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北核에 대해 미국이 강경한 듯하지만 실은 북한의 거듭된 합의 위반에도 불구,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덮고 숨기는 것일 뿐”
⊙ “1994년 초 날이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자, 많은 미국인 엄마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미국으로 조기 ‘방학’을 보낼 정도였다.”(제임스 레이니 주한 대사)
⊙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美·北은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우리는 미국이 평양에 주재할 외교관들의 인선을 마쳤으며 과거 동독대사관이 있던 건물을
임대하고 싶다고 북한측에 관심을 표명했음을 알았다.”(朴健雨 주미 대사)
⊙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6월 19일 오전 10시 다음날(토요일) 새벽 4시를 기해 전국 주요 도시와
대학에 전투병력을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야당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계획도 마련됐다.
나는 이날 오후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계엄령선포는 1980년 광주의 재앙적 사태의 반복을
초래하는 것이 될것이라고 말했다.(제임스 릴리 주한대사)
⊙ “정치적 배경이나 철학에 있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은 미국 측 상대방과는 거의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 정치는 좌회전을 했고 미국 정치는 우회전을 한 셈이었으니,
대개 원만한 관계가 어려운 구조였다.”(토머스 허버드 주한 대사)
⊙ “1994년 초 날이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자, 많은 미국인 엄마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미국으로 조기 ‘방학’을 보낼 정도였다.”(제임스 레이니 주한 대사)
⊙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美·北은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우리는 미국이 평양에 주재할 외교관들의 인선을 마쳤으며 과거 동독대사관이 있던 건물을
임대하고 싶다고 북한측에 관심을 표명했음을 알았다.”(朴健雨 주미 대사)
⊙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6월 19일 오전 10시 다음날(토요일) 새벽 4시를 기해 전국 주요 도시와
대학에 전투병력을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야당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계획도 마련됐다.
나는 이날 오후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계엄령선포는 1980년 광주의 재앙적 사태의 반복을
초래하는 것이 될것이라고 말했다.(제임스 릴리 주한대사)
⊙ “정치적 배경이나 철학에 있어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들은 미국 측 상대방과는 거의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 정치는 좌회전을 했고 미국 정치는 우회전을 한 셈이었으니,
대개 원만한 관계가 어려운 구조였다.”(토머스 허버드 주한 대사)
-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미 관계는 ‘코드’가 안맞아 삐걱거렸다. 사진은 2003년 5월 14일 한미정상회담 모습.
지난 달 미국에서 <대사들의 회고록>(Ambassadors’ Memoirs)이라는 책이 나왔다. ‘대사들이 본 한미관계’라는 副題(부제)가 말해주는 대로, 역대 駐韓(주한) 미국대사와 駐美(주미) 한국대사들 가운데 생존한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재임 중 韓美(한미)관계에 관해 기술한 것을 모은 책이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공직 때문에 저술 시간을 내지 못한 경우 등으로 몇 사람은 빠졌지만, 대부분이 참여했다. 원래 이 책은 영문으로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그 가운데 주요 대목 일부를 발췌하여 정리해 보았다.
제임스 릴리 주한 대사 (1986~89)
제임스 릴리 대사의 서울 근무기간은 한국의 全斗煥(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에서 盧泰愚(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초와 겹치는 시기였다.
릴리 대사는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과정에서 개스턴 시거 국무부 東亞太(동아태)차관보의 역할이 컸음을 이렇게 소개했다.
“필리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에 역할을 했었고, 민주화 개혁에 대한 확고한 주장자였던 시거는 1987년에는 미국 정부 안에서 한국의 민주화 개혁을 촉구하는 핵심 인물(point man)이었다. 시거는 전두환 대통령이 민주화 개혁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신중하면서도 확고한 캠페인을 이끌었다.”
198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의 개헌논의 유보 결정에 따라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시거 차관보는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그때마다 시거는 가택연금 중이던 金大中(김대중)씨를 만났다. 한번은 시거가 김씨 자택으로 타고 가던 자동차가 한국 측 경찰차량에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거의 전복될 뻔한 일도 있었다. 가장 조악한 방식의 겁주기 전술이었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6·10 항쟁이 벌어지고 그날 밤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날로 시위가 격화되자 전두환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하려고 했던 상황에 관해 릴리 대사는 자세히 회고했다.
“6월 17일 수요일, 나는 지방의 미국문화원들을 순시하고 있다가 대사관의 해리 던롭 정무참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레이건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내는 親書(친서)가 그날 밤 도착할 예정이며, 내가 직접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이 친서를 전하도록 하기 위해 청와대 일정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이 편지는 전두환 대통령이 군 병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협력된 전략이었다. 당시 金瓊元(김경원) 주미 한국대사는 내게, 레이건 친서를 통상적인 외교경로 즉 한국 외무부를 거쳐 전하지 말고 내가 직접 전 대통령에 전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던롭은 내가 6월 18일 오후에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청와대에 전화했지만 청와대는 회답을 주지 않았다. 나는 전두환 대통령 면담을 기대하면서 18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왔다. 냉정을 잃은 던롭은 (한국 정부 측에) 전화로 소리쳤다.
‘제기랄, 우리 대사가 한국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다는 결정을 내린 사람이 누군지 당장 알고 싶소!’
18일 밤 늦도록 폭력 시위가 계속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19일 금요일 오전 10시 국방장관과 군 주요 지휘관, 안기부장 등이 참석한 회의를 열고, 20일 토요일 새벽 4시를 기해 전투병력을 전국 주요 도시와 대학들에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계엄군법회의를 설치하는 계획이 마련됐다.
나는 19일 오후 2시 청와대로 전두환 대통령을 면담하러 갔다. 崔侊洙(최광수) 외무장관과 통역만 배석한 자리였다. 전 대통령은 90분간 면담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그날 오후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는 친서를 전했고, 전 대통령은 그걸 읽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친서에서 전 대통령의 평화적 정권이양 의지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전 대통령이 한국의 지속적 정치발전을 위해 가령 정치범 석방, 공권력 남용 경찰관에 대한 사법처리, 언론자유의 보장 등의 추가적 조치를 취하도록 조언했다.
나(릴리)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상황의 중대함을 강조하면서 확고하고 모호하지 않은 말로 계엄령 선포에 관한 미국 입장을 설명했다. 나는 계엄령 선포는 한미동맹을 그르치는 위험을 저지르는 것이며, 1980년 광주의 재앙적 사태의 반복을 초래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통령을 만나고 나올 때 최 장관은 ‘좋은 결과가 나오길 희망한다’고 내게 말했다.
전 대통령이 결국 군 병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결정의 대부분은 한국인 관리들, 어쩌면 고위 군 관계자들까지 전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기뻐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도널드 그레그 주한 대사 (1989~93)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1989년 9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서울에 근무했다. 그 시절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소련·중국과의 수교, 남북 비핵화 합의와 남북기본조약 체결 등 ‘북방정책’이 결실을 거둔 시기였다.
“내게 첫 번째의 정책 문제로 대두된 것은, 서울에서 한참 남쪽에 있는 미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술핵무기 문제였다. 이 핵무기들이 잘 보관되고 있는지에 관해 해마다 본국에서 전문가 팀이 와서 조사를 하고 갔다. 나는 이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핵무기를 한국에 두는 데 따르는 문제점들에 대해 깨닫게 됐다.
나는 북한의 핵개발 위협이 점점 증대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가 남한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설득하려는 우리 입장이 훨씬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부임 후 어느 날 밤) 몇 명의 대학생들이 대사관저에 (자동차로 돌진하여) 무단 침입했던 일도 나로 하여금 한국 대학생들이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점을 주의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북한 핵무기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다면 곧바로 남한 내 미군 핵무기가 학생시위의 초점이 될 것임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또, 우리(미국)가 어떤 압력에 의해 특정 무기체계를 한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 꺼리는 일일 것이며, 설령 그런 무기가 철수되어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먼저 주한미군사령관인 루 메네트리 대장과, 청와대 측과 조심스럽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런 구체적인 대화들의 결과 나는 부임 후 1년쯤 됐을 무렵 워싱턴에 대해, 주한미군사령관과 한국 대통령(노태우)이 모두 한반도로부터 미군 핵무기의 철수를 건의하고 있다고 보고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미국 본토 이외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모든 전술핵무기들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되돌아보건대, 서울 재임 중 이 일은 내게 두고두고 대단한 만족을 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는 1990년 노 대통령과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주선했으며, 그것이 이듬해 소련과의 수교로 가는 길을 닦았다. 부시 대통령은 또 중국에 대해서도, 1992년 한국과 수교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대해 오래 견지해 오던 반대 정책을 포기하도록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玄鴻柱 주미 대사 (1990~93)
“(1990년 5월 샌프란시코에서의 노태우-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뒤이은) 잇따른 교섭 결과로, 한국과 소련은 1991년 초부터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1990년 9월 28일, 유엔 총회에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온 崔浩中(최호중) 장관은 소련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준비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에서 한·소 수교를 (잠정 합의보다) 좀 더 앞당기도록 소련에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결과를 자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잃을 것도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틀 후 최 장관은 셰바르드나제 장관과의 회담에서 우리가 이 ‘좋은 일’(수교)을 좀 더 일찍 발표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국 측 참석자뿐 아니라 러시아 측 참석자들마저 놀라도록, 셰바르드나제는 ‘왜 못하겠소? 내일 유엔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기 위한 어린이 문제 회의를 시작하는데, 우리 두 나라의 수교도 미래를 내다보는 일 아니겠소. 이 좋은 소식을 1991년 1월이 아니라 당장 내일, 10월 1일에 발표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펜을 꺼내 (합의문의) 수교 날짜를 수정했다. 한국 대표단은 뛸 듯이 기뻤다.
셰바르드나제가 수교 발표를 앞당기기로 한 이유를 우리는 몇 달 뒤에 알게 됐다. 셰바르드나제는 유엔에 오는 길에 평양에 들러서, 한국과의 수교 계획을 통보했다. 金日成(김일성)은 셰바르드나제 접견을 거절했다. 북한 외상은 그에게, 북한은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며, 소련과 일본 사이의 영토분쟁과 발트 4국 독립문제에 대해 소련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1990년 10월 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면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강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보편적 유엔 가입이 유엔의 앞날에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유엔 가입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한 선입견 없이,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시가입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유엔총회 회의장의 옆 구석 비좁은 자리에서 이 연설에 귀 기울이고 있던 한국 대표단은, 박수를 치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의전 관례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 후 리셉션에서 북한의 박길연 대사가 내게 다가와, 부시의 연설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느냐고 묻자 그는 ‘미국 대통령이 공식 연설에서 처음으로 우리를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러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1991년 9월 23일, 노태우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이 유엔 신규가입 회원국 국가원수로서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회담에서 부시는 미국의 강력한 對韓(대한) 안보공약을 말한 뒤, 미국이 전 세계로부터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려는 결정을 내리려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안보공약을 거듭 확인하는 데 대해 안도하는 듯이 보였다.
노 대통령은 유엔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미국이 모든 전술 핵무기를 철수할 것임을 정식으로 통보 받았고, 며칠 후인 9월 27일에 미국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이 대목에 관해 현 대사는 기자에게, “회담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핵무기’를 언급했지만 미국측 통역이 이 말을 번역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노 대통령도 전술핵무기 철수 문제를 따로 제기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1992년 1월 21일, 아놀드 캔터 국무부 차관과 김일성 주석의 심복으로 알려진 북한 노동당 김용순 비서가 만났다. 뉴욕에 있는 미국의 유엔대표부에서 회담이 열렸고, 그날 오후 캔터 차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회담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회담은 쌍방이 각각 사전 준비한 내용에 따라 발언을 교환하는 식으로 진행됐고, 향후 회담 가능성에 관한 어떤 합의도 없었다. 한미가 미리 양해했던 내용에서 벗어난 것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스런 이야기가 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김정일은 김 대통령에게조차 놀랍게도,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지 않으며, 통일 이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은 나아가, 이같은 북한의 입장은 이미 1992년 1월 김용순이 캔터 차관을 만났을 때 미국측에 전달됐노라고까지 말했다.
나는 당시 캔터가 내게 회담 내용을 알려주었을 때 주한미군에 관한 어떤 언급이 있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당시의 메모와 우리 외교부 기록을 다 확인해 보았으나, 그런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몇 달 후 내가 캔터를 만났을 때, 그는 김용순으로부터 주한미군에 관한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노라고 부인했다. (남북정상 사이에서, 또는 김 대통령의 사후 발표 과정에서) 의사 전달이 잘못됐는지 혹은 아닌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제임스 레이니 주한 대사 (1993~97)
1993년은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클린턴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해였다. 그해 3월, 북한은 돌연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북핵 위기를 고조시켰다. 미국은 대북 제재로 대응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되고 그해 가을 한국으로 떠나기까지, 한반도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의회,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등을 돌면서, 모두가 한반도의 긴장고조에 놀라워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정작 이 문제를 행정부 중앙에서 조정해 나갈 지도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폭발 가능성이 잠재한 이 한반도 상황을 실제로 책임질 사람이 행정부에서 아무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 걱정스러웠다.”
“1994년 초부터 봄까지, 한국 정부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완전하게 참여시키지 않은 채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듯이 보이는 데 대해 화가 났다. 그의 이러한 초조감은 임기 내내 계속됐다.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이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韓昇洲(한승주) 외무장관에게 더욱 큰 걱정은 미국이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온당한 평가도 없이 (북한에 대해) 일방적으로 행동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유사시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에 사는 8만여 명의 미국 민간인들의 안전과 철수를 책임져야 했다. 우리의 철수 계획은 낡은 것이었기 때문에, 찰스 카트먼 부대사는 실행 가능하도록 계획을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했다.
철수시켜야 할 인원이 인구 1000만명의 도시 도처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 그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한 자리에 집결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북한은 예고 없이 공격을 가해올 것이고, 도처에 혼란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994년 초반, 날이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자, 많은 미국인 엄마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미국으로 조기 ‘방학’을 보낼 정도였다.”
“6월 14일 판문점을 거쳐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5일 김일성과의 회담에서, 북한에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를 제공하도록 (미국 행정부에) 추천하겠다고 약속하고 모든 대북제재 추진을 중지하는 대가로,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하는 것 등에 합의했다. 김은 한국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조속히 갖고 싶다는 뜻밖의 제의도 했다.
카터가 평양에 가 있는 동안에도, 제재를 위한 움직임은 계속 진행됐다. 더욱 불길한 것은, 주한미군 병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증원시키겠다는 결정이었다. 이 결정은 전화로 럭 사령관에게 통보됐다.
럭 사령관은 대사관저로 찾아와 그 걱정스런 뉴스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둘 다, 이 시점에서 주한미군 병력의 증원은 북한에게 공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는 그것이 한국에 공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커다란 두려움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그 같은 조치에 반대한다는 뜻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표현하는 긴급電文(전문)을 공동 명의로 워싱턴에 보내기로 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원했던 결과를 얻었다.”
“카터가 김일성과의 합의 내용을 동행했던 CNN에 먼저 공표한 일은, 미국 정부 관리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을 그가 했다는 점에서 그의 권한 밖의 일을 한 것으로 보였다. 이것은 워싱턴에서 커다란 당혹과 우려를 자아냈고, 결국 나는 방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카터에게, 백악관이 그를 워싱턴으로 오지 말고 곧바로 (카터가 살고 있던) 플레인스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해야 했다.
격분한 카터는 고어 부통령과 (전화로) 열띤 논쟁을 벌인 끝에 회담 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해 워싱턴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거의 모두 그를 무시했다. 카터 회담에 회의적이었던 미국 행정부는 김일성이 카터와의 구두 합의를 재확인하는 내용을 서면으로 보내준 뒤 이를 믿고 그해 10월의 제네바 합의를 향해 나가게 됐다.”
朴健雨 주미대사 (1995~98)
“1994년의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각각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1995년 늦게,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구체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징후들이 보였다.
우리는 미국이 평양에 주재할 외교관들의 인선을 마쳤으며 과거 동독대사관이 있던 건물을 임대하고 싶다고 북한측에 관심을 표명했음을 알았다. 북한도 비슷한 준비를 마치고, 관리들을 워싱턴에 보내 사무실 후보로 물색한 근교의 빌딩 두 곳을 찾아가 보게 한 듯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미국에 연락사무소 개설을 1996년 4월에 있을 한국의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남북 관계가 막힌 상황에서 美·北(미·북) 관계만 진전을 이룩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겠지만 미리 약속을 해 줄 수는 없노라고 회답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미·북 관계 때문에 한미관계가 불리하게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주의하겠노라는 다짐을 해 주었다.
그같은 미묘한 시점에, 상황을 완전히 뒤바꾼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 인민군 병사 하나가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으로 들어갔고,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 듯했다. 어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만일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들어설 경우 유사한 사건들이 재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게 됐다.
게다가 북한으로서는 이미 뉴욕의 유엔대표부를 통해 미국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여는 데 상당한 돈이 든다는 점에서,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미국은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외교행낭을 보낼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하려 했으나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점점 좌절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연락사무소 개설은 미·북 양쪽 모두에서 우선순위가 떨어졌다.
게다가 북한 외교부와 공안기관들 사이에는 외교특권과 면책특권을 갖게 될 미국 연락사무소 외교관들의 활동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이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은 연락사무소 문제를 나중에, 아마도 미·북 관계에 관한 포괄적 협상의 일환으로 다루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1996년 9월 19일 북한 잠수함의 동해안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26명의 승조원 가운데 11명이 자체 처형 형태로 집단 자살했고, 1명이 생포됐으며, 나머지 14명은 우리 측에 의해 사살됐다.
그해 11월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됐다. 이 무렵 내게 내려져 있던 본국 정부의 지침은, 설령 제네바 합의의 이행이 중단되는 사태가 초래될지라도 잠수함 침투에 대한 북한 측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는 것이 제1의 과제라는 것이었다.
그해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나는 서울로부터 電文(전문) 훈령을 받았다. 미국 정부에 대해, 한국은 북한이 잠수정 침투사건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는 한, (북한에 경수로를 짓기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알리라는 지시였다.
11월 24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적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나는 정상회담의 엄중한 분위기에 압도됐다.
미국과 북한은 이후 비공식 접촉을 통해 계속해서 북한의 사과 문제를 논의했다. 북한은 12월 29일 마침내 사과 성명을 평양방송을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발표했다. 성명은 ‘남한 강릉 해안에서 발생한, 비극적 인명손실을 초래한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북한은 또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성명을 발표, 북한 잠수정 사건은 이제 해결됐으며,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나선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해결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그의 지원과 노력에 감사하는 친서를 보냈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997~2001)
“1998년 8월 말, 북한이 돌연 3단계 대포동 미사일을 일본 너머 태평양으로 시험 발사했다. 여론과 의회의 압력을 받은 클린턴 행정부는 잘 짜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했다. 클린턴 1기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던 윌리엄 페리가 대북 특사로 영입됐다. 그의 임무는 북한이 던진 당면한 위협을 평가하고 미국의 우방국들, 특히 한국·일본 등과 협력하여 대응 행동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1999년 초반 무렵, 페리의 재검토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단계에 다가서고 있었다. 우리의 우선 순위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계획임이 분명했다. 북한 영변에서의 플루토늄 추출은 제네바 합의에 의한 국제 사찰로 동결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무기 사업의 다른 측면(우라늄 농축)을 추구하고 있지 않나 의심했다.
국가안보회의(NSC)에서의 난상토론 끝에,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앞날의 두 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방안은 북한이 핵무기 계획에서 좀 더 투명성을 보여주고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는 등 긍정적 행동을 취하는 대가로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방안은 북한이 우리의 관심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었다. 그럴 경우 우리는 북한에게, 우리의 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거라고 말해줄 터였다. 우리는 일부러 도발적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북한이 두 번째 길을 택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것이며, 실제로 분쟁의 위험은 높아질 거라는 점을 분명히 할 작정이었다.”
“2000년 초반, 임동원 국정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비밀접촉이 강화됐다. 임 원장은 적어도 두 차례 방북해 김정일을 만났다. 나는 당시 워싱턴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이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깜짝 놀라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나는 충실하게 이 모든 것을 임 원장에게 전달했다. 청와대는 내게 충분히 고마울 정도로 사전 통보를 해 준 뒤인 5월 중순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달라는 김정일의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梁性喆(양성철) 주미 대사 (2000~03)
“김·부시 정상회담 전날인 2001년 3월 6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이런 발언을 했다. ‘내가 앞서도 말했듯이, 특히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도 그랬지만, 우리는 대북한 정책에 있어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남긴 성과를 이어받기 위해 북한을 포용해 나갈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이 발언은 즉각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 안보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파월 장관은 다음날 김·부시 회담 와중에, 언론 앞에서 자신의 전날 발언을 거둬들여야 했다. 돌이켜보면, 파월의 발언 취소는 대북 접근에 있어서 김대중 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불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대북 접근의 차이는 3월 7일 백악관 오찬석상에서, 그리고 오찬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회견에서 부시는 ‘회의(skepticism)’라는 말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
부시가 김 대통령에 대해 ‘이 사람(this man)’이라는 말을 쓴 대목―‘우선 나는 북한에 대해 먼저 손을 내밀며 다가선 이 사람의 지도력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은 즉각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좋게 말해서 ‘예의 바르지 못한(impolite)’ 표현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싫어한다(disparaging)’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에 나타난 그같은 감정적 반응은 이해할 만했다. 왜냐하면 그 전날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짐 호글런드는 자신의 칼럼에서 김 대통령을 ‘속세의 성자(earthly saint)’라고 표현했던 터니까. 게다가 한국처럼 유교적 뿌리가 깊은 사회에서 ‘이 사람’이라는 말은 일반 국민뿐 아니라 언론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렸다.”
토머스 허버드 주한 대사 (2001~04)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2월 취임했을 때, 한국과 미국 대통령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그들의 연령과 국제 경험의 결여뿐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김대중 대통령 때 한국을 국빈방문하기 이전에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전에 미국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었다.
정치적 배경이나 철학에 있어 한국의 새 대통령과 측근들은 미국측 상대방과는 거의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 정치는 좌회전을 했고 미국 정치는 우회전을 한 셈이었으니, 대개 원만한 관계가 어려운 구조였다.”
“새로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종종,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해왔다.”
“한국 언론들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의 개막에 온통 쏠려 있을 때, 사실은 그보다 며칠 전 의정부 근교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인 여중생 2명의 비극적 죽음 때문에 反美(반미)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전 이후 미군과 한국 민간인 사이에 있었던 사고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당시 부임 초기였던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나는, 이 사건이 한미관계에 미칠 엄청난 영향을 곧바로 인식하고 공개사과를 하는 한편 사과, 장례식, 보상 등을 통한 유가족 위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언론들은 월드컵 경기에 치중해 있었기 때문에 이 끔찍한 사건은 큰 뉴스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가, 약 보름 뒤 축구 경기가 막을 내린 뒤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우리가 진작 했던 사과는 거의 잊혀 있었고, 미국이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무신경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내가 이 사건을 다룸에 있어 가장 후회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바로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강력히 추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고 후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2주일 동안에 국민적 분노가 분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에 오판을 했다. 나는 당시 워싱턴에 있는 한국 특파원들이 이 사건에 관해 질문함으로써, 그것이 반드시 대통령 자신의 사과는 아니더라도 백악관 대변인의 사과 정도는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데 대해 나는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미국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주한미군의 숫자와 배치 지역을 상당히 바꾸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놀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미국의 그같은 변화 추진이 한국에서 한때 반미주의자였던 인물이 대통령에 취임한 것과 반미주의에 대한 미국의 반발 탓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줄이려 한 것은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돼 있다기보다 미국 군사력을 좀 더 정돈하려는 럼즈펠드 장관의 노력과 다른 지역에서 미군이 더 필요했다는 것 때문이다. 다만 우리(미국)는 좀더 주의 깊게 그 길을 닦았어야 했다.”
韓昇洲(한승주) 주미대사 (2003~05)
“노무현 정부의 참모진에는 한미관계에서 한국이 좀더 독립적이고 균형된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던 사람들(워싱턴에서는 이들을 ‘탈레반’이라 부르기도 했다)이 많았다.
사실 노 정부는 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회의 동의를 설득하기가 좋았다.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보내면서 노 대통령은 자신이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미 동맹관계를 위해서 파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말이 워싱턴에서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한국에서 대단히 논란이 심했던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했던 수사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2004년 12월, 노 대통령이 칠레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로스앤젤레스에 하루 기착했을 때였다. 세계문제협의회(WAC)에서 연설하면서 그는 보좌관들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왜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이끈 것은 안보 불안감 때문이며, 그것이 해소되면 북한은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노 대통령은 확신한다는 것이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나는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노 대통령은 진정으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깊이 걱정하고 있으며, 북한 핵문제가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 설명이 얼마나 먹혀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노 대통령의 LA 발언 문제가 칠레에서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거론되지 않는 것이, 한미 관계나 북한을 다룰 한미의 능력을 위해서도 좋겠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런 보고를 받았을 것이므로, 부시 대통령은 칠레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LA 발언의 의미나 의도에 관해 질문하기는커녕,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 대통령이 그걸 거론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부시 행정부 정책을 비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워싱턴의 일부 ‘초강경파 논객’들에 의해 표현된 견해를 비판하려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그 문제에 관해 더 논의하지 않았다. 다른 모든 참석자들은 안도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겉보기엔 강경한 듯하지만 실은 북한의 거듭된 합의 위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덮고 숨기는 것일 뿐이다. 북한이 假想(가상)의 금지선(redline)―가령 원자로 재가동이나, 폐연료봉 재처리, 또는 심지어 핵무기 보유 선언까지―을 넘었을 때,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할 수도 없었고 강경 정책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사실 미국은 금지선을 긋거나 무엇이 금지선에 해당한다고 구체적으로 밝히려 들지 않아왔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지선을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어떤 시한을 설정하지 않아온(사실은 그러지 못해온) 이유는, 만일 그런 금지선을 그어둔다면 북한은 결국 그 선을 넘을 것이라고―시한 설정도 마찬가지다―전문가들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그 선을 넘는다 하더라도 미국은 어떤 대응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종이호랑이처럼 비쳐질 것이다. 미국은 이미 2003년부터 이라크에 얽매여 온 데다, 한국 같은 ‘동맹국’과 중국 같은 ‘우방국’들로부터 섣불리 행동하지 말도록 촉구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을 다룸에 있어 쓸 만한 방안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고, 북한은 이 같은 미국의 진퇴양난을 기꺼이 이용해 왔다.
따라서 내가 주미대사 직을 떠나며 작별 인사를 위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찾아갔을 무렵,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어쩌다 보니 일치하고 있었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전반기의) 자신의 강경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실제로 감당할 수 없을 말―가령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고 싶지도 않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이 얼마나 도발적이고 위험하게 들렸는지에 상관없이, 한국은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 대해 과잉 대응하지 않기를, 혹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에도 미국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있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 기뻐할 뿐이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대사 (2005~08)
“노무현 대통령이 전임자(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채찍보다 당근에 더 비중을 둔―을 견지하기로 함에 따라 한미 사이에는 6자회담 전략에 관해서도 종종 이견이 생겼다. 나의 주한대사 재임 3년간 가장 힘들었던 도전은, 한미 사이에 대북정책이 같이 움직이도록 하는 일이었다.
내가 서울에 부임한 것은 노 대통령의 임기 중반, 그러니까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공동 성명이 채택된 직후였다. 그런데 부임 얼마 후, 미국이 북한의 돈 세탁 및 위폐 유통 창구였던 방코 델타 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팀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 구조라는 포괄적 비전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진전을 이뤄 나가려 했기 때문에, 왜 미국이 북한의 불법 활동에 철퇴를 가함으로써 그 모든 가능성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견이 배경이 되어 결국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BDA 문제를 놓고 한 시간이 넘도록 논쟁을 벌이는 바람에 사상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이 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10월의 핵실험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좀 더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그해 여름 나는 宋旻淳(송민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몇 차례 난상토론을 가졌으며, 그 이후 한국과 미국은 6자 회담을 부활시키기 위해 ‘공통의 폭넓은 접근’을 향해 움직여 나갔다.
송 수석은 노 대통령에게, 남북 관계에서 진정한 돌파구를 찾으려면 남한 혼자로는 안되고 미국과 함께, 즉 채찍과 당근의 균형에 바탕을 둔 한미의 일치된 접근에 의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주의적 대북정책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 하여금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에 관해 한국과 보조를 일치시킬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목표는 김정일에게 핵무기이냐 문명사회와의 정상적인 관계이냐,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분명하게 들이대는 것이다. 김정일이 그 둘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한미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분야는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 제시했던 목표, 즉 보다 광범위하고 더 지구적인 임무를 위한 한미동맹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이다. 한국인들은 이미 심리적으로는 한국이 세계 속에서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만, 한미 방위동맹이 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한미동맹을 일방통행식으로, 즉 미국이 아시아 본토에 주둔하는 전략적 이득의 대가로 한국을 지켜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우리가 ‘지구적 차원의 동맹’을 말하면 한국인들은 그것이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고 지구적 차원의 정책 결정에 한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위험이 큰 지역에 파병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구조라고 받아들인다.”⊙
제임스 릴리 주한 대사 (198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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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전 대사. |
릴리 대사는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과정에서 개스턴 시거 국무부 東亞太(동아태)차관보의 역할이 컸음을 이렇게 소개했다.
“필리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에 역할을 했었고, 민주화 개혁에 대한 확고한 주장자였던 시거는 1987년에는 미국 정부 안에서 한국의 민주화 개혁을 촉구하는 핵심 인물(point man)이었다. 시거는 전두환 대통령이 민주화 개혁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신중하면서도 확고한 캠페인을 이끌었다.”
198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의 개헌논의 유보 결정에 따라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시거 차관보는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 “그때마다 시거는 가택연금 중이던 金大中(김대중)씨를 만났다. 한번은 시거가 김씨 자택으로 타고 가던 자동차가 한국 측 경찰차량에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거의 전복될 뻔한 일도 있었다. 가장 조악한 방식의 겁주기 전술이었다.”
1987년 6월 10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6·10 항쟁이 벌어지고 그날 밤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날로 시위가 격화되자 전두환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하려고 했던 상황에 관해 릴리 대사는 자세히 회고했다.
“6월 17일 수요일, 나는 지방의 미국문화원들을 순시하고 있다가 대사관의 해리 던롭 정무참사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레이건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내는 親書(친서)가 그날 밤 도착할 예정이며, 내가 직접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이 친서를 전하도록 하기 위해 청와대 일정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이 편지는 전두환 대통령이 군 병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협력된 전략이었다. 당시 金瓊元(김경원) 주미 한국대사는 내게, 레이건 친서를 통상적인 외교경로 즉 한국 외무부를 거쳐 전하지 말고 내가 직접 전 대통령에 전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던롭은 내가 6월 18일 오후에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청와대에 전화했지만 청와대는 회답을 주지 않았다. 나는 전두환 대통령 면담을 기대하면서 18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왔다. 냉정을 잃은 던롭은 (한국 정부 측에) 전화로 소리쳤다.
‘제기랄, 우리 대사가 한국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다는 결정을 내린 사람이 누군지 당장 알고 싶소!’
18일 밤 늦도록 폭력 시위가 계속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19일 금요일 오전 10시 국방장관과 군 주요 지휘관, 안기부장 등이 참석한 회의를 열고, 20일 토요일 새벽 4시를 기해 전투병력을 전국 주요 도시와 대학들에 배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계엄군법회의를 설치하는 계획이 마련됐다.
나는 19일 오후 2시 청와대로 전두환 대통령을 면담하러 갔다. 崔侊洙(최광수) 외무장관과 통역만 배석한 자리였다. 전 대통령은 90분간 면담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그날 오후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는 친서를 전했고, 전 대통령은 그걸 읽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친서에서 전 대통령의 평화적 정권이양 의지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전 대통령이 한국의 지속적 정치발전을 위해 가령 정치범 석방, 공권력 남용 경찰관에 대한 사법처리, 언론자유의 보장 등의 추가적 조치를 취하도록 조언했다.
나(릴리)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상황의 중대함을 강조하면서 확고하고 모호하지 않은 말로 계엄령 선포에 관한 미국 입장을 설명했다. 나는 계엄령 선포는 한미동맹을 그르치는 위험을 저지르는 것이며, 1980년 광주의 재앙적 사태의 반복을 초래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통령을 만나고 나올 때 최 장관은 ‘좋은 결과가 나오길 희망한다’고 내게 말했다.
전 대통령이 결국 군 병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결정의 대부분은 한국인 관리들, 어쩌면 고위 군 관계자들까지 전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기뻐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도널드 그레그 주한 대사 (19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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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그 전 대사. |
“내게 첫 번째의 정책 문제로 대두된 것은, 서울에서 한참 남쪽에 있는 미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술핵무기 문제였다. 이 핵무기들이 잘 보관되고 있는지에 관해 해마다 본국에서 전문가 팀이 와서 조사를 하고 갔다. 나는 이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핵무기를 한국에 두는 데 따르는 문제점들에 대해 깨닫게 됐다.
나는 북한의 핵개발 위협이 점점 증대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가 남한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설득하려는 우리 입장이 훨씬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부임 후 어느 날 밤) 몇 명의 대학생들이 대사관저에 (자동차로 돌진하여) 무단 침입했던 일도 나로 하여금 한국 대학생들이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점을 주의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북한 핵무기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다면 곧바로 남한 내 미군 핵무기가 학생시위의 초점이 될 것임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또, 우리(미국)가 어떤 압력에 의해 특정 무기체계를 한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 꺼리는 일일 것이며, 설령 그런 무기가 철수되어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먼저 주한미군사령관인 루 메네트리 대장과, 청와대 측과 조심스럽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런 구체적인 대화들의 결과 나는 부임 후 1년쯤 됐을 무렵 워싱턴에 대해, 주한미군사령관과 한국 대통령(노태우)이 모두 한반도로부터 미군 핵무기의 철수를 건의하고 있다고 보고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미국 본토 이외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모든 전술핵무기들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되돌아보건대, 서울 재임 중 이 일은 내게 두고두고 대단한 만족을 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는 1990년 노 대통령과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을 주선했으며, 그것이 이듬해 소련과의 수교로 가는 길을 닦았다. 부시 대통령은 또 중국에 대해서도, 1992년 한국과 수교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대해 오래 견지해 오던 반대 정책을 포기하도록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玄鴻柱 주미 대사 (199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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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홍주 전 대사. |
이틀 후 최 장관은 셰바르드나제 장관과의 회담에서 우리가 이 ‘좋은 일’(수교)을 좀 더 일찍 발표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국 측 참석자뿐 아니라 러시아 측 참석자들마저 놀라도록, 셰바르드나제는 ‘왜 못하겠소? 내일 유엔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기 위한 어린이 문제 회의를 시작하는데, 우리 두 나라의 수교도 미래를 내다보는 일 아니겠소. 이 좋은 소식을 1991년 1월이 아니라 당장 내일, 10월 1일에 발표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펜을 꺼내 (합의문의) 수교 날짜를 수정했다. 한국 대표단은 뛸 듯이 기뻤다.
셰바르드나제가 수교 발표를 앞당기기로 한 이유를 우리는 몇 달 뒤에 알게 됐다. 셰바르드나제는 유엔에 오는 길에 평양에 들러서, 한국과의 수교 계획을 통보했다. 金日成(김일성)은 셰바르드나제 접견을 거절했다. 북한 외상은 그에게, 북한은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며, 소련과 일본 사이의 영토분쟁과 발트 4국 독립문제에 대해 소련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1990년 10월 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면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강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보편적 유엔 가입이 유엔의 앞날에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유엔 가입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한 선입견 없이,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시가입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유엔총회 회의장의 옆 구석 비좁은 자리에서 이 연설에 귀 기울이고 있던 한국 대표단은, 박수를 치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의전 관례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 후 리셉션에서 북한의 박길연 대사가 내게 다가와, 부시의 연설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느냐고 묻자 그는 ‘미국 대통령이 공식 연설에서 처음으로 우리를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러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1991년 9월 23일, 노태우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이 유엔 신규가입 회원국 국가원수로서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회담에서 부시는 미국의 강력한 對韓(대한) 안보공약을 말한 뒤, 미국이 전 세계로부터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려는 결정을 내리려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안보공약을 거듭 확인하는 데 대해 안도하는 듯이 보였다.
노 대통령은 유엔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미국이 모든 전술 핵무기를 철수할 것임을 정식으로 통보 받았고, 며칠 후인 9월 27일에 미국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이 대목에 관해 현 대사는 기자에게, “회담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핵무기’를 언급했지만 미국측 통역이 이 말을 번역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노 대통령도 전술핵무기 철수 문제를 따로 제기하지 않은 채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1992년 1월 21일, 아놀드 캔터 국무부 차관과 김일성 주석의 심복으로 알려진 북한 노동당 김용순 비서가 만났다. 뉴욕에 있는 미국의 유엔대표부에서 회담이 열렸고, 그날 오후 캔터 차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회담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회담은 쌍방이 각각 사전 준비한 내용에 따라 발언을 교환하는 식으로 진행됐고, 향후 회담 가능성에 관한 어떤 합의도 없었다. 한미가 미리 양해했던 내용에서 벗어난 것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스런 이야기가 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김정일은 김 대통령에게조차 놀랍게도,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지 않으며, 통일 이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은 나아가, 이같은 북한의 입장은 이미 1992년 1월 김용순이 캔터 차관을 만났을 때 미국측에 전달됐노라고까지 말했다.
나는 당시 캔터가 내게 회담 내용을 알려주었을 때 주한미군에 관한 어떤 언급이 있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당시의 메모와 우리 외교부 기록을 다 확인해 보았으나, 그런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몇 달 후 내가 캔터를 만났을 때, 그는 김용순으로부터 주한미군에 관한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노라고 부인했다. (남북정상 사이에서, 또는 김 대통령의 사후 발표 과정에서) 의사 전달이 잘못됐는지 혹은 아닌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제임스 레이니 주한 대사 (199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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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니 전 대사. |
“내가 주한 미국대사로 지명되고 그해 가을 한국으로 떠나기까지, 한반도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의회,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등을 돌면서, 모두가 한반도의 긴장고조에 놀라워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정작 이 문제를 행정부 중앙에서 조정해 나갈 지도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폭발 가능성이 잠재한 이 한반도 상황을 실제로 책임질 사람이 행정부에서 아무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 걱정스러웠다.”
“1994년 초부터 봄까지, 한국 정부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완전하게 참여시키지 않은 채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듯이 보이는 데 대해 화가 났다. 그의 이러한 초조감은 임기 내내 계속됐다.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이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韓昇洲(한승주) 외무장관에게 더욱 큰 걱정은 미국이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온당한 평가도 없이 (북한에 대해) 일방적으로 행동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유사시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에 사는 8만여 명의 미국 민간인들의 안전과 철수를 책임져야 했다. 우리의 철수 계획은 낡은 것이었기 때문에, 찰스 카트먼 부대사는 실행 가능하도록 계획을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했다.
철수시켜야 할 인원이 인구 1000만명의 도시 도처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 그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한 자리에 집결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북한은 예고 없이 공격을 가해올 것이고, 도처에 혼란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994년 초반, 날이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자, 많은 미국인 엄마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미국으로 조기 ‘방학’을 보낼 정도였다.”
“6월 14일 판문점을 거쳐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5일 김일성과의 회담에서, 북한에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를 제공하도록 (미국 행정부에) 추천하겠다고 약속하고 모든 대북제재 추진을 중지하는 대가로,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하는 것 등에 합의했다. 김은 한국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조속히 갖고 싶다는 뜻밖의 제의도 했다.
카터가 평양에 가 있는 동안에도, 제재를 위한 움직임은 계속 진행됐다. 더욱 불길한 것은, 주한미군 병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증원시키겠다는 결정이었다. 이 결정은 전화로 럭 사령관에게 통보됐다.
럭 사령관은 대사관저로 찾아와 그 걱정스런 뉴스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둘 다, 이 시점에서 주한미군 병력의 증원은 북한에게 공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는 그것이 한국에 공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커다란 두려움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그 같은 조치에 반대한다는 뜻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표현하는 긴급電文(전문)을 공동 명의로 워싱턴에 보내기로 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원했던 결과를 얻었다.”
“카터가 김일성과의 합의 내용을 동행했던 CNN에 먼저 공표한 일은, 미국 정부 관리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을 그가 했다는 점에서 그의 권한 밖의 일을 한 것으로 보였다. 이것은 워싱턴에서 커다란 당혹과 우려를 자아냈고, 결국 나는 방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카터에게, 백악관이 그를 워싱턴으로 오지 말고 곧바로 (카터가 살고 있던) 플레인스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해야 했다.
격분한 카터는 고어 부통령과 (전화로) 열띤 논쟁을 벌인 끝에 회담 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해 워싱턴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거의 모두 그를 무시했다. 카터 회담에 회의적이었던 미국 행정부는 김일성이 카터와의 구두 합의를 재확인하는 내용을 서면으로 보내준 뒤 이를 믿고 그해 10월의 제네바 합의를 향해 나가게 됐다.”
朴健雨 주미대사 (19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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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건우 전 대사. |
우리는 미국이 평양에 주재할 외교관들의 인선을 마쳤으며 과거 동독대사관이 있던 건물을 임대하고 싶다고 북한측에 관심을 표명했음을 알았다. 북한도 비슷한 준비를 마치고, 관리들을 워싱턴에 보내 사무실 후보로 물색한 근교의 빌딩 두 곳을 찾아가 보게 한 듯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미국에 연락사무소 개설을 1996년 4월에 있을 한국의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남북 관계가 막힌 상황에서 美·北(미·북) 관계만 진전을 이룩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게 당연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겠지만 미리 약속을 해 줄 수는 없노라고 회답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미·북 관계 때문에 한미관계가 불리하게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주의하겠노라는 다짐을 해 주었다.
그같은 미묘한 시점에, 상황을 완전히 뒤바꾼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 인민군 병사 하나가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으로 들어갔고,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 듯했다. 어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만일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들어설 경우 유사한 사건들이 재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게 됐다.
게다가 북한으로서는 이미 뉴욕의 유엔대표부를 통해 미국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여는 데 상당한 돈이 든다는 점에서,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미국은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외교행낭을 보낼 수 있도록 북한을 설득하려 했으나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점점 좌절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연락사무소 개설은 미·북 양쪽 모두에서 우선순위가 떨어졌다.
게다가 북한 외교부와 공안기관들 사이에는 외교특권과 면책특권을 갖게 될 미국 연락사무소 외교관들의 활동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이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김정일의 권력 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은 연락사무소 문제를 나중에, 아마도 미·북 관계에 관한 포괄적 협상의 일환으로 다루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1996년 9월 19일 북한 잠수함의 동해안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26명의 승조원 가운데 11명이 자체 처형 형태로 집단 자살했고, 1명이 생포됐으며, 나머지 14명은 우리 측에 의해 사살됐다.
그해 11월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됐다. 이 무렵 내게 내려져 있던 본국 정부의 지침은, 설령 제네바 합의의 이행이 중단되는 사태가 초래될지라도 잠수함 침투에 대한 북한 측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는 것이 제1의 과제라는 것이었다.
그해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나는 서울로부터 電文(전문) 훈령을 받았다. 미국 정부에 대해, 한국은 북한이 잠수정 침투사건에 대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는 한, (북한에 경수로를 짓기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알리라는 지시였다.
11월 24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적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나는 정상회담의 엄중한 분위기에 압도됐다.
미국과 북한은 이후 비공식 접촉을 통해 계속해서 북한의 사과 문제를 논의했다. 북한은 12월 29일 마침내 사과 성명을 평양방송을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발표했다. 성명은 ‘남한 강릉 해안에서 발생한, 비극적 인명손실을 초래한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북한은 또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성명을 발표, 북한 잠수정 사건은 이제 해결됐으며,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나선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해결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그의 지원과 노력에 감사하는 친서를 보냈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997~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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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사. |
1999년 초반 무렵, 페리의 재검토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단계에 다가서고 있었다. 우리의 우선 순위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계획임이 분명했다. 북한 영변에서의 플루토늄 추출은 제네바 합의에 의한 국제 사찰로 동결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핵무기 사업의 다른 측면(우라늄 농축)을 추구하고 있지 않나 의심했다.
국가안보회의(NSC)에서의 난상토론 끝에,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앞날의 두 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방안은 북한이 핵무기 계획에서 좀 더 투명성을 보여주고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는 등 긍정적 행동을 취하는 대가로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방안은 북한이 우리의 관심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었다. 그럴 경우 우리는 북한에게, 우리의 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거라고 말해줄 터였다. 우리는 일부러 도발적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북한이 두 번째 길을 택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것이며, 실제로 분쟁의 위험은 높아질 거라는 점을 분명히 할 작정이었다.”
“2000년 초반, 임동원 국정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비밀접촉이 강화됐다. 임 원장은 적어도 두 차례 방북해 김정일을 만났다. 나는 당시 워싱턴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이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깜짝 놀라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나는 충실하게 이 모든 것을 임 원장에게 전달했다. 청와대는 내게 충분히 고마울 정도로 사전 통보를 해 준 뒤인 5월 중순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달라는 김정일의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梁性喆(양성철) 주미 대사 (2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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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철 전 대사. |
이 발언은 즉각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 안보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파월 장관은 다음날 김·부시 회담 와중에, 언론 앞에서 자신의 전날 발언을 거둬들여야 했다. 돌이켜보면, 파월의 발언 취소는 대북 접근에 있어서 김대중 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불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대북 접근의 차이는 3월 7일 백악관 오찬석상에서, 그리고 오찬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회견에서 부시는 ‘회의(skepticism)’라는 말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
부시가 김 대통령에 대해 ‘이 사람(this man)’이라는 말을 쓴 대목―‘우선 나는 북한에 대해 먼저 손을 내밀며 다가선 이 사람의 지도력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은 즉각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좋게 말해서 ‘예의 바르지 못한(impolite)’ 표현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싫어한다(disparaging)’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에 나타난 그같은 감정적 반응은 이해할 만했다. 왜냐하면 그 전날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짐 호글런드는 자신의 칼럼에서 김 대통령을 ‘속세의 성자(earthly saint)’라고 표현했던 터니까. 게다가 한국처럼 유교적 뿌리가 깊은 사회에서 ‘이 사람’이라는 말은 일반 국민뿐 아니라 언론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렸다.”
토머스 허버드 주한 대사 (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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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머스 허버드 전 대사. |
정치적 배경이나 철학에 있어 한국의 새 대통령과 측근들은 미국측 상대방과는 거의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 정치는 좌회전을 했고 미국 정치는 우회전을 한 셈이었으니, 대개 원만한 관계가 어려운 구조였다.”
“새로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종종,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해왔다.”
“한국 언론들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의 개막에 온통 쏠려 있을 때, 사실은 그보다 며칠 전 의정부 근교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인 여중생 2명의 비극적 죽음 때문에 反美(반미)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전 이후 미군과 한국 민간인 사이에 있었던 사고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당시 부임 초기였던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과 나는, 이 사건이 한미관계에 미칠 엄청난 영향을 곧바로 인식하고 공개사과를 하는 한편 사과, 장례식, 보상 등을 통한 유가족 위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언론들은 월드컵 경기에 치중해 있었기 때문에 이 끔찍한 사건은 큰 뉴스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가, 약 보름 뒤 축구 경기가 막을 내린 뒤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우리가 진작 했던 사과는 거의 잊혀 있었고, 미국이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무신경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내가 이 사건을 다룸에 있어 가장 후회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바로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강력히 추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고 후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2주일 동안에 국민적 분노가 분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에 오판을 했다. 나는 당시 워싱턴에 있는 한국 특파원들이 이 사건에 관해 질문함으로써, 그것이 반드시 대통령 자신의 사과는 아니더라도 백악관 대변인의 사과 정도는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데 대해 나는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미국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주한미군의 숫자와 배치 지역을 상당히 바꾸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놀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미국의 그같은 변화 추진이 한국에서 한때 반미주의자였던 인물이 대통령에 취임한 것과 반미주의에 대한 미국의 반발 탓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줄이려 한 것은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돼 있다기보다 미국 군사력을 좀 더 정돈하려는 럼즈펠드 장관의 노력과 다른 지역에서 미군이 더 필요했다는 것 때문이다. 다만 우리(미국)는 좀더 주의 깊게 그 길을 닦았어야 했다.”
韓昇洲(한승주) 주미대사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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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주 전 대사. |
사실 노 정부는 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회의 동의를 설득하기가 좋았다.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보내면서 노 대통령은 자신이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미 동맹관계를 위해서 파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말이 워싱턴에서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한국에서 대단히 논란이 심했던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했던 수사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2004년 12월, 노 대통령이 칠레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로스앤젤레스에 하루 기착했을 때였다. 세계문제협의회(WAC)에서 연설하면서 그는 보좌관들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왜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이끈 것은 안보 불안감 때문이며, 그것이 해소되면 북한은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노 대통령은 확신한다는 것이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나는 백악관 관계자들에게, 노 대통령은 진정으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깊이 걱정하고 있으며, 북한 핵문제가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 설명이 얼마나 먹혀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노 대통령의 LA 발언 문제가 칠레에서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시 거론되지 않는 것이, 한미 관계나 북한을 다룰 한미의 능력을 위해서도 좋겠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런 보고를 받았을 것이므로, 부시 대통령은 칠레 회담에서 노 대통령의 LA 발언의 의미나 의도에 관해 질문하기는커녕,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 대통령이 그걸 거론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부시 행정부 정책을 비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워싱턴의 일부 ‘초강경파 논객’들에 의해 표현된 견해를 비판하려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그 문제에 관해 더 논의하지 않았다. 다른 모든 참석자들은 안도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겉보기엔 강경한 듯하지만 실은 북한의 거듭된 합의 위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덮고 숨기는 것일 뿐이다. 북한이 假想(가상)의 금지선(redline)―가령 원자로 재가동이나, 폐연료봉 재처리, 또는 심지어 핵무기 보유 선언까지―을 넘었을 때, 미국은 북한과 협상을 할 수도 없었고 강경 정책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사실 미국은 금지선을 긋거나 무엇이 금지선에 해당한다고 구체적으로 밝히려 들지 않아왔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금지선을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어떤 시한을 설정하지 않아온(사실은 그러지 못해온) 이유는, 만일 그런 금지선을 그어둔다면 북한은 결국 그 선을 넘을 것이라고―시한 설정도 마찬가지다―전문가들이 확신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그 선을 넘는다 하더라도 미국은 어떤 대응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종이호랑이처럼 비쳐질 것이다. 미국은 이미 2003년부터 이라크에 얽매여 온 데다, 한국 같은 ‘동맹국’과 중국 같은 ‘우방국’들로부터 섣불리 행동하지 말도록 촉구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을 다룸에 있어 쓸 만한 방안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고, 북한은 이 같은 미국의 진퇴양난을 기꺼이 이용해 왔다.
따라서 내가 주미대사 직을 떠나며 작별 인사를 위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찾아갔을 무렵,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어쩌다 보니 일치하고 있었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전반기의) 자신의 강경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실제로 감당할 수 없을 말―가령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하고 싶지도 않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이 얼마나 도발적이고 위험하게 들렸는지에 상관없이, 한국은 국제 사회, 특히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 대해 과잉 대응하지 않기를, 혹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에도 미국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있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 기뻐할 뿐이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대사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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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대사. |
내가 서울에 부임한 것은 노 대통령의 임기 중반, 그러니까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공동 성명이 채택된 직후였다. 그런데 부임 얼마 후, 미국이 북한의 돈 세탁 및 위폐 유통 창구였던 방코 델타 아시아(BDA) 은행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팀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 구조라는 포괄적 비전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진전을 이뤄 나가려 했기 때문에, 왜 미국이 북한의 불법 활동에 철퇴를 가함으로써 그 모든 가능성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견이 배경이 되어 결국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BDA 문제를 놓고 한 시간이 넘도록 논쟁을 벌이는 바람에 사상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이 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10월의 핵실험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좀 더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그해 여름 나는 宋旻淳(송민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몇 차례 난상토론을 가졌으며, 그 이후 한국과 미국은 6자 회담을 부활시키기 위해 ‘공통의 폭넓은 접근’을 향해 움직여 나갔다.
송 수석은 노 대통령에게, 남북 관계에서 진정한 돌파구를 찾으려면 남한 혼자로는 안되고 미국과 함께, 즉 채찍과 당근의 균형에 바탕을 둔 한미의 일치된 접근에 의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주의적 대북정책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 하여금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에 관해 한국과 보조를 일치시킬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목표는 김정일에게 핵무기이냐 문명사회와의 정상적인 관계이냐,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분명하게 들이대는 것이다. 김정일이 그 둘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한미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분야는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 제시했던 목표, 즉 보다 광범위하고 더 지구적인 임무를 위한 한미동맹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이다. 한국인들은 이미 심리적으로는 한국이 세계 속에서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만, 한미 방위동맹이 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한미동맹을 일방통행식으로, 즉 미국이 아시아 본토에 주둔하는 전략적 이득의 대가로 한국을 지켜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이 우리가 ‘지구적 차원의 동맹’을 말하면 한국인들은 그것이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고 지구적 차원의 정책 결정에 한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위험이 큰 지역에 파병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구조라고 받아들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