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러난 부채만 8조원臺… 不實 더 있을 수도
● 과거 30년간 누적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부작용
● 연 3000억원 순익… 채권단ㆍSK그룹 협조하면 정상화 가능
● 잘못 처리하면 한국경제 파탄 난다
● 과거 30년간 누적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부작용
● 연 3000억원 순익… 채권단ㆍSK그룹 협조하면 정상화 가능
● 잘못 처리하면 한국경제 파탄 난다
SK글로벌에서 생긴 一波萬波
지난 2월18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구조조정본부와 계열사 등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SK사태가 석 달을 넘겼다. 유례없는 재벌그룹 심장부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SK그룹과 JP모건 간의 「SK증권 주식 이면거래」 의혹에 대한 참여연대의 고발이 계기였으나, 사건을 수사하면서 종합상사인 SK글로벌이 1조5000억원대의 粉飾(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 一波萬波(일파만파)로 번졌다.
과거 대우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 SK사태는 한국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新정부 출범을 앞두고 「재벌 손보기」 차원에서 시작된 수사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경제계는 바짝 긴장했고, 수사의 적정성 등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재 삼일회계법인 등이 회생 여부 등을 결정하기 위해 부실 정도 등을 점검하는 實査(실사)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9일에는 구속 중인 崔泰源(최태원) SK(주) 회장을 비롯해 孫吉丞(손길승) 그룹회장,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金昌根(김창근) 그룹구조조정본부장 등 SK그룹 최고경영진에 대한 결심공판도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舊態(구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崔회장에게 징역 6년, 孫회장에게 징역 5년, 金본부장에게 징역 4년 등 중형을 구형했다. 변호인들은 과거의 잘못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부작용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경제개발에 공헌했던 被告(피고)들을 선처해 달라고 요청했다.
原油로 엮여 있는 SK(주)의 對外신인도 하락
그러나 SK發(발) 한국경제 危機(위기)사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3일 동안 무려 10조6000억원 가량의 投信(투신)권 펀드 환매사태가 있었고, 外平債(외평채)는 지난 몇 년간 최고치인 2.2%까지 올라갔다. 심리적 공황상태로까지 치달았던 금융시장은 다소 안정을 되찾았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더욱 큰 문제는 아직까지도 SK사태는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을 포함, 채권단만 60여 곳이 넘고, 수많은 협력 업체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게다가 이라크戰이 끝나 한숨 돌리나 했던 한국경제는 세계적인 불황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으로 점점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다. 여기에 SK사태의 처리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對外 신인도까지 하락하는 등 파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SK사태의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SK글로벌이 현재 금융기관에 갚아야 할 빚은 모두 8조6000억원 정도 된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따르면, SK글로벌은 산업은행 1조여 원을 비롯해 수출입은행 6000억원, 하나은행 5500억원, 국민은행 4600여억원 등 은행권에 5조4500억원 정도의 빚을 졌고, 제2금융권인 투자신탁과 증권 등에 8400억원 정도, 보험·기타 기관에 2900억원의 빚이 있다. 국내 채무는 6조5800여억원이고, 해외 채무는 1조9700억원 정도다.
이 밖에 SK글로벌이 그룹계열사인 SK(주)와 SK텔레콤, SKC&C 등에 갚아야 할 채무가 약 2조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채무는 원유도입과 석유제품 판매로 엮여 있는 SK(주)와의 거래에서 파생됐다. SK글로벌의 지분 37.9%를 갖고 있는 대주주인 SK(주)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순매출 채권을 갖고 있다. SK글로벌이 청산될 경우, SK(주)의 피해는 막심하다. 이 때문에 SK글로벌은 343개의 직영주유소를 SK(주)에 매각해 총 1조1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다는 자구계획을 채권단에 제출하기도 했다.
채무관계와 상관없이 SK글로벌 문제로 인한 SK(주)의 처지는 난감하다. 당장 對外 신인도 하락으로 인해 원유수급에 일부 적신호가 켜질 지경이다. SK(주)는 SK글로벌 분식회계가 적발된 직후 원유도입을 위해 발행하던 기한부 어음(유전스)의 한도액이 기존 40억 달러에서 10억 달러 정도 깎였다. 유전스는 수입업체의 수입물품 가격을 은행이 대신 지급해 주고, 일정 기간 후 업체가 물건을 팔아서 은행에 갚도록 하는 어음이다. 일종의 외상거래인데, SK글로벌 사태로 인해 SK(주)가 외상할 수 있는 한도가 줄어든 것이다. SK(주) 관계자들은 『평소 유전스를 한도액의 50% 정도밖에 쓰지 않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숨겨진 不實이 문제
이같은 채무 등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SK글로벌이 빚 갚을 능력만 있으면 아무 상관 없다. 그러나 채권단은 SK글로벌이 갖고 있는 재산이 빚을 갚기에 태부족일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 그럴 것으로 예상하지만, 장부상에는 그럴 듯하게 재산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받을 수 없는 돈이거나 명목뿐인 재산일 경우, SK글로벌은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종이기업)」에 불과하게 된다. SK글로벌의 실사를 맡고 있는 삼일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부채도 부채지만, 지금까지 장부에 기재된 매출규모가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측면이 많아 보인다』고 말한다.
정확한 實査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현재까지 SK글로벌의 부실규모는 대략 6조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이 분식이라고 발표한 1조5000억원, 영화회계법인이 2002년 감사보고서에 추가한 부실자산 4800억원, SK글로벌 본사가 해외법인의 차입금에 대해 지급보증을 섰던 2조4000억원, 해외법인 매출채권 2조9000억원 중 1조4000억원 등이다. SK글로벌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부실자산 규모만큼의 지원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부실규모가 드러나야 지원을 하든 청산을 하든 하겠지만, SK글로벌 부실여파로 채권은행들은 이미 1조원 규모의 貸損(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SK글로벌 협력업체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이번 사태로 인해 3만여 개에 달하는 국내외 협력업체 중 일부 회사가 연쇄 부도위기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이 가장 우려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숨겨진 부실규모다. 국내 부분의 채무관계나 부실 정도는 사실상 거의 드러나있지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해외 부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채무 외에 다른 채무가 있거나, 부실규모가 상상을 뛰어넘을 경우 SK글로벌의 존립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상황에서 지난 4월21일 서울지법 공판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 규모가 지금까지 알려진 1조5000억원 외에 해외 현지법인들이 3조4000억원에 달하는 추가분식을 했다는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날 SK글로벌의 前 재무담당 임원(CFO)인 문덕규 전무는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검찰진술 조서에 보면 SK글로벌 본사 외에 해외법인들의 채무를 분식회계한 규모가 3조4000억원이라고 돼있는데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해외법인은 淸算
그동안 해외 부분에서의 부실규모나 분식 여부 등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SK글로벌 고위 임원의 「증언」은 경제계를 뒤흔들었다. 문전무는 사태가 확산되자, 뒤늦게 『3조4000억원의 분식회계 규모는 채무와 해외법인의 부실규모를 합친 액수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SK 측은 3조4000억원의 대부분은 이미 발표된 SK글로벌 총부채 8조5000억원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가 부실이나 부채규모가 확대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SK 측은 『3조4000억원은 2001년을 기준으로 한 부실금액으로, 2002년에 일부 회수하고 정리를 해서 2002년 현재는 2조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K 측은 『이 중 상당수도 1조5000억원의 국내 분식회계 부분에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鄭萬源(정만원) SK글로벌정상화추진본부장은 전날의 설명과는 다소 다른 해명을 채권단에 가서 했다. 문전무가 언급한 3조4000억원은 해외법인들의 전체적인 부실규모로, 現 시점에서 보면 4조원 가까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결국 SK글로벌의 해외법인을 살리려면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SK 측은 해외법인에 대해 SK글로벌이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돈은 2조4000억원에 그친다고 항변하고 있다. SK글로벌 측은 『최악의 경우, SK글로벌의 해외법인이 지고 있는 부실은 해외법인을 청산하면 다 책임지지 않고, 지급보증을 서 준 액수만큼만 책임지면 된다』며 『그 액수가 2조4000억원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SK의 설명처럼 될 수도 있으나, 이럴 경우 SK그룹의 對外 신인도는 엄청나게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SK의 이름으로 해외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부채를 갚지도 않고 도망치는 기업을 신뢰할 시장은 없다는 비관론도 있다.
결국은 지급보증분뿐만 아니라 나머지 부실에 대해서도 SK글로벌 본사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SK글로벌 해외법인에 대한 처리 문제는 SK그룹이란 이름下에서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孫吉丞 회장, 『술 없이는 잠 못 자는 날 많았다』
SK글로벌이 겉으로 드러난 부채만도 8조원이 넘게 된 데는 과거 1970년대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인한 마이너스 수출 등의 영향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5월9일 열렸던 崔泰源 회장 등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변호인들은 이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1970년대 말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은 달러벌이에 내몰렸다. 1977년 100억 달러 수출목표가 달성됐을 때는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상사와 임직원은 훈장과 표창을 받았고, 故 崔鍾賢(최종현) SK그룹 2代 회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축제의 뒤안길에는 치열한 경쟁들이 있었고, 투자실패와 거래처의 도산 등에도 불구하고 밀어내기 수출을 할 수밖에 없는 부실의 늪에 서서히 빠져 들고 말았다. 對外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상사들은 분식을 했고, 정부도 관행상 이를 용인하던 시대였다.
종양을 발견한 의사는 일부를 제거할지 아니면 몽땅 드러낼지를 결정해야 한다. 종양을 몽땅 제거하면 원인은 없앨 수 있지만, 사람까지 죽게 된다. 名醫(명의)라면 종양의 일부를 제거하고 완치시키기 위해 치료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崔泰源 회장이 고교시절부터 시작된 그룹의 부실을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서면서 고치고자 노력해 왔는데, 결실을 보기도 전에 이 자리에 서게 됐다. 국가경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한 변호인)』
孫吉丞 회장은 최후변론을 하면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최후진술을 하던 중 옆자리에 푸른색 수의 차림의 崔회장을 한 번 쳐다본 뒤였다. 孫회장은 『지난 4월8일이 SK그룹 50주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SK의 역사 50년 중 40년을 SK와 고락을 함께하면서 강하면서도 건전한 기업, 모든 직장인이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커다란 물의를 끼쳐 참담한 심정』이라며 『先代의 무거운 짐을 진 崔회장에게 회사 정상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특히 孫회장은 『누적된 부실을 털기 위해 노력했지만, IMF를 겪으면서 더욱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며 『SK글로벌이 정상화돼 주주와 채권단,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모든 책임은 나에게 지우고, 젊은 임원들은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孫회장이 언급한 「先代의 무거운 짐」은 수출일변도 정책으로 인해 기업이 떠안은 부담을 의미했다. 1960~1970년대의 재벌총수들은 朴正熙 대통령이 가장 신경을 썼던 한 해 수출목표 달성이 지상목표였다. 鄭萬源 SK글로벌정상화추진본부장은 『과거에는 연말만 되면 수출량을 채우기 위해 무나 채소 등을 배에 싣고 미국 LA로 수출하는 게 다반사였다』며 『배로 실어나르는 동안 채소 등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한 해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돌아오는 불이익이 너무나 컸다』고 말했다.
미사일부터 라면까지,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내다 팔아야 했던 종합상사는 한마디로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였다.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외형확장에 나섰고, 매출액 부풀리기와 문어발式 사업다각화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수출목표 달성은 최대의 자금조달책이었다. 1976년 종합상사들은 달러당 공식환율 480원 대신 420원을 적용받았고, 일반은행 대출이자율 17% 대신 8%의 이자율을 보장받았다. 수출실적이 높은 회사의 경우 신용장 제시도 필요없이 과거 수출실적의 한 달 반 실적에 해당되는 액수까지 빌리는 것이 허용됐다. 그래서 재벌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수출에 매달렸고, 그 결과는 차곡차곡 해외법인들에 누적되면서 천문학적인 부실규모가 지금까지 감춰져 왔던 것이다. SK그룹 李魯鍾(이노종) 홍보실장도 『崔泰源 회장이 선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이런 잘못을 바로잡아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며 『그러는 과정에 이같은 사태가 터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채권단, SK글로벌을 살리자는 쪽으로 의견 집약
SK사태를 놓고 채권단과 SK그룹, 정부의 입장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채권단은 기본적으로는 SK글로벌을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의 일부에서는 SK글로벌의 부채 8조원 중 계열사인 SK(주)와의 원유 수입 관련 채무 1조5000억원 등을 제외하는 등 채무조정을 하더라도 부채규모가 6조원이 넘기 때문에 회사를 정리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식회계 발각 이전의 재무상태를 적용하더라도 현재 연간 3000억원 수준의 흑자구조로는 원금 회수에만 2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회사를 살려내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 기업의 생사를 지나치게 재무상태나 수익구조 등을 일방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사회·경제적 파장 등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과거 「財閥不敗(재벌불패)」 신화를 지키기 위해 특정 기업을 무조건 살리거나 지원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柳志昌(유지창) 산업은행 총재도 최근 『예전처럼 특정 기업이나 그룹을 살리기 위한 지원은 하지 않겠다』며 『산업은행이 SK글로벌의 최대 채권자이지만 과거와 같은 정치적인 의사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채권단은 SK글로벌을 살리는 데는 SK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채권단은 SK(주) 등 계열사들이 SK글로벌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채권을 출자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계열사들이 지원에 나서면 채권단도 일부 대출금을 자본금으로 바꿔 SK글로벌을 완전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의 자본출자 규모에 異見
그러나 SK그룹의 입장은 채권단보다 오히려 소극적이다. 사태 초반에는 SK글로벌이 적극 나서서 5년 안에 부채를 2조3000억원으로 줄여 부채비율을 100%대로 낮추고, 기존 사업을 통해 이 기간에 3조원의 현금을 창출하고, 부동산 및 기타 고정자산 매각 등을 통해 1조2000억원을 현금화하겠다고 밝혔다. SK그룹 측에서도 추가적인 自救案(자구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태가 진전되면서 한 발 빼는 양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SK(주)는 채권단의 지원요구에 『SK글로벌에 대한 부당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선언했다. SK(주)의 CFO인 유정준 전무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유지하는 것은 협조할 수 있지만, SK 주주의 이익에 합치되고 적법한 범위 내에서 향후 관계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SK글로벌에 대한 증자나 채권의 출자전환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기도 했다. SK글로벌에서 제출한 自救案 중 주유소 매입 건에 대해서도 SK(주)는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SK글로벌정상화추진본부가 사태발생 후 한 달이 훨씬 지난 뒤에 구성된 것도 소극적 자세의 일단을 보여 주는 사례다. 게다가 정상화본부는 발족되자마자 채권단의 지원요구에 대해 「공평분담」을 逆(역)으로 주장하는 등 그룹의 부실을 떠안은 SK글로벌에 대한 책임의식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SK 측은 표면적으로 각 계열사별로 상황이 다르고, 주주들의 반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SK(주) 지분 14.99%를 매집한 영국계 자본인 소버린 자산운용 측이 적극적으로 지원불가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도 하다. 또 참여연대도 도와주기보다는 시장논리에 따라 도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채권단과 SK그룹 간의 공방이 가열되면서 힘 겨루기가 치열해지지만 내용적으로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채권단과 SK그룹 측은 SK글로벌을 살리기 위해 SK(주) 등 계열사가 출자전환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일단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출자전환 규모를 놓고 최대 6000억원까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SK(주)가 SK글로벌에 대해 갖고 있는 매출채권은 국내외 합쳐 2조4000억원이고, 이 가운데 SK(주)가 국내에 행사할 수 있는 매출채권이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전액 출자전환해야 한다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다. 그러나 SK 측은 7000억원밖에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 측은 매출채권의 실제 규모는 9000억원밖에 안 되고, 그나마 현실적으로 출자전환할 수 있는 액수는 7000억원 정도라는 것이다. SK글로벌 사태를 해결짓는 과정에서 최대의 쟁점이 바로 양측 간의 출자전환 규모가 될 것 같다.
金監委는 『살리자』, 公正委는 『법대로』
정부기관별로도 입장 차이가 있다. 금융감독委와 공정거래委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금융감독委는 SK글로벌을 청산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충격과 금융회사들의 추가적인 부실을 우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 SK글로벌을 어떻게든 정상화시켜 은행들의 부실을 막고,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길 원하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자금이 얼어붙고 시장상황이 좋지 않은데 부실기업이라고 해서 법대로만 처리하다가는 경제전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姜哲圭(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부실이 너무 커 다른 기업까지 나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당한 지원은 허용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경제계에서는 SK사태의 처리과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盧武鉉 정부의 기본성향이 反재벌에 가깝다는 점 때문이다. 재벌개혁의 차원에서 문제를 접근할 경우 SK글로벌의 처리가 달라질 수도 있다.
수입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SK글로벌을 살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행동으로 지원의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 SK그룹의 속내는 뭘까.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도 SK글로벌 같은 채무자만 있으면 속이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빚은 있지만, 영업이익으로 얼마든지 갚을 수 있는 능력을 SK글로벌이 갖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채권단도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SK글로벌을 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최대한 SK그룹에게 부담을 더 지우려고 SK그룹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너인 崔泰源 회장이 구속 중이란 점도 SK그룹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룹 입장에서는 崔회장의 존재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崔회장이 없는 상황에서의 사태수습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룹관계자의 토로다. 그러나 SK글로벌이 SK그룹 계열사들의 유통을 맡고 있기 때문에 SK 측으로서도 정상화에 진력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SK(주)의 경우, 주유소 영업을 맡고 있는 SK글로벌이 청산되면 SK글로벌이 소유하고 있는 주유소를 반드시 인수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정유업계에서는 주유소 매입 자금으로 최소한 2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뜩이나 치열한 정유업계의 경쟁에서 자칫 잘못하면 영업망 손실로 인해 업계 1위 자리를 내놓는 「불상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단, 崔泰源 회장 석방 탄원
결국 SK그룹도 SK글로벌의 정상화에 매진할 수 없지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권단에 역공을 취하기도 하고, 주주들을 앞세워 지원불가 입장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SK글로벌의 해외법인에 대해서는 청산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전망이 좋지 않은 무역사업부를 분리하고, 수익성이 좋은 에너지판매사업부와 정보통신 부문을 중심으로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이런 입장에는 해외 부실규모가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분석이 깔려있다. 지급보증을 선 2조4000억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해외의 비난여론에 대해서는 해외채권단과의 법적 공방을 통해 타의에 의해 청산되는 식으로 처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SK사태로 인해 崔泰源 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崔회장의 계열사 주식 일체를 담보로 요구해 받아냈다. 崔회장이 계열사에 지급보증을 한 2조원에 훨씬 못 미치는 재산이었지만, 崔회장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하도록 벼랑 끝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최악의 경우 崔회장의 그룹에 대한 소유권과 경영권을 채권단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SK글로벌 정상화에 崔회장이 발벗고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사태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자, 최근 채권단은 崔회장에 대한 석방구명에 나섰다. 주요 채권은행장들이 崔회장의 구명탄원서에 서명했던 것이다. 崔회장이 구속상태에서 풀려나 경영에 복귀하는 것이 채권단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재계 서열 3위라는 그룹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를 당하고 전혀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지 못했던 점도 한몫 했다. 崔회장의 그림자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SK글로벌에 돈 되는 사업들을 그동안 몰아 준 것도 이 같은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崔회장이 최후변론에서 『미력하나마 기회를 준다면 회사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듯, 진솔한 모습으로 SK글로벌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채권단과 SK 간에 솔직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SK글로벌 사태의 파장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20조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무역부문 관련 거래업체들의 수출용 원·부자재 수입물량까지 합친 액수로, SK글로벌을 통해 거래되는 규모를 가지고 계산한 것이다. 여기에 SK글로벌 본사가 안고 있는 2조4000억원의 지급보증 등을 따지면 20조원이 훨씬 넘는 직간접적인 파문이 SK글로벌 사태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IMF 사태 때보다 여건은 좋아
이처럼 SK글로벌의 잘못된 처리는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행히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SK사태가 1997년과 같은 IMF 위기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사태와도 차원이 다르다. 대우의 경우, 분식회계의 규모도 훨씬 많았고, 수익구조가 전혀 없었지만, SK글로벌은 매년 30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나고 있다. 따라서 채권단과 SK그룹이 협조관계 속에서 서로 일정 부분 양보하고 책임을 진다면 SK글로벌의 정상화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對內外 경제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경상수지가 좋지 않은데다, 주가가 하락하고, 민간소비가 급랭하고 對外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이 1997년 하반기 상황과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1997년과 다른 점은 환율과 외환보유고가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정도. 외환위기때보다 나쁜 환경은 북한 核문제가 이제 시작단계에 있고, 사스(SARS) 등 대외적인 악재가 겹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금융권 경색이 일어날 경우 대책마련이 쉽지 않아보인다. 또 5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시장에 불안심리가 증폭될 경우, SK글로벌發 경제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
이 때문에 SK글로벌 처리가 중요하다. 국내외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은 SK사태가 단기적으로 한국경제에 충격은 주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단호한 구조조정 등을 진행할 수 있다면 국제투자자들의 신뢰를 유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철저한 경제논리에 의해 사태를 지켜보면서 냉정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대우사태처럼 한정없이 끌려 들어가서도 곤란하고, 살 수 있는 기업을 경제 外的 논리로 죽이는 잘못을 범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과거 대우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 SK사태는 한국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新정부 출범을 앞두고 「재벌 손보기」 차원에서 시작된 수사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경제계는 바짝 긴장했고, 수사의 적정성 등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현재 삼일회계법인 등이 회생 여부 등을 결정하기 위해 부실 정도 등을 점검하는 實査(실사)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9일에는 구속 중인 崔泰源(최태원) SK(주) 회장을 비롯해 孫吉丞(손길승) 그룹회장,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金昌根(김창근) 그룹구조조정본부장 등 SK그룹 최고경영진에 대한 결심공판도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찰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舊態(구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崔회장에게 징역 6년, 孫회장에게 징역 5년, 金본부장에게 징역 4년 등 중형을 구형했다. 변호인들은 과거의 잘못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부작용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경제개발에 공헌했던 被告(피고)들을 선처해 달라고 요청했다.
原油로 엮여 있는 SK(주)의 對外신인도 하락그러나 SK發(발) 한국경제 危機(위기)사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3일 동안 무려 10조6000억원 가량의 投信(투신)권 펀드 환매사태가 있었고, 外平債(외평채)는 지난 몇 년간 최고치인 2.2%까지 올라갔다. 심리적 공황상태로까지 치달았던 금융시장은 다소 안정을 되찾았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더욱 큰 문제는 아직까지도 SK사태는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을 포함, 채권단만 60여 곳이 넘고, 수많은 협력 업체들의 피해도 예상된다. 게다가 이라크戰이 끝나 한숨 돌리나 했던 한국경제는 세계적인 불황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으로 점점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다. 여기에 SK사태의 처리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對外 신인도까지 하락하는 등 파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SK사태의 여파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SK글로벌이 현재 금융기관에 갚아야 할 빚은 모두 8조6000억원 정도 된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따르면, SK글로벌은 산업은행 1조여 원을 비롯해 수출입은행 6000억원, 하나은행 5500억원, 국민은행 4600여억원 등 은행권에 5조4500억원 정도의 빚을 졌고, 제2금융권인 투자신탁과 증권 등에 8400억원 정도, 보험·기타 기관에 2900억원의 빚이 있다. 국내 채무는 6조5800여억원이고, 해외 채무는 1조9700억원 정도다.
이 밖에 SK글로벌이 그룹계열사인 SK(주)와 SK텔레콤, SKC&C 등에 갚아야 할 채무가 약 2조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채무는 원유도입과 석유제품 판매로 엮여 있는 SK(주)와의 거래에서 파생됐다. SK글로벌의 지분 37.9%를 갖고 있는 대주주인 SK(주)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순매출 채권을 갖고 있다. SK글로벌이 청산될 경우, SK(주)의 피해는 막심하다. 이 때문에 SK글로벌은 343개의 직영주유소를 SK(주)에 매각해 총 1조1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다는 자구계획을 채권단에 제출하기도 했다.
채무관계와 상관없이 SK글로벌 문제로 인한 SK(주)의 처지는 난감하다. 당장 對外 신인도 하락으로 인해 원유수급에 일부 적신호가 켜질 지경이다. SK(주)는 SK글로벌 분식회계가 적발된 직후 원유도입을 위해 발행하던 기한부 어음(유전스)의 한도액이 기존 40억 달러에서 10억 달러 정도 깎였다. 유전스는 수입업체의 수입물품 가격을 은행이 대신 지급해 주고, 일정 기간 후 업체가 물건을 팔아서 은행에 갚도록 하는 어음이다. 일종의 외상거래인데, SK글로벌 사태로 인해 SK(주)가 외상할 수 있는 한도가 줄어든 것이다. SK(주) 관계자들은 『평소 유전스를 한도액의 50% 정도밖에 쓰지 않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숨겨진 不實이 문제
이같은 채무 등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SK글로벌이 빚 갚을 능력만 있으면 아무 상관 없다. 그러나 채권단은 SK글로벌이 갖고 있는 재산이 빚을 갚기에 태부족일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 그럴 것으로 예상하지만, 장부상에는 그럴 듯하게 재산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받을 수 없는 돈이거나 명목뿐인 재산일 경우, SK글로벌은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종이기업)」에 불과하게 된다. SK글로벌의 실사를 맡고 있는 삼일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부채도 부채지만, 지금까지 장부에 기재된 매출규모가 실제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측면이 많아 보인다』고 말한다. 정확한 實査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현재까지 SK글로벌의 부실규모는 대략 6조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이 분식이라고 발표한 1조5000억원, 영화회계법인이 2002년 감사보고서에 추가한 부실자산 4800억원, SK글로벌 본사가 해외법인의 차입금에 대해 지급보증을 섰던 2조4000억원, 해외법인 매출채권 2조9000억원 중 1조4000억원 등이다. SK글로벌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부실자산 규모만큼의 지원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부실규모가 드러나야 지원을 하든 청산을 하든 하겠지만, SK글로벌 부실여파로 채권은행들은 이미 1조원 규모의 貸損(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SK글로벌 협력업체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이번 사태로 인해 3만여 개에 달하는 국내외 협력업체 중 일부 회사가 연쇄 부도위기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이 가장 우려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숨겨진 부실규모다. 국내 부분의 채무관계나 부실 정도는 사실상 거의 드러나있지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해외 부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채무 외에 다른 채무가 있거나, 부실규모가 상상을 뛰어넘을 경우 SK글로벌의 존립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상황에서 지난 4월21일 서울지법 공판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 규모가 지금까지 알려진 1조5000억원 외에 해외 현지법인들이 3조4000억원에 달하는 추가분식을 했다는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날 SK글로벌의 前 재무담당 임원(CFO)인 문덕규 전무는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검찰진술 조서에 보면 SK글로벌 본사 외에 해외법인들의 채무를 분식회계한 규모가 3조4000억원이라고 돼있는데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해외법인은 淸算그동안 해외 부분에서의 부실규모나 분식 여부 등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SK글로벌 고위 임원의 「증언」은 경제계를 뒤흔들었다. 문전무는 사태가 확산되자, 뒤늦게 『3조4000억원의 분식회계 규모는 채무와 해외법인의 부실규모를 합친 액수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SK 측은 3조4000억원의 대부분은 이미 발표된 SK글로벌 총부채 8조5000억원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가 부실이나 부채규모가 확대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당시 SK 측은 『3조4000억원은 2001년을 기준으로 한 부실금액으로, 2002년에 일부 회수하고 정리를 해서 2002년 현재는 2조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K 측은 『이 중 상당수도 1조5000억원의 국내 분식회계 부분에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鄭萬源(정만원) SK글로벌정상화추진본부장은 전날의 설명과는 다소 다른 해명을 채권단에 가서 했다. 문전무가 언급한 3조4000억원은 해외법인들의 전체적인 부실규모로, 現 시점에서 보면 4조원 가까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결국 SK글로벌의 해외법인을 살리려면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SK 측은 해외법인에 대해 SK글로벌이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 돈은 2조4000억원에 그친다고 항변하고 있다. SK글로벌 측은 『최악의 경우, SK글로벌의 해외법인이 지고 있는 부실은 해외법인을 청산하면 다 책임지지 않고, 지급보증을 서 준 액수만큼만 책임지면 된다』며 『그 액수가 2조4000억원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SK의 설명처럼 될 수도 있으나, 이럴 경우 SK그룹의 對外 신인도는 엄청나게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SK의 이름으로 해외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부채를 갚지도 않고 도망치는 기업을 신뢰할 시장은 없다는 비관론도 있다.
결국은 지급보증분뿐만 아니라 나머지 부실에 대해서도 SK글로벌 본사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SK글로벌 해외법인에 대한 처리 문제는 SK그룹이란 이름下에서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孫吉丞 회장, 『술 없이는 잠 못 자는 날 많았다』SK글로벌이 겉으로 드러난 부채만도 8조원이 넘게 된 데는 과거 1970년대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인한 마이너스 수출 등의 영향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5월9일 열렸던 崔泰源 회장 등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변호인들은 이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1970년대 말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은 달러벌이에 내몰렸다. 1977년 100억 달러 수출목표가 달성됐을 때는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상사와 임직원은 훈장과 표창을 받았고, 故 崔鍾賢(최종현) SK그룹 2代 회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축제의 뒤안길에는 치열한 경쟁들이 있었고, 투자실패와 거래처의 도산 등에도 불구하고 밀어내기 수출을 할 수밖에 없는 부실의 늪에 서서히 빠져 들고 말았다. 對外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상사들은 분식을 했고, 정부도 관행상 이를 용인하던 시대였다.
종양을 발견한 의사는 일부를 제거할지 아니면 몽땅 드러낼지를 결정해야 한다. 종양을 몽땅 제거하면 원인은 없앨 수 있지만, 사람까지 죽게 된다. 名醫(명의)라면 종양의 일부를 제거하고 완치시키기 위해 치료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崔泰源 회장이 고교시절부터 시작된 그룹의 부실을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서면서 고치고자 노력해 왔는데, 결실을 보기도 전에 이 자리에 서게 됐다. 국가경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한 변호인)』
孫吉丞 회장은 최후변론을 하면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최후진술을 하던 중 옆자리에 푸른색 수의 차림의 崔회장을 한 번 쳐다본 뒤였다. 孫회장은 『지난 4월8일이 SK그룹 50주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SK의 역사 50년 중 40년을 SK와 고락을 함께하면서 강하면서도 건전한 기업, 모든 직장인이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커다란 물의를 끼쳐 참담한 심정』이라며 『先代의 무거운 짐을 진 崔회장에게 회사 정상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특히 孫회장은 『누적된 부실을 털기 위해 노력했지만, IMF를 겪으면서 더욱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며 『SK글로벌이 정상화돼 주주와 채권단,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모든 책임은 나에게 지우고, 젊은 임원들은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孫회장이 언급한 「先代의 무거운 짐」은 수출일변도 정책으로 인해 기업이 떠안은 부담을 의미했다. 1960~1970년대의 재벌총수들은 朴正熙 대통령이 가장 신경을 썼던 한 해 수출목표 달성이 지상목표였다. 鄭萬源 SK글로벌정상화추진본부장은 『과거에는 연말만 되면 수출량을 채우기 위해 무나 채소 등을 배에 싣고 미국 LA로 수출하는 게 다반사였다』며 『배로 실어나르는 동안 채소 등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한 해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돌아오는 불이익이 너무나 컸다』고 말했다.
미사일부터 라면까지,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내다 팔아야 했던 종합상사는 한마디로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였다.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외형확장에 나섰고, 매출액 부풀리기와 문어발式 사업다각화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수출목표 달성은 최대의 자금조달책이었다. 1976년 종합상사들은 달러당 공식환율 480원 대신 420원을 적용받았고, 일반은행 대출이자율 17% 대신 8%의 이자율을 보장받았다. 수출실적이 높은 회사의 경우 신용장 제시도 필요없이 과거 수출실적의 한 달 반 실적에 해당되는 액수까지 빌리는 것이 허용됐다. 그래서 재벌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수출에 매달렸고, 그 결과는 차곡차곡 해외법인들에 누적되면서 천문학적인 부실규모가 지금까지 감춰져 왔던 것이다. SK그룹 李魯鍾(이노종) 홍보실장도 『崔泰源 회장이 선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이런 잘못을 바로잡아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며 『그러는 과정에 이같은 사태가 터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채권단, SK글로벌을 살리자는 쪽으로 의견 집약
SK사태를 놓고 채권단과 SK그룹, 정부의 입장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채권단은 기본적으로는 SK글로벌을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의 일부에서는 SK글로벌의 부채 8조원 중 계열사인 SK(주)와의 원유 수입 관련 채무 1조5000억원 등을 제외하는 등 채무조정을 하더라도 부채규모가 6조원이 넘기 때문에 회사를 정리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식회계 발각 이전의 재무상태를 적용하더라도 현재 연간 3000억원 수준의 흑자구조로는 원금 회수에만 2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회사를 살려내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 기업의 생사를 지나치게 재무상태나 수익구조 등을 일방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사회·경제적 파장 등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과거 「財閥不敗(재벌불패)」 신화를 지키기 위해 특정 기업을 무조건 살리거나 지원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柳志昌(유지창) 산업은행 총재도 최근 『예전처럼 특정 기업이나 그룹을 살리기 위한 지원은 하지 않겠다』며 『산업은행이 SK글로벌의 최대 채권자이지만 과거와 같은 정치적인 의사결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채권단은 SK글로벌을 살리는 데는 SK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채권단은 SK(주) 등 계열사들이 SK글로벌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채권을 출자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계열사들이 지원에 나서면 채권단도 일부 대출금을 자본금으로 바꿔 SK글로벌을 완전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의 자본출자 규모에 異見그러나 SK그룹의 입장은 채권단보다 오히려 소극적이다. 사태 초반에는 SK글로벌이 적극 나서서 5년 안에 부채를 2조3000억원으로 줄여 부채비율을 100%대로 낮추고, 기존 사업을 통해 이 기간에 3조원의 현금을 창출하고, 부동산 및 기타 고정자산 매각 등을 통해 1조2000억원을 현금화하겠다고 밝혔다. SK그룹 측에서도 추가적인 自救案(자구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사태가 진전되면서 한 발 빼는 양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SK(주)는 채권단의 지원요구에 『SK글로벌에 대한 부당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공식선언했다. SK(주)의 CFO인 유정준 전무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유지하는 것은 협조할 수 있지만, SK 주주의 이익에 합치되고 적법한 범위 내에서 향후 관계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SK글로벌에 대한 증자나 채권의 출자전환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기도 했다. SK글로벌에서 제출한 自救案 중 주유소 매입 건에 대해서도 SK(주)는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SK글로벌정상화추진본부가 사태발생 후 한 달이 훨씬 지난 뒤에 구성된 것도 소극적 자세의 일단을 보여 주는 사례다. 게다가 정상화본부는 발족되자마자 채권단의 지원요구에 대해 「공평분담」을 逆(역)으로 주장하는 등 그룹의 부실을 떠안은 SK글로벌에 대한 책임의식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SK 측은 표면적으로 각 계열사별로 상황이 다르고, 주주들의 반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SK(주) 지분 14.99%를 매집한 영국계 자본인 소버린 자산운용 측이 적극적으로 지원불가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도 하다. 또 참여연대도 도와주기보다는 시장논리에 따라 도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채권단과 SK그룹 간의 공방이 가열되면서 힘 겨루기가 치열해지지만 내용적으로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채권단과 SK그룹 측은 SK글로벌을 살리기 위해 SK(주) 등 계열사가 출자전환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일단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출자전환 규모를 놓고 최대 6000억원까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SK(주)가 SK글로벌에 대해 갖고 있는 매출채권은 국내외 합쳐 2조4000억원이고, 이 가운데 SK(주)가 국내에 행사할 수 있는 매출채권이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전액 출자전환해야 한다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다. 그러나 SK 측은 7000억원밖에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 측은 매출채권의 실제 규모는 9000억원밖에 안 되고, 그나마 현실적으로 출자전환할 수 있는 액수는 7000억원 정도라는 것이다. SK글로벌 사태를 해결짓는 과정에서 최대의 쟁점이 바로 양측 간의 출자전환 규모가 될 것 같다.
金監委는 『살리자』, 公正委는 『법대로』정부기관별로도 입장 차이가 있다. 금융감독委와 공정거래委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금융감독委는 SK글로벌을 청산할 경우 시장에 미치는 충격과 금융회사들의 추가적인 부실을 우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 SK글로벌을 어떻게든 정상화시켜 은행들의 부실을 막고,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길 원하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자금이 얼어붙고 시장상황이 좋지 않은데 부실기업이라고 해서 법대로만 처리하다가는 경제전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姜哲圭(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부실이 너무 커 다른 기업까지 나쁘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당한 지원은 허용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경제계에서는 SK사태의 처리과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盧武鉉 정부의 기본성향이 反재벌에 가깝다는 점 때문이다. 재벌개혁의 차원에서 문제를 접근할 경우 SK글로벌의 처리가 달라질 수도 있다.
수입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SK글로벌을 살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행동으로 지원의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 SK그룹의 속내는 뭘까.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도 SK글로벌 같은 채무자만 있으면 속이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빚은 있지만, 영업이익으로 얼마든지 갚을 수 있는 능력을 SK글로벌이 갖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채권단도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SK글로벌을 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최대한 SK그룹에게 부담을 더 지우려고 SK그룹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너인 崔泰源 회장이 구속 중이란 점도 SK그룹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룹 입장에서는 崔회장의 존재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崔회장이 없는 상황에서의 사태수습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그룹관계자의 토로다. 그러나 SK글로벌이 SK그룹 계열사들의 유통을 맡고 있기 때문에 SK 측으로서도 정상화에 진력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SK(주)의 경우, 주유소 영업을 맡고 있는 SK글로벌이 청산되면 SK글로벌이 소유하고 있는 주유소를 반드시 인수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정유업계에서는 주유소 매입 자금으로 최소한 2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가뜩이나 치열한 정유업계의 경쟁에서 자칫 잘못하면 영업망 손실로 인해 업계 1위 자리를 내놓는 「불상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단, 崔泰源 회장 석방 탄원결국 SK그룹도 SK글로벌의 정상화에 매진할 수 없지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권단에 역공을 취하기도 하고, 주주들을 앞세워 지원불가 입장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SK글로벌의 해외법인에 대해서는 청산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전망이 좋지 않은 무역사업부를 분리하고, 수익성이 좋은 에너지판매사업부와 정보통신 부문을 중심으로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이런 입장에는 해외 부실규모가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분석이 깔려있다. 지급보증을 선 2조4000억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해외의 비난여론에 대해서는 해외채권단과의 법적 공방을 통해 타의에 의해 청산되는 식으로 처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SK사태로 인해 崔泰源 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崔회장의 계열사 주식 일체를 담보로 요구해 받아냈다. 崔회장이 계열사에 지급보증을 한 2조원에 훨씬 못 미치는 재산이었지만, 崔회장이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하도록 벼랑 끝으로 몰아 넣은 것이다. 최악의 경우 崔회장의 그룹에 대한 소유권과 경영권을 채권단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SK글로벌 정상화에 崔회장이 발벗고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사태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자, 최근 채권단은 崔회장에 대한 석방구명에 나섰다. 주요 채권은행장들이 崔회장의 구명탄원서에 서명했던 것이다. 崔회장이 구속상태에서 풀려나 경영에 복귀하는 것이 채권단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재계 서열 3위라는 그룹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를 당하고 전혀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지 못했던 점도 한몫 했다. 崔회장의 그림자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SK글로벌에 돈 되는 사업들을 그동안 몰아 준 것도 이 같은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崔회장이 최후변론에서 『미력하나마 기회를 준다면 회사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듯, 진솔한 모습으로 SK글로벌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채권단과 SK 간에 솔직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SK글로벌 사태의 파장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20조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무역부문 관련 거래업체들의 수출용 원·부자재 수입물량까지 합친 액수로, SK글로벌을 통해 거래되는 규모를 가지고 계산한 것이다. 여기에 SK글로벌 본사가 안고 있는 2조4000억원의 지급보증 등을 따지면 20조원이 훨씬 넘는 직간접적인 파문이 SK글로벌 사태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IMF 사태 때보다 여건은 좋아이처럼 SK글로벌의 잘못된 처리는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행히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은 SK사태가 1997년과 같은 IMF 위기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사태와도 차원이 다르다. 대우의 경우, 분식회계의 규모도 훨씬 많았고, 수익구조가 전혀 없었지만, SK글로벌은 매년 30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나고 있다. 따라서 채권단과 SK그룹이 협조관계 속에서 서로 일정 부분 양보하고 책임을 진다면 SK글로벌의 정상화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對內外 경제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경상수지가 좋지 않은데다, 주가가 하락하고, 민간소비가 급랭하고 對外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이 1997년 하반기 상황과 닮은꼴이라는 것이다. 1997년과 다른 점은 환율과 외환보유고가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정도. 외환위기때보다 나쁜 환경은 북한 核문제가 이제 시작단계에 있고, 사스(SARS) 등 대외적인 악재가 겹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금융권 경색이 일어날 경우 대책마련이 쉽지 않아보인다. 또 5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는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시장에 불안심리가 증폭될 경우, SK글로벌發 경제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
이 때문에 SK글로벌 처리가 중요하다. 국내외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은 SK사태가 단기적으로 한국경제에 충격은 주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단호한 구조조정 등을 진행할 수 있다면 국제투자자들의 신뢰를 유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철저한 경제논리에 의해 사태를 지켜보면서 냉정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대우사태처럼 한정없이 끌려 들어가서도 곤란하고, 살 수 있는 기업을 경제 外的 논리로 죽이는 잘못을 범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