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타 “창업주 정신 우리가 망각했다” 사과
⊙ 도요타에 대한 유럽인의 믿음은 여전
⊙ 친환경, 소형화된 차량 앞다퉈 출시
⊙ 도요타에 대한 유럽인의 믿음은 여전
⊙ 친환경, 소형화된 차량 앞다퉈 출시
- 제네바 모터쇼 전경.
80돌을 맞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가 지난 3월 2일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Palexpo)에서 개막됐다. 세계 3대 모터쇼인 일본의 도쿄모터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미국의 디트로이트 모터쇼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대규모 리콜(recall)로 곤욕을 치른 도요타 사태가 진행 중인 가운데 맞는 모터쇼라는 점, 그리고 전 세계 경기침체가 어느 정도 회복기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모터쇼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됐다.
행사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는 10만㎡(약 3만 평) 넓이에 수십 미터 높이의 실내 전시장이다. 우리나라의 코엑스 전시장이나 킨텍스 전시장과 같은 성격의 공간으로 이곳은 총 7개의 홀로 구성돼 있었다. 전 세계 30개국, 250개 업체가 700여 차종을 새롭게 선보였고, 가까운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과 말레이시아, 대만 등의 아시아 국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국가에서 온 기자들과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신차 발표회는 15분 단위로 한 업체씩 이어졌다. 바로 옆 부스가 신차 발표회를 마치면 바로 옆에 있는 부스가 발표회를 여는 형식이었다. 대부분의 업체는 시간이 임박하면 설치해 놓은 화면에 곧 발표회가 열린다는 예고를 하고 시간이 되면 ‘10, 9, 8, 7… 2, 1, 스타트(START)’라는 표시를 한 뒤에 발표회를 진행했다. 업체의 CEO가 직접 발표에 나선 경우도 있고, 유럽지역 총 책임자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 현대차는 정의선(鄭義宣)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직접 영어로 설명했다.
업체마다 차지하는 부스의 크기는 달랐고, 행사장을 찾는 손님의 수도 업체마다 달랐다. 아우디나 벤츠, 포드 등 잘 알려진 자동차 회사 부스에는 온종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신형 발표회를 찾는 사람의 수도 이들 업체에 가장 많았다. 업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저명인사를 동원하기도 했다. 아우디는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Randall Timberlake)를 등장시켰고, 벤츠 발표회에는 F1의 황제 슈마허가 나왔다.
모터쇼 하면 밝은 조명에 비친 알록달록한 색깔의 최신식 스포츠카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는 최신 스포츠카도 눈에 띄었고, 영화배우와 유명 스포츠 스타가 새로 출시하는 자동차들의 홍보를 위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는 차분함도 느껴졌다. 크고 화려한 차량보다는 작고 아담한 차량, 그리고 푸른색으로 대변되는 하이브리드 친환경 차량과 전기차들이 많이 목격됐기 때문이었다.
주목받은 도요타, 사죄로 발표회 시작
화려한 모터쇼 뒤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곳은 도요타 부스(Toyota booth)였다. 2009년 가을 미국에서 매트와 가속페달이 문제돼 교통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사망한 피해자의 다급한 음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터진 도요타 사태를 두고 스위스에 모인 세계 자동차 시장 관계자들과 언론인들의 도요타에 대한 관심은 신차 발표 못지않았다.
도요타의 발표회는 당초 예정시각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 원래 오후 4시30분에 열려야 했지만 앞선 다른 업체들의 발표 시간이 하나둘씩 지연되면서 오후 5시가 돼서 진행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30분 전인 오후 4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해 발표가 시작될 무렵에는 1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이 도요타의 발표회에 시선을 고정했다. 많은 사람이 몰린 관계로 뒤에서는 보이지 않자 아예 근처에 있는 계단 위로 올라가 발표회를 보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인 지로 가스타 씨는 “도요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업체이면서 이번 리콜 사태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끄는 것 같다”며 “나는 발표회 시작 1시간 전부터 이곳 부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 발표회는 도요타 사태에 대한 사죄로 시작됐다.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였다. 발표회는 도요타 유럽법인의 안드레아 포미카 부사장 한 명이 진행했다. 다른 회사의 경우 디터 제체 다임러 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거물급 최고경영자(CEO) 인사와 신차 디자이너가 발표회에 등장하는 데 반해 도요타의 발표회는 포미카 부사장이 시작부터 끝까지 차분한 어조로 진행했다. 포미카 부사장은 사과와 함께 참회로 발표회를 시작했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 창업자가 월등한 품질을 가진 차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합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신을 망각했습니다.” 포미카 부회장 뒤에 있는 도요타 부스 화면에는 도요다 기이치로 창업주의 사진과 그가 남긴 이 말이 영어로 함께 나타났다. 행사장 옆에서는 오카모토 가즈오 도요타 부회장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는 고객들의 기대를 배신했다”며 “디자인과 제조，판매 등 모든 과정에 새로 눈을 뜨고 있다”고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유럽 도요타 조직은 여전히 잘 돌아가”
도요타는 북미 지역 등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출석한다 안 한다 말이 많던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은 결국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했다. 도요다 사장은 미 하원에서 “어떤 형태든 사고를 당한 도요타 운전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회사의 빠른 성장만 추구한 나머지 안전문제에 소홀했다”며 “도요타의 우선순위는 안전과 품질, 외형이었지만 우선순위가 혼선을 빚으며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상당히 약화됐다”며 사과했다. 도요다 사장은 중국에서도 사과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요다 사장은 “리콜사태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마음속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네바 모터쇼를 찾은 유럽 사람들의 견해는 어떨까? 기자가 현장에서 만나본 자동차 업계 종사자들이나 언론인들 상당수는 도요타 사태는 유럽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대부분 도요타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지역에 명성을 쌓아 왔고, 그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스에서 기아차 판매를 담당하는 파파도폴로스(Papadopoulos) 씨는 “도요타는 그리스에 아주 강력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며 “유럽 지역 고객 대부분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파파도폴로스 씨의 얘기다. “도요타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 지역에서 최고입니다. 질도 좋고, 믿을 수 있는 차량으로 오래전부터 유럽사람들에게 각인돼 있죠. 그리고 유럽지역에 조직이 굳건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또 유럽사람들에게 책임감을 훌륭히 가지는 자동차 회사로 각인돼 있죠. 각종 사회 복지 사업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랫동안 쌓여 왔기 때문에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릴 가능성은 없습니다. 리콜은 도요타뿐만 아니라 포드나 GM 같은 미국 업체들에도 많잖아요. 오히려 이번 사태가 도요타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핀란드 기자 메티 하주라(Matti Heijura) 씨도 도요타는 훌륭한 회사라고 치켜세웠다. “핀란드 사람들은 도요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요타 사태가 핀란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핀란드에서 보면 도요타가 잘 대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동차 질이 좋잖아요. 가격도 합리적이고 오래전부터 명성을 잘 쌓아 놓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한 자동차 딜러의 말이다. “도요타는 프랑스에서 믿을 만하며 품질 좋고 고객에게 잘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원교육도 잘 시켰습니다. 특히 프랑스에는 도요타 공장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베스트(Best)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이 보도한 전후로 별다른 변화는 없습니다.”
유럽 혼다의 토마스 메스닐(Thomas Mesnil) 씨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유럽에서는 도요타 사태가 큰 영향이 없습니다. 적어도 유럽 혼다에는 영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혼다는 혼다의 길을 가는 거죠. 다만 신경이 좀 쓰이는 점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에서 사고가 났다는 점입니다.”
도요타 부스를 찾은 말레이시아 칩 얍(chip Yap) 기자는 도요타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 와서 차를 보니까 여전히 세계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리콜이나 차량 사고는 어느 회사나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도요타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가지고 미국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것은 세계 제일의 업체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도요타가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 흄(Don Hume) 포드 유럽지역 이사의 말이다. “도요타 때문에 포드사가 이익을 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연관이 없다고 봅니다. 판매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겠지만, 포드는 포드만의 기준이 있고 나아갈 길이 있는 거죠.”
일본인들은 이에 반해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닛산 자동차 상품기획실 게노 가토(Keno Kato) 씨는 도요타 사태를 보고 복잡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저는 경쟁업체에서 일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제가 느끼기에는 (도요타사태 이후) 별다른 큰 차이가 발생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유럽사람들이 도요타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큰 믿음도 주고 있죠. 다만 이번 모터쇼에 와 보니까 딜러들에게 안전에 대해 질문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안전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겠죠. 그런데 정작 일본인들은 안전성에 대해 덜 관심을 가집니다. 그 이유는 일본인들은 속도를 높이 해서 달리는 경우가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월등히 적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지로 가스타 씨는 이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번 도요타 사태는 기술적인 결함이 문제가 아닙니다. 도요타의 문제 접근방식이 문제인 거죠. 미국 언론에서 보도를 크게 한 측면도 있지만, 고객한테 무언가를 계속 숨기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번 사태로 도요타가 상당한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하나라도 터지면 다른 방면에 금방 타격이 있게 되잖아요. 이미 도요타 사태는 전 세계적인 사태가 됐다고 봅니다. 1980년대에 아우디도 지금의 도요타와 비슷하게 기술적인 문제를 겪었는데요, 물론 해결이 됐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더 잘하고 분발을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도요타에 닥칠 수 있다고 봅니다.”
도요타 부스에서 만난 유럽 도요타 소속 콜린 헨슬리(Colin Hensley) 씨는 안전관련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아서 예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저희 도요타를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에도 관심이 많고요.” 도요타 사태를 유럽에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미국 언론은 크게 보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느 나라나 나라마다 대응방식이 다릅니다. 사태가 미국에서 일어났으니 미국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것이고 유럽은 사고가 없지 않았습니까. 사실을 다르게 보는 것이죠.”
‘친환경’ 합창, 소형차 돋보여
사회 전반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는 친환경이라는 테마는 다소 식상한 주제지만 자동차 업계에 적용되는 친환경의 수준은 걸음마 상황이다. 전기차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막대한 비용에 상용화되기에는 멀었고 아직도 기술 개발이 더디다. 이 때문에 제네바 모터쇼에는 푸른색과 흰색으로 쓰인 글씨나 ‘BLUE’라는 글씨가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자신들이 내놓은 차량을 보다 더 환경 친화적으로(Eco friendly) 보이게 하고,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각축전을 펼쳤다. 그래서 많이 등장한 단어가 ‘블루(Blue)’였고, ‘블루’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푸른색이나 흰색 차량이 여기저기 많이 눈에 띄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 BMW 전시장에서는 ‘Active E’라는 차량이 눈에 띄었다. 이 차량은 차량 외부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 줄로 장식돼 있었으며 제네바 모터쇼에 전시된 전기차 가운데 대표적인 차량이었다. 전기모터만으로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5.5㎏·m의 성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9초 만에 도달할 수 있다. 최고속도는 145㎞/h이며 배터리 완전 충전 시 16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방전된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는 데 드는 시간이 불과 3시간이라는 장점이 있는 차량이다.
폴크스바겐 전시장에는 ‘Think blue’라는 푸른색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폴크스바겐이 내놓은 친환경 차량은 디젤 자동차 ‘폴로 블루모션’이다. 이 차량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당 91g에 불과한 데 비해 연비가 1ℓ에 34.29㎞의 세계 최고 수준으로 웬만한 하이브리드차보다 높다.
푸조는 ‘5 by PEUGEOT’라는 디젤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였다. 이 차량에는 푸조만의 독특한 ‘푸조 하이브리드4’ 기술이 적용됐다. 이 방식은 디젤 엔진으로 앞바퀴가 움직이며 디젤엔진이 움직일 때 축적되는 에너지를 통해 전기모터를 가동해 뒷바퀴가 구동되게 했다.
폴크스바겐의 마르틴 빈터콘(Martin Winterkorn) 회장은 “운전하는 재미를 주면서 연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신차를 계속 선보일 것”이라며 “2018년까지 전체 판매량의 3% 이상을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카로 채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소형차들도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소형차는 자동차 업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세계 자동차 업체 CEO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몬테제몰로(Montezemolo) 피아트 회장은 “인기있는 도시형 소형차인 500을 2012년 크라이슬러를 통해 미국시장에도 내놓겠다”고 공개했다.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Norbert Reithofer) BMW그룹 회장은 “프리미엄 차종 중에서도 소형차 시장의 전망이 특히 밝다”며 “작은 차급에선 BMW가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후륜구동보다 전륜 및 4륜 구동형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친환경, 소형화’ 트렌드는 일부 모터쇼에 한정된 콘셉트가 아닌,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며 “특히 유럽지역은 전통적으로 소형차와 연료 효율이 높은 차량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소형차 선호 추세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키워드로 계속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스포츠카들도 친환경 바람
친환경 바람은 화려한 스포츠카에도 녹아들었다. 지금까지 스포츠카 업체들이 내놓는 친환경 모델들은 콘셉트카 위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데 반해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 업체들이 내놓은 친환경 모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일으키는 변화였다.
수퍼카의 대명사인 이탈리아 페라리는 초록색 하이브리드카를 내놓았다. 보통 빨간색 모델을 신차로 내놓는 것에 견주어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한 페라리 관계자는 자신도 초록색 페라리는 상당히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화되고 있는 연비규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페라리 역시 변해야 살 수 있다는 의견이 그룹 내에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의 람보르기니는 초록색 모델 ‘수퍼레가자’를 내놓았다. 스테판 윈켈만 람보르기니 CEO는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로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 모델보다 연비효율을 20% 이상 좋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포르셰는 폴크스바겐 그룹으로 편입된 이후 내놓는 최초의 신차로 바이오에탄올 차량인 ‘918 스파이더’ 모델을 내놨고 벤틀리는 12기통의 콘티넨털 수퍼스포츠 컨버터블 차량을 바이오에탄올 차량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현장에서 모터쇼를 지켜보고 있던 미국 포드사의 유럽지역 돈 흄 이사는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흄 이사는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업종에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자동차 업계도 그 의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추세에 맞게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를 앞다퉈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포드사도 2013년까지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은 “예전에도 새로운 소재를 찾아서 GE 등의 회사와 일을 해봤지만 이번 바스프와의 협업은 특히 더 만족스럽다”며 “콘셉트카지만 당장 양산에 적용해도 될 만한 기술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독일 화학회사(BASF)와 합작으로 신차 선보여
제네바 팔렉스포의 1번 홀에 설치된 1031번 현대차 부스도 흰색 바탕에 파란색 글귀로 장식됐다. 현대자동차는 제네바 모터쇼에 쏘나타와 비슷한 크기의 중형급 디젤 하이브리드 차량인 ‘아이플로(i-Flow)’를 공개했다. 현대차 유럽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한 아이플로는 중형차급 스포츠 세단으로, 최고출력 115마력의 1.7ℓ급 U2 디젤엔진과 6단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장착됐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제네바 현지에서 제네바 모터쇼에 출시된 차량 가운데 가장 훌륭한 차를 묻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아이플로’라고 답하는 등 자신감을 보였다.
아이플로의 외관은 매끈하면서도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결이 연상되는 아이플로가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독일 화학회사인 바스프의 기술이 접목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완성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엔진이나 배터리 충전시간 등 다소 진부한 주제를 입에 올리고 있지만 현대차와 바스프는 다른 방식의 친환경성을 강조해 제네바 모터쇼에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바스프가 현대차에 제공한 기술은 ▲차량이 정지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열 손실을 막아주는 엔진 보온 시스템(Thermal Engine Encapsuleation), ▲차량의 배기열 회수 효율을 높여주는 고효율 열전소자(Thermal Electric Generator), ▲적외선을 차단해 차량 실내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비금속성 적외선 차단필름 등 25가지에 달한다.
이 때문에 아이플로 차체 무게는 30㎏ 이상 줄었고 무게가 가벼워지자 연료 효율은 더욱 높아졌다. 또 일반적인 디젤 차량이 겨울철 온도가 낮아졌을 때 엔진의 온도를 높인 뒤에 출발해야 함에 반해 엔진용 신소재를 도입하게 돼 차량의 출발 대기시간이 줄어들었다.
바스프와 현대차는 지난 2008년부터 400만~500만 유로(약 60억~77억원)의 개발비를 절반씩 부담하며 아이플로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동아시아 시장 확대와 자동차 부문의 매출 증대를 노리는 바스프에 현대차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아직 유럽시장 점유율이 2%대에 불과한 현대차로서도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의 지명도를 유럽시장에서 함께 활용할 수 있게 돼 서로에게 이익이 됐다.⊙
행사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는 10만㎡(약 3만 평) 넓이에 수십 미터 높이의 실내 전시장이다. 우리나라의 코엑스 전시장이나 킨텍스 전시장과 같은 성격의 공간으로 이곳은 총 7개의 홀로 구성돼 있었다. 전 세계 30개국, 250개 업체가 700여 차종을 새롭게 선보였고, 가까운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과 말레이시아, 대만 등의 아시아 국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국가에서 온 기자들과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신차 발표회는 15분 단위로 한 업체씩 이어졌다. 바로 옆 부스가 신차 발표회를 마치면 바로 옆에 있는 부스가 발표회를 여는 형식이었다. 대부분의 업체는 시간이 임박하면 설치해 놓은 화면에 곧 발표회가 열린다는 예고를 하고 시간이 되면 ‘10, 9, 8, 7… 2, 1, 스타트(START)’라는 표시를 한 뒤에 발표회를 진행했다. 업체의 CEO가 직접 발표에 나선 경우도 있고, 유럽지역 총 책임자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 현대차는 정의선(鄭義宣)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직접 영어로 설명했다.
업체마다 차지하는 부스의 크기는 달랐고, 행사장을 찾는 손님의 수도 업체마다 달랐다. 아우디나 벤츠, 포드 등 잘 알려진 자동차 회사 부스에는 온종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신형 발표회를 찾는 사람의 수도 이들 업체에 가장 많았다. 업체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저명인사를 동원하기도 했다. 아우디는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Randall Timberlake)를 등장시켰고, 벤츠 발표회에는 F1의 황제 슈마허가 나왔다.
모터쇼 하면 밝은 조명에 비친 알록달록한 색깔의 최신식 스포츠카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는 최신 스포츠카도 눈에 띄었고, 영화배우와 유명 스포츠 스타가 새로 출시하는 자동차들의 홍보를 위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는 차분함도 느껴졌다. 크고 화려한 차량보다는 작고 아담한 차량, 그리고 푸른색으로 대변되는 하이브리드 친환경 차량과 전기차들이 많이 목격됐기 때문이었다.
주목받은 도요타, 사죄로 발표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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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타 부스에 전시된 프리우스 차량. 제동장치 결함으로 대규모 리콜이 된 차량이지만 도요타는 이 차량을 전시관 정면에 4대나 배치했다. |
도요타의 발표회는 당초 예정시각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 원래 오후 4시30분에 열려야 했지만 앞선 다른 업체들의 발표 시간이 하나둘씩 지연되면서 오후 5시가 돼서 진행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30분 전인 오후 4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해 발표가 시작될 무렵에는 1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이 도요타의 발표회에 시선을 고정했다. 많은 사람이 몰린 관계로 뒤에서는 보이지 않자 아예 근처에 있는 계단 위로 올라가 발표회를 보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인 지로 가스타 씨는 “도요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업체이면서 이번 리콜 사태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끄는 것 같다”며 “나는 발표회 시작 1시간 전부터 이곳 부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 발표회는 도요타 사태에 대한 사죄로 시작됐다.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였다. 발표회는 도요타 유럽법인의 안드레아 포미카 부사장 한 명이 진행했다. 다른 회사의 경우 디터 제체 다임러 회장이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거물급 최고경영자(CEO) 인사와 신차 디자이너가 발표회에 등장하는 데 반해 도요타의 발표회는 포미카 부사장이 시작부터 끝까지 차분한 어조로 진행했다. 포미카 부사장은 사과와 함께 참회로 발표회를 시작했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 창업자가 월등한 품질을 가진 차를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합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신을 망각했습니다.” 포미카 부회장 뒤에 있는 도요타 부스 화면에는 도요다 기이치로 창업주의 사진과 그가 남긴 이 말이 영어로 함께 나타났다. 행사장 옆에서는 오카모토 가즈오 도요타 부회장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는 고객들의 기대를 배신했다”며 “디자인과 제조，판매 등 모든 과정에 새로 눈을 뜨고 있다”고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유럽 도요타 조직은 여전히 잘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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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 모터쇼에서 사과하는 안드레아 포미카 도요타 부사장. |
그렇다면 제네바 모터쇼를 찾은 유럽 사람들의 견해는 어떨까? 기자가 현장에서 만나본 자동차 업계 종사자들이나 언론인들 상당수는 도요타 사태는 유럽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대부분 도요타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지역에 명성을 쌓아 왔고, 그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스에서 기아차 판매를 담당하는 파파도폴로스(Papadopoulos) 씨는 “도요타는 그리스에 아주 강력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며 “유럽 지역 고객 대부분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파파도폴로스 씨의 얘기다. “도요타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 지역에서 최고입니다. 질도 좋고, 믿을 수 있는 차량으로 오래전부터 유럽사람들에게 각인돼 있죠. 그리고 유럽지역에 조직이 굳건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또 유럽사람들에게 책임감을 훌륭히 가지는 자동차 회사로 각인돼 있죠. 각종 사회 복지 사업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랫동안 쌓여 왔기 때문에 리콜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릴 가능성은 없습니다. 리콜은 도요타뿐만 아니라 포드나 GM 같은 미국 업체들에도 많잖아요. 오히려 이번 사태가 도요타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핀란드 기자 메티 하주라(Matti Heijura) 씨도 도요타는 훌륭한 회사라고 치켜세웠다. “핀란드 사람들은 도요타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요타 사태가 핀란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핀란드에서 보면 도요타가 잘 대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동차 질이 좋잖아요. 가격도 합리적이고 오래전부터 명성을 잘 쌓아 놓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한 자동차 딜러의 말이다. “도요타는 프랑스에서 믿을 만하며 품질 좋고 고객에게 잘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원교육도 잘 시켰습니다. 특히 프랑스에는 도요타 공장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베스트(Best)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이 보도한 전후로 별다른 변화는 없습니다.”
유럽 혼다의 토마스 메스닐(Thomas Mesnil) 씨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유럽에서는 도요타 사태가 큰 영향이 없습니다. 적어도 유럽 혼다에는 영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혼다는 혼다의 길을 가는 거죠. 다만 신경이 좀 쓰이는 점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에서 사고가 났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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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타 발표회를 지켜보는 사람들. 사람들이 몰리자 아예 일부는 잘보이는 뒷쪽 계단까지 올라가서 발표회 광경을 지켜봤다. |
돈 흄(Don Hume) 포드 유럽지역 이사의 말이다. “도요타 때문에 포드사가 이익을 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연관이 없다고 봅니다. 판매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겠지만, 포드는 포드만의 기준이 있고 나아갈 길이 있는 거죠.”
일본인들은 이에 반해 다양한 목소리를 냈다. 닛산 자동차 상품기획실 게노 가토(Keno Kato) 씨는 도요타 사태를 보고 복잡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저는 경쟁업체에서 일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제가 느끼기에는 (도요타사태 이후) 별다른 큰 차이가 발생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유럽사람들이 도요타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큰 믿음도 주고 있죠. 다만 이번 모터쇼에 와 보니까 딜러들에게 안전에 대해 질문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안전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겠죠. 그런데 정작 일본인들은 안전성에 대해 덜 관심을 가집니다. 그 이유는 일본인들은 속도를 높이 해서 달리는 경우가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월등히 적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지로 가스타 씨는 이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번 도요타 사태는 기술적인 결함이 문제가 아닙니다. 도요타의 문제 접근방식이 문제인 거죠. 미국 언론에서 보도를 크게 한 측면도 있지만, 고객한테 무언가를 계속 숨기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번 사태로 도요타가 상당한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하나라도 터지면 다른 방면에 금방 타격이 있게 되잖아요. 이미 도요타 사태는 전 세계적인 사태가 됐다고 봅니다. 1980년대에 아우디도 지금의 도요타와 비슷하게 기술적인 문제를 겪었는데요, 물론 해결이 됐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더 잘하고 분발을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도요타에 닥칠 수 있다고 봅니다.”
도요타 부스에서 만난 유럽 도요타 소속 콜린 헨슬리(Colin Hensley) 씨는 안전관련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이틀밖에 지나지 않아서 예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저희 도요타를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하이브리드 차량에도 관심이 많고요.” 도요타 사태를 유럽에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미국 언론은 크게 보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느 나라나 나라마다 대응방식이 다릅니다. 사태가 미국에서 일어났으니 미국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것이고 유럽은 사고가 없지 않았습니까. 사실을 다르게 보는 것이죠.”
‘친환경’ 합창, 소형차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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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W가 내놓은 순수 전기 콘셉트카 ‘액티브 E’. |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 BMW 전시장에서는 ‘Active E’라는 차량이 눈에 띄었다. 이 차량은 차량 외부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 줄로 장식돼 있었으며 제네바 모터쇼에 전시된 전기차 가운데 대표적인 차량이었다. 전기모터만으로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5.5㎏·m의 성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9초 만에 도달할 수 있다. 최고속도는 145㎞/h이며 배터리 완전 충전 시 16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방전된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는 데 드는 시간이 불과 3시간이라는 장점이 있는 차량이다.
폴크스바겐 전시장에는 ‘Think blue’라는 푸른색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폴크스바겐이 내놓은 친환경 차량은 디젤 자동차 ‘폴로 블루모션’이다. 이 차량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당 91g에 불과한 데 비해 연비가 1ℓ에 34.29㎞의 세계 최고 수준으로 웬만한 하이브리드차보다 높다.
푸조는 ‘5 by PEUGEOT’라는 디젤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였다. 이 차량에는 푸조만의 독특한 ‘푸조 하이브리드4’ 기술이 적용됐다. 이 방식은 디젤 엔진으로 앞바퀴가 움직이며 디젤엔진이 움직일 때 축적되는 에너지를 통해 전기모터를 가동해 뒷바퀴가 구동되게 했다.
폴크스바겐의 마르틴 빈터콘(Martin Winterkorn) 회장은 “운전하는 재미를 주면서 연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신차를 계속 선보일 것”이라며 “2018년까지 전체 판매량의 3% 이상을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카로 채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소형차들도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소형차는 자동차 업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세계 자동차 업체 CEO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몬테제몰로(Montezemolo) 피아트 회장은 “인기있는 도시형 소형차인 500을 2012년 크라이슬러를 통해 미국시장에도 내놓겠다”고 공개했다.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Norbert Reithofer) BMW그룹 회장은 “프리미엄 차종 중에서도 소형차 시장의 전망이 특히 밝다”며 “작은 차급에선 BMW가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후륜구동보다 전륜 및 4륜 구동형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친환경, 소형화’ 트렌드는 일부 모터쇼에 한정된 콘셉트가 아닌,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며 “특히 유럽지역은 전통적으로 소형차와 연료 효율이 높은 차량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소형차 선호 추세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키워드로 계속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스포츠카들도 친환경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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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셰가 내놓은 하이브리드 차량 ‘918 스파이더’. |
수퍼카의 대명사인 이탈리아 페라리는 초록색 하이브리드카를 내놓았다. 보통 빨간색 모델을 신차로 내놓는 것에 견주어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한 페라리 관계자는 자신도 초록색 페라리는 상당히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화되고 있는 연비규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페라리 역시 변해야 살 수 있다는 의견이 그룹 내에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의 람보르기니는 초록색 모델 ‘수퍼레가자’를 내놓았다. 스테판 윈켈만 람보르기니 CEO는 “하이브리드나 전기차로 개발된 것은 아니지만, 기존 모델보다 연비효율을 20% 이상 좋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포르셰는 폴크스바겐 그룹으로 편입된 이후 내놓는 최초의 신차로 바이오에탄올 차량인 ‘918 스파이더’ 모델을 내놨고 벤틀리는 12기통의 콘티넨털 수퍼스포츠 컨버터블 차량을 바이오에탄올 차량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현장에서 모터쇼를 지켜보고 있던 미국 포드사의 유럽지역 돈 흄 이사는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흄 이사는 “지구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업종에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자동차 업계도 그 의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추세에 맞게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를 앞다퉈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포드사도 2013년까지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은 “예전에도 새로운 소재를 찾아서 GE 등의 회사와 일을 해봤지만 이번 바스프와의 협업은 특히 더 만족스럽다”며 “콘셉트카지만 당장 양산에 적용해도 될 만한 기술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독일 화학회사(BASF)와 합작으로 신차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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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가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와 손잡고 내놓은 콘셉트카 아이플로. |
아이플로의 외관은 매끈하면서도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결이 연상되는 아이플로가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독일 화학회사인 바스프의 기술이 접목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완성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 엔진이나 배터리 충전시간 등 다소 진부한 주제를 입에 올리고 있지만 현대차와 바스프는 다른 방식의 친환경성을 강조해 제네바 모터쇼에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바스프가 현대차에 제공한 기술은 ▲차량이 정지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열 손실을 막아주는 엔진 보온 시스템(Thermal Engine Encapsuleation), ▲차량의 배기열 회수 효율을 높여주는 고효율 열전소자(Thermal Electric Generator), ▲적외선을 차단해 차량 실내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비금속성 적외선 차단필름 등 25가지에 달한다.
이 때문에 아이플로 차체 무게는 30㎏ 이상 줄었고 무게가 가벼워지자 연료 효율은 더욱 높아졌다. 또 일반적인 디젤 차량이 겨울철 온도가 낮아졌을 때 엔진의 온도를 높인 뒤에 출발해야 함에 반해 엔진용 신소재를 도입하게 돼 차량의 출발 대기시간이 줄어들었다.
바스프와 현대차는 지난 2008년부터 400만~500만 유로(약 60억~77억원)의 개발비를 절반씩 부담하며 아이플로를 공동으로 개발했다. 동아시아 시장 확대와 자동차 부문의 매출 증대를 노리는 바스프에 현대차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아직 유럽시장 점유율이 2%대에 불과한 현대차로서도 독일 화학회사 바스프의 지명도를 유럽시장에서 함께 활용할 수 있게 돼 서로에게 이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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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루트비히스하펜(Ludwigshafen)시에 있는 화학기업 바스프(BASF) 전경. |
| [인터뷰] 현대차와 손잡은 독일 바스프(BASF) 하프케 아태지역 사장 “금융위기는 아시아 자동차 시장에 기회”
1865년 창립된 바스프는 올해로 145년 된 장수기업이다. 창업주 프리드리히 엥겔호른(Engelhorn)이 1865년 루트비히스하펜을 거점으로 콜타르 염료 생산시설을 만들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엥겔호른은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염료를 생산해 팔면 어떨까”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기술 부문을 담당한 2명과 자금을 담당한 1명 등 총 3명의 동업자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15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전문 경영인(CEO)이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창업 이후 청바지에 쓰이는 인디고, 메틸렌 블루 등의 염료로 세계 염료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빠르게 성장한 바스프는 현재 전 세계 250여 개 공장에서 단순 석유화학 제품부터 최첨단 나노화학 제품까지 8000종이 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울산과 여수, 군산, 안산에 6개의 공장이 있으며 11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볼프강 하프케(Wolfgang Hapke) 바스프 아태지역사장은 기자와 만나 글로벌 경제위기는 아시아 자동차 제조업체에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은 2008년에 시작된 금융위기의 타격이 가장 컸던 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느 나라도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선진국 시장이 아시아나 개발도상국보다 더 심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아시아 자동차 제조업체에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경제가 회복되면 아시아 업체들은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금융위기 때문에 대형차나 고급차보다는 소형차와 중저가형 차량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했습니다. 스타일이나 안전, 성능, 환경 친화성 등에 대한 기준만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가격은 낮지만, 성능은 우수한 중소형 차량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아시아 자동차 제조업체에 오히려 기회가 된다는 거죠.” 하프케 사장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 시장인 아시아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말했다. “바스프와 현대자동차와의 협력은 이번에 선보인 아이플로가 처음이 아닙니다. 15년 전부터 현대차는 아시아 자동차업체 중에서는 최초로 저희가 제공한 기술을 이용해 플라스틱 흡기 매니폴드를 제작했습니다. 화학제품 공급업체와 자동차업체 간에는 수많은 과정이 존재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현대차를 잘 이해하게 됐고, 현대차 설계 엔지니어들도 저희 R&D 센터에서 연구하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2009년 아시아는 전 세계 승용차 판매량의 37%(2200만 대)를 차지하면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금융위기 동안 자동차 생산량이 증가한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죠. 아시아의 승용차 생산량은 미국 및 EU의 승용차 생산량을 합한 것보다도 2800만 대가 더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동안 저희 회사는 OEM방식으로 자동차를 제조하는 업체와 공동으로 비용 절감을 지원할 수 있는 생산 프로세스 개발이나 자동차 중량 감소, 안전, 환경 등을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10년 정도가 지나면 전 세계 자동차 수가 약 12억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구가 이 차들을 감당하려면 자동차를 더 작고 가볍고,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연비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혁신이 필요하죠. 자동차 부품을 금속 대신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면 안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연료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혁신적, 친환경적인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 자동차 업계와 협력을 계속할 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