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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도 ‘청와대 용산 이전’ 검토했었나?

“이해찬 총리, 사석에서 (靑 용산 이전) ‘설득력 있다’고 말해” (이계안)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chosh76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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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 정부가 추진한 ‘신행정수도 건설’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해 ‘靑 용산 이전 검토설’ 나와
⊙ ‘靑 용산 이전’ 강력 주장한 이계안 전 열린우리당 의원
⊙ 이계안 전 의원이 ‘靑 용산 이전’ 주장한 까닭
⊙ 본지가 접촉한 盧 정부 靑·官·軍 인사 상당수 “금시초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용산 이전’을 선언하자, 유력 정치권 인사 A씨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노무현 정부도 한때, 반환되는 서울 용산 미군기지 부지로 청와대를 이전하려고 검토했었다.”
 
  노 대통령이 용산 미군기지 부지로 청와대 이전을 검토했다는 증언은 그간 단 한 번도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나온 적이 없다. 이 증언은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용산 이전 결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윤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은 정국 최대 이슈이자,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가늠할 주요 현안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2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할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이 역사(役事)를 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형태로 검토(또는 추진)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역사(歷史)를 다시 써야 할지 모르는 큰 ‘뉴스’가 된다. 따라서 명확하고도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A씨가 갖는 대외적인 위상(位相)도 고려해봤다. A씨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없는 사실’을 지어낼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월간조선》은 A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말이 사실인지 추적 취재에 나섰다.
 
 
  ‘靑 이전’ 공언한 전직 대통령과 대선 후보들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이 2019년 1월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청사 이전 보류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위원회는 “대통령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는 것은 어렵다고 결론지었다”며 “광화문 재구조화 작업이 마무리되면 다시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취재에 앞서 청와대 이전과 관련한 그간의 경과를 살펴보자.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다수의 역대 대통령이 ‘탈(脫)청와대’ 선언을 했었다.
 
  그 포문을 연 이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2년 대선 후보 시절, 군사독재와 결별하겠다는 상징적인 조치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집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대신 취임 후, 청와대 안가(安家)를 허물고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됐던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1998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와 과천 제2정부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경호, 비용 등의 문제로 백지화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또 청와대 경내에 있는 칠궁[七宮·조선 왕들의 생모 7인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을 개방하는 한편, 청와대 관람 허용 대상도 단체 관람객에서 개인·외국인 관람객으로 넓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 초반, 서울시 청사 별관으로 집무실, 비서실, 경호실 이전을 검토했지만 비용과 국회 승인 문제 등으로 중단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를 ‘광화문대통령시대’ 준비자문위원으로 임명하는 등 집무실 이전 공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이유 또한 경호, 비용 문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광화문 대통령’ 공약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 후보들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맞붙었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청와대 들어가서 1~3년 지나면 감각이 변하더라”며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동영 후보는 “구중궁궐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니까 시민들의 생활감각과 유리된다. 그래서 ‘청와대에 들어가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현재 한남동의 육·해·공군 참모총장 관사가 비어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현재 윤석열 당선인이 (잠정적으로) 대통령 관저로 한남동 참모총장 관사를 개조해 이용하겠다는 것과 거의 유사한 맥락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경쟁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이회창 후보는 “민의(民意)와 동떨어진 곳에 대통령이 앉아서 국민의 뜻이 전달되지 못했다”면서 “새 정부는 국민 속에 다가가는 정부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청와대는 영빈관으로 하고 집무실을 시내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靑 지방 이전’ 공약한 노무현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신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린 뒤 엘리베이터에 타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그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보였는지, 그 약사(略史)를 복기해보자. 일반인들의 뇌리에선 잊혔을지 모르지만,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전직 대통령이다. 이는 그의 발언을 통해서도 금방 확인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02년 11월 8일, 그는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을 담은 이른바 ‘수도권 공약’을 발표했다.
 
  노무현 후보는 청와대·용산 미군기지·동대문운동장 등 ‘3대 이전 사업’을 실현해 서울 주요 시설물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노 후보는 “청와대를 지방으로 이전해 박물관과 시민공원을 조성하고 용산 미군기지를 옮겨 그 자리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시민공원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노무현 후보는 ‘수도권 공약’ 발표 두 달 전인 9월 29일, 서울 여의도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당사 앞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연설에서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고 공언했다.
 
  노 후보는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특히 청와대 일원과 북악산 일대를 서울시민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서울 강북 지역의 발전에 새 전기(轉機)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지방 이전’을 공약한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서 눈여겨봐야 할 단어는 ‘지방’과 ‘용산 미군기지’다. 먼저 ‘지방’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춰보자.
 
  노무현 대통령 임기 전반에 이슈가 됐던 하나는 바로 ‘신(新)행정수도’ 건설이었다. 신행정수도를 조성해 정부 부처뿐 아니라 청와대까지 이전해 권력과 행정이 집중돼 있는 수도권의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노림수였다’는 시각도 있다. 외견상 ‘수도권 과밀화 억제’ ‘국토 균형발전’ 등을 내세웠지만, 여권(與圈) 내부에서는 충청권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와 별개로 신행정수도 건설은 차근차근 법적 절차를 밟아나갔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대통령 산하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을 발족시켰다. 그해 12월 29일 국회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른바 신행정수도법)을 통과(찬성 167, 반대 13, 기권 14표)시켰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상당수도 찬성표를 던졌다. 한나라당 역시 충청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터라, 야당이었음에도 이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당 법안은 2004년 1월 16일 공포됐다. 동법(同法)에 따라 8월 11일 정부(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일부를 신행정수도의 입지(立地)로 결정했다.
 
  노 대통령의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이내 제동이 걸렸다.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위헌(違憲)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유명한 ‘관습헌법’이란 말이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우리의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하여온 헌법적 관습이며 우리 헌법조항에서 명문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명하고 헌법에 전제된 규범으로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며 신행정수도법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盧 정권의 ‘야심작’ 용산 미군기지 반환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건설과 함께 관심을 갖고 추진했던 사안 중 하나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용산기지 이전에 10조원이 든다고 하는데 10조원을 들여서라도 이전을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용산기지 이전에 적극적이었다.
 
  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한미(韓美) 양국은 용산 미군기지 반환에 따른 지루한 협상을 이어갔다. 이전 비용과 새 미군기지 부지 마련, 양국 간의 정치적 입장 차 등으로 인해 3년가량 밀고 당기기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용산 미군기지 전체 부지 공원화’를 주장하는 서울시와도 마찰이 있었고, 미군기지 부지에 상업시설을 지으려는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의 반발도 있었다.
 
  이러한 난관을 뚫고 마침내 2006년 8월 2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앞 광장에서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이 개최됐다.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되는 터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원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선포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 검토 지시를 내린 지 18년 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포식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대도시 중심부에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80여만 평의 대지가 백지(白紙)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은 없다”며 “서울 한복판에 80여만 평의 녹지공원이 생기면 용산은 세계의 용산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선포식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용산기지 공원화는 서울시가 아닌 국가가 관리하게 되고,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완공 예정으로 잠정 계획됐다.
 
 
  盧 정권과 서울시의 갈등
 
2007년 11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용산 미군기지 공원화 관련 면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DB
  당시 선포식에는 마땅히 참석해야 할 오세훈 서울시장이 불참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용산 미군기지 부지 공원화를 둘러싼 노무현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 때문이었다. 서울시와 환경·시민단체는 미군기지 부지 전체를 녹지 공간, 다시 말해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선포식 당일 “정부는 공원 부지 일부를 주상복합아파트 등 주거시설과 상업시설 등으로 용도변경·매각·개발할 여지를 두고 있는 조항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을 강행하고 있다”며 “반환되는 미군 용산기지터 81만 평 전체를 온전한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서울시민의 뜻을 무시한 용산기지 개발 선포식이기 때문에 서울시장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건설교통부는 용산 미군기지 80여만 평 중 5만8000평을 복합시설 용도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서울시의 뜻과 상충되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2006년 12월 ‘용산 민족·역사공원 조성 및 주변 지역 정비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제정안에 따르면 용산 미군기지 가운데 메인포스트(24만 평)와 사우스포스트(57만 평) 81만 평은 공원으로, 유엔사·수송부·캠프킴 등 주변 산재기지는 상업·업무·주거·문화 등 복합시설 조성지구로 각각 조성하도록 결정했다.
 
  정부는 특별법안 가운데 서울시와 갈등을 빚은 ‘공원조성지구 내 용도 지역 등의 변경’(제14조) 조항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14조는 건설교통부 장관이 부지 용도 변경을 가능하게 한 조항으로 정부와 서울시가 가장 대립했던 조항이다. ‘용도 지역 변경’ 조항의 삭제를 요구한 서울시와 의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로 의결한 것이다.
 
  용산 미군기지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현재 단계적으로 우리 정부에 반환되고 있는 상태다. 이곳에 주둔했던 미군은 경기도 평택 등지로 재배치됐다.
 
 
  “용산 시대가 盧의 꿈… 靑 용산 이전은 들은 바 없어”
 
  용산 미군기지 부지 일대는 잘 알려진 대로 요지 중의 요지다. 서울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도심과 강남을 오가기 수월하다. 용산구 관내에는 총 9개의 지하철역이 있고, 서울역과 용산역 등 KTX 관련 역(驛) 또한 용산구를 소재지로 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용산구는 교통에 있어 최적의 입지로 꼽힌다. 한강 조망권까지 확보하고 있는 곳 역시 용산이다.
 
  노무현 정부는 앞서 본 대로 지방으로 청와대 이전을 추진했지만,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로 이전은 좌초됐다. 그 와중에 용산의 노른자위 땅 80여만 평을 차지하고 있던 미군의 재배치가 결정돼, 미군기지 터가 비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노무현 정부 입장에서는 용산으로의 청와대 이전을 충분히 검토해 봄직하지 않았을까. 이 추론과 가설을 토대로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핵심 인사들을 상대로 취재에 나섰다. 대상은 청와대 핵심 인사를 비롯해 미군기지 반환에 관여했던 외교부 고위 인사와 군(軍) 관련 인사들이었다.
 
  먼저 A씨에게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용산 이전 검토’를 누구를 통해 들었는지 확인했다. A씨는 “노무현 정부 전반기에 기획예산처 장·차관, 후반기에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변양균씨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변양균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용산 미군기지 이전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 변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용산 시대를 여는 게 꿈이었다”며 “노 대통령은 140년 동안 수도 서울에 외군(外軍)이 주둔하고 있던 용산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용산 이전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가 청와대 용산 이전을 검토했었나’란 질문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접촉한 盧 정부 핵심 인사 모두 “금시초문”
 
헬기로 내려다본 용산 미군기지 전경. 사진=조선DB
  연세대 총장으로 재직하다가 청와대 비서실장(2004년 2월~2005년 8월)으로 발탁된 김우식 카이스트(KAIST) 이사장과도 접촉할 수 있었다. ‘청와대 이전’이라는 중대 사안인 만큼 비서실장을 지낸 김우식 이사장이 혹시 알고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이사장의 말이다.
 
  “청와대 용산 이전 이야기는 내 (비서실장) 재임 중에는 단 한 번도 언급조차 된 적이 없습니다. 공원 조성 외에는 다른 얘기는 나오지 않았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실장인 내게 ‘용산 미군기지 이전 대책을 책임지고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 관계 부처 차관 회의를 열었습니다. 거기서도 청와대 용산 이전에 관한 의견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2003년 2월~2004년 1월)을 지낸 나종일 전 우석대 총장도 김우식 전 비서실장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나종일 전 총장은 “내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임할 때 그런(청와대 용산 이전)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종일 전 총장과 같은 시기, 청와대 국방보좌관으로 일했던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은 “당시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면서도 “그곳으로 청와대를 이전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장관(2003년 2월~2004년 1월)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2006년 1월~2006년 11월)과 외교통상부 장관(2006년 12월~2008년 2월)을 지낸 송민순 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외교통상부 북미국장(2004년 2월~2006년 2월)으로 용산 미군기지 이전 실무 협상을 진행했던 김숙 전 유엔 대사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말기 국방부 장관(2006년 11월~2008년 2월)을 지낸 김장수 전 주중대사도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고 답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2006년 5월~2007년 8월)과 국무조정실장(2007년 8월~2008년 2월)을 지낸 윤대희 신용보증기금이사장도 “(노무현 정부 당시) 용산 미군기지 이전 얘기는 활발히 나왔지만 청와대 (용산) 이전 관련 논의는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
  “청와대 용산 이전 제안한다”

 
이계안 전 열린우리당 의원. 사진=조선DB
  ‘청와대 용산 이전’에 대해 알 만한 위치에 있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사실상 ‘모른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취재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흥미로운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입당,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계안(현 2.1연구소 이사장)씨의 국회 대정부 질문 회의록이 그것이다.
 
  이계안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6년 2월 2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에게 ‘청와대 용산 이전’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저는 2월 14일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할 것을 제안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청와대가 국민과 유리된 채 산속에 웅크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상징인 청와대를 오랫동안 외국 군대의 주둔지였던 용산으로 옮긴다면 용산 속의 청와대는 민족역사공원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되고 역사문화 관광에 미치는 효과 또한 크다고 생각합니다. 즉 기존의 청와대 건물을 대통령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고 인왕산과 북악산을 서울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주며, 서울 성곽을 복원하여 4대문 안을 역사가 숨 쉬는 완전한 문화 도심으로 구성함과 아울러 청와대 역시 미국의 백악관처럼 그 자체를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만든다면 용산 속의 청와대는 매우 훌륭한 관광 중심지가 되고, 이에 따라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찬 총리는 “말씀하신 것처럼 서울을 관광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든다는 취지는 아주 좋으신 생각이라고 판단이 된다”며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 정부에서도 서울에 문화관광을 할 수 있는, 지금 경복궁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 미국대사관하고 문화관광부가 이사를 가면 그 지역하고 경복궁 일대를 중심으로 해서 고궁(古宮)을 잘 즐길 수 있는, 문화관광 특성을 살리는 그런 것으로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고, 또 수요에 비해서 문화 공연 공간이 좀 부족한 도시입니다. 그런 시설도 더 확충하는 것으로 해서, 그런 방향으로 검토를 하고 있고요. 다만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문제는, 정부에서는 그런 것을 아직 검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청와대를 행정수도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그것이 헌재(憲裁) 결정에 의해서 취소된 뒤에는 현재의 위치 그대로 존치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아직 이전 계획을 세우고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해찬 총리, 사석에서 (靑 용산 이전) ‘설득력 있다’”
 
  당시는 이계안 의원이 2006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에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예비 후보로 나서겠다는 선언을 한 직후였다. 이계안 의원은 공약 중 하나로 청와대 용산 이전을 제안한 것이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기자는 이계안 이사장의 입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지난 4월 5일 ▲청와대 용산 이전 공약이 시장 출마를 위한 공약이었는지 ▲아니면 노무현 정부가 청와대 용산 이전을 공식적으로 검토한 사안이었는지 등을 물었다. 이계안 이사장은 본지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제가 서울시장을 준비하며 서울시장 권한 밖의 일이라고 할 청와대 이전 문제를 거론한 것은 나름 사연이 있습니다. 국가 권위의 상징인 청와대를 오랜 기간 몽골, 청(淸), 일제(日帝)는 물론 미국에 이르기까지 숱한 외세(外勢)에 점령당했다가 드디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용산으로 옮기는 게 정치적·역사적 상징성이라는 면에서 설득력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자는 주장을 했습니다. 생태적인 관점에서 보면 북한산, 남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녹지축이 미군이 주둔하는 용산으로 인해 허리가 동강 나 있는 형국입니다.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면 그 동강 난 서울의 생태축을, 생명선을 되살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이계안 이사장은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면 서울의 생태축이 되살아날 뿐 아니라 국민의 접근이 막혔던 청와대와 그 일원, 미군이 주둔함으로 막힌 용산 일대를 국민이 접근 가능하게 돼 새로운 관광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인 서울에 생태축까지 어우러지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매력적인 관광 상품을 창조할 수 있다”며 “청와대 용산 이전이 서울의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릴 탁월한 방책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해찬 총리도 사석에서는 ‘설득력이 있다’고 했던 사안”이라고도 했다.
 
  이계안 이사장의 주장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몰라도 이해찬 총리만큼은 청와대 용산 이전을 제법 긍정적으로 봤다는 얘기가 된다.
 
  노무현 정부 측 핵심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盧) 정부가 용산으로의 청와대 이전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일부 인사들에 한해 용산 이전을 긍정적으로 봤을 수 있다는 정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정부가 탈청와대를 선언했다가 실패를 거듭했다. 이와 관련한 윤석열 당선인의 의지는 확고한 상태다. 이전 정부의 실패 사례를 거울 삼아 혹시 나올지 모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윤 당선인에게 가장 필요할 것 같다. 아예 ‘수도’를 옮기려 했던 노무현 정부도, ‘광화문 대통령’을 공언했던 문재인 정부도 모두 실패했다는 점에서 윤 당선인의 반면교사는 아주 많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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