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유실된 지뢰
『안 돼, 들어오지 마』
그의 외마디 절규는 지뢰의 폭발음만큼이나 날카롭고 비장했다. 2000년 6월27일, 대원들을 이끌고 서부전선 非무장지대를 수색 정찰하던 육군 전진부대 수색대대장 李鍾明(이종명·당시 나이 41세ㆍ육사 39기) 중령은 오전 10시47분 군사분계선(MDL)을 10여 m 앞둔 지점에서 간밤 폭우로 유실된 지뢰를 밟고 말았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는 혹시나 부하들이 다칠까 염려해 그렇게 소리친 것이다.
李중령이 이 부대에서 수색대대장의 임무를 수행해 온 지 40개월, 육군대학 교관으로 전속 명령을 받은 상태에서 마지막 출동이었다. 후임으로 온 육사 1기 후배 薛東燮(설동섭) 중령에게 서부전선의 주요 작전지역을 서류상으로만 인수인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薛중령을 대동하고 관할 섹터(sector)로 향했다. 통문 통과 오전 8시50분, 40분 후 소통문 도착. 19명의 대원들은 4개조로 산개, 개인간 3m, 組間(조간) 10m 거리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정찰을 시작했다.
신록이 짙게 드리운 非무장지대(DMZ)에서 적정을 살피기 위해 발걸음을 옆으로 옮겨 놓던 신임 대대장 薛중령이 지뢰를 건드리고 말았다. 굉음과 함께 그와 중대장 朴영한 대위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사태를 파악한 李중령은 다른 대원들에게 사주경계와 엄호를 지시하고 자신이 조금 전 거쳐간 지점으로 황급히 쫓아갔다. 아뿔사, 또 한 차례의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지휘관 세 명이 잇달아 쓰러지자, 대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뛰었다.
李중령은 소리쳤다.
『안 돼, 들어오지 마, 여긴 지뢰지대야』
그는 薛중령과 朴대위를 독려하여 포복으로 험지를 벗어났다. 소총과 철모를 거머쥐고. 뒤에야 깨달았지만 李중령과 薛중령 모두가 두 다리를 잃었으니 그 포복이 오죽했으랴.
李중령은 얘기한다.
『부하 중대장이 쓰러져 있는데 내 몸 생각해서 부하를 들여보내는 지휘관은 없을 겁니다. 어떤 지휘관이든 당연히 (나처럼) 그랬을 겁니다』
野戰군인의 길만 걸어
그가 전상을 입은 날로부터 꼭 2년 후, 2002년 6월27일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으로 부상 군인도 현역 복무가 가능한 길이 열렸다. 예편을 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원을 再활용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취지다. 군사연구실이나 교관 요원으로의 활용은 충분히 가능하며 특히나 전투나 작전훈련 중 용맹한 행위로 신체의 손상을 입은 경우 他人(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장애군인의 현역 복무를 허용한다. 미군 예비역 대장인 프레드릭 프랭크는 소령 때 베트남에서 지뢰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도 대장까지 진급했다. 그는 걸프전 때 7군단장으로 참전했다.
李중령은 지난 8월26일 육군대학에 작전술학 교관으로 신고를 했다. 그가 국군 수도병원과 대전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고 퇴원한 것이 2002년 8월22일, 사고 후 26개월이 흘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이 26개월이 병사의 의무복무 기간과 같은 것이 이상하고 군인사법의 개정 일자가 자기의 사고 날짜와 일치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했다.
사고 후 후송되어 두 다리를 절단하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겪었던 신체적 고통보다 더욱 그를 괴롭혔던 건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죄송하고 아내와 두 아들에게는 짐이 된다는 중압감 때문에 힘들어했다. 군병원 4층 입원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문병 온 친지들의 위로와 격려가 귀에 안 들어오기도 했지만 문득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무언가 다른 일, 해야할 새로운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뭔가 내게 새로운 일이 주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그가 再活(재활) 치료과정에서 보여준 노력은 초인적이었다. 의료진도 그의 인내와 의지에 탄복했다. 그는 의족으로 걷는 연습을 할 때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해서 몰래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함께 부상한 薛중령이 한 달여의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한다.
경북 청도가 고향으로 대구 달성高를 마친 李鍾明은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갈 형편이 못 되었다. 주위에서는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해양대학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어머니는 육사에 가기를 바랐다. 무슨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라는 말이 오히려 솔직하다.
한 달간의 가입교 기간, 이때를 생도들은 비스트 트레이닝(beast training)이라고 부른다. 맹수를 길러 낸다는 뜻이리라. 가입교 시절 李중령은 군인이 무엇이라는 것, 군인정신이 어떤 것이라는 것 등을 조금씩 익히며 자신감을 키웠다고 한다.
그의 軍경력은 야전군인의 전형이다. 전방 훈련부대 소대장, 참모, 전투병과학교 구대장, 3사관학교 중대장, 전방사단 중대장, 사단 작전장교, 학군단 교관, 연대(전진부대) 작전과장, 수색대대장이다.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입원생활을 하던 李중령은 재작년 말 전진부대를 찾아가 미뤄뒀던 이임식을 가졌다. 오랜만에 입는 군복과 모자가 어색했던지 그는 아내에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휠체어에 앉은 전임 대대장에게 600명의 부대원은 우렁찬 목소리로 『전진』 경례를 붙였다. 비록 불편한 몸이나마 작별인사를 하는 李중령은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잡아당겨 전방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덧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음성으로 변해 있었다.
작년 국군의 날, 李중령은 육사의 후배들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차에서 내리는 李중령을 맞이하는 생도들은 휠체어를 준비하고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괜찮아. 혼자 걸을 수 있다』며 뿌리치고 지팡이를 짚은 걸음으로 연병장에 나섰다.
그는 사관 생도의 신조를 강조했다. 첫째,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둘째,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째, 우리는 안일한 不義(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正義(정의)의 길을 택한다. 全후배들은 그에게 기립 박수로 예를 표했다.
육군대학으로 배치는 받았지만 그의 앞길은 험난하다. 정식으로 강의에 임하기 위해서는 5~6개월의 연구기간을 거쳐 총장, 교수부장, 각급 처장들 앞에서 벌어지는 혹독한 교관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安秉漢(안병한 소장ㆍ육사 27기) 육군대학 총장은 『육군의 기둥인 영관 장교들을 가르치는 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忍苦(인고)의 연구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지만 신체적 핸디캡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사나이니만큼 잘 해내리라고 기대한다』는 말로 李중령을 격려했다.
육군대학은 李중령에게 특별대우를 하지 않는다. 李중령 자신도 『특별배려는 싫다』고 말한다. 李중령이 속한 전략학처 연구실은 4층 위치 그대로이고 식당도 멀리 떨어져 있으나 李중령은 남들과 똑같이 다녀야 한다. 다만 그의 아파트는 1층에 배정을 하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安장군이 신경을 써 주었다.
李중령은 지난 5월 화랑대 개교기념일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받았다.
李중령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가족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中1과 高1인 두 아들은 어렸을 때, 온 가족이 야유회를 가는 걸 보면 제일 부러웠다고 말한다. 한 살 아래의 부인 金今蘭(김금란)씨는 전업 주부다. 최근에는 남편을 차로 출퇴근 시키는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다. 李중령이 얼마 전 장애인용 차량을 구입해 혼자 통근하면서부터 그 일을 덜었다. 여느 사람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아가는 그는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그의 외마디 절규는 지뢰의 폭발음만큼이나 날카롭고 비장했다. 2000년 6월27일, 대원들을 이끌고 서부전선 非무장지대를 수색 정찰하던 육군 전진부대 수색대대장 李鍾明(이종명·당시 나이 41세ㆍ육사 39기) 중령은 오전 10시47분 군사분계선(MDL)을 10여 m 앞둔 지점에서 간밤 폭우로 유실된 지뢰를 밟고 말았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는 혹시나 부하들이 다칠까 염려해 그렇게 소리친 것이다.
李중령이 이 부대에서 수색대대장의 임무를 수행해 온 지 40개월, 육군대학 교관으로 전속 명령을 받은 상태에서 마지막 출동이었다. 후임으로 온 육사 1기 후배 薛東燮(설동섭) 중령에게 서부전선의 주요 작전지역을 서류상으로만 인수인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薛중령을 대동하고 관할 섹터(sector)로 향했다. 통문 통과 오전 8시50분, 40분 후 소통문 도착. 19명의 대원들은 4개조로 산개, 개인간 3m, 組間(조간) 10m 거리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정찰을 시작했다.
신록이 짙게 드리운 非무장지대(DMZ)에서 적정을 살피기 위해 발걸음을 옆으로 옮겨 놓던 신임 대대장 薛중령이 지뢰를 건드리고 말았다. 굉음과 함께 그와 중대장 朴영한 대위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사태를 파악한 李중령은 다른 대원들에게 사주경계와 엄호를 지시하고 자신이 조금 전 거쳐간 지점으로 황급히 쫓아갔다. 아뿔사, 또 한 차례의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지휘관 세 명이 잇달아 쓰러지자, 대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뛰었다.
李중령은 소리쳤다.
『안 돼, 들어오지 마, 여긴 지뢰지대야』
그는 薛중령과 朴대위를 독려하여 포복으로 험지를 벗어났다. 소총과 철모를 거머쥐고. 뒤에야 깨달았지만 李중령과 薛중령 모두가 두 다리를 잃었으니 그 포복이 오죽했으랴.
李중령은 얘기한다.
『부하 중대장이 쓰러져 있는데 내 몸 생각해서 부하를 들여보내는 지휘관은 없을 겁니다. 어떤 지휘관이든 당연히 (나처럼) 그랬을 겁니다』
野戰군인의 길만 걸어 그가 전상을 입은 날로부터 꼭 2년 후, 2002년 6월27일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으로 부상 군인도 현역 복무가 가능한 길이 열렸다. 예편을 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원을 再활용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취지다. 군사연구실이나 교관 요원으로의 활용은 충분히 가능하며 특히나 전투나 작전훈련 중 용맹한 행위로 신체의 손상을 입은 경우 他人(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장애군인의 현역 복무를 허용한다. 미군 예비역 대장인 프레드릭 프랭크는 소령 때 베트남에서 지뢰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고도 대장까지 진급했다. 그는 걸프전 때 7군단장으로 참전했다.
李중령은 지난 8월26일 육군대학에 작전술학 교관으로 신고를 했다. 그가 국군 수도병원과 대전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고 퇴원한 것이 2002년 8월22일, 사고 후 26개월이 흘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이 26개월이 병사의 의무복무 기간과 같은 것이 이상하고 군인사법의 개정 일자가 자기의 사고 날짜와 일치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했다.
사고 후 후송되어 두 다리를 절단하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겪었던 신체적 고통보다 더욱 그를 괴롭혔던 건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죄송하고 아내와 두 아들에게는 짐이 된다는 중압감 때문에 힘들어했다. 군병원 4층 입원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문병 온 친지들의 위로와 격려가 귀에 안 들어오기도 했지만 문득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무언가 다른 일, 해야할 새로운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뭔가 내게 새로운 일이 주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그가 再活(재활) 치료과정에서 보여준 노력은 초인적이었다. 의료진도 그의 인내와 의지에 탄복했다. 그는 의족으로 걷는 연습을 할 때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해서 몰래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함께 부상한 薛중령이 한 달여의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한다.
경북 청도가 고향으로 대구 달성高를 마친 李鍾明은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갈 형편이 못 되었다. 주위에서는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해양대학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어머니는 육사에 가기를 바랐다. 무슨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라는 말이 오히려 솔직하다.
한 달간의 가입교 기간, 이때를 생도들은 비스트 트레이닝(beast training)이라고 부른다. 맹수를 길러 낸다는 뜻이리라. 가입교 시절 李중령은 군인이 무엇이라는 것, 군인정신이 어떤 것이라는 것 등을 조금씩 익히며 자신감을 키웠다고 한다.
그의 軍경력은 야전군인의 전형이다. 전방 훈련부대 소대장, 참모, 전투병과학교 구대장, 3사관학교 중대장, 전방사단 중대장, 사단 작전장교, 학군단 교관, 연대(전진부대) 작전과장, 수색대대장이다.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입원생활을 하던 李중령은 재작년 말 전진부대를 찾아가 미뤄뒀던 이임식을 가졌다. 오랜만에 입는 군복과 모자가 어색했던지 그는 아내에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휠체어에 앉은 전임 대대장에게 600명의 부대원은 우렁찬 목소리로 『전진』 경례를 붙였다. 비록 불편한 몸이나마 작별인사를 하는 李중령은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잡아당겨 전방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덧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음성으로 변해 있었다.
작년 국군의 날, 李중령은 육사의 후배들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차에서 내리는 李중령을 맞이하는 생도들은 휠체어를 준비하고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괜찮아. 혼자 걸을 수 있다』며 뿌리치고 지팡이를 짚은 걸음으로 연병장에 나섰다.
그는 사관 생도의 신조를 강조했다. 첫째,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둘째,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셋째, 우리는 안일한 不義(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正義(정의)의 길을 택한다. 全후배들은 그에게 기립 박수로 예를 표했다.
육군대학으로 배치는 받았지만 그의 앞길은 험난하다. 정식으로 강의에 임하기 위해서는 5~6개월의 연구기간을 거쳐 총장, 교수부장, 각급 처장들 앞에서 벌어지는 혹독한 교관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安秉漢(안병한 소장ㆍ육사 27기) 육군대학 총장은 『육군의 기둥인 영관 장교들을 가르치는 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忍苦(인고)의 연구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지만 신체적 핸디캡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사나이니만큼 잘 해내리라고 기대한다』는 말로 李중령을 격려했다.
육군대학은 李중령에게 특별대우를 하지 않는다. 李중령 자신도 『특별배려는 싫다』고 말한다. 李중령이 속한 전략학처 연구실은 4층 위치 그대로이고 식당도 멀리 떨어져 있으나 李중령은 남들과 똑같이 다녀야 한다. 다만 그의 아파트는 1층에 배정을 하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安장군이 신경을 써 주었다.
李중령은 지난 5월 화랑대 개교기념일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받았다.
李중령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가족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中1과 高1인 두 아들은 어렸을 때, 온 가족이 야유회를 가는 걸 보면 제일 부러웠다고 말한다. 한 살 아래의 부인 金今蘭(김금란)씨는 전업 주부다. 최근에는 남편을 차로 출퇴근 시키는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다. 李중령이 얼마 전 장애인용 차량을 구입해 혼자 통근하면서부터 그 일을 덜었다. 여느 사람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아가는 그는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