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동창 朴槿惠와의 경쟁 걱정 없어. 경쟁은 협동하는 방법의 하나”
⊙ “현대건설 인수 않는다-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사들여 국내에 아파트 짓는 일은 없을 것”
⊙ “공직은 죽음과 같다. 공직을 할 기회가 오면 하는 것. 하지만 그걸 하겠다고 불나방처럼 쫓아다닐
생각은 없다”
鄭夢準
⊙ 1951년 부산 출생.
⊙ 중앙고·서울대 상대 졸업. 미국 MIT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현대중공업 회장 역임. 現 대한축구협회회장, 국제축구연맹(FIFA) 부위원장.
13·14·15·16·17·18대 국회의원.
⊙ 상훈: 〈체육훈장 맹호장(1989). 청룡장(1997),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 저서: 〈일본인에게 말한다〉 등.
취재지원 : 李永信 月刊朝鮮 인턴기자〈harry0127@ewhain.net〉
⊙ “현대건설 인수 않는다-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사들여 국내에 아파트 짓는 일은 없을 것”
⊙ “공직은 죽음과 같다. 공직을 할 기회가 오면 하는 것. 하지만 그걸 하겠다고 불나방처럼 쫓아다닐
생각은 없다”
鄭夢準
⊙ 1951년 부산 출생.
⊙ 중앙고·서울대 상대 졸업. 미국 MIT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 현대중공업 회장 역임. 現 대한축구협회회장, 국제축구연맹(FIFA) 부위원장.
13·14·15·16·17·18대 국회의원.
⊙ 상훈: 〈체육훈장 맹호장(1989). 청룡장(1997),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 저서: 〈일본인에게 말한다〉 등.
취재지원 : 李永信 月刊朝鮮 인턴기자〈harry0127@ewhain.net〉
“아버지(故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본주의는 호텔이라고. 호텔에 늘 손님이 꽉 차 있지만 손님이 계속 바뀌잖아요.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은 빠르고, 기술 발전이 빨라요. 언제 주인이 바뀔지 몰라요. 세계 1등 기업을 지키는 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죠.”
“아버지가 하루는 그래요. ‘원수를 의식하고 사는 것보다 경쟁자를 의식하고 사는 게 더 불행하다’고. 아버지는 일생 동안 경쟁 속에서 사신 분이잖아요. 하지만 경쟁을 두려워하시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경쟁을 두려워하는 건 경쟁 상대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죠. 포스코의 경쟁상대는 신일본제철이 아니라 플라스틱 회사라고 하잖아요.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철로가 나올지 모르니까.”
“아침에 산책하다가 아버지께 ‘대통령 선거가 복잡하다. 정치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아버님이 ‘야 인마 그러니까 니가 준비를 열심히 해야지’ 하세요. 내가 그때(1992년) 아버님 연세라면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버님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기업가는 정치를 잘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건 좋다고 생각했어요.”
鄭夢準(정몽준·57)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인터뷰는 7월 11일과 7월 1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7월 11일 인터뷰 도중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한국의 50대 여성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전갈과 함께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소집이 통보됐기 때문이다. 못다한 이야기를 다음날 아침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계속했다. 그래서 인터뷰 시간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났다.
대한민국 수출 1등 공신은 鄭周永
정 위원은 까다로운 질문을 피해가기 위해, 중요한 현안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다. 아버지 鄭周永(정주영)은 그에게 아직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정 위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요즈음 정주영 창업주의 생전 강연 영상과 생전 모습을 기업 홍보에 쓰고 있다.
―月刊朝鮮 2007년 2월호 별책부록이 ‘수출 3000억 달러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역업 종사자 201명을 상대로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을 설문조사 했는데, 1위가 정주영, 2위가 李秉喆(이병철), 3위가 朴正熙(박정희)였습니다.
“제가 月刊朝鮮 별책부록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수출을 위해) 아버지가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울산에 조선소를 지어놓았다는 것은 보통 비전이 아니죠. 현대중공업 기업광고에서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지만, 백사장에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배를 건조했잖아요. 제가 현대중공업 분들에게 ‘우리가 배 만드는 경험을 30년 이상 쌓았으니, 우리도 백사장에 조선소 지으면서 배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농담을 해요. 다들 ‘절대 못한다’고 하죠. 지금도 못하는 걸 30년 전에 하신 거예요."
정몽준 최고위원은 현재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8개 기업群(군)을 거느리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다. 정 위원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10.8%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분 94.9%를,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 지분의 41.09%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3개 주력기업의 2007년 매출은 21조 원, 순익은 2조 7300억 원이다. 재벌그룹의 자산 총액 기준(공기업 포스코 제외)으로 7위다. 정 위원은 지난 3월, 소유한 현대중공업 주식의 배당금으로 621억 원을 받았다. 그는 한국 부자 랭킹 1위에 올랐다.
―정 위원이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은 게 1982년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성격이 찬찬한 애는 전자를 시키고, 대범하게 해보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조선을 맡겼다”고 했는데요.
“제일 큰형(정몽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아들들을 대우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제가 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제가 쓴 석사학위 논문을 읽어보시고 ‘잘 썼다. 열심히 하면 노벨 경제학상 받겠다’고 좋아하셨어요. 세상 물정을 가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셔서 사장자리를 맡겼는지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워낙 기반을 잘 닦아 놓아서 세계 1등 造船(조선) 기업이 유지되고 있는 거죠.”
“아버지는 이상주의자”
―기업을 물려받은 2세들이 다 세계 1등 기업을 지키는 건 아니죠.
“2세들은 나쁜 일만 안 하면 선대가 이루어 놓은 걸 지킬 수 있어요. 쓸데없이 나쁜 일을 하니까 망치는 겁니다.”
―가까이서 본 아버지 정주영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버지는 이상주의자였어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죠.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두 시간 동안 읽었으니까. 그래서 아산재단을 만들고, 아산병원을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만들었잖아요. 세속적인 사람들은 세상 일에 별 관심이 없어요. 아버지는 세상 전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大選(대선)에 출마했고. 아버지는 서구식 개인주의 사상이 강했어요. ‘일본에서는 나라를 위해 벚꽃처럼 펴서 벚꽃처럼 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좋지 않다. 국가는 개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개인이 없는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항상 하셨어요.”
―서당에서 漢學(한학)을 공부하신 분이 어떻게 서구적 개인주의를 體得(체득)한 걸까요.
“아버님이 서당에서 3년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떼면서 그때 배우신 것 같아요. 아버지가 ‘공자보다 맹자 글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맹자는 백성을 위해 폭군을 제거하는 걸 옹호했잖아요. 아버지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에게 거만하게 구는 걸 정말 싫어하셨어요. ‘위에 있는 사람은 개인이 잘 나서 위에 있는 게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직위에 있는 거다’고 말하셨죠.”
―陰龍基(음용기) 전 현대종합상사 사장이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정주영 회장이 한번 화를 내면 어찌나 무서운지 회사 임직원들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머 감각을 빠뜨리셨어요. 아버지가 말년에 몸이 불편하셨을 때 거지같은 ‘왕자의 亂(난)’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이상한 기사가 나와서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시고 상의를 좀 하세요’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시면서 저한테 그러세요. ‘몽준아, 내가 너하고 상의하겠다고 한 약속을 잊어버리면 어떡하냐’ 그 와중에 그런 농담을 하시는 거예요.”
현대 시절 李明博 대통령과 교유 없어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한 시기와 정 위원이 현대중공업의 사장고문으로 일한 시기가 겹칩니다. 아무래도 그 시절에 마주칠 기회가 많았겠습니다.
“만난 기억이 거의 없어요. 식사를 한 적은 더더욱 없고요. 제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이명박 후보와 아침식사를 같이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현대의 두 주력기업을 맡고 있었는데 그렇게 교유가 없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만나고 상의하는 관계였지, 저하고는 특별히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연배 차이도 나고요.”
―최근 항간에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오너인 정주영 회장의 지시만 이행했지, 인사고 중요 결정이고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결정이 우유부단하다’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너무 가혹한 얘기 아닌가요. 이명박 대통령의 현대그룹 경력은 서울시장이 되는 데 도움이 됐고, 서울시장 때의 업적으로 대통령이 된 거죠.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잘 할 것이다’는 응답이 아직 60%쯤 됩니다.”
―정 위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울산대의 鄭正佶(정정길) 총장이 대통령실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정 위원께서 대통령에게 천거했습니까.
“정정길 총장 본인은 절대로 안 하겠다고 그랬어요. 전임인 柳佑益(류우익) 실장이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권유를 한 걸로 압니다. 류 실장과 정 총장이 아주 친한 사이랍니다. 제가 대통령실장을 천거할 힘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천거했다고 기사를 써주셔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우리나라 조선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우리 조선산업의 세계적인 경쟁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15년 이상 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FPSO’로 불리는 해상구조물(부유식 원유 생산 저장설비)은 한 척에 20억 달러가 넘습니다. 흔히 조선을 노동기술 집약산업이라고 부르죠. 지금 중국에서 한국 조선기술을 빼 가려다 가끔 적발이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설계 기술이 아니라 공정관리 기술입니다. 요즘은 기술을 돈 주고 사고 팔잖아요. 이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관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만 남은 거죠.”
“신규 투자를 할 때 나와 상의”
―현대중공업 측은 “정몽준 의원은 2002년 이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대주주 지위만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인사와 경영방향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습니까.
“일상적인 것은 알아서 처리하고, 신규투자를 할 때 제게 상의를 합니다. 신규투자는 수익이 불확실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요. 현대중공업이 직ㆍ간접적으로 고용효과를 발휘하는 게 몇 십 만 명이 돼요. 협력회사 가족까지 합치면 100만 명이 현대중공업에 의존해서 사는 거죠. 그 사람을 위해 최소한 10년, 20년 계획은 세워야죠. 현대중공업을 이끄는 분들이 전문가지만, 전문가들은 전문가의 오류가 있습니다. 그 분들이 가끔 물어보세요. 저 역시 신규투자 분야에 관심이 많고요.”
―현대중공업이 최근 정관을 바꿔 농업투자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연해주에 식량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입니까.
“나라 전체로 보면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에너지 식량 자급을 고민했어야 했는데 우선순위에서 너무 밀렸어요.”
―재계에 ‘현대중공업이 KCC와 손을 잡고 현대건설을 인수할 것이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여러 차례 ‘인수 안 한다’고 했는데 자꾸 쓰데요. 플랜트 산업이 ‘해외건설의 꽃’이라고 하는데 현대중공업은 지금도 실질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큰 해외 건설 회사예요. 바다 위에 시추장비와 원유 정제시설까지 갖춘 플랜트를 짓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매출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48% 정도이고 나머지가 해외 플랜트 수출입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사들여서 국내에 아파트 짓는 일은 없을 겁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을 하나로 묶더라도 사업이 중복되는 분야는 없다고 봐도 되겠군요.
“김 부장도 ‘현대중공업이 현대의 嫡統(적통)을 잇기 위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고 한다’고 쓰시려는 거죠(웃음).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공직은 죽음과 같은 것’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만약 정 위원께서 대통령이 되면 현대그룹에서 연이어 대통령이 나오게 되는 모양세가 될 텐데. 국민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을까요.
“예일대학 출신이 계속 미국 대통령이 되고 있는데 미국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나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가 대통령이 될 때의 政經(정경)유착 가능성은 당연히 우려할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중공업 매출의 98%가 수출입니다. 국내 관공서 출입할 일이 별로 없어요. 현대중공업이 짓는 해상플랜트 한 척이 20억 달러입니다. 그런 사업에 정부가 지원해 줄 일이 없어요. 이건 정말 가정입니다만, 제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현대중공업에 무슨 특혜를 줄 수 있겠습니까.”
―다음 大選(대선)에 도전할 준비는 하고 계십니까.
“로마 시대의 문필가 세네카가 한 말이 있어요. ‘공직은 죽음과 같다’ 죽음이란 살다 보면 언제가 오는 것인데, 피하려고 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죽음을 맞으러 가는 것도 어리석다는 얘기예요. 공직을 할 기회가 오면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걸 하겠다고 불나방처럼 쫓아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정 위원께선 2002년 ‘국민통합 21’을 창당해서 대선에 도전했습니다. 그 출마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도 출마할 생각이 없었다. 9월 초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등이 나왔다. 현역 의원이 출마를 안 하는 것도 무책임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더군요. 설마 이렇게 출마를 결심한 것은 아니겠죠.
“사실이에요. 우리 보좌관들은 제발 그 얘기하지 말라고 해요. 제 출마 여부를 놓고 거대 정당으로부터 음해, 인신공격, 흑색선전을 많이 당했어요. 조ㆍ중ㆍ동도 날 안 도와주고 ‘李會昌(이회창) 대세론’에 편승했잖아요. 도가 좀 넘는다고 생각했어요. 관훈토론회에서 오라고 해서 갔는데 이건 토론회가 아니에요. 그때 아버님 건강이 나빠지시고 ‘왕자의 난’ 같은 나쁜 소식만 돌고 있을 때예요. 그걸 계속 물어봐요. 제가 ‘나는 회사 일로 나온 사람이 아닌데 왜 회사 일만 물어보느냐’고 했더니, 패널들이 화를 내면서 그 얘기만 묻더라고요.”
―1992년 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도와 대선에 도전했고, 10년 만에 본인이 직접 대선에 나섰는데 그 정도의 각오와 준비밖에 없었습니까.
“1980년대 초반에 신문들이 시커먼 제목으로 재벌들을 ‘족벌경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1985년에 현대중공업 사장직을 버리고 국회의원으로 나선 겁니다. 평생 욕먹고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게 공직으로 뛰어든 계기였어요. 제가 국회의원 6선입니다. 국회의원 20년이면 대한민국 憲政史(헌정사)의 3분의 1을 담당했던 셈이에요. 이것만 해도 엄청난 명예죠. 반드시 대통령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을 억지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법률안 발의 건수, 회의 참석률이 저조해서 시민단체들에게 지적을 받아왔죠.
“국회의원들이 당선되고서 國益(국익)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선서하잖아요. 저는 월드컵 유치나 축구협회 일이 똑같이 국익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드컵 유치하려 전쟁 중인 남예멘과 북예멘을 방문했습니다. 진짜 목숨 걸고 다녔습니다. 이걸 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한 일입니다.”
지난 대선 때 盧武鉉과 공동정부 구상
―2002년 대선 때 盧武鉉(노무현) 후보와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뤘습니다. 여론조사라는 게 오차한계가 있고, 설문방식이나 조사기관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더구나 公黨(공당)의 후보들이 여론조사로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내놓는 것은 대의정치, 정당정치에 반합니다. 미국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은 정 위원이 그런 제안에 선뜻 동의한 걸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검증할 절차나 제도가 없었어요. 事後的(사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그때 ‘공동정부를 운영하겠다’고 얘기를 했고, 저쪽에서 林采正(임채정) 의원(후일 국회의장 역임)이 대표로 나와서 ‘공동정부 정책협의’를 했습니다. 양당이 합의 가능한 새 정부의 정강정책을 뽑아낸 거죠. 그 점에서는 ‘정당정치 대의정치에 반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그때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협력에 대처한다’는 항목을 냈는데, 저쪽에서 대선 공약에 특정국가를 지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해서 폐기한 일이 있습니다.”
―양당 사이에 ‘DJP(金大中-金鍾泌) 연대’에 준하는 공동정부를 운영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사실입니까.
“기자가 묻듯이 물어봐야지 검사가 묻듯이 물어보면 안 되죠.(웃음) ‘DJP 공동정부’를 할 때는 국무총리를 김종필 씨가 하고 정부 각료를 반씩 나눈다는 약속까지 했죠. 그러나 우리는 자리를 가지고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국무총리를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어요. ‘DJP’ 수준은 아니었지만 공동정부를 한다는 약속은 있었어요. 그쪽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가만히 있으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니까, 지지 철회를 했죠.”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았습니까.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집사람이 ‘당신이 그렇게 하더라도 이번에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거예요’라고 해요.”
―부인께서는 어떤 근거로 그런 예상을 하셨답니까.
“여자 특유의 직감이겠죠. 그렇다고 저쪽에서 ‘공동정부 약속’을 깨는데 내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었죠.”
盧武鉉 대통령은 상식을 깨부순 사람
―노무현 후보가 선거 이틀 전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정권 생각 없다. 그런 약속 한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결별의 단초가 된 것입니까.
“노무현 후보가 그런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누가 그 기사를 보여줬어요. 그것보다는 그 분이 행동하고 말하는 데서 ‘신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 정 위원이 내세웠던 결별의 명분은 노무현 후보가 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리겠다”는 발언이었죠.
“노무현 후보가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 동맹관과 안보관을 단적으로 보여줬어요.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나는 작전 때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더군요.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이 ‘당신은 열린 문에 노크를 하고 있다. 전시 작전권은 아무 때나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2009년에 전시작전권을 넘겨주겠다’고 하니까 우리 국방부가 놀라서 2012년으로 미뤄놓은 것 아닙니까. 우리 주변의 강대국 중에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한미 동맹으로 경제발전의 울타리가 마련됐고요. 미국과 동맹을 잘 유지해야 하는 것은 쉬운 상식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그 상식을 깨부쉈어요.”
―‘노무현 정권 5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큰 수혜자입니다. 그런데 이걸 다 부정했어요. 그 분이 우리의 근ㆍ현대사를 ‘汚辱(오욕)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오욕이라면 다 나쁘다는 뜻 아닙니까. 굳이 표현한다면 영욕의 역사지, 오욕의 역사가 될 수는 없죠. 자기부정이 너무 심했어요. 우리의 역사가 전부 수치스럽다는 얘기를 국정책임자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지난번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2002년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로 좌파 정권 10년 연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害黨(해당)행위를 했다’는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았죠.
“그때 저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공개 경쟁하고 있었잖아요. 한나라당 당원이 아니었으니까 ‘해당행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이 거셌고, 저는 나름대로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때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어야 하느냐.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은 변화를 원했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변화를 대변하는 인물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게 정말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한나라당이 저를 영입할 때 문제제기를 했어야죠. 제 선택으로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 죄송한 일이죠.”
―지난 총선 지역구를 울산에서 서울 동작을로 옮겨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鄭東泳(정동영) 후보를 두 배 가까운 득표율로 꺾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당내 기반 마련과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위한 정몽준의 승부수’라는 해설기사를 내놓았는데.
“농담이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당에서 하라고 해서 받아들인 거예요. 저를 영입한 후 전국위원회를 열어 최고위원을 시켜놓고 공천을 확정시켜주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하고 저를 울산 동구의 복수 후보로 올려 놓았잖습니까. 그 시간이 일주일 가까이 길어지면서 슬슬 기분 나빠지더라고요. 이게 장난인가 뭔가, 상당히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李方鎬(이방호) 사무총장을 한 대 때려 줄 수도 없고.”
당에서 원해 서울로 지역구 옮겨
―저는 정 위원이 대선 가도를 달리기 위해 지역을 던지고 서울로 왔다는 얘기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月刊朝鮮의 정보력이 이렇게 떨어지는 줄 몰랐습니다.(웃음) 최고위원 회의할 때 제 옆자리에 앉던 金武星(김무성) 鄭亨根(정형근) 최고위원이 공천에서 탈락했잖아요. 朴熺太(박희태) 대표는 자기가 공천에서 떨어질 걸로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이방호 총장이 최고위원들 공천은 확정시켜주지 않으면서, 공천심사위 심의 결과를 의결하라고 해요. 제가 ‘당신들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당의 대표 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 멤버들 공천은 안 주느냐. 공천심사위 결과 의결을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의결을 거부하시면 의결정족수가 안 되니 도와달라’고 해요. 국회의원을 그만해야 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출마를 해 달라’고 해요. 그래서 서울에 출마한 겁니다.”
―흔히들 “꽃과 열매를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고 얘기합니다. 꽃을 꺾으면 열매를 볼 수 없다는 거죠.
“과수원 하는 사람들은 꽃도 즐기고 열매도 즐기잖아요.”
돈과 권력과 명예
―돈과 명예, 권력을 한꺼번에 가질 수 없다는 비유입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권력과 감투로 인식되는 한 한국정치가 바뀔 수 없다’고 쓴 글을 봤어요. 대통령직이 권력이라고 생각하면 ‘한꺼번에 갖지 말라’고 하겠지만,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없겠죠.”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아들, 세계 1등 기업 현대중공업의 대주주, 국제축구연맹의 부회장으로 한국 축구를 세계 4강에 끌어올리는 명예를 차지한 정 위원에게 국민들이 대통령을 할 기회까지 줄 걸로 생각합니까.
“꽃과 열매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정치 권력은 목욕탕의 수증기와 같다’는 표현은 많이 들었어요.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는 거죠. 국민들이 대통령 자리를 일하는 자리로 생각해서, ‘당신이 현대중공업 경영을 잘했고, 월드컵을 성공시켰으니 국가도 한번 경영해 봐라’고 하면 하는 거죠. 세네카의 말처럼 공직이 죽음처럼 저를 찾아오면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찾아오지도 않는 ‘죽음’을 향해 뛰어다니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번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맞섰던 정 위원은 ‘서울 시내버스 요금 70원’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지자가 쓰라고 보내줬다는 교통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가, 그 카드가 어른이 쓸 수 없는 청소년용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내 버스요금은 교통카드를 이용할 경우, 기본이 900원이다.
―기사가 있는 자가용을 탄 게 언제부터입니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1982년에 현대중공업 사장이 되셨으니까 그때부터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다닌 것 아닙니까.
“그렇죠. 서른 살 때부터네요. 아버지 덕에 화려한 직장생활을 한 거죠. 하지만 제가 1985년에 미국 유학을 갔을 때는 제 손으로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버스 타고 요금을 내 본 적이 있습니까.
“버스는 타 봤습니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여럿이 같이 타니까 내가 돈을 직접 내지는 않았죠. 보좌진이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신문에 배당금 기사 나올 때 부자라고 느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두 번째 출마했을 때 상품에 달린 ‘바 코드’를 묻는 질문에 우물쭈물 했다고 합니다.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 나서서 “우리 남편은 슈퍼에 가본 지 30년이 넘었다”고 했답니다. 미국 언론과 유권자들 역시 ‘슈퍼마켓에도 안 가는 정치인이 서민의 어려움을 알겠느냐’는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1977년에 미국 유학 가서 컬럼비아 대학과 MIT에서 공부할 때 저는 슈퍼마켓에 가는 걸 즐겼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미국 간다고 집에서 꿀을 싸주곤 했어요. 미국 슈퍼마켓에 가니까 여러 종류의 꿀이 수북이 쌓여 있어요.”
―‘한국 제일의 부자인 정 위원이 서민의 아픔을 알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지난번 총선 때 정동영 후보가 귀가 따갑게 한 얘기입니다. ‘너는 서민이 아니니까 서민 생활을 모른다.’ 그런 단순한 이분법으로 편을 가르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역구에서 만난 한 분은 제게 이런 얘기를 해요. ‘나는 정치인이 서민 서민 하는 게 정말 싫다. 서민을 중산층이 되게 만드는 게 정치다. 너희는 계속 서민 하라고 하면서 나한테 표를 찍으라고 하는 정치인을 미워한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다 어려웠습니다. 30년 사이에 대기업도 생기고 큰 부자도 생긴 거죠.”
―대한민국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인데 언제 내가 부자라는 걸 느낍니까.
“신문에 내 배당금 기사가 나올 때죠. 저는 그 돈을 본 적도 없고, 신문에 나오는 거 보면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하죠.”
―지난 3월 621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습니다. 배당금을 어떻게 쓰고 관리합니까.
“제가 아산정책연구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경희궁 옆에 있는 서울고등학교 옛 부지를 이미 구입했습니다. 내년 가을까지 완공이 되는데 거기에 비용을 많이 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헤리티지, 브루킹스 같은 공공정책 연구소가 없잖아요. 그런 걸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또 하나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장학재단을 만들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제 지역구인 동작이 서울에서 저소득층이 제일 많은 지역이랍니다. 비너스라는 내의의 원단을 가져와 임가공을 해서 돌려주는 작은 공장이 지역구에 있습니다. 직원이 100명쯤 돼요. 여성 노조위원장이 일주일에 하루 9시간 일하는데 월급이 130만 원이랍니다. 아들이 둘인데 하나는 고등학생 하나는 중학생이래요. 두 아이 학비가 사교육비 포함해 100만 원이 든답니다. 아이들 중고등학교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중고등학생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려고 해요.”
朴槿惠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 권유
―벌써부터 다음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안에서 정 위원과 朴槿惠(박근혜) 전 대표가 일전을 벌일 거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와는 장충초등학교 동기생이죠. 함께 테니스도 친 걸로 압니다.
“박근혜 대표가 어깨를 다쳐서 테니스를 못 친 지 6~7년이 됐을 걸요.”
―종종 연락은 하십니까.
“한 2년쯤 전인가 박근혜 대표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서울시장 선거에 한번 나가라고.”
―거절하셨습니까.
“李洪九(이홍구) 전 총리하고 상의를 했어요. 그때가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이었어요. 이홍구 총리가 ‘월드컵에 전념해야지 서울시장은 무슨 소리냐’고 해서 접었습니다.”
―박근혜 대표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상황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경쟁을 ‘협력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해져요. 우리 아버님도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매번 ‘금메달 따야지 내가 금메달을 못 따면 큰일이다’라고 생각하면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어요.”
―정 위원은 6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민자당 국회의원을 잠시 한 걸 빼면 대부분 무소속으로 있었습니다. 지금 한나라당이 親朴(친박)의원 전원 복당으로 민자당처럼 의석 182석의 거대 여당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거대 여당의 함정은 뭘까요.
“행정부 견제를 잘 해야죠. 여당이니까 행정부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회의 임무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이니까 그걸 잘해야죠. 쇠고기 문제만 해도 그래요. 이명박 정부가 韓·美(한미) 간에 기본적인 합의가 이뤄졌고, 입법사항이 아니라고 해서 한나라당이나 국회와 상의하지 않고 처리했잖아요.”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여론조사 지지율은 46.8%로 압도적이었지만, 대의원 득표율은 3위에 그쳤습니다. 다음 대선 출마를 목표로 한다면 아무래도 당내 세력기반을 확충하는 게 급한 일 아닙니까.
“1인 2표제지만 대의원들이 저를 많이 찍어주신 거예요. 親李(친이) 친박 후보가 두 명씩 나왔잖아요. 중앙당에서 사실상 공천을 주니까 국회의원들이 ‘누구 덕분에 공천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공천 받아준 사람한테 마음으로 고맙게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 사람을 따라다닐 필요는 없죠. 국민들이 그런 일하라고 뽑아준 게 아니잖아요. 공천 도와준 사람 따라서 계파정치 하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 한나라당이 특단의 조치로 계파정치를 막지 않으면 점점 어려운 길로 빠져들 겁니다.”
―올해 연말에 대한축구협회장 자리를 내놓을 계획으로 압니다.
“16년을 했으니까요.”
―대한축구협회장에서 물러나면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자리는 어떻게 됩니까.
“계속 해야죠. 지난번 호주에서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와 총회가 있었는데 집행위원회만 참석하고 왔어요. FIFA 회장단 선거는 4년에 한 번씩 있습니다. 제 선거구는 아시아지역입니다. 총회에 참석하고 밥 먹고 사교하는 일이 중요한데, 앞으로 좀 줄이는 수밖에 없죠. 블래터 FIFA 회장이 ‘정몽준 부회장은 국내 정치에 전념하고, 축구는 나한테 맡겼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얘기했다는데, 그래도 계속 할 생각입니다.” ●
사진 : 이태훈
“아버지가 하루는 그래요. ‘원수를 의식하고 사는 것보다 경쟁자를 의식하고 사는 게 더 불행하다’고. 아버지는 일생 동안 경쟁 속에서 사신 분이잖아요. 하지만 경쟁을 두려워하시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경쟁을 두려워하는 건 경쟁 상대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죠. 포스코의 경쟁상대는 신일본제철이 아니라 플라스틱 회사라고 하잖아요.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철로가 나올지 모르니까.”
“아침에 산책하다가 아버지께 ‘대통령 선거가 복잡하다. 정치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아버님이 ‘야 인마 그러니까 니가 준비를 열심히 해야지’ 하세요. 내가 그때(1992년) 아버님 연세라면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버님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기업가는 정치를 잘 못한다’는 편견을 깨는 건 좋다고 생각했어요.”
鄭夢準(정몽준·57)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인터뷰는 7월 11일과 7월 1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7월 11일 인터뷰 도중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한국의 50대 여성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했다’는 전갈과 함께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소집이 통보됐기 때문이다. 못다한 이야기를 다음날 아침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계속했다. 그래서 인터뷰 시간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났다.
대한민국 수출 1등 공신은 鄭周永
정 위원은 까다로운 질문을 피해가기 위해, 중요한 현안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다. 아버지 鄭周永(정주영)은 그에게 아직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정 위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요즈음 정주영 창업주의 생전 강연 영상과 생전 모습을 기업 홍보에 쓰고 있다.
―月刊朝鮮 2007년 2월호 별책부록이 ‘수출 3000억 달러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역업 종사자 201명을 상대로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을 설문조사 했는데, 1위가 정주영, 2위가 李秉喆(이병철), 3위가 朴正熙(박정희)였습니다.
“제가 月刊朝鮮 별책부록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수출을 위해) 아버지가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울산에 조선소를 지어놓았다는 것은 보통 비전이 아니죠. 현대중공업 기업광고에서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지만, 백사장에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배를 건조했잖아요. 제가 현대중공업 분들에게 ‘우리가 배 만드는 경험을 30년 이상 쌓았으니, 우리도 백사장에 조선소 지으면서 배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농담을 해요. 다들 ‘절대 못한다’고 하죠. 지금도 못하는 걸 30년 전에 하신 거예요."
정몽준 최고위원은 현재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8개 기업群(군)을 거느리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다. 정 위원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10.8%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의 지분 94.9%를,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 지분의 41.09%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3개 주력기업의 2007년 매출은 21조 원, 순익은 2조 7300억 원이다. 재벌그룹의 자산 총액 기준(공기업 포스코 제외)으로 7위다. 정 위원은 지난 3월, 소유한 현대중공업 주식의 배당금으로 621억 원을 받았다. 그는 한국 부자 랭킹 1위에 올랐다.
―정 위원이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은 게 1982년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성격이 찬찬한 애는 전자를 시키고, 대범하게 해보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조선을 맡겼다”고 했는데요.
“제일 큰형(정몽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아들들을 대우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제가 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제가 쓴 석사학위 논문을 읽어보시고 ‘잘 썼다. 열심히 하면 노벨 경제학상 받겠다’고 좋아하셨어요. 세상 물정을 가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셔서 사장자리를 맡겼는지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워낙 기반을 잘 닦아 놓아서 세계 1등 造船(조선) 기업이 유지되고 있는 거죠.”
“아버지는 이상주의자”
―기업을 물려받은 2세들이 다 세계 1등 기업을 지키는 건 아니죠.
“2세들은 나쁜 일만 안 하면 선대가 이루어 놓은 걸 지킬 수 있어요. 쓸데없이 나쁜 일을 하니까 망치는 겁니다.”
―가까이서 본 아버지 정주영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버지는 이상주의자였어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죠.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두 시간 동안 읽었으니까. 그래서 아산재단을 만들고, 아산병원을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만들었잖아요. 세속적인 사람들은 세상 일에 별 관심이 없어요. 아버지는 세상 전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大選(대선)에 출마했고. 아버지는 서구식 개인주의 사상이 강했어요. ‘일본에서는 나라를 위해 벚꽃처럼 펴서 벚꽃처럼 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좋지 않다. 국가는 개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개인이 없는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항상 하셨어요.”
―서당에서 漢學(한학)을 공부하신 분이 어떻게 서구적 개인주의를 體得(체득)한 걸까요.
“아버님이 서당에서 3년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떼면서 그때 배우신 것 같아요. 아버지가 ‘공자보다 맹자 글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맹자는 백성을 위해 폭군을 제거하는 걸 옹호했잖아요. 아버지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에게 거만하게 구는 걸 정말 싫어하셨어요. ‘위에 있는 사람은 개인이 잘 나서 위에 있는 게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직위에 있는 거다’고 말하셨죠.”
―陰龍基(음용기) 전 현대종합상사 사장이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정주영 회장이 한번 화를 내면 어찌나 무서운지 회사 임직원들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유머 감각을 빠뜨리셨어요. 아버지가 말년에 몸이 불편하셨을 때 거지같은 ‘왕자의 亂(난)’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이상한 기사가 나와서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시고 상의를 좀 하세요’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시면서 저한테 그러세요. ‘몽준아, 내가 너하고 상의하겠다고 한 약속을 잊어버리면 어떡하냐’ 그 와중에 그런 농담을 하시는 거예요.”
현대 시절 李明博 대통령과 교유 없어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한 시기와 정 위원이 현대중공업의 사장고문으로 일한 시기가 겹칩니다. 아무래도 그 시절에 마주칠 기회가 많았겠습니다.
“만난 기억이 거의 없어요. 식사를 한 적은 더더욱 없고요. 제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이명박 후보와 아침식사를 같이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현대의 두 주력기업을 맡고 있었는데 그렇게 교유가 없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만나고 상의하는 관계였지, 저하고는 특별히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연배 차이도 나고요.”
―최근 항간에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오너인 정주영 회장의 지시만 이행했지, 인사고 중요 결정이고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모든 결정이 우유부단하다’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너무 가혹한 얘기 아닌가요. 이명박 대통령의 현대그룹 경력은 서울시장이 되는 데 도움이 됐고, 서울시장 때의 업적으로 대통령이 된 거죠.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잘 할 것이다’는 응답이 아직 60%쯤 됩니다.”
―정 위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울산대의 鄭正佶(정정길) 총장이 대통령실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정 위원께서 대통령에게 천거했습니까.
“정정길 총장 본인은 절대로 안 하겠다고 그랬어요. 전임인 柳佑益(류우익) 실장이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권유를 한 걸로 압니다. 류 실장과 정 총장이 아주 친한 사이랍니다. 제가 대통령실장을 천거할 힘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제가 천거했다고 기사를 써주셔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우리나라 조선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우리 조선산업의 세계적인 경쟁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15년 이상 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FPSO’로 불리는 해상구조물(부유식 원유 생산 저장설비)은 한 척에 20억 달러가 넘습니다. 흔히 조선을 노동기술 집약산업이라고 부르죠. 지금 중국에서 한국 조선기술을 빼 가려다 가끔 적발이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설계 기술이 아니라 공정관리 기술입니다. 요즘은 기술을 돈 주고 사고 팔잖아요. 이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관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만 남은 거죠.”
“신규 투자를 할 때 나와 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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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매출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48% 정도이고 나머지가 해외 플랜트 수출입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사들여서 국내에 아파트 짓는 일은 없을 겁니다.” |
“일상적인 것은 알아서 처리하고, 신규투자를 할 때 제게 상의를 합니다. 신규투자는 수익이 불확실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요. 현대중공업이 직ㆍ간접적으로 고용효과를 발휘하는 게 몇 십 만 명이 돼요. 협력회사 가족까지 합치면 100만 명이 현대중공업에 의존해서 사는 거죠. 그 사람을 위해 최소한 10년, 20년 계획은 세워야죠. 현대중공업을 이끄는 분들이 전문가지만, 전문가들은 전문가의 오류가 있습니다. 그 분들이 가끔 물어보세요. 저 역시 신규투자 분야에 관심이 많고요.”
―현대중공업이 최근 정관을 바꿔 농업투자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연해주에 식량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입니까.
“나라 전체로 보면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에너지 식량 자급을 고민했어야 했는데 우선순위에서 너무 밀렸어요.”
―재계에 ‘현대중공업이 KCC와 손을 잡고 현대건설을 인수할 것이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여러 차례 ‘인수 안 한다’고 했는데 자꾸 쓰데요. 플랜트 산업이 ‘해외건설의 꽃’이라고 하는데 현대중공업은 지금도 실질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큰 해외 건설 회사예요. 바다 위에 시추장비와 원유 정제시설까지 갖춘 플랜트를 짓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매출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48% 정도이고 나머지가 해외 플랜트 수출입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사들여서 국내에 아파트 짓는 일은 없을 겁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을 하나로 묶더라도 사업이 중복되는 분야는 없다고 봐도 되겠군요.
“김 부장도 ‘현대중공업이 현대의 嫡統(적통)을 잇기 위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고 한다’고 쓰시려는 거죠(웃음).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공직은 죽음과 같은 것’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만약 정 위원께서 대통령이 되면 현대그룹에서 연이어 대통령이 나오게 되는 모양세가 될 텐데. 국민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을까요.
“예일대학 출신이 계속 미국 대통령이 되고 있는데 미국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나요?”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가 대통령이 될 때의 政經(정경)유착 가능성은 당연히 우려할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중공업 매출의 98%가 수출입니다. 국내 관공서 출입할 일이 별로 없어요. 현대중공업이 짓는 해상플랜트 한 척이 20억 달러입니다. 그런 사업에 정부가 지원해 줄 일이 없어요. 이건 정말 가정입니다만, 제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현대중공업에 무슨 특혜를 줄 수 있겠습니까.”
―다음 大選(대선)에 도전할 준비는 하고 계십니까.
“로마 시대의 문필가 세네카가 한 말이 있어요. ‘공직은 죽음과 같다’ 죽음이란 살다 보면 언제가 오는 것인데, 피하려고 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죽음을 맞으러 가는 것도 어리석다는 얘기예요. 공직을 할 기회가 오면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걸 하겠다고 불나방처럼 쫓아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정 위원께선 2002년 ‘국민통합 21’을 창당해서 대선에 도전했습니다. 그 출마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도 출마할 생각이 없었다. 9월 초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등이 나왔다. 현역 의원이 출마를 안 하는 것도 무책임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더군요. 설마 이렇게 출마를 결심한 것은 아니겠죠.
“사실이에요. 우리 보좌관들은 제발 그 얘기하지 말라고 해요. 제 출마 여부를 놓고 거대 정당으로부터 음해, 인신공격, 흑색선전을 많이 당했어요. 조ㆍ중ㆍ동도 날 안 도와주고 ‘李會昌(이회창) 대세론’에 편승했잖아요. 도가 좀 넘는다고 생각했어요. 관훈토론회에서 오라고 해서 갔는데 이건 토론회가 아니에요. 그때 아버님 건강이 나빠지시고 ‘왕자의 난’ 같은 나쁜 소식만 돌고 있을 때예요. 그걸 계속 물어봐요. 제가 ‘나는 회사 일로 나온 사람이 아닌데 왜 회사 일만 물어보느냐’고 했더니, 패널들이 화를 내면서 그 얘기만 묻더라고요.”
―1992년 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도와 대선에 도전했고, 10년 만에 본인이 직접 대선에 나섰는데 그 정도의 각오와 준비밖에 없었습니까.
“1980년대 초반에 신문들이 시커먼 제목으로 재벌들을 ‘족벌경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1985년에 현대중공업 사장직을 버리고 국회의원으로 나선 겁니다. 평생 욕먹고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게 공직으로 뛰어든 계기였어요. 제가 국회의원 6선입니다. 국회의원 20년이면 대한민국 憲政史(헌정사)의 3분의 1을 담당했던 셈이에요. 이것만 해도 엄청난 명예죠. 반드시 대통령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을 억지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법률안 발의 건수, 회의 참석률이 저조해서 시민단체들에게 지적을 받아왔죠.
“국회의원들이 당선되고서 國益(국익)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선서하잖아요. 저는 월드컵 유치나 축구협회 일이 똑같이 국익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월드컵 유치하려 전쟁 중인 남예멘과 북예멘을 방문했습니다. 진짜 목숨 걸고 다녔습니다. 이걸 하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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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대표가 2002년 12월 13일 대전시 중구 문화동 서대전광장에서 열린 거리유세에서 손을 들어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
지난 대선 때 盧武鉉과 공동정부 구상
―2002년 대선 때 盧武鉉(노무현) 후보와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뤘습니다. 여론조사라는 게 오차한계가 있고, 설문방식이나 조사기관에 따라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더구나 公黨(공당)의 후보들이 여론조사로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내놓는 것은 대의정치, 정당정치에 반합니다. 미국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은 정 위원이 그런 제안에 선뜻 동의한 걸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검증할 절차나 제도가 없었어요. 事後的(사후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그때 ‘공동정부를 운영하겠다’고 얘기를 했고, 저쪽에서 林采正(임채정) 의원(후일 국회의장 역임)이 대표로 나와서 ‘공동정부 정책협의’를 했습니다. 양당이 합의 가능한 새 정부의 정강정책을 뽑아낸 거죠. 그 점에서는 ‘정당정치 대의정치에 반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그때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협력에 대처한다’는 항목을 냈는데, 저쪽에서 대선 공약에 특정국가를 지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해서 폐기한 일이 있습니다.”
―양당 사이에 ‘DJP(金大中-金鍾泌) 연대’에 준하는 공동정부를 운영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사실입니까.
“기자가 묻듯이 물어봐야지 검사가 묻듯이 물어보면 안 되죠.(웃음) ‘DJP 공동정부’를 할 때는 국무총리를 김종필 씨가 하고 정부 각료를 반씩 나눈다는 약속까지 했죠. 그러나 우리는 자리를 가지고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공개적으로 ‘국무총리를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어요. ‘DJP’ 수준은 아니었지만 공동정부를 한다는 약속은 있었어요. 그쪽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가만히 있으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니까, 지지 철회를 했죠.”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았습니까.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집사람이 ‘당신이 그렇게 하더라도 이번에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거예요’라고 해요.”
―부인께서는 어떤 근거로 그런 예상을 하셨답니까.
“여자 특유의 직감이겠죠. 그렇다고 저쪽에서 ‘공동정부 약속’을 깨는데 내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었죠.”
盧武鉉 대통령은 상식을 깨부순 사람
―노무현 후보가 선거 이틀 전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정권 생각 없다. 그런 약속 한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결별의 단초가 된 것입니까.“노무현 후보가 그런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누가 그 기사를 보여줬어요. 그것보다는 그 분이 행동하고 말하는 데서 ‘신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 정 위원이 내세웠던 결별의 명분은 노무현 후보가 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리겠다”는 발언이었죠.
“노무현 후보가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 동맹관과 안보관을 단적으로 보여줬어요.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나는 작전 때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더군요.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이 ‘당신은 열린 문에 노크를 하고 있다. 전시 작전권은 아무 때나 가져가라’고 했답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2009년에 전시작전권을 넘겨주겠다’고 하니까 우리 국방부가 놀라서 2012년으로 미뤄놓은 것 아닙니까. 우리 주변의 강대국 중에 한반도에 영토적 야심이 없는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한미 동맹으로 경제발전의 울타리가 마련됐고요. 미국과 동맹을 잘 유지해야 하는 것은 쉬운 상식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그 상식을 깨부쉈어요.”
―‘노무현 정권 5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큰 수혜자입니다. 그런데 이걸 다 부정했어요. 그 분이 우리의 근ㆍ현대사를 ‘汚辱(오욕)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오욕이라면 다 나쁘다는 뜻 아닙니까. 굳이 표현한다면 영욕의 역사지, 오욕의 역사가 될 수는 없죠. 자기부정이 너무 심했어요. 우리의 역사가 전부 수치스럽다는 얘기를 국정책임자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지난번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2002년 노무현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로 좌파 정권 10년 연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害黨(해당)행위를 했다’는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았죠.
“그때 저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공개 경쟁하고 있었잖아요. 한나라당 당원이 아니었으니까 ‘해당행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이 거셌고, 저는 나름대로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때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어야 하느냐.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은 변화를 원했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변화를 대변하는 인물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게 정말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한나라당이 저를 영입할 때 문제제기를 했어야죠. 제 선택으로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 죄송한 일이죠.”
―지난 총선 지역구를 울산에서 서울 동작을로 옮겨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鄭東泳(정동영) 후보를 두 배 가까운 득표율로 꺾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당내 기반 마련과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위한 정몽준의 승부수’라는 해설기사를 내놓았는데.
“농담이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당에서 하라고 해서 받아들인 거예요. 저를 영입한 후 전국위원회를 열어 최고위원을 시켜놓고 공천을 확정시켜주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하고 저를 울산 동구의 복수 후보로 올려 놓았잖습니까. 그 시간이 일주일 가까이 길어지면서 슬슬 기분 나빠지더라고요. 이게 장난인가 뭔가, 상당히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李方鎬(이방호) 사무총장을 한 대 때려 줄 수도 없고.”
당에서 원해 서울로 지역구 옮겨
―저는 정 위원이 대선 가도를 달리기 위해 지역을 던지고 서울로 왔다는 얘기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月刊朝鮮의 정보력이 이렇게 떨어지는 줄 몰랐습니다.(웃음) 최고위원 회의할 때 제 옆자리에 앉던 金武星(김무성) 鄭亨根(정형근) 최고위원이 공천에서 탈락했잖아요. 朴熺太(박희태) 대표는 자기가 공천에서 떨어질 걸로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이방호 총장이 최고위원들 공천은 확정시켜주지 않으면서, 공천심사위 심의 결과를 의결하라고 해요. 제가 ‘당신들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당의 대표 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 멤버들 공천은 안 주느냐. 공천심사위 결과 의결을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의결을 거부하시면 의결정족수가 안 되니 도와달라’고 해요. 국회의원을 그만해야 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출마를 해 달라’고 해요. 그래서 서울에 출마한 겁니다.”
―흔히들 “꽃과 열매를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고 얘기합니다. 꽃을 꺾으면 열매를 볼 수 없다는 거죠.
“과수원 하는 사람들은 꽃도 즐기고 열매도 즐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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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9월 도쿄국립경기장 VIP석에서 한일전을 관람하고 있는 신한국당 이홍구 고문과 무소속 박태준 의원,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 김대중 국민회의총재,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左로부터). |
돈과 권력과 명예
―돈과 명예, 권력을 한꺼번에 가질 수 없다는 비유입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권력과 감투로 인식되는 한 한국정치가 바뀔 수 없다’고 쓴 글을 봤어요. 대통령직이 권력이라고 생각하면 ‘한꺼번에 갖지 말라’고 하겠지만,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없겠죠.”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아들, 세계 1등 기업 현대중공업의 대주주, 국제축구연맹의 부회장으로 한국 축구를 세계 4강에 끌어올리는 명예를 차지한 정 위원에게 국민들이 대통령을 할 기회까지 줄 걸로 생각합니까.
“꽃과 열매 이야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정치 권력은 목욕탕의 수증기와 같다’는 표현은 많이 들었어요.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는 거죠. 국민들이 대통령 자리를 일하는 자리로 생각해서, ‘당신이 현대중공업 경영을 잘했고, 월드컵을 성공시켰으니 국가도 한번 경영해 봐라’고 하면 하는 거죠. 세네카의 말처럼 공직이 죽음처럼 저를 찾아오면 받아들여야죠. 하지만 찾아오지도 않는 ‘죽음’을 향해 뛰어다니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번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맞섰던 정 위원은 ‘서울 시내버스 요금 70원’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지자가 쓰라고 보내줬다는 교통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가, 그 카드가 어른이 쓸 수 없는 청소년용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내 버스요금은 교통카드를 이용할 경우, 기본이 900원이다.
―기사가 있는 자가용을 탄 게 언제부터입니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1982년에 현대중공업 사장이 되셨으니까 그때부터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다닌 것 아닙니까.
“그렇죠. 서른 살 때부터네요. 아버지 덕에 화려한 직장생활을 한 거죠. 하지만 제가 1985년에 미국 유학을 갔을 때는 제 손으로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버스 타고 요금을 내 본 적이 있습니까.
“버스는 타 봤습니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여럿이 같이 타니까 내가 돈을 직접 내지는 않았죠. 보좌진이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신문에 배당금 기사 나올 때 부자라고 느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두 번째 출마했을 때 상품에 달린 ‘바 코드’를 묻는 질문에 우물쭈물 했다고 합니다.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가 나서서 “우리 남편은 슈퍼에 가본 지 30년이 넘었다”고 했답니다. 미국 언론과 유권자들 역시 ‘슈퍼마켓에도 안 가는 정치인이 서민의 어려움을 알겠느냐’는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1977년에 미국 유학 가서 컬럼비아 대학과 MIT에서 공부할 때 저는 슈퍼마켓에 가는 걸 즐겼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미국 간다고 집에서 꿀을 싸주곤 했어요. 미국 슈퍼마켓에 가니까 여러 종류의 꿀이 수북이 쌓여 있어요.”
―‘한국 제일의 부자인 정 위원이 서민의 아픔을 알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지난번 총선 때 정동영 후보가 귀가 따갑게 한 얘기입니다. ‘너는 서민이 아니니까 서민 생활을 모른다.’ 그런 단순한 이분법으로 편을 가르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역구에서 만난 한 분은 제게 이런 얘기를 해요. ‘나는 정치인이 서민 서민 하는 게 정말 싫다. 서민을 중산층이 되게 만드는 게 정치다. 너희는 계속 서민 하라고 하면서 나한테 표를 찍으라고 하는 정치인을 미워한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다 어려웠습니다. 30년 사이에 대기업도 생기고 큰 부자도 생긴 거죠.”
―대한민국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인데 언제 내가 부자라는 걸 느낍니까.
“신문에 내 배당금 기사가 나올 때죠. 저는 그 돈을 본 적도 없고, 신문에 나오는 거 보면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하죠.”
―지난 3월 621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습니다. 배당금을 어떻게 쓰고 관리합니까.
“제가 아산정책연구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경희궁 옆에 있는 서울고등학교 옛 부지를 이미 구입했습니다. 내년 가을까지 완공이 되는데 거기에 비용을 많이 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헤리티지, 브루킹스 같은 공공정책 연구소가 없잖아요. 그런 걸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또 하나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장학재단을 만들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제 지역구인 동작이 서울에서 저소득층이 제일 많은 지역이랍니다. 비너스라는 내의의 원단을 가져와 임가공을 해서 돌려주는 작은 공장이 지역구에 있습니다. 직원이 100명쯤 돼요. 여성 노조위원장이 일주일에 하루 9시간 일하는데 월급이 130만 원이랍니다. 아들이 둘인데 하나는 고등학생 하나는 중학생이래요. 두 아이 학비가 사교육비 포함해 100만 원이 든답니다. 아이들 중고등학교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중고등학생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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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3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 대표 최고위원에 선출된 박희태 대표(右)를 축하하는 정몽준 최고위원. |
朴槿惠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 권유
―벌써부터 다음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안에서 정 위원과 朴槿惠(박근혜) 전 대표가 일전을 벌일 거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와는 장충초등학교 동기생이죠. 함께 테니스도 친 걸로 압니다.
“박근혜 대표가 어깨를 다쳐서 테니스를 못 친 지 6~7년이 됐을 걸요.”
―종종 연락은 하십니까.
“한 2년쯤 전인가 박근혜 대표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서울시장 선거에 한번 나가라고.”
―거절하셨습니까.
“李洪九(이홍구) 전 총리하고 상의를 했어요. 그때가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이었어요. 이홍구 총리가 ‘월드컵에 전념해야지 서울시장은 무슨 소리냐’고 해서 접었습니다.”
―박근혜 대표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상황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경쟁을 ‘협력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해져요. 우리 아버님도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매번 ‘금메달 따야지 내가 금메달을 못 따면 큰일이다’라고 생각하면 좋은 기록을 낼 수가 없어요.”
―정 위원은 6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민자당 국회의원을 잠시 한 걸 빼면 대부분 무소속으로 있었습니다. 지금 한나라당이 親朴(친박)의원 전원 복당으로 민자당처럼 의석 182석의 거대 여당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거대 여당의 함정은 뭘까요.
“행정부 견제를 잘 해야죠. 여당이니까 행정부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회의 임무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이니까 그걸 잘해야죠. 쇠고기 문제만 해도 그래요. 이명박 정부가 韓·美(한미) 간에 기본적인 합의가 이뤄졌고, 입법사항이 아니라고 해서 한나라당이나 국회와 상의하지 않고 처리했잖아요.”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여론조사 지지율은 46.8%로 압도적이었지만, 대의원 득표율은 3위에 그쳤습니다. 다음 대선 출마를 목표로 한다면 아무래도 당내 세력기반을 확충하는 게 급한 일 아닙니까.
“1인 2표제지만 대의원들이 저를 많이 찍어주신 거예요. 親李(친이) 친박 후보가 두 명씩 나왔잖아요. 중앙당에서 사실상 공천을 주니까 국회의원들이 ‘누구 덕분에 공천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공천 받아준 사람한테 마음으로 고맙게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 사람을 따라다닐 필요는 없죠. 국민들이 그런 일하라고 뽑아준 게 아니잖아요. 공천 도와준 사람 따라서 계파정치 하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 한나라당이 특단의 조치로 계파정치를 막지 않으면 점점 어려운 길로 빠져들 겁니다.”
―올해 연말에 대한축구협회장 자리를 내놓을 계획으로 압니다.
“16년을 했으니까요.”
―대한축구협회장에서 물러나면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자리는 어떻게 됩니까.
“계속 해야죠. 지난번 호주에서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와 총회가 있었는데 집행위원회만 참석하고 왔어요. FIFA 회장단 선거는 4년에 한 번씩 있습니다. 제 선거구는 아시아지역입니다. 총회에 참석하고 밥 먹고 사교하는 일이 중요한데, 앞으로 좀 줄이는 수밖에 없죠. 블래터 FIFA 회장이 ‘정몽준 부회장은 국내 정치에 전념하고, 축구는 나한테 맡겼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얘기했다는데, 그래도 계속 할 생각입니다.” ●
사진 : 이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