신뢰하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전달한 자료를 다른 언론에 건넸어도 그에 대한 유감조차 없습니다. 심신이 지칠 만큼 지쳤는데, 얻은 게 하나도 없다는 자괴감 비슷한 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다는 걸 잘 알기에, 이제는 저와 저희 매체를 믿어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였다면, 녹음파일 들은 그 직후(2021년 8월 20일), 인터넷판을 통해 데일리(daily) 뉴스로 보도했을 겁니다. 선생님께 피해도 안 가도록 할 자신이 있습니다. 심사숙고 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절대로 선생님께 누(累)가 되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메시지를 요약하면 ‘당신(이병철)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할 테니 기자를 믿고 녹음파일을 달라’는 취지였다. 메시지를 본 이병철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 기자가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있는데 내가 성급하게 (소셜미디어에) 글을 써 올리는 바람에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미안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지금 이 상황에서 조 기자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싸움은 내 몫이지…. 그리고 진실은 반드시 승리해. 메시지 보고 감동받아 전화했어요.”
화끈한 스타일의 경상도 남자가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건 모습에 ‘맘고생이 꽤 심한가 보다’ 싶었다. 이씨의 사과에 기자의 감정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후에도 더 자주 그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밀착해나갔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2021년 11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 ‘변호사비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이병철씨 등에 대한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여당뿐 아니라 친여(親與) 유튜브 방송도 이씨가 갖고 있는 녹음파일을 두고 ‘조작됐다’ ‘사전에 기획됐다’며 그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병철씨가 구속이라도 된다면 진실이 묻힐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이씨와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기사를 그에게 보여줬다.
“단독은 당근(당연히) 조 기자님 거야”
이씨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오히려 “감옥 가면 영치금이나 좀 주세요” “먹고살기 어려운데 잘됐죠. 무료 숙식인데요”라고 농담조의 말을 했다. 기자는 이씨가 ‘별거 아닌 일로 여기나 보다’ 하며 혼자 생각한 뒤 신년호 마감을 위해 회사로 복귀할 채비를 했다. 이씨와 헤어지기 직전 그에게 몇 마디 덧붙였다.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나머지 녹음파일 공개하는 것 외에는 없어요. 저 아니라도 좋으니까 공개 임박하면 귀띔만이라도 해주세요.”
지난 12월 3일, 이씨로부터 기자를 ‘믿어도 되냐’는 앞서 언급한 카카오톡이 왔다. 3개의 녹음파일 중 공개되지 않은 48분4초짜리 마지막 녹음파일을 주겠다는 신호였다. 3개월간 공을 들인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날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실어본다.
〈이씨: 조 기자님은 진짜 믿어도 되나요?”
기자: 네. 믿어주십시오.
이씨: (녹음) 파일 주면 제 허락 없이는 절대 공개 안 한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기자: 물론입니다. 이 선생님 명예회복 해드리겠습니다. 마치 범법자로 몰리고 있는데….
이씨: 명예회복은 제 손으로 가능하고 ㅎㅎ 조 기자님과 한 약속이 있어서.
기자: 보도 전에 무조건 상의하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함구하겠습니다. 기사를 쓰면 선생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 불이익 가는 걸 진정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씨: 믿죠.〉
그가 녹음파일을 기자에게 건네기로 결심한 까닭은 뭘까. 아마도 자신의 ‘결백’과 ‘진실’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렇기에 기자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이병철씨가 녹음파일을 건넴으로써 녹음파일이 조작되지 않았음을 밝혀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이씨가 녹음파일을 준 뒤 기자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단독은 당근(당연히) 조 기자님 거야.”
녹음파일을 받은 기자는 신년호용으로 준비하던 기사를 다 미루고, 녹음파일 기사에 전념했다. 신년호 마감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8일, 기자는 이씨에게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다. 그의 거처와 멀지 않은 서울 화곡역 부근 어느 음식점이었다. 기사와 관련해 그에게 확인할 것도 있었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 일부러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때 이씨를 만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됐기 때문이다.
이날은 취재 목적이었기에 이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했다. 이씨와의 대화는 3시간가량 이어졌다. 기자는 이병철씨가 이재명 후보에게 반감(反感)을 가진 이유가 궁금했다. 사감(私感)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매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후보를 공격하는 걸까. 그와의 대화는 ‘왜 이재명과 싸우나’라는 주제로 시작됐다.
(※이하에 나오는 말들은 이병철씨의 주장이다.)
“이재명 (대통령) 되면 進步가 설 곳은 없어질 것”
〈기자: 선생님은 이재명 후보와 원래 인연이 있었어요?
이병철씨(이하 이씨): 아뇨. 옛날에 촛불, 탄핵 집회 나가면서 (이재명 후보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은 했어요. 셀카 정도 같이 찍은 적이 있어요.
기자: 근데 (이 후보와) 왜 틀어지셨어요? 선생님은 민주당원인데.
이씨: 틀어진 게 아니라니까. 이재명 후보가 형수에게 욕설한 녹음파일을 듣고 확 돌아버린 거지…. 내가 그날 가슴이 뛰어서 잠을 못 잤어요. 그때부터 이 후보를 유심히 살폈는데, 성남시 모라토리엄부터 해서 앞뒤가 맞지 않은 정책이 많더라고요. 거기다가 자기 반대하면 무조건 고소·고발을 하지 않나….
기자: 선생님 아는 분 중에 이 후보로부터 고소·고발 당한 사람이 많나요.
이씨: 많죠. 우리 당원 중에도 있어요. 내가 알기론 꽤 되는데….
기자: 그런 상황에서 이재명이란 권력과 싸우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이씨: 쉽지 않죠. 근데 저는 겁은 안 나요.
기자: 무슨 말씀이세요?
이씨: 이미 검찰 조사까지 당해 제 바닥까지 다 털렸잖아요. 막말로 우리 아들, 딸 아니면 KBS 같은 데 가서 인터뷰도 할낀데.
기자: 변호사비 녹음파일 관련해서요?
이씨: 네. 근데 그럼 (애들한테) 난리가 나니까. 자식들이 얼마나 무서워하겠습니까?
기자: 네. 위험하죠. 자제분들이 위험해질 수 있죠.
이씨: 내가 반(反)이재명 노선을 공개적으로 보이니까 그쪽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날 협박까지 하더라고.
기자: 어떻게요?
이씨: 내 딸 사진을 보내면서 ‘조심하라고’…. 조폭 같은 애들도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너무 쇼크를 받았어.〉
이병철씨는 20년 가까이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었다. 그만큼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하지만 그 애정은 식어가고 있었다. 그 배경에도 이재명 후보가 있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역시 존경해. 그분들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진짜 민주주의자거든? 근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 요즘 민주당 보면 옛날 민주당이 아니야. 아니, 어떻게 이재명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지? 이재명씨는 민주화운동을 한 적이 없잖아? 그런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뽑은 당원(黨員)들도 이해가 안 돼…. 나는 평생 민주화를 추구해왔고, 지금도 나 자신을 진보(進步)라고 생각해. 근데 그 사람(이재명 후보)은 민주주의자도 진보도 아니야. 그 사람이 (대통령) 되면 진짜 진보가 설 곳은 없어질 거 같아.”
이병철씨는 “민주당의 분열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과격한 NL(주체사상파)과 조폭(組暴) 비슷한 무리들이 민주당을 접수하려는 거 같다”며 “거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예 묻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당원 게시판을 예로 들며 “이재명 후보 비판 글을 올리면 차단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병철씨 말을 종합하면,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의 철학과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대통령 후보란 얘기였다.
A 변호사, 최씨 통해 이병철씨 회유하려 했다?
변호사비 관련 녹음파일도 그런 이유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평소 이재명 후보의 도덕성을 의심해온 이병철씨는 지인(知人)으로부터 이 후보 측 변호사비 액수를 우연한 기회에 들었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녹음을 하게 됐다. 이병철씨는 “우연치곤 기이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표현했다. 녹음 경위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씨와 사업상 동업(同業)을 했던 최모씨란 사람이 있다. 최씨가 이씨에게 ‘친한 변호사 A씨가 2018년 혜경궁김씨 사건 변론을 맡았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이병철씨에 따르면, 최씨는 ‘A 변호사가 이재명 후보 측으로부터 착수금 3억, 주식(株式)으로 20억을 받았다’며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이병철씨는 자신의 친구와 관련된 사건을 맡기기 위해 최씨에게 A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최씨는 이씨에게 A 변호사를 소개해줬고, 2021년 5월경 세 사람이 처음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이씨가 녹음한 것이었다. 기자가 이씨로부터 받은 녹음파일은 이들 세 사람의 대화가 녹음된 첫 녹음파일(48분04초)이었다. 이후에도 이씨는 A 변호사, 최씨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녹음했다(각각 5분3초, 21분16초). 세 녹음파일에서 이재명 후보 변호사비 관련 이야기가 오갔던 것이다.
이병철씨는 “최씨에게 A변호사가 받았다고 하는 변호사비 액수를 듣고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며 “A 변호사가 정말 23억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최씨에게 A 변호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병철씨 말이다.
“최씨 입장에서는 내가 원망스럽겠죠. 어쨌든 나로 인해 사건에 휘말리게 됐으니까…. 그런데 A 변호사 수임료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은 최씨예요. 너무나 확신에 찬 말투였거든요. 최씨한테 들었으니까 알지, 제가 무슨 수로 A 변호사가 23억 받았단 걸 알겠어요? 나는 이재명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까 어떻게든 A 변호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 기자도 녹음파일에서 들어봤듯이 A 변호사는 23억 받았다는 사실을 긍정도, 부정도 안 하잖아요.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이병철씨 주장에 따르면, 변호사비 녹음파일이 시중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A 변호사는 최씨를 통해 이씨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이병철씨는 이를 일종의 ‘회유’로 받아들였다. 이어지는 이병철씨의 설명이다.
“최씨가 제게 ‘A 변호사는 언제든 좋다고 한다. 한번 만나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제가 다른 녹음파일이 더 있다고 판단한 거겠죠. 내가 조 기자에게 준 파일은 우리 세 사람이 다 같이 등장하잖아요. 게다가 최초 만남이고…. 그런데 그게 조작이 됐을 수 있겠어요? 그 전에 공개된 2개의 파일은 나와 A 변호사, 그리고 최씨와의 전화통화인데 그것만 들었으면, 조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근데 조 기자에게 준 파일(48분04초) 들어보면 알겠지만, 조작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요.”
기자가 ‘최씨가 회유하는 정황이 녹음이 돼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씨는 ‘그건 녹음이 안 돼 있다’고 했다. 이병철씨 말처럼, 그가 기자에게 건넨 파일을 들은 뒤 나머지 전화통화 녹음을 들으면 사건의 맥락이 하나로 연결된다. 기자 역시 녹음파일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일각에서 제기하는 ‘사전기획설’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이씨는 “3개의 파일 말고도 또 다른 녹음파일이 더 있다”고 주장했다.
“A 변호사가 혜경궁김씨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자랑스럽게,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장면을 녹음한 또 다른 파일이 있어요. 그건 현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한테도 줄 수가 없어요. 그 파일은 민주당과 검찰이 나를 코너에 몰면 그때 깔 생각이에요. 나도 내 살 궁리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병철씨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던 사람이었다. 삶의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병철씨에 대해 바로잡고 싶은 두 가지
이병철씨가 세상을 뜬 후 그를 둘러싼 여러 확인되지 않은 설(說)이 보도됐다. 기자는 그중 두 개만 바로잡고자 한다. 하나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대납’ 관련이다. 대납 의혹의 요지는 이재명 후보 측 변호사비를 ‘모 기업이 대신 냈다’는 것이다. 그것은 A 변호사가 해당 기업 계열사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이유로 제기된 것일 뿐, 이병철씨가 제기한 게 아니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기자: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건 어떻게 확인했습니까.
이씨: 대납? 나는 대납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최씨도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는 걸로 알아.
기자: 그럼 대납 얘기는 누가 처음 꺼낸 겁니까.
이씨: 글쎄…. 그건 A 변호사 이력(모 기업 계열사 사외이사 경력)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아무튼 나나 최씨는 (23억이란) 액수만 들었지, 대납에 대해선 몰라. 검찰 수사를 통해서야 알 수 있겠지.〉
기자가 별도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대납설의 진원지는 정치권이었다. 이재명 후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비가 모 기업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언론을 통해 ‘변호사비 대납 의혹’으로 작명(作名)된 것이다. 따라서 이병철씨가 ‘대납설을 퍼뜨렸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두 번째는 이병철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씨가 최씨를 통해 A 변호사에게 접근한 것을 두고, 이씨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하는 주장이다. 앞서 본대로 이씨가 A 변호사를 만난 건 이재명 후보 관련 변호사비 액수가 사실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지, 그 이외의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이씨가 A 변호사와 의논했던 이씨 친구 관련 사건 역시 이씨가 꾸며낸 게 아니었다.
꽤 긴 시간 그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이씨는 아예 입을 다물었으면 다물었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떠벌리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이씨가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군(軍) 검찰에서 복무를 했어. (경희대) 법대를 다닌다는 이유로 차출된 거 같아. 그때 조서(調書)를 쓰면서 느낀 게 군대에도 거짓말쟁이가 참 많다는 거였어. 지금 와서 보면 우리나라 전체에 거짓말쟁이가 참 많지. (웃음) 결혼하고 애 둘 낳고 결심한 건 딱 하나였어요. 우리 애들에게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말자. 진실하게 살자….”
기자가 ‘여권에서는 녹음파일과 관련해 이 선생님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있지 않으냐’고 묻자 “진짜 거짓말쟁이는 정치인들인데 뭐… 신경 안 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가 거짓말쟁이면 조 기자가 기사에 ‘이병철은 사기꾼’이라고 쓰면 되잖아요”라고 했다.
그때 이병철씨에게 소셜미디어에 글 올리는 횟수를 줄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기자가 이씨 소셜미디어 때문에 낙종한 탓(?)도 있지만, 이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소셜미디어는 이병철씨의 유일한 낙(樂)이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사람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로 인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여과 없이 담기기도 한다.
이병철씨가 들려준 검찰 조사 당시 상황
이병철씨의 경우가 그랬다. 이씨의 소셜미디어 계정엔 이재명 후보에 대한 분노는 물론, 여야(與野)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글이 다수 실려 있다. 기자는 그 점이 걱정됐다. 그에 대해 이병철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 기자도 나 봐서 알겠지만, 내가 좀 격해지는 구석이 있기는 해. 열 받는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그걸 (소셜미디어에) 다 털어놓는 게 사실이야. 근데 이거 하나만 알아두라고. 내가 뻥(거짓말)은 안 써. 그래도 명색이 법대 나온 사람인데 똥오줌 분별은 한다고.”
그런 성격 덕분일까. 이병철씨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당당했던 모습을 기자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변호사비 사건 때문에 수원지검에 소환됐잖아. 그때 수사 검사가 이○○ 부부장 검사였는데, 그 사람한테 ‘녹화되는 곳에서 조사받겠다’고 했어요.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조사받는 내용 이재명 측에 다 넘어가냐’고 물었죠. 이 검사가 깜짝 놀라면서 ‘그건 불법입니다’라고 해. 그래서 내가 ‘지검장님은 이재명 후보 후배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검사가 더 이상 대답을 안 하더군.”
변호사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수원지검 검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낸 신성식씨다. 신성식 검사장은 이재명 후보의 중앙대 법대 후배다. 이병철씨는 조사 과정에서 추가 녹음파일의 존재를 검사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내가 검사에게 ‘지금 말하는 건 진술서에 넣지 마라. 검찰에 제출한 것 이외에 또 다른 녹음파일이 더 있다. 거기엔 수원지검 검사도 등장한다’고 말했어요.”
이씨가 말한 ‘수원지검 검사’라는 건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A 변호사가 이재명 후보 측 사건(혜경궁김씨)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 관할 검찰청이던 수원지검을 상대로 일종의 ‘힘’을 썼다는 뉘앙스였다. 참고로 A 변호사는 수원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정의감 넘치고 순수했던 이병철씨
이병철씨 사망 소식이 전해진 12일, 기자는 마감 관계로 잠시 회사에 들른 걸 빼고는 그의 빈소를 지켰다. 잡지 마감이 코앞이었지만, 그보다는 빈소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이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고 싶었다. 이씨의 지인들은 그의 죽음에 분노했다.
“이재명한테 고발당한 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 그거 때문에 죽은 거야! 살려내.”
“민주당 X들은 어떻게 조화(弔花) 하나 안 보내지? 나쁜 X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윤석열, 안철수는 조기(弔旗)라도 보냈더만.”
“(울먹이며) 이병철씨는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냐. 연초에 뵀는데… 매운 음식도 잘 드시고 식사도 잘하셨단 말이야.”
1월 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씨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주로 고혈압과 동맥경화 같은 심장 질환에서 나타나는 ‘대동맥 박리와 파열’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증 이상의 동맥경화 증세가 있었고, 심장이 보통 사람의 두 배가량 되는 심장 비대증을 앓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된 자·타살이 아닌 자연사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빈소를 지키는 동안, 타사(他社) 기자 한 명이 기자에게 ‘이병철씨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왔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좀 다혈질이긴 했지만 정의감 넘치고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불의(不義)를 못 참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 같습니다. 이재명 후보를 누구보다 심하게 비판했지만, 아주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민주당에 대한 애정도 넘쳤고요.”
안타깝게 세상을 뜬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 여기서도 그러했듯이 하늘에서도 남 눈치 안 보고 평소 즐기던 소셜미디어를 마음껏 향유(享有)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굴절되고 오염된 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줬으면 한다. 만약 그러하여 얻는 귀중한 정보가 있다면, 그땐 꿈에라도 나타나 기자에게 가장 먼저 건네주길 소원해본다.⊙
“네. 믿어주십시오.”
“(녹음) 파일 주면 제 허락 없이는 절대 공개 안 한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지난 1월 12일 서울 양천구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이병철(향년 56세)씨와 기자가 2021년 12월 3일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다. 이씨는 3개월간 기자가 집착에 가깝도록 쫓아다닌 인물이다. 그가 갖고 있는 몇 개의 녹음파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녹음파일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관련돼 있다는 정황이 담긴 이른바 ‘변호사비 의혹’과 관계된 것이었다. 3개월간 이씨를 설득한 끝에 ‘미공개 녹음파일’을 그에게서 받아낼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이씨와 마지막 연(緣)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悲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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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월간조선》 기사를 공유하면서 “왜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이분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도 안 합니다. 지켜보고 분노합시다”라고 썼다. 그 바람에 조회 수가 급증했고, 《월간조선》 서버엔 과부하가 걸려 한때 접속이 마비됐다. 사진=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캡처 |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번째는 이병철씨가 사망했다는 게 ‘가짜뉴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시중에 떠돌던 ‘불순한 음모론’이었다. 원래 음모론이라면 질색하는 기자지만, 이병철씨 경우는 달랐다.
전형적인 경상도(마산) 남자로 매사 당당하고, 자존심 하나만으로 먹고살던 이였다. 그런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기자 입장에선 ‘제로(0)’에 가까웠다. 이병철씨가 갖고 있는 녹음파일의 성격도 이런 의심에 한몫을 더했다. 그 파일엔 대선 정국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곧바로 이병철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 있어 울먹거리는 유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족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모텔에서 (이씨가) 피를 흘린 채 돌아가셨다’는 짧은 답을 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유족에게 사망 당시 상황을 더 물을 수 없었다. ‘지금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에는 이씨의 사망 기사가 아직 뜨지 않은 상태였다. 병원으로 가기 전 〈[단독] 이재명 변호사비 대납 의혹 폭로한 이모씨 숨진 채 발견〉이란 1보(報)를 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곧바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씨의 사망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준석 대표는 기사를 공유하면서 “왜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이분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도 안 합니다. 지켜보고 분노합시다”라고 썼다. 여기저기서 기사를 공유하는 바람에 조회 수가 급증했고, 《월간조선》 서버엔 과부하가 걸려 한때 접속이 마비됐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빈소가 거의 꾸려진 상태였다. 조문(弔問)을 하고 유족과 맞절을 한 뒤, 유족의 귀에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병철씨가 최근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아실 겁니다.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인(故人) 휴대폰을 잘 갖고 계셔야 합니다. 그 안에는 중요한 녹음파일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변호사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휴대폰을 절대로 줘선 안 됩니다. 이 점 꼭 유념해주십시오.”
빈소 입구엔 생전 이병철씨 사진이 걸렸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며 5개월 전 시작된 그와의 인연을 반추해보기 시작했다. 기자는 숨진 이병철씨와 최근까지 깊은 이야기를 하며 연락을 하고 지내온, 거의 유일한 기자였다.
낙종, 그리고 다시 찾아온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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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2일 이병철씨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양천구 한 모텔. 사진=조선DB |
그러던 중 이씨로부터 ‘이재명 후보 변호사비 대납 관련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치 않게 들었다. 이씨에게 녹음파일을 건네 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그는 당시 하고 있던 사업과 신변상의 이유 등을 들어 거절했다. 대신 녹음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부만 들려줬다. 이씨는 그러면서 “11월까지만 기다려달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첫 만남 이후 기자는 이씨에게 특별히 공을 들였다. 변호사비 의혹의 핵심 인물인 A 변호사 관련 정보를 그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씨와 함께 취재를 하는 동시에 그가 기자에게 마음을 열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기자는 때때로 이씨에게 케이크와 커피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씨는 “뇌물이냐”고 농담을 했고, 기자는 “1만~2만원짜리 뇌물이 어디 있냐”며 웃음으로 되받아쳤다. 뇌물은 아니었지만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선물 공세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가 갖고 있는 녹음파일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내팽개칠 각오가 돼 있었다.
그러던 중 이씨는 점점 수세에 몰렸다. 자신이 즐겨 하던 소셜미디어에 변호사비 대납 의혹 관련 글을 올리는 바람에 지난해 9월, 이재명 후보 측으로부터 고발당한 것이다. 검찰 조사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이씨는 녹음파일 일부를 검찰에 제출해야 했다. 녹음파일의 존재는 이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고, 기자가 이씨에게 보낸 A 변호사 관련 자료 일부도 노출됐다. 기자만 몰래 알고 있던(?) 특종거리를 최초 제보자(이병철)로 인해 빼앗긴 꼴이 되고 말았다. ‘죽 쑤어 개 준 꼴’이었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기자가 무능한 탓이었다.
그와 별개로 이씨에게 화도 났던 게 사실이다. 첫 만남에서 기자는 이씨에게 “《월간조선》이 (녹음파일을) 책임지고 보도하겠으니 보안 유지를 해달라”고 거듭 당부했었다. 그가 소셜미디어에 녹음파일 관련 글만 올리지 않았다면, 기자는 특종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병철씨는 기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씨에게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기자는 2021년 10월 19일 이병철씨에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녹음파일의 존재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고, 이씨는 고발 건으로 인해 심적으로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기자가 보낸 메시지 일부다.
〈이병철 선생님께.
월간조선 조성호입니다.
저는 이 선생님을 신뢰하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전달한 자료를 다른 언론에 건넸어도 그에 대한 유감조차 없습니다. 심신이 지칠 만큼 지쳤는데, 얻은 게 하나도 없다는 자괴감 비슷한 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신다는 걸 잘 알기에, 이제는 저와 저희 매체를 믿어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였다면, 녹음파일 들은 그 직후(2021년 8월 20일), 인터넷판을 통해 데일리(daily) 뉴스로 보도했을 겁니다. 선생님께 피해도 안 가도록 할 자신이 있습니다. 심사숙고 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절대로 선생님께 누(累)가 되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메시지를 요약하면 ‘당신(이병철)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할 테니 기자를 믿고 녹음파일을 달라’는 취지였다. 메시지를 본 이병철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 기자가 최선을 다해 취재하고 있는데 내가 성급하게 (소셜미디어에) 글을 써 올리는 바람에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미안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지금 이 상황에서 조 기자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싸움은 내 몫이지…. 그리고 진실은 반드시 승리해. 메시지 보고 감동받아 전화했어요.”
화끈한 스타일의 경상도 남자가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건 모습에 ‘맘고생이 꽤 심한가 보다’ 싶었다. 이씨의 사과에 기자의 감정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후에도 더 자주 그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밀착해나갔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2021년 11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 ‘변호사비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이병철씨 등에 대한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여당뿐 아니라 친여(親與) 유튜브 방송도 이씨가 갖고 있는 녹음파일을 두고 ‘조작됐다’ ‘사전에 기획됐다’며 그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병철씨가 구속이라도 된다면 진실이 묻힐 가능성이 커 보였다. 이씨와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기사를 그에게 보여줬다.
“단독은 당근(당연히) 조 기자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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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일, 녹음파일을 건네겠다고 연락 온 카카오톡. 사진=《월간조선》 |
지난 12월 3일, 이씨로부터 기자를 ‘믿어도 되냐’는 앞서 언급한 카카오톡이 왔다. 3개의 녹음파일 중 공개되지 않은 48분4초짜리 마지막 녹음파일을 주겠다는 신호였다. 3개월간 공을 들인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날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실어본다.
〈이씨: 조 기자님은 진짜 믿어도 되나요?”
기자: 네. 믿어주십시오.
이씨: (녹음) 파일 주면 제 허락 없이는 절대 공개 안 한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기자: 물론입니다. 이 선생님 명예회복 해드리겠습니다. 마치 범법자로 몰리고 있는데….
이씨: 명예회복은 제 손으로 가능하고 ㅎㅎ 조 기자님과 한 약속이 있어서.
기자: 보도 전에 무조건 상의하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함구하겠습니다. 기사를 쓰면 선생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 불이익 가는 걸 진정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씨: 믿죠.〉
그가 녹음파일을 기자에게 건네기로 결심한 까닭은 뭘까. 아마도 자신의 ‘결백’과 ‘진실’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렇기에 기자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이병철씨가 녹음파일을 건넴으로써 녹음파일이 조작되지 않았음을 밝혀야 하는 의무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이씨가 녹음파일을 준 뒤 기자에게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단독은 당근(당연히) 조 기자님 거야.”
녹음파일을 받은 기자는 신년호용으로 준비하던 기사를 다 미루고, 녹음파일 기사에 전념했다. 신년호 마감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8일, 기자는 이씨에게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다. 그의 거처와 멀지 않은 서울 화곡역 부근 어느 음식점이었다. 기사와 관련해 그에게 확인할 것도 있었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 일부러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때 이씨를 만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됐기 때문이다.
이날은 취재 목적이었기에 이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했다. 이씨와의 대화는 3시간가량 이어졌다. 기자는 이병철씨가 이재명 후보에게 반감(反感)을 가진 이유가 궁금했다. 사감(私感)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매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후보를 공격하는 걸까. 그와의 대화는 ‘왜 이재명과 싸우나’라는 주제로 시작됐다.
(※이하에 나오는 말들은 이병철씨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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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8일, 이병철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나눴던 카카오톡. 사진=《월간조선》 |
이병철씨(이하 이씨): 아뇨. 옛날에 촛불, 탄핵 집회 나가면서 (이재명 후보에 대해) ‘멋지다’는 생각은 했어요. 셀카 정도 같이 찍은 적이 있어요.
기자: 근데 (이 후보와) 왜 틀어지셨어요? 선생님은 민주당원인데.
이씨: 틀어진 게 아니라니까. 이재명 후보가 형수에게 욕설한 녹음파일을 듣고 확 돌아버린 거지…. 내가 그날 가슴이 뛰어서 잠을 못 잤어요. 그때부터 이 후보를 유심히 살폈는데, 성남시 모라토리엄부터 해서 앞뒤가 맞지 않은 정책이 많더라고요. 거기다가 자기 반대하면 무조건 고소·고발을 하지 않나….
기자: 선생님 아는 분 중에 이 후보로부터 고소·고발 당한 사람이 많나요.
이씨: 많죠. 우리 당원 중에도 있어요. 내가 알기론 꽤 되는데….
기자: 그런 상황에서 이재명이란 권력과 싸우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이씨: 쉽지 않죠. 근데 저는 겁은 안 나요.
기자: 무슨 말씀이세요?
이씨: 이미 검찰 조사까지 당해 제 바닥까지 다 털렸잖아요. 막말로 우리 아들, 딸 아니면 KBS 같은 데 가서 인터뷰도 할낀데.
기자: 변호사비 녹음파일 관련해서요?
이씨: 네. 근데 그럼 (애들한테) 난리가 나니까. 자식들이 얼마나 무서워하겠습니까?
기자: 네. 위험하죠. 자제분들이 위험해질 수 있죠.
이씨: 내가 반(反)이재명 노선을 공개적으로 보이니까 그쪽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날 협박까지 하더라고.
기자: 어떻게요?
이씨: 내 딸 사진을 보내면서 ‘조심하라고’…. 조폭 같은 애들도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너무 쇼크를 받았어.〉
이병철씨는 20년 가까이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었다. 그만큼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하지만 그 애정은 식어가고 있었다. 그 배경에도 이재명 후보가 있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역시 존경해. 그분들은 민주화운동을 했던 진짜 민주주의자거든? 근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 요즘 민주당 보면 옛날 민주당이 아니야. 아니, 어떻게 이재명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지? 이재명씨는 민주화운동을 한 적이 없잖아? 그런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뽑은 당원(黨員)들도 이해가 안 돼…. 나는 평생 민주화를 추구해왔고, 지금도 나 자신을 진보(進步)라고 생각해. 근데 그 사람(이재명 후보)은 민주주의자도 진보도 아니야. 그 사람이 (대통령) 되면 진짜 진보가 설 곳은 없어질 거 같아.”
이병철씨는 “민주당의 분열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과격한 NL(주체사상파)과 조폭(組暴) 비슷한 무리들이 민주당을 접수하려는 거 같다”며 “거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예 묻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당원 게시판을 예로 들며 “이재명 후보 비판 글을 올리면 차단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병철씨 말을 종합하면,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의 철학과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대통령 후보란 얘기였다.
A 변호사, 최씨 통해 이병철씨 회유하려 했다?
변호사비 관련 녹음파일도 그런 이유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평소 이재명 후보의 도덕성을 의심해온 이병철씨는 지인(知人)으로부터 이 후보 측 변호사비 액수를 우연한 기회에 들었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녹음을 하게 됐다. 이병철씨는 “우연치곤 기이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표현했다. 녹음 경위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씨와 사업상 동업(同業)을 했던 최모씨란 사람이 있다. 최씨가 이씨에게 ‘친한 변호사 A씨가 2018년 혜경궁김씨 사건 변론을 맡았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이병철씨에 따르면, 최씨는 ‘A 변호사가 이재명 후보 측으로부터 착수금 3억, 주식(株式)으로 20억을 받았다’며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이병철씨는 자신의 친구와 관련된 사건을 맡기기 위해 최씨에게 A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최씨는 이씨에게 A 변호사를 소개해줬고, 2021년 5월경 세 사람이 처음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이씨가 녹음한 것이었다. 기자가 이씨로부터 받은 녹음파일은 이들 세 사람의 대화가 녹음된 첫 녹음파일(48분04초)이었다. 이후에도 이씨는 A 변호사, 최씨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녹음했다(각각 5분3초, 21분16초). 세 녹음파일에서 이재명 후보 변호사비 관련 이야기가 오갔던 것이다.
이병철씨는 “최씨에게 A변호사가 받았다고 하는 변호사비 액수를 듣고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며 “A 변호사가 정말 23억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최씨에게 A 변호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병철씨 말이다.
“최씨 입장에서는 내가 원망스럽겠죠. 어쨌든 나로 인해 사건에 휘말리게 됐으니까…. 그런데 A 변호사 수임료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은 최씨예요. 너무나 확신에 찬 말투였거든요. 최씨한테 들었으니까 알지, 제가 무슨 수로 A 변호사가 23억 받았단 걸 알겠어요? 나는 이재명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까 어떻게든 A 변호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 기자도 녹음파일에서 들어봤듯이 A 변호사는 23억 받았다는 사실을 긍정도, 부정도 안 하잖아요.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이병철씨 주장에 따르면, 변호사비 녹음파일이 시중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자 A 변호사는 최씨를 통해 이씨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이병철씨는 이를 일종의 ‘회유’로 받아들였다. 이어지는 이병철씨의 설명이다.
“최씨가 제게 ‘A 변호사는 언제든 좋다고 한다. 한번 만나자’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제가 다른 녹음파일이 더 있다고 판단한 거겠죠. 내가 조 기자에게 준 파일은 우리 세 사람이 다 같이 등장하잖아요. 게다가 최초 만남이고…. 그런데 그게 조작이 됐을 수 있겠어요? 그 전에 공개된 2개의 파일은 나와 A 변호사, 그리고 최씨와의 전화통화인데 그것만 들었으면, 조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근데 조 기자에게 준 파일(48분04초) 들어보면 알겠지만, 조작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요.”
기자가 ‘최씨가 회유하는 정황이 녹음이 돼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씨는 ‘그건 녹음이 안 돼 있다’고 했다. 이병철씨 말처럼, 그가 기자에게 건넨 파일을 들은 뒤 나머지 전화통화 녹음을 들으면 사건의 맥락이 하나로 연결된다. 기자 역시 녹음파일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일각에서 제기하는 ‘사전기획설’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이씨는 “3개의 파일 말고도 또 다른 녹음파일이 더 있다”고 주장했다.
“A 변호사가 혜경궁김씨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자랑스럽게,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장면을 녹음한 또 다른 파일이 있어요. 그건 현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한테도 줄 수가 없어요. 그 파일은 민주당과 검찰이 나를 코너에 몰면 그때 깔 생각이에요. 나도 내 살 궁리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병철씨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던 사람이었다. 삶의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병철씨에 대해 바로잡고 싶은 두 가지
이병철씨가 세상을 뜬 후 그를 둘러싼 여러 확인되지 않은 설(說)이 보도됐다. 기자는 그중 두 개만 바로잡고자 한다. 하나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대납’ 관련이다. 대납 의혹의 요지는 이재명 후보 측 변호사비를 ‘모 기업이 대신 냈다’는 것이다. 그것은 A 변호사가 해당 기업 계열사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이유로 제기된 것일 뿐, 이병철씨가 제기한 게 아니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기자: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건 어떻게 확인했습니까.
이씨: 대납? 나는 대납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최씨도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는 걸로 알아.
기자: 그럼 대납 얘기는 누가 처음 꺼낸 겁니까.
이씨: 글쎄…. 그건 A 변호사 이력(모 기업 계열사 사외이사 경력)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아무튼 나나 최씨는 (23억이란) 액수만 들었지, 대납에 대해선 몰라. 검찰 수사를 통해서야 알 수 있겠지.〉
기자가 별도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대납설의 진원지는 정치권이었다. 이재명 후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비가 모 기업과 관련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언론을 통해 ‘변호사비 대납 의혹’으로 작명(作名)된 것이다. 따라서 이병철씨가 ‘대납설을 퍼뜨렸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두 번째는 이병철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씨가 최씨를 통해 A 변호사에게 접근한 것을 두고, 이씨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하는 주장이다. 앞서 본대로 이씨가 A 변호사를 만난 건 이재명 후보 관련 변호사비 액수가 사실인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지, 그 이외의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이씨가 A 변호사와 의논했던 이씨 친구 관련 사건 역시 이씨가 꾸며낸 게 아니었다.
꽤 긴 시간 그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이씨는 아예 입을 다물었으면 다물었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떠벌리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이씨가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군(軍) 검찰에서 복무를 했어. (경희대) 법대를 다닌다는 이유로 차출된 거 같아. 그때 조서(調書)를 쓰면서 느낀 게 군대에도 거짓말쟁이가 참 많다는 거였어. 지금 와서 보면 우리나라 전체에 거짓말쟁이가 참 많지. (웃음) 결혼하고 애 둘 낳고 결심한 건 딱 하나였어요. 우리 애들에게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말자. 진실하게 살자….”
기자가 ‘여권에서는 녹음파일과 관련해 이 선생님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있지 않으냐’고 묻자 “진짜 거짓말쟁이는 정치인들인데 뭐… 신경 안 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가 거짓말쟁이면 조 기자가 기사에 ‘이병철은 사기꾼’이라고 쓰면 되잖아요”라고 했다.
그때 이병철씨에게 소셜미디어에 글 올리는 횟수를 줄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기자가 이씨 소셜미디어 때문에 낙종한 탓(?)도 있지만, 이는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소셜미디어는 이병철씨의 유일한 낙(樂)이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사람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로 인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여과 없이 담기기도 한다.
이병철씨의 경우가 그랬다. 이씨의 소셜미디어 계정엔 이재명 후보에 대한 분노는 물론, 여야(與野)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글이 다수 실려 있다. 기자는 그 점이 걱정됐다. 그에 대해 이병철씨는 이렇게 말했다.
“조 기자도 나 봐서 알겠지만, 내가 좀 격해지는 구석이 있기는 해. 열 받는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그걸 (소셜미디어에) 다 털어놓는 게 사실이야. 근데 이거 하나만 알아두라고. 내가 뻥(거짓말)은 안 써. 그래도 명색이 법대 나온 사람인데 똥오줌 분별은 한다고.”
그런 성격 덕분일까. 이병철씨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당당했던 모습을 기자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변호사비 사건 때문에 수원지검에 소환됐잖아. 그때 수사 검사가 이○○ 부부장 검사였는데, 그 사람한테 ‘녹화되는 곳에서 조사받겠다’고 했어요.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조사받는 내용 이재명 측에 다 넘어가냐’고 물었죠. 이 검사가 깜짝 놀라면서 ‘그건 불법입니다’라고 해. 그래서 내가 ‘지검장님은 이재명 후보 후배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검사가 더 이상 대답을 안 하더군.”
변호사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수원지검 검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낸 신성식씨다. 신성식 검사장은 이재명 후보의 중앙대 법대 후배다. 이병철씨는 조사 과정에서 추가 녹음파일의 존재를 검사에게 알렸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내가 검사에게 ‘지금 말하는 건 진술서에 넣지 마라. 검찰에 제출한 것 이외에 또 다른 녹음파일이 더 있다. 거기엔 수원지검 검사도 등장한다’고 말했어요.”
이씨가 말한 ‘수원지검 검사’라는 건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A 변호사가 이재명 후보 측 사건(혜경궁김씨)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 관할 검찰청이던 수원지검을 상대로 일종의 ‘힘’을 썼다는 뉘앙스였다. 참고로 A 변호사는 수원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정의감 넘치고 순수했던 이병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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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씨 빈소에 걸린 사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기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진=《월간조선》 |
“이재명한테 고발당한 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 그거 때문에 죽은 거야! 살려내.”
“민주당 X들은 어떻게 조화(弔花) 하나 안 보내지? 나쁜 X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윤석열, 안철수는 조기(弔旗)라도 보냈더만.”
“(울먹이며) 이병철씨는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냐. 연초에 뵀는데… 매운 음식도 잘 드시고 식사도 잘하셨단 말이야.”
1월 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씨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주로 고혈압과 동맥경화 같은 심장 질환에서 나타나는 ‘대동맥 박리와 파열’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증 이상의 동맥경화 증세가 있었고, 심장이 보통 사람의 두 배가량 되는 심장 비대증을 앓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된 자·타살이 아닌 자연사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빈소를 지키는 동안, 타사(他社) 기자 한 명이 기자에게 ‘이병철씨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왔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좀 다혈질이긴 했지만 정의감 넘치고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불의(不義)를 못 참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 같습니다. 이재명 후보를 누구보다 심하게 비판했지만, 아주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민주당에 대한 애정도 넘쳤고요.”
안타깝게 세상을 뜬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 여기서도 그러했듯이 하늘에서도 남 눈치 안 보고 평소 즐기던 소셜미디어를 마음껏 향유(享有)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굴절되고 오염된 이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줬으면 한다. 만약 그러하여 얻는 귀중한 정보가 있다면, 그땐 꿈에라도 나타나 기자에게 가장 먼저 건네주길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