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 “소련(러시아)의 의학은 미국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
북한 적십자병원의 내과 의사 3명이 2000년 8월 미국 볼티모어에 위치한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2주간 응급의료 관련 기술을 배우는 연수과정에 참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연수에 참여한 의사는 당시 북한 적십자 병원내과과장이었던 김모씨, 내과 의사 이모, 박모씨 등 세 명이었다고 한다.
평양에 위치한 적십자병원은 해방 직후 舊(구) 소련의 원조에 의해 세워졌다.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가, 1958년 다시 소련의 지원으로 복구됐다. 이 병원은 1970년대 들어 金日成(김일성)의 건강과 장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순환기연구소’ ‘신경연구소’ ‘노인학연구소’ 등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적십자병원은 김일성과 金正日(김정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연구소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최고위층을 치료하는 봉화진료소의 의사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북한 의료진의 미국 연수를 모니터링했던 우리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3명의 의사를 적성국인 미국에 연수차 파견한 것은 김정일의 심장마비 등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보인다”며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처럼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외부 심폐 소생기를 이용해 생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적십자병원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 세 명의 의료진은 김정일의 건강상태와 병세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보인다”고 했다. 다음은 우리 정보당국 관계자와의 대화.
―북한 의사들의 미국 연수가 어떻게 성사됐나.
“북한에서 어린이 결핵퇴치 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온 ‘유진 벨’ 재단이 다리를 놓았다. 북한으로서는 保安(보안)이 최우선 관심이었고, 그 점에서 ‘유진 벨’ 재단은 북한의 신뢰를 샀다. 미 국무부는 오랫동안 북한 문제에 관해 ‘유진 벨’ 재단의 자문을 받았다. 미국 정부는 ‘유진 벨’ 재단을 믿었기 때문에 북한 의사들의 미국 연수를 허용했다.”
―북한 의사들이 적성국인 미국에 건너오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었나.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을 통해 미국 비자를 신청한 것으로 안다. 미 국무부는 국제회의나 인도주의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북한인들의 미국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왜 존스 홉킨스 병원인가.
“존스 홉킨스 병원이 심장병 분야에서 수준이 아주 높다. 유진 벨 재단의 ‘스티브 린튼’이 볼티모어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연수 인원은 의사 세 명이 전부였나.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 소속인 안모씨가 안내자 겸 감시인으로 왔다.”
―세 사람은 어떤 분야를 공부했나.
“뭉뚱그려서 얘기하자면 ‘응급 의료’다. 세 사람은 심장과 심폐 소생기 사용에 관심이 많았다. 2주일의 연수기간 중 1주일을 심장분야에 투입했다. ‘관상동맥조영술’, ‘관상동맥 성형술’에 대해 배웠다.”
―심폐 소생기는 어떤 장치인가.
“갑자기 심장이 멎었을 때 심장 대신 심장 역할을 해주는 보조장치다. 심장에 본격적인 조치를 하기 전 한두 시간을 벌 수 있다.”
―북한 의료진들이 왜 심폐 소생기에 관심이 높았다고 보나.
“마취제가 없어서 완전 마취가 안 된 상태에서 수술하는 경우가 북한에서는 다반사다. 심혈관계 질환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김정일의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의료진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심폐 소생기를 다룬 의사 박모씨는 ‘독일에 연수를 다녀왔다’고 밝혔다. 세 명의 의사들이 극도로 말 조심을 했다. 미국 의료진들이 북한의 의료사정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의료진의 설명을 잘 알아들었다. 세 사람이 구 소련과 동구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안다.”
북한은 1999년 5월 ‘유진 벨’ 재단을 통해 미국産(산) 심폐 소생기를 획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산 심폐 소생기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북한 의료진의 존스 홉킨스 의대 연수를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진 벨 재단의 미국산 심폐 소생기 기증에 간여했던 한 인사와 만났다. 신원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그는 “북한이 김일성 사망(1994년 7월) 직후부터 ‘미국산 휴대용 심폐 소생기를 지원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다”고 기억했다. 다음은 익명의 인사와의 대화.
―심폐 소생기를 어디에 기증했나.
“평양 적십자병원이다. 조그만 휴대용 심폐 소생기와 내시경 수술기구 일체를 기증했다. 평양을 방문해서 의료기기를 전달한 시점은 1999년 5월로 기억하고 있다. 내시경 수술기구는 완비가 돼서 북한 의료진 앞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담낭 등을 떼내는 시술을 선보였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게임기 다루듯 수술을 하니까 북한 의료진들이 기겁을 하는 모습이었다. 휴대용 심폐 소생기는 부품을 완전히 다 가져가지 못해 나중에 공급해줬다.”
―적십자 병원이 김정일을 포함한 최고위층을 진료하는 의료기관인 것을 당시 알고 있었나.
“의료장비를 전달하고 나서 적십자병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입원실에 입원환자가 거의 없었고 수술실이 텅 비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평양의대 병원과 대조적이었다. 김정일을 위한 의료기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고위층을 위한 의료기관으로 짐작됐다. 우리가 접촉했던 북한 의료진은 ‘봉화진료소, 적십자병원, 남산병원의 의사는 토대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최고위층을 직접 접촉하면서 의료행위를 하기 때문에 충성심이 선발의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얘기였다.”
―최근 취재 과정에서 ‘적십자병원 의료진이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응급의료 관련 연수를 했다’는 정보가 있다. 북한 의료진이 기증받은 미국산 심폐 소생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미국 연수를 한 것은 아닌가.
“유진 벨 재단 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적십자병원 내과 의료진을 만났다. 독일에서 공부를 한 의사들이 심폐 소생기를 인수했다. 그 사람들은 작동법을 잘 알고 있었다. 미국산이 독일제보다 더 작지만 작동원리는 비슷하다. 북한이 의료진을 미국에 파견한 것은 미국이 심장내과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증한 심폐 소생기와 관련해서 북한측과 추가적인 접촉은 없었나.
“내시경 수술기는 자주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모품을 보내달라’고 난리를 쳤다. 심폐 소생기 소모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심폐 소생기는 특별한 경우를 위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우리측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저명한 심장 전문의들에게 ‘환자 차트’를 보내 의견을 구했다. 그의 설명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뉴욕의 북한 대표부를 통해 접촉한 미국 의료진들에게 심장 CT가 포함된 진료 차트를 보내 치료에 관해 자문을 구했다. 심장 부정맥을 전공한 미국 심장 내과의는 ‘북한 측으로부터 차트들이 인민군 고위 장성의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북한이 이렇게 치료에 공을 들이는 ‘장군’은 김일성, 김정일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게 우리의 추정이다. 김정일이 지난 8월 쓰러진 이후 미국이 김정일의 뇌졸중, 순환기계 질환에 대해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인 것은 이런 정보들을 축적해 온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의료진을 미국 병원에서 연수시키고, 미국의 심장 전문의들에게 ‘진료 차트’까지 보내면서 자문을 구한 것은 김정일의 적극적인 지시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리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의료진의 미국 연수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런 정보를 입수한 적은 없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며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金大中(김대중)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러시아 의료수준과 설비에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언급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원래 주석님께서는 서거하시기 4~5년 전에 심장질환을 일으켰던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소련 크렘린 병원이 제공한 페이스메이커(심장 박동기)를 설치했습니다. 미국제 페이스메이커는 (볼펜을 내보이면서) 요만한 것이고 성능이 대단히 우수한데 소련제는 두 배만한 것이었어요. 소련의 의학은 미국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이었죠.’ 이런 불신 때문에 김정일은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심장마비나 순환기 질환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진을 미국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 평양주재 서방 인사의 증언
“김정일, 결재 정상처리
언어 소통 가능하나 보행에 어려움”
金正日(김정일)이 지난 9월 9일 북한정부 수립 6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나타나지 않은 이후, 그의 신병에 대한 각종 첩보와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8월 14일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 회복 중’이라는 게 서방 정보기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은 김정일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선전전을 펼쳤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 5일 1면 머리기사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대학생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10월 11일 조선중앙TV는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김정일이 인민군 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를 시찰한 사진 10장을 방영했다.
김정일의 신병 이상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月刊朝鮮은 평양에 체류하고 있는 서방측 인사와 접촉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가공되지 않은 사실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는 “9월 9일 군사퍼레이드에 김정일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당일 새벽 급작스럽게 참석이 취소됐다”고 증언했다. 그의 증언은 ‘김정일이 8월 14일 뇌졸중으로 뇌수술을 받아 9월 9일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참석하지 않아 당초부터 인민군 군사퍼레이드 대신 노농적위대의 군사퍼레이드가 준비됐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이야기와 배치된다.
9월 9일 새벽 군사퍼레이드 연기 통보
9월 9일 행사에 대한 그의 증언이다.
“북한 당국이 행사 전날인 9월 8일 ‘군사 퍼레이드를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김정일 주최 만찬은 저녁 8시에 한다’고 했다. 그리고 외국 귀빈들에게는 아침 8시까지 지정된 장소에 나올 것을 통보했다. 이날 저녁 김정일이 주최하는 저녁 만찬 초청장을 외국 귀빈들에게 다 돌렸다.”
―당신도 초청장을 받았나.
“받았다.”
―언제 받았나.
“내 이야기를 몇 가지만 조합하면 북한 당국은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금방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초청장을 받았다는 것만 확인하겠다.”
―9월 9일 저녁 만찬이 김정일 주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장군님이 주최하는 만찬은 참석절차가 까다롭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말라’, ‘담배 라이터를 가져오지 말라’는 얘기가 붙어 있으면, 김정일이 주최하는 만찬임을 알게 된다.”
―9월 9일 군사 퍼레이드와 저녁 만찬에 김정일이 참석할 예정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런데 9월 9일 새벽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오늘 오전에 나오지 마라. 행사가 연기됐다. 오후 4시에 지정된 장소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저녁 만찬장에 카메라 담배 가져와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김일성 광장에 갔더니 인민군대가 안 나오고 노농적위대가 나왔다. 그 다음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새벽부터 행사장에 대기했던 북한 주민, 인민군, 노농적위대 사람들은 김정일 불참에 의아해하지 않았나.
“북한 주민들은 비판능력이 없다. 10시간 길거리에 모아 놓았다가 ‘집에 가라’고 하면 그냥 간다. 당 간부들조차 ‘우리는 명령을 수행할 능력만 있지, 건의할 능력은 없다’고 한다. ‘김정일 장군이 왜 오늘 안 나오셨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반동이자, 숙청대상이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김정일이 8월 14일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그래서 9월 9일 행사에 못 나왔다’고 얘기한다.
“나는 100%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내가 체험한 것만 얘기하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어떤 사고나 신병이상이 생겼다면 9월 9일 2~3일 전이라고 봐야 상식이다. 김정일이 뇌수술을 해서 몸이 아픈데 9월 9일 전날까지 외국 귀빈들에게 김정일 주최 만찬에 나오는지 확인했겠나.”
―평양에 머물면서 서방 정보기관들이 ‘김정일 뇌졸중 수술·병상통치’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북한 사람들에게 넌지시 그 사실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어떤 반응이었나.
“김정일을 만나볼 수 있는,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은 ‘사고로 다쳤다’, ‘발을 헛디뎌서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김정일이 김일성대학에서 축구경기를 관람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인가.
“노동신문과 관영방송이 똑같이 그 소식을 되풀이하니까 많은 북한 사람들이 그 얘기를 했다. 하지만 김정일이 김일성대학에 온 걸 봤다는 사람은 못 만났다. ‘장군님이 관람했다는 것은 TV로 관람했다는 얘기겠지’라고 했더니 반박을 하지 않고 웃더라.”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 행사장 분위기는 어땠나.
“김정일이 나온다는 기미가 전혀 없었고, 축제 분위기 없이 썰렁했다.”
―‘김정일이 병상통치를 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북측과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이 몇 가지 있는데 별다른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장군님이 결재를 하셨다’, ‘지침을 주셨다’고 내게 얘기한다. 김정일 주변, 그리고 북한 권력의 상층부가 ‘위기상황’에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정일이 일상적인 집무가 가능한 것으로 보이나.
“측근으로 부를 만한 사람들이 ‘장군님이 매일 업무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결재를 하고 계십니다’라고 한다. 내가 뇌졸중 뇌수술 얘기를 하면 ‘남쪽에서 개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화를 낸다.”
―김정일이 위급하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을 숨기기 위해 ‘쇼’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김정일이 위급하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쇼를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 북한에는 없다. 만약 그걸 지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김정일의 정권을 이어받을 사람이다. 김정일의 ‘有故(유고)’를 숨기거나, ‘숨기라’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김정일에게 유고라고 할 만한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 주변이 급속하게 무너져 내리는 조짐이 감지됐을 것이다.”
―9월 9일 이후 김정일이 결재한 서류를 본 적이 있나.
“우리의 사업 카운터 파트가 ‘장군님께 보고하겠다’, ‘장군님에게 결재를 받았다’고 하니까, 받았으려니 판단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일 이름을 걸고 거짓말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없다.”
―김정일의 측근, 혹은 고위층들이 동요하는 느낌은 없나.
“우리와 상시 접촉하는 당 간부가 어느 날 안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안 보이느냐. 일이 생겼느냐’고 물으면 싱긋이 웃을 뿐이다. 북한에서 숙청은 일상적인 일이다. 고위층들이 동요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당신이 접촉한 북한 고위층의 언행을 감안할 때 김정일은 어떤 상태라고 생각되나.
“김정일의 결재는 정상적으로 나오고 있다. 북한 고위층과 측근들이 동요하지 않고 있다. 측근들이 김정일과 대화를 나누고, 결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은 몸의 이상으로 거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김정일이 재일동포 한국인, 재중동포 한국인을 9월 9일 이후 접견했다는 설이 나오는데.
“평양에서 지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평양에 위치한 적십자병원은 해방 직후 舊(구) 소련의 원조에 의해 세워졌다. 한국전쟁 때 파괴됐다가, 1958년 다시 소련의 지원으로 복구됐다. 이 병원은 1970년대 들어 金日成(김일성)의 건강과 장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순환기연구소’ ‘신경연구소’ ‘노인학연구소’ 등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적십자병원은 김일성과 金正日(김정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연구소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최고위층을 치료하는 봉화진료소의 의사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북한 의료진의 미국 연수를 모니터링했던 우리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3명의 의사를 적성국인 미국에 연수차 파견한 것은 김정일의 심장마비 등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보인다”며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처럼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외부 심폐 소생기를 이용해 생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적십자병원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 세 명의 의료진은 김정일의 건강상태와 병세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보인다”고 했다. 다음은 우리 정보당국 관계자와의 대화.
―북한 의사들의 미국 연수가 어떻게 성사됐나.
“북한에서 어린이 결핵퇴치 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온 ‘유진 벨’ 재단이 다리를 놓았다. 북한으로서는 保安(보안)이 최우선 관심이었고, 그 점에서 ‘유진 벨’ 재단은 북한의 신뢰를 샀다. 미 국무부는 오랫동안 북한 문제에 관해 ‘유진 벨’ 재단의 자문을 받았다. 미국 정부는 ‘유진 벨’ 재단을 믿었기 때문에 북한 의사들의 미국 연수를 허용했다.”
―북한 의사들이 적성국인 미국에 건너오는 데 법적인 문제는 없었나.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을 통해 미국 비자를 신청한 것으로 안다. 미 국무부는 국제회의나 인도주의적인 모임에 참석하는 북한인들의 미국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왜 존스 홉킨스 병원인가.
“존스 홉킨스 병원이 심장병 분야에서 수준이 아주 높다. 유진 벨 재단의 ‘스티브 린튼’이 볼티모어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연수 인원은 의사 세 명이 전부였나.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 소속인 안모씨가 안내자 겸 감시인으로 왔다.”
―세 사람은 어떤 분야를 공부했나.
“뭉뚱그려서 얘기하자면 ‘응급 의료’다. 세 사람은 심장과 심폐 소생기 사용에 관심이 많았다. 2주일의 연수기간 중 1주일을 심장분야에 투입했다. ‘관상동맥조영술’, ‘관상동맥 성형술’에 대해 배웠다.”
―심폐 소생기는 어떤 장치인가.
“갑자기 심장이 멎었을 때 심장 대신 심장 역할을 해주는 보조장치다. 심장에 본격적인 조치를 하기 전 한두 시간을 벌 수 있다.”
―북한 의료진들이 왜 심폐 소생기에 관심이 높았다고 보나.
“마취제가 없어서 완전 마취가 안 된 상태에서 수술하는 경우가 북한에서는 다반사다. 심혈관계 질환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김정일의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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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 소생기를 다룬 의사 박모씨는 ‘독일에 연수를 다녀왔다’고 밝혔다. 세 명의 의사들이 극도로 말 조심을 했다. 미국 의료진들이 북한의 의료사정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의료진의 설명을 잘 알아들었다. 세 사람이 구 소련과 동구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안다.”
북한은 1999년 5월 ‘유진 벨’ 재단을 통해 미국産(산) 심폐 소생기를 획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산 심폐 소생기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북한 의료진의 존스 홉킨스 의대 연수를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진 벨 재단의 미국산 심폐 소생기 기증에 간여했던 한 인사와 만났다. 신원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그는 “북한이 김일성 사망(1994년 7월) 직후부터 ‘미국산 휴대용 심폐 소생기를 지원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다”고 기억했다. 다음은 익명의 인사와의 대화.
―심폐 소생기를 어디에 기증했나.
“평양 적십자병원이다. 조그만 휴대용 심폐 소생기와 내시경 수술기구 일체를 기증했다. 평양을 방문해서 의료기기를 전달한 시점은 1999년 5월로 기억하고 있다. 내시경 수술기구는 완비가 돼서 북한 의료진 앞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담낭 등을 떼내는 시술을 선보였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게임기 다루듯 수술을 하니까 북한 의료진들이 기겁을 하는 모습이었다. 휴대용 심폐 소생기는 부품을 완전히 다 가져가지 못해 나중에 공급해줬다.”
―적십자 병원이 김정일을 포함한 최고위층을 진료하는 의료기관인 것을 당시 알고 있었나.
“의료장비를 전달하고 나서 적십자병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입원실에 입원환자가 거의 없었고 수술실이 텅 비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평양의대 병원과 대조적이었다. 김정일을 위한 의료기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고위층을 위한 의료기관으로 짐작됐다. 우리가 접촉했던 북한 의료진은 ‘봉화진료소, 적십자병원, 남산병원의 의사는 토대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최고위층을 직접 접촉하면서 의료행위를 하기 때문에 충성심이 선발의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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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적십자병원의 수술실. |
“유진 벨 재단 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적십자병원 내과 의료진을 만났다. 독일에서 공부를 한 의사들이 심폐 소생기를 인수했다. 그 사람들은 작동법을 잘 알고 있었다. 미국산이 독일제보다 더 작지만 작동원리는 비슷하다. 북한이 의료진을 미국에 파견한 것은 미국이 심장내과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증한 심폐 소생기와 관련해서 북한측과 추가적인 접촉은 없었나.
“내시경 수술기는 자주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모품을 보내달라’고 난리를 쳤다. 심폐 소생기 소모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심폐 소생기는 특별한 경우를 위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우리측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저명한 심장 전문의들에게 ‘환자 차트’를 보내 의견을 구했다. 그의 설명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뉴욕의 북한 대표부를 통해 접촉한 미국 의료진들에게 심장 CT가 포함된 진료 차트를 보내 치료에 관해 자문을 구했다. 심장 부정맥을 전공한 미국 심장 내과의는 ‘북한 측으로부터 차트들이 인민군 고위 장성의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북한이 이렇게 치료에 공을 들이는 ‘장군’은 김일성, 김정일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게 우리의 추정이다. 김정일이 지난 8월 쓰러진 이후 미국이 김정일의 뇌졸중, 순환기계 질환에 대해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인 것은 이런 정보들을 축적해 온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의료진을 미국 병원에서 연수시키고, 미국의 심장 전문의들에게 ‘진료 차트’까지 보내면서 자문을 구한 것은 김정일의 적극적인 지시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리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의료진의 미국 연수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런 정보를 입수한 적은 없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며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金大中(김대중)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러시아 의료수준과 설비에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언급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원래 주석님께서는 서거하시기 4~5년 전에 심장질환을 일으켰던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소련 크렘린 병원이 제공한 페이스메이커(심장 박동기)를 설치했습니다. 미국제 페이스메이커는 (볼펜을 내보이면서) 요만한 것이고 성능이 대단히 우수한데 소련제는 두 배만한 것이었어요. 소련의 의학은 미국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이었죠.’ 이런 불신 때문에 김정일은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심장마비나 순환기 질환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진을 미국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 평양주재 서방 인사의 증언
“김정일, 결재 정상처리
언어 소통 가능하나 보행에 어려움”
金正日(김정일)이 지난 9월 9일 북한정부 수립 6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나타나지 않은 이후, 그의 신병에 대한 각종 첩보와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8월 14일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 회복 중’이라는 게 서방 정보기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은 김정일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선전전을 펼쳤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 5일 1면 머리기사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대학생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10월 11일 조선중앙TV는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김정일이 인민군 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를 시찰한 사진 10장을 방영했다.
김정일의 신병 이상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月刊朝鮮은 평양에 체류하고 있는 서방측 인사와 접촉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가공되지 않은 사실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는 “9월 9일 군사퍼레이드에 김정일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당일 새벽 급작스럽게 참석이 취소됐다”고 증언했다. 그의 증언은 ‘김정일이 8월 14일 뇌졸중으로 뇌수술을 받아 9월 9일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참석하지 않아 당초부터 인민군 군사퍼레이드 대신 노농적위대의 군사퍼레이드가 준비됐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이야기와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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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0일 북한노동당 창건 63주년을 맞아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는 평양시민들. 9월 9일 북한정권 창립 60주년 행사에 이어 이날도 김정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9월 9일 새벽 군사퍼레이드 연기 통보
9월 9일 행사에 대한 그의 증언이다.
“북한 당국이 행사 전날인 9월 8일 ‘군사 퍼레이드를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김정일 주최 만찬은 저녁 8시에 한다’고 했다. 그리고 외국 귀빈들에게는 아침 8시까지 지정된 장소에 나올 것을 통보했다. 이날 저녁 김정일이 주최하는 저녁 만찬 초청장을 외국 귀빈들에게 다 돌렸다.”
―당신도 초청장을 받았나.
“받았다.”
―언제 받았나.
“내 이야기를 몇 가지만 조합하면 북한 당국은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금방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초청장을 받았다는 것만 확인하겠다.”
―9월 9일 저녁 만찬이 김정일 주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장군님이 주최하는 만찬은 참석절차가 까다롭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말라’, ‘담배 라이터를 가져오지 말라’는 얘기가 붙어 있으면, 김정일이 주최하는 만찬임을 알게 된다.”
―9월 9일 군사 퍼레이드와 저녁 만찬에 김정일이 참석할 예정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런데 9월 9일 새벽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오늘 오전에 나오지 마라. 행사가 연기됐다. 오후 4시에 지정된 장소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저녁 만찬장에 카메라 담배 가져와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김일성 광장에 갔더니 인민군대가 안 나오고 노농적위대가 나왔다. 그 다음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새벽부터 행사장에 대기했던 북한 주민, 인민군, 노농적위대 사람들은 김정일 불참에 의아해하지 않았나.
“북한 주민들은 비판능력이 없다. 10시간 길거리에 모아 놓았다가 ‘집에 가라’고 하면 그냥 간다. 당 간부들조차 ‘우리는 명령을 수행할 능력만 있지, 건의할 능력은 없다’고 한다. ‘김정일 장군이 왜 오늘 안 나오셨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반동이자, 숙청대상이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김정일이 8월 14일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그래서 9월 9일 행사에 못 나왔다’고 얘기한다.
“나는 100%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내가 체험한 것만 얘기하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어떤 사고나 신병이상이 생겼다면 9월 9일 2~3일 전이라고 봐야 상식이다. 김정일이 뇌수술을 해서 몸이 아픈데 9월 9일 전날까지 외국 귀빈들에게 김정일 주최 만찬에 나오는지 확인했겠나.”
―평양에 머물면서 서방 정보기관들이 ‘김정일 뇌졸중 수술·병상통치’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북한 사람들에게 넌지시 그 사실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어떤 반응이었나.
“김정일을 만나볼 수 있는,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은 ‘사고로 다쳤다’, ‘발을 헛디뎌서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김정일이 김일성대학에서 축구경기를 관람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인가.
“노동신문과 관영방송이 똑같이 그 소식을 되풀이하니까 많은 북한 사람들이 그 얘기를 했다. 하지만 김정일이 김일성대학에 온 걸 봤다는 사람은 못 만났다. ‘장군님이 관람했다는 것은 TV로 관람했다는 얘기겠지’라고 했더니 반박을 하지 않고 웃더라.”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 행사장 분위기는 어땠나.
“김정일이 나온다는 기미가 전혀 없었고, 축제 분위기 없이 썰렁했다.”
―‘김정일이 병상통치를 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북측과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이 몇 가지 있는데 별다른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장군님이 결재를 하셨다’, ‘지침을 주셨다’고 내게 얘기한다. 김정일 주변, 그리고 북한 권력의 상층부가 ‘위기상황’에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정일이 일상적인 집무가 가능한 것으로 보이나.
“측근으로 부를 만한 사람들이 ‘장군님이 매일 업무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결재를 하고 계십니다’라고 한다. 내가 뇌졸중 뇌수술 얘기를 하면 ‘남쪽에서 개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화를 낸다.”
―김정일이 위급하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을 숨기기 위해 ‘쇼’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김정일이 위급하거나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쇼를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 북한에는 없다. 만약 그걸 지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김정일의 정권을 이어받을 사람이다. 김정일의 ‘有故(유고)’를 숨기거나, ‘숨기라’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김정일에게 유고라고 할 만한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 주변이 급속하게 무너져 내리는 조짐이 감지됐을 것이다.”
―9월 9일 이후 김정일이 결재한 서류를 본 적이 있나.
“우리의 사업 카운터 파트가 ‘장군님께 보고하겠다’, ‘장군님에게 결재를 받았다’고 하니까, 받았으려니 판단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일 이름을 걸고 거짓말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이 없다.”
―김정일의 측근, 혹은 고위층들이 동요하는 느낌은 없나.
“우리와 상시 접촉하는 당 간부가 어느 날 안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안 보이느냐. 일이 생겼느냐’고 물으면 싱긋이 웃을 뿐이다. 북한에서 숙청은 일상적인 일이다. 고위층들이 동요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당신이 접촉한 북한 고위층의 언행을 감안할 때 김정일은 어떤 상태라고 생각되나.
“김정일의 결재는 정상적으로 나오고 있다. 북한 고위층과 측근들이 동요하지 않고 있다. 측근들이 김정일과 대화를 나누고, 결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정일은 몸의 이상으로 거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김정일이 재일동포 한국인, 재중동포 한국인을 9월 9일 이후 접견했다는 설이 나오는데.
“평양에서 지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