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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준비 중인 ‘큰손’ 장영자가 옥중서 보낸 서한

39년이 흘렀음에도 끝나지 않은 5共과 장영자의 惡緣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chosh76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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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刊朝鮮》에 보낸 서한엔 이순자씨 비난 일색… “나와 남편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 유죄 선고 받은 ‘800만 엔’ 보유 사실 부인한 장영자
⊙ 난삽하고 문법 안 맞는 장영자의 서한 내용 검증
⊙ 1981년 허삼수와 장영자가 만났다? “설득력 떨어져”
⊙ 전두환 전 대통령 측 “장씨 주장은 일고의 가치 없는 허위”
구권화폐 사기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장영자씨가 2000년 5월 19일 서울지검 서부지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조선DB
  지난 5월 중순 《월간조선》 편집부로 하나의 소포가 배달됐다. 발송인 난에는 ‘장영자 여사님’이라고 써 있었다. 장영자(張玲子·77).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82년, 38세 나이로 6000억원대 어음사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큰손’ 장영자가 옥중(獄中)에서 보낸 우편물이었다.
 
 
  장영자가 보내온 A4 용지 뭉치
 
장영자씨가 《월간조선》 편집부로 보낸 서한 중 서신 두 장. 사진=《월간조선》
  소포 내용물은 A4 용지 47장 분량의 서류 뭉치였다. 이 중 앞의 2장은 장영자가 친필로 쓴 서신이었다. ‘월간조선 편집국장님’으로 시작하는 서신은 장영자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李順子·82)씨를 상대로 벌인 소송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중 일부를 발췌해본다.
 
  〈… 전두환의 처 이순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단지 명예훼손 문제 이전에 그녀의 범죄를 공개하여야 남편 이철희와 그의 처인 장영자의 인생의 정의(正義)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순자 관련한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편집국장님께 도움을 청하려고 이 서신을 씁니다.…〉
 
  장영자씨는 1996년 8월호 《월간조선》에 게재된 이순자씨 인터뷰 기사를 보내달라고 했다. 장씨는 “대단히 죄송한 일이오나 이 인터뷰 내용물이 저에게는 증거물로 반드시 필요하오니 ○○○ 변호사님에게 보내주실 수 없으실런지요”라고 부탁했다.
 
  그는 또 “저는 불의(不義)와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는 것을 정신적 유산으로 남기고자 합니다”라며 “거창하게 정의씩이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시다면, 이순자에게 공개적으로 보낸 서한을 검토해주시지요”라고 말했다. 장영자씨가 말한 서한(그가 보내온 소포)은 이순자씨에게 보내는 것들로, 총 9편으로 구성돼 있다.
 

  그 서한을 살펴보기에 앞서 시곗바늘을 돌려 1982년 발생한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부터 알아보자.
 
  1982년 5월 4일, 사채시장에서 ‘큰손’으로 일컬어지던 장영자씨와 육사 2기로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차장보와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 국회의원을 지낸 남편 이철희(2014년 사망)씨가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같은 해 5월 20일 검찰이 발표한 사건 전모에 따르면,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자기 자본율이 약한 건설업체와 접촉해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제공해주는 대신 담보조로 대여액의 2배에서 9배에 달하는 액수의 어음을 받았다. 이 부부는 그 어음을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자금을 조성하는 한편, 주식 투자를 하는 등의 수법으로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6404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어음사기 행각을 벌였다. 이런 식으로 이 부부가 사취(詐取)한 돈은 1400여억원이었다.
 
  ‘건국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란 불명예를 얻은 이 사건으로 인해 정계·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장영자는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취지의 말로 항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음이 한 바퀴 돌았을 때 어음을 발행한 기업들은 부도를 내며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철희·장영자 부부가 장영자의 형부이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 그리고 이순자씨 숙부인 이규광(육사 3기·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씨를 범죄 행각에 이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으로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물론 이규광씨, 그리고 은행장 2명과 공영토건·일신제강 등 중견 기업인 등을 포함해 모두 32명이 구속됐다.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으로 인해 전두환 정권은 도덕성에 큰 치명타를 입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5월 21일 국무총리와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비롯한 11개 부처 장관을 교체했고,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총재 자격으로 민정당 당직 개편도 단행했다. 당정(黨政) 고위직을 개편해야 할 만큼 사건의 여파가 컸음을 보여준다. 대통령 처삼촌까지 연루된 것 역시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순자씨에게 소송 제기한 장영자
 
2019년 3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 들어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 사진=조선DB
  장영자씨는 현재 네 번째 복역 중이다. 1982년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10년 만인 1992년 가석방된 그는 출소 2년 만에 140억원대 차용금 사기로 또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4년 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장씨는 2000년 220억원대 구권(舊券)화폐 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15년을 복역했다.
 
  출소한 지 7개월 만에 또다시 사기 사건에 연루됐다. “남편 명의 삼성전자 주식을 현금화해 재단을 만드는 데 돈이 필요하다”며 지인들을 속여 총 6억200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네 번째 옥살이를 하는 장영자씨는 왜, 어떤 이유로 이순자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걸까. 2020년 7월 20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장씨가 이순자씨를 상대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서울중앙지검에서 서울동부지검을 거쳐 이송받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장영자씨 측은 이순자씨가 2017년 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작은아버지(이규광)의 처제인 장영자가 내 이름을 내세워 남편 이철희씨와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취지로 기술하는 등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순자씨는 자서전에서 사건 당시 장영자씨의 존재를 몰랐고, 장씨 부부의 사기 행각으로 피해를 봤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장씨는 고소장에서 “(범행 과정에서) 이씨를 언급한 적이 없다”며 이씨 자서전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11월, 서대문경찰서는 이순자씨에게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장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장영자씨는 이순자씨를 상대로 낸 소송이 무위(無爲)로 끝나자 이를 설욕하기 위해 《월간조선》에 서한을 보낸 듯하다. 동시에 이순자씨 관련 자료 등을 수집해 자서전 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영자씨가 작성한 서한 대부분에는 이순자씨에 대한 원한이 묻어 있다. 장씨는 시종일관 이씨를 ‘이 부인(李 婦人)’이라고 호칭했다. 장영자씨가 이순자씨에 대해 언급한 내용 중 일부다.
 
  〈▲장영자 사건이 된 지(터진 지) 34년이 지난 2017년도에 새삼스럽게 이 부인(이순자씨)이 출간한 자서전 내용이 상상력도 풍부하시지… 허위 사실들을 그렇게 뻔뻔하게 늘어놓을 수 있습니까?
 
  ▲불의한 폭력으로 국가권력을 잡은 이 부인 부부(전두환·이순자)에 의해서 남편 이철희와 나는 반평생을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부인이 연희동 궁전에 살고 있는 동안 내내 오늘까지도 나는 지옥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 부인이 거짓말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이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순자가 말하는 장영자 사건
 
이순자씨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
  장씨는 이순자씨를 비난하며 이씨가 본인의 자서전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순자씨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 327~336쪽에는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이 길게 언급돼 있다. 그중 이순자씨가 장영자씨에 관한 세간(世間)의 소문을 처음 인지한 대목을 자서전에서 옮겨본다.
 
  〈1982년 한 친척으로부터 참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내 측근이라고 사칭하는 한 여자가 서울 한복판의 특급호텔 한 층을 세내어 쓰면서 큰 규모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간 풍문에 따르면 내가 그녀를 통해 온갖 사치품들을 구해다 쓰고 사적인 심부름도 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풍문의 여주인공은 나의 작은아버님의 처제이며 이름은 ‘장영자’라는 것이었다. 장영자라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분명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첫 느낌이었다. 친척이 돌아가고 난 뒤 나는 한참 동안 장영자라는 이름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순자씨는 “한참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야 나는 겨우 장영자라는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며 아래와 같이 글을 이어나갔다.
 
  〈언젠가 친정 아버지(이규광씨의 형 이규동씨)의 심부름으로 작은 댁(이규광씨 집)에 들렀을 때 작은어머님(장영자의 언니) 여동생(장영자씨)이 막내 사촌 동생 돌봐주러 그 집에 와 있었다. 그녀는 단발머리에 얌전해 보이던 처녀로 당시에는 ‘장영자’라는 이름으로가 아니라 그냥 ‘아무개 이모’로 소개를 받았던 것 같다.〉
 
 
  이순자 “나도 (장영자) 사기 행각의 피해자”
 
  이씨는 “소문의 충격성 때문에 무력감이 몰려왔다”며 “나는 남편에게 송구하다는 말과 함께 내가 소문을 전해 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제발 좀 더 확실한 것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고 썼다. 전두환 대통령은 경찰 계통의 보고를 받았다며 이순자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다고 한다. 이순자씨 자서전에서 인용한다.
 
  〈보고에 의하면 장영자 부부는 경영상 자금 악화로 곤란을 겪고 있는 기업체들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유인해서 거액의 어음을 발행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해당 기업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히고 자신들은 엄청난 이득을 챙겨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을 유인하고 안심시키기 위해 최고위층, 특히 청와대의 특별한 비호를 받고 있는 듯 적극 위장해왔다는 것이다.〉
 
  이씨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며 “사실상 나도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한 여자의 대담한 사기 행각의 피해자였다”고 썼다. 이순자씨는 또 사건이 종결된 후 “갑자기 온갖 비난의 여론이 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이씨는 자신이 장씨의 범행에 의도치 않게 이용된 ‘피해자’라는 식으로 기술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이순자씨는 《월간조선》(1996년 8월호)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내보였다. 이씨가 인터뷰에서 밝힌 장영자 사건 관련 대목이다.
 
  〈― 역대 영부인 중에서 이 여사께서는 좋은 점수를 못 받았던 것 같습니다.
 
  “… 결정적이었던 것은 장영자 사건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 여자는 친정 쪽 작은아버지 처제인데 그 여자의 이미지가 제게 다 옮겨 붙어버렸어요. 그 여자를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 장영자 사건은 어떻게 해서 불거져 나왔습니까.
 
  “… 하루는 제 여동생이 와서 ‘장영자가 롯데호텔의 한 층을 모두 차지해 굉장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데 언니 한번 알아봐야지. 그냥 두면 안 되지 않느냐. 막 설치고 다니는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하(전두환 대통령)께 말씀드려 조사에 착수하게 된 겁니다. 조용하게 처리했으면 좋은데 미숙했던 것이지요. 청와대에 들어간 지 1년밖에 안 됐으니까요. 사실 저와 무슨 관계가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처리했겠어요.”〉
 
 
  장영자, “全-李 부부 일 봐줬다”
 
이철희·장영자 부부 구속을 보도한 《조선일보》 1982년 5월8일자 기사. 사진=조선DB
  이에 대해 장영자씨는 《월간조선》에 보낸 서한에서 관련 내용을 반박했다. 장씨는 자신이 전두환·이순자 부부 관련 일을 봐줬다고 주장했다.
 
  장씨가 “이 부인을 형부(이규광)를 통해 알게 돼 형부의 부탁으로 이 부인 부부의 문제 등을 해결해주었다”는 것이다. 이순자씨가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과 달리 장씨 자신은 이씨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취지다. 하지만 장씨가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어떤 일을 봐줬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장씨는 또 “1979년 10·26사태가 발생하기 사흘 전인 10월 23일 서울 명동 소재 강○○ 의상실에서 우연히 부닥쳐 딱 한 번 직접 만나본 것 외에는 수십 년간 왕래가 전혀 없었다”고 서한에 썼다. 이순자씨도 장씨와 ‘안면이 없었다’고 밝힌 것처럼, 장씨 역시 이씨를 자주 만난 건 아닌 듯하다.
 
  장씨는 남편 이철희씨와 자신이 1982년 외국환관리법으로 구속된 게 억울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장씨는 1982년 4월 27일, 검찰이 장영자씨 부부가 살던 서울 청담동 집을 압수수색하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일부는 기자가 익명 처리-편집자 주)
 
  〈검찰총장은 대검 중앙수사부 ○과장 성○○ 검사에게 지시하여 청담동 소재 우리 집을 1982년 4월 27일 자정에 수사관들을 자그마치 20여 명을 데리고… 물론 가택수색 영장 따위는 있을 리 만무한 전두환 대통령→검찰총장→대검 중수부→성○○ 주임검사. 가택수색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가택수색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장영자씨는 자신과 남편 이철희씨가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된 게 법리와 어긋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 논리는 이철희씨가 ‘외화 프리(free)’였다는 것이다. 즉 외환을 거래하는 데 있어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는 의미다. 장씨 주장을 서한에서 옮겨본다.
 
 
  장영자, ‘800만 엔’ 소지는 부인했지만…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으로 구속된 장영자씨의 형부이자 이순자씨의 숙부인 이규광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 사진=조선DB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16년을 중앙정보부 해외담당을 해온 남편 이철희의 3~4공(共) 시대 신분으로는 외화 프리였습니다. 남편의 직접 해명을 남편 생전에 받아놓지 못한 것이 속상합니다마는 해명이 가능한 부끄러움이 없는 외화였고 단지 내가 그 직전에 일본을 다녀오면서 친정 아버지의 절친으로 일본 교토에서 성공한 스즈키 게이 아저씨가 엔화 800만 엔을 주어 받았던 것이 외환관리법 저촉이라면 그 벌은 받아야지요.〉
 
  장씨는 이어 “엔화 800만 엔을 소지한 것은 성○○ 주임검사도 남편의 이전 신분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외화가 든 가방을 들고 우리 부부는 대검으로 연행케 되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이 800만 엔에 관한 내용이 있다.
 
  〈피고인 장영자는 1981년 6월 일자 불상경 서울 중구 명동 골목에서 성명 불상 암달러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일화 800만 엔을 1982년 4월 29일까지 이철희의 집 2층 방에 은닉하여서 취득한 외화를 10일 이내에 정부기관 또는 금융기관에 매각하여야 할 집중 의무를 위반하고….〉
 
  여기서 ‘집중 의무’란 특정 금액 이상의 외화를 소지할 경우, 특정 기간 이내에 예치 또는 매각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재판부 역시 장씨 부부가 800만 엔을 소지한 게 외국환관리법 위반이라고 봤다. 장씨는 서한에서 ‘800만 엔’과 관련해서는 범죄 사실을 부인했지만, 핵심인 어음사기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5공 실세’ 허삼수 만났다고 주장한 장영자
 
  장영자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쯤인 1981년 3월경, 전두환 정권 실세였던 허삼수(許三守) 청와대 사정수석(전 국회의원)이 자신을 불러 서울 삼청동 안가(安家)에서 허삼수 수석을 만났다고 한다. 장씨는 서한에서 “왜소하고 꾀죄죄해 보이는 40대 정도의 남자가 씩씩한 걸음걸이로 들어와 어깨를 젖힌 채 오너 소파에 거만하게 앉았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장씨의 서한에서 옮긴다.
 
  〈허삼수: 뭘 그리 쳐다보십니까. 사람 처음 보십니까.
 
  장영자: 무슨 일로 저에게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하시는지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삼수: 우리 애들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입니까?(장영자를 데리러 온 청와대 직원들이 실수를 했느냐는 표현인 듯-기자 주)
 
  장영자: 아닙니다. 아녜요.〉
 
  장영자씨 서한에 따르면, 허삼수 수석은 ‘이 사회에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 나는 부패한 권력과 사회 부조리를 척결하는 데 신명을 바치겠다. 이 나라에 반드시 정의사회 구현을 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장씨는 허 수석이 “설교하듯 일방적으로 떠들어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다.
 
  〈장영자: 잠깐만요. 지금 저를 교육시키려고 이 아침에 불러온 건가요.
 
  허삼수: 사모님 그런 게 아니고요. 보안사령관을 두 번 역임한 이철희 선배님을 존경한다 아입니까. 저희 보안사에서는 방첩 계통의 전설 아니신교.
 
  장영자: 그렇십니꺼? 그라몬 그 존경하는 선배님을 모셔올 일 아닌교? 우째서 그 마누라를?〉
 
  장씨는 “내가 본디 좀 짓궂은 데가 있는데 그 짓궂음이 나도 모르게 발동돼 같은 경상도 사투리로 대꾸하자 가무잡잡한 그의 얼굴에 싱긋 미소가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장씨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허삼수 수석에게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라는 쾌활한 말과 함께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소한 이 사내가 남편과 내 운명에 칼질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 시간에는 신(神)도 모르셨을 것 같다”고 서한에 썼다. 장영자씨는 자신과 남편 이철희씨가 구속되는 데 있어, 허삼수 수석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영자, 옥중에서도 에너지 넘친다”
 
  장영자씨 서한을 읽어보면, 난삽하고 문법(文法)이 안 맞는 부분이 많다.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의 배경과 이순자씨와의 관계를 모르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따라서 이 서한 내용의 진위(眞僞)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장영자씨 입장과 최근 근황을 들어보기 위해 장씨의 전(前) 법률대리인인 A 변호사와 연락을 취했다. A 변호사는 “장영자씨는 옥중에서도 에너지가 넘친다”고 전했다. 그의 말이다.
 
  “장씨가 편지 쓰는 걸 좋아해 외부인들과 서신 교환을 자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보통 옥중에 있으면 의기소침하기 마련인데 이분(장영자)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기운이 넘치는 것 같다. 때로는 저에게 책도 보내준다. 최근엔 한자검정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그만큼 의욕이 넘치는 분이다.”
 
  A 변호사는 “이순자씨가 자서전에 쓴 장영자씨 관련 내용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그런데 장씨는 그 내용에 대해 아주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한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해 A 변호사는 “장영자씨를 직접 인터뷰해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기자가 가장 궁금한 대목은 허삼수 전 사정수석이 장영자씨를 만났는지 여부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건 그간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장씨의 기억대로 두 사람이 만났다면, 전두환 정권은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이 터지기 1년 전 이미 장씨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장영자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허삼수 전 청와대 사정수석. 사진=조선DB
  기자는 허삼수 전 수석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허삼수 전 수석과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B씨는 “허 전 수석은 오래전부터 연희동(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행사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며 “고령이라 건강이 좋지 않아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장씨가 허 전 수석을 만났다는 주장에 대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B씨의 말이다.
 
  “장씨가 허삼수 전 수석을 만났다고 한 1981년 3월은 5공화국 정부가 막 출범했을 때이다. 이때 허삼수 수석은 5공화국 개혁정책 입안(立案)에 정신이 없었다. 새 공화국 출범에 따른 정치 현안은 물론 공무원 개혁, 과외금지로 대표되는 교육정책이 수립되던 시기다. 그게 다 허삼수 전 수석의 손을 거쳤다. 그 바쁜 시기에 (허삼수 전 수석이) 한가하게 장영자씨를 만났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 대(對)언론 담당을 맡고 있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도 본지 통화에서 “장영자씨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라는 입장을 보였다. 민정기 전 비서관의 말이다.
 
  “몇 번의 사기 사건으로 구속된 그(장영자)의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장씨가 이순자 여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도 무혐의 판단이 내려졌다. 이쯤 되면 장씨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장영자)의 주장을 언론이 다뤄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끝나지 않은 5共과 장영자의 惡緣
 
  사실 ‘전두환 신군부’는 장씨 존재를 모르지 않았다. 신군부가 실권을 잡은 1980년 중순경, 권력의 정점에 있던 보안사령부는 장영자 부부에 관한 첩보를 입수했다.
 
  보안사는 보각행(普覺行)이란 법명을 가진 장영자가 군 부대 사찰에 거액을 쾌척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장씨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특히 장씨가 해당 부대장들과 특별한 인연이 없음에도 거액을 기부한다는 점에 의문을 가졌다. 대공(對共) 용의점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이러한 사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가안전기획부에도 전달이 됐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만약 이때 장씨를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장영자씨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영자씨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씨 자서전이 출간되면 다시 한 번 세인의 관심이 모일지 모른다. 5공 인사들은 장영자씨 주장이 허위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게 분명하다.
 
  5공 정권과 장영자씨의 악연(惡緣)은 39년이 흘렀어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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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ic7800    (2021-07-07) 찬성 : 0   반대 : 0
장영자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었도 상습 사기꾼짓을 한 사기꾼인데 5공 개무시의 장영자 이용하는 한심한 월간조선. 지금 운동권 출신이 대통령 총리 부총리 2명 행자부장관 민주당 당대표 원내내대표인 끔직한 대한민국 만든 주범이 언론입니다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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