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 기소 사건 무죄율 무려 27.2% (2008년)로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1.5%)보다 18배나 높아.
이것은 대검 중수부에서 무리한 수사가 많았다는 증거
⊙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약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중수부 수사받은 인사)
⊙ “중수부의 수사기법은 ‘협조하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식”
⊙ 대부분 뇌물죄로 기소. 뇌물죄는 그 특성상 뇌물을 주었다고 말하긴 쉬워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고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
⊙ “범죄를 척결하지 않고 사람을 척결하려는 점은 고쳐져야”(安剛民 전 중수부장)
⊙ 朴柱宣 의원 세 번 기소됐으나 세 번 다 무죄 받아 국가로부터 2799만원의 보상금 받아
이것은 대검 중수부에서 무리한 수사가 많았다는 증거
⊙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약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중수부 수사받은 인사)
⊙ “중수부의 수사기법은 ‘협조하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식”
⊙ 대부분 뇌물죄로 기소. 뇌물죄는 그 특성상 뇌물을 주었다고 말하긴 쉬워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고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
⊙ “범죄를 척결하지 않고 사람을 척결하려는 점은 고쳐져야”(安剛民 전 중수부장)
⊙ 朴柱宣 의원 세 번 기소됐으나 세 번 다 무죄 받아 국가로부터 2799만원의 보상금 받아
-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약칭 대검 중수부)의 威名(위명)은 巨惡(거악)을 일소하는 메스를 의미한다. ‘검찰의 칼’, ‘검찰총장의 직할부대’라는 수식어는 중수부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으레 대형사건일수록 처리과정에서 복잡 미묘한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권력자의 외압, 여야 정치권과 여론의 입김, 이에 따른 曲折(곡절)과 비판이 그것이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 아들을 구속시킨 沈在淪(심재륜) 前(전) 부산고검장은 항명파동 후 퇴임사에서 “검찰이 노골적으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다”며 “그동안 일선 검사들이 정권이나 그 근처에 있는 정치검사들과 얼마나 싸웠는지 모를 것”이라고 고백했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검사들이 권력의 외압과 어떻게 맞섰는지 그들의 울분과 절망을 알지 못한다. 대검의 치욕에 곡하는 검사를 전해 듣지 못해 유감이다. 그런데 검사와 수사관들이 사는 ‘城(성)’은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甕城(옹성)과 같다. 다가서기조차 어렵다.
필자와 접촉한 전직 검찰총장은 하나같이 익명을 요구하거나 만나길 꺼렸다. 대검 중수부에다 취재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기다리다 지쳐 이메일과 전화를 돌리자 “총장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재를 거절했다.
대검 중수부 4과장과 지검장을 역임한 한 변호사는 “정권에 따라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대검 중수부가 옛날 특별수사부처럼 비쳐 폐지론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중수부 폐지 논란에 냉소적으로 답했다.
“대검 중수부와 곧잘 비교되는 도쿄(東京)지검 특수부가 일본 수상 둘을 구속시켰지 않습니까. 거악을 뿌리뽑을 때까지 중수부는 존재해야 합니다. 거악이 사라지면 중수부의 존재도 필요 없을지 모르죠.”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의 현실을 이렇게 꼬집었다.
“대검 중수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현직 장·차관, 현직 대통령 친인척, 현직 實勢(실세)를 잡아넣으라고 만든 특별조직이에요. 그런데 YS의 아들을 구속시킨 후 현직을 잡아넣은 적이 거의 없었어요. 어느새 조직의 성격이 변질돼 ‘힘 없는 사람들 잡아 조지는’ 조직이 됐어요. DJ 이후 현직 장·차관을 집어넣은 적이 있나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깨끗해져서 그럴까요? 이미 실세에 약한 조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 들이댄 검찰
이 변호사의 주장은 대검 중수부에 대한 편견과 기대가 반반씩 담겨 있는 말이었다. 盧武鉉(노무현) 정권 당시 살아 있는 권력을 들쑤시는 사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 不法(불법) 대선자금 및 대통령 측근비리 관련 사건은 대검 중수부의 인지사건이었다. 이때 대통령의 ‘잘 나가던’ 측근이 대거 구속됐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던 崔導術(최도술)씨를 비롯해 安熙貞(안희정), 강금원, 文炳旭(문병욱)씨가 구속되고 李光宰(이광재) 의원이 불구속됐다. 모두 살아 있는 권력들이었다.
당시 수사는 宋光洙(송광수) 검찰총장과 安大熙(안대희) 중수부장의 라인업이 맡았다. 파장은 오래갔고 수사는 이듬해로 이어졌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鄭大哲(정대철), 韓和甲(한화갑) 의원 등 전·현 정권 실세와 삼성·LG·SK·현대차·한화·금호·롯데·한진·두산·부영·대아그룹 등의 사장, 회장 등을 구속시키거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후 대검 중수부는 침체기로 들어섰다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林采珍(임채진)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朴淵次(박연차)씨의 비자금을 수사하며 그의 측근과 아들, 그리고 전직 대통령까지 ‘被疑者(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피의자 신분이란 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돼 있으나 아직 公訴(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
대검 중수부, 수많은 대형사건 맡아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수사는 파국을 맞는다. 기소를 전제로 하는 검찰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아니, 못 한다). 고인이 자살을 택한 것이 수사를 당한 모욕 때문인지, 아니면 확대 진행되는 수사에 압박을 느꼈기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로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중수부장이 교체됐다. 임채진 총장은 얼마 후 강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李仁圭(이인규) 중수부장 역시 한 법무법인에 합류했다. 두 사람에게 인터뷰를 청했지만 거부했다.
대검 중수부는 1981년 6월 대검 특별수사부(1973~1981)가 폐지되면서 생겼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으면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특별수사부 이전에는 중앙수사국(1961~1962), 수사국(1962~1973)이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 중추기관 역할을 맡았다. 이 조직들은 소수정예의 수사요원, 검사장급 중수부장, 지검 부장검사급인 과장들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사회의 비리와 부정을 척결했다.
초대 중수부장은 李種南(이종남) 변호사. 그는 후에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DJ 정권에서 감사원장을 지냈다. 그는 특수부 시절을 포함해 중수부에서만 8년을 일한 중수부의 산 역사나 다름없다. 초대 중수부 1과장은 李健介(이건개) 변호사가 맡았다.
이건개 변호사는 대검 특수부에서 중수부로 명칭이 바뀐 사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법무부 인권과장 시절 때 명칭을 바꿀 것을 주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사회 일각에서 왜 대검에서 ‘특별수사’를 하느냐, 특별한 수사가 필요하면 각 지검에 맡기면 된다는 지적들이 제기됐어요. 제가 ‘일일 생활권이 됐으니 전국 단위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당시 吳鐸根(오탁근) 법무장관에게 건의해서 ‘중앙수사부’란 이름이 탄생했어요. 사실 특수부는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 있는’ 사건을 수사했는데, 중수부는 국민생활 보호차원에서 수사하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중수부로 이름이 바뀐 뒤 국내 처음으로 거짓말탐지기 등 당시로선 첨단 수사장비를 외국에서 들여왔으며 전국의 수사관들을 차례로 대검에 불러 새로운 수사기법에 대한 교육을 했다. 중수부 업무분장도 이때 만들어졌다.
1대 대검 중수부의 첫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라는 ‘李哲熙·張玲子(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장 부부가 전두환 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 여사 주변의 비호를 받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비록 청와대 下命(하명)으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였다.
그리고 박영복 금융사기사건, 박동명 외화 26만 달러 유출사건, 신안해저유물 도굴사건 등의 진상을 파헤쳐 국민들의 머릿속에 ‘대검 중수부’의 이름이 뚜렷이 각인됐다. 이후 28년 동안 중수부는 수많은 대형 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다.
중수부는 검찰총장 人脈으로 구성
현재 중수부장은 29대다. 金洪一(김홍일) 중수부장 아래 중수1과장은 盧承權(노승권), 2과장은 李錫煥(이석환), 첨단범죄수사과장은 金暎鍾(김영종), 수사기획관은 李昌宰(이창재) 부장검사다. 하지만 과거의 명성이 오늘의 위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노 전 대통령 죽음으로 새로 진용이 짜인 대검 중수부는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중수부 폐지논란과 함께 새로운 轉機(전기)를 맞고 있다.
최고검찰청의 직접 수사기능은 특이한 제도다. 도쿄(東京)지검 특수부 정도만이 비슷한 예에 속하며 외국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중수부는 검찰총장이 완전히 장악하는 조직이다. 중수부 검사들의 절반 정도는 ‘검찰총장 人脈(인맥)’이 차지한다. 그래서 ‘검찰총장의 직할부대’라는 말이 나온다.
중수부의 수사결과는 총장이 직접 책임을 진다. 중수부 수사로 인한 파장은 검찰총장과 검찰 전체에 직접 미치게 된다. 韓寅燮(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여태껏 검찰의 국민적 신뢰도 저하는 중수부 사건의 처리에 대한 국민적 평가로 말미암은 점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여론의 흐름에 따라 중수부의 의지와 역량이 흔들렸다는 점이다. 외압에 맞서지 못하면 언제든 ‘표적 수사’ ‘하이에나 수사’ ‘권력의 走狗(주구)’ ‘청부 수사’ ‘정치 검찰’의 汚名(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대 정권마다 집권세력 혹은 반대세력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중수부의 중립성,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현재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권은 중수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李康來(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검찰의 과잉 수사와 이 정부의 정치 보복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한 뒤 대검 중수부 폐지,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등 검찰개혁 논의를 위해 與野(여야)가 동수로 참여하는 특위 구성을 제의했다.
대검 중수부 출신 중에서도 중수부 폐지론자가 적지 않다. 민주당 朴柱宣(박주선) 의원과 金鶴在(김학재) 변호사(대검 차장 역임)도 대표적인 중수부 폐지론자다.
인천지법 판사 출신인 국회 법사위 소속 洪日杓(홍일표) 의원(한나라당)은 지난 10월 19일 대검 국정감사에서 “대검 중수부가 2008년 44명을 기소했지만 1심에서 12명이 무죄를 받아 무죄율이 27.2%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중수부의 무죄율이 같은 해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1.5%)보다 18배나 높다”며 “무리한 수사나 미진한 수사가 많았다는 방증으로, 제도 및 수사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不敗신화’ 강박관념
극단적으로 표현해 ‘무리한 수사’와 ‘미진한 수사’가 오늘날 대검 중수부의 일그러진 肖像(초상)이다. 취재 과정에서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은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한 해 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의 말이다.
“대검 중수부 조사실은 긴 복도를 따라 몇 개가 있어요. 조사실에 들어가면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주 가끔 옆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강압수사라는 게 누구를 때리고 하는 게 아니라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약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죠.”
A씨는 “수사방식이 위압적이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중수부 검사나 수사관들은 ‘중수부가 사건을 맡으면 반드시 구속시켜야 한다’는 ‘不敗(불패)신화’ 강박관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수부 수사관은 ‘빨리 자백해라. 오래 버텨서 좋을 게 없다. 수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례를 봤는데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지만 결국엔 인정한다. 두고 봐라’고 했어요. 중수부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것을 사실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수사관들이 뇌물죄 혐의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고 했다. 뇌물죄는 그 특성상 뇌물을 주었다고 말하긴 쉬워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고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알리바이를 내놓지 못하면 고스란히 ‘덮어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수년 전 알리바이를 증명하기란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어느 시간의 일정까지 확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검찰이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피고인이 뇌물을 받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검 중수부는 툭하면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해요. 관련인의 진술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기 때문이죠. 일단 구속되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됩니다. 뇌물죄 혐의는 무죄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위에서 웬만하면 검찰과 타협하라고 합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일단 자백을 하고 더 높은 사람의 비리 사실을 알려주면 선처해 주겠다’고 회유합니다. 구속 상태에 있는 피고인들은 많은 경우 검찰과 타협합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이런 속성을 꿰뚫고 있어요. 때문에 검찰은 당연히 뇌물죄 혐의에 대해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죠.”
“형사소송법에 문제가 있다”
대검 중수부 출신 이건개 변호사는 “중수부의 무리한 수사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수사공무원(검사, 형사)이 작성한 調書(조서)를 중요한 증거능력으로 인정합니다. 한국의 법정을 보면, 판사가 재판할 때 거의 졸다시피 합니다. 심지어 법정에서 증인의 주장이 깨져도 유죄를 때립니다. 재판이 어찌됐든 검사가 작성한 조서가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조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재판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법정 중심인 미국이나 영국, 일본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판사 앞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하게 다투고, 그 과정에서 증거가 깨져 무죄로 석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서는 참고자료일 뿐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경우와 크게 다르죠.”
이 변호사는 “수사과정에서 자살하는 이가 생기는 것도 조서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조서를 재판의 결정적 증거로 인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수사 조서를 법정 중심으로 안 하고 조서에다 자백을 받아내려 애씁니다. 유리하게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죠. 그러니 자살이 생깁니다. 曺奉岩(조봉암) 선생도 법정에서 혐의가 깨어졌어요. 북에서 내려온 B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간첩으로 사형에 처했어요. 그런데 B라는 이를 만났다는 사실이 조서에 있었지만, 법정에서 깨어졌어요. 그렇다면 판사가 무죄를 때렸어야 하는데 조서를 근거로 사형에 처한 겁니다. 판사들은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생각은 않고 조서에만 의존해 판결을 내립니다. 사실 피의자가 검찰이나 경찰에서 밤샘 조사를 받다 보면 조사관과 피의자가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한 대 권하고, 그 과정에서 조서를 대충 꾸미고 도장을 덜컥 찍고 맙니다. 나중 법정에서 달리 말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엄청난 오산입니다.”
변호사 C씨는 현재 대검 중수부 조사를 받고 구속된 피의자의 변론을 맡고 있다. 그는 대검 중수부의 폐지를 찬성했다.
“(중수부의) 수사기법에 문제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협조하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식 아니겠어요? 그것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21세기 첨단수사기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너의 약점을 캐겠다,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또 대한민국 법원은 다 검찰 편이란 게 문제입니다. 李容勳(이용훈)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라’고 했더니 진짜로 다 유죄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대검 중수부가 저렇게 ‘발호’하게 된 것은 이용훈 대법원장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물론 본인의 뜻은 ‘온정주의에 끌리지 말라’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아래서 받아들이기는 ‘잘못해서 무죄로 처리했다가는 온정주의라고 비난받으니, 유죄로 판결하면 평균은 하겠구나’라고 받아들인다는 말이에요.”
―변론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언론이 대검 중수부에 아주 친화적입니다. 국가기관이니까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아무리 무죄 추정이라고 해도 유죄 추정 쪽으로 가는 것이죠.”
언론과 중수부의 밀착
―대검 중수부와 언론과의 바람직한 관계는 뭔가요.
“우선 피의사실 공표를 못 하게 해야 됩니다. 수사 브리핑이라는 게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검찰 출입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알권리가 아니라 검찰의 홍보수단에 언론이 이용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수사기획관이라는 게 결국은 ‘홍보관’ 아닙니까. 세상 어느 나라에서, 거의 검사장이 다 된 고참 부장급 검사를 홍보관으로 데려다 놓고 언론활동에 열을 올립니까.”
―법정에서 대검 중수부와의 유무죄 다툼은 다른 재판에 비해 강도가 어떻습니까.
“대검 중수부 조직은 장내외 안 가리고 전면 난타전을 가하는 조직입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악바리’처럼 물고 늘어진다, 근성 있다고 칭찬할 수는 있지만 당하는 사람은 무서워서 덜덜 떨게 마련이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KGB와 비슷합니다.”
이용호 게이트 등 대검 중수부가 지휘한 굵직한 권력형 사건에 여러 차례 변론을 맡은 변호사 D씨는 자신이 만난 어느 중수부장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개중에 공명심에 들뜬 검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온통 언론에다 흘리고 들쑤셔 ‘泰山鳴動鼠一匹(태산명동서일필)’처럼 실체는 아무것도 없이 온 나라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 정신 나간 검사가 중수부 내에 존재한다는 게 제가 만난 중수부장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중수부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에게 편의를 봐주고, 간교한 입에 놀아나는 것”이라며 “이용호 게이트 때 억울하게 날아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중수부와 타협하고 끼리끼리 노는 바람에 그 피해는 말도 못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이트니, 로비 사건으로 불리는 중수부 사건은 대개 권력이 개입되는데, 거물의 입에서 누구누구를 불도록 해 협상을 합니다. 그러면 역으로 (중수부가) 범죄인에게 계속 끌려다니는 꼴이 됩니다. ‘네가 몇 명만 불어라’는 식입니다. 같은 검찰 조직 내에서 검사가 다른 검사를 조지려고 ‘지검장 이름 하나만 대주면 나머지는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는 식의 거래가 벌어진 적도 있어요. 범죄자에게 구걸하고, 그 사람이 몇 사람을 찍어주면 고마워하고, 그 다음부터 교활한 자의 노예가 되는 식이죠. 범죄자가 찍는 대로 언론과 검찰이 움직이니까, 평소 미워했던 사람을 찍어 내리고, 반면 자신이 보호해 줄 필요가 있는 사람은 보호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부터 중수부는 ‘혹시 이 자가 고등법원이나 다른 곳에 가서 진술을 바꾸지는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는 것 아니겠어요? 말 한마디로 범죄자의 노예가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한 번은 중수부가 해외 도피 사범에게 ‘들어오기만 하면 약속한 대로 처리해 주겠다’고 해서 제가 맡은 의뢰인을 귀국시켰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한 건 안 주면 구속시켜 버리겠다’고 플리바겐상의 흥정, 배신도 하고 그랬어요.”
‘여자 문제’ 약점 잡아 자백 강요
플리바겐(plea bargain)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협상을 통해 형량을 경감하거나 조정하는 ‘事前刑量調停制度(사전형량조정제도)’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행 형사소송법상 플리바겐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기소에 대한 검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수사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피의자가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까.
“최근 상황은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수모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모 인사의 사례인데요. 검찰이 그를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아주 추운 날 좁은 대기실에 아침부터 기다리게 해 놓고 컴컴한 저녁에 가서야 조사실로 불렀답니다. 온 몸이 춥고 떨려 따스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검사는 혼자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든가 담배를 맛있게 피웠다고 합니다. 그때 가장 인간적인 처절함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D변호사는 모 은행 임원 출신 인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어느 날 조사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검사는 자리에 없더랍니다. 밑에다 일을 시켜 놓고 자신은 빠진 것이지요. 그가 임원에게 ‘다시 들어오세요’ 하더랍니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니 이번에는 ‘다시 나갔다 들어와!’ 하고 반말로 고함을 쳤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나갔다 들어오니, ‘야 이 ××야 누가 기어들어 오라 했지, 두 발로 들어오라고 했어!’ 그래서 넥타이 매고 기어가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더랍니다.
제일 치사한 것은 여자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해요. 은행계좌를 이 잡듯 뒤지고 해서 혹시 여자 문제가 불거지면, ‘마누라, 가족에게 다 까버리겠다. 자백할 거야 안 할 거야?’라고 말할 때 제일 치사하게 느꼈다고 하더군요. 물론 여자 문제에 당당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요. 그 뒤 이 분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이유 없이 목을 매달았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말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 사람은 ‘차라리 때리는 게 순진한 것’이라고 이를 갈더라고요.”
朴柱宣 의원 세 번 기소됐으나 세 번 다 무죄
검사 출신인 민주당 朴柱宣(박주선) 의원은 대검 중수부 1, 2, 3과장과 수사기획관을 모두 거치며 3년 반 정도 대검 중수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1999년 옷로비 사건, 2000년 나라종금 사건, 2004년 현대건설 비자금 수수 혐의로 자신이 근무했던 중수부에서 후배 검사들에게 수사를 받는 입장이 됐다.
두 번은 구속됐고 한 번은 불구속 기소돼 법정 투쟁 끝에 세 건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는 중수부 후배검사에게 수사를 받는 치욕을 당하면서 후배검사를 질책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박 의원은 중수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박 의원은 “중수부가 악몽이었다”고 했다.
“제가 3번이나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저를 조사한 검사들을 문책해도 뭣할 판에 승진과 영전을 했어요. 중수부 위상에 걸맞게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를 해야 하는데 수사결과가 기대 이하입니다.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 무리한 기소는 결국 기각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중수부 1심 무죄율이 27%라는 것이 이를 말해 줍니다. 총장이 지휘하는 중수부 수사가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수사기관이 무리한 수사를 펴 무죄를 받거나 영장이 기각됐다는 것은 인권침해가 빈번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역대 중수부에서 무죄율이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나요?
“제가 알기론 없었어요. 그러니 존립의 문제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압력에 의해 중수부가 도구 역할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억울하게 구속을 당해 나중 국가로부터 2799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박 의원은 “이 돈을 아주 의미있는 데 쓸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검사 시절, 자신이 지휘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검사는 혐의가 있을 경우 자기의 처자식은 물론 부모라도 수사를 해야 해요. 문제는 수사나 기소는 증거에 입각해야 합니다.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나올 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소를 해서는 안돼요. 공권력 행사과정에서 범인 열 사람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박 의원은 언론에도 할 말이 많았다.
“적어도 법치국가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첫 번째로 법원에, 두 번째로 언론에, 그 다음에 교회에 호소하라고 했어요. 제 사건의 경우 법원의 3급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검찰에서 흘리는 얘기를 대서특필해 제 명예와 인권을 훼손시켰어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은 1981년 4월 초대 중수부장을 맡아 1983년 3월까지 역임했다. 중수부와의 인연은 1974년 중수부의 전신인 대검 특수부 4과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특수부 4과(서울지검 부장검사와 겸직)는 대기업 탈세와 비리, 기업 관련 범죄 등 경제사범을 주로 맡았다. 한 과에 보통 수사관을 포함해 10명이 포진했다고 한다.
“당시 중수부에서는 마약이나 밀수수사, 장·차관급 공직비리 등을 검찰총장의 특명을 받아 수사했어요. 대형범죄를 수사할 때는 한 과로 모자라서 1~4과가 모두 참여했어요. 1975년 여수 밀수사건 때 그랬지요.”
이 전 원장은 특수부 4과장 4년, 1과장 2년, 중수부장 2년 등 기간으로 따지면 중수부에서 8년을 근무했다. 대검 역사상 중수부 생활을 가장 오래한 셈이다.
“제가 중수부에서 세 분의 검찰총장을 모셨는데 그때마다 저를 놔주지 않아 붙박이를 했지요. 경찰송치 사건은 하나도 못 하고 신경 많이 쓰이는 인지수사만 했는데, 무리한 수사를 안 해서 진정이나 투서를 받은 일은 하나도 없었어요.”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시절, 3년마다 공직자 비리 수사특명이 내려져 당시 특수부가 고위 공직자를 내사했다고 한다. 그는 “박 대통령이 ‘공무원을 그냥 놔두면 방심해지고, 방만해진다. 3년마다 충격을 줘야 공직비리를 막을 수 있다’고 해서 공직비리 사정 수사를 많이 했다”며 “청와대에서 아무개를 처벌하라는 특정인을 상대로 한 특명은 없었다. 첩보를 우리에게 넘겨주면 대검 자체 정보를 활용해 수사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검 중수부의 존폐 논란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현역 시절 저는 후배검사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고구마 캘 때 큰 고구마 캐면 된다’고요. 자잘한 고구마를 캐는 데 낭비할 시간도 없잖아요. 큰 사건을 기소해 마치 연못에 돌을 던져 파문을 내듯 사회 경종을 울려 다시는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알려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巨惡이 발 뻗고 자지 못하게 해야”
이 전 원장은 “도쿄지검 특수부가 거악 척결을 위해 싸웠듯 대검 중수부 역시 거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유죄율 99%를 자랑하는 ‘일본 최강의 수사기관’이다.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정의’의 대명사, 서릿발 같은 수사로 정평이 나있다.
“일본 검사총장(검찰총장) 출신의 이토 시게키(伊藤榮樹)가 도쿄지검 특수부를 향해 ‘거악을 잠재우지 마라’ ‘거악이 발 뻗고 자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한 말뜻을 새겨야 합니다. 중수부 과장 시절, 이토가 쓴 책을 검사들에게 읽어 보라고 권한 일이 있어요. 지검에서 할 수 없는 큰 사건을 중수부가 맡아야 하고, 또 중수부만 할 수 있는 사건을 개발하되 차원을 달리해 수사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중수부가 살 길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인근 ‘안강민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95kg의 거구인 안강민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장(1995.9 ~1997.1) 시절 盧泰愚(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재벌총수들을 모조리 처벌해 이름을 떨쳤다.
안 변호사는 중수부 폐지에 반대했다. 일선 지검 특수부보다는 중수부가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데 바람직한 조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도 판사보다는 검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수부장 시절, 전직 대통령과 재벌들을 예외없이 조사했어요. 중수부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수부는 다른 업무에 매달리지 않고 한 사건을 깊숙이 수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중수부 폐지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어찌 보면 수사 기법상의 문제에서 생긴 일인지는 몰라도, 중수부 존폐와는 무관한 일이지요. 중수부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비록 운영상에 잘못됐던 점이 있다 해도, 그것은 검찰조직이나 제도상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에 몸담은 사람의 능력이나 운영방법의 문제라고 봐요.”
―중수부장 시절, 외압이나 청탁을 받은 적은 없나요?
“청와대나 외부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은 적도, 보고를 한 적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는데, 당시 저는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중수부가 살아 있는 권력은 못 잡고 죽은 권력만 뒤쫓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자료나 제보가 잘 들어오지 않는 법이지요. 죽었을 때 많이 들어옵니다.”
“일부 검사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느낌”
―중수부가 엘리트 검사들의 출세 코스가 되어 정치검사를 양성한다는 부작용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아무나 데려다 시킬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따로 있는 법이지요. 앞서 가는 이를 시기하고 경외하는 것은 어느 조직에나 있는 일입니다.”
―취재과정에서 중수부 수사과정에서 모멸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턴가 범죄자의 인권을 너무 강조하는 나라가 돼 버렸습니다. 요즘은 수사기관에서 뺨이나 손찌검도 못하게 돼 있잖아요. 도둑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거나 ‘거짓말하지 마십시오’라고 공손하게 질문해야 하나요? 수사기법상 언성을 높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는 그러나 “최근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 검사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뭐랄까요, 조사한다고 불렀다가 조사도 않고 돌려보내는 식입니다. 또 혐의가 안 나오니 별건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범죄를 척결하지 않고 사람을 척결하려는 점은 고쳐져야 합니다.”
안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가 무죄율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검찰의 수치”라고 지적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두 명의 법학자는 대검 중수부 폐지에 찬성했다. 검찰의 폐쇄적 권력기관화 경향을 우려하며 권력과 검찰,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주문했다.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인 견제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검찰의 중립과 독립성을 강화하면 검찰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韓寅燮(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검찰과 대검 중수부의 개혁, 그리고 중수부 폐지를 주장했다.
“검찰(대검 중수부)의 개혁은 제도의 변화와, 사람과 체질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사람과 체질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그동안 특검제, 부패방지위원회,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 검찰과 권력의 유착을 막는 여러 장치를 내놓지 않았나요? 그러나 ‘표적 사정’ ‘하이에나 사정’ ‘공소권 남용’이라는 현상이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도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별 변화가 없었던 것이죠. 중수부는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지 회의적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감시하는 것이 중수부의 역할”
한 교수는 “우리나라 검찰이 제일 행복했을 때가 송광수 총장(2003년 4월~2005년 4월) 시절이었다”며 “권력과 거리를 두고, 검찰도 권력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이란 기대를 접었었다”고 회고했다. 또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몸가짐에 책잡히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당연히 조직 내부에서 물의를 빚는 사건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권력과 검찰의 유착이 이뤄지면 검찰 내부에서 문제가 계속 터지게 마련입니다. 이번 千成寬(천성관) 총장 내정자의 낙마, 金俊圭(김준규) 총장의 돈봉투 사건 등이 권력과의 팽팽한 긴장관계가 유지되지 않고 검찰의 권력추구 때문에 생기는 현상 아닌가요. 金大中(김대중) 정권 당시 옷로비 사건이 비슷한 예지요.
노무현 정권 때 권력과 검찰이 팽팽한 긴장 관계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어요. 권력과 검찰이 서로 긴장하며 견제할 때, 권력도 탈선을 하지 않게 됩니다.”
한 교수는 “검찰이 권력에 줄을 대기보다 검찰에서 끝을 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검 중수부는 대통령 측근들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죠. 하지만 집권당이 거대 다수당이 되어 소수당의 견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니 검찰 내 이완현상이 생기고 줄서기 경쟁, 구태의연한 모습이 다시 부활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 교수는 “언론과 검찰의 유착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徐輔鶴(서보학) 경희대 법대 교수도 중수부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일선 지검에 특수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수부를 존치하는 것은 정책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대검의 기능과 맞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 하명을 받아 수사하는 조직이고, 굉장히 정치적인 사건을 맡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통령 의중을 헤아려 수사지휘를 하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의 하명을 받는데, 그런 조직이 있는 한 정치적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보통 총장과 법무장관, 중수부장, 수사기획관 선에서 범죄정보가 머물면서 수사방향, 기소방향이 정해지는데, 그런 조직에 몸담기 위해 검사조직 내에서 일종의 ‘계급투쟁’, ‘보직투쟁’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검사들의 정치권 진출 제한해야”
서 교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검찰총장의 상위직 진출을 제한하고, 또 검사들의 정치권 진출을 적정한 선에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검사직을 더 높은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권력지향적인 검사들이 조직을 구성할 때 그 검찰은 정치권력의 풍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높은 권력에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는 정치검찰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검사 출신 정치인들은 기왕의 인연을 이용해 검찰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위험성이 큽니다.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검사들은 검찰을 떠나더라도 후배 검사들의 직무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엄격하게 정치권 진출을 자제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韓日(한·일) 간 검사들의 인식차이가 오늘날 양국 검찰의 위상의 차이를 가져온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요.”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성추문이 터졌을 때 미국의 위신은 곤두박질쳤다. 허리 아래 스캔들은 덮어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지만 미 의회는 르윈스키의 속옷자락에 묻은 대통령의 정액을 찾아냈다. 소설가 金薰(김훈)씨는 ‘치욕의 사실을 사실로서 정립함으로써 치욕을 씻어내는 장엄한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여론이 사실을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여론을 이끌어 갈 때 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르윈스키 사건이 입증해 주었다.
대검 중수부도 사실을 내놓아야 한다. 언론 앞에 ‘사실’ 대신 ‘의견’을 흘리고 상급자의 부당한 명령에 굴복하는 정치검찰이라면 대검 중수부의 미래는 없다.
중수부 폐지 논란을 두고 검사들이 울분을 느낀다는 얘기보다 검찰에 쏟아진 치욕과 조롱을 이겨내고 사실을 뒤쫓는 검사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 그것이 대한민국 검사가 사는 길이고 대검 중수부가 거듭나는 길이 아닐까.⊙
중앙수사부 구성 및 업무분장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제6조)
⊙ 수사기획관: 검찰총장이 정하는 수사업무의 기획 및 조정 등 중앙수사부장 보좌.
⊙ 중수부 1~2과: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 사건의 수사 관장.
⊙ 첨단범죄수사과: 검찰총장이 명하는 첨단범죄사건의 수사/ 검찰지휘·감독에 관한 사항/ 국제수사공조 등 국제협력 업무에 관한 사항/ 그밖에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사건의 수사 및 수사지원.
그러나 으레 대형사건일수록 처리과정에서 복잡 미묘한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권력자의 외압, 여야 정치권과 여론의 입김, 이에 따른 曲折(곡절)과 비판이 그것이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 아들을 구속시킨 沈在淪(심재륜) 前(전) 부산고검장은 항명파동 후 퇴임사에서 “검찰이 노골적으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다”며 “그동안 일선 검사들이 정권이나 그 근처에 있는 정치검사들과 얼마나 싸웠는지 모를 것”이라고 고백했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검사들이 권력의 외압과 어떻게 맞섰는지 그들의 울분과 절망을 알지 못한다. 대검의 치욕에 곡하는 검사를 전해 듣지 못해 유감이다. 그런데 검사와 수사관들이 사는 ‘城(성)’은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甕城(옹성)과 같다. 다가서기조차 어렵다.
필자와 접촉한 전직 검찰총장은 하나같이 익명을 요구하거나 만나길 꺼렸다. 대검 중수부에다 취재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기다리다 지쳐 이메일과 전화를 돌리자 “총장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재를 거절했다.
대검 중수부 4과장과 지검장을 역임한 한 변호사는 “정권에 따라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대검 중수부가 옛날 특별수사부처럼 비쳐 폐지론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중수부 폐지 논란에 냉소적으로 답했다.
“대검 중수부와 곧잘 비교되는 도쿄(東京)지검 특수부가 일본 수상 둘을 구속시켰지 않습니까. 거악을 뿌리뽑을 때까지 중수부는 존재해야 합니다. 거악이 사라지면 중수부의 존재도 필요 없을지 모르죠.”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의 현실을 이렇게 꼬집었다.
“대검 중수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현직 장·차관, 현직 대통령 친인척, 현직 實勢(실세)를 잡아넣으라고 만든 특별조직이에요. 그런데 YS의 아들을 구속시킨 후 현직을 잡아넣은 적이 거의 없었어요. 어느새 조직의 성격이 변질돼 ‘힘 없는 사람들 잡아 조지는’ 조직이 됐어요. DJ 이후 현직 장·차관을 집어넣은 적이 있나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깨끗해져서 그럴까요? 이미 실세에 약한 조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칼 들이댄 검찰
이 변호사의 주장은 대검 중수부에 대한 편견과 기대가 반반씩 담겨 있는 말이었다. 盧武鉉(노무현) 정권 당시 살아 있는 권력을 들쑤시는 사건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 不法(불법) 대선자금 및 대통령 측근비리 관련 사건은 대검 중수부의 인지사건이었다. 이때 대통령의 ‘잘 나가던’ 측근이 대거 구속됐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던 崔導術(최도술)씨를 비롯해 安熙貞(안희정), 강금원, 文炳旭(문병욱)씨가 구속되고 李光宰(이광재) 의원이 불구속됐다. 모두 살아 있는 권력들이었다.당시 수사는 宋光洙(송광수) 검찰총장과 安大熙(안대희) 중수부장의 라인업이 맡았다. 파장은 오래갔고 수사는 이듬해로 이어졌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鄭大哲(정대철), 韓和甲(한화갑) 의원 등 전·현 정권 실세와 삼성·LG·SK·현대차·한화·금호·롯데·한진·두산·부영·대아그룹 등의 사장, 회장 등을 구속시키거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후 대검 중수부는 침체기로 들어섰다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林采珍(임채진)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朴淵次(박연차)씨의 비자금을 수사하며 그의 측근과 아들, 그리고 전직 대통령까지 ‘被疑者(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피의자 신분이란 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돼 있으나 아직 公訴(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
대검 중수부, 수많은 대형사건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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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당시 건국 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사건으로 구속된 이철희-장영자 부부. 대검 중수부가 처리한 1호 사건이었다. |
전직 대통령의 자살로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중수부장이 교체됐다. 임채진 총장은 얼마 후 강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李仁圭(이인규) 중수부장 역시 한 법무법인에 합류했다. 두 사람에게 인터뷰를 청했지만 거부했다.
대검 중수부는 1981년 6월 대검 특별수사부(1973~1981)가 폐지되면서 생겼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으면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특별수사부 이전에는 중앙수사국(1961~1962), 수사국(1962~1973)이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 중추기관 역할을 맡았다. 이 조직들은 소수정예의 수사요원, 검사장급 중수부장, 지검 부장검사급인 과장들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사회의 비리와 부정을 척결했다.
초대 중수부장은 李種南(이종남) 변호사. 그는 후에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DJ 정권에서 감사원장을 지냈다. 그는 특수부 시절을 포함해 중수부에서만 8년을 일한 중수부의 산 역사나 다름없다. 초대 중수부 1과장은 李健介(이건개) 변호사가 맡았다.
이건개 변호사는 대검 특수부에서 중수부로 명칭이 바뀐 사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법무부 인권과장 시절 때 명칭을 바꿀 것을 주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사회 일각에서 왜 대검에서 ‘특별수사’를 하느냐, 특별한 수사가 필요하면 각 지검에 맡기면 된다는 지적들이 제기됐어요. 제가 ‘일일 생활권이 됐으니 전국 단위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당시 吳鐸根(오탁근) 법무장관에게 건의해서 ‘중앙수사부’란 이름이 탄생했어요. 사실 특수부는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 있는’ 사건을 수사했는데, 중수부는 국민생활 보호차원에서 수사하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중수부로 이름이 바뀐 뒤 국내 처음으로 거짓말탐지기 등 당시로선 첨단 수사장비를 외국에서 들여왔으며 전국의 수사관들을 차례로 대검에 불러 새로운 수사기법에 대한 교육을 했다. 중수부 업무분장도 이때 만들어졌다.
1대 대검 중수부의 첫 사건은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라는 ‘李哲熙·張玲子(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장 부부가 전두환 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 여사 주변의 비호를 받은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비록 청와대 下命(하명)으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였다.
그리고 박영복 금융사기사건, 박동명 외화 26만 달러 유출사건, 신안해저유물 도굴사건 등의 진상을 파헤쳐 국민들의 머릿속에 ‘대검 중수부’의 이름이 뚜렷이 각인됐다. 이후 28년 동안 중수부는 수많은 대형 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다.
중수부는 검찰총장 人脈으로 구성
현재 중수부장은 29대다. 金洪一(김홍일) 중수부장 아래 중수1과장은 盧承權(노승권), 2과장은 李錫煥(이석환), 첨단범죄수사과장은 金暎鍾(김영종), 수사기획관은 李昌宰(이창재) 부장검사다. 하지만 과거의 명성이 오늘의 위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노 전 대통령 죽음으로 새로 진용이 짜인 대검 중수부는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중수부 폐지논란과 함께 새로운 轉機(전기)를 맞고 있다.
최고검찰청의 직접 수사기능은 특이한 제도다. 도쿄(東京)지검 특수부 정도만이 비슷한 예에 속하며 외국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중수부는 검찰총장이 완전히 장악하는 조직이다. 중수부 검사들의 절반 정도는 ‘검찰총장 人脈(인맥)’이 차지한다. 그래서 ‘검찰총장의 직할부대’라는 말이 나온다.
중수부의 수사결과는 총장이 직접 책임을 진다. 중수부 수사로 인한 파장은 검찰총장과 검찰 전체에 직접 미치게 된다. 韓寅燮(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여태껏 검찰의 국민적 신뢰도 저하는 중수부 사건의 처리에 대한 국민적 평가로 말미암은 점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여론의 흐름에 따라 중수부의 의지와 역량이 흔들렸다는 점이다. 외압에 맞서지 못하면 언제든 ‘표적 수사’ ‘하이에나 수사’ ‘권력의 走狗(주구)’ ‘청부 수사’ ‘정치 검찰’의 汚名(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대 정권마다 집권세력 혹은 반대세력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중수부의 중립성,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현재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등 야권은 중수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李康來(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검찰의 과잉 수사와 이 정부의 정치 보복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고 규정한 뒤 대검 중수부 폐지,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등 검찰개혁 논의를 위해 與野(여야)가 동수로 참여하는 특위 구성을 제의했다.
대검 중수부 출신 중에서도 중수부 폐지론자가 적지 않다. 민주당 朴柱宣(박주선) 의원과 金鶴在(김학재) 변호사(대검 차장 역임)도 대표적인 중수부 폐지론자다.
인천지법 판사 출신인 국회 법사위 소속 洪日杓(홍일표) 의원(한나라당)은 지난 10월 19일 대검 국정감사에서 “대검 중수부가 2008년 44명을 기소했지만 1심에서 12명이 무죄를 받아 무죄율이 27.2%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중수부의 무죄율이 같은 해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1.5%)보다 18배나 높다”며 “무리한 수사나 미진한 수사가 많았다는 방증으로, 제도 및 수사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不敗신화’ 강박관념
극단적으로 표현해 ‘무리한 수사’와 ‘미진한 수사’가 오늘날 대검 중수부의 일그러진 肖像(초상)이다. 취재 과정에서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은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한 해 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의 말이다.
“대검 중수부 조사실은 긴 복도를 따라 몇 개가 있어요. 조사실에 들어가면 옆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주 가끔 옆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강압수사라는 게 누구를 때리고 하는 게 아니라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약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죠.”
A씨는 “수사방식이 위압적이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중수부 검사나 수사관들은 ‘중수부가 사건을 맡으면 반드시 구속시켜야 한다’는 ‘不敗(불패)신화’ 강박관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수부 수사관은 ‘빨리 자백해라. 오래 버텨서 좋을 게 없다. 수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례를 봤는데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지만 결국엔 인정한다. 두고 봐라’고 했어요. 중수부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것을 사실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수사관들이 뇌물죄 혐의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고 했다. 뇌물죄는 그 특성상 뇌물을 주었다고 말하긴 쉬워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고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알리바이를 내놓지 못하면 고스란히 ‘덮어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수년 전 알리바이를 증명하기란 보통 사람으로선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어느 시간의 일정까지 확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검찰이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피고인이 뇌물을 받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검 중수부는 툭하면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해요. 관련인의 진술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기 때문이죠. 일단 구속되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됩니다. 뇌물죄 혐의는 무죄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위에서 웬만하면 검찰과 타협하라고 합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일단 자백을 하고 더 높은 사람의 비리 사실을 알려주면 선처해 주겠다’고 회유합니다. 구속 상태에 있는 피고인들은 많은 경우 검찰과 타협합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이런 속성을 꿰뚫고 있어요. 때문에 검찰은 당연히 뇌물죄 혐의에 대해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죠.”
“형사소송법에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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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7년 국회의원(자민련) 시절 대정부 질의를 하는 이건개 변호사. 이 변호사는 대전고검장 시절 슬롯머신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
“우리나라는 수사공무원(검사, 형사)이 작성한 調書(조서)를 중요한 증거능력으로 인정합니다. 한국의 법정을 보면, 판사가 재판할 때 거의 졸다시피 합니다. 심지어 법정에서 증인의 주장이 깨져도 유죄를 때립니다. 재판이 어찌됐든 검사가 작성한 조서가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조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재판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법정 중심인 미국이나 영국, 일본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판사 앞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치열하게 다투고, 그 과정에서 증거가 깨져 무죄로 석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서는 참고자료일 뿐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경우와 크게 다르죠.”
이 변호사는 “수사과정에서 자살하는 이가 생기는 것도 조서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조서를 재판의 결정적 증거로 인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수사 조서를 법정 중심으로 안 하고 조서에다 자백을 받아내려 애씁니다. 유리하게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죠. 그러니 자살이 생깁니다. 曺奉岩(조봉암) 선생도 법정에서 혐의가 깨어졌어요. 북에서 내려온 B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간첩으로 사형에 처했어요. 그런데 B라는 이를 만났다는 사실이 조서에 있었지만, 법정에서 깨어졌어요. 그렇다면 판사가 무죄를 때렸어야 하는데 조서를 근거로 사형에 처한 겁니다. 판사들은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생각은 않고 조서에만 의존해 판결을 내립니다. 사실 피의자가 검찰이나 경찰에서 밤샘 조사를 받다 보면 조사관과 피의자가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한 대 권하고, 그 과정에서 조서를 대충 꾸미고 도장을 덜컥 찍고 맙니다. 나중 법정에서 달리 말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엄청난 오산입니다.”
변호사 C씨는 현재 대검 중수부 조사를 받고 구속된 피의자의 변론을 맡고 있다. 그는 대검 중수부의 폐지를 찬성했다.
“(중수부의) 수사기법에 문제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협조하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식 아니겠어요? 그것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21세기 첨단수사기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너의 약점을 캐겠다, 약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또 대한민국 법원은 다 검찰 편이란 게 문제입니다. 李容勳(이용훈) 대법원장이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라’고 했더니 진짜로 다 유죄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대검 중수부가 저렇게 ‘발호’하게 된 것은 이용훈 대법원장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물론 본인의 뜻은 ‘온정주의에 끌리지 말라’는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아래서 받아들이기는 ‘잘못해서 무죄로 처리했다가는 온정주의라고 비난받으니, 유죄로 판결하면 평균은 하겠구나’라고 받아들인다는 말이에요.”
―변론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언론이 대검 중수부에 아주 친화적입니다. 국가기관이니까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아무리 무죄 추정이라고 해도 유죄 추정 쪽으로 가는 것이죠.”
언론과 중수부의 밀착
―대검 중수부와 언론과의 바람직한 관계는 뭔가요.
“우선 피의사실 공표를 못 하게 해야 됩니다. 수사 브리핑이라는 게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검찰 출입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알권리가 아니라 검찰의 홍보수단에 언론이 이용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수사기획관이라는 게 결국은 ‘홍보관’ 아닙니까. 세상 어느 나라에서, 거의 검사장이 다 된 고참 부장급 검사를 홍보관으로 데려다 놓고 언론활동에 열을 올립니까.”
―법정에서 대검 중수부와의 유무죄 다툼은 다른 재판에 비해 강도가 어떻습니까.
“대검 중수부 조직은 장내외 안 가리고 전면 난타전을 가하는 조직입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악바리’처럼 물고 늘어진다, 근성 있다고 칭찬할 수는 있지만 당하는 사람은 무서워서 덜덜 떨게 마련이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KGB와 비슷합니다.”
이용호 게이트 등 대검 중수부가 지휘한 굵직한 권력형 사건에 여러 차례 변론을 맡은 변호사 D씨는 자신이 만난 어느 중수부장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개중에 공명심에 들뜬 검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온통 언론에다 흘리고 들쑤셔 ‘泰山鳴動鼠一匹(태산명동서일필)’처럼 실체는 아무것도 없이 온 나라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 정신 나간 검사가 중수부 내에 존재한다는 게 제가 만난 중수부장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중수부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에게 편의를 봐주고, 간교한 입에 놀아나는 것”이라며 “이용호 게이트 때 억울하게 날아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중수부와 타협하고 끼리끼리 노는 바람에 그 피해는 말도 못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이트니, 로비 사건으로 불리는 중수부 사건은 대개 권력이 개입되는데, 거물의 입에서 누구누구를 불도록 해 협상을 합니다. 그러면 역으로 (중수부가) 범죄인에게 계속 끌려다니는 꼴이 됩니다. ‘네가 몇 명만 불어라’는 식입니다. 같은 검찰 조직 내에서 검사가 다른 검사를 조지려고 ‘지검장 이름 하나만 대주면 나머지는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는 식의 거래가 벌어진 적도 있어요. 범죄자에게 구걸하고, 그 사람이 몇 사람을 찍어주면 고마워하고, 그 다음부터 교활한 자의 노예가 되는 식이죠. 범죄자가 찍는 대로 언론과 검찰이 움직이니까, 평소 미워했던 사람을 찍어 내리고, 반면 자신이 보호해 줄 필요가 있는 사람은 보호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부터 중수부는 ‘혹시 이 자가 고등법원이나 다른 곳에 가서 진술을 바꾸지는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는 것 아니겠어요? 말 한마디로 범죄자의 노예가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한 번은 중수부가 해외 도피 사범에게 ‘들어오기만 하면 약속한 대로 처리해 주겠다’고 해서 제가 맡은 의뢰인을 귀국시켰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한 건 안 주면 구속시켜 버리겠다’고 플리바겐상의 흥정, 배신도 하고 그랬어요.”
‘여자 문제’ 약점 잡아 자백 강요
플리바겐(plea bargain)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협상을 통해 형량을 경감하거나 조정하는 ‘事前刑量調停制度(사전형량조정제도)’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행 형사소송법상 플리바겐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기소에 대한 검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수사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피의자가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까.
“최근 상황은 모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수모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모 인사의 사례인데요. 검찰이 그를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아주 추운 날 좁은 대기실에 아침부터 기다리게 해 놓고 컴컴한 저녁에 가서야 조사실로 불렀답니다. 온 몸이 춥고 떨려 따스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검사는 혼자 커피를 홀짝홀짝 마신다든가 담배를 맛있게 피웠다고 합니다. 그때 가장 인간적인 처절함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D변호사는 모 은행 임원 출신 인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어느 날 조사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검사는 자리에 없더랍니다. 밑에다 일을 시켜 놓고 자신은 빠진 것이지요. 그가 임원에게 ‘다시 들어오세요’ 하더랍니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니 이번에는 ‘다시 나갔다 들어와!’ 하고 반말로 고함을 쳤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나갔다 들어오니, ‘야 이 ××야 누가 기어들어 오라 했지, 두 발로 들어오라고 했어!’ 그래서 넥타이 매고 기어가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더랍니다.
제일 치사한 것은 여자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해요. 은행계좌를 이 잡듯 뒤지고 해서 혹시 여자 문제가 불거지면, ‘마누라, 가족에게 다 까버리겠다. 자백할 거야 안 할 거야?’라고 말할 때 제일 치사하게 느꼈다고 하더군요. 물론 여자 문제에 당당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요. 그 뒤 이 분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이유 없이 목을 매달았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말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 사람은 ‘차라리 때리는 게 순진한 것’이라고 이를 갈더라고요.”
朴柱宣 의원 세 번 기소됐으나 세 번 다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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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검 중수부 과장, 수사기획관 출신인 박주선 의원은 대검 중수부로부터 세 번 구속됐지만 세 번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
두 번은 구속됐고 한 번은 불구속 기소돼 법정 투쟁 끝에 세 건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는 중수부 후배검사에게 수사를 받는 치욕을 당하면서 후배검사를 질책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박 의원은 중수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박 의원은 “중수부가 악몽이었다”고 했다.
“제가 3번이나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저를 조사한 검사들을 문책해도 뭣할 판에 승진과 영전을 했어요. 중수부 위상에 걸맞게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를 해야 하는데 수사결과가 기대 이하입니다.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 무리한 기소는 결국 기각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중수부 1심 무죄율이 27%라는 것이 이를 말해 줍니다. 총장이 지휘하는 중수부 수사가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수사기관이 무리한 수사를 펴 무죄를 받거나 영장이 기각됐다는 것은 인권침해가 빈번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역대 중수부에서 무죄율이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나요?
“제가 알기론 없었어요. 그러니 존립의 문제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압력에 의해 중수부가 도구 역할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억울하게 구속을 당해 나중 국가로부터 2799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박 의원은 “이 돈을 아주 의미있는 데 쓸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검사 시절, 자신이 지휘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검사는 혐의가 있을 경우 자기의 처자식은 물론 부모라도 수사를 해야 해요. 문제는 수사나 기소는 증거에 입각해야 합니다.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나올 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소를 해서는 안돼요. 공권력 행사과정에서 범인 열 사람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박 의원은 언론에도 할 말이 많았다.
“적어도 법치국가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첫 번째로 법원에, 두 번째로 언론에, 그 다음에 교회에 호소하라고 했어요. 제 사건의 경우 법원의 3급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검찰에서 흘리는 얘기를 대서특필해 제 명예와 인권을 훼손시켰어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은 1981년 4월 초대 중수부장을 맡아 1983년 3월까지 역임했다. 중수부와의 인연은 1974년 중수부의 전신인 대검 특수부 4과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특수부 4과(서울지검 부장검사와 겸직)는 대기업 탈세와 비리, 기업 관련 범죄 등 경제사범을 주로 맡았다. 한 과에 보통 수사관을 포함해 10명이 포진했다고 한다.
“당시 중수부에서는 마약이나 밀수수사, 장·차관급 공직비리 등을 검찰총장의 특명을 받아 수사했어요. 대형범죄를 수사할 때는 한 과로 모자라서 1~4과가 모두 참여했어요. 1975년 여수 밀수사건 때 그랬지요.”
이 전 원장은 특수부 4과장 4년, 1과장 2년, 중수부장 2년 등 기간으로 따지면 중수부에서 8년을 근무했다. 대검 역사상 중수부 생활을 가장 오래한 셈이다.
“제가 중수부에서 세 분의 검찰총장을 모셨는데 그때마다 저를 놔주지 않아 붙박이를 했지요. 경찰송치 사건은 하나도 못 하고 신경 많이 쓰이는 인지수사만 했는데, 무리한 수사를 안 해서 진정이나 투서를 받은 일은 하나도 없었어요.”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시절, 3년마다 공직자 비리 수사특명이 내려져 당시 특수부가 고위 공직자를 내사했다고 한다. 그는 “박 대통령이 ‘공무원을 그냥 놔두면 방심해지고, 방만해진다. 3년마다 충격을 줘야 공직비리를 막을 수 있다’고 해서 공직비리 사정 수사를 많이 했다”며 “청와대에서 아무개를 처벌하라는 특정인을 상대로 한 특명은 없었다. 첩보를 우리에게 넘겨주면 대검 자체 정보를 활용해 수사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검 중수부의 존폐 논란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현역 시절 저는 후배검사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고구마 캘 때 큰 고구마 캐면 된다’고요. 자잘한 고구마를 캐는 데 낭비할 시간도 없잖아요. 큰 사건을 기소해 마치 연못에 돌을 던져 파문을 내듯 사회 경종을 울려 다시는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알려주는 역할만 하면 됩니다.”
“巨惡이 발 뻗고 자지 못하게 해야”
이 전 원장은 “도쿄지검 특수부가 거악 척결을 위해 싸웠듯 대검 중수부 역시 거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유죄율 99%를 자랑하는 ‘일본 최강의 수사기관’이다.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정의’의 대명사, 서릿발 같은 수사로 정평이 나있다.
“일본 검사총장(검찰총장) 출신의 이토 시게키(伊藤榮樹)가 도쿄지검 특수부를 향해 ‘거악을 잠재우지 마라’ ‘거악이 발 뻗고 자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한 말뜻을 새겨야 합니다. 중수부 과장 시절, 이토가 쓴 책을 검사들에게 읽어 보라고 권한 일이 있어요. 지검에서 할 수 없는 큰 사건을 중수부가 맡아야 하고, 또 중수부만 할 수 있는 사건을 개발하되 차원을 달리해 수사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중수부가 살 길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인근 ‘안강민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95kg의 거구인 안강민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장(1995.9 ~1997.1) 시절 盧泰愚(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재벌총수들을 모조리 처벌해 이름을 떨쳤다.
안 변호사는 중수부 폐지에 반대했다. 일선 지검 특수부보다는 중수부가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데 바람직한 조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도 판사보다는 검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수부장 시절, 전직 대통령과 재벌들을 예외없이 조사했어요. 중수부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수부는 다른 업무에 매달리지 않고 한 사건을 깊숙이 수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중수부 폐지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어찌 보면 수사 기법상의 문제에서 생긴 일인지는 몰라도, 중수부 존폐와는 무관한 일이지요. 중수부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비록 운영상에 잘못됐던 점이 있다 해도, 그것은 검찰조직이나 제도상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에 몸담은 사람의 능력이나 운영방법의 문제라고 봐요.”
―중수부장 시절, 외압이나 청탁을 받은 적은 없나요?
“청와대나 외부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은 적도, 보고를 한 적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는데, 당시 저는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중수부가 살아 있는 권력은 못 잡고 죽은 권력만 뒤쫓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자료나 제보가 잘 들어오지 않는 법이지요. 죽었을 때 많이 들어옵니다.”
“일부 검사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느낌”
―중수부가 엘리트 검사들의 출세 코스가 되어 정치검사를 양성한다는 부작용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아무나 데려다 시킬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따로 있는 법이지요. 앞서 가는 이를 시기하고 경외하는 것은 어느 조직에나 있는 일입니다.”
―취재과정에서 중수부 수사과정에서 모멸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턴가 범죄자의 인권을 너무 강조하는 나라가 돼 버렸습니다. 요즘은 수사기관에서 뺨이나 손찌검도 못하게 돼 있잖아요. 도둑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거나 ‘거짓말하지 마십시오’라고 공손하게 질문해야 하나요? 수사기법상 언성을 높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는 그러나 “최근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 검사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뭐랄까요, 조사한다고 불렀다가 조사도 않고 돌려보내는 식입니다. 또 혐의가 안 나오니 별건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범죄를 척결하지 않고 사람을 척결하려는 점은 고쳐져야 합니다.”
안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가 무죄율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검찰의 수치”라고 지적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두 명의 법학자는 대검 중수부 폐지에 찬성했다. 검찰의 폐쇄적 권력기관화 경향을 우려하며 권력과 검찰,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주문했다.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인 견제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검찰의 중립과 독립성을 강화하면 검찰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韓寅燮(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검찰과 대검 중수부의 개혁, 그리고 중수부 폐지를 주장했다.
“검찰(대검 중수부)의 개혁은 제도의 변화와, 사람과 체질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사람과 체질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요. 그동안 특검제, 부패방지위원회,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 검찰과 권력의 유착을 막는 여러 장치를 내놓지 않았나요? 그러나 ‘표적 사정’ ‘하이에나 사정’ ‘공소권 남용’이라는 현상이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도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별 변화가 없었던 것이죠. 중수부는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지 회의적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감시하는 것이 중수부의 역할”
한 교수는 “우리나라 검찰이 제일 행복했을 때가 송광수 총장(2003년 4월~2005년 4월) 시절이었다”며 “권력과 거리를 두고, 검찰도 권력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이란 기대를 접었었다”고 회고했다. 또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몸가짐에 책잡히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당연히 조직 내부에서 물의를 빚는 사건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권력과 검찰의 유착이 이뤄지면 검찰 내부에서 문제가 계속 터지게 마련입니다. 이번 千成寬(천성관) 총장 내정자의 낙마, 金俊圭(김준규) 총장의 돈봉투 사건 등이 권력과의 팽팽한 긴장관계가 유지되지 않고 검찰의 권력추구 때문에 생기는 현상 아닌가요. 金大中(김대중) 정권 당시 옷로비 사건이 비슷한 예지요.
노무현 정권 때 권력과 검찰이 팽팽한 긴장 관계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어요. 권력과 검찰이 서로 긴장하며 견제할 때, 권력도 탈선을 하지 않게 됩니다.”
한 교수는 “검찰이 권력에 줄을 대기보다 검찰에서 끝을 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검 중수부는 대통령 측근들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죠. 하지만 집권당이 거대 다수당이 되어 소수당의 견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니 검찰 내 이완현상이 생기고 줄서기 경쟁, 구태의연한 모습이 다시 부활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 교수는 “언론과 검찰의 유착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徐輔鶴(서보학) 경희대 법대 교수도 중수부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일선 지검에 특수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중수부를 존치하는 것은 정책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대검의 기능과 맞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 하명을 받아 수사하는 조직이고, 굉장히 정치적인 사건을 맡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통령 의중을 헤아려 수사지휘를 하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의 하명을 받는데, 그런 조직이 있는 한 정치적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보통 총장과 법무장관, 중수부장, 수사기획관 선에서 범죄정보가 머물면서 수사방향, 기소방향이 정해지는데, 그런 조직에 몸담기 위해 검사조직 내에서 일종의 ‘계급투쟁’, ‘보직투쟁’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검사들의 정치권 진출 제한해야”
서 교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검찰총장의 상위직 진출을 제한하고, 또 검사들의 정치권 진출을 적정한 선에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검사직을 더 높은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권력지향적인 검사들이 조직을 구성할 때 그 검찰은 정치권력의 풍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높은 권력에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는 정치검찰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검사 출신 정치인들은 기왕의 인연을 이용해 검찰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위험성이 큽니다.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검사들은 검찰을 떠나더라도 후배 검사들의 직무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엄격하게 정치권 진출을 자제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韓日(한·일) 간 검사들의 인식차이가 오늘날 양국 검찰의 위상의 차이를 가져온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요.”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성추문이 터졌을 때 미국의 위신은 곤두박질쳤다. 허리 아래 스캔들은 덮어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지만 미 의회는 르윈스키의 속옷자락에 묻은 대통령의 정액을 찾아냈다. 소설가 金薰(김훈)씨는 ‘치욕의 사실을 사실로서 정립함으로써 치욕을 씻어내는 장엄한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여론이 사실을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여론을 이끌어 갈 때 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르윈스키 사건이 입증해 주었다.
대검 중수부도 사실을 내놓아야 한다. 언론 앞에 ‘사실’ 대신 ‘의견’을 흘리고 상급자의 부당한 명령에 굴복하는 정치검찰이라면 대검 중수부의 미래는 없다.
중수부 폐지 논란을 두고 검사들이 울분을 느낀다는 얘기보다 검찰에 쏟아진 치욕과 조롱을 이겨내고 사실을 뒤쫓는 검사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 그것이 대한민국 검사가 사는 길이고 대검 중수부가 거듭나는 길이 아닐까.⊙
중앙수사부 구성 및 업무분장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제6조)
⊙ 수사기획관: 검찰총장이 정하는 수사업무의 기획 및 조정 등 중앙수사부장 보좌.
⊙ 중수부 1~2과: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 사건의 수사 관장.
⊙ 첨단범죄수사과: 검찰총장이 명하는 첨단범죄사건의 수사/ 검찰지휘·감독에 관한 사항/ 국제수사공조 등 국제협력 업무에 관한 사항/ 그밖에 검찰총장이 명하는 범죄사건의 수사 및 수사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