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의 5代祖 이양무의 무덤이 君王地
李양무의 무덤은 풍수학도들의 찬탄을 자아낼 만큼 절묘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左靑龍 右白虎가 뚜렷한 가운데 靑龍보다 白虎가 강하여 앞으로 휘어 감았으니 「猛虎出林形」이다.
金聖洙
1935년 구례 화엄사 아랫마을 출생. 호 靈目. 건국大를 졸업하고 건설부에서 근무하던 중 뜻한 바 있어 사임하고 나와 사업에 투신하여 성공한 후 세계를 일주하며 동서양 풍수지리학을 섭렵했다. 특히 한국 풍수지리학의 鼻祖인 玉龍子 道詵國師의 비법을 연구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저서로 「名堂」이 있다.
李양무의 무덤은 풍수학도들의 찬탄을 자아낼 만큼 절묘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左靑龍 右白虎가 뚜렷한 가운데 靑龍보다 白虎가 강하여 앞으로 휘어 감았으니 「猛虎出林形」이다.
金聖洙
1935년 구례 화엄사 아랫마을 출생. 호 靈目. 건국大를 졸업하고 건설부에서 근무하던 중 뜻한 바 있어 사임하고 나와 사업에 투신하여 성공한 후 세계를 일주하며 동서양 풍수지리학을 섭렵했다. 특히 한국 풍수지리학의 鼻祖인 玉龍子 道詵國師의 비법을 연구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저서로 「名堂」이 있다.
거대한 왕릉 속 왕들은 평안한가?
- 李成桂의 5代祖 이양무가 묻힌 濬慶墓.
王들은 죽어서도 거대하다. 그들의 무덤은 몇천 평은 보통이고 몇만 평의 광대한 산록을 독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선조를 개창한 太祖 李成桂(태조 이성계)의 建元陵(건원릉)을 비롯, 왕과 왕비 9基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구리시 東九陵(동구릉)의 뒷산 능선에 올라서 보면 동쪽 기슭으로는 손가락처럼 뻗어 내린 줄기마다 왕릉과 정자각이 웅장한 모습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북쪽 斜面(사면)으로 눈을 돌리면 옹기종기 게딱지 같은 서민의 무덤들이 총총하게 들어선 공원묘지가 펼쳐져 있다.
죽음은 평등이다. 王侯將相(왕후장상)과 張三李四(장삼이사)를 평등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왕들의 사후 저택은 백성들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창하다.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왕들은 평안한가?
그렇지 않다. 초대형 호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열 평짜리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 방에 세 들어 사는 서민보다 반드시 더 행복한 것이 아닌 것처럼, 왕들이라고 다 명당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조선조 27대 왕들 중에서 사후에 君王地(군왕지)라고 할 만한 「자리」에 들어 있는 왕은 한 사람도 없었다.
太祖 李成桂의 5代祖인 李陽茂(이양무)가 잠들어 있는 강원도 삼척시의 濬慶墓(준경묘)가 君王地로서 자손 중 李成桂의 창업 發福(발복)의 원인이 되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의 大院君 李昰應(대원군 이하응)의 先親(선친) 李球(이구)의 南延君墓(남연군묘)도 君王地로 高宗(고종)과 純宗(순종) 등 2代 왕을 배출한 발복근원이었다.
이 두 무덤은 「왕을 낳은 무덤」일 뿐 「왕들의 무덤」, 즉 陵(능)은 아니었다. 정작 왕들의 무덤들은 이름만 「능」일 뿐 그저 평범한 「무덤」이었다. 君王地의 陰德(음덕)을 입지 못하고 선조의 代이음으로 유지된 조선조 역대 왕들의 王權(왕권)은 늘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까닭이 어디 있었을까? 李成桂의 5代祖 무덤으로 조선 창업의 발복지였던 삼척의 준경묘에서부터 그 인과의 출발점을 찾아본다.
「龍飛御天歌」의 神話 탄생
<海東 六龍이 흈힔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시니 (海東六龍飛 莫非天所扶 古聖同符·해동육룡비 막비천소부 고성동부)>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 125장 중 전체 서문에 해당하는 제1장이다. 「海東, 즉 朝鮮 땅에 여섯 마리의 용이 날아올라 하는 일마다 하늘의 뜻이었다」고 읊어 가고 있다. 世宗(세종)의 직계 선조인 穆祖(목조)·翼祖(익조)·度祖(도조)·桓祖(환조·이상 추존)와 太祖·太宗(태종)에 이르는 6代의 행적을 노래하여 조선을 창업하고 왕조의 기틀을 굳힌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음을 선양하고 후대 왕들에게 경계의 표지를 삼고자 만들어 낸 작품이다. 權?(권제)·鄭麟趾(정인지)·安止(안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고 만든 작품으로, 「용비어천가」라는 제목은 세종이 직접 붙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대통령 한 사람이 새로 선출되면 그를 기리는 전기와 회고록을 비롯해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적 및 영상물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是是非非(시시비비)를 따질 것 없이 당사자 조상의 陰宅(음택)을 살펴보면 그 眞僞(진위)가 분명해진다.
조선 개국의 근원지가 된 태조의 5代祖 이양무의 묘소는 「용비어천가」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천하의 명당에 들어 있다. 「하늘의 뜻」이 결코 허황한 치장이 아니었음을 이 무덤 하나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왕조사의 첫머리가 설화로 시작되듯이 우리나라의 개국설화, 혹은 권력 창출의 이면에는 유독 무덤과 관련 있는 설화가 많다. 준경묘가 강원도 삼척의 두타산 골짜기 깊은 골 속의 천하명당에 들게 된 기연도 일반적인 무덤설화의 한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무덤의 후손이 積德(적덕)한 결과 (혹은 우연히) 道人(도인)을 만나게 되고 그 도인의 점지로 명당을 얻게 되었으며, 명당의 발복으로 후손이 최고의 권력을 쥐게 된다는 일련의 틀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官妓 두고 다투다가 全州에서 三陟으로 피신한 穆祖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살고 있는 향토사학자 林鳳熙(박봉희·64)씨가 역사 자료와 이 지방 노인들의 口述(구술)을 종합하여 재구성한 준경묘 내력(「百牛金棺의 전설」)의 요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全州(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시대의 李翰(이한)으로 현재 전주시 풍남동에 그의 위판을 봉안한 肇慶廟(조경묘)가 있다. 이는 英祖(영조) 때(1771) 왕가 시조의 발상지를 기리기 위해 유생들의 상소로 창건한 묘이다.
李成桂의 4代祖(高祖 할아버지) 李安社(이안사: 뒤에 穆祖로 추존)는 전라북도 전주의 호족이었다. 성격이 호탕했던 이안사는 「애기」라는 이름의 官妓(관기)를 사랑하여 아꼈다.
고려 고종 18년(1231) 山城別監(산성별감)이 새로 부임해 오자 전주의 호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별감을 환영하는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애기는 연인인 이안사의 곁에만 앉아 술시중을 들었는데, 술김에 애기의 미모와 가무 솜씨를 보고 심란해진 별감이 애기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 앉혔다. 그러나 애기는 별감에게 시중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곧 이안사의 옆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심기가 뒤틀린 별감이 이안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관기를 어느 자가 독점하고 있느냐. 빨리 내놓지 못할까』
이안사도 만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관기는 산성별감 따위의 전용물이 아니오. 본부 사또의 명이 있다면 모를까 함부로 독점하려 하지 마시오. 산성별감은 산성이나 지키면 그만이지 언제부터 관기까지 감독하게 되었소?』
모욕을 당한 별감이 달려가 이안사에게 손찌검을 했고, 이안사도 지지 않고 맞받아쳐 술자리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이안사는 애기의 손을 잡고 난장판을 떠났다.
이 일을 전해 들은 본관 사또가 「관리에게 모욕을 준 죄」로 이안사를 죽이려 했다. 애기로부터 그 정보를 들은 이안사는 가솔을 이끌고 전주를 떠났다. 이때 그를 따라나선 백성이 170여 호나 되었다고 한다. 인심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老僧이 점지해 준 君王地
전주를 떠나 동북쪽으로 길을 잡은 이안사 일행은 경상도 내륙을 거쳐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 울진에서 동해안을 끼고 삼척에 도착, 오십천을 끼고 산골짜기로 들어가 지금의 활기리에 정착했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고생을 하다가 이안사의 부친 이양무가 세상을 떠났다. 평소 「비결」을 숭상해 온 이안사는 부친의 무덤자리를 찾기 위해 산을 헤집고 다니다가 어느 산자락에서 노곤하여 잠이 들었다. 꿈에 한 老僧(노승)과 상좌가 지척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생시처럼 이안사의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노승이 말했다.
『이곳에 묘를 쓰면 5代 후에 왕이 나겠구나』
상좌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자리가 君王地입니까?』
『허어, 큰소리 내지 마라. 누가 듣겠다』
『이 깊은 산중에 누가 있어 듣는단 말입니까?』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느냐』
상좌는 입을 다물었고, 두 사람은 바람처럼 멀어졌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멀리 사라져 가는 노승과 상좌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안사는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가 노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방금 지나가시면서 하시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침 先親(선친)의 묏자리를 찾아 헤매던 중이었습니다. 저에게 그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노승은 『그런 얘기 한 일 없다』고 딱 잘라서 부인했다. 그러나 이안사가 집요하게 간청하자 『허어, 참,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는 모양』이라고 한탄하고 말문을 열었다.
『가르쳐 주겠으나 그 자리를 쓰려면 꼭 지켜야 할 일이 있으니 이를 지킬 수 있겠소?』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승은 묏자리를 가르쳐 주면서 일렀다.
『당신이 이 자리의 주인인 듯하나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 있소. 이곳에 묘를 쓰자면 開土祭(개토제)에 소 100마리를 잡아야 하고, 관은 금으로 만든 것을 써야 하오. 그리고 장사를 지낼 때는 술 100동이를 쓰시오. 묘지의 坐向(좌향)은 辛坐乙向(신좌을향)으로 해야 하고.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오늘밤이라도 이 자리에 달걀 하나를 묻어 놓고 멀리서 지켜보시오』
이안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노승과 상좌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百牛金棺의 전설
그날 밤 이안사는 달걀 한 개를 노승이 점찍어 준 혈에다 묻어 놓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가까워지자 달걀을 묻어 둔 자리에서 수탉이 홰를 치며 울었다. 닭 울음소리가 심산유곡을 흔들자 이안사는 무릎을 치며 돌아와 장례 치를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고민이었다. 새 정착지에서 살기도 버거운데 소 100마리가 어디 있고 금으로 된 관은 또 어떻게 만들 것이며, 술 100동이는 어디서 구해 오는가. 모두 불가능한 것들뿐이었다.
궁리 끝에 이안사는 마침 처가(이안사의 처가가 삼척이었다)에 흰 소가 한 마리 있는 것을 생각해 내고 장인에게 간청하여 그것을 잡아 開土祭에 썼다. 金棺(금관) 대신 금빛이 나는 밀짚으로 관을 쌌고, 술은 전주에서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로부터 한 집에 한 동이씩 추렴하여 100동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으나 곤궁한 처지는 당장 풀릴 길이 없었다. 惡緣(악연)이 계속되어 지난날 전주에서 기생 하나를 두고 다투었던 산성별감이 이번에는 강릉도호부로 옮겨 왔다.
이안사는 별감에게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다시 가솔을 거느리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함경도 경흥으로 피신한 이안사는 여기서도 머물지 못하고 의주와 덕원으로 옮겨 元나라 치하에 들어가 군사 5000명을 거느리는 다루하치 벼슬을 했다.
그 아들(度祖) 역시 元나라 벼슬과 고려의 벼슬을 번갈아 지냈다. 이안사(穆祖)의 손자인 李子春(이자춘·桓祖))도 元나라의 관리였으나 恭愍王(공민왕) 4년(1355) 고려 조정에 내알하여 소부윤의 벼슬을 받았다. 이어 雙城摠管府(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지금의 함북지방을 회복하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동북면 병마사의 직을 받았다.
이자춘의 아들 李成桂는 고려의 武將(무장)으로 활약하다가 마침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창업한다. 도인인 노승의 말대로 『5代 후 왕이 난다』는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君弱臣强을 예고한 준경묘
태백 준령이 南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동해로 급히 떨어지면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준봉을 빚었으니 頭陀山(두타산)이다. 두타산을 밖에서 바라보면 속인의 근접을 불허하듯 기세가 날카로우나 속으로 한발 접어들면 낙락장송이 병풍처럼 둘러친 아늑한 분지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두타산은 한없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펼쳐진다.
이 분지가 바로 이안사가 잠을 자다가 꿈인 듯 생시인 듯 노승을 만났던 그 자리이고, 바로 그 자리에 이안사의 부친이자 李成桂의 5代祖인 이양무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500년을 이어 간 왕조를 탄생시킨 바로 그 근원지다.
이안사가 함경도로 옮겨 간 이후 李成桂 이전까지 선조들이 묻혀 있는 함흥 등지의 무덤들은 확인해 볼 길이 없다. 李成桂의 아버지 이자춘의 묘소인 定陵(정릉)은 당시 행각승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의 대화를 엿듣고 함흥군 동면 경흥리에 조성했다고 하나, 현재로서는 그 좋고 나쁨을 확인할 길이 없다. 대체로 조선왕조의 탄생 발복지는 준경묘라는 것이 풍수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그만큼 이 무덤이 풍수학도들의 찬탄을 자아낼 만큼 절묘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主山인 두타산에서 용맥이 오른쪽으로 흐르다가 서북에서 남쪽으로 꺾어지는 통맥법상의 이상적인 형국을 자아냈고, 左靑龍 右白虎(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가운데 靑龍보다 白虎가 강하여 앞으로 휘어 감았으니 흔히 이 무덤을 「猛虎出林形(맹호출림형)」이라고 한다. 무덤의 한가운데로 강한 氣(기)가 살아 있으니, 이 무덤의 주인은 조선 왕조의 쇠락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다만 結因(결인)이 뚜렷하지 않아 君弱臣强(군약신강)의 불안한 王權을 예고하고 있었고, 辛坐乙向이 주로 長子를 제쳐 놓고 之次들이 발복하는 자리(李成桂도 李子春의 둘째 아들이다)인 것이 흠이다.
그러나 맹호출림형의 당당한 기상과 강한 氣脈(기맥)은 500년 王朝를 창업하고, 역대 왕들 이외에 문과 급제자 873명, 정승 22명, 대제학 7명을 배출해 전주이씨를 우리나라 최대 명문으로 도약시켜 그 運氣가 오늘에까지 그치지 않으니, 大河長江(대하장강)이 심산유곡의 작은 샘에서 근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太祖에서 翼宗까지 묻힌 東九陵
준경묘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이안사의 모친이 잠들어 있는 永慶墓(영경묘)가 있다. 영경묘는 풍수상 평범한 무덤일 뿐이었는데 바로 그 영경묘 제각의 계단 앞에 東向(동향)으로 진혈이 빈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좋은 혈을 두고 왜 하필이면 일부러 비켜나듯이 자리 아닌 곳에 무덤을 썼을까.
옛 무덤들, 특히 왕들의 능이나 왕족의 묘를 찾아볼 때마다 옛날 풍수들이 실수를 많이 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임금이나 왕족이 좋은 자리에 들지 못하도록 음해하는 세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왕과 왕비의 무덤들은 하나같이 자리를 비켜나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太祖 李成桂의 무덤을 필두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능 9基가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東九陵을 들 수 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산14번지. 머지않아 도심 한가운데 놓이게 될 정도로 시가지에 둘러싸여 있는 동구릉은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소쿠리처럼 넓게 감싸 안은 산세 속에 모두 9基의 왕과 왕비의 능묘들이 오순도순 가족묘를 이루고 있다. 살아 있는 능묘의 집합처이고 역사의 증언대이다.
이곳에서 주인은 역시 太祖 李成桂의 무덤인 健元陵이다. 太宗 8년 太祖가 사망하자 太宗은 한양 인근에서 좋은 묏자리를 물색하다가 검교참찬 의정부사 金仁貴(김인귀)의 추천으로 오늘날의 동구릉 자리를 결정했다. 이 자리를 결정한 것은 한양 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河崙(하륜)의 의견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無學(무학)대사가 太祖 생전에 점지해 둔 자리라고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9陵이라고 하나 9基의 능이 일시에 만들어질 수는 없다. 시작은 조선 개국의 첫 임금인 太祖였으나 최종적으로 9基의 무덤이 조성된 것은 哲宗(철종) 6년(1855)에 翼宗(익종)의 능인 綏陵(수릉)이 조성된 때였으니, 조선조 개국에서부터 말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조성된 무덤들이다. 이곳을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 있다.
능의 주인들을 살펴보면 太祖의 健元陵, 5代 文宗(문종)의 顯陵(현릉), 18代 顯宗(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가 묻힌 崇陵(숭릉), 20代 景宗(경종)의 비 단의왕후가 묻힌 惠陵(혜릉), 21代 英祖(영조)와 계비 정순왕후가 묻힌 元陵(원릉), 23代 純祖(순조)의 世子인 추존왕 翼宗과 신정왕후가 묻힌 綏陵, 24代 憲宗(헌종)과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가 묻힌 景陵(경릉) 등이다.
실혈의 표본 建元陵
하지만 동구릉은 풍수상으로는 잘못 잡은 자리의 표본이었다. 하륜의 풍수 지식은 당대 최고의 경지였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런 곳에 太祖의 능을 조성하기로 작정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곳은 능의 자리로 갖추어야 할 형국이 아니었다. 우선 左右의 靑龍·白虎가 기운 없이 벌어졌고 안산이 뚜렷하지 않다. 主山의 용맥이 뻗어 내려온 산줄기마다 능이 조성되어 있는데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휘감는 생기가 없었다. 능마다 氣가 살아 있는 진혈을 발견할 수 없었다. 太祖의 건원릉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건원릉은 와우형으로 通脈法上(통맥법상) 명당이 나올 자리였고 실제로 건원릉 바로 뒷자리(癸坐丁向·계좌정향)에 생기처가 있어 君王地가 분명하다. 여기까지 형국을 좇아 자리를 잘 골라 놓고서도 마지막 혈을 놓쳤으니 흔히 보는 실혈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게다가 來龍(내룡) 정중앙의 龍脊(용척)에 능을 놓아 능 한가운데로 水脈(수맥)이 흐르니 조선시대 葬法(장법)의 치명적인 결함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무덤이었다. 결인에서 혈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고 蟬翼(선익)도 없었다. 하륜이 이 자리를 결정한 이유를 필자는 아무래도 알 수 없다.
西五陵에도 君王地는 없어
동구릉에 비견할 만한 王家의 陵群(능군)이 또 한 군데 있으니 西五陵(서오릉)이다. 생전에 스스로 풍수의 전문가임을 과시했던 世祖(세조)가 재위 3년에 의경세자(德宗으로 추존)가 죽자 아들을 위해 이곳에다 敬陵(경릉)을 조성한 것이 서오릉의 시작이었다.
이어 8代 睿宗과 계비 안순왕후, 19代 肅宗과 정비 인경왕후,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 그리고 숙종이 사약을 내렸던 장희빈의 묘소 등 숙종과 그의 부인 4명의 무덤이 모두 여기 있어 한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 있다.
왕과 왕후의 무덤을 능이라 하고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왕의 부모 묘소를 園(원)이라 하며, 그외 왕족과 후궁들의 묘소는 그냥 墓(연산군·광해군과 같이 폐위된 왕들의 무덤도 묘로 격하했다)라 칭했는데, 서오릉에는 명종의 첫째 아들 순희세자의 무덤인 순창원과 英祖의 후궁으로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이씨의 무덤인 수경원이 이 울타리 안에 함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君王地는 고사하고 명당이라 할 만한 곳에 자리 잡은 능·원·묘는 한 군데도 없었다.
조선왕조의 능묘는 당연히 수도였던 한양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능묘는 모두 109基다. 그중 능이 44基, 원 13基, 묘 52基다.
그중에서 명당이라 할 만한 것은 여주의 세종대왕릉(英陵·영릉), 世祖가 직접 자신의 누울 자리를 고른 光陵(광릉), 그리고 仁祖(인조)의 長陵(장릉)과 현재의 동작동 국립묘지 안에 있는 창빈 안씨(宣祖의 생모)의 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4基도 명당이기는 하나 君王地는 아니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묘소가 없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들이 한결같이 군왕지에 들지 못했다는 것은 조선조의 운명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풍수상의 징후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면 吏曹(이조)에서 殯殿都監(빈전도감), 國葬都監(국장도감), 山陵都監(산릉도감) 등 3개 부서의 도감을 설치·운영했다. 그야말로 거국적인 행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3개 도감마다 提調(제조)가 임명되고, 3명의 提調를 총괄·지휘하는 소임은 좌의정이 맡았다. 국내 최고의 풍수를 相地官(상지관)으로 하고 이 상지관이 택지를 정하면 왕이 친히 나아가 살펴보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조선의 왕들이 하나같이 명당에 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해 보건데 택지 선정 때 提調와 議政府(의정부)에서 중구난방의 의견을 내놓았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최고의 陰宅을 정하는 것보다 黨派(당파)의 고집과 계산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 풍수와 관련된 마지막 일화는 흥선대원군의 몫이다. 당시 유명한 풍수 鄭萬仁(정만인)이 『충청도 예산의 가야산 동쪽에 2代에 걸쳐 天子가 나올 자리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萬代의 영화를 누릴 자리가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원군이 3년에 걸쳐 정만인을 수소문하여 마침내 만났다.
대원군, 연천의 부친 묘를 예산으로 옮겨
정만인이 대원군의 사람됨을 꿰뚫어보고 『2代 君王地와 萬代 榮華地 중 어느 곳을 택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야심가였던 이하응은 『2代 君王地를 소점해 달라』고 했다. 이하응의 선친 南延君(남연군) 이구는 이미 죽어 경기도 연천에 묻혀 있었는데 정만인으로부터 君王地를 얻은 이하응은 연천에서 예산까지 머나먼 길을 상여를 동원해 移葬(이장)을 결행했다.
그러나 정만인이 君王地로 알려 준 자리에는 이미 가야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었다. 이구의 유해는 일단 절 근처에 假埋葬(가매장)했다가 후일 절을 불태워 철거해 버리고 문제의 명당을 점유할 수 있었다.
이곳에 남연군이 누운 후 자손 중에서 高宗·純宗의 2代에 걸쳐 왕이 탄생(高宗과 純宗은 「大韓帝國」으로 국호를 변경한 후 황제로 호칭했다)했으니 『2代 天子가 나올 곳』이라던 예언이 적중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기 위해 파헤친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대원군의 서양인에 대한 증오심에 불이 당겨졌다. 이로 인하여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예산 군왕지가 역사에 끼친 선악은 단순한 셈법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대원군의 아들인 高宗도 풍수에 관심이 많아 생전에 「國風(국풍)이라 호칭했던 金基應(김기응)·朱雲漢(주운한)·金光石(김광석)·諸葛策(제갈책) 등으로 하여금 身後地(신후지·陵所)를 미리 선정하게 했다. 이 地官(지관)들이 찾은 땅이 금곡의 洪陵(홍릉)이다.
땅을 파보니 「五百年 權措地(오백년 권조지)」라는 표석이 나왔다 하여 지관들이 천하명당 「梅花落地形(매화낙지형)」이라고 의기양양 천거했다. 高宗도 기분이 좋아 그 자리(乙坐辛向)를 결정했는데 사실은 胎交(태교)가 이루어지지 못한 子孫敗絶之地(자손패절지지)였다. 즉 안산만 화려한 虛花假局(허화가국)이었다.
1926년 純宗이 崩御(붕어)하자 이번에도 김기응·김광석 등 국풍들이 高宗의 홍릉 부근을 八騎龍穴(팔기용혈)이라고 천거하여 裕陵(유릉)을 조성했다. 이 자리도 태교가 이루어지지 못한 땅이요, 취수장을 방불케 하는 水脈이니 왕의 능이 아니라 일반인도 묘를 쓸 자리가 아니었다. 「조선조의 國運(국운)이 다하여 하늘이 주지 않고(天不胎) 땅이 받지 않는다(地不受)」는 증거였다. 이른바 국풍이라 불리던 풍수들이 그 정도의 상식도 갖추지 못했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실수의 연속이었다.●
죽음은 평등이다. 王侯將相(왕후장상)과 張三李四(장삼이사)를 평등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왕들의 사후 저택은 백성들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창하다.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왕들은 평안한가?
그렇지 않다. 초대형 호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열 평짜리 다가구 주택의 반지하 방에 세 들어 사는 서민보다 반드시 더 행복한 것이 아닌 것처럼, 왕들이라고 다 명당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조선조 27대 왕들 중에서 사후에 君王地(군왕지)라고 할 만한 「자리」에 들어 있는 왕은 한 사람도 없었다.
太祖 李成桂의 5代祖인 李陽茂(이양무)가 잠들어 있는 강원도 삼척시의 濬慶墓(준경묘)가 君王地로서 자손 중 李成桂의 창업 發福(발복)의 원인이 되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의 大院君 李昰應(대원군 이하응)의 先親(선친) 李球(이구)의 南延君墓(남연군묘)도 君王地로 高宗(고종)과 純宗(순종) 등 2代 왕을 배출한 발복근원이었다.
이 두 무덤은 「왕을 낳은 무덤」일 뿐 「왕들의 무덤」, 즉 陵(능)은 아니었다. 정작 왕들의 무덤들은 이름만 「능」일 뿐 그저 평범한 「무덤」이었다. 君王地의 陰德(음덕)을 입지 못하고 선조의 代이음으로 유지된 조선조 역대 왕들의 王權(왕권)은 늘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 까닭이 어디 있었을까? 李成桂의 5代祖 무덤으로 조선 창업의 발복지였던 삼척의 준경묘에서부터 그 인과의 출발점을 찾아본다.
「龍飛御天歌」의 神話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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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太祖 李成桂의 무덤인 建元陵. |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 125장 중 전체 서문에 해당하는 제1장이다. 「海東, 즉 朝鮮 땅에 여섯 마리의 용이 날아올라 하는 일마다 하늘의 뜻이었다」고 읊어 가고 있다. 世宗(세종)의 직계 선조인 穆祖(목조)·翼祖(익조)·度祖(도조)·桓祖(환조·이상 추존)와 太祖·太宗(태종)에 이르는 6代의 행적을 노래하여 조선을 창업하고 왕조의 기틀을 굳힌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음을 선양하고 후대 왕들에게 경계의 표지를 삼고자 만들어 낸 작품이다. 權?(권제)·鄭麟趾(정인지)·安止(안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고 만든 작품으로, 「용비어천가」라는 제목은 세종이 직접 붙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대통령 한 사람이 새로 선출되면 그를 기리는 전기와 회고록을 비롯해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적 및 영상물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是是非非(시시비비)를 따질 것 없이 당사자 조상의 陰宅(음택)을 살펴보면 그 眞僞(진위)가 분명해진다.
조선 개국의 근원지가 된 태조의 5代祖 이양무의 묘소는 「용비어천가」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천하의 명당에 들어 있다. 「하늘의 뜻」이 결코 허황한 치장이 아니었음을 이 무덤 하나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왕조사의 첫머리가 설화로 시작되듯이 우리나라의 개국설화, 혹은 권력 창출의 이면에는 유독 무덤과 관련 있는 설화가 많다. 준경묘가 강원도 삼척의 두타산 골짜기 깊은 골 속의 천하명당에 들게 된 기연도 일반적인 무덤설화의 한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무덤의 후손이 積德(적덕)한 결과 (혹은 우연히) 道人(도인)을 만나게 되고 그 도인의 점지로 명당을 얻게 되었으며, 명당의 발복으로 후손이 최고의 권력을 쥐게 된다는 일련의 틀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官妓 두고 다투다가 全州에서 三陟으로 피신한 穆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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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太祖 李成桂. |
全州(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시대의 李翰(이한)으로 현재 전주시 풍남동에 그의 위판을 봉안한 肇慶廟(조경묘)가 있다. 이는 英祖(영조) 때(1771) 왕가 시조의 발상지를 기리기 위해 유생들의 상소로 창건한 묘이다.
李成桂의 4代祖(高祖 할아버지) 李安社(이안사: 뒤에 穆祖로 추존)는 전라북도 전주의 호족이었다. 성격이 호탕했던 이안사는 「애기」라는 이름의 官妓(관기)를 사랑하여 아꼈다.
고려 고종 18년(1231) 山城別監(산성별감)이 새로 부임해 오자 전주의 호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별감을 환영하는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애기는 연인인 이안사의 곁에만 앉아 술시중을 들었는데, 술김에 애기의 미모와 가무 솜씨를 보고 심란해진 별감이 애기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 앉혔다. 그러나 애기는 별감에게 시중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곧 이안사의 옆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심기가 뒤틀린 별감이 이안사에게 시비를 걸었다.
『관기를 어느 자가 독점하고 있느냐. 빨리 내놓지 못할까』
이안사도 만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관기는 산성별감 따위의 전용물이 아니오. 본부 사또의 명이 있다면 모를까 함부로 독점하려 하지 마시오. 산성별감은 산성이나 지키면 그만이지 언제부터 관기까지 감독하게 되었소?』
모욕을 당한 별감이 달려가 이안사에게 손찌검을 했고, 이안사도 지지 않고 맞받아쳐 술자리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이안사는 애기의 손을 잡고 난장판을 떠났다.
이 일을 전해 들은 본관 사또가 「관리에게 모욕을 준 죄」로 이안사를 죽이려 했다. 애기로부터 그 정보를 들은 이안사는 가솔을 이끌고 전주를 떠났다. 이때 그를 따라나선 백성이 170여 호나 되었다고 한다. 인심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老僧이 점지해 준 君王地
전주를 떠나 동북쪽으로 길을 잡은 이안사 일행은 경상도 내륙을 거쳐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 울진에서 동해안을 끼고 삼척에 도착, 오십천을 끼고 산골짜기로 들어가 지금의 활기리에 정착했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고생을 하다가 이안사의 부친 이양무가 세상을 떠났다. 평소 「비결」을 숭상해 온 이안사는 부친의 무덤자리를 찾기 위해 산을 헤집고 다니다가 어느 산자락에서 노곤하여 잠이 들었다. 꿈에 한 老僧(노승)과 상좌가 지척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생시처럼 이안사의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노승이 말했다.
『이곳에 묘를 쓰면 5代 후에 왕이 나겠구나』
상좌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자리가 君王地입니까?』
『허어, 큰소리 내지 마라. 누가 듣겠다』
『이 깊은 산중에 누가 있어 듣는단 말입니까?』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느냐』
상좌는 입을 다물었고, 두 사람은 바람처럼 멀어졌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멀리 사라져 가는 노승과 상좌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안사는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가 노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방금 지나가시면서 하시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침 先親(선친)의 묏자리를 찾아 헤매던 중이었습니다. 저에게 그 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노승은 『그런 얘기 한 일 없다』고 딱 잘라서 부인했다. 그러나 이안사가 집요하게 간청하자 『허어, 참, 명당은 주인이 따로 있는 모양』이라고 한탄하고 말문을 열었다.
『가르쳐 주겠으나 그 자리를 쓰려면 꼭 지켜야 할 일이 있으니 이를 지킬 수 있겠소?』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승은 묏자리를 가르쳐 주면서 일렀다.
『당신이 이 자리의 주인인 듯하나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 있소. 이곳에 묘를 쓰자면 開土祭(개토제)에 소 100마리를 잡아야 하고, 관은 금으로 만든 것을 써야 하오. 그리고 장사를 지낼 때는 술 100동이를 쓰시오. 묘지의 坐向(좌향)은 辛坐乙向(신좌을향)으로 해야 하고.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오늘밤이라도 이 자리에 달걀 하나를 묻어 놓고 멀리서 지켜보시오』
이안사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노승과 상좌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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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祖와 繼妃 정순왕후가 묻힌 元陵. |
百牛金棺의 전설
그날 밤 이안사는 달걀 한 개를 노승이 점찍어 준 혈에다 묻어 놓고 멀리서 지켜보았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가까워지자 달걀을 묻어 둔 자리에서 수탉이 홰를 치며 울었다. 닭 울음소리가 심산유곡을 흔들자 이안사는 무릎을 치며 돌아와 장례 치를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고민이었다. 새 정착지에서 살기도 버거운데 소 100마리가 어디 있고 금으로 된 관은 또 어떻게 만들 것이며, 술 100동이는 어디서 구해 오는가. 모두 불가능한 것들뿐이었다.
궁리 끝에 이안사는 마침 처가(이안사의 처가가 삼척이었다)에 흰 소가 한 마리 있는 것을 생각해 내고 장인에게 간청하여 그것을 잡아 開土祭에 썼다. 金棺(금관) 대신 금빛이 나는 밀짚으로 관을 쌌고, 술은 전주에서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로부터 한 집에 한 동이씩 추렴하여 100동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으나 곤궁한 처지는 당장 풀릴 길이 없었다. 惡緣(악연)이 계속되어 지난날 전주에서 기생 하나를 두고 다투었던 산성별감이 이번에는 강릉도호부로 옮겨 왔다.
이안사는 별감에게 자신의 정체가 탄로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다시 가솔을 거느리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함경도 경흥으로 피신한 이안사는 여기서도 머물지 못하고 의주와 덕원으로 옮겨 元나라 치하에 들어가 군사 5000명을 거느리는 다루하치 벼슬을 했다.
그 아들(度祖) 역시 元나라 벼슬과 고려의 벼슬을 번갈아 지냈다. 이안사(穆祖)의 손자인 李子春(이자춘·桓祖))도 元나라의 관리였으나 恭愍王(공민왕) 4년(1355) 고려 조정에 내알하여 소부윤의 벼슬을 받았다. 이어 雙城摠管府(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지금의 함북지방을 회복하고 고려 조정으로부터 동북면 병마사의 직을 받았다.
이자춘의 아들 李成桂는 고려의 武將(무장)으로 활약하다가 마침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창업한다. 도인인 노승의 말대로 『5代 후 왕이 난다』는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君弱臣强을 예고한 준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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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成桂의 4代祖인 李安社의 母親이 묻힌 永慶墓. |
이 분지가 바로 이안사가 잠을 자다가 꿈인 듯 생시인 듯 노승을 만났던 그 자리이고, 바로 그 자리에 이안사의 부친이자 李成桂의 5代祖인 이양무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500년을 이어 간 왕조를 탄생시킨 바로 그 근원지다.
이안사가 함경도로 옮겨 간 이후 李成桂 이전까지 선조들이 묻혀 있는 함흥 등지의 무덤들은 확인해 볼 길이 없다. 李成桂의 아버지 이자춘의 묘소인 定陵(정릉)은 당시 행각승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의 대화를 엿듣고 함흥군 동면 경흥리에 조성했다고 하나, 현재로서는 그 좋고 나쁨을 확인할 길이 없다. 대체로 조선왕조의 탄생 발복지는 준경묘라는 것이 풍수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그만큼 이 무덤이 풍수학도들의 찬탄을 자아낼 만큼 절묘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主山인 두타산에서 용맥이 오른쪽으로 흐르다가 서북에서 남쪽으로 꺾어지는 통맥법상의 이상적인 형국을 자아냈고, 左靑龍 右白虎(좌청룡 우백호)가 뚜렷한 가운데 靑龍보다 白虎가 강하여 앞으로 휘어 감았으니 흔히 이 무덤을 「猛虎出林形(맹호출림형)」이라고 한다. 무덤의 한가운데로 강한 氣(기)가 살아 있으니, 이 무덤의 주인은 조선 왕조의 쇠락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다만 結因(결인)이 뚜렷하지 않아 君弱臣强(군약신강)의 불안한 王權을 예고하고 있었고, 辛坐乙向이 주로 長子를 제쳐 놓고 之次들이 발복하는 자리(李成桂도 李子春의 둘째 아들이다)인 것이 흠이다.
그러나 맹호출림형의 당당한 기상과 강한 氣脈(기맥)은 500년 王朝를 창업하고, 역대 왕들 이외에 문과 급제자 873명, 정승 22명, 대제학 7명을 배출해 전주이씨를 우리나라 최대 명문으로 도약시켜 그 運氣가 오늘에까지 그치지 않으니, 大河長江(대하장강)이 심산유곡의 작은 샘에서 근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太祖에서 翼宗까지 묻힌 東九陵
준경묘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이안사의 모친이 잠들어 있는 永慶墓(영경묘)가 있다. 영경묘는 풍수상 평범한 무덤일 뿐이었는데 바로 그 영경묘 제각의 계단 앞에 東向(동향)으로 진혈이 빈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좋은 혈을 두고 왜 하필이면 일부러 비켜나듯이 자리 아닌 곳에 무덤을 썼을까.
옛 무덤들, 특히 왕들의 능이나 왕족의 묘를 찾아볼 때마다 옛날 풍수들이 실수를 많이 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임금이나 왕족이 좋은 자리에 들지 못하도록 음해하는 세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왕과 왕비의 무덤들은 하나같이 자리를 비켜나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太祖 李成桂의 무덤을 필두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능 9基가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東九陵을 들 수 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산14번지. 머지않아 도심 한가운데 놓이게 될 정도로 시가지에 둘러싸여 있는 동구릉은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소쿠리처럼 넓게 감싸 안은 산세 속에 모두 9基의 왕과 왕비의 능묘들이 오순도순 가족묘를 이루고 있다. 살아 있는 능묘의 집합처이고 역사의 증언대이다.
이곳에서 주인은 역시 太祖 李成桂의 무덤인 健元陵이다. 太宗 8년 太祖가 사망하자 太宗은 한양 인근에서 좋은 묏자리를 물색하다가 검교참찬 의정부사 金仁貴(김인귀)의 추천으로 오늘날의 동구릉 자리를 결정했다. 이 자리를 결정한 것은 한양 천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河崙(하륜)의 의견이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無學(무학)대사가 太祖 생전에 점지해 둔 자리라고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9陵이라고 하나 9基의 능이 일시에 만들어질 수는 없다. 시작은 조선 개국의 첫 임금인 太祖였으나 최종적으로 9基의 무덤이 조성된 것은 哲宗(철종) 6년(1855)에 翼宗(익종)의 능인 綏陵(수릉)이 조성된 때였으니, 조선조 개국에서부터 말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조성된 무덤들이다. 이곳을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 있다.
능의 주인들을 살펴보면 太祖의 健元陵, 5代 文宗(문종)의 顯陵(현릉), 18代 顯宗(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가 묻힌 崇陵(숭릉), 20代 景宗(경종)의 비 단의왕후가 묻힌 惠陵(혜릉), 21代 英祖(영조)와 계비 정순왕후가 묻힌 元陵(원릉), 23代 純祖(순조)의 世子인 추존왕 翼宗과 신정왕후가 묻힌 綏陵, 24代 憲宗(헌종)과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가 묻힌 景陵(경릉)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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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肅宗의 陵인 明陵. |
실혈의 표본 建元陵
하지만 동구릉은 풍수상으로는 잘못 잡은 자리의 표본이었다. 하륜의 풍수 지식은 당대 최고의 경지였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이런 곳에 太祖의 능을 조성하기로 작정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곳은 능의 자리로 갖추어야 할 형국이 아니었다. 우선 左右의 靑龍·白虎가 기운 없이 벌어졌고 안산이 뚜렷하지 않다. 主山의 용맥이 뻗어 내려온 산줄기마다 능이 조성되어 있는데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휘감는 생기가 없었다. 능마다 氣가 살아 있는 진혈을 발견할 수 없었다. 太祖의 건원릉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건원릉은 와우형으로 通脈法上(통맥법상) 명당이 나올 자리였고 실제로 건원릉 바로 뒷자리(癸坐丁向·계좌정향)에 생기처가 있어 君王地가 분명하다. 여기까지 형국을 좇아 자리를 잘 골라 놓고서도 마지막 혈을 놓쳤으니 흔히 보는 실혈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게다가 來龍(내룡) 정중앙의 龍脊(용척)에 능을 놓아 능 한가운데로 水脈(수맥)이 흐르니 조선시대 葬法(장법)의 치명적인 결함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무덤이었다. 결인에서 혈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고 蟬翼(선익)도 없었다. 하륜이 이 자리를 결정한 이유를 필자는 아무래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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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宗대왕이 묻힌 英陵. |
西五陵에도 君王地는 없어
동구릉에 비견할 만한 王家의 陵群(능군)이 또 한 군데 있으니 西五陵(서오릉)이다. 생전에 스스로 풍수의 전문가임을 과시했던 世祖(세조)가 재위 3년에 의경세자(德宗으로 추존)가 죽자 아들을 위해 이곳에다 敬陵(경릉)을 조성한 것이 서오릉의 시작이었다.
이어 8代 睿宗과 계비 안순왕후, 19代 肅宗과 정비 인경왕후,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 그리고 숙종이 사약을 내렸던 장희빈의 묘소 등 숙종과 그의 부인 4명의 무덤이 모두 여기 있어 한 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혀 있다.
왕과 왕후의 무덤을 능이라 하고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왕의 부모 묘소를 園(원)이라 하며, 그외 왕족과 후궁들의 묘소는 그냥 墓(연산군·광해군과 같이 폐위된 왕들의 무덤도 묘로 격하했다)라 칭했는데, 서오릉에는 명종의 첫째 아들 순희세자의 무덤인 순창원과 英祖의 후궁으로 사도세자를 낳은 영빈이씨의 무덤인 수경원이 이 울타리 안에 함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君王地는 고사하고 명당이라 할 만한 곳에 자리 잡은 능·원·묘는 한 군데도 없었다.
조선왕조의 능묘는 당연히 수도였던 한양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능묘는 모두 109基다. 그중 능이 44基, 원 13基, 묘 52基다.
그중에서 명당이라 할 만한 것은 여주의 세종대왕릉(英陵·영릉), 世祖가 직접 자신의 누울 자리를 고른 光陵(광릉), 그리고 仁祖(인조)의 長陵(장릉)과 현재의 동작동 국립묘지 안에 있는 창빈 안씨(宣祖의 생모)의 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4基도 명당이기는 하나 君王地는 아니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묘소가 없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들이 한결같이 군왕지에 들지 못했다는 것은 조선조의 운명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풍수상의 징후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면 吏曹(이조)에서 殯殿都監(빈전도감), 國葬都監(국장도감), 山陵都監(산릉도감) 등 3개 부서의 도감을 설치·운영했다. 그야말로 거국적인 행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3개 도감마다 提調(제조)가 임명되고, 3명의 提調를 총괄·지휘하는 소임은 좌의정이 맡았다. 국내 최고의 풍수를 相地官(상지관)으로 하고 이 상지관이 택지를 정하면 왕이 친히 나아가 살펴보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조선의 왕들이 하나같이 명당에 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해 보건데 택지 선정 때 提調와 議政府(의정부)에서 중구난방의 의견을 내놓았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최고의 陰宅을 정하는 것보다 黨派(당파)의 고집과 계산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 풍수와 관련된 마지막 일화는 흥선대원군의 몫이다. 당시 유명한 풍수 鄭萬仁(정만인)이 『충청도 예산의 가야산 동쪽에 2代에 걸쳐 天子가 나올 자리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萬代의 영화를 누릴 자리가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대원군이 3년에 걸쳐 정만인을 수소문하여 마침내 만났다.
대원군, 연천의 부친 묘를 예산으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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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宗·純宗의 두「皇帝」를 낳게 했다는 남연군墓. |
그러나 정만인이 君王地로 알려 준 자리에는 이미 가야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었다. 이구의 유해는 일단 절 근처에 假埋葬(가매장)했다가 후일 절을 불태워 철거해 버리고 문제의 명당을 점유할 수 있었다.
이곳에 남연군이 누운 후 자손 중에서 高宗·純宗의 2代에 걸쳐 왕이 탄생(高宗과 純宗은 「大韓帝國」으로 국호를 변경한 후 황제로 호칭했다)했으니 『2代 天子가 나올 곳』이라던 예언이 적중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기 위해 파헤친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대원군의 서양인에 대한 증오심에 불이 당겨졌다. 이로 인하여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예산 군왕지가 역사에 끼친 선악은 단순한 셈법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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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宗이 묻힌 洪陵. |
땅을 파보니 「五百年 權措地(오백년 권조지)」라는 표석이 나왔다 하여 지관들이 천하명당 「梅花落地形(매화낙지형)」이라고 의기양양 천거했다. 高宗도 기분이 좋아 그 자리(乙坐辛向)를 결정했는데 사실은 胎交(태교)가 이루어지지 못한 子孫敗絶之地(자손패절지지)였다. 즉 안산만 화려한 虛花假局(허화가국)이었다.
1926년 純宗이 崩御(붕어)하자 이번에도 김기응·김광석 등 국풍들이 高宗의 홍릉 부근을 八騎龍穴(팔기용혈)이라고 천거하여 裕陵(유릉)을 조성했다. 이 자리도 태교가 이루어지지 못한 땅이요, 취수장을 방불케 하는 水脈이니 왕의 능이 아니라 일반인도 묘를 쓸 자리가 아니었다. 「조선조의 國運(국운)이 다하여 하늘이 주지 않고(天不胎) 땅이 받지 않는다(地不受)」는 증거였다. 이른바 국풍이라 불리던 풍수들이 그 정도의 상식도 갖추지 못했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실수의 연속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