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선수에게 준 병역 특혜의 문제점 : 월간조선

兵役은 의무이자 권리

지난 6월 중순 국무회의에서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 혜택을 주기로 의결했다. 그동안 보도된 걸 보면 여러 가지 포상에 덧붙여 병역 특혜를 「덤」으로 얹어 준 듯한 인상이다. 하기야 역사상 처음으로 4强에 올라 국위를 선양하고 온 국민의 사기를 크게 드높인 쾌거를 생각하면, 고맙고 기특해 필자 자신부터 무언가 해주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또 「兵役特惠」인가? 그 고마움의 표시가 기껏 병역 특혜밖에 없으며, 그것이 과연 이 자랑스런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명예스러운 포상이 될 것인가? 물론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안보요소가 병존하는 총합 안보시대에 병역의무만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본 군국주의자들도, 태평양 전쟁이 한참이던 때에도 理工系 대학생들은 학병징집을 自制했음은 좋은 사례다.

그러나 모름지기 병역의무는 국민의 국가에 대한 충성된 마음의 상징이요, 출발점이다. 그래서 병역의무를 신성한 것이라 하고, 그것은 의무이기 이전에 그 나라 국민은 누구나 고르게 누릴 수 있는 자랑스러운 권리라고도 한다. 그래야 나라의 안보 역량도 유지될 수가 있다. 안보 역량의 핵심은 국민의 국가 방위의지이고, 방위 의지는 兵役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代辯되며 또 병역을 통해 고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국가 방위 의지가 「0」이라면 다른 요소가 아무리 강해도 안보역량 역시 「0」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兵家의 공식이다.

「고슴도치 전략」을 국가 안보의 窮餘之策(궁여지책)으로 삼는 한국의 경우는 더 말할 여지도 없다. 한국이 무기와 병력으로 주변 강국들과 경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군인의 푸른 제복을 국가와 민족을 信仰的 대상으로 하는 聖衣라고 교육하고, 또 스스로 그렇게 다짐하게 해왔다. 국가와 국민은 이러한 참 군인됨을 신뢰하고 존중하며 사랑해서 그들이 가슴 가득히 군인으로서의 드높은 긍지와 명예심을 갖게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國防의 大義」가 살아야 國家安保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자주 병역의무를 특혜의 대상으로 삼아왔고, 그래서 스스로 국방의 대의를 훼손해 왔다. 이런 저런 병역 특혜의 이유가 하도 많아서 마치 병역은 아무런 특별한 능력이 없고 할 일도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부끄러운 부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좋은 예로 석사 장교제도라는 것도 있었고, 병역 특혜를 미끼로 초등학교 선생님을 확보하려 들기도 했었다. 국가 방위라는 국민된 召命을 회피하기 위해 교육자의 길을 택한 선생님이 과연 무엇을 가르칠 것이며, 병역을 회피하려고 공부를 조금 더한 이들에게서 어떤 국가적 공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한때 시위하는 학생은 즉각 징집의 대상이 되었고, 軍 부대에는 이른바 삼청교육대가 설치 운영되기도 했다. 신성해야 할 병역의 의무가 징계와 처벌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병영은 교도소로 활용되던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국민이 병역의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군인은 군인됨을 명예롭게 여길 것이며 푸른 제복을 聖衣처럼 소중히 할 것인가? 국민의 가슴에 심어진 군대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 것인가?

大義를 살리며 實利를 찾는 지혜

그러니 어린 선수들이 손쉽게 병역 특혜를 건의하고 나선 것도 전혀 괴이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병역이 특혜의 대상이라면 일시라도 軍門에 몸을 담은 사람들의 자존심과 명예는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또 긍지와 명예가 없고, 국민이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 군대는 어떤 군대가 될 것인가? 자칫 敵에게는 비겁하고 약하면서 국민에게는 횡포하고 강한 그런 군대이기가 쉽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에외없이 똑같은 기간 똑같은 방식으로 軍 복무를 하도록 강요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현대의 총합 안보체제下에서는 효율적인 국가관리 방법도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국방의 大義는 살게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지도하고 국가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바른 자세요, 도리다. 국민의 인기를 한몸에 가득히 안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한 마디 한다고 해서 무조건 「오냐, 오냐」 하고 인기에 편승해 볼까 기웃거리는 모습은 전혀 어른스럽지 못하다.

막대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군 체육부대는 바로 이런 경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국군 체육부대를 활용하면 국방의 大義도 살리고 실질적으로 선수들의 기대도 만족시켜 줄 수도 있는 次善(차선)의 길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기서 일일이 예를 들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잘 생각해 보면, 어떤 경우든 군인된 자존심을 짓밟지 않고 국방의 大義를 살리면서 국가적·사회적 필요에도 부응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은 얼마든지 있을 법하다.

어른들이 잘 지도했어야

이번 결정이 결국은 국가적 前例가 되고 「병역의무란 가능만 하다면,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벗어 버려야 할 온 국민에게 들씌워진 의미 없는 부담이요, 手匣(수갑) 같은 것」이란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을 확실하게 고착시켜 놓는 것은 아닐까? 특히 아마도 그 효과는 이번 월드컵의 결과가 화려한 만큼 더 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선수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게임이 끝나고 환희와 흥분에 들떠 있던 국민이 일상을 되찾게 될 때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알려진 것과 반대로,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 「국방의무를 자랑스럽게 수행하겠다」고 당당히 요구하고, 정부는 사실상 면제효과와 다름 없는 길을 열어 주었더라면 나라를 위해 얼마나 고마운 일이고 선수 개인들도 얼마나 더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었을 것인가? 설사 어린 선수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적어도 나라의 「어른」들은 이들을 잘 지도해서 그런 모습을 연출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온 국민의 국민적 자존심이요, 희망의 상징인 이들이 뒷구멍에 앉아 작은 이익에 낄낄거리는 좀스러운 모습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 앞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적 스포츠 스타로 더욱 더 당당하게 성장해 나갈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모름지기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면 아무리 당장이 너무 기쁘고 포상이 다급해도 마음에 여유를 갖고 나라를 위한 장기적 안목에서 바로 그런 합리적인 길을 찾아 주었어야 할 일이었다고 믿어진다. 이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의 미래를 참으로 명예롭고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그랬어야 하지 않을까?

「玉에 티」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민족을 기쁨과 환희에 넘치게 하고 긍지와 자신감을 일깨우며 한마음으로 뭉치게 한 이 영광된 큰 잔치에 어른스럽지 못한 지도층들이 엉뚱한 오점을 찍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