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대선 당일 美 국무부로 전송한 2개의 서로 다른 ‘이명박 분석 문건’
⊙ 노무현 청와대 관계자,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 후보 당선에 별다른 관심 없는 것 인정
⊙ 이상득 의원, 美 대사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 감각 부족”
⊙ 노무현 청와대 관계자,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 후보 당선에 별다른 관심 없는 것 인정
⊙ 이상득 의원, 美 대사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 감각 부족”
- 미군의 아프간 ‘전쟁일지’기밀 폭로로 주목받은 ‘위키리크스’사이트.
‘과연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영어를 잘하는가?’,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유는?’, ‘시민단체가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한국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관이 지난 5년여간 스스로 던지고 답한 화두다. 질문과 답은 거의 매일 아침 미 국무부장관의 책상 위에 올라갔다. 이 문서가 공개됐다.
위키리크스가 지난 9월 2일 미국 외교 전문(電文) 25만1287건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http://wikileaks.org)는 비영리 언론 조직을 표방하는 폭로 전문 단체다. 호주 출신의 줄리안 어산지가 2006년 설립했다. 작년 4월, 이라크에서 미군 헬기가 민간인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단번에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번에 공개된 미 외교 전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274개 미국 대사관과 미 국무부가 주고받은 외교문서다. 모두 2010년 3월 1일 이전에 작성됐다. 비밀 혹은 2급 비밀(Secret)과 대외비 혹은 3급 비밀(confidential), 그리고 미분류/공무용으로만 사용(Unclassified/for official use only), 일반(Unclassified)으로 이뤄져 있다. Top secret, 즉 1급 비밀 문서는 포함되지 않았다.
주한 미 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은 모두 1980건. 이 중 ‘비밀’은 123건, ‘대외비’는 971건이고, 나머지 886건은 ‘미분류’ 혹은 ‘일반’ 등급이다. ‘비밀’ 문서만 출력해도 A4 기준으로 400여장에 달한다. 문서 작성 시기는 1988년 3월 16일부터 2010년 2월 25일까지이다. 1988년부터 2003년까지는 10건이 작성됐고, 2004년부터 2005년 말까지는 없다. 1970건의 전문이 2006년과 2010년 사이에 집중돼 있다. 즉 노무현 정권 후반기와 현 정부 집권 초반의 전문이 대부분이다.
전문의 소재는 그야말로 ‘각양 각종’이다. ‘대선후보 성향’ 같은 주제는 물론이고 ‘한국 자동차 시장 전망’, ‘한국의 여권 신장’ 등 경제 정보나 사회 문화 분야의 주제도 등장한다. 가장 자주 다룬 주제는 역시 정치와 외교정책, 그리고 북한 문제다.
2006년 이명박, “한국은 여성 대통령 준비 안 돼 있어”
외교 전문 작성 시점이 몰려 있는 2006년과 2010년 사이, 한국 정치판에는 대형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대선’. 서울의 미 대사관은 대통령 선거의 흐름 속에서 부지런히 정보를 생산해 워싱턴으로 보냈다.
2006년 8월 17일에 작성한 대외비 전문의 제목은 ‘한국은 여성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분석했다. 전문 작성 당시 박근혜 의원의 인기는 상종가였다. 석 달 전인 5월 20일, 박 의원은 피습을 당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를 하려던 참이었다. 전문은 우선 여성 대통령 배출에 호의적인 정치 인사의 발언을 인용했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속이자 박근혜의 측근 보좌관인 월터 백(Walter Paik)은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는 여성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에 보다 열려 있다’고 말했다. 대사관의 정치참사가 한국이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을지 묻자,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라고 답했다.”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데 회의적인 인사로는 최재천 전(前) 의원이 소개됐다.
“박근혜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사람들은 여성이 군 통수권자가 되는 게 불편하다고 말한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가 경색되어 있고, 무력분쟁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 상황을 고려할 때 그렇다고. 외교안보위원회 소속이었던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박근혜와 한명숙이 정책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대선후보로 지명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최우선적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중립적인 논평으로 전문을 끝맺었다.
“박근혜는 적법하고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다. 이 사실 자체가 여성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부분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선까지 16개월 남은 상황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직까지 가려면 먼길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첫 번째 난관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로 지명되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 주요 경쟁자이자, 전 서울시장 이명박은 ‘한국은 여성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3월 박근혜와의 회동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것 같다고 얘기해 박근혜를 기쁘게 했다. 그는 역사적 경쟁자(한국과 일본-편집자주)와의 끝나지 않은 경주에서 한국의 또 다른 ‘승리’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손학규, “노무현은 미국과 관계개선 기회 놓쳤다”
손학규 현 민주당 대표는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내의 유력한 ‘잠룡’이었다. 손 대표는 그해 6월 경기도지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100일간의 민심 대장정’에 나섰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해 11월 3일 손 대표와 점심을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사와 점심을 먹고 난 3일 후인 6일, 손 대표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세미나가 열렸다. 거기서 손 대표는 “아무런 자기반성도, 새로운 비전도 없이 실패한 좌파와 망국적 지역주의가 연합해 ‘한나라 대 반(反)한나라’ 대립 전선을 구축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06년 11월 9일에 작성된 대외비 전문은 작성 6일 전인 11월 3일에 점심을 하면서 오간 버시바우 대사와 손학규 대표의 대화를 옮겨놓았다. ‘전 경기도지사 손학규의 북한과 국내 정치에 관한 견해’라는 제목이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손학규씨가 많은 질문을 했다”는 말로 전문을 시작한다. 그의 말대로 손학규 대표는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끊임없이 물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놨다. 손 대표는 자신이 다음 달에 미국을 가는 게 나을지 어떨지 묻기도 했다. 해당 부분이다.
“손학규는 자신이 12월에 미국에 가서 USC에서 강연하고 그 다음에 워싱턴에 가야 하는지 아닌지 견해를 물었다. 한미 관계의 상황을 논의하고 한국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알 기회라며 방문할 것을 지지함. 이는 또한 미국인들이 2007년 대선이 시작하기 전 대선후보 한 명에 대해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손 대표는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손학규는 (핵실험 등의 문제에서) ‘노무현 정권이 우유부단해(reluctance),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고 버시바우 전 대사는 옮겼다. 당시 신임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재정씨에 대해서도 손 대표는 비판의 각을 세웠다. 해당 부분이다.
“손학규는 ‘이재정이 통일 문제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 없으며 전문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통일부가 정책 과정에서 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학규는 송민순을 외교부 장관 내정자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송민순이 국가안보회의로 가기 전에 자신의 경기도 외교정책 보좌관이었다고 말했다. 송민순이 국가안보 보좌관으로서 또 그전에는 6자회담 대표로서 좋은 일들을 많이 했지만, 그가 공적인 발언에 보다 신중해지는 게 좋을(benefit)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함. 손학규는 ‘새로운 각료 출범이 예정된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계속 국제 협력보다 남북 관계를 중시한다면 한국의 외교 실패는 더욱 쌓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고려시대 亂을 일으킨 승려 ‘묘청’에 자신을 비유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다. 2007년 10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는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조선일보》가 그해 10월 16일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해 17일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55.5%였다. 정동영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한 이는 16.2%였다. 10월 19일, 대사관이 ‘이명박 후보 공식 대선 운동 지도부 공개’라는 제목으로 전송한 전문은 대선 운동 지도부 구성에 나타난 이명박-박근혜 갈등을 언급하고 있다. 해당 대목이다.
“박근혜는 아직 이명박을 위해 적극적으로 유세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는 최근에 자신의 측근들이 소외되고 있으며 중요직에서 배제되었다고 불평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50퍼센트를 웃도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박근혜와 그의 추종자들 지원의 중요도는 상당부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의 최측근 김무성 의원은 양 캠프 사이에 다리를 놓아보고자, 최근 부산의 한 포장마차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명박 후보가 자신을 고려시대 승려 ‘묘청’에 비교했다는 내용의 전문도 있다. ‘이명박과 승려 묘청, 닮았는가?’라는 제목의 2007년 11월 8일자 전문이다. 《동아일보》 박민혁 기자가 대사관 정치참사에게 해준 이야기를 근거로 썼다. 전문 일부다.
“2006년 여름부터 이명박 캠프에 파견된 박민혁은 《동아일보》의 믿을 만한 기자다. 그는 정치참사에게 ‘이명박은 대선과 총선에서 전면적 승리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의 방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말이다. 박 기자가 설명하길 이명박과 그의 최측근 고문들, 형 이상득, 전 갤럽 회장이자 포항 출신 최시중, 국회의원 정두언, 박형준, 정종복이 약 1000년 전의 실패한 난을 이명박 선거운동과 대통령직 수행을 위한 영감과 비전에 빗댔다고 한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논평에서 “묘청형 모델이 이명박 정권에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명박은 그의 CEO로서의 배경을 시작으로 정치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며 “12·19대선에서 (이명박의) 승리가 사실상 확실하다”고 했다.
미 대사관은 한국 정치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버린 시민단체(NGO)도 분석했다. 2007년 6월 27일에 전송된 ‘NGO들 대통령 후보들을 계속 긴장시키다’라는 제목의 전문은 시민단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떨어진 점을 지적했다. 해당 부분이다.
“(한국 내) 비정부 기구(NGO)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 역시 커지고 있다. NGO들이 정치에 매우 폭넓게 관여해 왔기 때문에 이들 중 몇몇 NGO들은 감시단체의 역할 대신에 노무현 정부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움직이는 정치 단체로 비치고 있다. 몇몇 NGO 활동가들이 정부에 임용되고 정계에 입문하는 것을 본 후, 대중은 이제 운동가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사회 여론기관이 2006년 6월에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2.6%가 NGO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3, 2004년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한 설문조사와 큰 대조를 보인다. 이 기간에 NGO들은 신뢰할 수 있는 기관 순위에서 최상위를 차지했다.”
전문은 시민단체가 정치 참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논평으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NGO들은 다음과 같은 선택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를 멀리하거나, 아니면 정치판에 뛰어들어 본질적으로 정당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명박은 인간관계에 서툴러 소수의 친구만 신뢰”
2007년 12월 19일, 드디어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됐다. 버시바우 대사는 1분 간격으로 2개의 전문을 보냈다. 하나는 ‘비밀’, 하나는 ‘대외비’다. 비밀 문서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 미국에 미칠 영향 등을 넣었으며, 대외비 문서에는 성장배경, 개인신상 등 다소 가벼운 내용을 담았다.
‘이명박, 압도적 승리’라는 제목의 비밀 문서 주요 내용이다.
“모든 것을 감안해 볼 때 이명박의 당선은 한미 관계에 긍정적(good)이다. 이 당선자는 한국의 대미 관계를 한국 외교 정책의 핵심(linchpin)으로 보고 있다고 이명박 당선인의 보좌진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는 이라크 파병 확대와 한미 FTA 비준, 그리고 북한 정부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신중하게 대북 지원을 보장할 것을 지지한다고 한다.”
이 대통령을 ‘포퓰리스트’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당선자는 포퓰리스트다. 그의 공약이 다른 정책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몇몇 정보원은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으로서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는 정책들은 밀어붙인 적극성(willingness)을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이 당선자가 미국과 강력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문은 박근혜 의원과 이 대통령의 관계 개선에 대한 버시바우 대사의 ‘당부’로 끝난다.
“이 당선자는 4월 총선 전에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올리기 위해 취임 선서 후 대선 공약 중 몇 가지를 이행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기 위해 이명박 당선자는 내부 갈등을 종식하고 강력한 당 지도자인 박근혜와 그 지지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두어야만 한다.”
1분 후 전송된 대외비 문서는 ‘이명박 당선자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제목이다.
“현대건설에서 승진하는 과정에서 이명박은 능률을 최우선시했으며 세부사항과 결과를 매우 중시했다(results-oriented). 그의 측근 중 대여섯 명은 우리에게, 이명박이 스스로 인스턴트 커피를 타 마시며 지위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자신이 어떠한 임무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정보에 따르면 이명박 당선인은 부끄럼을 잘 타고, 많은 사람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일 만큼 사교적이지 않다고 한다. 몇몇은 이명박의 이런 성격을 전(前) 당 대표이자 제1의 라이벌인 박근혜와, 한나라당을 나간 이회창에게 다가서는 데 서툴렀던 이유로 들었다. 이 당선자가 인간관계에 서투르기 때문에 소수의 친구와 최측근만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형인 국회부의장 이상득과 전 갤럽 회장 최시중은 이명박의 정치적인 두뇌로 인정받고 있다. 주관이 강한 이명박 당선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두 사람이라고 여러 정보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명박 영어 수준은 초보지만 잡담 나누기엔 충분”
이상득 의원이 대통령에 ‘훈계’했음을 과시한 대목도 있다.
“이상득은 최근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 당선자가 미팅이나 행사에 자주 지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당선자에게 사업가였을 때는 늦어도 괜찮았을 수 있지만, 정치에서는 모든 행사에 제 시각에 도착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의장 이상득은 웃으면서, 당시 후보자였던 이명박은 자신의 충고를 이해했지만, 후에도 시간을 어기지 않도록 자신이 이 당선자에게 자주 알려줬다고 말했다.”
대사관은 이 대통령의 운동 횟수까지 적어서 보냈다. 개인신상 정보를 기록한 부분이다.
“이명박의 보좌관들은 이명박이 매일 러닝머신 위에서 1시간 동안 달린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정치참사가 당선자 측근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단지 시간이 날 때만 달린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지만 측근이 말한 바로는, 이 당선자는 골프를 즐기며 여유가 되면 골프를 친다고 한다.”
영어 실력도 분석했다.
“이 당선자가 외교 정책에 취약하다는 인식을 고려해서인지 보좌관들은 이 당선자의 수년간의 해외 근무 경험을 강조한다. 심지어 몇몇 사람은 이 당선자가 영어로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그의 영어는 초보 수준이며 모든 업무회의에서 통역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복도 외교’를 수행하거나 정상회의나 국제 모임에서 다른 지도자들과 잡담을 나누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과 비교해 봤을 때 상당한 발전이다.”
선거 다음 날, 미국 대사는 당선자를 만나기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 선거운동 사무실에는 기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기자들 앞에서 두 사람은 의례적인 축하인사를 나누고, 한미관계 개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들을 내보내고 두 사람이 나눈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얘기가 다음 날 전송된 ‘미 대사, 이명박 당선자 방문’이란 제목의 문서에 담겨 있다. 버시바우 대사가 이라크 내 한국 군대 주둔 연장, 한미 FTA 비준을 요구한 데 대해 이 당선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미 FTA를 일관되게 지지한다. 한미 FTA 협정은 한국 국회와 미국 의회에서 반드시 비준되어야 하지만 곧 총선이 있다. 심지어 몇몇 한나라당 의원, 특히 농촌이 지역구인 의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반대는 중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한나라당은 야당이 아닌 여당이기 때문이다. 모든 한나라당 의원과 만나 FTA 지지를 요청할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FTA가 비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4월 국회의원 선거 이후 조만간 비준될 것이다.”
이명박, 형의 총선 출마 만류했으나 실패
2008년 5월, 한국은 ‘광우병 쇠고기’ 논쟁에 휩싸였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에 대사는 이상득 의원과 만났다. 사태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 5월 29일자, ‘쇠고기 사태와 이명박 대통령의 실수에 대한 이상득의 견해’라는 제목의 전문이 그들의 대화를 재연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상득 의원은 이 대통령의 ‘정치 감각 부족’을 언급했다.
“이상득은 이 대통령이 취임하고 청와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전에, 인선(人選) 다툼과 쇠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부유한 미국 유학파들을 대거 수석 보좌관에 임명해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반발하는 이유를 이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파악해, 필요한 만큼 양보하는 조치 없이 임기를 시작했다. 이상득은 그 이유로 ‘정치 감각의 부족(poor political instinct)’을 들었다. 더 안 좋은 것은, 이 대통령의 측근 중 상당수도 국회의원 선거 출마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나 대통령 측근 모두 문제가 발생할 걸 예상하지 못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형제 사이에 흐르는 기류의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했다. 대사의 논평이다.
“이상득은 대통령과의 관계와 원로 보수 의원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생에 대한 그의 불만과 비판은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반영하고 있다. 국회 정보원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형의 총선 출마를 만류했으나 형이 이를 무시하고 6선 의원이 되기 위해 출마하자 마음이 상했다고(hurt) 한다. 이 일이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나 정치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노련한 이상득 부의장의 의견을 무시하는 데 작용했을 수 있다. 오랫동안 타협을 지지해 온 사람으로서 이상득 의원은 동생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다룰지, 도울 수 있는 권위와 노하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형의 도움을 받아들일지 여부다.”
“(2007년 대선 두 달 전) 노사모, 2012년 유시민 대선 캠페인 이미 시작했다 말해”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 인사에 대한 평가나 청와대 각료에 관한 얘기를 담은 전문을 살펴봤다. 2006년 1월 9일에 작성한 비밀 전문의 제목은 ‘새로운 통일부 장관: 이종석 중앙 무대로 진출하다’이다. 이종석 전 장관의 장관 내정을 보고하며 약력과 성향, 활동 전망을 다루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종석 전 장관을 ‘좌 성향의 민족주의자’로 규정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외교 정책 조언자이며, 정동영이나 반기문 장관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고 썼다. “명목상의 상관인 권진호 보좌관보다도 힘이 센 것은 물론이다”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이 취임 후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적어놓았다. “이종석은 대중의 주목을 받는 데 익숙지 않고, 반기문 장관이나 윤광웅 장관 같은 사람들보다 12세 혹은 그 이상 어리다. 이종석은 이들을 이끌어야(supervise) 한다. 취임 후 몇 달간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종석 전 장관의 대미관에 관한 분석이다.
“그는 미국의 영향력과 힘을 ‘경계’하는 듯하다. 관직을 맡은 초기 6개월간 그는 미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폭넓은 문제를 가지고 광범위하게 접촉한 결과, 미국과의 동맹이 자신의 조국의 대외 정책의 핵심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는 실용적인 대화 상대가 됐다. 그는 종종 남한을 국가 발전에서 ‘미국식 모델’의 대표적인 예라고 소개한다.”
청와대 행정관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전문도 있다. ‘청와대 보좌관들: 12월 대선에서 우리는 질 것이지만 괜찮다’라는 제목의 전문이 그중 하나다. 2007년 10월 31일에 전송됐다. 대사관 정치참사가 청와대 인사를 만나 대선 전망에 대해 나눈 대화다.
“10월 30일, 정치참사는 실무진급 청와대 정책 보좌관 두 명을 만났다. 이 두 명은 전형적인 ‘노사모’로서 2002년 노무현 대선캠프에서 일한 덕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두 보좌관은 대통합민주신당(UNDP)의 정동영 후보가 12월 19일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2008년 총선에서는 보다 성공적일 거라 낙관했다.”
노무현 정부가 정동영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청와대 정보원들은 노무현 정부가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는 데 별다른 열의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신 노무현 지지자들은 무소속 문국현 후보를 위해 일하고 있거나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의 2012년 대선 캠페인을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노사모 남동지부 수장이자 현재 청와대 행정관인 김태환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모두 각자의 길로 갔다’며 ‘아무도 자발적으로 정동영의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애석해 하며 인정했다.”
美 대사, 노무현 정부의 테러 대응 비판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던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됐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가 있던 한국군의 철군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한 달 이상 탈레반과 협상한 끝에 인질들을 구해냈다. 인질 중 남성 2명은 이미 살해당한 후였다. 미 대사관은 2007년 8월 31일 비밀 전문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대응법을 비판했다. 대사의 비평이다.
“국내 정치 측면에서 인질 21명의 생환은 노무현 정부에 분명히 이득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동맹국이 탈레반에 대항해 자국의 국민을 구출하거나 보복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감옥에 갇힌 테러범을 풀어주려고 로비하거나 심지어 테러리스트에게 몸값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심히 우려된다. 노 대통령이 매우 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인정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임하는 파트너로서의 그의 신용은 손상됐다.”
봉하마을 찾은 美 대사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을 떠나며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고별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 자택에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민주주의 2.0’이라는 정치 토론사이트도 개설했을 때였다. 2008년 9월 16일에 전송된 전문에 그 장면이 담겨 있다. ‘대사, 노 전 대통령 고별 방문’이란 제목의 대외비 전문이다.
“9월 9일,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의 이슈들에 대해서는 논의를 주저했으며,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일본의 이웃 국가에 대한 무신경함, 한미 군사동맹의 비대칭적 성격에 대해서는 익숙한 견해를 개진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이 현재 야당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정치의 진보적 성향을 바꾼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현 야당이자 우리당의 계승자인 민주당에 조언을 주고 있느냐’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은 단지 관찰자라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보수세력으로의 권력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장기적인 진보적 발전 방향과 맞지 않는다(not in harmony)는 견해를 피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새로운 보수 정권 아래에서, 여론이 요구할 시에 야당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러한 변화들이 퇴행적인 것으로 보인다면, 민주당은 그 변화들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는 권양숙 여사도 함께했다. 전문은 이에 대한 버시바우 대사의 논평으로 끝을 맺는다.
“노 전 대통령은 회담 전반에 걸쳐 불편해 보였다. 합석했던 권 여사 측이 훨씬 호의적이었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름다운 자택에서의 생활을 즐기는 듯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의 정치 논쟁과 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풍겼으며 매일 오후 두 차례 노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모이는 팬들과 관광객들과의 만남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론가(observers)들은 노 전 대통령이 조만간 막후에서 진보 진영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통령 수석, “독도 밀어붙일 생각 없다” 미국에 밝혀
2009년 2월 18일 미국 국무부가 만든 비밀 전문에는 ‘독도’가 등장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서명한 ‘스타인버그 부국장과 김 외교안보수석 회합’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김성환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이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국장과 나눈 대화를 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수석은 “현재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진전되고 있다. 한국은 이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일 생각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사실 ‘독도’ 문제는 미 대사관 전문에 꾸준히 등장한다. 도쿄의 미 대사관과 서울의 미 대사관이 앞다퉈 국무부에 전하는 식이다. 미 대사관은 독도나 다케시마가 아닌 ‘리앙쿠르 암’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2006년 4월 18일 주일 미 대사관이 보낸 비밀 전문에는 일본이 한국에 ‘비밀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메다 구니오 외무성 아시아ㆍ대양주국 참사관이 라종일 주일대사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제안의 세부내용은 이틀 후인 4월 20일 전송된 비밀 전문에 등장한다.
크게 3가지다. 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양자 대화 재개, 동해 해저지명안 제안 철회, 해저지형 조사 때 상호 통보였다. 한국은 제안을 거절했다.
2달여 후인 2006년 7월 3일 작성된 전문의 제목은 “리앙쿠르암: 한국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다. 일본 외무성의 사사에 아시아대양주국장은 독도 근역에 조사선박을 보내기로 한 한국 정부를 비판하며 ‘일·한 관계에 미칠 영향을 무시하는 한국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2006년 9월 11일, 외교부는 “한일 양국이 오는 10월 국제원자력기구와 공동으로 동해에서 옛 소련의 방사능 폐기물에 대한 환경오염 조사를 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 이 합의의 뒷얘기가 비밀 전문에 등장한다. 미 대사관에 합의 관련 정보를 전한 일본 외교관 야마모토 야스시는 “한 외무성 국장이 여름 내내 일본이 (해저) 조사를 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갖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서류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협상할 때 일본 측은 그 서류철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국제 중재’를 신청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한국 협상단)에게 총을 보여줬지만,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다”는 것이 일본 측의 표현이다. 야마모토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는 국제 중재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판단해 청와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한다. 보고하는 대신, 외교부는 일본과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국제 중재는 외교부가 청와대에도 알리지 않을 만큼 민감한 사안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야마모토가 설명하는 대목이다.
“야마모토는 국제 중재가 영토나 배타적경제수역을 확정하기 위한 중재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분쟁 수역에서 과학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중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한국 외교부는 한국 대중이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 거라는 것과 이런 감정적 요소가 있는 영토 문제를 국제 중재로 다룬다는 것에 대해 격앙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이어 한국 측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없는 지역을 조사 지역으로 추가했다고 말했다. 자원 낭비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2006년 10월의 방사능 폐기물 환경오염 조사는 일본의 ‘국제 중재’ 위협을 무마하기 위한 일종의 ‘합의금’이었던 셈이다.
스탠튼 주일 미 대사는 전문을 마무리하며, “한국 외교관들은 이 문제를 무척 제쳐놓고 싶어하지만 문제는 항상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전통적인 반일감정에 영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관이 지난 5년여간 스스로 던지고 답한 화두다. 질문과 답은 거의 매일 아침 미 국무부장관의 책상 위에 올라갔다. 이 문서가 공개됐다.
위키리크스가 지난 9월 2일 미국 외교 전문(電文) 25만1287건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http://wikileaks.org)는 비영리 언론 조직을 표방하는 폭로 전문 단체다. 호주 출신의 줄리안 어산지가 2006년 설립했다. 작년 4월, 이라크에서 미군 헬기가 민간인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단번에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번에 공개된 미 외교 전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274개 미국 대사관과 미 국무부가 주고받은 외교문서다. 모두 2010년 3월 1일 이전에 작성됐다. 비밀 혹은 2급 비밀(Secret)과 대외비 혹은 3급 비밀(confidential), 그리고 미분류/공무용으로만 사용(Unclassified/for official use only), 일반(Unclassified)으로 이뤄져 있다. Top secret, 즉 1급 비밀 문서는 포함되지 않았다.
주한 미 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은 모두 1980건. 이 중 ‘비밀’은 123건, ‘대외비’는 971건이고, 나머지 886건은 ‘미분류’ 혹은 ‘일반’ 등급이다. ‘비밀’ 문서만 출력해도 A4 기준으로 400여장에 달한다. 문서 작성 시기는 1988년 3월 16일부터 2010년 2월 25일까지이다. 1988년부터 2003년까지는 10건이 작성됐고, 2004년부터 2005년 말까지는 없다. 1970건의 전문이 2006년과 2010년 사이에 집중돼 있다. 즉 노무현 정권 후반기와 현 정부 집권 초반의 전문이 대부분이다.
전문의 소재는 그야말로 ‘각양 각종’이다. ‘대선후보 성향’ 같은 주제는 물론이고 ‘한국 자동차 시장 전망’, ‘한국의 여권 신장’ 등 경제 정보나 사회 문화 분야의 주제도 등장한다. 가장 자주 다룬 주제는 역시 정치와 외교정책, 그리고 북한 문제다.
2006년 이명박, “한국은 여성 대통령 준비 안 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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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 |
2006년 8월 17일에 작성한 대외비 전문의 제목은 ‘한국은 여성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분석했다. 전문 작성 당시 박근혜 의원의 인기는 상종가였다. 석 달 전인 5월 20일, 박 의원은 피습을 당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를 하려던 참이었다. 전문은 우선 여성 대통령 배출에 호의적인 정치 인사의 발언을 인용했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속이자 박근혜의 측근 보좌관인 월터 백(Walter Paik)은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는 여성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에 보다 열려 있다’고 말했다. 대사관의 정치참사가 한국이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을지 묻자,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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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와의 회동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보다 먼저 한국이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근혜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사람들은 여성이 군 통수권자가 되는 게 불편하다고 말한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가 경색되어 있고, 무력분쟁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 상황을 고려할 때 그렇다고. 외교안보위원회 소속이었던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박근혜와 한명숙이 정책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대선후보로 지명되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최우선적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중립적인 논평으로 전문을 끝맺었다.
“박근혜는 적법하고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다. 이 사실 자체가 여성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부분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선까지 16개월 남은 상황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직까지 가려면 먼길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첫 번째 난관은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해 후보로 지명되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선 주요 경쟁자이자, 전 서울시장 이명박은 ‘한국은 여성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3월 박근혜와의 회동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것 같다고 얘기해 박근혜를 기쁘게 했다. 그는 역사적 경쟁자(한국과 일본-편집자주)와의 끝나지 않은 경주에서 한국의 또 다른 ‘승리’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손학규, “노무현은 미국과 관계개선 기회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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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7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서울 서대문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버시바우 전 주한 미대사를 만나고 있다. |
2006년 11월 9일에 작성된 대외비 전문은 작성 6일 전인 11월 3일에 점심을 하면서 오간 버시바우 대사와 손학규 대표의 대화를 옮겨놓았다. ‘전 경기도지사 손학규의 북한과 국내 정치에 관한 견해’라는 제목이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손학규씨가 많은 질문을 했다”는 말로 전문을 시작한다. 그의 말대로 손학규 대표는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끊임없이 물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놨다. 손 대표는 자신이 다음 달에 미국을 가는 게 나을지 어떨지 묻기도 했다. 해당 부분이다.
“손학규는 자신이 12월에 미국에 가서 USC에서 강연하고 그 다음에 워싱턴에 가야 하는지 아닌지 견해를 물었다. 한미 관계의 상황을 논의하고 한국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알 기회라며 방문할 것을 지지함. 이는 또한 미국인들이 2007년 대선이 시작하기 전 대선후보 한 명에 대해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손 대표는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손학규는 (핵실험 등의 문제에서) ‘노무현 정권이 우유부단해(reluctance),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고 버시바우 전 대사는 옮겼다. 당시 신임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재정씨에 대해서도 손 대표는 비판의 각을 세웠다. 해당 부분이다.
“손학규는 ‘이재정이 통일 문제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 없으며 전문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통일부가 정책 과정에서 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학규는 송민순을 외교부 장관 내정자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송민순이 국가안보회의로 가기 전에 자신의 경기도 외교정책 보좌관이었다고 말했다. 송민순이 국가안보 보좌관으로서 또 그전에는 6자회담 대표로서 좋은 일들을 많이 했지만, 그가 공적인 발언에 보다 신중해지는 게 좋을(benefit)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함. 손학규는 ‘새로운 각료 출범이 예정된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계속 국제 협력보다 남북 관계를 중시한다면 한국의 외교 실패는 더욱 쌓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고려시대 亂을 일으킨 승려 ‘묘청’에 자신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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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서울 신촌에서 유세를 갖고 압도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
“박근혜는 아직 이명박을 위해 적극적으로 유세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는 최근에 자신의 측근들이 소외되고 있으며 중요직에서 배제되었다고 불평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50퍼센트를 웃도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박근혜와 그의 추종자들 지원의 중요도는 상당부분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의 최측근 김무성 의원은 양 캠프 사이에 다리를 놓아보고자, 최근 부산의 한 포장마차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명박 후보가 자신을 고려시대 승려 ‘묘청’에 비교했다는 내용의 전문도 있다. ‘이명박과 승려 묘청, 닮았는가?’라는 제목의 2007년 11월 8일자 전문이다. 《동아일보》 박민혁 기자가 대사관 정치참사에게 해준 이야기를 근거로 썼다. 전문 일부다.
“2006년 여름부터 이명박 캠프에 파견된 박민혁은 《동아일보》의 믿을 만한 기자다. 그는 정치참사에게 ‘이명박은 대선과 총선에서 전면적 승리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의 방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말이다. 박 기자가 설명하길 이명박과 그의 최측근 고문들, 형 이상득, 전 갤럽 회장이자 포항 출신 최시중, 국회의원 정두언, 박형준, 정종복이 약 1000년 전의 실패한 난을 이명박 선거운동과 대통령직 수행을 위한 영감과 비전에 빗댔다고 한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논평에서 “묘청형 모델이 이명박 정권에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명박은 그의 CEO로서의 배경을 시작으로 정치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며 “12·19대선에서 (이명박의) 승리가 사실상 확실하다”고 했다.
미 대사관은 한국 정치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버린 시민단체(NGO)도 분석했다. 2007년 6월 27일에 전송된 ‘NGO들 대통령 후보들을 계속 긴장시키다’라는 제목의 전문은 시민단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떨어진 점을 지적했다. 해당 부분이다.
“(한국 내) 비정부 기구(NGO)들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 역시 커지고 있다. NGO들이 정치에 매우 폭넓게 관여해 왔기 때문에 이들 중 몇몇 NGO들은 감시단체의 역할 대신에 노무현 정부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움직이는 정치 단체로 비치고 있다. 몇몇 NGO 활동가들이 정부에 임용되고 정계에 입문하는 것을 본 후, 대중은 이제 운동가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사회 여론기관이 2006년 6월에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2.6%가 NGO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3, 2004년도에 삼성경제연구소가 한 설문조사와 큰 대조를 보인다. 이 기간에 NGO들은 신뢰할 수 있는 기관 순위에서 최상위를 차지했다.”
전문은 시민단체가 정치 참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논평으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NGO들은 다음과 같은 선택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를 멀리하거나, 아니면 정치판에 뛰어들어 본질적으로 정당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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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미 대사관은 전문을 통해 대선 운동 지도부 구성에 나타난 이명박-박근혜 갈등을 언급했다. 사진은 ‘공정경선결의대회’에서 이명박, 박근혜 대선 예비주자 후보의 모습. |
‘이명박, 압도적 승리’라는 제목의 비밀 문서 주요 내용이다.
“모든 것을 감안해 볼 때 이명박의 당선은 한미 관계에 긍정적(good)이다. 이 당선자는 한국의 대미 관계를 한국 외교 정책의 핵심(linchpin)으로 보고 있다고 이명박 당선인의 보좌진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는 이라크 파병 확대와 한미 FTA 비준, 그리고 북한 정부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신중하게 대북 지원을 보장할 것을 지지한다고 한다.”
이 대통령을 ‘포퓰리스트’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당선자는 포퓰리스트다. 그의 공약이 다른 정책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몇몇 정보원은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으로서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는 정책들은 밀어붙인 적극성(willingness)을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이 당선자가 미국과 강력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문은 박근혜 의원과 이 대통령의 관계 개선에 대한 버시바우 대사의 ‘당부’로 끝난다.
“이 당선자는 4월 총선 전에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올리기 위해 취임 선서 후 대선 공약 중 몇 가지를 이행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기 위해 이명박 당선자는 내부 갈등을 종식하고 강력한 당 지도자인 박근혜와 그 지지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두어야만 한다.”
1분 후 전송된 대외비 문서는 ‘이명박 당선자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제목이다.
“현대건설에서 승진하는 과정에서 이명박은 능률을 최우선시했으며 세부사항과 결과를 매우 중시했다(results-oriented). 그의 측근 중 대여섯 명은 우리에게, 이명박이 스스로 인스턴트 커피를 타 마시며 지위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자신이 어떠한 임무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정보에 따르면 이명박 당선인은 부끄럼을 잘 타고, 많은 사람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일 만큼 사교적이지 않다고 한다. 몇몇은 이명박의 이런 성격을 전(前) 당 대표이자 제1의 라이벌인 박근혜와, 한나라당을 나간 이회창에게 다가서는 데 서툴렀던 이유로 들었다. 이 당선자가 인간관계에 서투르기 때문에 소수의 친구와 최측근만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형인 국회부의장 이상득과 전 갤럽 회장 최시중은 이명박의 정치적인 두뇌로 인정받고 있다. 주관이 강한 이명박 당선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두 사람이라고 여러 정보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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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명박 당선자가 2007년 12월 20일 여의도 당사에서 버시바우 전 대사를 만나 환담하고 있다. |
“이명박 영어 수준은 초보지만 잡담 나누기엔 충분”
이상득 의원이 대통령에 ‘훈계’했음을 과시한 대목도 있다.
“이상득은 최근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 당선자가 미팅이나 행사에 자주 지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당선자에게 사업가였을 때는 늦어도 괜찮았을 수 있지만, 정치에서는 모든 행사에 제 시각에 도착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의장 이상득은 웃으면서, 당시 후보자였던 이명박은 자신의 충고를 이해했지만, 후에도 시간을 어기지 않도록 자신이 이 당선자에게 자주 알려줬다고 말했다.”
대사관은 이 대통령의 운동 횟수까지 적어서 보냈다. 개인신상 정보를 기록한 부분이다.
“이명박의 보좌관들은 이명박이 매일 러닝머신 위에서 1시간 동안 달린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정치참사가 당선자 측근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단지 시간이 날 때만 달린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언급된 적은 없지만 측근이 말한 바로는, 이 당선자는 골프를 즐기며 여유가 되면 골프를 친다고 한다.”
영어 실력도 분석했다.
“이 당선자가 외교 정책에 취약하다는 인식을 고려해서인지 보좌관들은 이 당선자의 수년간의 해외 근무 경험을 강조한다. 심지어 몇몇 사람은 이 당선자가 영어로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그의 영어는 초보 수준이며 모든 업무회의에서 통역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복도 외교’를 수행하거나 정상회의나 국제 모임에서 다른 지도자들과 잡담을 나누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과 비교해 봤을 때 상당한 발전이다.”
선거 다음 날, 미국 대사는 당선자를 만나기 위해 여의도로 향했다. 선거운동 사무실에는 기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기자들 앞에서 두 사람은 의례적인 축하인사를 나누고, 한미관계 개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들을 내보내고 두 사람이 나눈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얘기가 다음 날 전송된 ‘미 대사, 이명박 당선자 방문’이란 제목의 문서에 담겨 있다. 버시바우 대사가 이라크 내 한국 군대 주둔 연장, 한미 FTA 비준을 요구한 데 대해 이 당선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한미 FTA를 일관되게 지지한다. 한미 FTA 협정은 한국 국회와 미국 의회에서 반드시 비준되어야 하지만 곧 총선이 있다. 심지어 몇몇 한나라당 의원, 특히 농촌이 지역구인 의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반대는 중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한나라당은 야당이 아닌 여당이기 때문이다. 모든 한나라당 의원과 만나 FTA 지지를 요청할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FTA가 비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4월 국회의원 선거 이후 조만간 비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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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5일 출마 결심을 밝히는 이상득 의원. 국회 정보원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만류했다고 한다. |
“이상득은 이 대통령이 취임하고 청와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전에, 인선(人選) 다툼과 쇠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부유한 미국 유학파들을 대거 수석 보좌관에 임명해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반발하는 이유를 이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파악해, 필요한 만큼 양보하는 조치 없이 임기를 시작했다. 이상득은 그 이유로 ‘정치 감각의 부족(poor political instinct)’을 들었다. 더 안 좋은 것은, 이 대통령의 측근 중 상당수도 국회의원 선거 출마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나 대통령 측근 모두 문제가 발생할 걸 예상하지 못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형제 사이에 흐르는 기류의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했다. 대사의 논평이다.
“이상득은 대통령과의 관계와 원로 보수 의원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생에 대한 그의 불만과 비판은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반영하고 있다. 국회 정보원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형의 총선 출마를 만류했으나 형이 이를 무시하고 6선 의원이 되기 위해 출마하자 마음이 상했다고(hurt) 한다. 이 일이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나 정치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노련한 이상득 부의장의 의견을 무시하는 데 작용했을 수 있다. 오랫동안 타협을 지지해 온 사람으로서 이상득 의원은 동생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다룰지, 도울 수 있는 권위와 노하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형의 도움을 받아들일지 여부다.”
“(2007년 대선 두 달 전) 노사모, 2012년 유시민 대선 캠페인 이미 시작했다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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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 이종석 통일부 장관. 버시바우 전 대사는 그를 노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조언자로 평가했다. |
이종석 전 장관의 대미관에 관한 분석이다.
“그는 미국의 영향력과 힘을 ‘경계’하는 듯하다. 관직을 맡은 초기 6개월간 그는 미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폭넓은 문제를 가지고 광범위하게 접촉한 결과, 미국과의 동맹이 자신의 조국의 대외 정책의 핵심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는 실용적인 대화 상대가 됐다. 그는 종종 남한을 국가 발전에서 ‘미국식 모델’의 대표적인 예라고 소개한다.”
청와대 행정관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전문도 있다. ‘청와대 보좌관들: 12월 대선에서 우리는 질 것이지만 괜찮다’라는 제목의 전문이 그중 하나다. 2007년 10월 31일에 전송됐다. 대사관 정치참사가 청와대 인사를 만나 대선 전망에 대해 나눈 대화다.
“10월 30일, 정치참사는 실무진급 청와대 정책 보좌관 두 명을 만났다. 이 두 명은 전형적인 ‘노사모’로서 2002년 노무현 대선캠프에서 일한 덕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두 보좌관은 대통합민주신당(UNDP)의 정동영 후보가 12월 19일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2008년 총선에서는 보다 성공적일 거라 낙관했다.”
노무현 정부가 정동영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청와대 정보원들은 노무현 정부가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는 데 별다른 열의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신 노무현 지지자들은 무소속 문국현 후보를 위해 일하고 있거나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의 2012년 대선 캠페인을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노사모 남동지부 수장이자 현재 청와대 행정관인 김태환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모두 각자의 길로 갔다’며 ‘아무도 자발적으로 정동영의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애석해 하며 인정했다.”
美 대사, 노무현 정부의 테러 대응 비판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던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됐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가 있던 한국군의 철군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한 달 이상 탈레반과 협상한 끝에 인질들을 구해냈다. 인질 중 남성 2명은 이미 살해당한 후였다. 미 대사관은 2007년 8월 31일 비밀 전문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대응법을 비판했다. 대사의 비평이다.
“국내 정치 측면에서 인질 21명의 생환은 노무현 정부에 분명히 이득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동맹국이 탈레반에 대항해 자국의 국민을 구출하거나 보복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감옥에 갇힌 테러범을 풀어주려고 로비하거나 심지어 테러리스트에게 몸값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심히 우려된다. 노 대통령이 매우 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인정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임하는 파트너로서의 그의 신용은 손상됐다.”
봉하마을 찾은 美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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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시바우 전 주한 미대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
“9월 9일,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의 이슈들에 대해서는 논의를 주저했으며,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일본의 이웃 국가에 대한 무신경함, 한미 군사동맹의 비대칭적 성격에 대해서는 익숙한 견해를 개진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이 현재 야당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정치의 진보적 성향을 바꾼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현 야당이자 우리당의 계승자인 민주당에 조언을 주고 있느냐’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은 단지 관찰자라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보수세력으로의 권력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장기적인 진보적 발전 방향과 맞지 않는다(not in harmony)는 견해를 피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새로운 보수 정권 아래에서, 여론이 요구할 시에 야당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러한 변화들이 퇴행적인 것으로 보인다면, 민주당은 그 변화들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는 권양숙 여사도 함께했다. 전문은 이에 대한 버시바우 대사의 논평으로 끝을 맺는다.
“노 전 대통령은 회담 전반에 걸쳐 불편해 보였다. 합석했던 권 여사 측이 훨씬 호의적이었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름다운 자택에서의 생활을 즐기는 듯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의 정치 논쟁과 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풍겼으며 매일 오후 두 차례 노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모이는 팬들과 관광객들과의 만남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론가(observers)들은 노 전 대통령이 조만간 막후에서 진보 진영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통령 수석, “독도 밀어붙일 생각 없다” 미국에 밝혀
2009년 2월 18일 미국 국무부가 만든 비밀 전문에는 ‘독도’가 등장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서명한 ‘스타인버그 부국장과 김 외교안보수석 회합’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김성환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이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국장과 나눈 대화를 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수석은 “현재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진전되고 있다. 한국은 이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일 생각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사실 ‘독도’ 문제는 미 대사관 전문에 꾸준히 등장한다. 도쿄의 미 대사관과 서울의 미 대사관이 앞다퉈 국무부에 전하는 식이다. 미 대사관은 독도나 다케시마가 아닌 ‘리앙쿠르 암’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2006년 4월 18일 주일 미 대사관이 보낸 비밀 전문에는 일본이 한국에 ‘비밀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메다 구니오 외무성 아시아ㆍ대양주국 참사관이 라종일 주일대사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제안의 세부내용은 이틀 후인 4월 20일 전송된 비밀 전문에 등장한다.
크게 3가지다. 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양자 대화 재개, 동해 해저지명안 제안 철회, 해저지형 조사 때 상호 통보였다. 한국은 제안을 거절했다.
2달여 후인 2006년 7월 3일 작성된 전문의 제목은 “리앙쿠르암: 한국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다. 일본 외무성의 사사에 아시아대양주국장은 독도 근역에 조사선박을 보내기로 한 한국 정부를 비판하며 ‘일·한 관계에 미칠 영향을 무시하는 한국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2006년 9월 11일, 외교부는 “한일 양국이 오는 10월 국제원자력기구와 공동으로 동해에서 옛 소련의 방사능 폐기물에 대한 환경오염 조사를 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 이 합의의 뒷얘기가 비밀 전문에 등장한다. 미 대사관에 합의 관련 정보를 전한 일본 외교관 야마모토 야스시는 “한 외무성 국장이 여름 내내 일본이 (해저) 조사를 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를 갖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서류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협상할 때 일본 측은 그 서류철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국제 중재’를 신청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한국 협상단)에게 총을 보여줬지만,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다”는 것이 일본 측의 표현이다. 야마모토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는 국제 중재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판단해 청와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한다. 보고하는 대신, 외교부는 일본과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국제 중재는 외교부가 청와대에도 알리지 않을 만큼 민감한 사안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야마모토가 설명하는 대목이다.
“야마모토는 국제 중재가 영토나 배타적경제수역을 확정하기 위한 중재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분쟁 수역에서 과학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중재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한국 외교부는 한국 대중이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 거라는 것과 이런 감정적 요소가 있는 영토 문제를 국제 중재로 다룬다는 것에 대해 격앙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이어 한국 측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없는 지역을 조사 지역으로 추가했다고 말했다. 자원 낭비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2006년 10월의 방사능 폐기물 환경오염 조사는 일본의 ‘국제 중재’ 위협을 무마하기 위한 일종의 ‘합의금’이었던 셈이다.
스탠튼 주일 미 대사는 전문을 마무리하며, “한국 외교관들은 이 문제를 무척 제쳐놓고 싶어하지만 문제는 항상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전통적인 반일감정에 영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