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2월 31일 이전에 한국의 모든 공중파 방송 디지털로 전환.
아날로그 방식 수상기는 그날부터 ‘먹통’
⊙ 보급된 디지털 TV는 385만대로 전체 가구의 23.5%에 불과.
앞으로 4년 동안 1306만대 추가 공급해야
⊙ 방송의 전면 디지털화 위해 총 3조5000억원이 투자돼야
― 예산 확보하려면 KBS 수신료 인상해야
⊙ IPTV인 메가TV 관계자: “가입자 84만명으로 출발.
33개 채널 곧 1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
⊙ 유선방송 사업자들 “IPTV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아니라 자원 낭비”
아날로그 방식 수상기는 그날부터 ‘먹통’
⊙ 보급된 디지털 TV는 385만대로 전체 가구의 23.5%에 불과.
앞으로 4년 동안 1306만대 추가 공급해야
⊙ 방송의 전면 디지털화 위해 총 3조5000억원이 투자돼야
― 예산 확보하려면 KBS 수신료 인상해야
⊙ IPTV인 메가TV 관계자: “가입자 84만명으로 출발.
33개 채널 곧 1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
⊙ 유선방송 사업자들 “IPTV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아니라 자원 낭비”
- 서울 여의도 KT뉴미디어 센터에서 직원들이 수 십 개의 채널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IPTV 방송으로 방송 분야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月刊朝鮮은 1995년 신년호에서 ‘해방 50년 한국인의 50대 성취’ 가운데 하나로 1980년 12월 1일 시작된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꼽았다. 칙칙한 黑白(흑백)화면이 컬러로 바뀌는 그 순간의 감동을 맛본 30대 중반 이상의 세대에게야 말이 필요 없는 選定(선정)이지만, 30세 이하의 세대는 ‘매일 보던 텔레비전의 드라마와 광고가 어느 날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의문을 던질 만하다.
1980년 12월 당시 KBS 사장이던 李元洪(이원홍)씨는 컬러 텔레비전으로의 전환을 ‘한국인의 삶과 의식에 큰 충격을 던진 시각 혁명’으로 규정했다. 이원홍씨가 月刊朝鮮 1995년 1월호에 기고한 글을 요약 인용한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의 수출상품 가운데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 컬러 TV 수상기였다. 흑백방송의 나라가 컬러 수상기를 수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정치인들은 웃고만 있지 않았다. 自國(자국)에서 시판하지 않는 것을 외국에 판매한다면서 ‘불공정 무역’으로 제소하기도 했다.
체신부는 1980년 6월 28일 우리 컬러방송의 방식을 미국 일본과 동일한 NTSC(National Television System Committee)로 하기로 결정했고, 8월 1일부터 컬러 수상기 시판이 허용됐다.
KBS는 1980년 8월부터 ‘컬러화 추진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12월이면 시험방송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서, 12월 1일을 시험방송 개시일로 잡았다. 정부를 설득해서 동의를 얻었다. 다행히 KBS는 1970년대에 컬러방송을 목표로 기본 시설의 85%를 컬러용으로 충당해 왔다. 하지만 완전 컬러방송을 실시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한 상태였다. 제작과 송출 등에 필요한 기본 시설 장비 보강을 위해 약 200억원의 긴급예산을 염출했다. 추가 소요분은 1981년도로 일단 이월했다.
마침내 12월 1일이 왔다. 첫 방송 첫 프로그램은 수출의 날 행사 중계였다. 컬러 중계차의 정비가 끝났다. 주조종실과 남산송신소가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마침내 오전 10시 첫 컬러 전파가 발사됐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출발은 성공이었다. 당초 15%로 예상했던 컬러화율은 첫날부터 무너졌다. 첫 주간 총 방송시간 3300분의 46.4%인 1530분이 컬러로 방송됐다. 뒤이어 KBS 2TV의 컬러화를 1981년 1월, 교육텔레비전인 KBS 3TV의 컬러화를 1981년 2월 2일 단행했다.
제일 마지막 단계가 광고의 컬러화였다. 시간이 촉박해서 방송의 컬러화를 쫓아오지 못했던 광고 제작사들은 1981년 4월 1일을 기해 컬러광고를 내보낼 수 있었다. 한국의 텔레비전이 명실공히 컬러화가 된 것은 1981년 4월 1일이다.>
디지털 TV 보급률 - 전체 가구의 23.5%에 불과
이원홍씨는 月刊朝鮮 기고문에서 ‘이제 방송은 컬러방송에서 한걸음 더 나가고 있다. 통신과 컴퓨터의 결합으로, 디지털 기술을 동원한 멀티미디어의 새로운 세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豫見(예견)했다.
아날로그 TV에서 디지털 TV로, 통신과 컴퓨터가 결합한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 컬러 TV 방송의 출현을 압도할 두 사건이 동시 진행 중이다. 2012년 12월 31일 이전에 대한민국의 모든 공중파 방송은 디지털로 전환된다. 디지털 TV 수상기를 갖추지 못한 가정의 아날로그 방식 수상기는 그날부터 ‘먹통’이 된다. 고성능 큰 화면의 디지털 TV를 갖춘 가정들은 자연의 색채에 성큼 다가선 방송 화면을 즐기게 된다. 반면 디지털 TV를 구입하지 못한 달동네와 낙후지역에서는 “엄마, 왜 우리 집은…”이라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1980년 12월 1일 흑백 TV를 갖고 있던 가정들은 그나마 컬러방송을 흑백으로 볼 수 있었다. ‘디지털 방송’은 빈부 격차는 물론, 우리 사회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낼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거대 통신사인 SK와 KT, LG는 2008년 11월 14일 IPTV(Internet Protocol TV―인터넷 TV)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정에서 인터넷 초고속통신망을 이용해 공중파 방송과 영화, 컴퓨터로 이용 가능했던 모든 정보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KT는 일단 33개 채널로 방송을 시작했고, 곧 100개 이상으로 채널을 늘릴 계획이다. 채널은 무제한 늘릴 수 있다. 이른바 ‘통신과 방송의 융합’, ‘디지털 융합시대’가 현실이 된 것이다.
KT의 IPTV를 준비해 온 KT의 고위 관계자는 “KBS MBC SBS 같은 거대 공중파 방송들은 이제 곧 IPTV의 한 채널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PP(Program Provider·프로그램 공급자)로 전락하게 된다”며 “IPTV가 방송의 지각변동, 혁명을 선도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방송은 거대 방송사가 제작하고 편성해서 정해진 시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브로드 캐스팅(Broad-casting)’이었다. 쏴버리면 그만이었다. 시청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IPTV가 등장하면서 소비자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내용을, 내가 원하는 단말기로 볼 수 있다. IPTV는 양방향이다. IPTV에는 컴퓨터와 무선전화기, 오디오 등 수많은 전자기기들을 연결해서 쓸 수 있다. IPTV가 거실을 장악하고, 기존의 공중파 방송들을 수백개가 넘는 부가 서비스의 하나로 끼워 파는 날이 가까워졌다.”
‘한국지상파 디지털방송 추진협의회’(약칭 DTV)는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디지털화를 맡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KBS MBC SBS EBS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MBC 엄기영 사장이 회장이다. 실무책임자인 정은창(47) 사무총장은 “2012년 12월 31일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방송 서비스를 일시에 종료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며 “정치권에 ‘이렇게 준비가 미진해서는 대란이 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다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다”고 했다.
정 사무총장은 KBS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DTV에 파견됐다.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14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정총장을 만났다.
―목표 시점이 2012년 12월 31일이면 아직 4년이나 남았습니다. KBS가 주도했던 흑백방송의 컬러 전환에는 불과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때는 ‘아날로그 흑백’을 ‘아날로그 컬러’로 바꾸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날로그 컬러’를 ‘디지털 컬러’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아날로그 TV는 디지털 신호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날로그 방송이 끝나는 그 순간 각 가정의 아날로그 TV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우리 조사에 의하면 국민 68.7%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방송사가 디지털 신호를 날려보내는데 가정에서는 이걸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돼 있습니다. 4년 안에 모든 가구가 디지털 TV를 갖춰야 하는데, 디지털 TV 보급률이 턱없이 낮습니다.”
―전체 가구 중 디지털 TV를 갖고 있는 가정은 지금 얼마나 됩니까.
“이게 큰 일이에요. 가구에 보급된 디지털 TV는 385만대로 전체 가구의 23.5%입니다. 한 가구당 한대의 디지털 TV를 갖출 경우, 앞으로 4년 동안 1306만대를 추가 공급해야 모든 가구가 디지털 TV를 갖추게 됩니다. 한 해에 300만대의 디지털 TV가 팔려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나라 가구당 TV 보유대수는 1.46대입니다. 가정의 모든 TV를 디지털로 전환하려면 앞으로 4년 동안 2115만대의 디지털 TV가 보급돼야 해요.”
―디지털 TV로 전환하는 다른 나라의 수상기 보급률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건가요.
“2007년을 기준으로 하면 영국은 전체 가구의 86.7%, 일본은 43.7%가 디지털 TV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우리와 똑같은 2012년, 일본은 한해 빠른 2011년 디지털 전환이 완료됩니다. 우리의 보급률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23.5%에 불과합니다.”
디지털 방송 더 늦출 수 없다
―그렇더라도 디지털 방송이 일단 시작되면, 아날로그 TV를 갖고 있는 세대들이 앞 다투어서 디지털 TV를 사려고 몰려가지 않을까요.
“전체 가구의 30~40%가 디지털 TV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 가정들의 TV가 일시에 꺼지는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국민 중 매일 TV를 시청하는 비율이 86.6%이고, 하루 평균 지상파 TV 시청시간은 121분입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TV 시청시간이 깁니다. 빈곤층의 유일한 오락이 TV 시청입니다. 겨울 찬바람 부는 연립주택 반지하 방에서 TV도 없이 지내는 사람들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난리가 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런 상태로 디지털 전환하면 대란이 난다’고 얘기하고 다니는 겁니다.”
DTV코리아 측은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 종료 때 400만 가구, 1000만명이 TV 시청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TV 보급률은 99.6%, 휴대전화 보급률은 98.9%, 컴퓨터 보급률은 88.6%다(2007년 TV 시청 행태 연구).
―그렇다고 정부가 디지털 TV를 사서 나눠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죠. 2009년 2월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는 미국의 경우 저소득층, 고령층, 장애인 등에게 디지털 TV를 구매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디지털 TV를 판매하는 가전업체가 디지털 TV를 한대씩 팔 때마다 일정액의 ‘디지털 전환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고요.”
―가전업체에 그런 아이디어를 던져 본 적이 있습니까.
“업계 쪽에 몇 번 얘기를 했는데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디지털 TV 보급률이 크게 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디지털 TV로의 전면 전환을 늦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디지털 TV 보급률이 50% 이하라면 늦춰야겠죠. 하지만 더 늦추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왜 그렇죠.
“우리는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2001년 10월 세계 7번째로 시작했지만, 디지털 전환 속도는 후발주자인 일본 덴마크 프랑스에 뒤지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 디지털 TV(LCD TV)시장의 절반을 삼성과 LG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IT 강국’, ‘디지털 강국’이라는 한국이 디지털 전환을 예정대로 못하면 이건 국가 신인도와 연결됩니다. 컬러 TV를 만들어서 해외에 수출하면서 정작 국내에서는 흑백방송을 하던 시절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거죠.”
방송의 디지털화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 송신·중계시설, 가정 3곳에서 모두 이뤄져야 한다. 국가 기간 방송인 KBS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KBS 기술본부 金錫斗(김석두) 기술전략팀장은 디지털화의 실무 책임자다. 김 팀장은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2009년도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처지”라면서 “2008년 적자가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디지털화가 웬말이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걱정했다.
총 3조 5000억원 투자되어야
KBS는 2001년 10월 디지털 방송을 시작했다. KBS 화면의 오른쪽 위에 자그맣게 ‘KBS HD(High Definition)’라는 글자가 찍혀 나오는 드라마나 뉴스들은 디지털로 제작된 것들이다. ‘대왕 세종’이 그런 경우다. 지금도 디지털 TV를 갖춘 가정에서는 ‘KBS HD’ 방송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KBS는 디지털화한 방송과 아날로그 방송을 동시에 날려 보내고 있다. KBS 1TV의 디지털 편성비율은 55%, KBS 2TV의 디지털 편성비율은 50%에 이르렀다. 디지털 편성비율을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다음은 김석두 팀장과의 대화.
―방송제작의 전면 디지털화를 위해 얼마나 더 투자해야 하나요.
“KBS는 지금까지 4500억원을 투자했고, 앞으로 85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야 합니다. 디지털화를 위해 KBS가 총 1조3000억, MBC SBS 교육방송 등을 포함하면 총 3조5000억원이 투입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앞으로 2조원 정도의 자금을 더 조달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겁니까.
“카메라, 마이크, 스튜디오를 포함한 프로그램 제작시설, 송신시설을 다 바꿔야 하니까요. 디지털 고화질 화면이 되면 탤런트, 아나운서들의 분장을 더 정교하게 해야 합니다. 땀 구멍이 다 보이니까요. 디지털 프로그램은 아날로그 프로그램보다 3~5배 제작비가 더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KBS만 1조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데, 조달 방안은 있습니까.
“방송의 디지털화가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KBS가 2008년까지 3년째 적자입니다. 2009년에 필요한 디지털화 사업비 1500억원을 당장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제가 또 이렇게 나빠지니 디지털화에 큰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그래도 무슨 방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수신료를 현실화해 달라’는 게 우리의 일관된 요구입니다.”
수신료 올려 주면 비용조달 가능
―얼마나 올려 달라는 건가요.
“TV 수신료가 28년째 2500원입니다. 이걸 4000원으로 올려 주면 디지털화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두 배 가까이 올려 달라는 건 무리 아닐까요.
“전국에 TV 수상기를 가진 가구가 1800만 가구입니다. 하지만 면제대상이 많고, 난시청 지역에서는 수신료를 걷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 4000원을 받으면 광고를 병행해야 합니다. 월 7000원으로 올려 줘야 KBS가 광고 없이 공영방송으로 갈 수 있어요.”
―수신료를 못 받는 민간방송들은 어떻게 합니까.
“2008년 경영실적들이 나빠 디지털화 재원을 추렴하기 어려울 겁니다.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디지털 전환 비용 조달을 위해 ‘디지털화 이후에 남아도는 주파수 대역을 판매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있다. 회수해서 판매가 가능한 주파수 대역은 SK텔레콤이 이동통신에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만한 크기로, 판매가격이 11조~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문화관광위원인 崔球植(최구식·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2012년 DTV 전환이 이뤄지면 700MHz(메가 헤르츠) 대역에서 96MHz 대역을 회수해서 재분배가 가능합니다. 또 SKT가 사용하고 있는 800MHz 대역에서도 최대 32MHz의 회수 재배치가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회수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대략 130MHz 대역입니다. KBS 1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6MHz니까, 엄청나게 넓은 주파수 대역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주파수가 재분배되면 국내 이동통신시장 경쟁이 활성화돼 결과적으로 통신요금 인하로 이어지게 됩니다.”
11조~23조원의 돈이라면 디지털 전환비용을 충분히 조달하고 남을 財源(재원)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 온 공중파 방송사들은 이미 여러 차례 주파수 회수에 대해 ‘결사 抗戰(항전)’을 선언했다. 왜 이런 갈등이 빚어지는지 김석두 팀장에게 물어봤다.
―방송을 디지털 신호로 송출하면, 기존의 아날로그 신호가 이용하던 주파수와 다른 주파수 대역을 이용하는 것입니까.
“쉽게 비유하면, 길은 같은 길인데 ‘콤팩트’해진 신형 차가 달리는 셈입니다. 방송신호를 디지털화하면 영상 음향 자료를 압축해서 효율성 있게 쓸 수 있습니다. 같은 노폭이지만 양쪽으로 도로에 여유가 생깁니다. 이 여유분의 길을 모두 모아서 새로운 통신사업자나 방송업자에게 팔자는 게, 정부 쪽의 생각입니다.”
―‘남아 도는 길들을 돌려받아, 다른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인데, 방송사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뭡니까.
“현재 KBS 1TV와 2TV가 각각 6MHz 대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지털화로 여유가 생기는 도로에 다른 차를 다니게 해서, ‘MMS(multi media service―멀티미디어 서비스)’를 할 계획입니다. 기왕에 쓰던 주파수 대역을 우리가 쓰면서, 채널을 가능한 한 늘려 시청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겁니다.”
―KBS 1이 기존의 주파수 대역을 활용해서 두 개의 디지털 방송을 쏠 수도 있습니까.
“아직 기술수준이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기존의 주파수 대역으로 2개, 3개의 디지털 방송을 할 수 있겠죠. 지금은 6MHz 폭의 길에 디지털 방송 하나 아날로그 방송 하나, 혹은 디지털 방송 하나에 오디오 방송 여러 개를 할 정도는 됩니다.”
2009년 2월 디지털 전환 예정인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들이 디지털화로 여유가 생긴 기존의 주파수 대역에 방송 채널을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인 CBS ABC NBC가 10여 개의 자체 채널을 확보한다면 유선방송들이 설 자리는 협소해진다.
‘아무리 채널이 많이 늘어나도 시청자들이 실제 이용하는 채널은 4~5개’라는 게 언론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이 죽느냐, 유선방송이 죽느냐’는 논쟁이 한창이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들이 ‘多채널화’에 나서면 유선방송과의 갈등은 피할 수가 없다.
컨버터 설치하면 수신 가능
―전파는 공공재입니다. ‘기존대역을 우리가 그대로 쓰겠다’는 것은 공중파 방송의 욕심으로 비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IPTV들이 30여 개의 채널로 시작했습니다. 곧 100개 이상의 채널로 늘어납니다. 상업방송들이 300~400개의 채널로 방송과 광고를 내보낼 때, 공영방송인 KBS가 다양한 채널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3.5%에 머물고 있는 디지털 TV 가정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공중파 방송사들이 디지털화 비용 2조원을 마련해서, 2012년 12월 전면 디지털 방송을 하는 것은 가능할까? 흑백방송의 디지털화를 책임졌던 이원홍 전 KBS 사장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전면전환 시점을 늦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견이었다. 그의 얘기다.
“2009년 디지털 전환을 완료할 계획인 일본의 디지털화가 50%밖에 안됩니다. 경제위기로 일본의 디지털 TV 내수판매가 30~40%씩 떨어집니다. 그래서 일부에서 ‘연기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1980년 방송 컬러화를 할 때 KBS의 자체예산으로 비용을 충당했고. 정부에서는 한 푼도 안 줬습니다. 디지털화를 위해 정부지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방송의 디지털화를 유선방송사의 네트워크에 얹어서 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식 송출시설을 갖추고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국회 문화관광방송위원장인 高興吉(고흥길) 의원은 “2012년 12월은 법이 정한 시한이어서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다음은 고흥길 의원과의 대화다.
―KBS 등 공중파 방송 쪽에서는 디지털화 관련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정부가 지원에 나설 수 있을까요.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방송사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해야 하느냐’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없습니다. KBS의 수신료를 올리거나, 방송발전기금에서 지원하는 방법,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겠죠.”
‘DTV 코리아’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때 소외계층에 대한 직접지원은 미국이 1조7000억원, 영국이 1조2000억원, 이탈리아가 5400억원 규모다.
―시한을 넘기는 것도 검토대상입니까.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한을) 절대 넘겨서는 안됩니다.”
―디지털 TV 가정 보급률이 20% 초반입니다. 이렇게 보급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능하겠습니까.
“디지털 TV 구입이 어려운 가정에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바꿔주는 ‘컨버터’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존의 화면으로 볼 수가 있어요. 컨버터가 한 대에 10만원 안쪽으로 저렴합니다. 컨버터를 살 때 정부가 보조금을 줄 수 있고요.”
TV를 보고 있는 가정 가운데 공중파 방송이 쏘는 전파를 직접 받아서 시청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집집마다 긴 장대에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TV 안테나를 지붕 위에 매달아, 안테나가 숲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지붕에 올라간 아들은 장대를 이리저리 돌리고, 안방의 아버지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외치면서 방송전파가 잘 잡히는 방향을 찾았다.
이제 공중파 방송의 전파를 직접 받아서 TV를 보는 시청자는 전체 가구의 21.1%로 줄어들었다(2007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난시청 지역 해소를 위해 송신 중계시설을 확충해온 KBS MBC의 노력보다, 각 지역 유선방송사들의 유선 네트워크 설치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전체 가구의 68%는 유선방송의 케이블을 통해 지상파 TV를 시청한다. 10.9%는 위성방송망을 통해 지상파 TV를 보고 있다. 지상파 방송이 2012년 디지털화하더라도, 전체 가구의 68%는 유선 케이블을 통해 디지털화된 방송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IPTV와 유선방송의 血鬪
그렇지만 유선방송사들은 빙하기를 앞둔 공룡들처럼 움츠러들어 있었다. 우선 유선방송들은 공중파 방송의 디지털화 논의에서 소외돼 있다. KBS 등 공중파 방송들은 자체 디지털 송신·중계시설을 늘려 각 가정의 직접 수신율을 높이고, ‘多(다)채널’로 가겠다는 입장이다. 공중파 방송 중계에 크게 의존해온 유선방송으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위협의 등장이다. 더구나 IPTV의 등장은 유선방송사들에 피 튀기는 ‘제로섬 게임’을 예고하고 있다.
KTF가 시작한 IPTV 서비스 ‘메가TV’의 채널은 33개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공중파 방송이 KBS 1, KBS 2, MBC, SBS, EBS 등 5개 채널. 5개 공중파 방송의 지나간 프로그램들을 모두 다시 볼 수 있다. 홈쇼핑 채널이 5개, 영화 채널이 5개, 오락 채널이 1개, 취미 레저 채널이 4개, 뉴스 정보 채널이 4개….
영화와 다큐멘터리 비디오 등 주문을 해서 볼 수 있는 동영상이 9만2400여 개 준비돼 있다. 메가TV의 홈페이지(www.mymegatv.com)를 둘러보면, ‘메가TV’는 단순한 TV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모든 정보의 集積(직접) 장소다. 자녀들의 영어교육이 필요하면 ‘홈 스쿨링’으로 가면 되고,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메가TV에 올려 교인들과 함께 보고 싶으면 ‘종교’ 부분으로 가면 된다. 메가TV는 자신들의 광고 그대로 ‘상상 가능한 모든 것, 그 이상’이다. 이 모든 정보를 한 달 1만6000원의 수신료로 볼 수 있다.
KT 외에 SK가 ‘SK 브로드밴드’, LG데이콤이 ‘마이LGTV’ 같은 IPTV 서비스를 시작했다. IPTV가 제공하는 방송 정보 서비스는 유선방송이 지금까지 제공해온 채널과 방송내용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IPTV에 가입해서 시청하면 유선방송을 따로 볼 이유가 없다. 유선방송의 위기는 거기서 출발한다.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유선방송은 19개 채널을 제공하는 기본형(월 5000원)부터 73개 채널을 모두 볼 수 있는 고급형(월 1만5000원)까지 선택할 수 있다. IPTV는 유선방송 73개 채널이 공급하는 그 이상의 서비스를 비슷한 가격에 제공하는 셈이다.
“IPTV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아니라 자원 낭비”
유선방송 사업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유선 통신사업자인 ‘CJ 헬로 비전’의 김진석 사업전략실장의 말이다.
“44조원 통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KT와 SK가 자금력을 앞세워 겨우 2조원 규모인 유선방송 시장을 압살하고 있다. 이건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아니다. 통신사업자들의 횡포고, 자원의 낭비다. 통신사들이 무선통신 인터넷 이용과 결합해 결국 ‘공짜 IPTV’를 제공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유선방송은 설 자리가 없다.”
‘메가TV’를 출범시킨 KT의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일으키기 싫다”며 익명 보도를 요청한 그는 “IPTV의 출현은 방송의 지각변동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IPTV와 유선방송의 대결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익명의 관계자와의 대화다.
―KT가 만드는 IPTV인 메가TV를 보면 공중파방송과 유선방송 채널 전부, 거기에 인터넷 포털 서비스를 합쳐 놓은 내용입니다. 최근 ‘네이버’ ‘다음’ 같은 인터넷 포털에 접속해서 공중파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이용자들이 직접 제작한 동영상을 인터넷 포털에 올려 놓고 즐기기도 합니다. IPTV와 인터넷 포털과의 차이는 뭔가요.
“화면의 차이죠. IPTV는 42인치 이상의 LCD 화면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스크린의 크기, 화질의 차이죠. 네이버나 다음에서 방송이나 인터넷 동영상을 볼 수는 있지만, 화면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화질이 나쁘고, 보다가 영상이 끊어지죠.”
―33개 채널로 시작했는데, 그 채널을 채울 ‘콘텐츠’는 충분합니까.
“공중파 방송 5개 채널을 실시간으로 재전송합니다. 나머지 채널들도 종일 방송을 해오던 게 많습니다. 33개가 아니라 곧 100개 이상의 채널로 늘어날 겁니다. 예를 들어 月刊朝鮮이 우리 IPTV에 한 채널을 갖고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업체와 가전업체의 ‘거실 장악’ 경쟁
―月刊朝鮮이 메가TV에서 방송을 당장 시작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月刊朝鮮이 콘텐츠를 만들어서, 우리가 제공한 도구를 이용해 화면을 인터넷으로 올려주면, 화질을 바로잡아서 곧바로 방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업적 채산성이 맞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지 않은 가정에서는 IPTV를 볼 수 없는 거죠.
“물론입니다. 다행히 인터넷 사용자의 90% 이상이 초고속 인터넷망에 가입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IPTV를 시작할 수 있는 거죠.”
―‘자본력을 앞세운 IPTV가 유선방송과 제로섬게임을 벌이면 과잉경쟁으로 방송 콘텐츠 투자와 영상산업 발전이 저해 받게 된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지금 거실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컴퓨터업체인 애플사가 ‘애플 TV’를,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이 ‘구글 TV’를 내놓았습니다. 이것 역시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보는, 일종의 IPTV입니다. 삼성전자 같은 가전사들은 자신들의 TV 수상기를 인터넷에 연결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콘텐츠 TV’를 개발 중입니다. IPTV의 출현을 유선방송과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견입니다. IPTV는 양방향입니다. 유선방송들도 양방향성을 넓혀가면서 경쟁해야겠죠.”
―KT와 SK가 IPTV 사업을 위해 이미 수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압니다. 월 1만6000원 정도의 가입료로 수지를 맞출 수 있겠습니까.
“IPTV의 경우 그 시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됩니다. 거기에 맞는 타깃 광고가 가능합니다.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 겁니다. IPTV로 뉴스를 보다가 앵커가 입고 있는 옷이 마음에 들면 곧바로 쇼핑방송에 들어가 구매를 하는 방식입니다.”
―메가TV 가입자는 얼마나 됩니까.
“84만명으로 출발했습니다. IPTV의 장점을 살려 서비스를 계속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걸로 예상합니다. 지금 방송 미디어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경쟁 속으로 진입했습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신문광고는 2002년 2조200억원에서 2007년 1조7801억원으로 22.3% 감소했고, 지상파 TV 광고는 2002년 2조4397억원에서 2007년 2조1076억원으로 26.4% 줄었다. 반면 케이블 TV에 실린 광고는 2002년 2345억원에서 2007년 8297억원으로 4배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광고시장은 1조1400억원 증가했고, 그 가운데 5952억원을 케이블 TV가 가져간 것이다. 신문, 방송 같은 전통 매체들은 20% 이상의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계에서 케이블TV(유선방송)는 큰 경쟁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블루 오션’으로 통했다.
유선방송 사업자들의 위기의식
tvN, 채널 CGV, 올리브, 챔프,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9개 유선방송 채널을 보유한 CJ미디어는 2년 전 15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MBC SBS 못지않은 미디어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2008년 상반기에 직원 10%를 감원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을 벌였다. 구조조정은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CJ미디어는 2007년 151억원의 적자를 냈고, 자회사인 CJ tvN은 2007년 122억원 적자를 낸 데 이어 2008년 역시 100억원대의 적자가 예상된다. ‘블루 오션’으로 여겨졌던 유선방송 시장이 이제 핏빛으로 변해 가고 있다.
유선방송 채널은 매출의 70% 이상을 광고에 의존한다. 유선방송 광고시장이 매년 20% 이상 성장했지만, 2008년에는 경기불황으로 광고가 급격히 위축됐다. 불황이 닥치면 광고주들은 KBS MBC 같은 지상파 방송보다 유선방송 광고(PP광고)부터 중단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IPTV가 유선방송보다 풍부한 내용과 낮은 가격을 앞세워 유선방송 시장을 잠식하겠다고 덤벼들고 있다.
CJ그룹은 9개 유선방송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CJ 미디어’와 유선방송통신망 사업인 ‘CJ 헬로비전’을 갖고 있다. ‘CJ 미디어’는 유선방송에 채널을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 사업자, 흔히 PP(Program Provider)로 불린다.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에 가입하면 30~100개의 채널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채널을 공급하는 곳이 PP다. 한 업체가 이런 TV채널을 여러 개 보유할 수 있는데, CJ미디어나 온미디어가 대표적이다.
전국에는 77개 권역에 103개의 유선방송 사업자가 있다. 이들은 유선방송 가입자들에게 가입비를 받고, 유선방송 청취에 필요한 통신망과 셋톱 박스를 설치해 준다. PP는 이들 사업자들에게 ‘콘텐츠’를 공급해 주는 대가를 받고, 방송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얻는다.
주요 PP인 CJ미디어 김진석 전략실장은 “IPTV와 유선방송이 2조원 시장을 놓고 피 튀기는 전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44조원 시장을 장악한 KT와 SK가 2조원 시장을 노리고 유선방송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유선방송 시장이 정말 2조원밖에 안 되나요.
“우리나라 1700만 가구 중 1500만 가구에 유선방송 케이블이 깔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구에 케이블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IPTV는 공중파 방송과 기존의 유선방송 콘텐츠를 제공할 뿐입니다. 새 시장을 형성하기보다는 기존 유선방송 시장을 깰 수밖에 없습니다. 유선방송사업자들이 가입자들에게서 받는 이용료, PP광고시장을 다 합쳐야 2조원에 불과합니다. IPTV가 이 시장의 절반을 가져가야 1조원입니다. 통신시장은 무선통신 전화 인터넷 사업을 합쳐서 44조원 규모입니다.”
―KT와 SK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고 하는데.
“44조원 통신시장을 배경으로 업은 KT와 SK의 IPTV가 얼마나 방송시장에 기여할지 의문입니다. IPTV를 보면 새로운 콘텐츠가 전혀 없습니다. ‘뉴 미디어’가 아닙니다. 공중파 방송 재전송하고, 우리 유선방송이 하고 있는 똑같은 콘텐츠를 그대로 공급합니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요금인하 경쟁입니다.”
―가격경쟁으로 이용료가 떨어지면 궁극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요.
“그건 KT와 SK의 시장지배력을 감안하지 않은 얘기입니다. KT가 메가TV를 시작하면서 한달 이용료를 1만60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게 어디까지 떨어질지 몰라요. 여기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유선방송사들 역시 가격인하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선방송에 공급되는 콘텐츠에 제 값을 쳐줄 수 없고, 방송의 질은 떨어질 게 뻔합니다.”
―KT와 SK가 시장지배력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인터넷과 집전화, 이동통신 전화를 IPTV와 한 다발로 묶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식이죠. 통신사들이 무선통신 인터넷 등에서 확고한 경쟁우위를 갖고 있으니까 가격을 후려쳐서 ‘우리 인터넷과 이동통신, 집전화를 이용하면 IPTV는 공짜로 볼 수 있게 한다’로까지 갈 힘이 있어요. 일부 지역에서 ‘IPTV 평생 무료’ 같은 호객 문구가 나타났습니다.”
“IPTV와의 경쟁은 방송의 질 저하로 직결될 것”
―IPTV와 유선방송이 ‘플러스 섬’ 게임을 할 여지는 없을까요.
“같은 ‘콘텐츠’로 같은 시장을 상대로 경쟁을 하면 ‘제로 섬’입니다. SK와 KT가 IPTV를 시작해서 유선방송과 IPTV를 함께 보는 가구가 늘고, 이용요금이 올라간다면 ‘플러스 섬’이 되겠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9개 채널을 운용하고 있는 ‘CJ 미디어’ 방송본부장 윤석암 상무 역시 비관적이었다.
“유선방송에서 사업을 해온 롯데홈쇼핑 등 5개 홈쇼핑업체가 KT의 IPTV 채널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CGV라는 영화채널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IPTV로 들어가지 않고 있지만, 언제 굴복할지 모릅니다. KT의 한해 수익만 1조5000억원입니다. 이 절반만 IPTV 사업에 쏟아 부으면 유선방송은 견디지 못합니다.”
윤상무는 유선방송 사업자(지역 유선방송 사업자)와 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자(PP)의 영세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PP가 한 해에 유선방송 사업자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2000억원 정도고, 광고를 통해 얻는 수익이 1조원에 못 미칩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등록된 219개 PP 가운데 그동안 141개가 시장에서 퇴출됐습니다. 연간 매출 10억원을 넘기는 유선방송 PP가 몇 되지 않습니다. 무척 영세합니다. IPTV와의 경쟁으로 이 수익이 줄어들면 방송의 질은 급격히 악화될 게 분명합니다.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IPTV의 출현으로 콘텐츠를 팔 유통망이 하나 더 생겼으니까, PP로서는 판로가 늘어난 셈 아닙니까.
“백화점에 공급하고, 마트에도 공급하면 일석이조 아니냐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건 시장이 늘지 않고, 소비자의 구매력도 늘지 않는 경우입니다. 방송 광고시장이 늘기는커녕 계속 위축되는 상황에서 IPTV가 들어오고 있으니까, 제 살 갉아먹기가 되는 거죠. IPTV는 시장의 수요가 아니라, 시장외적인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무리하게 IPTV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긴가요.
“물론입니다. 정부가 허가해줘서 사업을 시작했던 삐삐(수신자 호출기), 씨티폰(수신전용 전화)이 망했습니다. 위성 DMB, 지상파 DMB는 자본잠식 상태인 걸로 압니다. IPTV가 정착이 안 되면 허가를 내준 정부가 ‘응급주사’를 계속 놓겠죠. 그렇게 되면 기존 유선방송업자들의 피해가 증폭됩니다. IPTV든 유선방송이든 이용료의 상당부분은 콘텐츠 제작비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 콘텐츠 제작으로 가야 할 돈이 공중으로 떠 버립니다.”
지상파의 多채널화가 가져온 갈등
전국 가구의 68%가 유선방송 케이블을 통해 공중파 방송을 시청하지만, 케이블업체는 공중파 방송의 디지털화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 ‘多(다)채널화’로 가는 공중파 방송의 이해와 유선방송의 이해가 배치되기 때문이다.
유선방송망 사업자인 ‘헬로비전’의 김진석 상무는 “가정에 이미 깔려 있는 유선방송 디지털 망을 이용하면 공중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며 “일본의 경우 디지털 사업자가 디지털 전환을 100% 맡고 있다”고 했다. 김진석 상무와의 대화다.
―유선방송망의 디지털화는 얼마나 돼 있습니까.
“우리 ‘헬로비전’의 경우, 256만 가입자 가운데 65만이 디지털화돼 있습니다. 나머지는 아날로그 가입자입니다. 아날로그 가입자라고 하더라도 집에 20만원 정도의 ‘셋톱 박스’를 설치하면 기존 선로로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IPTV를 통해 디지털 방송을 볼 때와 유선방송 케이블을 통해 디지털 방송을 볼 때, 둘 중 어느 쪽이 화질이 좋습니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IPTV와 유선방송이 디지털 신호를 전달하는 線路(선로), 디지털 신호를 잡아서 TV 수상기에 보내는 기술적인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리선을 이용하느냐, HFC(Hybrid Fiber Coaxil)선을 이용하느냐…, 이걸 기술적으로 다 설명하려면 밤을 새워야 합니다. 엄밀히 비교하더라도 IPTV로 보는 디지털 방송이나, 유선방송으로 보는 디지털 TV나 화질은 같습니다.”
IPTV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유선방송을 제치고 인터넷 케이블을 이용한 방송의 강자로 올라설까? 아니면 씨티폰, 위성 DMB, 지상파 DMB처럼 실패하고 사라질까? ‘나우콤’의 문용식(49) 사장에게 IPTV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다. 문 사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생방송 서비스 ‘아프리카(www.afreeca.com)’를 운영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최대 동시 접속자가 20만명인 국내 최대 인터넷 생방송이다. 등록 회원이 1500만명을 넘어섰다. 아프리카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신이 제작한 동영상을 올려놓는 UCC 사이트와 달리 네티즌들이 직접 생방송을 한다.
‘아프리카’에 접속하면 손쉽게 자신의 ‘방송사’를 차릴 수 있다. 집에 고속 인터넷망이 깔려 있다면, 시중에서 1만~2만원 정도 하는 비디오 카메라만 하나 설치하면 끝이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방송을 할 수 있다. ‘촛불집회’ 당시 네티즌들이 시위현장에서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해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 방송을 했다. 시위가 한창이었던 2008년 6월 한달 동안 700만명이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된 ‘시위 생방송’을 시청했다.
“IPTV는 인터넷으로 보는 TV일 뿐”
문 사장은 2008년 3월 독자 개발한 화면 전송기술과 서비스 모델을 타이완 업체에 100만 달러를 받고 팔았다. 나우컴의 인터넷 부문 직원은 200여 명이다. 2007년 493억원 매출에 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점에서 IPTV와 아프리카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돼 문 사장을 찾았다. 문 사장은 “IPTV는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을 선로를 통해서 보는 TV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문용식 사장과의 대화다.
―IPTV가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보는 TV’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IPTV는 인터넷 선로를 이용해 방송을 하지만 그냥 TV라는 거죠. ‘쌍방향’이라고 하지만 TV를 보다가 그 화면으로 채팅을 하겠습니까?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 서비스를 IPTV에 집어넣겠지만 그건 ‘메인’이 아니라 ‘액세서리’일 뿐이죠. 이론상, 기술상으로 IPTV가 얘기하는 게 모두 가능합니다. IPTV로 드라마를 보다가, 여자 주인공이 입은 옷이 좋으면, 홈쇼핑으로 가서 옷을 살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거죠. 그러나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 행동 동선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거실의 IPTV를 통해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더라도, 인터넷 이용은 또 다른 컴퓨터를 이용해서 할 거라는 말입니까.
“지금도 그렇잖아요.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거실에서 TV로 ‘가요무대’를 보잖아요. 대학생 아들 딸은 자기 방에서 컴퓨터로 인터넷하고,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고…. IPTV가 거실을 장악하더라도 별도의 컴퓨터는 계속 사용할 겁니다. 한쪽에 IPTV 켜놓고 한쪽에선 컴퓨터로 검색하는 식이죠. IPTV는 TV를 보는 새로운 방식에 불과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 얘기가 아니고 심리학자 언론학자들 얘기예요. TV는 고관여 매체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집에 돌아와서 소파에 편히 누워서 드라마 보다가, 인터넷 모드로 들어가서 이메일 열어 보고 싶겠습니까. 두 개를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방에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던 젊은이들이 거실의 IPTV로 옮겨가서 인터넷을 이용하지는 않을까요.
“거실에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데 나올까요. 거실의 42인치 대형화면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IPTV가 네티즌들의 동영상을 올려놓는 서비스까지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생방송인 아프리카의 영업에 영향은 없을까요.
“아프리카는 IPTV와 경쟁이나 대체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는 실시간으로 하는 개인방송입니다. IPTV는 못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도 수만 개의 방송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집니다. 동시에 개설돼 있는 방송 수가 2000개 정도입니다. 지금 만들어 놓은 시설과 회선은 동시에 50만명이 볼 수 있는 규모입니다.”
“우리는 남들과 같은 건 안 한다”
―아프리카를 보다 고화질의 방송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까.
“그쪽으로 갈 생각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는 화질이 아니라,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무료 개인 생방송 사이트라는 점으로 승부합니다. 우리는 2류, 풀뿌리 방송입니다. 화질로 IPTV, KBS와 싸울 이유가 없죠.”
―‘아프리카’의 수익은 어디서 나옵니까.
“광고가 기본수입입니다.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게임산업 같은 특정산업들이 마케팅 장소로 많이 활용합니다.”
―IPTV가 영업을 확대하고, 공중파 유선방송과 광고수주를 경쟁하면 아프리카에 영향이 오지 않을까요.
“우리는 남과 똑같은 건 안 합니다. 가는 길이 다릅니다.”
―아프리카와 TV는 전혀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물론이죠. 아프리카에 방송을 개설한 분 가운데 TV를 흉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TV를 흉내내면 낼수록 인기가 없습니다. 네티즌들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을 원합니다. 가끔 비속어도 쓰고, 시청자들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에 화끈하게 대답도 해주고, 그래야 인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뭡니까.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숨어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끼와 개성이 넘쳐납니다. 미니홈피, 블로그에서 자기 얘기를 하다가, 동영상(UCC)으로 넘어갔습니다. 그게 인터넷 생방송으로 이어진 겁니다. 인터넷 생방송은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브로드 캐스팅’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관심 있는 또래집단에게 자신을 여는 ‘내로 캐스팅’이죠.”
―IPTV가 빠른 시간 안에 고객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요.
“유선방송과 위성TV 가입자를 대거 빼앗아 가겠죠. 그쪽 시장을 잠식할 겁니다. 그러니까 벌써부터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난리지 않습니까.”
―IPTV가 유선방송을 잠식하는 이상으로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IPTV가 제공하는 서비스 안에 유선방송 프로그램이 다 들어 있습니다. IPTV는 완벽하게 유선방송의 대체재입니다. KT와 SK가 막대한 자본과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서비스로 얼마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지는 지켜봐야죠. IPTV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산업적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걸로는 보지 않습니다. 새로운 게 없잖아요.?”⊙
[방송의 지각변동]
▣ 한국방송공사의 지상파 광고독점 해체
헌법재판소는 2008년 11월 27일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와 공사가 출자한 업체만 광고판매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한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했다. 지금까지 KOBACO가 모든 방송사들의 광고판매를 맡아서 기업들과 수주계약을 체결해 왔다.
헌재의 이번 판결로 KOBACO 체제의 방송광고 ‘연계판매’로 광고수익을 보전해온 종교·지역방송들이 큰 폭의 광고매출 감소를 겪을 전망이다. 광고수주를 위한 방송사간의 시청률 싸움도 예상된다. 재벌기업 광고팀 관계자는 새로운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MBC 9시 뉴스 시작 前(전)에만 광고를 내보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KOBACO가 아침 6시에 하는 ‘앞서가는 농어촌’ 같은 비인기 프로나, 불교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광고를 하도록 했다. ‘연계판매’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끼워팔기’였다. KOBACO 독점체제라 광고의 시장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다. KOBACO와 유사한 역할을 할 민간 광고판매 대행회사(민영 미디어 랩)가 등장하면, 각 방송사 프로그램의 인기도에 따라 가격이 형성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세환 민주당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향후 방송 3사의 매출액은 미디어 랩의 제한 허용(1~2개 허용) 도입 시 13%, 완전경쟁(모두 허용) 시 23% 증가하지만, 지역민방은 7~10%, 종교방송은 26~37%, 신문은 5~8%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 신문·방송 겸영, 대기업 방송 진출 허용
한나라당이 신문·방송 간 겸영금지 조항 삭제를 골간으로 한 신문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의 상호 겸영 금지를 폐지하고, 일간신문, 뉴스통신 또는 방송사업 소유자의 일간신문, 뉴스통신의 주식 및 지분취득 규제를 폐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마련한 개정안은 신문(뉴스통신 포함)과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은 20%,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은 49%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을 소유할 수 있는 기업의 자산규모를 현재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낮췄다. 야당과 언론단체들은 ‘여당의 미디어법 개정안들이 궁극적으로 덩치 큰 신문사들, 대기업들에 방송을 넘겨주는 것이다. 여론의 독과점 상태를 가져온다’고 반발하고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은 “미디어환경이 변화했고, 의미 없는 칸막이 규제는 미디어산업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며 “모든 매체가 발 빠른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경쟁력을 갖도록 하자는 게 이번 개정안의 취지”라고 밝혔다.
1980년 12월 당시 KBS 사장이던 李元洪(이원홍)씨는 컬러 텔레비전으로의 전환을 ‘한국인의 삶과 의식에 큰 충격을 던진 시각 혁명’으로 규정했다. 이원홍씨가 月刊朝鮮 1995년 1월호에 기고한 글을 요약 인용한다.
<1970년대 후반 한국의 수출상품 가운데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 컬러 TV 수상기였다. 흑백방송의 나라가 컬러 수상기를 수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정치인들은 웃고만 있지 않았다. 自國(자국)에서 시판하지 않는 것을 외국에 판매한다면서 ‘불공정 무역’으로 제소하기도 했다.
체신부는 1980년 6월 28일 우리 컬러방송의 방식을 미국 일본과 동일한 NTSC(National Television System Committee)로 하기로 결정했고, 8월 1일부터 컬러 수상기 시판이 허용됐다.
KBS는 1980년 8월부터 ‘컬러화 추진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12월이면 시험방송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서, 12월 1일을 시험방송 개시일로 잡았다. 정부를 설득해서 동의를 얻었다. 다행히 KBS는 1970년대에 컬러방송을 목표로 기본 시설의 85%를 컬러용으로 충당해 왔다. 하지만 완전 컬러방송을 실시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한 상태였다. 제작과 송출 등에 필요한 기본 시설 장비 보강을 위해 약 200억원의 긴급예산을 염출했다. 추가 소요분은 1981년도로 일단 이월했다.
마침내 12월 1일이 왔다. 첫 방송 첫 프로그램은 수출의 날 행사 중계였다. 컬러 중계차의 정비가 끝났다. 주조종실과 남산송신소가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마침내 오전 10시 첫 컬러 전파가 발사됐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출발은 성공이었다. 당초 15%로 예상했던 컬러화율은 첫날부터 무너졌다. 첫 주간 총 방송시간 3300분의 46.4%인 1530분이 컬러로 방송됐다. 뒤이어 KBS 2TV의 컬러화를 1981년 1월, 교육텔레비전인 KBS 3TV의 컬러화를 1981년 2월 2일 단행했다.
제일 마지막 단계가 광고의 컬러화였다. 시간이 촉박해서 방송의 컬러화를 쫓아오지 못했던 광고 제작사들은 1981년 4월 1일을 기해 컬러광고를 내보낼 수 있었다. 한국의 텔레비전이 명실공히 컬러화가 된 것은 1981년 4월 1일이다.>
디지털 TV 보급률 - 전체 가구의 23.5%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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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러TV 전시장에 몰린 사람들. 1980년 컬러TV의 시판과 컬러TV방송이 시작됐다. |
아날로그 TV에서 디지털 TV로, 통신과 컴퓨터가 결합한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 컬러 TV 방송의 출현을 압도할 두 사건이 동시 진행 중이다. 2012년 12월 31일 이전에 대한민국의 모든 공중파 방송은 디지털로 전환된다. 디지털 TV 수상기를 갖추지 못한 가정의 아날로그 방식 수상기는 그날부터 ‘먹통’이 된다. 고성능 큰 화면의 디지털 TV를 갖춘 가정들은 자연의 색채에 성큼 다가선 방송 화면을 즐기게 된다. 반면 디지털 TV를 구입하지 못한 달동네와 낙후지역에서는 “엄마, 왜 우리 집은…”이라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1980년 12월 1일 흑백 TV를 갖고 있던 가정들은 그나마 컬러방송을 흑백으로 볼 수 있었다. ‘디지털 방송’은 빈부 격차는 물론, 우리 사회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낼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거대 통신사인 SK와 KT, LG는 2008년 11월 14일 IPTV(Internet Protocol TV―인터넷 TV)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정에서 인터넷 초고속통신망을 이용해 공중파 방송과 영화, 컴퓨터로 이용 가능했던 모든 정보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KT는 일단 33개 채널로 방송을 시작했고, 곧 100개 이상으로 채널을 늘릴 계획이다. 채널은 무제한 늘릴 수 있다. 이른바 ‘통신과 방송의 융합’, ‘디지털 융합시대’가 현실이 된 것이다.
KT의 IPTV를 준비해 온 KT의 고위 관계자는 “KBS MBC SBS 같은 거대 공중파 방송들은 이제 곧 IPTV의 한 채널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PP(Program Provider·프로그램 공급자)로 전락하게 된다”며 “IPTV가 방송의 지각변동, 혁명을 선도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방송은 거대 방송사가 제작하고 편성해서 정해진 시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브로드 캐스팅(Broad-casting)’이었다. 쏴버리면 그만이었다. 시청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IPTV가 등장하면서 소비자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내용을, 내가 원하는 단말기로 볼 수 있다. IPTV는 양방향이다. IPTV에는 컴퓨터와 무선전화기, 오디오 등 수많은 전자기기들을 연결해서 쓸 수 있다. IPTV가 거실을 장악하고, 기존의 공중파 방송들을 수백개가 넘는 부가 서비스의 하나로 끼워 파는 날이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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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의 변천. TV의 등장에서 디지털 방송까지 80년이 걸렸다. |
정 사무총장은 KBS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DTV에 파견됐다.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14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정총장을 만났다.
―목표 시점이 2012년 12월 31일이면 아직 4년이나 남았습니다. KBS가 주도했던 흑백방송의 컬러 전환에는 불과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그때는 ‘아날로그 흑백’을 ‘아날로그 컬러’로 바꾸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날로그 컬러’를 ‘디지털 컬러’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아날로그 TV는 디지털 신호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날로그 방송이 끝나는 그 순간 각 가정의 아날로그 TV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우리 조사에 의하면 국민 68.7%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방송사가 디지털 신호를 날려보내는데 가정에서는 이걸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돼 있습니다. 4년 안에 모든 가구가 디지털 TV를 갖춰야 하는데, 디지털 TV 보급률이 턱없이 낮습니다.”
―전체 가구 중 디지털 TV를 갖고 있는 가정은 지금 얼마나 됩니까.
“이게 큰 일이에요. 가구에 보급된 디지털 TV는 385만대로 전체 가구의 23.5%입니다. 한 가구당 한대의 디지털 TV를 갖출 경우, 앞으로 4년 동안 1306만대를 추가 공급해야 모든 가구가 디지털 TV를 갖추게 됩니다. 한 해에 300만대의 디지털 TV가 팔려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나라 가구당 TV 보유대수는 1.46대입니다. 가정의 모든 TV를 디지털로 전환하려면 앞으로 4년 동안 2115만대의 디지털 TV가 보급돼야 해요.”
―디지털 TV로 전환하는 다른 나라의 수상기 보급률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건가요.
“2007년을 기준으로 하면 영국은 전체 가구의 86.7%, 일본은 43.7%가 디지털 TV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우리와 똑같은 2012년, 일본은 한해 빠른 2011년 디지털 전환이 완료됩니다. 우리의 보급률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23.5%에 불과합니다.”
디지털 방송 더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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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TV 정은찬 사무총장. |
“전체 가구의 30~40%가 디지털 TV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그 가정들의 TV가 일시에 꺼지는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국민 중 매일 TV를 시청하는 비율이 86.6%이고, 하루 평균 지상파 TV 시청시간은 121분입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TV 시청시간이 깁니다. 빈곤층의 유일한 오락이 TV 시청입니다. 겨울 찬바람 부는 연립주택 반지하 방에서 TV도 없이 지내는 사람들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난리가 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런 상태로 디지털 전환하면 대란이 난다’고 얘기하고 다니는 겁니다.”
DTV코리아 측은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 종료 때 400만 가구, 1000만명이 TV 시청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TV 보급률은 99.6%, 휴대전화 보급률은 98.9%, 컴퓨터 보급률은 88.6%다(2007년 TV 시청 행태 연구).
―그렇다고 정부가 디지털 TV를 사서 나눠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죠. 2009년 2월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는 미국의 경우 저소득층, 고령층, 장애인 등에게 디지털 TV를 구매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디지털 TV를 판매하는 가전업체가 디지털 TV를 한대씩 팔 때마다 일정액의 ‘디지털 전환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고요.”
―가전업체에 그런 아이디어를 던져 본 적이 있습니까.
“업계 쪽에 몇 번 얘기를 했는데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디지털 TV 보급률이 크게 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디지털 TV로의 전면 전환을 늦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디지털 TV 보급률이 50% 이하라면 늦춰야겠죠. 하지만 더 늦추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왜 그렇죠.
“우리는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2001년 10월 세계 7번째로 시작했지만, 디지털 전환 속도는 후발주자인 일본 덴마크 프랑스에 뒤지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 디지털 TV(LCD TV)시장의 절반을 삼성과 LG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IT 강국’, ‘디지털 강국’이라는 한국이 디지털 전환을 예정대로 못하면 이건 국가 신인도와 연결됩니다. 컬러 TV를 만들어서 해외에 수출하면서 정작 국내에서는 흑백방송을 하던 시절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거죠.”
방송의 디지털화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 송신·중계시설, 가정 3곳에서 모두 이뤄져야 한다. 국가 기간 방송인 KBS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KBS 기술본부 金錫斗(김석두) 기술전략팀장은 디지털화의 실무 책임자다. 김 팀장은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2009년도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처지”라면서 “2008년 적자가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디지털화가 웬말이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걱정했다.
총 3조 5000억원 투자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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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는 디지털화 예산 확보를 이유로 시청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
KBS는 디지털화한 방송과 아날로그 방송을 동시에 날려 보내고 있다. KBS 1TV의 디지털 편성비율은 55%, KBS 2TV의 디지털 편성비율은 50%에 이르렀다. 디지털 편성비율을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다음은 김석두 팀장과의 대화.
―방송제작의 전면 디지털화를 위해 얼마나 더 투자해야 하나요.
“KBS는 지금까지 4500억원을 투자했고, 앞으로 85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야 합니다. 디지털화를 위해 KBS가 총 1조3000억, MBC SBS 교육방송 등을 포함하면 총 3조5000억원이 투입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앞으로 2조원 정도의 자금을 더 조달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겁니까.
“카메라, 마이크, 스튜디오를 포함한 프로그램 제작시설, 송신시설을 다 바꿔야 하니까요. 디지털 고화질 화면이 되면 탤런트, 아나운서들의 분장을 더 정교하게 해야 합니다. 땀 구멍이 다 보이니까요. 디지털 프로그램은 아날로그 프로그램보다 3~5배 제작비가 더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KBS만 1조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데, 조달 방안은 있습니까.
“방송의 디지털화가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KBS가 2008년까지 3년째 적자입니다. 2009년에 필요한 디지털화 사업비 1500억원을 당장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제가 또 이렇게 나빠지니 디지털화에 큰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그래도 무슨 방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수신료를 현실화해 달라’는 게 우리의 일관된 요구입니다.”
수신료 올려 주면 비용조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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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들이 SK브로드밴드 여의도 사옥을 방문, IPTV, 디지털 TV 현장시찰을 하고 있다. |
“TV 수신료가 28년째 2500원입니다. 이걸 4000원으로 올려 주면 디지털화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두 배 가까이 올려 달라는 건 무리 아닐까요.
“전국에 TV 수상기를 가진 가구가 1800만 가구입니다. 하지만 면제대상이 많고, 난시청 지역에서는 수신료를 걷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 4000원을 받으면 광고를 병행해야 합니다. 월 7000원으로 올려 줘야 KBS가 광고 없이 공영방송으로 갈 수 있어요.”
―수신료를 못 받는 민간방송들은 어떻게 합니까.
“2008년 경영실적들이 나빠 디지털화 재원을 추렴하기 어려울 겁니다.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디지털 전환 비용 조달을 위해 ‘디지털화 이후에 남아도는 주파수 대역을 판매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있다. 회수해서 판매가 가능한 주파수 대역은 SK텔레콤이 이동통신에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만한 크기로, 판매가격이 11조~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문화관광위원인 崔球植(최구식·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2012년 DTV 전환이 이뤄지면 700MHz(메가 헤르츠) 대역에서 96MHz 대역을 회수해서 재분배가 가능합니다. 또 SKT가 사용하고 있는 800MHz 대역에서도 최대 32MHz의 회수 재배치가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회수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대략 130MHz 대역입니다. KBS 1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6MHz니까, 엄청나게 넓은 주파수 대역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주파수가 재분배되면 국내 이동통신시장 경쟁이 활성화돼 결과적으로 통신요금 인하로 이어지게 됩니다.”
11조~23조원의 돈이라면 디지털 전환비용을 충분히 조달하고 남을 財源(재원)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 온 공중파 방송사들은 이미 여러 차례 주파수 회수에 대해 ‘결사 抗戰(항전)’을 선언했다. 왜 이런 갈등이 빚어지는지 김석두 팀장에게 물어봤다.
―방송을 디지털 신호로 송출하면, 기존의 아날로그 신호가 이용하던 주파수와 다른 주파수 대역을 이용하는 것입니까.
“쉽게 비유하면, 길은 같은 길인데 ‘콤팩트’해진 신형 차가 달리는 셈입니다. 방송신호를 디지털화하면 영상 음향 자료를 압축해서 효율성 있게 쓸 수 있습니다. 같은 노폭이지만 양쪽으로 도로에 여유가 생깁니다. 이 여유분의 길을 모두 모아서 새로운 통신사업자나 방송업자에게 팔자는 게, 정부 쪽의 생각입니다.”
―‘남아 도는 길들을 돌려받아, 다른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인데, 방송사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뭡니까.
“현재 KBS 1TV와 2TV가 각각 6MHz 대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지털화로 여유가 생기는 도로에 다른 차를 다니게 해서, ‘MMS(multi media service―멀티미디어 서비스)’를 할 계획입니다. 기왕에 쓰던 주파수 대역을 우리가 쓰면서, 채널을 가능한 한 늘려 시청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겁니다.”
―KBS 1이 기존의 주파수 대역을 활용해서 두 개의 디지털 방송을 쏠 수도 있습니까.
“아직 기술수준이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기존의 주파수 대역으로 2개, 3개의 디지털 방송을 할 수 있겠죠. 지금은 6MHz 폭의 길에 디지털 방송 하나 아날로그 방송 하나, 혹은 디지털 방송 하나에 오디오 방송 여러 개를 할 정도는 됩니다.”
2009년 2월 디지털 전환 예정인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들이 디지털화로 여유가 생긴 기존의 주파수 대역에 방송 채널을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인 CBS ABC NBC가 10여 개의 자체 채널을 확보한다면 유선방송들이 설 자리는 협소해진다.
‘아무리 채널이 많이 늘어나도 시청자들이 실제 이용하는 채널은 4~5개’라는 게 언론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이 죽느냐, 유선방송이 죽느냐’는 논쟁이 한창이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들이 ‘多채널화’에 나서면 유선방송과의 갈등은 피할 수가 없다.
컨버터 설치하면 수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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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문화관광방송위원장 고흥길 의원. |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IPTV들이 30여 개의 채널로 시작했습니다. 곧 100개 이상의 채널로 늘어납니다. 상업방송들이 300~400개의 채널로 방송과 광고를 내보낼 때, 공영방송인 KBS가 다양한 채널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3.5%에 머물고 있는 디지털 TV 가정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공중파 방송사들이 디지털화 비용 2조원을 마련해서, 2012년 12월 전면 디지털 방송을 하는 것은 가능할까? 흑백방송의 디지털화를 책임졌던 이원홍 전 KBS 사장은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전면전환 시점을 늦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견이었다. 그의 얘기다.
“2009년 디지털 전환을 완료할 계획인 일본의 디지털화가 50%밖에 안됩니다. 경제위기로 일본의 디지털 TV 내수판매가 30~40%씩 떨어집니다. 그래서 일부에서 ‘연기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1980년 방송 컬러화를 할 때 KBS의 자체예산으로 비용을 충당했고. 정부에서는 한 푼도 안 줬습니다. 디지털화를 위해 정부지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방송의 디지털화를 유선방송사의 네트워크에 얹어서 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식 송출시설을 갖추고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국회 문화관광방송위원장인 高興吉(고흥길) 의원은 “2012년 12월은 법이 정한 시한이어서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다음은 고흥길 의원과의 대화다.
―KBS 등 공중파 방송 쪽에서는 디지털화 관련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정부가 지원에 나설 수 있을까요.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방송사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해야 하느냐’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없습니다. KBS의 수신료를 올리거나, 방송발전기금에서 지원하는 방법,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겠죠.”
‘DTV 코리아’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때 소외계층에 대한 직접지원은 미국이 1조7000억원, 영국이 1조2000억원, 이탈리아가 5400억원 규모다.
―시한을 넘기는 것도 검토대상입니까.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한을) 절대 넘겨서는 안됩니다.”
―디지털 TV 가정 보급률이 20% 초반입니다. 이렇게 보급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능하겠습니까.
“디지털 TV 구입이 어려운 가정에는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바꿔주는 ‘컨버터’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존의 화면으로 볼 수가 있어요. 컨버터가 한 대에 10만원 안쪽으로 저렴합니다. 컨버터를 살 때 정부가 보조금을 줄 수 있고요.”
TV를 보고 있는 가정 가운데 공중파 방송이 쏘는 전파를 직접 받아서 시청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집집마다 긴 장대에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TV 안테나를 지붕 위에 매달아, 안테나가 숲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지붕에 올라간 아들은 장대를 이리저리 돌리고, 안방의 아버지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외치면서 방송전파가 잘 잡히는 방향을 찾았다.
이제 공중파 방송의 전파를 직접 받아서 TV를 보는 시청자는 전체 가구의 21.1%로 줄어들었다(2007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난시청 지역 해소를 위해 송신 중계시설을 확충해온 KBS MBC의 노력보다, 각 지역 유선방송사들의 유선 네트워크 설치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전체 가구의 68%는 유선방송의 케이블을 통해 지상파 TV를 시청한다. 10.9%는 위성방송망을 통해 지상파 TV를 보고 있다. 지상파 방송이 2012년 디지털화하더라도, 전체 가구의 68%는 유선 케이블을 통해 디지털화된 방송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IPTV와 유선방송의 血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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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기자들이 위성디지털 TV채널 시민방송(RTV) 에 방영될 조선일보 뉴스 콘텐츠 '갈아 만든 이슈'를 녹화하고 있다. |
KTF가 시작한 IPTV 서비스 ‘메가TV’의 채널은 33개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공중파 방송이 KBS 1, KBS 2, MBC, SBS, EBS 등 5개 채널. 5개 공중파 방송의 지나간 프로그램들을 모두 다시 볼 수 있다. 홈쇼핑 채널이 5개, 영화 채널이 5개, 오락 채널이 1개, 취미 레저 채널이 4개, 뉴스 정보 채널이 4개….
영화와 다큐멘터리 비디오 등 주문을 해서 볼 수 있는 동영상이 9만2400여 개 준비돼 있다. 메가TV의 홈페이지(www.mymegatv.com)를 둘러보면, ‘메가TV’는 단순한 TV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모든 정보의 集積(직접) 장소다. 자녀들의 영어교육이 필요하면 ‘홈 스쿨링’으로 가면 되고,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메가TV에 올려 교인들과 함께 보고 싶으면 ‘종교’ 부분으로 가면 된다. 메가TV는 자신들의 광고 그대로 ‘상상 가능한 모든 것, 그 이상’이다. 이 모든 정보를 한 달 1만6000원의 수신료로 볼 수 있다.
KT 외에 SK가 ‘SK 브로드밴드’, LG데이콤이 ‘마이LGTV’ 같은 IPTV 서비스를 시작했다. IPTV가 제공하는 방송 정보 서비스는 유선방송이 지금까지 제공해온 채널과 방송내용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IPTV에 가입해서 시청하면 유선방송을 따로 볼 이유가 없다. 유선방송의 위기는 거기서 출발한다.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유선방송은 19개 채널을 제공하는 기본형(월 5000원)부터 73개 채널을 모두 볼 수 있는 고급형(월 1만5000원)까지 선택할 수 있다. IPTV는 유선방송 73개 채널이 공급하는 그 이상의 서비스를 비슷한 가격에 제공하는 셈이다.
“IPTV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아니라 자원 낭비”
유선방송 사업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유선 통신사업자인 ‘CJ 헬로 비전’의 김진석 사업전략실장의 말이다.
“44조원 통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KT와 SK가 자금력을 앞세워 겨우 2조원 규모인 유선방송 시장을 압살하고 있다. 이건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아니다. 통신사업자들의 횡포고, 자원의 낭비다. 통신사들이 무선통신 인터넷 이용과 결합해 결국 ‘공짜 IPTV’를 제공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유선방송은 설 자리가 없다.”
‘메가TV’를 출범시킨 KT의 고위 관계자를 만났다.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일으키기 싫다”며 익명 보도를 요청한 그는 “IPTV의 출현은 방송의 지각변동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IPTV와 유선방송의 대결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익명의 관계자와의 대화다.
―KT가 만드는 IPTV인 메가TV를 보면 공중파방송과 유선방송 채널 전부, 거기에 인터넷 포털 서비스를 합쳐 놓은 내용입니다. 최근 ‘네이버’ ‘다음’ 같은 인터넷 포털에 접속해서 공중파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이용자들이 직접 제작한 동영상을 인터넷 포털에 올려 놓고 즐기기도 합니다. IPTV와 인터넷 포털과의 차이는 뭔가요.
“화면의 차이죠. IPTV는 42인치 이상의 LCD 화면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스크린의 크기, 화질의 차이죠. 네이버나 다음에서 방송이나 인터넷 동영상을 볼 수는 있지만, 화면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화질이 나쁘고, 보다가 영상이 끊어지죠.”
―33개 채널로 시작했는데, 그 채널을 채울 ‘콘텐츠’는 충분합니까.
“공중파 방송 5개 채널을 실시간으로 재전송합니다. 나머지 채널들도 종일 방송을 해오던 게 많습니다. 33개가 아니라 곧 100개 이상의 채널로 늘어날 겁니다. 예를 들어 月刊朝鮮이 우리 IPTV에 한 채널을 갖고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업체와 가전업체의 ‘거실 장악’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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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 헬로비젼’김진석 사업전략 실장. |
“가능합니다. 月刊朝鮮이 콘텐츠를 만들어서, 우리가 제공한 도구를 이용해 화면을 인터넷으로 올려주면, 화질을 바로잡아서 곧바로 방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업적 채산성이 맞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리지 않은 가정에서는 IPTV를 볼 수 없는 거죠.
“물론입니다. 다행히 인터넷 사용자의 90% 이상이 초고속 인터넷망에 가입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IPTV를 시작할 수 있는 거죠.”
―‘자본력을 앞세운 IPTV가 유선방송과 제로섬게임을 벌이면 과잉경쟁으로 방송 콘텐츠 투자와 영상산업 발전이 저해 받게 된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지금 거실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컴퓨터업체인 애플사가 ‘애플 TV’를,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이 ‘구글 TV’를 내놓았습니다. 이것 역시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보는, 일종의 IPTV입니다. 삼성전자 같은 가전사들은 자신들의 TV 수상기를 인터넷에 연결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콘텐츠 TV’를 개발 중입니다. IPTV의 출현을 유선방송과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단견입니다. IPTV는 양방향입니다. 유선방송들도 양방향성을 넓혀가면서 경쟁해야겠죠.”
―KT와 SK가 IPTV 사업을 위해 이미 수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압니다. 월 1만6000원 정도의 가입료로 수지를 맞출 수 있겠습니까.
“IPTV의 경우 그 시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됩니다. 거기에 맞는 타깃 광고가 가능합니다.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 겁니다. IPTV로 뉴스를 보다가 앵커가 입고 있는 옷이 마음에 들면 곧바로 쇼핑방송에 들어가 구매를 하는 방식입니다.”
―메가TV 가입자는 얼마나 됩니까.
“84만명으로 출발했습니다. IPTV의 장점을 살려 서비스를 계속하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걸로 예상합니다. 지금 방송 미디어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경쟁 속으로 진입했습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신문광고는 2002년 2조200억원에서 2007년 1조7801억원으로 22.3% 감소했고, 지상파 TV 광고는 2002년 2조4397억원에서 2007년 2조1076억원으로 26.4% 줄었다. 반면 케이블 TV에 실린 광고는 2002년 2345억원에서 2007년 8297억원으로 4배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광고시장은 1조1400억원 증가했고, 그 가운데 5952억원을 케이블 TV가 가져간 것이다. 신문, 방송 같은 전통 매체들은 20% 이상의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계에서 케이블TV(유선방송)는 큰 경쟁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블루 오션’으로 통했다.
유선방송 사업자들의 위기의식
tvN, 채널 CGV, 올리브, 챔프,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9개 유선방송 채널을 보유한 CJ미디어는 2년 전 15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MBC SBS 못지않은 미디어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2008년 상반기에 직원 10%를 감원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을 벌였다. 구조조정은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CJ미디어는 2007년 151억원의 적자를 냈고, 자회사인 CJ tvN은 2007년 122억원 적자를 낸 데 이어 2008년 역시 100억원대의 적자가 예상된다. ‘블루 오션’으로 여겨졌던 유선방송 시장이 이제 핏빛으로 변해 가고 있다.
유선방송 채널은 매출의 70% 이상을 광고에 의존한다. 유선방송 광고시장이 매년 20% 이상 성장했지만, 2008년에는 경기불황으로 광고가 급격히 위축됐다. 불황이 닥치면 광고주들은 KBS MBC 같은 지상파 방송보다 유선방송 광고(PP광고)부터 중단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IPTV가 유선방송보다 풍부한 내용과 낮은 가격을 앞세워 유선방송 시장을 잠식하겠다고 덤벼들고 있다.
CJ그룹은 9개 유선방송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CJ 미디어’와 유선방송통신망 사업인 ‘CJ 헬로비전’을 갖고 있다. ‘CJ 미디어’는 유선방송에 채널을 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 사업자, 흔히 PP(Program Provider)로 불린다.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에 가입하면 30~100개의 채널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채널을 공급하는 곳이 PP다. 한 업체가 이런 TV채널을 여러 개 보유할 수 있는데, CJ미디어나 온미디어가 대표적이다.
전국에는 77개 권역에 103개의 유선방송 사업자가 있다. 이들은 유선방송 가입자들에게 가입비를 받고, 유선방송 청취에 필요한 통신망과 셋톱 박스를 설치해 준다. PP는 이들 사업자들에게 ‘콘텐츠’를 공급해 주는 대가를 받고, 방송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얻는다.
주요 PP인 CJ미디어 김진석 전략실장은 “IPTV와 유선방송이 2조원 시장을 놓고 피 튀기는 전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44조원 시장을 장악한 KT와 SK가 2조원 시장을 노리고 유선방송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유선방송 시장이 정말 2조원밖에 안 되나요.
“우리나라 1700만 가구 중 1500만 가구에 유선방송 케이블이 깔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구에 케이블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IPTV는 공중파 방송과 기존의 유선방송 콘텐츠를 제공할 뿐입니다. 새 시장을 형성하기보다는 기존 유선방송 시장을 깰 수밖에 없습니다. 유선방송사업자들이 가입자들에게서 받는 이용료, PP광고시장을 다 합쳐야 2조원에 불과합니다. IPTV가 이 시장의 절반을 가져가야 1조원입니다. 통신시장은 무선통신 전화 인터넷 사업을 합쳐서 44조원 규모입니다.”
―KT와 SK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고 하는데.
“44조원 통신시장을 배경으로 업은 KT와 SK의 IPTV가 얼마나 방송시장에 기여할지 의문입니다. IPTV를 보면 새로운 콘텐츠가 전혀 없습니다. ‘뉴 미디어’가 아닙니다. 공중파 방송 재전송하고, 우리 유선방송이 하고 있는 똑같은 콘텐츠를 그대로 공급합니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요금인하 경쟁입니다.”
―가격경쟁으로 이용료가 떨어지면 궁극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요.
“그건 KT와 SK의 시장지배력을 감안하지 않은 얘기입니다. KT가 메가TV를 시작하면서 한달 이용료를 1만60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게 어디까지 떨어질지 몰라요. 여기에 맞서 살아남으려면 유선방송사들 역시 가격인하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유선방송에 공급되는 콘텐츠에 제 값을 쳐줄 수 없고, 방송의 질은 떨어질 게 뻔합니다.”
―KT와 SK가 시장지배력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인터넷과 집전화, 이동통신 전화를 IPTV와 한 다발로 묶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식이죠. 통신사들이 무선통신 인터넷 등에서 확고한 경쟁우위를 갖고 있으니까 가격을 후려쳐서 ‘우리 인터넷과 이동통신, 집전화를 이용하면 IPTV는 공짜로 볼 수 있게 한다’로까지 갈 힘이 있어요. 일부 지역에서 ‘IPTV 평생 무료’ 같은 호객 문구가 나타났습니다.”
“IPTV와의 경쟁은 방송의 질 저하로 직결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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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 미디어’방송본부장 윤석암 상무. |
“같은 ‘콘텐츠’로 같은 시장을 상대로 경쟁을 하면 ‘제로 섬’입니다. SK와 KT가 IPTV를 시작해서 유선방송과 IPTV를 함께 보는 가구가 늘고, 이용요금이 올라간다면 ‘플러스 섬’이 되겠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9개 채널을 운용하고 있는 ‘CJ 미디어’ 방송본부장 윤석암 상무 역시 비관적이었다.
“유선방송에서 사업을 해온 롯데홈쇼핑 등 5개 홈쇼핑업체가 KT의 IPTV 채널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CGV라는 영화채널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IPTV로 들어가지 않고 있지만, 언제 굴복할지 모릅니다. KT의 한해 수익만 1조5000억원입니다. 이 절반만 IPTV 사업에 쏟아 부으면 유선방송은 견디지 못합니다.”
윤상무는 유선방송 사업자(지역 유선방송 사업자)와 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자(PP)의 영세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PP가 한 해에 유선방송 사업자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2000억원 정도고, 광고를 통해 얻는 수익이 1조원에 못 미칩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등록된 219개 PP 가운데 그동안 141개가 시장에서 퇴출됐습니다. 연간 매출 10억원을 넘기는 유선방송 PP가 몇 되지 않습니다. 무척 영세합니다. IPTV와의 경쟁으로 이 수익이 줄어들면 방송의 질은 급격히 악화될 게 분명합니다.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IPTV의 출현으로 콘텐츠를 팔 유통망이 하나 더 생겼으니까, PP로서는 판로가 늘어난 셈 아닙니까.
“백화점에 공급하고, 마트에도 공급하면 일석이조 아니냐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건 시장이 늘지 않고, 소비자의 구매력도 늘지 않는 경우입니다. 방송 광고시장이 늘기는커녕 계속 위축되는 상황에서 IPTV가 들어오고 있으니까, 제 살 갉아먹기가 되는 거죠. IPTV는 시장의 수요가 아니라, 시장외적인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무리하게 IPTV를 추진하고 있다는 얘긴가요.
“물론입니다. 정부가 허가해줘서 사업을 시작했던 삐삐(수신자 호출기), 씨티폰(수신전용 전화)이 망했습니다. 위성 DMB, 지상파 DMB는 자본잠식 상태인 걸로 압니다. IPTV가 정착이 안 되면 허가를 내준 정부가 ‘응급주사’를 계속 놓겠죠. 그렇게 되면 기존 유선방송업자들의 피해가 증폭됩니다. IPTV든 유선방송이든 이용료의 상당부분은 콘텐츠 제작비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면 콘텐츠 제작으로 가야 할 돈이 공중으로 떠 버립니다.”
지상파의 多채널화가 가져온 갈등
전국 가구의 68%가 유선방송 케이블을 통해 공중파 방송을 시청하지만, 케이블업체는 공중파 방송의 디지털화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 ‘多(다)채널화’로 가는 공중파 방송의 이해와 유선방송의 이해가 배치되기 때문이다.
유선방송망 사업자인 ‘헬로비전’의 김진석 상무는 “가정에 이미 깔려 있는 유선방송 디지털 망을 이용하면 공중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며 “일본의 경우 디지털 사업자가 디지털 전환을 100% 맡고 있다”고 했다. 김진석 상무와의 대화다.
―유선방송망의 디지털화는 얼마나 돼 있습니까.
“우리 ‘헬로비전’의 경우, 256만 가입자 가운데 65만이 디지털화돼 있습니다. 나머지는 아날로그 가입자입니다. 아날로그 가입자라고 하더라도 집에 20만원 정도의 ‘셋톱 박스’를 설치하면 기존 선로로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IPTV를 통해 디지털 방송을 볼 때와 유선방송 케이블을 통해 디지털 방송을 볼 때, 둘 중 어느 쪽이 화질이 좋습니까.
“시청자 입장에서는 똑같다고 보면 됩니다. IPTV와 유선방송이 디지털 신호를 전달하는 線路(선로), 디지털 신호를 잡아서 TV 수상기에 보내는 기술적인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리선을 이용하느냐, HFC(Hybrid Fiber Coaxil)선을 이용하느냐…, 이걸 기술적으로 다 설명하려면 밤을 새워야 합니다. 엄밀히 비교하더라도 IPTV로 보는 디지털 방송이나, 유선방송으로 보는 디지털 TV나 화질은 같습니다.”
IPTV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유선방송을 제치고 인터넷 케이블을 이용한 방송의 강자로 올라설까? 아니면 씨티폰, 위성 DMB, 지상파 DMB처럼 실패하고 사라질까? ‘나우콤’의 문용식(49) 사장에게 IPTV의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다. 문 사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생방송 서비스 ‘아프리카(www.afreeca.com)’를 운영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최대 동시 접속자가 20만명인 국내 최대 인터넷 생방송이다. 등록 회원이 1500만명을 넘어섰다. 아프리카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신이 제작한 동영상을 올려놓는 UCC 사이트와 달리 네티즌들이 직접 생방송을 한다.
‘아프리카’에 접속하면 손쉽게 자신의 ‘방송사’를 차릴 수 있다. 집에 고속 인터넷망이 깔려 있다면, 시중에서 1만~2만원 정도 하는 비디오 카메라만 하나 설치하면 끝이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방송을 할 수 있다. ‘촛불집회’ 당시 네티즌들이 시위현장에서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해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 방송을 했다. 시위가 한창이었던 2008년 6월 한달 동안 700만명이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된 ‘시위 생방송’을 시청했다.
“IPTV는 인터넷으로 보는 TV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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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앞에서 한국케이블방송협회가 한나라당의 케이블TV·IPTV법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IPTV가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보는 TV’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IPTV는 인터넷 선로를 이용해 방송을 하지만 그냥 TV라는 거죠. ‘쌍방향’이라고 하지만 TV를 보다가 그 화면으로 채팅을 하겠습니까?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 서비스를 IPTV에 집어넣겠지만 그건 ‘메인’이 아니라 ‘액세서리’일 뿐이죠. 이론상, 기술상으로 IPTV가 얘기하는 게 모두 가능합니다. IPTV로 드라마를 보다가, 여자 주인공이 입은 옷이 좋으면, 홈쇼핑으로 가서 옷을 살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거죠. 그러나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 행동 동선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거실의 IPTV를 통해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더라도, 인터넷 이용은 또 다른 컴퓨터를 이용해서 할 거라는 말입니까.
“지금도 그렇잖아요.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거실에서 TV로 ‘가요무대’를 보잖아요. 대학생 아들 딸은 자기 방에서 컴퓨터로 인터넷하고,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고…. IPTV가 거실을 장악하더라도 별도의 컴퓨터는 계속 사용할 겁니다. 한쪽에 IPTV 켜놓고 한쪽에선 컴퓨터로 검색하는 식이죠. IPTV는 TV를 보는 새로운 방식에 불과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 얘기가 아니고 심리학자 언론학자들 얘기예요. TV는 고관여 매체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집에 돌아와서 소파에 편히 누워서 드라마 보다가, 인터넷 모드로 들어가서 이메일 열어 보고 싶겠습니까. 두 개를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방에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던 젊은이들이 거실의 IPTV로 옮겨가서 인터넷을 이용하지는 않을까요.
“거실에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데 나올까요. 거실의 42인치 대형화면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IPTV가 네티즌들의 동영상을 올려놓는 서비스까지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생방송인 아프리카의 영업에 영향은 없을까요.
“아프리카는 IPTV와 경쟁이나 대체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는 실시간으로 하는 개인방송입니다. IPTV는 못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루에도 수만 개의 방송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집니다. 동시에 개설돼 있는 방송 수가 2000개 정도입니다. 지금 만들어 놓은 시설과 회선은 동시에 50만명이 볼 수 있는 규모입니다.”
“우리는 남들과 같은 건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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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우콤’의 문용식 사장. |
“그쪽으로 갈 생각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는 화질이 아니라,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무료 개인 생방송 사이트라는 점으로 승부합니다. 우리는 2류, 풀뿌리 방송입니다. 화질로 IPTV, KBS와 싸울 이유가 없죠.”
―‘아프리카’의 수익은 어디서 나옵니까.
“광고가 기본수입입니다.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게임산업 같은 특정산업들이 마케팅 장소로 많이 활용합니다.”
―IPTV가 영업을 확대하고, 공중파 유선방송과 광고수주를 경쟁하면 아프리카에 영향이 오지 않을까요.
“우리는 남과 똑같은 건 안 합니다. 가는 길이 다릅니다.”
―아프리카와 TV는 전혀 경쟁관계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물론이죠. 아프리카에 방송을 개설한 분 가운데 TV를 흉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TV를 흉내내면 낼수록 인기가 없습니다. 네티즌들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을 원합니다. 가끔 비속어도 쓰고, 시청자들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에 화끈하게 대답도 해주고, 그래야 인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뭡니까.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숨어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끼와 개성이 넘쳐납니다. 미니홈피, 블로그에서 자기 얘기를 하다가, 동영상(UCC)으로 넘어갔습니다. 그게 인터넷 생방송으로 이어진 겁니다. 인터넷 생방송은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브로드 캐스팅’이 아니라, 수백 수천의 관심 있는 또래집단에게 자신을 여는 ‘내로 캐스팅’이죠.”
―IPTV가 빠른 시간 안에 고객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요.
“유선방송과 위성TV 가입자를 대거 빼앗아 가겠죠. 그쪽 시장을 잠식할 겁니다. 그러니까 벌써부터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난리지 않습니까.”
―IPTV가 유선방송을 잠식하는 이상으로 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IPTV가 제공하는 서비스 안에 유선방송 프로그램이 다 들어 있습니다. IPTV는 완벽하게 유선방송의 대체재입니다. KT와 SK가 막대한 자본과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서비스로 얼마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지는 지켜봐야죠. IPTV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산업적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걸로는 보지 않습니다. 새로운 게 없잖아요.?”⊙
[방송의 지각변동]
▣ 한국방송공사의 지상파 광고독점 해체
헌법재판소는 2008년 11월 27일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와 공사가 출자한 업체만 광고판매대행을 할 수 있도록 한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했다. 지금까지 KOBACO가 모든 방송사들의 광고판매를 맡아서 기업들과 수주계약을 체결해 왔다.
헌재의 이번 판결로 KOBACO 체제의 방송광고 ‘연계판매’로 광고수익을 보전해온 종교·지역방송들이 큰 폭의 광고매출 감소를 겪을 전망이다. 광고수주를 위한 방송사간의 시청률 싸움도 예상된다. 재벌기업 광고팀 관계자는 새로운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MBC 9시 뉴스 시작 前(전)에만 광고를 내보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KOBACO가 아침 6시에 하는 ‘앞서가는 농어촌’ 같은 비인기 프로나, 불교방송 프로그램에 함께 광고를 하도록 했다. ‘연계판매’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끼워팔기’였다. KOBACO 독점체제라 광고의 시장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다. KOBACO와 유사한 역할을 할 민간 광고판매 대행회사(민영 미디어 랩)가 등장하면, 각 방송사 프로그램의 인기도에 따라 가격이 형성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세환 민주당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향후 방송 3사의 매출액은 미디어 랩의 제한 허용(1~2개 허용) 도입 시 13%, 완전경쟁(모두 허용) 시 23% 증가하지만, 지역민방은 7~10%, 종교방송은 26~37%, 신문은 5~8%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 신문·방송 겸영, 대기업 방송 진출 허용
한나라당이 신문·방송 간 겸영금지 조항 삭제를 골간으로 한 신문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의 상호 겸영 금지를 폐지하고, 일간신문, 뉴스통신 또는 방송사업 소유자의 일간신문, 뉴스통신의 주식 및 지분취득 규제를 폐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마련한 개정안은 신문(뉴스통신 포함)과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은 20%,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은 49%까지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을 소유할 수 있는 기업의 자산규모를 현재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낮췄다. 야당과 언론단체들은 ‘여당의 미디어법 개정안들이 궁극적으로 덩치 큰 신문사들, 대기업들에 방송을 넘겨주는 것이다. 여론의 독과점 상태를 가져온다’고 반발하고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은 “미디어환경이 변화했고, 의미 없는 칸막이 규제는 미디어산업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며 “모든 매체가 발 빠른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경쟁력을 갖도록 하자는 게 이번 개정안의 취지”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