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게이트」 개봉 박두
- 李重根 회장이 지난 4월8일 저녁 구속 수감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터질 줄 알았다』(大檢에 근무했던 한 검사).
중견 건설업체인 부영의 1200억원대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金大中 정권 실세를 비롯한 與野 정치인을 겨냥한 「부영 게이트」로 확대될 조짐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월6일 『부영 비자금 사건은 게이트 수준』이라며 『총선 이후 (大檢 중수부가) 무척 바빠질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상당수의 政官界 인사에게 부영의 불법자금이 유입된 흔적을 포착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깜짝 놀랄 일도 있을 것』이라며 거물급 정치인이 포함돼 있음을 암시했다.
검찰이 이처럼 총선 기간 중 불거진 「부영 게이트」가 단순한 정치자금 사건 이상의 대형사건임을 언급함에 따라 부영 측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어 온 것으로 알려진 정치세력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 확대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정치세력은 金大中 정권 당시의 여당이었던 現 민주당 쪽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영은 金大中 정권에 들어서서 급성장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도급 순위가 70∼80위권이었던 부영은 金大中 정권을 거치면서 도급 순위 18위까지 뛰어올랐다. 그동안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부영에 대한 특혜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됐고, 부영의 李重根(이중근·63) 회장이 동교동계 정치인들의 「돈줄」이라는 의혹이 무성했다.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는 부영의 불법자금이 金大中 정부의 실세들이었던 동교동계를 넘어서 동교동계의 「장학생」으로 불린 現 정권의 실세들에게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現 정권의 실세 중 누군가가 부영의 불법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총선 이후 여당의 세력 구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확인된 비자금만 270억원
검찰 주변에선 지난 민주당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부영의 돈을 받았다는 舊여권 및 現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은 주택사업 과정에서 李회장이 확보해 보관 중인 국민주택 채권이 수천억원을 상회한다는 첩보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무성했던 부영의 정치권 全방위 로비 실체는 바야흐로 개봉 박두인 셈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安大熙)는 지난 4월8일 27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조세포탈) 등으로 (주)부영의 李重根 회장을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이혜광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고 비자금 규모가 영장에 기재된 270억원보다 훨씬 커질 여지가 있는데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李회장은 1996년부터 2001년 사이 협력업체에 지급할 공사대금을 부풀리는 방식 등으로 270억원 상당의 회사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74억원의 조세를 포탈했다.
李회장은 270억원의 돈을 150여 개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해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李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가 영장에 적시된 270억원보다 훨씬 많은 1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보강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李회장이 1998∼2000년 회사에 납입한 유상증자 대금 695억원 중 650억여원을 비자금으로 마련했다』는 부영의 자금담당 사장의 진술을 확보한 데 이어, 최근 李회장에게서 580억원 상당의 채권을 넘겨받아 출처를 캐고 있다.
검찰은 李회장의 구속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피의자가 조성한 비자금이 1200억원 가량 되지 않느냐』고 추궁한 뒤 『(李회장이) 개인 돈이라고 주장하는 300억원을 빼더라도 비자금의 규모는 최소 800억∼900억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李회장은 검찰의 신문 내용을 일부 부인하면서 『개인 돈 300억원 외에 채권 580억원은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지난 3월30일 회삿돈 270억원을 횡령한 혐의만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李회장에 대해 『부영과 협력업체인 광영토건의 주식 전부를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이 소유하고 있어 회사자금을 횡령했다고 하더라도 비난 가능성이 약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며 李회장의 영장을 기각했었다. 그러나 74억원의 조세 포탈 혐의가 보강된 검찰의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검찰의 손을 들어 줬다.
李회장은 손길승 前 SK그룹 회장에 이어 불법 大選자금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두 번째 기업인이 됐다.
현재 검찰이 쫓고 있는 것은 李회장이 150개의 차명계좌로 관리했다는 270억원대 비자금의 사용처다. 검찰은 李회장이 국민주택 채권으로 보관하다가 수사 시작 이후 임의 제출한 130억원이 문제의 270억원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나머지 140억원의 용처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문효남 大檢 수사기획관은 『李씨로부터 비자금 중 일부로 추정되는 130억원어치의 채권을 임의제출받았다』면서 『與野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등 나머지 비자금의 용처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추가 영장범죄 사실에는 제외됐지만 검찰은 『270억원 외에 650억원대의 비자금이 조성돼 증자대금으로 납입됐다』는 자금 담당 사장의 진술을 확보했다. 특히 검찰은 비자금으로 조성된 증자대금 650억원 중 일부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계좌추적을 진행 중이다.
결국 부영의 비자금 1230억원은 증자대금으로 납입됐다는 650억원과 검찰이 확보한 채권 580억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검찰이 추적 중인 비자금 270억원은 전체 비자금 1200억원의 일부라는 것이다.
문제의 270억원 중 채권 130억원은 검찰이 확보한 채권 580억원의 일부로 보이는 만큼 불법 정치자금에 유용됐을 비자금의 규모는 270억원에서 130억원을 뺀 14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140억원은 부영 측이 증자대금이라고 해명한 650억원과 겹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검찰은 부영이 인허가 관련 청탁과 함께 김모 前 남양주시장 등에게 「뇌물성 금품」을 제공한 단서를 포착했으며 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영 사건이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불법 大選자금뿐만 아니라 건설 인·허가를 둘러싼 지방자치단체 및 중앙부처와 이 기관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 정치인 등에 대한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부영과 DJ 정권]
李重根 회장이 1983년 설립한 부영은 20여 년간 임대주택 전문 건설회사로 명성을 쌓아 왔다. 그동안 부영이 건설한 임대주택은 전국에 걸쳐 14만여 가구에 달하며 이에 힘입어 1998년에는 주택건설 실적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공사 중인 아파트만 전국 2만5000여 가구에 달하며 年內 입주단지도 경남 김해와 충북 청주 등 13개 단지 7500여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가 부영의 뒤 봐주고 있다」
부영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도급 순위가 70~80위권에 머물렀지만 임대주택사업 확대를 통해 DJ 정권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도급 순위가 18위까지 뛰어올랐다. 물론 부영 측은 『YS 정권 때인 1994년에도 주택공급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었고, 도급 순위 상승은 다른 업체가 꺼리는 임대아파트 건설에 주력했기 때문』이라며 정권 후원說을 반박하고 있다.
작년 기준 年間 매출액이 3316억원인 부영은 10만 가구에 이르는 임대주택이 분양으로 전환되면 수조원의 돈이 들어오게 되는 등 미래 가치는 어느 회사보다 탄탄하다.
부영이 주력하는 임대주택사업의 경우, 대형 건설업체들로부터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지만 家口당 3500만∼4000만원의 국민주택기금이 지원되는 만큼 잘만 활용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임대주택사업은 가구당 20평형 2000만원에서 40평형 3500만∼4000만원의 국민주택기금이 지원된다.
부영은 이에 착안, 임대주택사업에 집중 투자했으며 DJ 정부 시절에는 임대주택사업에 지원되는 국민주택기금 가운데 절반 가량을 독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교동계」가 부영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으며, DJ정부 시절 건설교통부 국정 감사 때 부영이 국민주택기금을 특혜 대출받았다는 의혹을 의원들이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부영은 「이용호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金大中 前 대통령의 「집사」로 불린 李守東 前 아태재단 상임이사에게 6000만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李회장이 동교동계의 돈줄이라는 항간의 의혹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당시 수사팀의 관계자는 『이용호 게이트 연루자 가운데 1명이 李守東씨에게 「돈을 좀 달라」고 요구하자 이수동씨가 이 회장에게 채권을 받아 건네 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이용호 게이트」 때의 수사 기록을 뒤지며 부영이 舊여권 인사들에게 제공한 불법자금의 단서들을 재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李회장은 金大中 前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가 명예총재로 있던 봉사단체인 「사랑의 친구들」 후원회장을 맡았던 배경에 대해서도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李회장이 이희호씨를 통해 金 前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들과 친분을 유지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한 상황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金大中 前 대통령의 집안에서 구설에 오르거나, 사법처리되지 않은 것은 이희호 여사뿐인데 부영 문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李회장이 개인적으로 횡령했다는 비자금 270억원이 조성된 시기가 前 정권 임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도 부영과 과거 정권 간의 친밀도를 가늠하게 만든다.
[李重根 회장은 누구?]
전남 순천 출신인 李重根 회장은 1976년 우진건설 대표로 건설업에 뛰어든 뒤 1983년 부영을 설립, 1994년 부영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고향에서 상경해 고학으로 야간 고교를 졸업한 李회장은 1960년 건국大 정외과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3학년으로 대학 생활을 끝내야 했다.
그러나 1997년 독학사(행정학)로 대학 과정을 마친 뒤 고려大 정책대학원에 진학, 2000년에는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올해 2월에는 고려大에서 「임대주택정책의 효과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당시 임대주택 건설업체 회장이자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李회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임대주책의 정책목표를 재정립해 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주택임대 보증제도와 장기수선 충당금제도 등 임대주택 관련 각종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李회장의 배움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은 전국의 중·고교에 기숙사 등을 지어 주는 장학사업으로 연결됐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李회장은 1991년 고향인 순천에 부영초등학교를 건립해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육영사업에 힘썼다. 자신의 아호를 딴 「우정 학사」라는 이름으로 李회장이 직접 짓거나 공사비를 지원한 학교 기숙사·체육관·도서관 등이 50여 개에 달한다.
이 때문에 부영의 1200억원대 비자금 중 일부인 채권 580억원이 대학 설립을 위해 보관 중이었다는 李회장의 해명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이 의심하는 비자금도 압수된 채권 580억원이 아니라 증자대금에 사용됐다는 650억원의 일부인 것도 李회장의 육영사업 前歷(전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李회장이 DJ 정권 인사들과 밀착돼 있었고 그들의 「돈줄」이라는 의혹에 대한 증거는 李守東 前 아태재단 상임이사에게 건넨 채권 6000만원이 전부가 아니다.
검찰은 2002년 金 前 대통령의 2남 홍업씨가 측근들과 함께 기업체로부터 47억원을 받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李회장의 이름이 거론됐던 사실을 회상하며 李회장과 前 정권 실세와의 연결 고리를 캐고 있다.
[수사 전망]
검찰은 지난 3월8일 불법 大選자금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치인 관련 수사는 4월 총선 때까지 중단하되 기업인 수사는 총선 일정과 무관하게 계속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부영·삼성·현대차·동부 등 4개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 실명을 거론하며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특히 安大熙 중수부장은 『부영의 경우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크다』고 밝혀, 부영 수사는 불법 大選자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검찰이 당장 칼을 뽑아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루자가 지난 정권의 호남 중진 실세 등 야당에 많을 것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부담인 듯하다. 동교동계의 「적자」 또는 「장학생」으로 불리던 現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총선을 앞두고 튀어나오는 것도 검찰이 우려한 대목이다.
총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大選자금에 관련된 일부 정치인의 최종 처리도 총선 이후로 미룬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인 수사를 한다는 것은 정치권의 공세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것도 수사 속도를 조절하는 이유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李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총선 기간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극도로 말조심을 했다. 安 중수부장은 『수사와 정치랑 연결시키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3월부터 李회장 신병처리 문제와 수사 확대를 놓고 상당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영 게이트, 「태풍의 핵」이 될 듯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수사 확대는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측면이 고려됐으나, 비리 단서가 확보된 이상 수사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安중수부장은 지난 4월6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9일 후에 보자』라는 말도 했으며, 이는 총선 이후 이른바 「부영 게이트」가 터질 것이라는 「예고」로 해석되고 있다.
검찰은 부영 수사 착수 당시 『與野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단서가 포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의혹으로 나도는 내용들이 (수사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다』며 이미 상당 수준으로 수사가 진척됐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른바 「부영 게이트」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 영장이 청구되는 순간까지 李회장의 입에서 거론된 정치인이 한 명도 없었다』며 『부영이 지난 정권 동안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에 사용했는지 (李회장이) 철저히 함구한다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安중수부장은 기자들에게 『아직까지는 李회장이 정치권에 불법자금을 건넨 구체적 단서가 포착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비자금 조성 방법 및 규모를 실토한 부영 자금담당 임원의 진술 등을 토대로 비자금의 용처를 추적 중이지만 李회장의 함구로 수사 진척은 더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李회장이 정치권 등에 건넸을 자금의 종류가 추적이 어려운 현금이나 채권이라면 수사는 더욱 어려워진다.
검찰은 채권과 증자납입 대금이라는 1200억원 외 현금으로 수억원씩 여러 차례 빠져 나간 단서를 잡고 그 용처를 추적 중이지만 李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기업과는 달리, 부영처럼 오너가 정치권에 직접 로비를 벌인 기업일수록 불법자금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를 아는 사람이 드물게 마련이다. 따라서 확실한 증거로 李회장의 자백을 받아내지 못할 경우, 수사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평소 신중한 검찰 관계자의 입에서 『총선 이후 바빠질 것』, 『부영은 게이트 수준』 등의 발언이 나온 것에 비춰 볼 때, 「부영 게이트」가 총선 이후 정국을 뒤흔들 「태풍의 핵」이 될 가능성은 충분한 상황이다.●
중견 건설업체인 부영의 1200억원대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金大中 정권 실세를 비롯한 與野 정치인을 겨냥한 「부영 게이트」로 확대될 조짐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월6일 『부영 비자금 사건은 게이트 수준』이라며 『총선 이후 (大檢 중수부가) 무척 바빠질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상당수의 政官界 인사에게 부영의 불법자금이 유입된 흔적을 포착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깜짝 놀랄 일도 있을 것』이라며 거물급 정치인이 포함돼 있음을 암시했다.
검찰이 이처럼 총선 기간 중 불거진 「부영 게이트」가 단순한 정치자금 사건 이상의 대형사건임을 언급함에 따라 부영 측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어 온 것으로 알려진 정치세력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 확대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정치세력은 金大中 정권 당시의 여당이었던 現 민주당 쪽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영은 金大中 정권에 들어서서 급성장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도급 순위가 70∼80위권이었던 부영은 金大中 정권을 거치면서 도급 순위 18위까지 뛰어올랐다. 그동안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부영에 대한 특혜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됐고, 부영의 李重根(이중근·63) 회장이 동교동계 정치인들의 「돈줄」이라는 의혹이 무성했다.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는 부영의 불법자금이 金大中 정부의 실세들이었던 동교동계를 넘어서 동교동계의 「장학생」으로 불린 現 정권의 실세들에게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現 정권의 실세 중 누군가가 부영의 불법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총선 이후 여당의 세력 구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확인된 비자금만 270억원검찰 주변에선 지난 민주당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부영의 돈을 받았다는 舊여권 및 現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은 주택사업 과정에서 李회장이 확보해 보관 중인 국민주택 채권이 수천억원을 상회한다는 첩보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무성했던 부영의 정치권 全방위 로비 실체는 바야흐로 개봉 박두인 셈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安大熙)는 지난 4월8일 27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조세포탈) 등으로 (주)부영의 李重根 회장을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이혜광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고 비자금 규모가 영장에 기재된 270억원보다 훨씬 커질 여지가 있는데다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李회장은 1996년부터 2001년 사이 협력업체에 지급할 공사대금을 부풀리는 방식 등으로 270억원 상당의 회사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74억원의 조세를 포탈했다.
李회장은 270억원의 돈을 150여 개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해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검찰은 李회장이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가 영장에 적시된 270억원보다 훨씬 많은 1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보강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李회장이 1998∼2000년 회사에 납입한 유상증자 대금 695억원 중 650억여원을 비자금으로 마련했다』는 부영의 자금담당 사장의 진술을 확보한 데 이어, 최근 李회장에게서 580억원 상당의 채권을 넘겨받아 출처를 캐고 있다.
검찰은 李회장의 구속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피의자가 조성한 비자금이 1200억원 가량 되지 않느냐』고 추궁한 뒤 『(李회장이) 개인 돈이라고 주장하는 300억원을 빼더라도 비자금의 규모는 최소 800억∼900억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李회장은 검찰의 신문 내용을 일부 부인하면서 『개인 돈 300억원 외에 채권 580억원은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 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지난 3월30일 회삿돈 270억원을 횡령한 혐의만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李회장에 대해 『부영과 협력업체인 광영토건의 주식 전부를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이 소유하고 있어 회사자금을 횡령했다고 하더라도 비난 가능성이 약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며 李회장의 영장을 기각했었다. 그러나 74억원의 조세 포탈 혐의가 보강된 검찰의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검찰의 손을 들어 줬다.
李회장은 손길승 前 SK그룹 회장에 이어 불법 大選자금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두 번째 기업인이 됐다.
현재 검찰이 쫓고 있는 것은 李회장이 150개의 차명계좌로 관리했다는 270억원대 비자금의 사용처다. 검찰은 李회장이 국민주택 채권으로 보관하다가 수사 시작 이후 임의 제출한 130억원이 문제의 270억원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나머지 140억원의 용처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문효남 大檢 수사기획관은 『李씨로부터 비자금 중 일부로 추정되는 130억원어치의 채권을 임의제출받았다』면서 『與野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등 나머지 비자금의 용처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추가 영장범죄 사실에는 제외됐지만 검찰은 『270억원 외에 650억원대의 비자금이 조성돼 증자대금으로 납입됐다』는 자금 담당 사장의 진술을 확보했다. 특히 검찰은 비자금으로 조성된 증자대금 650억원 중 일부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계좌추적을 진행 중이다.
결국 부영의 비자금 1230억원은 증자대금으로 납입됐다는 650억원과 검찰이 확보한 채권 580억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검찰이 추적 중인 비자금 270억원은 전체 비자금 1200억원의 일부라는 것이다.
문제의 270억원 중 채권 130억원은 검찰이 확보한 채권 580억원의 일부로 보이는 만큼 불법 정치자금에 유용됐을 비자금의 규모는 270억원에서 130억원을 뺀 14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140억원은 부영 측이 증자대금이라고 해명한 650억원과 겹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검찰은 부영이 인허가 관련 청탁과 함께 김모 前 남양주시장 등에게 「뇌물성 금품」을 제공한 단서를 포착했으며 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영 사건이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불법 大選자금뿐만 아니라 건설 인·허가를 둘러싼 지방자치단체 및 중앙부처와 이 기관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 정치인 등에 대한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부영과 DJ 정권]
李重根 회장이 1983년 설립한 부영은 20여 년간 임대주택 전문 건설회사로 명성을 쌓아 왔다. 그동안 부영이 건설한 임대주택은 전국에 걸쳐 14만여 가구에 달하며 이에 힘입어 1998년에는 주택건설 실적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공사 중인 아파트만 전국 2만5000여 가구에 달하며 年內 입주단지도 경남 김해와 충북 청주 등 13개 단지 7500여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가 부영의 뒤 봐주고 있다」부영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도급 순위가 70~80위권에 머물렀지만 임대주택사업 확대를 통해 DJ 정권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도급 순위가 18위까지 뛰어올랐다. 물론 부영 측은 『YS 정권 때인 1994년에도 주택공급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었고, 도급 순위 상승은 다른 업체가 꺼리는 임대아파트 건설에 주력했기 때문』이라며 정권 후원說을 반박하고 있다.
작년 기준 年間 매출액이 3316억원인 부영은 10만 가구에 이르는 임대주택이 분양으로 전환되면 수조원의 돈이 들어오게 되는 등 미래 가치는 어느 회사보다 탄탄하다.
부영이 주력하는 임대주택사업의 경우, 대형 건설업체들로부터는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지만 家口당 3500만∼4000만원의 국민주택기금이 지원되는 만큼 잘만 활용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임대주택사업은 가구당 20평형 2000만원에서 40평형 3500만∼4000만원의 국민주택기금이 지원된다.
부영은 이에 착안, 임대주택사업에 집중 투자했으며 DJ 정부 시절에는 임대주택사업에 지원되는 국민주택기금 가운데 절반 가량을 독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교동계」가 부영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으며, DJ정부 시절 건설교통부 국정 감사 때 부영이 국민주택기금을 특혜 대출받았다는 의혹을 의원들이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부영은 「이용호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金大中 前 대통령의 「집사」로 불린 李守東 前 아태재단 상임이사에게 6000만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李회장이 동교동계의 돈줄이라는 항간의 의혹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당시 수사팀의 관계자는 『이용호 게이트 연루자 가운데 1명이 李守東씨에게 「돈을 좀 달라」고 요구하자 이수동씨가 이 회장에게 채권을 받아 건네 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이용호 게이트」 때의 수사 기록을 뒤지며 부영이 舊여권 인사들에게 제공한 불법자금의 단서들을 재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李회장은 金大中 前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가 명예총재로 있던 봉사단체인 「사랑의 친구들」 후원회장을 맡았던 배경에 대해서도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李회장이 이희호씨를 통해 金 前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들과 친분을 유지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한 상황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金大中 前 대통령의 집안에서 구설에 오르거나, 사법처리되지 않은 것은 이희호 여사뿐인데 부영 문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李회장이 개인적으로 횡령했다는 비자금 270억원이 조성된 시기가 前 정권 임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도 부영과 과거 정권 간의 친밀도를 가늠하게 만든다.
[李重根 회장은 누구?]
전남 순천 출신인 李重根 회장은 1976년 우진건설 대표로 건설업에 뛰어든 뒤 1983년 부영을 설립, 1994년 부영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고향에서 상경해 고학으로 야간 고교를 졸업한 李회장은 1960년 건국大 정외과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3학년으로 대학 생활을 끝내야 했다.
그러나 1997년 독학사(행정학)로 대학 과정을 마친 뒤 고려大 정책대학원에 진학, 2000년에는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올해 2월에는 고려大에서 「임대주택정책의 효과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당시 임대주택 건설업체 회장이자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李회장은 자신의 논문에서 『임대주책의 정책목표를 재정립해 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주택임대 보증제도와 장기수선 충당금제도 등 임대주택 관련 각종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李회장의 배움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은 전국의 중·고교에 기숙사 등을 지어 주는 장학사업으로 연결됐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李회장은 1991년 고향인 순천에 부영초등학교를 건립해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육영사업에 힘썼다. 자신의 아호를 딴 「우정 학사」라는 이름으로 李회장이 직접 짓거나 공사비를 지원한 학교 기숙사·체육관·도서관 등이 50여 개에 달한다.
이 때문에 부영의 1200억원대 비자금 중 일부인 채권 580억원이 대학 설립을 위해 보관 중이었다는 李회장의 해명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이 의심하는 비자금도 압수된 채권 580억원이 아니라 증자대금에 사용됐다는 650억원의 일부인 것도 李회장의 육영사업 前歷(전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李회장이 DJ 정권 인사들과 밀착돼 있었고 그들의 「돈줄」이라는 의혹에 대한 증거는 李守東 前 아태재단 상임이사에게 건넨 채권 6000만원이 전부가 아니다.
검찰은 2002년 金 前 대통령의 2남 홍업씨가 측근들과 함께 기업체로부터 47억원을 받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李회장의 이름이 거론됐던 사실을 회상하며 李회장과 前 정권 실세와의 연결 고리를 캐고 있다.
[수사 전망]
검찰은 지난 3월8일 불법 大選자금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치인 관련 수사는 4월 총선 때까지 중단하되 기업인 수사는 총선 일정과 무관하게 계속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부영·삼성·현대차·동부 등 4개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 실명을 거론하며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특히 安大熙 중수부장은 『부영의 경우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크다』고 밝혀, 부영 수사는 불법 大選자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검찰이 당장 칼을 뽑아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루자가 지난 정권의 호남 중진 실세 등 야당에 많을 것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부담인 듯하다. 동교동계의 「적자」 또는 「장학생」으로 불리던 現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총선을 앞두고 튀어나오는 것도 검찰이 우려한 대목이다.
총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大選자금에 관련된 일부 정치인의 최종 처리도 총선 이후로 미룬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인 수사를 한다는 것은 정치권의 공세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것도 수사 속도를 조절하는 이유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李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총선 기간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극도로 말조심을 했다. 安 중수부장은 『수사와 정치랑 연결시키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3월부터 李회장 신병처리 문제와 수사 확대를 놓고 상당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영 게이트, 「태풍의 핵」이 될 듯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수사 확대는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측면이 고려됐으나, 비리 단서가 확보된 이상 수사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安중수부장은 지난 4월6일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9일 후에 보자』라는 말도 했으며, 이는 총선 이후 이른바 「부영 게이트」가 터질 것이라는 「예고」로 해석되고 있다.
검찰은 부영 수사 착수 당시 『與野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단서가 포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의혹으로 나도는 내용들이 (수사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다』며 이미 상당 수준으로 수사가 진척됐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른바 「부영 게이트」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 영장이 청구되는 순간까지 李회장의 입에서 거론된 정치인이 한 명도 없었다』며 『부영이 지난 정권 동안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디에 사용했는지 (李회장이) 철저히 함구한다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安중수부장은 기자들에게 『아직까지는 李회장이 정치권에 불법자금을 건넨 구체적 단서가 포착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비자금 조성 방법 및 규모를 실토한 부영 자금담당 임원의 진술 등을 토대로 비자금의 용처를 추적 중이지만 李회장의 함구로 수사 진척은 더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李회장이 정치권 등에 건넸을 자금의 종류가 추적이 어려운 현금이나 채권이라면 수사는 더욱 어려워진다.
검찰은 채권과 증자납입 대금이라는 1200억원 외 현금으로 수억원씩 여러 차례 빠져 나간 단서를 잡고 그 용처를 추적 중이지만 李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기업과는 달리, 부영처럼 오너가 정치권에 직접 로비를 벌인 기업일수록 불법자금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를 아는 사람이 드물게 마련이다. 따라서 확실한 증거로 李회장의 자백을 받아내지 못할 경우, 수사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평소 신중한 검찰 관계자의 입에서 『총선 이후 바빠질 것』, 『부영은 게이트 수준』 등의 발언이 나온 것에 비춰 볼 때, 「부영 게이트」가 총선 이후 정국을 뒤흔들 「태풍의 핵」이 될 가능성은 충분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