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사람하고는 악수 안 한다』는 50代 남자의 손을 잡고 『악수는 하고』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李會昌의 눈물
지난 10월29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렸던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 및 필승결의대회의 한 장면. 한나라당 李會昌(이회창) 후보는 80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이곳에서 감회에 찬 표정으로 단상에 섰다.
『야당이 된 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중앙당은 전기료를 못 내 단전 통보를 받았고, 당료들의 월급을 반으로 줄였던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이 못난 사람을 총재로 뽑아 주었습니다. 이 못난 총재 때문에 고생했고, 허덕였습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겪을 때 정말 괴로웠습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때 저는 통곡해야했습니다. 이 못난 사람을 지켜준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이것은 모두 여러분의 덕입니다』
李후보는 연설 도중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인 소리로 「못난 사람」이란 말을 네댓 번 되풀이했다. 청중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어, 李會昌 많이 변했네』
평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李會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부친 李弘圭(이홍규) 옹의 영결미사 때도 李후보는 눈물을 보였다.
衣食住가 달라졌다
「법대로」라는 별명처럼 원리원칙만 따지고, 뻣뻣하고 인간미가 없다는 세간의 평들이 무색할 만큼 李후보는 행동과 말투, 자세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李후보는 각종 TV 토론이나 공개된 장소에서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던 자신을 낮추는 말들을 자주 하고 있다. 11월10일 朴槿惠(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는 『미흡하고 부족한 것 때문에』라고 했다.
11월7일 MBC 토론회에서는 패널들의 각종 비판성 질문에 『여러 가지 비판까지 나오게끔 하는 것을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고개를 숙였고, YTN 초청 토론에서는 아들들의 병역문제와 관련, 『자식이 군대에 못 간 것은 저의 잘못으로 국민에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李후보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두 손 악수」다. 평소 악수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머뭇머뭇하는 성격이었는데,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두 손을 꼭 잡으면서 한 표를 호소한다. 친근감을 표현하는 몸짓이 커졌고, 웃음이 많아졌다.
李후보는 11월11일 국민통합21 鄭夢準(정몽준) 후보의 아성인 울산을 방문했다. 첫 방문지인 수산물센터에 도착해서 물기 묻은 「아지매」들의 손을 덥석덥석 잡았다. 울산 동구 남목시장에서는 점퍼를 벗어버리고 셔츠 차림으로 좌판에 앉아 찹쌀떡을 한입에 삼켰다.
부끄러워 자신을 피하는 길거리 상인을 골목어귀까지 쫓아가 손을 잡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껴안았다. 李후보의 한 측근은 『李후보가 솔직히 집회나 민생현장에 가면 악수하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했었다. 빨리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 싶어할 때도 있었는데, 지난 5월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때부터 많이 달라졌다.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달려가서 악수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 10월 大田을 방문해 호프집을 찾아갔다. 술잔을 기울이던 酒黨(주당)들과 악수를 나눴는데, 50代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李후보의 악수를 거절했다. 당시는 兵風(병풍)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우리는 거짓말하는 사람과는 악수 안 합니다』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李후보가 머쓱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물러났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李후보는 제일 싸늘한 반응을 보인 사람에게 다가가 『일단 악수는 하고 얘기를 해야죠』라며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하고야 말았다. 50代 남자는 『한나라당, 좀 잘해요』라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현장에 있었던 李후보의 보좌역은 『그 광경을 보면서, 「아 이제는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거절하는 사람의 손을 끝까지 붙잡을 정도면 이제는 「정치인 李會昌」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李후보는 지방을 찾아갈 때마다 대학생들이 자주가는 「젊음의 거리」를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 11월11일 울산 방문 때는 중구의 「차없는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대학생들과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부딪쳤다. 거리 곳곳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함께 찍고, 사인을 해줬다.
젊은이들이 요즘 유행하는 휴대폰 카메라를 李후보에게 들이대자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였다. 중고생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李후보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올해 초 거센 盧風(노풍)이 불어닥쳐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李후보는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를 선택했다. 당내 후보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4월부터 李후보의 의식주가 확 달라졌다.
衣(의). 정장 차림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점퍼 차림이 더욱 익숙하다. 당의 공식 회의석상에도 점퍼를 입고 등장해 당직자들을 머쓱하게 했고,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점퍼가 주된 「무대 의상」이 됐다. 지금은 겨울이니까 힘들지만, 지방의 재래시장 등을 방문할 때면 점퍼와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상인들 틈을 비집고 다니면서 고개를 숙였다.
食(식). 원체 식성이 좋은 편이지만, 경선기간 동안 더욱 낮은 곳으로 향했다. 허름한 식당을 일부러 찾아다녔고, 새벽에는 기사식당에서 택시기사들과 해장국을 함께 들며 여론을 수렴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젊은이들과 함께 먹었다.
러브호텔에서 자고선 『이상한 조명도 있고 신기하데』
住(주). 李후보는 지방출장을 갈 때도 거의 당일치기가 많았다. 밤늦게 일정이 끝나도 될 수 있으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 4월12일 첫 당내 경선이 시작되면서 1주일씩 지방에 머물기 시작했었다. 특히 첫 경선지인 인천으로 내려갔을 때부터 경선이 끝날 때까지 특급호텔이 아닌 장급여관에 머물렀다.
4월25일과 26일 전주에서는 단체이용객들이 애용하는 유스호스텔에 묵었다. 거물급 손님이 온다는 소식에 오히려 예약을 받지 않으려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李후보는 춘천에서는 난생 처음 「러브호텔」을 경험했다. 李후보는 『이상한 조명도 있고 신기하데』라며 『생각보다 깨끗하고 좋더라』고 말했다.
한 맥주집에서 참모가 종업원에게 『작은 접시를 따로 갖다드리라』고 하자, 李후보가 제지했다. 『그러니까 제왕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냐. 1997년 大選 때는 아마추어였지만, 나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는 얘기였다.
경선기간 동안 펼쳤던 「낮은 곳으로」 전략의 결실은 5월10일 전당대회에서 맺어졌다. 압도적인 지지율로 후보에 선출된 뒤 행한 후보 수락연설에서 李후보는 대의원들 앞에서 큰절을 했다. 모두가 놀랐다. 파격이었다.
단상에서 넙죽 업드려 큰절을 하는 장면을 본 한 법관 출신 후배는 「李會昌 맞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李후보는 당시의 소회를 전당대회 다음날 열렸던 경선본부 해단식에서 털어 놓았다.
『주변에서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한 뒤에 대의원들에게 큰절을 하라는 건의를 하더라. 나는 그런데 연설을 하는 도중에도 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국민들에게 쇼하는 것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됐고. 그러나 연설 후반부에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저절로 큰절이 되더라』
가슴 없이 머리만으로 해오던 서민 행보가 그때서야 李후보의 것으로 체화됐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행동거지에서도 최근의 李후보 모습은 예전과 다르다. 좋은 말로 하면 겸손이고, 비판적으로 보면 몸조심이다. 6·13 지방선거 압승, 8·8 재보선 압승 등 호재가 이어졌지만 李후보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오만한 거대 야당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다된 밥에 코 빠뜨릴 위험성이 너무나 곳곳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僞裝 서민」 시비
李후보의 변신이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7월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의 시립보육시설을 방문한 자리. 간담회에서 보육원 교사와 학부모들이 보육예산 확대를 요구하자 李후보는 『시립(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어렵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무래도 어렵다』고 한 학부모가 대답하자 李후보는 『시립에 보내려면 시험을 치르나요, 아니면 빽을 씁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원장이 『선착순 입소순으로 받습니다』라고 대답했다.
李후보의 「빽」 발언은 결국 정치권의 공방거리로 떠올랐다. 『李會昌은 위장 서민』이라고 끊임없이 공격해 온 민주당 측은 이런 사실이 전해지자 『특권층다운 발언』이라고 공격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李후보의 변신 노력은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 많다. 南景弼(남경필)대변인은 『서민행보에 대해 민주당의 반응이 신경질적이었던 것만 봐도 李후보의 행보가 신경이 쓰인다는 증거』며 『처음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을 머리로 했을지 몰라도 이젠 체질화됐다』 말했다.
어제의 적을 수용하는 광폭정치도 李후보의 변화된 모습의 한 부분이다. 李후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배신자다. 자신을 등지고 떠난 사람에 대해 李후보가 갖는 감정은 상상보다 심각하다는 주위의 전언이다. 그런 李후보가 大選 패배 후 당을 떠났던 李完九(이완구) 의원을 받아들이고, 吳長燮(오장섭) 의원의 복당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지난 大選 때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 李후보의 전력을 약화시켰던 朴燦鍾(박찬종) 前 의원을 맞아들인 것과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朴槿惠(박근혜) 의원의 복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李후보를 뒷받침하는 인물로는 徐淸源(서청원) 대표와 辛卿植(신경식) 大選기획단장, 梁正圭(양정규) 자문회의 의장, 權哲賢(권철현) 후보 비서실장, 徐廷友(서정우) 법률고문 등이 있다.
徐廷友 법률고문이 마음을 함께 하는 측근 중 측근
對與공세의 선봉에 서고 있는 徐淸源 대표는 후보가 나서기 곤란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徐대표는 李후보에게 『악역은 내가 맡을 테니 후보는 표되는 일만 하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1997년 大選 때는 李후보와 다소 껄끄러운 관계이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복잡한 당내 갈등요인을 徐대표 특유의 친화력과 카리스마로 제압하면서 李후보의 든든한 방어벽이 되어주고 있다.
辛卿植 大選기획단장은 李후보의 오랜 측근이다. 겉으로 보기엔 사람만 좋아보이지만 「虛虛實實(허허실실)」이란 별명처럼 소리나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휴일도 빼놓지 않고 매일 오전 7시30분이면 20명이나 되는 大選기획단 멤버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는 외부에 공개되면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지지만 아직까지 회의내용이 유출된 적이 없었다. 李후보의 서민행보에 대한 조언과 기획 아이디어 등은 이 회의에서 상당부분 만들어진다. 각종 언론보도와 TV화면 등도 비교분석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 찾기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辛단장은 충청권 의원들의 영입에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제1측근」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再선거에서 승리해 다시 원내로 진입한 梁正圭 자문회의 의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李후보의 부족한 점을 메워 주고 있다. 최근 중앙당사 6층에 방까지 마련함으로써 실세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梁의장의 진가는 李후보의 상가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黨의 큰 어른으로서 全斗煥(전두환) 前 대통령, 金鍾泌(김종필) 자민련 총재, 朴智元(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인사들의 조문에 대해 李후보를 대신해 답례하면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일부에서는 梁의장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궂은 일을 마다않는 큰형님으로서 李후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평가가 많다.
權哲鉉 비서실장에 대한 李후보의 배려는 각별하다. 당내 부산시장 후보경선과정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무조건 李후보 주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불러 올렸다. 李후보의 의중을 누구보다 빨리, 정확하게 파악하고 뜻에 맞게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權실장의 의견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채택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徐廷友(서정우) 법률 고문은 최근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李후보의 「측근 중 측근」이다. 李會昌 후원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徐변호사는 병풍이 거세지면서 당으로 들어와 李후보 방어의 전면에 나섰고,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특히 최근에는 李후보와 후원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게 주변의 평가다. 李후보를 판사시절부터 오랫동안 모시면서 각별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야당이 된 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중앙당은 전기료를 못 내 단전 통보를 받았고, 당료들의 월급을 반으로 줄였던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이 못난 사람을 총재로 뽑아 주었습니다. 이 못난 총재 때문에 고생했고, 허덕였습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겪을 때 정말 괴로웠습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때 저는 통곡해야했습니다. 이 못난 사람을 지켜준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이것은 모두 여러분의 덕입니다』
李후보는 연설 도중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인 소리로 「못난 사람」이란 말을 네댓 번 되풀이했다. 청중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어, 李會昌 많이 변했네』
평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李會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부친 李弘圭(이홍규) 옹의 영결미사 때도 李후보는 눈물을 보였다.
衣食住가 달라졌다「법대로」라는 별명처럼 원리원칙만 따지고, 뻣뻣하고 인간미가 없다는 세간의 평들이 무색할 만큼 李후보는 행동과 말투, 자세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李후보는 각종 TV 토론이나 공개된 장소에서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던 자신을 낮추는 말들을 자주 하고 있다. 11월10일 朴槿惠(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는 『미흡하고 부족한 것 때문에』라고 했다.
11월7일 MBC 토론회에서는 패널들의 각종 비판성 질문에 『여러 가지 비판까지 나오게끔 하는 것을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고개를 숙였고, YTN 초청 토론에서는 아들들의 병역문제와 관련, 『자식이 군대에 못 간 것은 저의 잘못으로 국민에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李후보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두 손 악수」다. 평소 악수하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아 머뭇머뭇하는 성격이었는데,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두 손을 꼭 잡으면서 한 표를 호소한다. 친근감을 표현하는 몸짓이 커졌고, 웃음이 많아졌다.
李후보는 11월11일 국민통합21 鄭夢準(정몽준) 후보의 아성인 울산을 방문했다. 첫 방문지인 수산물센터에 도착해서 물기 묻은 「아지매」들의 손을 덥석덥석 잡았다. 울산 동구 남목시장에서는 점퍼를 벗어버리고 셔츠 차림으로 좌판에 앉아 찹쌀떡을 한입에 삼켰다.
부끄러워 자신을 피하는 길거리 상인을 골목어귀까지 쫓아가 손을 잡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껴안았다. 李후보의 한 측근은 『李후보가 솔직히 집회나 민생현장에 가면 악수하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했었다. 빨리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 싶어할 때도 있었는데, 지난 5월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 때부터 많이 달라졌다.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달려가서 악수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 10월 大田을 방문해 호프집을 찾아갔다. 술잔을 기울이던 酒黨(주당)들과 악수를 나눴는데, 50代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李후보의 악수를 거절했다. 당시는 兵風(병풍)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우리는 거짓말하는 사람과는 악수 안 합니다』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李후보가 머쓱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물러났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李후보는 제일 싸늘한 반응을 보인 사람에게 다가가 『일단 악수는 하고 얘기를 해야죠』라며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하고야 말았다. 50代 남자는 『한나라당, 좀 잘해요』라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현장에 있었던 李후보의 보좌역은 『그 광경을 보면서, 「아 이제는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거절하는 사람의 손을 끝까지 붙잡을 정도면 이제는 「정치인 李會昌」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李후보는 지방을 찾아갈 때마다 대학생들이 자주가는 「젊음의 거리」를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 11월11일 울산 방문 때는 중구의 「차없는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대학생들과 호프집에서 맥주잔을 부딪쳤다. 거리 곳곳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함께 찍고, 사인을 해줬다.
젊은이들이 요즘 유행하는 휴대폰 카메라를 李후보에게 들이대자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였다. 중고생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李후보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올해 초 거센 盧風(노풍)이 불어닥쳐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李후보는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를 선택했다. 당내 후보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4월부터 李후보의 의식주가 확 달라졌다.
衣(의). 정장 차림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점퍼 차림이 더욱 익숙하다. 당의 공식 회의석상에도 점퍼를 입고 등장해 당직자들을 머쓱하게 했고,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점퍼가 주된 「무대 의상」이 됐다. 지금은 겨울이니까 힘들지만, 지방의 재래시장 등을 방문할 때면 점퍼와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상인들 틈을 비집고 다니면서 고개를 숙였다.
食(식). 원체 식성이 좋은 편이지만, 경선기간 동안 더욱 낮은 곳으로 향했다. 허름한 식당을 일부러 찾아다녔고, 새벽에는 기사식당에서 택시기사들과 해장국을 함께 들며 여론을 수렴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젊은이들과 함께 먹었다.
러브호텔에서 자고선 『이상한 조명도 있고 신기하데』住(주). 李후보는 지방출장을 갈 때도 거의 당일치기가 많았다. 밤늦게 일정이 끝나도 될 수 있으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난 4월12일 첫 당내 경선이 시작되면서 1주일씩 지방에 머물기 시작했었다. 특히 첫 경선지인 인천으로 내려갔을 때부터 경선이 끝날 때까지 특급호텔이 아닌 장급여관에 머물렀다.
4월25일과 26일 전주에서는 단체이용객들이 애용하는 유스호스텔에 묵었다. 거물급 손님이 온다는 소식에 오히려 예약을 받지 않으려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李후보는 춘천에서는 난생 처음 「러브호텔」을 경험했다. 李후보는 『이상한 조명도 있고 신기하데』라며 『생각보다 깨끗하고 좋더라』고 말했다.
한 맥주집에서 참모가 종업원에게 『작은 접시를 따로 갖다드리라』고 하자, 李후보가 제지했다. 『그러니까 제왕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냐. 1997년 大選 때는 아마추어였지만, 나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는 얘기였다.
경선기간 동안 펼쳤던 「낮은 곳으로」 전략의 결실은 5월10일 전당대회에서 맺어졌다. 압도적인 지지율로 후보에 선출된 뒤 행한 후보 수락연설에서 李후보는 대의원들 앞에서 큰절을 했다. 모두가 놀랐다. 파격이었다.
단상에서 넙죽 업드려 큰절을 하는 장면을 본 한 법관 출신 후배는 「李會昌 맞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李후보는 당시의 소회를 전당대회 다음날 열렸던 경선본부 해단식에서 털어 놓았다.
『주변에서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한 뒤에 대의원들에게 큰절을 하라는 건의를 하더라. 나는 그런데 연설을 하는 도중에도 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국민들에게 쇼하는 것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됐고. 그러나 연설 후반부에 가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저절로 큰절이 되더라』
가슴 없이 머리만으로 해오던 서민 행보가 그때서야 李후보의 것으로 체화됐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행동거지에서도 최근의 李후보 모습은 예전과 다르다. 좋은 말로 하면 겸손이고, 비판적으로 보면 몸조심이다. 6·13 지방선거 압승, 8·8 재보선 압승 등 호재가 이어졌지만 李후보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오만한 거대 야당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다된 밥에 코 빠뜨릴 위험성이 너무나 곳곳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僞裝 서민」 시비李후보의 변신이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7월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의 시립보육시설을 방문한 자리. 간담회에서 보육원 교사와 학부모들이 보육예산 확대를 요구하자 李후보는 『시립(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어렵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무래도 어렵다』고 한 학부모가 대답하자 李후보는 『시립에 보내려면 시험을 치르나요, 아니면 빽을 씁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원장이 『선착순 입소순으로 받습니다』라고 대답했다.
李후보의 「빽」 발언은 결국 정치권의 공방거리로 떠올랐다. 『李會昌은 위장 서민』이라고 끊임없이 공격해 온 민주당 측은 이런 사실이 전해지자 『특권층다운 발언』이라고 공격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李후보의 변신 노력은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 많다. 南景弼(남경필)대변인은 『서민행보에 대해 민주당의 반응이 신경질적이었던 것만 봐도 李후보의 행보가 신경이 쓰인다는 증거』며 『처음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을 머리로 했을지 몰라도 이젠 체질화됐다』 말했다.
어제의 적을 수용하는 광폭정치도 李후보의 변화된 모습의 한 부분이다. 李후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배신자다. 자신을 등지고 떠난 사람에 대해 李후보가 갖는 감정은 상상보다 심각하다는 주위의 전언이다. 그런 李후보가 大選 패배 후 당을 떠났던 李完九(이완구) 의원을 받아들이고, 吳長燮(오장섭) 의원의 복당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지난 大選 때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 李후보의 전력을 약화시켰던 朴燦鍾(박찬종) 前 의원을 맞아들인 것과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朴槿惠(박근혜) 의원의 복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李후보를 뒷받침하는 인물로는 徐淸源(서청원) 대표와 辛卿植(신경식) 大選기획단장, 梁正圭(양정규) 자문회의 의장, 權哲賢(권철현) 후보 비서실장, 徐廷友(서정우) 법률고문 등이 있다.
徐廷友 법률고문이 마음을 함께 하는 측근 중 측근對與공세의 선봉에 서고 있는 徐淸源 대표는 후보가 나서기 곤란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徐대표는 李후보에게 『악역은 내가 맡을 테니 후보는 표되는 일만 하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1997년 大選 때는 李후보와 다소 껄끄러운 관계이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복잡한 당내 갈등요인을 徐대표 특유의 친화력과 카리스마로 제압하면서 李후보의 든든한 방어벽이 되어주고 있다.
辛卿植 大選기획단장은 李후보의 오랜 측근이다. 겉으로 보기엔 사람만 좋아보이지만 「虛虛實實(허허실실)」이란 별명처럼 소리나지 않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휴일도 빼놓지 않고 매일 오전 7시30분이면 20명이나 되는 大選기획단 멤버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는 외부에 공개되면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지지만 아직까지 회의내용이 유출된 적이 없었다. 李후보의 서민행보에 대한 조언과 기획 아이디어 등은 이 회의에서 상당부분 만들어진다. 각종 언론보도와 TV화면 등도 비교분석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 찾기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辛단장은 충청권 의원들의 영입에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제1측근」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再선거에서 승리해 다시 원내로 진입한 梁正圭 자문회의 의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李후보의 부족한 점을 메워 주고 있다. 최근 중앙당사 6층에 방까지 마련함으로써 실세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梁의장의 진가는 李후보의 상가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黨의 큰 어른으로서 全斗煥(전두환) 前 대통령, 金鍾泌(김종필) 자민련 총재, 朴智元(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인사들의 조문에 대해 李후보를 대신해 답례하면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일부에서는 梁의장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궂은 일을 마다않는 큰형님으로서 李후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평가가 많다.
權哲鉉 비서실장에 대한 李후보의 배려는 각별하다. 당내 부산시장 후보경선과정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무조건 李후보 주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불러 올렸다. 李후보의 의중을 누구보다 빨리, 정확하게 파악하고 뜻에 맞게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權실장의 의견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채택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徐廷友(서정우) 법률 고문은 최근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李후보의 「측근 중 측근」이다. 李會昌 후원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徐변호사는 병풍이 거세지면서 당으로 들어와 李후보 방어의 전면에 나섰고,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특히 최근에는 李후보와 후원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게 주변의 평가다. 李후보를 판사시절부터 오랫동안 모시면서 각별한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