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韓美동맹, 이대로 충분한가? : 월간조선

지난 2월 초 커트 캠벨 미(美) 국무부 동아태(東亞太)담당 차관보는 “오늘의 한미(韓美)관계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고 장담했다. 스티븐스 주한(駐韓) 미국대사도 3월 4일 한 포럼에서 “작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동맹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고 말했다”면서 튼튼한 한미 우호관계를 조목조목 강조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햇볕 10년, 한미관계가 ‘사실상 이혼한 사이’니 ‘관(棺) 속의 시신(屍身)’이니 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을 때도 양국(兩國) 담당자들의 말은 항상 ‘과거 어느 때보다도 좋다’며 매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것을 기억하는 마음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지금은 몰라도 장차 미국의 상당한 희생적 도움이 필요할 때 과연 동맹의 도리를 끝까지 지켜줄 것인지 어쩐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1. 미국 <2010 QDR>이 한국안보에 주는 함의

지난 3월 9일 경북 포항 해병대 유격장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 ‘키 리졸브’에 참가한 한미 장병들이 함께 함성을 지르고 있다.

당장 지난 2월 1일 미국 <2010 QDR>(4개년 국방검토보고서)에서 ‘주한미군의 해외전환 가능성’을 명문화하고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과 펜타곤 고위관계자들이 연이어 ‘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 지원은 지연될 것’이라고 밝힌 것들이 한국에 은근한 충격을 주고 있다. 하긴 2009년 정상회담 후에도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한미군 전환 배치 가능성’을 시사(示唆)한 바 있고,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을 비롯해서 많은 미 고위 관계자들은 진작부터 “전작권이 전환되면 미국은 해·공군 위주로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왔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우리가 ‘주한미군의 전환 배치’를 무조건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 미국은 지금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여기에 한국군도 묶어 범(汎)세계적 안보위협에 함께 대처하고 싶어하고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래야 2009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게이츠 장관이 언급한 ‘한국 유사시 온 세계에 펼쳐져 있는 미국군의 총체적 대처’에도 명분이 생길 것이다. 또 그런 글로벌한 협력관계야말로 한미가 함께 열어 가기로 한 전략동맹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아니 적극적으로 보면 그것이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다. 지금은 한 나라의 군대가 국경을 넘나들며 온 세계의 인권과 평화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보호해 주고 그것이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로 존중되어 그 나라의 국위(國威)를 높이고 국익(國益)을 수호하는 시대요, 한국군은 그런 국제적 임무에 관한 한 특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美, 유사시 지상군 증원 어렵다

2004년 8월, 이라크로 투입되는 주한미군 2사단 2여단 장병들이 오산기지에서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우려할 만한 이유도 충분히 있다. 미국의 군비(軍備)태세가 ‘테러와의 전쟁’ 같은 ‘우발사태 대응작전(Contingency Operation)’ 중심으로 바뀐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핵과 재래식 군사력이 핵심적 안보위협인 우리에게는 별로 좋을 것이 없고, 미국이 실제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세계 각지의 위기에 투입하는 글로벌 기동군(機動軍)으로 바꾸면서, ‘한반도 유사시 적시적절한 지상군 증원도 어렵다’고 한다면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억제력과 분쟁 대비 기능은 더욱 약화(弱化)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공군으로 보완한다지만 기본적으로 육·해·공 합동작전으로 수행되는 현대 전장(戰場)에서 지상군이 없는 해·공군의 역량 발휘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연합사 해체에다 이런 조치까지 이어지는 것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인지 그것도 걱정스럽다.

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아마도 미 고위 당국자들의 언급과 QDR의 행간에서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과 유사시 미 증원전력(增援戰力)의 약화 및 변질’,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미국의 한국 방위의지의 변화 가능성’ 같은 것들이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동안에는 밝히기조차 좀 부담스러워 하던 이런 문제를 미국이 갑자기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QDR에까지 거론하고 나선 것이 혹시 미국이 ‘때마침 연합사도 해체되겠다, 차제에 한미동맹의 성격과 내실을 실제로 바꾸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실 안보환경이 달라지고 전략적 요구가 다르니 함께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반도에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90일 이내에 수십만의 대규모 미 증원전력을 투입한다’는 작전계획을 작성할 때의 마음가짐과 ‘유사시 지상군 투입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굳이 공언하고 나서는 오늘의 동맹의지가 같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이런 새삼스런 논란뿐만 아니라 지난 1월 북한이 제기한 ‘평화협정’ 논란도 작년 말 힐러리 국무장관이 먼저 꺼냈고 평양을 다녀온 보즈워스는 “비핵화 논의에 추진력이 생기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준비할 것”이라고 한 발 더 나갔던 것도 은근히 마음에 걸린다. 북한은 이번에도 미·중(美中)만을 거론했듯이 북한의 평화협정 대상은 미국이라고 몇 번이나 밝혀 왔고, 그것이 사실상 한미동맹의 해체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모를 리 없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곱씹어 보면 어쩐지 ‘더 좋을 수 없다’는 말이 오히려 공허해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오늘의 한미관계가 햇볕 10년 동안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해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문제는 ‘그 정도로 충분한가’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안보환경과 한미동맹에 대한 전략적 기대가 모두 매우 특별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 왜 새삼 한미동맹인가?

오늘 우리는 경제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했고, G20회의를 끌어올 만큼 국제적 위상도 높아진 데다가 북한은 사실상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으로 몰려가 있다. 실제로 잘만 대처하면 통일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기회의 시대라는 기대가 높다.

그러나 곰곰 냉철하게 따져 보면 내실(內實)은 전혀 다른 측면도 있다. 이 세계화 시대에 국제사회 공통의 안보 이슈인 테러와 같은 현대 신종위협(新種威脅)도 이제는 우리를 직접 겨냥하고 있고, 팽창주의적 중화사상(中華思想)같이 단순한 잠재적 위협이었던 주변국의 위협도 점차 민족적 생존을 가름할 결정적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과 간접침략(間接侵略), 그리고 특히 핵(核) 위협은 갈수록 크게 증대되고 있다. 더할 수 없는 도전의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다양한 안보 위협 중 그 어느 것 하나 튼튼한 한미동맹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없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려면 더욱더 필요한 것이 튼튼한 한미동맹인 것이다.

中, “한미동맹 짚고 넘어가야”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한미동맹 강화는 중요하다.

예컨대 우선 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자면 일상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신종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미국과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중국 문제도 좀 복합적이지만 결론은 마찬가지다. 사실 오늘의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생존과 북한 핵문제의 해결, 그리고 한반도 통일번영의 미래를 열어나가려면 어떻게 하든 공감과 이해를 얻어내야 할 상호협력의 대상인 동시에 적절한 억제와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국교(國交) 수립 불과 18년 만인 지금, 한국은 중국의 세 번째 무역대상국이자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유례없이 급속하게 발전해 왔지만 중국 정부는 항상 유사시 상호 자동개입을 명시한 조·중(朝中)동맹의 입장에 확고히 서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지금도 말로는 한반도 비핵화에 공감한다면서도 지난 2월 3일 워싱턴 미국외교정책분석연구소(IFPA)에서는 중국 대표단이 “이제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해야 할 때”라면서 “한미동맹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하고”, “대북(對北)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을 사실상 핵 국가로 봐야 한다”고 강변할 정도다.

더욱이 우리 입장에서는 서남공정(西南工程)으로 티베트를 피로써 장악한 데 이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내세우고 투자니 지원이니 해 가며 북한 곳곳에 중국을 깊이깊이 심고 있는 중화사상의 팽창주의적 특성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도 만약 세계사의 흐름이 오늘 같으면 북한이 중국의 배타적 영향권하에 드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고, 그럴 경우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가적 생명도 결정적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다.

한국이 이런 복합적 필요와 우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도 튼튼한 한미동맹 외에는 사실상 길이 없다. 심지어 그 급속한 한중관계 발전에는 경제협력의 필요성 못지않게 멀리 미·중 패권(覇權) 쟁탈전을 내다보는 중국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배경이 되어 왔다는 재미있는 주장도 있다. 한중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한미동맹이 튼튼해야 한다는 역설(逆說)인 셈이다. 결국 중국의 호의적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한반도에 대한 야심은 효과적으로 억제해야 하는데 그것이 모두 튼튼한 한미동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긴 그래야 한중관계도 원만할 수가 있지, 한미동맹의 기반이 없는 한중 밀착은 자칫 중국에의 ‘예속’이나 업신여김을 자초할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北, “핵은 통일의 원동력”

오늘 가장 결정적 위협인 북한 핵에 대처하는 데는 한미동맹이 더욱 중요하다. 전략적 차원의 핵억제 전력은 물론이요, 재래식 첨단 전력에 의한 예방억제 역량 같은 것들이 모두 미국의 적극적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전력들이어서, 사실상 유일한 현실적 대안은 한미동맹을 더욱 튼튼히 하는 것뿐이요, 특히 억제란 본래 심리적인 것이어서 튼튼한 한미동맹의 현실체인 연합사 체제를 확고히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대응수단이다. ‘연합사를 해체해도 핵우산은 보장해 준다’지만 실은 연합사가 서울에 주둔하는 그 자체가 가장 확실한 ‘핵우산’이요, 연합사가 해체되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핵우산’ 효과인 것이다.

하긴 그렇게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한국이 핵을 갖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요, 미국의 핵우산 강화나 확장억제를 약속받는다고 될 일도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같이 다른 나라의 핵이라면 몰라도 우리에 대한 북한 핵의 위협은 미국 핵우산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의 다양한 도발을 부추기고 촉발시키면서 우리는 북한의 그런 일상적 도발에도 효과적 대처가 어렵게 될 것이고, 유사시 미국의 지원도 쉽지 않게 만들 것이다. 혹시 평화가 유지된다 해도 노예적인 평화가 될 것이고, 그것은 북한 간접침략과 더불어 한반도 적화(赤化)의 길을 닦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2006년 핵실험 후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이라는 김명철 조미평화연구소장도 언론에 ‘(핵은) 통일의 원동력’이라고 호언(豪言)하지 않았던가? 결국 우리로서는 국가적 생존을 위해서도 어떻게든 북한 핵을 폐기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도 거의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선 오늘 북한에 있어서의 핵은 김정일 체제 정통성의 방증(傍證)이자 권위의 상징이요, 북한이 먹고사는 수단이자 대외 교섭력의 바탕이다.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도대체 수백만의 인민을 굶겨 죽여 가며 만든 핵이요, 핵을 만든 그 체제 그 사람들이 다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스스로 폐기하기를 기대하겠는가?

결국 2007년 2월 리처드 아미티지가 2차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한반도가 자유민주 체제로 통일되지 않는 한 항구적 핵 폐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 위해 힘쓴 것은 미국뿐

그래서 지금 세계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폐기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만약 6자회담 참가 5개국이 군사공격 못지않은 단호한 의지를 갖고 긴밀하게 공조(共助)한다면 그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러시아는 사실상 큰 관심이 없고 일본은 적극적이지만 별로 영향력이 없다. 중국의 내심은 오히려 북한 핵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한국은 한결 더했다. 한창 핵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에 5억 달러의 돈과 각종 물자를 끈기 있게 지원하고, 핵실험 후에도 언필칭 ‘평화’니 ‘대화’니 해 가며 핵을 폐기시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든 시리아든 직접 나서서 파괴해 버렸는데 한국은 주도적으로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세계가 함께 해결하자며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을 직접 도와주고 국제적 제재를 대신 막아 주기 바빴던 것이다. 오죽하면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이 북한 수석변호인 같다”고 했겠는가?

결국 좀 미흡했더라도 미국만이 북한 핵 개발을 막는 데 나름의 효과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셈이요,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하는 데는 그나마 미국 외에는 별반 기댈 데조차 없는 셈이다. 물론 오늘 한국의 입장은 전혀 다르지만, 북한이 핵을 폐기하게 하는 데는 한국의 직접적 영향력은 많이 제한된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 보면 튼튼한 한미동맹이 없으면 한국은 오늘 안보상의 어떤 위협에도 효과적 대처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급변하는 동북아

한국의 내일을 위해서는 더욱더 튼튼한 한미동맹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우선 오늘 북한은 누적된 정치적 경제적 실정(失政)으로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으로 다가가고 있고 여기에 김정일의 건강과 후계 문제 등이 겹쳐지면서 이른바 ‘북한 급변사태’를 예약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북한이 핵과 간접침략 등으로, 우리를 싫든 좋든 통일번영의 새 길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외통수 길로 내몰고 있다. 김정일 입장에서도 적화통일을 실제로 이루는 것 외에는 오늘의 체제위기를 벗어날 길이 없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동족분단의 모순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어떤 한계상황에 부딪히고, 싫든 좋든 남과 북의 운명을 가름하게 될 그런 상황인 것이다.

바로 이런 때에 최근 중국과 일본의 새삼스런 민족주의 바람 속에서 동북아 안보질서도 크게 흔들리는 듯하다. 특히 그렇지 않아도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라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느닷없는 미·중 갈등도 그렇지만, 동요하는 미·일 동맹체제와 그에 대비되는 일·중 접근 같은 것들이 모두 찜찜하다.

크게는 미국의 퇴조와 중국의 도약으로 특징지어지는 양상 그 자체부터가 별로 즐거울 수는 없는 데다가, 미·일관계의 변화도 멀리 보면 동북아 자유민주주의 그룹의 분열이라는 측면이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지나치게 접근해서 이른바 ‘미·중 빅딜 설’ 같은 것이 나돌아도 문제요, 지나친 갈등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기대가 너무 커지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충분한가’

우리는 지금 이런 결정적인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통일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여기에도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튼튼한 한미동맹이라는 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그 과정에는 아마도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소요가 발생할 것인데, 그런 소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다. 결국 한국이 그 다양한 도전을 억제하고 위협에 대처하는 데는 물론,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데도 튼튼한 한미동맹의 뒷받침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기야 장차 통일 후에도 상당기간 주변의 위협과 도전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켜 가는 데는 미국의 지원과 도움이 절대적일 것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이 한국의 이 다양한 안보적 소요를 충족시켜 주려면 미국이 상당한 희생을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큰데, 미국이 과연 그렇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북한 핵 폐기’에 대한 의지와 ‘한반도 자유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쉽게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임은 물론, 예컨대 북한 급변사태 시 중국의 강한 개입의지를 억제하려면 미국이 상당한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끝까지 우리와 함께 서 있어 주어야 하는데, 오늘의 한미동맹이 과연 그것을 보장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쉽게 자신할 수가 없다. ‘그 정도로 충분한가’ 하는 스스로의 의문은 바로 그런 뜻이다.

3.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년 10월 제41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후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美국방장관이 악수하고 있다.

무릇 ‘동맹관계’란 ‘공통의 위협을 전제로, 이념과 가치를 같이하는 사이에서 공통의 이익과 이해를 위한 상호지원 관계’다. 특히 군사동맹관계란 ‘상호간의 깊은 이해와 돈독한 우의가 있어야 그 기능이 살 수 있는 특별한 관계’다.

그러니까 미국이 한미동맹을 상당한 국가적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지켜야 할 특별한 동맹으로 인식하게 하려면, 양국의 혈맹적(血盟的) 우의(友誼)도 뜨겁고 한국의 동맹적 가치에 대한 신뢰도 확고해야 하며, 동시에 미국에 그만한 국가적 실익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누구나 서슴없이 혈맹관계라고 부르던 월남전 이후의 한미관계가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어떤 경우보다도 피를 함께 흘린 동맹에 특별히 깊은 동맹적 우의를 느낀다. 6·25 말기 군사동맹 체결조차 꺼리던 미국이 한국을 문자 그대로 혈맹으로 받아들인 것도 국군의 월남전 참전 이후였다.

그러나 한미 간에 그런 수준의 동맹관계를 회복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햇볕 10년의 상처가 너무 깊은 데다가, 정권이 바뀐 후에도 문제는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8년의 광우병(狂牛病) 파동에 이어 2009년에도 서울 거리를 뒤덮은 촛불을 보면서 워싱턴에서는 햇볕정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가 좌파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 아니냐 의심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점 서울을 방문한 친한파(親韓派) 미국 전문가들의 우려에는 깊은 한숨이 묻어났다. 2008년 한국을 방문했던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청와대를 예방하지 않았던 것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한미동맹의 이념적 가치와 우의 보호해야

그래서 한미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상황이요, 그것도 이제는 전술적 차원의 전통적 방식으로는 안되고 제법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들 해 왔다. 그런데다가 <2010 QDR>이 보여주는 미국의 안보상황에 대한 기본 인식도 냉전시대의 절박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당연히 한국이 추구하는 안보목표나 안보이익에 미국의 전적인 공감을 얻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력은 더욱더 지혜롭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한미동맹의 모습을 명확히 구상하고 여기에 전략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특히 아마도 동맹 수혜자로서의 입장에만 익숙했던 우리의 동맹 기본인식은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때마침 우리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수차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의 한반도 통일’까지 거론하게 만들고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체제’로의 발전을 약속한 것을, 특히 이를 위해 2010년에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도 갖기로 했음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차제에 어떻게 하든 ‘한미 전략동맹’을 한국의 필요와 기대에 맞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일단 한미동맹의 이념적 가치와 우의를 보호하는 데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햇볕이 한창 따가울 때, 미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는 “한국의 민족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이 하나가 되어 간다”고 불평했다. 우리는 주한미군의 훈련장까지 찾아가서 성조기를 불태우고 주한미군의 교통사고 하나에는 수많은 국민이 촛불을 켜 들거나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 받아내고서야 끝을 냈다. 동맹의 우의가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한미동맹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한미동맹은 칼집, 연합사는 칼날

그런가 하면 지금은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대한 한국의 대처가 너무 소극적이라며 답답해 하고, 미국은 GDP 대비 5% 가까운 무거운 국방비 부담을 감수하고 있는데, 한국의 국방비는 겨우 2.7% 정도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작년에 게이츠 장관이 강조했는데도 금년에는 오히려 더욱 감소되었다며 어이없어 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좀 더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지 싶다.

동맹체제의 재정비도 시급하고 중요하다. 지금도 연합사 해체가 진행되고 있지만 실은 지금이야말로 단순한 구두 약속이나 문서상의 동맹이 아닌 그 이상의, 지금처럼 연합사로 연결된 ‘구조적인 동맹체제’가 필요할 때다. 동맹에 가장 결정적 상처를 입힌 2007년 연합사 해체 합의를 재검토해야 할 때라는 말이다.

사실 연합사가 없는 한미동맹은 한 장의 종이쪽지에 불과할 수가 있다. 아니 오히려 한미동맹이 칼집이라면 연합사가 그 칼날이다. 현실적으로도, 북한 핵 보유는 현실이 되어 가는데 연합사만 해체해 보라. 북한의 작은 위협에도 한국은 온 사회가 전전긍긍(戰戰兢兢) 휘둘리며 오늘 같은 안정과 발전을 이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희망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한 번 흔들린 혈맹의 우의를 회복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국가 간에 이미 합의된 사항을 되돌린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북한 핵’이라는 공통의 위협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안보상의 국제적 과제, 그리고 팽창주의적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미국의 안보이익 같은 것들을 고려하면 동맹을 재정비할 수 있는 바탕은 남아 있지만, 아무래도 이런 정도만으로 우리가 희망하는 동맹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많이 미흡할 듯하다. 아마도 상당한 국가적 실익으로 한미동맹의 효용성에 대한 미국의 특별한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자면 한미 정상이 몇 번이나 약속한 대로 문자 그대로 전략동맹 차원에서 양국의 역할 분담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리고 튼튼히 굳혀 나가야 할 것이고, 여기에 동맹의 내실을 다지려면 제법 지혜로운 성찰과 잘 정제된 계획, 그리고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걸핏하면 촛불부터 켜 들 일이 아니라 미국이 먼저 ‘잘 지내자’고 손을 내밀 만큼 우리의 동맹적 가치부터 서둘러 창출하고 특히 호혜적 혜택 못지않게 위험과 책임, 부담의 공유가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도 지혜롭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美, 영국 수준의 아프간 파병 기대

이라크 자이툰에 파병됐던 한국군. 한국은 아프간 파병 등을 통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2009년 4월 초 워싱턴에서 미국 바이든 부통령은 “미국은 잘 지내고 싶은데, 한국이 제몫을 다하지 않으려 한다”고 아쉬워하더라고 한다. ‘한국의 제 몫?’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은 아마도 아프간 참전 같은 국제적 기여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3만명 증파’를 한다면서 2011년 7월부터는 철수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속한 승리에 대한 결의의 과시이자 여기에 정치적 배수진(背水陣)을 친 형세다. 당연히 맹방(盟邦) 한국군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은 월남전 이래 한국군의 국제적 임무 수행능력과 연합작전 역량을 높이 평가해 왔으니 두말할 여지가 없다.

최근 아프간 파병이 논란 속에 우리 국회를 통과했지만, 실은 파병 여부가 아니라 450명 정도면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는 다하는 것인지, 특히 그것으로 미국을 감동시킬 수는 있을 것인지 그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어느 미국 전문가는 지난 2월 미 의회 군사위원 및 힐러리의 방한은 물론, 2008년에는 청와대도 방문하지 않고 돌아갔던 게이츠 국방장관이 2009년 10월 SCM에서는 ‘확장억제를 명문화’하며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나, 양차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자유민주통일’을 거론하고 ‘모범적 전략동맹’을 다짐했던 것들이 모두 그 때문일 것이라면서 ‘영국 수준’은 기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의 파병 병력은 대략 1만명에 가깝다.

사실 ‘전략동맹’이 무엇인가? 간단히 동맹의 대상과 범위를 범사회적, 범지구적으로 넓혀 나가고 동맹의 강도(强度)를 높이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450여 명의 파병이 자칫 동맹국의 자존심을 헤집고, 협상을 앞둔 ‘전략동맹’에 대한 기대부터 깨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도대체 영국 수준까지는 몰라도 ‘반미면 어떠냐’던 정부보다도 턱없이 부족한 투자로 어떤 형태의 ‘전략동맹’을 기대할 것인가?

전략동맹 차원에서 접근하면 연합사 해체 재검토 가능

물론 그럼에도 미국은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어쩐지 우리 언론에는 ‘파병에 감사’하면서 러포트 사령관에게는 “한국에서 3000명이 무어냐?”고 손가락을 흔들어댔다는 2003년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긴 지금도 어느 미 종군기자는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는 극히 다양하고 넓다면서 일부 미군 간부들이 내년 7월 미군 철수 이후의 협력 문제까지 제기하더라”고 전하며 블랙 워터(Black Water)와 같은 보안사업체와의 민간차원의 협력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군은 이런 국제적 임무에는 강한 반면 오늘 우리 안보상의 위협에 대처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는 ‘연합사로 연계된 오늘의 한미동맹체제’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代案)이 없다. 한미간에 전략동맹 차원에서 서로 절실하게 교환할 만한 사안들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전략동맹 구축’이라는 그런 차원에서 접근하면, 아무리 펜타곤과 의회의 태도가 완강하다고 해도 연합사 해체 문제의 재검토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사실 연합사 해체가 장기적으로 건전한 한미동맹의 발전에 장애가 되고, 그것이 연합사를 유지하는 것보다도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 더 부담이 될 수도 있는 터에 재검토하게 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겠는가?

4. 바람직한 전략동맹체제 구축에 최선

물론 미국과의 ‘전략동맹체제’를 구축하는데 해야 할 일들이 이런 것뿐일까만, 중요한 것은 원래 기대가 크면 주는 것도 넉넉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창조적 미래를 경영하자면 때로는 다소 모험적 투자도 필요한 법이다.

과거 신라는 국가적 위험 속에서도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 가며 당(唐)의 고구려 침공을 도움으로써 궁극적으로 살아남고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대(大)전략적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든 이번 2+2회담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재정리하고 전통적 혈맹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한미 간 전략동맹체제를 튼튼하게 재정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오바마 대통령으로 하여금 한미동맹을 미·중 관계 못지않게, 적어도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는 동맹적 가치와 우의보다는 훨씬 더 소중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임은 물론, 나아가 어떻게 하든 통일번영의 미래를 내다보는 대전략적 차원에서 한미 간에 서로 총체적이고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오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고 보다 밝은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부담도 만만치 않을지 모르지만 때로는 부담이 아무리 커도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과제도 있는 법이다. 그나마 어쩌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실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긴 특별한 대전략적 안목과 용기, 지극한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