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휘청이는 전북 무주군의 公共건축 프로젝트 : 월간조선

최근 몇 년 새 전북 무주군에는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현직 건축가,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방문이 부쩍 늘었다. 이들이 특별한 산업시설도, 대형 건축물도 없는 인구 2만6000명의 이 작은 郡(군)을 앞다퉈 찾는 이유는 한 가지. 지난 10년간 무주군에서 진행된 공공건축 프로젝트의 성과물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일찌감치 공공건축의 중요성에 눈을 뜬 무주군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건축가 鄭寄瑢(정기용·기용건축 대표·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씨와 손잡고 ‘공공건축물을 통한 환경 개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펼쳤다. 그 결과 군내 31개의 건물이 신축되거나 리모델링 작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정기용 대표는 ‘공공건축의 공익요원’으로 불리는 건축가다. 그는 MBC에서 기획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순천, 진해, 서귀포 등 6개 지역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이 그의 작품이다. 盧武鉉(노무현) 前(전) 대통령의 私邸(사저)인 봉하마을도 그가 설계 건축했다.

무주 프로젝트는 民選(민선) 지자체 단체장과 뜻있는 건축가가 한 지역에 수십 개의 공공건축물을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건축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무주는 한때 奧地(오지)라 불릴 만큼 교통이 불편했지만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과 무주는 이제 반나절 생활권이 됐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아 주민들 대부분이 지금도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무주읍내에 위치한 군청을 방문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廳舍(청사)는 리모델링을 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외관이 깔끔했고, 가을 햇볕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 초록빛 잔디가 시선을 끌었다. 본관과 별관은 回廊(회랑)으로 연결돼 비나 눈이 오는 날 우산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회랑 위에는 무주의 특산물인 머루가 넝쿨을 이루며 소담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건물 마당을 점령한 자동차들이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공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담당 공무원 중 한 사람이었던 무주군청 권태영(민원봉사과 건축담당) 주사는 “원래 이 잔디밭은 주차장과 창고가 있던 자리”라며 “창고는 없애고, 주차장은 지하로 보내 지상은 직원과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군청 담장을 허물고 잔디를 깔아 작은 공원처럼 만들어 놓으니 주민들이 좋아합니다. 물론 ‘주차타워나 짓지, 이런 땅을 왜 놀리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미래를 위해 이런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파란 잔디밭을 지날 때면 눈도 시원하고, 마음도 편안한 것이 ‘공간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무주군청의 리모델링 前과 後. 지상에 주차장을 없애고 잔디광장을 조성했다.

전국 최초의 ‘면사무소 목욕탕’

군청뿐만 아니라 관내 5개 面(면)의 주민자치센터도 모두 바뀌었다. 이 중 가장 먼저 변화를 추진한 곳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무주 공공프로젝트의 첫 삽을 뜬 곳으로, 주민자치센터 안에 목욕탕 시설을 갖춰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정기용 교수는 설계 전, 주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면사무소를 새로 지으려고 하는데 주민 입장에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는 그에게 주민들은 이렇게 답했다. “돈 처들여 가며 그런 건물을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목욕탕이 없어 돈을 모아 봉고차를 불러 멀리 대전까지 나가 목욕을 하고 온다는 주민들의 말에 정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 최초의 ‘면사무소 목욕탕’은 그렇게 탄생했다.

유지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소규모로 만들어진 목욕탕은 홀수 일은 남탕으로, 짝수 일은 여탕으로 운영된다. 목욕탕 앞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밭에서 땀 잔뜩 흘리며 일하다가 여기 들러 목욕을 하고 가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무주에서도 오지로 통하는 부남면은 면사무소 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면사무소 내에 天文臺(천문대)를 설치해 외지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정기용 교수는 부남면 답사 때,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을 보며 천문대 아이디어를 구상했다고 한다.

부남면 주민자치센터 직원으로 천문대를 관리하는 劉秀相(유수상)씨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문적인 설명을 해 주기 위해 ‘천문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천문대를 자랑스러워 하면서 “연간 4000명이 부남면 천문대를 찾고 있지만 규모가 작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별자리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대부분 노인으로 구성된 부남면 주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천문대가 아닌 목욕탕이었다. 안성면에 이어 이곳에도 목욕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주민자치센터 근처에서 작은 수퍼를 운영하는 崔海壽(최해수)씨는 새롭게 바뀐 면사무소 건물에 대해 묻자 “목욕탕 만든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황토로 지은 진도리 마을회관

사랑방과 정자, 툇마루를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설계된 진도리 마을회관.

건축물의 미학적 가치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철학은 적상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4대 史庫地(사고지) 중 하나인 적상산을 끼고 있는 적상면 주민자치센터는 건물 외부에 설치된 램프(경사진 길)를 따라 오르며 각기 다르게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이것은 “주민들이 지금까지 바라보던 것과는 다른 시선으로 자기들이 사는 고장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설계자의 의도이다.

하지만 적상면 주민들에게 램프는 유모차나 휠체어가 올라가기 편하게 만들어진 통행로일 뿐이다. 그럼에도 새로 바뀐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다. 전에는 따로 떨어져 있던 보건지소가 주민자치센터 건물 안에 들어왔고, 경사진 길이 2층, 3층으로 연결돼 공무원들의 업무공간을 통과하지 않고 자유롭게 회의실, 여성문화 공간 등을 이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진도리 마을회관은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의 불씨를 댕긴 건물이다. 황토로 마을회관을 짓고 싶어한 이곳 주민들을 위해 정 교수는 무료로 설계를 해 주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준공식 날 金世雄(김세웅) 당시 군수(전 민주당 국회의원)를 만났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이런 시골의 건축물도 설계해 줄 수 있느냐”는 군수의 제안을 정 대표가 받아들인 것이 10년 동안 이어진 무주 프로젝트의 시발점이었다.

마을회관을 둘러보던 중, 마침 이 작업을 추진했던 당시 이장 程容玉(정용옥)씨를 만났다. 마을회관 구경을 왔다는 말에 그는 “마을회관 부지는 내가 기증한 것”이라며 “이왕 새로 짓는데 다른 곳과는 다른, 좀 특별한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정씨의 말이다.

“처음에 황토로 마을회관을 짓자고 했을 때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콘크리트에 슬레이트가 최고지 무슨 흙집이냐고. 황토가 얼마나 좋은 재료인지 설득해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짓는 동안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중간에 시공업체가 부도나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2년이나 걸렸지요.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얼마나 멋있는지 볼 때마다 뿌듯해요.”

함께 있던 주민들은 “이걸 설계한 사람이 봉하마을을 만든, 유명한 교수님”이라고 자랑했다. 이들은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 자신의 마을에 있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진도리 마을회관을 필두로 무주군청은 다른 마을도 마을회관의 신·개축 시 황토로 시공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공사비용도 일부 지원한다.

등나무 운동장에 담긴 사연

무주군의 명물이 된 등나무운동장.

일부 마을에서는 황토 마을회관을 숙박시설로 활용해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무주읍 후도리의 경우 취사도구와 냉장고, 세탁실 등을 갖춰 펜션처럼 관리하고 있다. 회관 관리는 주민들이 조를 짜 순번제로 맡는데, 관광객이 지불하는 숙박비 10만원은 그날 관리를 맡은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이장 朴熙龍(박희용)씨는 “물이 맑고, 산이 있고, 복숭아, 포도, 사과 같은 과수원이 많아 농촌체험을 하기에 제격이라 올 여름 내내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며 “황토로 만들어 여기서 자고 나면 아주 개운하다”고 자랑했다.

군청과 주민자치센터, 마을회관 등을 둘러본 뒤 다시 읍내로 나왔다. 권태영 주사가 ‘꼭 봐야 할 곳’으로 추천한 ‘등나무 운동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운동장에 들어서니 스탠드 위로 무성하게 자란 등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곳은 과거엔 공설운동장이었는데, 주민들에게 외면당하던 공간이 리모델링을 통해 명소로 변신했다. 이름도 공설운동장에서 등나무운동장으로 바꿨다. 매년 6월에 열리는 무주군의 대표적 행사인 ‘반딧불이 축제’의 개·폐회식이 여기서 열린다. 군내 크고 작은 행사는 물론 여름이면 야외 영화관으로, 생활체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 등나무를 심게 된 사연이 재미 있다. 김세웅 전 군수가 군에서 주관하는 행사 때 주민들의 참여율이 너무 저조한 것이 의아해 한 주민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군수는 햇볕이 안 드는 좋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주민들은 땡볕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김 군수는 고민 끝에 등나무를 심었고, 그 등나무가 1년 새 훌쩍 자랐다. 이를 본 정기용 교수는 등나무들이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줌으로써 지금의 등나무 운동장이 완성됐다고 한다.

노인복지시설인 평화요양원도 무주읍이 자랑하는 공공건축물 중 하나다. 요양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투명한 窓(창)이다. 이 건물은 전체가 유리로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창이 많다. 덕분에 많은 양의 빛이 실내로 들어와 내부는 항상 밝고 쾌적하다. 무엇보다 중증 장애 노인들을 보호하는 시설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인 ‘냄새’가 없다.

하헌환 사무국장은 “햇볕이 가지고 있는 살균, 탈취 효과 덕분인 것 같다”며 “건축기법만으로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는 “햇볕은 노인들의 건강관리 차원에서 필요한데, 직사광선은 차단하면서도 빛을 많이 쪼일 수 있게 설계돼 아주 좋다”며 “요즘은 타지역에 있는 요양원에서 견학을 온다”고 덧붙였다.

갤러리 같은 납골당

인삼밭을 형상화한 ‘추모의 집’. 밝고 쾌적한 실내가 인상적이다.

무주읍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추모의 집’도 기존 납골당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무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인삼밭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는 인삼밭 모양의 지붕이 시선을 끈다. 마치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통유리로 무주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天窓(천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별다른 조명 없이도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라면 비교적 편안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亡者(망자)에게 이별을 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기용 교수도 무주 프로젝트를 다룬 자신의 著書(저서) <감응의 건축>에서 ‘추모의 집’에 대해 이렇게 썼다.

<건축의 형식은 인삼밭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을 목표로 했다. 때로는 죽은 영혼이 일어나 자신이 살던 땅, 무주를 바라볼 수도 있는 장소, 그래서 옛날 뒷동산의 묘지들처럼 삶과 끈끈한 관계가 있는 납골당을 만들고자 했다. 산 사람들이 찾아가기에 어둡고 침침하고 죽음의 냄새가 처연하게 묻어나는 곳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행복감까지도 느낄 수 있는 경건한 장소가 되기를 원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자신이 살던 땅을 새롭게 조망하고 서로 행복하게 헤어질 수 있는 장소, 그리고 다시 재회할 수도 있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밝은 집을 떠올린 것이다.>

반딧불이 생태공원 안에 조성된 곤충박물관.

무주읍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반딧불이 생태공원 안에 조성된 곤충박물관도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건물이라기보다는 경사진 땅에 돔형 지붕이 살짝 드러나 풍경의 한 부분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 관람 동선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상에서 지하로 이어진다.

곤충박물관 건축 당시 담당자였다는 권태영 주사는 “한 번 와 본 사람들은 시골에 어떻게 이런 박물관이 있느냐며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권 주사의 회고다.

“돌아보면 고생한 기억밖에 없어요. 무주군청 공무원들을 비롯해 무주에 내려와 상주하고 있던 기용건축 직원들, 시공업체에 이르기까지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다 그럴 겁니다. 저는 이거 하면서 징계도 많이 받았어요. 군 의회에서 예산 승인을 안 해 주는 바람에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가리지 않고 의원들 집을 쫓아다니며 ‘주민들을 위한 일이니 제발 예산 승인을 해 달라’고 애걸복걸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예산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고, 너무 빡빡한 예산으로 진행하다 보니 마감이 조잡해져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었어요. 중간에 도저히 못하겠다고 도망가는 시공사가 있질 않나, 한동안 이 지역 시공사들 사이에서는 무주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어요. 그래도 10년간 이 일을 지켜보면서 건축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건물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거든요.”

事後 관리 안돼 문제 속출

주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한 버스 정류장.

이처럼 무주에 세워진 공공건축물들은 조용한 시골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고, 주민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노인들은 보다 쾌적한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게 됐고, 청소년문화관이 세워지면서 이곳 아이들도 도시 아이들과 같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게 됐다.

목욕탕이 없던 곳에 목욕탕을 만들고, 천문대를 세워 외지 사람들을 끌어들였으며, 썰렁하던 공설운동장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주민자치센터를 진정한 주민들의 공간으로 만드는 등 공공건축의 소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후 관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현재 무주군청에는 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 전담 부서가 없다 보니 관리는 사용자들의 몫으로 남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증축이나 확장 과정에서 기존 건축물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않아 전체 모습을 어색하게 만든 사례가 많았다. 한동안 인터넷상에서 멋진 건축물로 화제가 됐던 된장공장은 옥상 위로 살림집이 증축됐고, 청소년수련관 옆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글로벌문화센터 건물이 세워졌다.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옥상에 세워진 태양열 집열판은 흉물에 가까웠다.

도심의 고급 카페 같은 향토박물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그런가 하면 향토박물관은 올 2월 개관했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부속건물은 아직도 그 쓰임새를 찾지 못한 채 표류중이다. 농민을 위한 ‘농민의 집’도 상당수가 비어 있다. 이는 인구 부족 문제로 돌린다 쳐도 무주 풍경을 액자 속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버스정류장은 기용건축이 감리까지 담당한 설천면의 단 1개소를 제외하고는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연간 상당한 인원이 공공건축물 견학을 오는 상황에서도 전담 직원이 없어, 당시 가장 많은 업무를 추진했던 권태영 주사가 안내를 맡고 있다. 그는 현재 민원봉사과 소속으로 공공건축과는 관련 없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洪洛杓(홍낙표) 現(현) 군수가 전임자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홍 군수는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공건축물 정책은 당연히 이어갈 것”이라며 “대학교수,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공공정책자문위원회를 적극 활용해 친환경적인 소재로, 무주의 환경을 더욱 돋보이게 할 멋진 공공건축물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대규모 공공건축이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 첫 사례이자 이처럼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공건축에 대한 관심과 함께 무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요즘, 그것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파생된 문제점들도 충분히 검토해 우리 공공건축을 위한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터뷰] 鄭寄瑢 기용건축 대표

“건축은 사람의 삶을 보살피는 것”

―어떻게 10년간 한 지역에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세웅 前(전) 군수의 강력한 의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군수의 직접 지시로 수행했어요. 다시 말하면 이건 김세웅 전 군수가 목숨을 걸고 한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군수가 한 건축가에게 31개의 프로젝트를 줄 수 있겠어요?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매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용건축이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3~4년쯤 지나니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리더군요. ‘저 사람들이 정말 봉사하는구나’ ‘군수가 정말 군민을 생각하는구나’ 실무자들이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손해 보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 즉 무주 프로젝트는 부정한 거래가 없는 공공건축 계획을, 군수와 건축가라는 두 권력이 힘을 합쳐 투명하고 정직하게 일구어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일을 할수록 적자를 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봤고, 군수 역시 두 번이나 검찰에 불려갔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감당할 군수나 건축가는 없을 겁니다. 우리 직원들은 당시 무주의 ‘무’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쳤습니다. 또 손해나는 일을 해야 하느냐고 불만도 많았어요. 무주군 조례에 의하면 수의계약은 3000만원 이하 공사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요. 1억원짜리 공사도 3000만원에 해야 했지요. 그러니 실비도 안 나올 때가 많았어요. 군수 입장에서는 우리 쪽 손해를 어떻게든 줄여주고 싶어 또 일을 주었지만 그게 또다시 적자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거듭됐지요.”

―그런 상황인데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뭡니까.

“계속 하다 보니 우리 농촌을 늘 교육의 대상, 구제의 대상으로만 봤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건축은 어떤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보살피는 것입니다. 건축을 하려면 먼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해요. 가령 면사무소를 지을 때, 거기 사는 면민이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그들의 삶을 등한시했는지, 건축가로서 한 번도 그들을 보살핀 적이 없다는 반성을 많이 했어요.”

―무주에 가 보니 정 교수께서 설계한 초창기 모습과 비교해 달라진 건물들이 많더군요.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수정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무주군청 내에서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에요.”

―현재 무주에서 진행하는 일이 없나요.

“신임군수와는 일절 접촉이 없습니다. 지난해 무주 프로젝트를 정리한 책을 내면서 책 속에 그것에 대한 서운함을 언급한 적이 있어요. 10년간 그런 작업을 했으면 한 번 불러서 조언을 구할 법도 한데 말이에요. 건축은 유지 보수가 중요한 일인데, 이렇게 단절되는 게 안타깝죠. 어쨌든 나는 10년간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이런 사례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거예요.”

―국내 공공건축의 좋은 사례가 있다면?

“김해가 좋은 예입니다. 김해는 지금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예요. 김해는 도서관이 정말 많아요. 김해시가 ‘문화 도시’ ‘책 읽는 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곳곳에 도서관을 설립했습니다. 아이들을 둔 젊은 부모의 호응이 대단합니다.”

―외국의 공공건축은 어떻습니까.

“외국은 공공건축을 당대 최고의 건축가에게 맡깁니다. 건축은 그림과 달리 좋은 것을 나누는 일이잖아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건축일수록 공공의 문화를 향상시키기 위해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공건축을 할 때 외국 사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얘기했던 것이 ‘문제는 무주에 있고, 해법도 무주에 있다’는 거였어요. 건축은 지역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죠. 모든 조건이 다 다른데 모양만 따서 지을 수는 없잖아요.”

―좋은 공공건축이란 어떤 것입니까.

“건축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 안에 거주하는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해 주는 것이 공공건축의 역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