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체제’를 바꿀 때가 왔다―내년 중에 개헌안 내놓을 생각”
⊙ “對정부 질문, 국정감사 제도 큰 문제. 개헌한다면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 “李明博 대통령은 세미나형 리더십. 매번 결정이 늦어지고, 시간 관리가 안 돼”
⊙“李明博 대통령은 불도저가 아니라 너무 신중한 스타일”
⊙ 대통령이 ‘朴槿惠 총리’ 기용 생각 없었던 듯
⊙ 李明博 대통령이 李會昌 총재 자주 만나야
金炯旿
⊙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1975~1978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청와대 공보과장, 정무과장, 정무비서관, 국무총리실 정무비서관.
⊙ 14~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한나라당 李明博 대통령 후보 선대위 일류국가비전위원장 역임.
⊙ 저서 : <엿듣는 사람들-김형오의 도청리포트> 등.
⊙ “對정부 질문, 국정감사 제도 큰 문제. 개헌한다면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 “李明博 대통령은 세미나형 리더십. 매번 결정이 늦어지고, 시간 관리가 안 돼”
⊙“李明博 대통령은 불도저가 아니라 너무 신중한 스타일”
⊙ 대통령이 ‘朴槿惠 총리’ 기용 생각 없었던 듯
⊙ 李明博 대통령이 李會昌 총재 자주 만나야
金炯旿
⊙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1975~1978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청와대 공보과장, 정무과장, 정무비서관, 국무총리실 정무비서관.
⊙ 14~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한나라당 李明博 대통령 후보 선대위 일류국가비전위원장 역임.
⊙ 저서 : <엿듣는 사람들-김형오의 도청리포트> 등.
부산 영도에서 5選(선)을 기록한 金炯旿(김형오·61) 의원이 국회의장에 사실상 내정됐다. 원내 과반 의석을 확보한 한나라당은 지난 6월 2일 당내 경선을 통해 김 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145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투표에 참가한 가운데 김형오 의원이 102표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大選(대선) 때 李明博(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총괄한 ‘일류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을 지낸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 일찌감치 “국회의장을 맡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직책을 제안받았지만 모두 固辭(고사)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난 그는 18대 의원 전원에게 보낼 ‘선진국회의 모습’이라는 자료집을 검토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장 후보자 김형오’ 명의의 책자는 국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6월 5일로 예정됐던 18대 院(원) 구성(국회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18대 국회의원들 임기는 시작됐지만 ‘18대 국회’는 아직 문을 열지 못했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이 서울 도심을 뒤덮은 ‘거리의 민주주의’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은 국회 등원 대신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18대 국회 院(원) 구성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金大中(김대중) 정부 출범 때 한나라당이 金鍾泌(김종필) 총리 인준을 174일 만에 해 주었습니다. 盧武鉉 정부 때는 출범 1년 만에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죠. 민주당이 길거리로 나간 것은 한나라당이 부렸던 ‘몽니’를 그대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14대 국회 때 두 달 정도 원 구성이 안 된 게 국회 공전의 원조인 셈이죠. 15대 때도 원 구성이 늦어져 당시 최연장자인 김허남 의원이 임시 의장을 일주일간 한 적도 있었지요. 이런 일 때문에 새 국회가 개회되면 바로 원 구성이 되도록 법령화까지 시켰는데…. 여야가 서로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최근 10명의 ‘親 朴槿惠(친 박근혜)’ 국회의원 영입을 결정했습니다. 한나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전부 확보할 수 있는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게 18대 원 구성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요.
“親朴(친박) 의원들의 경우 한나라당 입당을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에 임했던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여권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야당 의원을 빼내 가는 것과는 다르지요. 친박 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이 원 구성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걸로 생각합니다.”
전자 민주주의인가, 디지털 포퓰리즘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진 촛불시위가 한 달을 넘겼습니다. 네티즌과 길거리 시위대가 매일 청와대의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협상을 하는 형국입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代議(대의) 민주주의, 議會(의회) 민주주의의 위기를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의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라는 게 몇 백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최고의 정치 제도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의견 표출과 커뮤니케이션으로 대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제가 1999년에 이걸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논문의 결론은 ‘전자 민주주의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지면서 대의 민주주의가 종지부를 찍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논문이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절감을 했습니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건 분명합니다. 이번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는 정치학의 새로운 연구 테마가 될 겁니다.”
―소설가 李文烈(이문열) 씨는 촛불시위에 대해 ‘디지털 포퓰리즘’이라고 평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우려한 게 衆愚(중우)정치 아닙니까?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민주주의란 제도가 至善(지선)은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에서 그나마 제일 낫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문열 씨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제1 야당 의원들까지 의회를 버리고 ‘거리의 민주주의’에 합류했는데.
“정치권의 무력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야당 스스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 신뢰가 떨어져 있다고 봤기 때문에 장외로 나간 것이죠. 정치인들이 거리로 나설수록 국회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은 며칠 전 “정권퇴진 요구는 헌정질서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국회가 정말 무서운 곳이다. 18대 국회를 잘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당을 향해 “院內(원내)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의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시는 거죠. 원로들이 그런 말씀을 해 줘서 다행스럽습니다. ‘국회를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간다’는 게 18대 국회에서 야당의 一聲(일성)이었고 여당은 그걸 비난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정치권 현실이 그렇습니다. 야당이 국회로 복귀할 명분을 찾고 있다고 봅니다.”
“改憲 논의 시작하겠다”
―국회의장이 되면 반드시 해야겠다고 결심한 과제가 있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改憲(개헌)이고 하나는 국회 운영제도 개선 작업입니다.”
―개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뜻인가요.
“의장에 취임하면 의장 직속 개헌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연구작업을 바로 시작하려 합니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원 포인트’(한 가지만 처리하자는 뜻) 개헌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는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로서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개헌 필요성에 대해 그 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은 정략적이라고 봤습니다. 권력구조만 바꾸는 개헌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권력구조 변화에는 여러 가지 사회·경제·문화적인 변화들이 수반됩니다. 권력 구조만 고치겠다는 건 너무 안이한 접근이죠. 제가 그때 여야 원내대표 모임에서 ‘권력구조만 바꾸는 것은 정략적이다. 18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는 결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1987년 체제’를 바꿀 때가 왔습니다. 1987년의 헌법 개정은 대통령 직선제를 회복하고, 장기집권을 막았다는 점에서 큰 업적을 이뤘습니다. 이제 21세기에 맞게 통일·인권·사회·문화와 관련된 문제를 국가의 기본법에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권력구조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저는 4년 중임제에 반대합니다. 물론 국민이 원한다면 거기로 가야죠. 하지만 개헌논의의 중심을 ‘권력구조’로 단순화시키는 데는 반대입니다.”
―그럼 내각제 개헌까지 포함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검토하자는 건가요.
“대통령이 40만 표 차이로 당선되든, 500만 표 차이로 이기든 승자가 모든 걸 갖는 ‘승자 독식 구조’입니다. 권력을 나눌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해 본질적 검토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각제나 이원 집정부제, 대통령제를 하더라도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해 권력을 분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합니다.”
―개헌 시한은 언제로 잡고 있습니까.
“제가 의장으로 있는 18대 국회 전반기 2년이 적기라고 봅니다. 18대 후반기가 되면 대선 주자들이 나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각 주자 간 이해관계가 얽혀 개헌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한 전문가 검토와 공청회 등을 통해 내년 중에 개헌안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18대 국회와 이명박 대통령 임기에 변화가 있을 수 있나요.
“이명박 대통령이나 18대 국회 임기를 보장하면서 충분히 개헌을 할 수 있을 겁니다.”
18대 국회에서 고쳐야 할 과제들
―국회 운영과 제도는 어떤 부분을 고칠 생각입니까.
“대표적인 게 對(대)정부 질문입니다. 오전에 국회의원들이 대정부 질문을 하고 나면 오후에 총리와 장관들이 답변을 합니다. 오후 개회시간이 다가오면 ‘의원님들은 빨리 본회의장에 참석해 달라’고 독려하는 국회 구내방송이 되풀이됩니다. 본회의 대정부 질문 제도를 없애는 것까지 고려할 겁니다.”
―의원들의 대정부 질문을 ‘국회의원 웅변대회’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정부 질문 제도가 있는 나라는 별로 없어요. 국정감사 역시 문제입니다. 국정감사가 있는 9월과 10월은 국정 마비 또는 행정 공백 기간입니다. 짧은 기간에 국정감사를 휘몰아서 하니까 의원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한 건’을 하려고 과잉경쟁을 합니다. 의원들이 보도자료를 돌리면 기자들이 점검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대로 보도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국정감사가 왜곡됩니다.”
―감사원의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로 가져오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거론됐지만, 실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기능과 조직에 헌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개헌을 한다면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옮기는 것을 고려할 겁니다. 일단 국회에 ‘감사청구권’이 있습니다. 감사청구권을 ‘감사요구권’으로 개정해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강화해야죠.”
―의장으로서 맞을 첫 번째 난제가 ‘한미 FTA’ 인준입니다. 야당의 반발이 거셀 경우,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겁니까.
“직권상정은 국회 운영에서 예외적인 조치입니다. 함부로 쓰지 말라는 뜻이지요. 예외적인 조치를 써야 할 때가 있겠지만, 제가 국회의장이 되면 직권상정할 일이 없을 거예요. 대화와 막후 조율로 일을 풀겠습니다.”
―최근 노무현 정부에서 차관을 지낸 분을 만났습니다. 이분은 盧泰愚(노태우) 청와대, 金大中(김대중)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공무원 출신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정권은 처음 봤다. 인수위가 전리품 노획장 같더라. 인수위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한 건’ 하려고 나댔다”고 했습니다.
“이번 인수위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건 ‘오버’한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했으니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의욕이 앞섰어요. 정권 인수만 하면 될 걸 새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액션 플랜’까지 얘기하는 바람에 국민들께서 당혹스러우셨을 겁니다.”
“이명박 후보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인수위 사람들이 그렇게 ‘오버’하는 걸 왜 못 말렸습니까.
“제가 뒤에서 많이 조정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인수위에 온 사람 중 상당수가 총선에 출마할 사람들이어서 통제가 잘 안 됐습니다. 언론에 적극적으로 노출하려고 했고, 검토 중에 있는 설익은 과제들이 알려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장관·청와대 수석 인사가 인수위 끝날 때까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전 정권의 업무를 인수받을 당사자가 없이 제대로 된 인수인계가 이뤄질 수 있습니까.
“인수위 업무와 인사가 이원화됐습니다. 인수위는 인수위대로 굴러가고, 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뽑는 작업이 별도로 진행된 거죠.”
―이명박 대통령이 시종일관 압도적 1위로 선거전을 치렀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선거 끝날 때까지 장관 후보와 수석을 결정하고, 이 사람들을 인수위에 배치시켰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밖에 계시는 분들은 그렇게 볼 수 있겠지요.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나서 ‘일류국가 비전위원장’을 맡아 선거 캠프에 들어가 보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랐어요. 사람이 적었으면 인사 문제가 빨리 정리됐을 텐데 주변에 몰려든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늦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수위 부위원장은 어떤 인연으로 맡게 됐습니까.
“이 대통령과는 1992년 14대 국회 때 초선의원으로 여러 자리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을 뿐 특별한 인연은 없습니다.”
―14대 국회 때 만난 이명박 대통령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무슨 일이든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소한 사물이나 사안에 대해서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어요.”
―지난 大選(대선) 때 선대위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일하셨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니 어떤 유형의 지도자던가요.
“나쁘게 말하면 시간 관념이 없더군요. 회의가 한두 시간 길어지는 게 보통이었어요.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예컨대 이 대통령은 보고를 듣고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토론을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세미나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이러다 회의가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예요. 과거에 李會昌(이회창) 총재를 모시고 회의를 해 보면, 이 총재는 서류형입니다. 보고서를 읽는 속도가 빠를뿐더러 바로 핵심을 파악합니다.”
“불도저가 아니라 너무 신중한 스타일”
―세미나형 리더십의 장단점은 뭡니까.
“장점은 어떤 사안에 대해 완벽히 숙지할 수 있는 거죠. 문제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면서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대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단점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회사 CEO 출신이라고 ‘불도저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정반대예요. 너무 신중한 스타일입니다. 인사문제는 특히 더 그런 것 같고요. 요즈음 촛불집회로 ‘인사쇄신’ 압박이 가중됐지만, 쇄신안이 안 나오잖아요. 이 대통령의 이런 성격이 작용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제가 이명박 대통령을 시장 시절, 대통령 후보 시절에 모두 네 차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특히 수치에 강해서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와 복구된 청계천변 중 어느 것이 더 넓으냐’는 물음에 곧바로 ‘청계천이 더 넓다’는 답을 내놓더군요.
“웬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보 입력이 많이 돼 있습니다만, 정치와 정치판에 대해서는 입력이 잘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김 의원께서는 인수위 부위원장 시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초대 대통령실장은 중량감 있는 정무형 인사가 적합하다”고 얘기했습니다. 柳佑益(류우익) 대통령실장은 이런 기준과 맞지 않는 인물 아닌가요.
“류 실장 인선은 저도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인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인사를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제 얘기가 맞았던 거죠.”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예전의 정태수 한보 회장처럼 ‘머슴론’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내가 다 안다. 비서실장이나 장관은 내 심부름이나 잘하면 된다’는 생각 말입니다.
“제가 많은 대통령과 총리를 모셨는데, 역대 어느 대통령이든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 걸 던졌습니다. ‘적당히 사람 쓰고 대충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다만 교수들을 청와대나 정부의 고위직에 데려다 쓰는 건 재고해야죠. 교수를 굳이 쓰겠다면 차관보 정도로 기용해서 잘하면 차관, 장관으로 기용해야죠. 교수들의 지식은 한정된 분야에 국한됩니다. 그 지식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장관과 수석 인사를 단행하자마자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淸貧(청빈)은 바라지 않더라도, 淸富(청부)는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1970년대 후반 1980년대에 걸쳐 부동산을 통해 엄청난 富(부)가 형성됐습니다.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서민층으로 떨어졌어요. 당시 웬만한 월급 받는 사람이면 부동산 투자에 많게든 적게든 다 뛰어들었습니다. 집을 서너 채만 사고 팔아도 재산이 평생 버는 월급보다 많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드물어진 거죠. 웬만한 재산 가진 사람들 청문회에 나가면 ‘위장전입’이 다 나올 겁니다.”
재산은 강남 집 한 채 포함 10억 원대
―모 청와대 수석은 “고등학교 다닐 때 부모가 내 이름으로 위장 전입을 해서 부동산 구입한 걸 몰랐다”고 변명했습니다. 부모가 자식 명의로 일찌감치 부동산을 사들여 상속세나 양도소득세를 피해 갔다는 얘기인데, 많은 국민들이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들의 도덕성이 이것밖에 안 되나” 절망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관직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국민들이 민감해하는 게 재산, 병역, 교육 문제입니다. 국민이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고 생각되면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죠. 선진국처럼 어린 시절부터 공직에 나서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를 해야죠.”
―유독 이명박 정부에,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 했을 사람들이 대거 포진한 이유가 뭔가요.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야당이니까 정치자금을 함부로 쓰면서 정치를 할 수 없었죠. 이 대통령 주변에 자기 돈 써 가며 이 대통령을 도왔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서울 강남의 집 한 채를 포함해서 10억 원대입니다.”
―대통령의 친형인 李相得(이상득) 의원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朴永俊(박영준) 前(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鄭斗彦(정두언) 의원으로부터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두언 의원의 주장에 공감하십니까.
“박영준 비서관이 인수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제가 잘 모릅니다. 인사는 엄밀하고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私心(사심)이 인사를 좌우해선 안 됩니다.”
김 의원은 全斗煥(전두환) 청와대에서 정무과장(1983~1986), 盧泰愚(노태우) 정부에서는 총리실 정무비서관(1986~1990)에 이어 청와대에서 정무비서관(1990년)을 지냈다. 한나라당이 탄핵 역풍을 맞은 2004년 3월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아 ‘천막당사’를 전전하며 당 살림을 1년간 했다. 그때 한나라당 대표가 朴槿惠(박근혜) 의원이었다.
―가까이서 본 박근혜 대표는 어떤 스타일의 정치인입니까.
“이분이 애국심이랄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고 태도가 단정합니다. 제가 사무총장 시절 박 전 대표와 함께 있는 사진이 TV에 많이 나갔어요. 집사람이 저보고 그래요. ‘박근혜 대표는 저렇게 단정한데 당신은 왜 그리 자세가 엉망이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고, 다리를 꼬고….’ 박 대표는 자세뿐 아니라 생각까지 단정합니다. 뒷거래와 모략, 이합집산 같은 정치공학을 싫어하죠. 자기가 한번 뱉은 말에 대해 책임지려는 생각이 강합니다. 닳고 닳은 정치세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朴槿惠 李明博은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달라
―‘박근혜 대표는 토론이 없는 사람’이란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기 지식을 쌓아 갑니다. 박 대표는 어떤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 그 문제에 집중해서 깊이 생각하는 스타일이죠.”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만나고 나면 ‘총리직을 제안했다’, ‘그런 얘기 들은 적도 없다’는 등 서로 다른 얘기가 나옵니다.
“두 분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맺고 끊는 게 분명하지 않은 스타일이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정반대지요.”
―촛불집회로 야기된 정국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박근혜 의원에게 총리직을 맡기자는 제안이 여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직을 제안한다고 박 대표가 덜컥 받을 수 있을까요. 박 전 대표가 국무총리를 맡으려면 여러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만일 대통령이 제게 총리직을 제안한다면, 저는 ‘국무총리에게 어디까지 역할을 맡기시겠습니까’ 하고 조건을 확인할 겁니다. ‘박근혜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 총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까.
“朴槿惠 의원이 총리를 맡더라도 청와대의 대통령실장과 정무수석, 총리실의 총리비서실장과 행정조정실장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 채널이 확보돼야 합니다. 이런 ‘파이프 라인’이 구축돼야 ‘총리가 越權(월권)을 한다’, ‘대통령이 총리를 핫바지로 만든다’는 감정 충돌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제가 청와대와 총리실의 정무비서관을 다 해 봤습니다. 총리가 막강하면 장관들이 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가지만, 총리가 만만하면 청와대와 직거래합니다.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힌 중대한 문제에 대해 총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보증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청와대와 총리실이 사사건건 충돌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국무총리에 기용할 뜻이 있기는 한 겁니까.
“정말 총리로 쓸 생각이 있다면 사전에 조율해야 할 쟁점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총리 기용을 위한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면, 언론에 이런 식으로 보도되진 않는다고 봅니다.”
―자유선진당 李會昌(이회창) 총재가 두 번이나 청와대 면회실에 가서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는데 못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4월 9일 총선이 끝나고 곧바로 이회창 총재를 만났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문을 활짝 열고 주요 정파의 지도자들을 가급적 많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는 형식이나 절차가 좀 더 유연해져야죠.”
결점보다는 장점을 본다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게 청와대 정무수석 아닌가요.
“政務(정무)의 首長(수장)은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정무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정부조직 개편 때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당시 저에게 ‘민주당 유인태 의원한테 전화할까’ 이러셔서 제가 만류했습니다. 며칠 뒤에 보니까 유인태 의원에게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쇼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진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본적인 정무 마인드가 있는 만큼, 조금만 방향을 틀면 잘해 나갈 걸로 믿습니다.”
―닮았으면 좋겠다 싶은 인생의 師表(사표)가 되는 분이 있습니까.
“강영훈 전 국무총리를 인간적으로 좋아합니다. 사심 없는 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 청빈함이 공직에 나서는 사람들의 거울입니다. 사무총장으로 모셨던 박근혜 전 대표의 단정함, 정치공학적인 술수를 싫어하는 면, 이명박 대통령의 일을 즐기는 태도는 배울 점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의 결점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많이 취하려고 애를 씁니다.”
―존경하는 정치인은.
“朴寬用(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국회를 개혁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분의 개혁 의지를 높이 평가합니다. 李萬燮(이만섭) 전 의장이 여야 사이에서 욕을 먹어 가면서, 날치기를 안 하고 국회의 중심을 잡으려 한 점을 높이 삽니다.”
―18대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낼 토론자료에서 첫 약속이 ‘국회를 국정의 중심으로 만들겠다’이더군요.
“너무나 당연하고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권위주의 시절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에 꽉 눌려 지냈습니다. ‘행정부와 임명된 권력을 국회가 제대로 견제해야 한다’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또 하나,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가 건강한 균형과 협력을 이뤄야 합니다. 국회가 더 이상 ‘통법부’니 ‘거수기’니 하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 이태훈
지난 大選(대선) 때 李明博(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총괄한 ‘일류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을 지낸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 일찌감치 “국회의장을 맡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직책을 제안받았지만 모두 固辭(고사)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만난 그는 18대 의원 전원에게 보낼 ‘선진국회의 모습’이라는 자료집을 검토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장 후보자 김형오’ 명의의 책자는 국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6월 5일로 예정됐던 18대 院(원) 구성(국회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선출)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18대 국회의원들 임기는 시작됐지만 ‘18대 국회’는 아직 문을 열지 못했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이 서울 도심을 뒤덮은 ‘거리의 민주주의’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은 국회 등원 대신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18대 국회 院(원) 구성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金大中(김대중) 정부 출범 때 한나라당이 金鍾泌(김종필) 총리 인준을 174일 만에 해 주었습니다. 盧武鉉 정부 때는 출범 1년 만에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죠. 민주당이 길거리로 나간 것은 한나라당이 부렸던 ‘몽니’를 그대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14대 국회 때 두 달 정도 원 구성이 안 된 게 국회 공전의 원조인 셈이죠. 15대 때도 원 구성이 늦어져 당시 최연장자인 김허남 의원이 임시 의장을 일주일간 한 적도 있었지요. 이런 일 때문에 새 국회가 개회되면 바로 원 구성이 되도록 법령화까지 시켰는데…. 여야가 서로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이 최근 10명의 ‘親 朴槿惠(친 박근혜)’ 국회의원 영입을 결정했습니다. 한나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전부 확보할 수 있는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게 18대 원 구성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요.
“親朴(친박) 의원들의 경우 한나라당 입당을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에 임했던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여권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야당 의원을 빼내 가는 것과는 다르지요. 친박 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이 원 구성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걸로 생각합니다.”
전자 민주주의인가, 디지털 포퓰리즘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진 촛불시위가 한 달을 넘겼습니다. 네티즌과 길거리 시위대가 매일 청와대의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협상을 하는 형국입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代議(대의) 민주주의, 議會(의회) 민주주의의 위기를 얘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의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라는 게 몇 백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최고의 정치 제도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의견 표출과 커뮤니케이션으로 대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제가 1999년에 이걸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논문의 결론은 ‘전자 민주주의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지면서 대의 민주주의가 종지부를 찍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논문이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한 번 절감을 했습니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건 분명합니다. 이번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는 정치학의 새로운 연구 테마가 될 겁니다.”
―소설가 李文烈(이문열) 씨는 촛불시위에 대해 ‘디지털 포퓰리즘’이라고 평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우려한 게 衆愚(중우)정치 아닙니까?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민주주의란 제도가 至善(지선)은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중에서 그나마 제일 낫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문열 씨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제1 야당 의원들까지 의회를 버리고 ‘거리의 민주주의’에 합류했는데.
“정치권의 무력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야당 스스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 신뢰가 떨어져 있다고 봤기 때문에 장외로 나간 것이죠. 정치인들이 거리로 나설수록 국회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은 며칠 전 “정권퇴진 요구는 헌정질서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국회가 정말 무서운 곳이다. 18대 국회를 잘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金大中(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당을 향해 “院內(원내)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의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시는 거죠. 원로들이 그런 말씀을 해 줘서 다행스럽습니다. ‘국회를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간다’는 게 18대 국회에서 야당의 一聲(일성)이었고 여당은 그걸 비난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정치권 현실이 그렇습니다. 야당이 국회로 복귀할 명분을 찾고 있다고 봅니다.”
“改憲 논의 시작하겠다”
―국회의장이 되면 반드시 해야겠다고 결심한 과제가 있습니까.“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改憲(개헌)이고 하나는 국회 운영제도 개선 작업입니다.”
―개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뜻인가요.
“의장에 취임하면 의장 직속 개헌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연구작업을 바로 시작하려 합니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원 포인트’(한 가지만 처리하자는 뜻) 개헌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는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로서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개헌 필요성에 대해 그 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원 포인트’ 개헌은 정략적이라고 봤습니다. 권력구조만 바꾸는 개헌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권력구조 변화에는 여러 가지 사회·경제·문화적인 변화들이 수반됩니다. 권력 구조만 고치겠다는 건 너무 안이한 접근이죠. 제가 그때 여야 원내대표 모임에서 ‘권력구조만 바꾸는 것은 정략적이다. 18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는 결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1987년 체제’를 바꿀 때가 왔습니다. 1987년의 헌법 개정은 대통령 직선제를 회복하고, 장기집권을 막았다는 점에서 큰 업적을 이뤘습니다. 이제 21세기에 맞게 통일·인권·사회·문화와 관련된 문제를 국가의 기본법에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권력구조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저는 4년 중임제에 반대합니다. 물론 국민이 원한다면 거기로 가야죠. 하지만 개헌논의의 중심을 ‘권력구조’로 단순화시키는 데는 반대입니다.”
―그럼 내각제 개헌까지 포함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검토하자는 건가요.
“대통령이 40만 표 차이로 당선되든, 500만 표 차이로 이기든 승자가 모든 걸 갖는 ‘승자 독식 구조’입니다. 권력을 나눌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해 본질적 검토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각제나 이원 집정부제, 대통령제를 하더라도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해 권력을 분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합니다.”
―개헌 시한은 언제로 잡고 있습니까.
“제가 의장으로 있는 18대 국회 전반기 2년이 적기라고 봅니다. 18대 후반기가 되면 대선 주자들이 나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각 주자 간 이해관계가 얽혀 개헌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충분한 전문가 검토와 공청회 등을 통해 내년 중에 개헌안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18대 국회와 이명박 대통령 임기에 변화가 있을 수 있나요.
“이명박 대통령이나 18대 국회 임기를 보장하면서 충분히 개헌을 할 수 있을 겁니다.”
18대 국회에서 고쳐야 할 과제들
―국회 운영과 제도는 어떤 부분을 고칠 생각입니까.
“대표적인 게 對(대)정부 질문입니다. 오전에 국회의원들이 대정부 질문을 하고 나면 오후에 총리와 장관들이 답변을 합니다. 오후 개회시간이 다가오면 ‘의원님들은 빨리 본회의장에 참석해 달라’고 독려하는 국회 구내방송이 되풀이됩니다. 본회의 대정부 질문 제도를 없애는 것까지 고려할 겁니다.”
―의원들의 대정부 질문을 ‘국회의원 웅변대회’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정부 질문 제도가 있는 나라는 별로 없어요. 국정감사 역시 문제입니다. 국정감사가 있는 9월과 10월은 국정 마비 또는 행정 공백 기간입니다. 짧은 기간에 국정감사를 휘몰아서 하니까 의원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한 건’을 하려고 과잉경쟁을 합니다. 의원들이 보도자료를 돌리면 기자들이 점검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대로 보도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국정감사가 왜곡됩니다.”
―감사원의 회계검사 기능을 국회로 가져오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거론됐지만, 실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기능과 조직에 헌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개헌을 한다면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옮기는 것을 고려할 겁니다. 일단 국회에 ‘감사청구권’이 있습니다. 감사청구권을 ‘감사요구권’으로 개정해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을 강화해야죠.”
―의장으로서 맞을 첫 번째 난제가 ‘한미 FTA’ 인준입니다. 야당의 반발이 거셀 경우,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겁니까.
“직권상정은 국회 운영에서 예외적인 조치입니다. 함부로 쓰지 말라는 뜻이지요. 예외적인 조치를 써야 할 때가 있겠지만, 제가 국회의장이 되면 직권상정할 일이 없을 거예요. 대화와 막후 조율로 일을 풀겠습니다.”
―최근 노무현 정부에서 차관을 지낸 분을 만났습니다. 이분은 盧泰愚(노태우) 청와대, 金大中(김대중)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를 했던 공무원 출신입니다. 이분이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정권은 처음 봤다. 인수위가 전리품 노획장 같더라. 인수위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한 건’ 하려고 나댔다”고 했습니다.
“이번 인수위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건 ‘오버’한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했으니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의욕이 앞섰어요. 정권 인수만 하면 될 걸 새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액션 플랜’까지 얘기하는 바람에 국민들께서 당혹스러우셨을 겁니다.”
“이명박 후보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인수위 사람들이 그렇게 ‘오버’하는 걸 왜 못 말렸습니까.“제가 뒤에서 많이 조정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인수위에 온 사람 중 상당수가 총선에 출마할 사람들이어서 통제가 잘 안 됐습니다. 언론에 적극적으로 노출하려고 했고, 검토 중에 있는 설익은 과제들이 알려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장관·청와대 수석 인사가 인수위 끝날 때까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전 정권의 업무를 인수받을 당사자가 없이 제대로 된 인수인계가 이뤄질 수 있습니까.
“인수위 업무와 인사가 이원화됐습니다. 인수위는 인수위대로 굴러가고, 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뽑는 작업이 별도로 진행된 거죠.”
―이명박 대통령이 시종일관 압도적 1위로 선거전을 치렀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랬다면 선거 끝날 때까지 장관 후보와 수석을 결정하고, 이 사람들을 인수위에 배치시켰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밖에 계시는 분들은 그렇게 볼 수 있겠지요.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나서 ‘일류국가 비전위원장’을 맡아 선거 캠프에 들어가 보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랐어요. 사람이 적었으면 인사 문제가 빨리 정리됐을 텐데 주변에 몰려든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늦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수위 부위원장은 어떤 인연으로 맡게 됐습니까.
“이 대통령과는 1992년 14대 국회 때 초선의원으로 여러 자리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을 뿐 특별한 인연은 없습니다.”
―14대 국회 때 만난 이명박 대통령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무슨 일이든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소한 사물이나 사안에 대해서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어요.”
―지난 大選(대선) 때 선대위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일하셨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니 어떤 유형의 지도자던가요.
“나쁘게 말하면 시간 관념이 없더군요. 회의가 한두 시간 길어지는 게 보통이었어요.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예컨대 이 대통령은 보고를 듣고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토론을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세미나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이러다 회의가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예요. 과거에 李會昌(이회창) 총재를 모시고 회의를 해 보면, 이 총재는 서류형입니다. 보고서를 읽는 속도가 빠를뿐더러 바로 핵심을 파악합니다.”
“불도저가 아니라 너무 신중한 스타일”
―세미나형 리더십의 장단점은 뭡니까.
“장점은 어떤 사안에 대해 완벽히 숙지할 수 있는 거죠. 문제의 여러 측면을 이해하면서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대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단점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회사 CEO 출신이라고 ‘불도저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정반대예요. 너무 신중한 스타일입니다. 인사문제는 특히 더 그런 것 같고요. 요즈음 촛불집회로 ‘인사쇄신’ 압박이 가중됐지만, 쇄신안이 안 나오잖아요. 이 대통령의 이런 성격이 작용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제가 이명박 대통령을 시장 시절, 대통령 후보 시절에 모두 네 차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특히 수치에 강해서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와 복구된 청계천변 중 어느 것이 더 넓으냐’는 물음에 곧바로 ‘청계천이 더 넓다’는 답을 내놓더군요.
“웬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보 입력이 많이 돼 있습니다만, 정치와 정치판에 대해서는 입력이 잘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김 의원께서는 인수위 부위원장 시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초대 대통령실장은 중량감 있는 정무형 인사가 적합하다”고 얘기했습니다. 柳佑益(류우익) 대통령실장은 이런 기준과 맞지 않는 인물 아닌가요.
“류 실장 인선은 저도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인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인사를 담당하는 팀이 따로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제 얘기가 맞았던 거죠.”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예전의 정태수 한보 회장처럼 ‘머슴론’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내가 다 안다. 비서실장이나 장관은 내 심부름이나 잘하면 된다’는 생각 말입니다.
“제가 많은 대통령과 총리를 모셨는데, 역대 어느 대통령이든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 걸 던졌습니다. ‘적당히 사람 쓰고 대충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다만 교수들을 청와대나 정부의 고위직에 데려다 쓰는 건 재고해야죠. 교수를 굳이 쓰겠다면 차관보 정도로 기용해서 잘하면 차관, 장관으로 기용해야죠. 교수들의 지식은 한정된 분야에 국한됩니다. 그 지식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장관과 수석 인사를 단행하자마자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淸貧(청빈)은 바라지 않더라도, 淸富(청부)는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1970년대 후반 1980년대에 걸쳐 부동산을 통해 엄청난 富(부)가 형성됐습니다.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서민층으로 떨어졌어요. 당시 웬만한 월급 받는 사람이면 부동산 투자에 많게든 적게든 다 뛰어들었습니다. 집을 서너 채만 사고 팔아도 재산이 평생 버는 월급보다 많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드물어진 거죠. 웬만한 재산 가진 사람들 청문회에 나가면 ‘위장전입’이 다 나올 겁니다.”
재산은 강남 집 한 채 포함 10억 원대
―모 청와대 수석은 “고등학교 다닐 때 부모가 내 이름으로 위장 전입을 해서 부동산 구입한 걸 몰랐다”고 변명했습니다. 부모가 자식 명의로 일찌감치 부동산을 사들여 상속세나 양도소득세를 피해 갔다는 얘기인데, 많은 국민들이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들의 도덕성이 이것밖에 안 되나” 절망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관직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국민들이 민감해하는 게 재산, 병역, 교육 문제입니다. 국민이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었다고 생각되면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죠. 선진국처럼 어린 시절부터 공직에 나서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를 해야죠.”
―유독 이명박 정부에, 공직에 나서지 말아야 했을 사람들이 대거 포진한 이유가 뭔가요.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야당이니까 정치자금을 함부로 쓰면서 정치를 할 수 없었죠. 이 대통령 주변에 자기 돈 써 가며 이 대통령을 도왔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서울 강남의 집 한 채를 포함해서 10억 원대입니다.”
―대통령의 친형인 李相得(이상득) 의원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朴永俊(박영준) 前(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鄭斗彦(정두언) 의원으로부터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두언 의원의 주장에 공감하십니까.
“박영준 비서관이 인수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제가 잘 모릅니다. 인사는 엄밀하고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私心(사심)이 인사를 좌우해선 안 됩니다.”
김 의원은 全斗煥(전두환) 청와대에서 정무과장(1983~1986), 盧泰愚(노태우) 정부에서는 총리실 정무비서관(1986~1990)에 이어 청와대에서 정무비서관(1990년)을 지냈다. 한나라당이 탄핵 역풍을 맞은 2004년 3월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아 ‘천막당사’를 전전하며 당 살림을 1년간 했다. 그때 한나라당 대표가 朴槿惠(박근혜) 의원이었다.
―가까이서 본 박근혜 대표는 어떤 스타일의 정치인입니까.
“이분이 애국심이랄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고 태도가 단정합니다. 제가 사무총장 시절 박 전 대표와 함께 있는 사진이 TV에 많이 나갔어요. 집사람이 저보고 그래요. ‘박근혜 대표는 저렇게 단정한데 당신은 왜 그리 자세가 엉망이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고, 다리를 꼬고….’ 박 대표는 자세뿐 아니라 생각까지 단정합니다. 뒷거래와 모략, 이합집산 같은 정치공학을 싫어하죠. 자기가 한번 뱉은 말에 대해 책임지려는 생각이 강합니다. 닳고 닳은 정치세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朴槿惠 李明博은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달라
―‘박근혜 대표는 토론이 없는 사람’이란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자기 지식을 쌓아 갑니다. 박 대표는 어떤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 그 문제에 집중해서 깊이 생각하는 스타일이죠.”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만나고 나면 ‘총리직을 제안했다’, ‘그런 얘기 들은 적도 없다’는 등 서로 다른 얘기가 나옵니다.
“두 분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맺고 끊는 게 분명하지 않은 스타일이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정반대지요.”
―촛불집회로 야기된 정국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박근혜 의원에게 총리직을 맡기자는 제안이 여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직을 제안한다고 박 대표가 덜컥 받을 수 있을까요. 박 전 대표가 국무총리를 맡으려면 여러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만일 대통령이 제게 총리직을 제안한다면, 저는 ‘국무총리에게 어디까지 역할을 맡기시겠습니까’ 하고 조건을 확인할 겁니다. ‘박근혜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 총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까.
“朴槿惠 의원이 총리를 맡더라도 청와대의 대통령실장과 정무수석, 총리실의 총리비서실장과 행정조정실장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 채널이 확보돼야 합니다. 이런 ‘파이프 라인’이 구축돼야 ‘총리가 越權(월권)을 한다’, ‘대통령이 총리를 핫바지로 만든다’는 감정 충돌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제가 청와대와 총리실의 정무비서관을 다 해 봤습니다. 총리가 막강하면 장관들이 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가지만, 총리가 만만하면 청와대와 직거래합니다.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힌 중대한 문제에 대해 총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보증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청와대와 총리실이 사사건건 충돌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국무총리에 기용할 뜻이 있기는 한 겁니까.
“정말 총리로 쓸 생각이 있다면 사전에 조율해야 할 쟁점들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총리 기용을 위한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면, 언론에 이런 식으로 보도되진 않는다고 봅니다.”
―자유선진당 李會昌(이회창) 총재가 두 번이나 청와대 면회실에 가서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는데 못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4월 9일 총선이 끝나고 곧바로 이회창 총재를 만났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문을 활짝 열고 주요 정파의 지도자들을 가급적 많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는 형식이나 절차가 좀 더 유연해져야죠.”
결점보다는 장점을 본다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게 청와대 정무수석 아닌가요.
“政務(정무)의 首長(수장)은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정무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정부조직 개편 때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당시 저에게 ‘민주당 유인태 의원한테 전화할까’ 이러셔서 제가 만류했습니다. 며칠 뒤에 보니까 유인태 의원에게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쇼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진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본적인 정무 마인드가 있는 만큼, 조금만 방향을 틀면 잘해 나갈 걸로 믿습니다.”
―닮았으면 좋겠다 싶은 인생의 師表(사표)가 되는 분이 있습니까.
“강영훈 전 국무총리를 인간적으로 좋아합니다. 사심 없는 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 청빈함이 공직에 나서는 사람들의 거울입니다. 사무총장으로 모셨던 박근혜 전 대표의 단정함, 정치공학적인 술수를 싫어하는 면, 이명박 대통령의 일을 즐기는 태도는 배울 점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의 결점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많이 취하려고 애를 씁니다.”
―존경하는 정치인은.
“朴寬用(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국회를 개혁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분의 개혁 의지를 높이 평가합니다. 李萬燮(이만섭) 전 의장이 여야 사이에서 욕을 먹어 가면서, 날치기를 안 하고 국회의 중심을 잡으려 한 점을 높이 삽니다.”
―18대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낼 토론자료에서 첫 약속이 ‘국회를 국정의 중심으로 만들겠다’이더군요.
“너무나 당연하고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권위주의 시절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에 꽉 눌려 지냈습니다. ‘행정부와 임명된 권력을 국회가 제대로 견제해야 한다’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또 하나,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가 건강한 균형과 협력을 이뤄야 합니다. 국회가 더 이상 ‘통법부’니 ‘거수기’니 하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 이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