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熙 相 예비역 육군 중장
1945년 경남 거창 출생. 육사 24기. 대통령 국방 비서관, 맹호사단장, 육본인사참모부장, 수도군단장, 국방대학교총장, 2000년 11월 예편. 현 성균관대 겸임 교수. 저서 「중동전쟁」, 「21세기 한국안보」, 「생동하는 군을 위하여」 등.
1945년 경남 거창 출생. 육사 24기. 대통령 국방 비서관, 맹호사단장, 육본인사참모부장, 수도군단장, 국방대학교총장, 2000년 11월 예편. 현 성균관대 겸임 교수. 저서 「중동전쟁」, 「21세기 한국안보」, 「생동하는 군을 위하여」 등.
9·11테러의 衝擊
지난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일어난 테러 大참극은 미국으로 하여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史上 初有의 전쟁에 온 국력을 쏟아 붓게 하면서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고 있다. 원래 脫냉전시대 국제사회의 으뜸 話頭는 단연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를 중심이념으로 삼아 全세계를 미국이 주도하는 하나의 汎지구적 공동체로 만들려는 이른바 新국제질서(New World Order)의 확립」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부시 정부는 미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질서를 만들겠다면서도 편협한 미국의 국익만을 앞세우고 국제적 리더로서의 책임을 축소하거나 지지 않겠다고 해서 서구 열강과 세계 주요 강국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한동안 세계질서는 적지 않은 혼란 속에 표류해 왔었다.
9·11 테러는 이 표류하는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특히 西歐)의 주도적 국가들에게 하나의 중요한 경종이 되었다. 우선 부시 정부부터 변했다. 냉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힘을 앞세우고 미국의 국익만을 강요하던 一方主義(unilateralism)적 외교패턴을 신속히 탈피해서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중시하는 多者主義(multilateralism), 국제주의적패턴으로 전환했다. 중국의 도전 가능성을 다음 세기 최대 안보 위협으로 삼던 국방전략 개념도 국제적 테러리즘이라고 하는 새로운 敵에 대한 전쟁을 중심으로 크게 선회하였다.
과거에는 이른바 win-win 혹은 win-hold-win과 같이 어디까지나 정규전적 대응을 위주로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테러와 같은 「非대칭적 침략 위협」(asymmetric threats)으로부터 직접 미국 본토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우선을 두고 있다.
부시 정부는 이번 테러와의 전쟁이 문명세계와 국제적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하는 非문명권과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국제 사회에 대해 이 새로운 전쟁에 신속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동참 할 것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전쟁에 대한 협조 여부로 미국에 대한 우호적 관심의 尺度(척도)로 삼겠다는 오만하고도 진귀한 선언을 일찌감치 해놓고 불참국가의 책임론까지 거론했다.
서구 유럽도 여기에 즉각 호응하였다. 「문명의 충돌」이란 冊을 통해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을 예언했던 美 하버드大 교수 새뮤얼 헌팅턴은 9·11 테러가 서구의 正體性을 일깨워 서구의 결속을 강화하고 미국과 유럽의 통합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구 유럽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세계 각국이 그 누구도 테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자각 속에 미국과의 갈등 요소들을 서둘러 봉합하거나 뒤로 미루고, 테러와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게 된 것이다.
테러를 계기로 가까워진 미국과 러시아
그런 와중에 부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추진해 오던 미국의 對外 정책 목표를 매우 용이하고 자연스럽게 달성해 가고 있다. 우선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매우 돈독해졌다. 이같은 미·러 간 우호 체제의 확립은 「테러에 대한 전쟁」을 위해서라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 넘는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다.
이번 전쟁 초기, 일부에서는 미국과 중국간에도 새로운 우호 관계의 발전을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을 이어온 중국의 「中華 질서」 회복의 꿈과 미국의 「汎지구적 공동체」 건설의 의지는 경쟁 대립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식 사회주의」 간의 갈등, 여기에 「文明 충돌론」까지 끼어 들면 兩國間의 항구적 평화와 우호 관계란 그 어디에도 발을 붙일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중국 역시 그 동안 러시아로부터 20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군사 및 非군사 물자를 구매하고 푸틴을 중국 편에 붙들어 두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그런데 이제 푸틴이 일단 부시 편에 한발 다가 선 모양새니까 말하자면 부시 나름의 深謀遠慮(심모원려)가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서로 헤게모니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 간의 이 갈등관계는 다음 시대 국제사회의 가장 큰 긴장요인이 될 것이고 이 긴장구조를 전제로 보면 미·러 관계 발전의 의미는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때마침 쉽지 않을 것이라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 작전도 예상을 뒤엎고 매우 성공적이어서 부시 정부의 위상을 한껏 높여 주고 이슬람권의 反美 열기를 누르고 중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슬람권의 내부에 끓어오르는 아랍인 일반의 反美, 反西歐 정서는 여전히 뜨겁기 짝이 없다.
서구에 대한 아랍 이슬람의 적의와 저항이라고 하는 이것은 다음 세대 지구촌 사회 긴장구조의 또 다른 한 軸이 될 것이다. 9·11 테러는 그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편 동북아에선 새로운 정치, 군사적 강국으로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 관계가 만만치 않은 관심거리다. 일본도 한때 東아시아 지도국가의 지위를 누렸던 강대국으로 아직도 「대동아 공영권」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보통 국가론」이 바로 그 표현이다. 물론 일본이 아직은 쉽게 東亞의 盟主로 나설 수는 없지만 국가적 자존심 상 중국 지배의 東아시아 질서에 참여할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일본을 맹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이것이 중국과 일본 간의 경쟁과 갈등, 대결을 숙명적인 것이 되게 만들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팍스 아메리카나
이 시대의 국제 안보환경의 특성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국제정치 질서를 새롭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강력한 국제정치적 리더십을 再정비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일단은 미국이 절대적 중심이 되는, 다소 새로운 형태의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新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라고 하는 상부 갈등구조가 국제사회 긴장의 중심축이 되고, 서구 사회에 대한 아랍 이슬람권의 저항과 중국과 일본의 각축을 중심으로 하는 하부 갈등구조들이 보조 축을 이루어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격동적일 가능성이 높은 그러한 시대가 될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안보 구조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2重 구조다. 「문명권」 對 「非문명권」 간의 갈등 관계로 보는 일반적인 주장은 오늘날 표면에 나타나 있는 매우 피상적인 인식일 뿐이고 물밑으로 흐르고 있는 냉정한 현실은 이처럼 복합적인 갈등구조가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시점 세계질서를 확고히 장악하고 있고 유사시 중국에 대한 포위망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국회 예산 획득부터 어려울 것이라던 MD(Missile Defense)는 특별한 저항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시대 국제 안보환경의 특성은 이처럼 도저히 단순화시킬 수가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
더욱이 정보화 사회, 세계화 시대인 21세기는 이른바 강대국 위주의 제한 主權시대다. 힘이 없는 나라는 국가적 자존심은 커녕 자신의 주권조차도 제대로 지켜내기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세계의 갈등구조는 모두 동북아에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동북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인 한반도, 특히 그 뇌관이랄 수 있는 북한이 있는 곳이다. 이 동북아의 갈등구조가 자칫 국제 정치적인 태풍을 몰아오고, 여기에 만에 하나 북한의 非이성적인 행동이 접합되면 이곳은 문자 그대로 「아마겟돈」(신약성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말로 인류 종말 시기에 선과 악의 최후의 결전장을 상징)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안보 상황下에서 한국이 21세기에 살아 남자면 과연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절대로 전쟁은 막아야 한다. 그 외의 다양한 군사적 도발들도 막아야 한다. 그래야 경제도 살 수가 있고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역량도 길러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총체적 통일 안보태세와 역량을 再정비·강화하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서둘러 완성해서 국가의 덩치부터 좀 키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대한민국이 국제안보환경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정말로 민족통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는 단순히 우리 민족의 염원이라는 감상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강대국 위주의 제한 主權시대에 한민족이 살아남으려면 그 길밖에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특히 이제 민족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의 궁극적 최종 목표라기보다는, 21세기 민족적 생존과 번영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요, 새로운 시대 개척의 기반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온 세계가 경제와 문화, 삶의 질의 향상 등 새로운 가치를 향해 약진하고 있는데, 우리만 동족 간의 갈등과 분쟁, 안보상의 위협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는, 후일 통일이 되어도 민족이 세계사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 평화적으로 원만하게 달성되려면 북한이 같이 호응해 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북한 金正日이가 이 민족적 大義에 순순히 호응해 올 것 같지가 않다. 천상 金正日 체제가 자연스럽게 망하든지, 아니면 정말로 大悟覺醒(대오각성) 오늘의 경제위기를 신속히 연착륙하게 하고 南과 北이 진심으로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합심협력해 나가야 한다. 어느 것이 가능할 것인가?
북한체제의 운명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국가체제가 유지되려면 국민의 충성심, 효율적인 통치체제, 그리고 체제수호의 힘, 즉 군사력이라고 하는 3大 기본요소는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충성하고 싶어도 춥고 배고픈데 계속 충성심이 우러날 것 같지는 않고, 관료들은 지극히 부패해 있는데다가 사기마저 저하되어 있다.
단지 군사력만은,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만사 제쳐놓고 軍을 잘 모시다 보니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3大 요소 중에 하나만은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한계에 다다른 金正日의 입지
북한은 그 동안 강력한 정보통제로 주민의 눈과 귀를 막아 놓고 앞에서는 金日成의 카리스마로 끌고 나가면서, 軍이나 사회 안전부 같은 국가적 폭력장치로 뒤에서 두들겨 밀고 나가는 형태로, 말하자면 「테러의 恐怖」를 활용하여 통치해 왔다. 그런데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굶어 죽을 판이 되다 보니 그 국가 폭력장치의 칼날도 많이 무디어지고 효과도 뚝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게다가 金日成 주석이 죽은 지도 이미 7년이 지났다.
金正日도 「遺訓統治」라는 기묘한 방법으로 金日成의 카리스마를 활용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강성대국」이라는 걸 내세워서 자기 자신의 카리스마를 세우려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金日成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이렇게 살펴보면 북한은 이미 오래 전에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을 넘어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 동안 우리 정부가 대전략적 차원에서 조금만 더 지혜로운 통일 정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추진해 왔더라도 남북한 상황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오늘날 북한 체제의 존재는 그들 자신의 노력 못지 않게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던 한국의 정책적 태도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져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 북한 혼자만 고립된 채 언제까지나 시대에 뒤떨어진 삶을 살아 갈 수도 없을 것이고 그 거대한 러시아를 붕괴시킨 정보 사회화의 태풍이 중국의 미래까지도 의심하게 하고 있는데 하물며 북한의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하는 그런 말이다. 결국 시간이 문제일 뿐 북한이 現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는 한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으로 급격히 몰려가게 될 것임은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이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개혁·개방으로 나가 체제를 再정비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것은 가능할 것인가? 그 동안에도 북한은 이미 자본주의 바람은 막으면서 實利만 취한다는 부분적, 제한적 개혁·개방, 소위 방충망식 개방은 수차 시도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고 2000년 6월15일 남북 頂上회담에 대해서는 汎국민적인 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컸었다.
이 역시 현재로서의 결론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現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상당한 무리를 거듭하며 헌신적으로 공을 들여온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실험도 결국은 한국의 「평화정착을 위한 의지」와 북한의 「경제적 이익과 적화 통일을 위한 전략」 간의 만남이자 싸움이라는 남북대화의 전형적 기본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난 11월14일 끝나버린 것이다.
개방이 북한에 주는 부담
설사 다소 적극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유지해 나가려 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북한에서는 하나에서 열까지 金正日의 직접 지시나 결심이 있어야 된다는 데, 정작 金正日은 군사위원장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단순히 지배하고 있을 뿐 직접 관장하지는 않는다 하니, 그런 체제와 그런 자세로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또 하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원래 모든 독재체제는 통상 정보의 통제에 그 기반을 둔다. 强하고 경직된 보다 심한 독재일수록 더욱 더 철저하고 치밀한 정보의 통제가 필요하고 그 정보통제의 바탕 위에서만 독재체제가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의 정보 통제 체제에 타격을 주고 어쩌면 해체시킬지도 모르는 개혁·개방이 원천적으로 가능하냐 하는 의문인 것이다.
이에 대해 現정부는 북한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북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변화할 것이고 또 이미 변하고 있다고 확언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인사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다. 衣食住 등 일부 생활상의 변화가 있었고 생존 전략의 변화도 있었지만 통일을 바라보면서 평화의 정착을 기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는 전혀 없었다고 본다. 적어도 先軍政治, 군사제일주의의 포기나 對南 공작정치의 변화가 최소한의 요구인데 그런 차원에서는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북한은 일종의 神政國家인데 舊約의 세기였던 金日成 시대보다 新約의 시대인 金正日 때에 더욱 더 독재가 강화되고 사회체제가 改惡 惡化되었으니까 金正日이가 살아 있는 한은 북한의 체제 개선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의 식량문제도 「집단농」 체제를 「개인농」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당장 세 배 이상의 增産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온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북한 주민의 처참한 굶주림도 결국 북한 통치집단의 냉혹하고 非인간적인 「정책이 문제」임이 증명 된 셈이다.
개방을 해도 망하고 안 해도 망해
1994년 金日成이 죽고 「새로운 세대」인 金正日이 집권했으니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에 대해서는 金正日의 실질적인 집권이 1994년부터가 아니라 사실상 1974년부터이기 때문에 기대의 근거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고 본다. 黃長燁씨에 의하면 1974년부터 1985년경까지는 「金日成·金正日」의 2중 정권 시대였고 1985년부터 1994년까지는 「金正日·金日成」 2중 정권 시대였다고 한다.
결국 한국이 아무리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햇볕을 따뜻하게 비추어 주려 해도 북한은 이를 받아들일 의지가 없고 체제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게 변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본 공산당원이면서 북한문제 전문가로 이름을 얻고 있는 하기와라 료씨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고 있다. 『金正日은 눈(雪)사람이어서 아무리 집안에 난로를 따뜻하게 피우고 들어 오라 해도 들어 갈 수가 없는 사람이다』면서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3월8일 파월 美 국무장관도 의회에서 「북한은 개방을 안 하면 망하고 개방해도 망할 것」이라고 단정한 바 있는데 이런 경우 金正日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自明하다 하겠다.
그동안 정부는 現정책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북한의 도발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를 반문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이처럼 북한의 변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제 정부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문이 가능해 질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의 남북관계가 지속되어야 하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침략과 도발을 인내하고 끊임없이 일방적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가? 북한이 체제경쟁에 성공하여 적화 통일을 이룰 때까지인가. 아니면 저들이 마침내 충분한 戰力을 갖추어 전면 남침 도발을 감행할 때까지인가?』 하고 말이다.
실제로 남침 도발이라고 하는 마지막 가능성은 우리가 여전히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현상유지도, 개혁·개방도, 결국은 한계상황에 부딪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저들이 적화통일 하겠다고 몇 십년을 전쟁준비로 낮과 밤을 지새워 왔고 나름의 무력 역량도 쌓아놓았는데, 특히 바로 그것 때문에 이제 망할 판이 되어 버렸는데, 조용히 그냥 두손 들고 말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북한을 위험하고 불안스럽게 보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 사회가 과도히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하거나 독재국가라면, 또 이른바 聖戰文化가 지배한다든가 국제질서의 현상유지(status quo)에 대한 불만이 크다든가 하면 전쟁도발의 위험은 클 수밖에 없는데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지금까지 평화가 유지되어 온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더욱이 북한은 전반적으로 몇 가지 취약점은 있지만, 저들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어떠한 형태의 도발도 가능한 다양하고 강력한 군사적 도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더 큰 문제는 저들의 턱없는 자신감이다. 金正日 집단의 실제 내심은 알 수 없지만, 3일 作戰이니 5일, 7일 作戰이니 하면서 호언장담을 한다. 將·士兵들이나 북한주민들은, 그저 주한 미군이 마음에 좀 걸리지만 전쟁이 나면 문제없이 이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효율성
그렇다고 해서 포용정책, 햇볕정책의 아이디어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햇볕정책의 근본 목적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과 북이 화해 협력하여 21세기 한민족의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자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원래 우리 민족의 통일노력에는 몇 가지 大前提 조건,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또 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인류가 현재까지 찾아낸 최선의 체제라고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반드시 수호되고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 셋째 궁극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번영과 복지의 확충에 기여하는 형태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 세 가지 원칙에 충실하자면 우리의 통일은 勝者는 있어도 敗者는 없는, 설사 敗者가 있더라도 그 손실과 충격이 최소화되는 그런 통일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또 하나 以心傳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 있다. 통일 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원만하게 극복하려면 통일의 과정과 통일 후에도 강력한 힘이 뒷받침해 주는 질서가 유지·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적 무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통일이라야만 그 통일이 정치적으로 유효하고 역사적 영속성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전제下에서 보더라도 햇볕정책의 理想 그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前 駐韓 러시아 大使 아파나시에프는 필요하다면 햇볕을 두 배로 비춰 주라고 했는데 긴장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은 기본적으로 햇볕정책 추진의 길과 그 脈을 같이한다. 북한 통치 집단을 타도하려면 그 독재체제의 근본 바탕이 되고 있는 정보 통제체제를 해체시켜서 북한 주민의 汎국민적 각성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햇볕정책은 매우 효용성 있는 정책 수단이 될 것이다.
햇볕정책의 후유증
물론 이렇게 2중적인 접근이 쉽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2중성은 對北정책의 불가피한 본질이다. 오늘날 햇볕정책, 포용정책이 이렇게 결과되고 만 데는 바로 이러한 특성을 무시 한 데 일부 원인이 있다. 모든 남북관계에는 본질적으로 한 민족으로서의 상호 협력, 평화와 번영이라고 하는 민족적 大義와 자유민주주의 對 공산주의 체제 간의 이념 갈등 및 체제경쟁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동시에 혼재하고 있다. 이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現정부가 지나치게 人道主義的 차원에서만 북한을 보면서 북한의 선의에 기대하여 능력 이상으로 「지원」에만 관심을 기울인 때문이라는 논란이 있는 것이다.
한국은 그 동안 과거 金日成 시대의 상황 인식으로 金正日 시대의 對北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992년만 해도 남북 총리를 대표로 하는 하나의 라인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그 때는 북한 군부가 정무원의 일부였지만, 지금의 북한 군대는 오히려 그들이 나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정무원마저도 軍을 지원하는 외곽 조직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보는 특이한 의식 구조를 갖고 있다.
당연히 남북대화도 북한 군부를 계속 대화의 광장에 머물도록 해야 하고 대화의 방법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정무원과 인민 무력부 두 라인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헤아리면서 매우 다양하고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아쉽고 안타까운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남북 관계가 갖는 정치적 효과와 대통령 자신이 최고 전문가라고 믿는 자만심 때문에, 아니면 공명심 때문에 지나치게 頂上회담에 집착한 조급한 성과주의로 장기 안목下에 입체적으로 잘 통제되고 충분히 계획 검증된 정책의 추진이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가 하는 의문도 있다.
정부 일부 지도층이 독주하면서 국민적 공감대의 확보에 소홀하다 보니 자생적 정책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이 때문에 불필요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또 안보와 포용을 병행 추진한다던 정책의지와는 달리 국방태세와 국민의 안보 의지, 심지어 韓美 우호관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겨 놓았다는 일부의 주장도 그 중 하나다.
평화적인 것이든 전투적인 것이든 간에 모든 남북관계는 체제 경쟁과 연계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최소한의 상호주의는 반드시 지켜졌어야 했다.
북한 金正日 체제의 未來
어쨌든 이제 이 정부下에서의 햇볕정책에 의한 실험은 사실상 끝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이보다 더 모험적이고 희생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 金正日 체제가 얻은 결과는 어떠한가? 그들이 살아 남았다는 사실, 특히 그 혹독한 식량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한 것만도 일단은 성공적이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정도의 성공만으로 그들의 미래까지 보장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장차 金正日 체제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가? 기본적으로 파월 국무장관의 예언이 가장 정확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시간이 앞당겨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매년 수만 혹은 수십만의 인민이 굶주림으로 죽거나 고통을 받고 인민대중이 노예가 되어 인간 이하의 동물적 생존에만 급급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런 정부나 체제 그리고 지도자는 이미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체제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로 상존하는 군사적 도발의 가능성을 비롯해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를 아마겟돈의 大재앙으로 몰고 갈 가능성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남북한의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남아 있는 유일한 길은 파월 국무장관의 예언이 하루라도 더 앞당겨지도록 하는 것뿐이다.
그것도 동북아의 그 극심한 갈등구조가 현실화되기 전에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 완성되어야 할 테니 서둘러야 한다. 사실 미국 부시 정부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한국 정부와 어느 정도 정서적 거리가 있다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라이스 안보보좌관에 의하면 『북한은 악의를 품고 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불투명한 집단』일 뿐이다. 럼스펠드는 1998년 美 국방대학원에서 『한반도에 대한 주요 전략 목표는 갈라진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이며, 그것도 북한은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정권인데다가 북한과 같은 체제가 核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항상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통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金正日 체제가 이른바 벼랑끝 전술(Brinkmanship)로 한국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냈고, 미국을 잘 다루고 외교를 잘하는 것처럼 말들 하지만 결국은 小貪大失(소탐대실)로 전술적으로는 승리했는지 모르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의 누적이었다.
오늘 북한의 모습이 내일 우리의 모습이 안 되도록 하려면
9·11테러 이후 미국 朝野의 북한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증가했다. 지난 11월26일 부시 대통령의 경고를 비롯해서, 최근 미국이 연일 북한의 WMD(대량 살상 무기)와 화학전, 생물학전 무기 개발을 문제 삼고 있고 11월29일에는 국무부 부대변인이 북한이 핵사찰에 당장 응할 것을 재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부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WMD와 이른바 깡패국가가 연계된 테러의 가능성을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중요한 위협요소의 하나로 간주해 왔는데, 9·11테러 참사는 온 미국 국민이 이같은 위협을 절감하게 하고 세계의 주요 강국들이 다 함께 공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사회는 지금 9·11 참사에 대한 대중적 복수의 열기와 유령처럼 떠다니는 죽음의 그림자 백색 탄저균 가루로 인한 공포가 한데 어울려 이런 위협에 관한 한 더 할 수 없이 격앙되어 있다. 북한은 부시 정부가 MD의 논리적 근거로 삼을 만큼 대표적인 WMD 위협 국가인 동시에 그 동안 즐겨 써 온 벼랑 끝 외교와 아웅산 폭파, KAL기 폭파사건, 그리고 오랫동안 국제 테러리스트에 대한 다양한 지원 등으로 일찍부터 지극히 위험하고 호전적인 테러 및 테러 지원국가로 낙인찍혀 있다.
이것이 부시 대통령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직접 사찰을 요구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의 하나다. 특히 WMD 문제에 관한 미국의 단호한 의지는 역대 어떤 정권에서든 다름이 없었다. 이른바 1994년 핵 위기 時 영변을 폭격하려 했던 미국 측 당사자는 클린턴 정부였음이 그 증거이다.
지금은 우리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매우 큰 시점이다. 그러나 미래는 기다리고 맞이하는 者의 것이 아니라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者의 것이다.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피흘려 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북한 주민의 저 비극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듯이 오늘 우리가 이 기회를 놓치고 또 한 세대를 보내버리면 북한 주민의 저 참상이 내일 우리의 아들 딸들의 모습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설사 어찌 어찌 해서 그러한 비극적 종말은 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세계사의 흐름에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더 『온 국민이 일치 단결하여 노력하면 5년 이내에 통일이 가능하다』던 피를 토하는 듯하던 黃長燁씨의 절규가 귓전을 때린다.●
지난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에서 일어난 테러 大참극은 미국으로 하여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史上 初有의 전쟁에 온 국력을 쏟아 붓게 하면서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고 있다. 원래 脫냉전시대 국제사회의 으뜸 話頭는 단연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를 중심이념으로 삼아 全세계를 미국이 주도하는 하나의 汎지구적 공동체로 만들려는 이른바 新국제질서(New World Order)의 확립」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부시 정부는 미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질서를 만들겠다면서도 편협한 미국의 국익만을 앞세우고 국제적 리더로서의 책임을 축소하거나 지지 않겠다고 해서 서구 열강과 세계 주요 강국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한동안 세계질서는 적지 않은 혼란 속에 표류해 왔었다.
9·11 테러는 이 표류하는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특히 西歐)의 주도적 국가들에게 하나의 중요한 경종이 되었다. 우선 부시 정부부터 변했다. 냉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힘을 앞세우고 미국의 국익만을 강요하던 一方主義(unilateralism)적 외교패턴을 신속히 탈피해서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중시하는 多者主義(multilateralism), 국제주의적패턴으로 전환했다. 중국의 도전 가능성을 다음 세기 최대 안보 위협으로 삼던 국방전략 개념도 국제적 테러리즘이라고 하는 새로운 敵에 대한 전쟁을 중심으로 크게 선회하였다.
과거에는 이른바 win-win 혹은 win-hold-win과 같이 어디까지나 정규전적 대응을 위주로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테러와 같은 「非대칭적 침략 위협」(asymmetric threats)으로부터 직접 미국 본토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우선을 두고 있다.
부시 정부는 이번 테러와의 전쟁이 문명세계와 국제적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하는 非문명권과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국제 사회에 대해 이 새로운 전쟁에 신속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동참 할 것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전쟁에 대한 협조 여부로 미국에 대한 우호적 관심의 尺度(척도)로 삼겠다는 오만하고도 진귀한 선언을 일찌감치 해놓고 불참국가의 책임론까지 거론했다.
서구 유럽도 여기에 즉각 호응하였다. 「문명의 충돌」이란 冊을 통해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을 예언했던 美 하버드大 교수 새뮤얼 헌팅턴은 9·11 테러가 서구의 正體性을 일깨워 서구의 결속을 강화하고 미국과 유럽의 통합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구 유럽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세계 각국이 그 누구도 테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자각 속에 미국과의 갈등 요소들을 서둘러 봉합하거나 뒤로 미루고, 테러와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게 된 것이다.
테러를 계기로 가까워진 미국과 러시아
그런 와중에 부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추진해 오던 미국의 對外 정책 목표를 매우 용이하고 자연스럽게 달성해 가고 있다. 우선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매우 돈독해졌다. 이같은 미·러 간 우호 체제의 확립은 「테러에 대한 전쟁」을 위해서라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 넘는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다.
이번 전쟁 초기, 일부에서는 미국과 중국간에도 새로운 우호 관계의 발전을 점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을 이어온 중국의 「中華 질서」 회복의 꿈과 미국의 「汎지구적 공동체」 건설의 의지는 경쟁 대립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식 사회주의」 간의 갈등, 여기에 「文明 충돌론」까지 끼어 들면 兩國間의 항구적 평화와 우호 관계란 그 어디에도 발을 붙일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중국 역시 그 동안 러시아로부터 20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군사 및 非군사 물자를 구매하고 푸틴을 중국 편에 붙들어 두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그런데 이제 푸틴이 일단 부시 편에 한발 다가 선 모양새니까 말하자면 부시 나름의 深謀遠慮(심모원려)가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서로 헤게모니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 간의 이 갈등관계는 다음 시대 국제사회의 가장 큰 긴장요인이 될 것이고 이 긴장구조를 전제로 보면 미·러 관계 발전의 의미는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때마침 쉽지 않을 것이라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 작전도 예상을 뒤엎고 매우 성공적이어서 부시 정부의 위상을 한껏 높여 주고 이슬람권의 反美 열기를 누르고 중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슬람권의 내부에 끓어오르는 아랍인 일반의 反美, 反西歐 정서는 여전히 뜨겁기 짝이 없다.
서구에 대한 아랍 이슬람의 적의와 저항이라고 하는 이것은 다음 세대 지구촌 사회 긴장구조의 또 다른 한 軸이 될 것이다. 9·11 테러는 그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편 동북아에선 새로운 정치, 군사적 강국으로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 관계가 만만치 않은 관심거리다. 일본도 한때 東아시아 지도국가의 지위를 누렸던 강대국으로 아직도 「대동아 공영권」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보통 국가론」이 바로 그 표현이다. 물론 일본이 아직은 쉽게 東亞의 盟主로 나설 수는 없지만 국가적 자존심 상 중국 지배의 東아시아 질서에 참여할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일본을 맹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이것이 중국과 일본 간의 경쟁과 갈등, 대결을 숙명적인 것이 되게 만들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팍스 아메리카나
이 시대의 국제 안보환경의 특성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국제정치 질서를 새롭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강력한 국제정치적 리더십을 再정비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일단은 미국이 절대적 중심이 되는, 다소 새로운 형태의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新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라고 하는 상부 갈등구조가 국제사회 긴장의 중심축이 되고, 서구 사회에 대한 아랍 이슬람권의 저항과 중국과 일본의 각축을 중심으로 하는 하부 갈등구조들이 보조 축을 이루어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격동적일 가능성이 높은 그러한 시대가 될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안보 구조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2重 구조다. 「문명권」 對 「非문명권」 간의 갈등 관계로 보는 일반적인 주장은 오늘날 표면에 나타나 있는 매우 피상적인 인식일 뿐이고 물밑으로 흐르고 있는 냉정한 현실은 이처럼 복합적인 갈등구조가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시점 세계질서를 확고히 장악하고 있고 유사시 중국에 대한 포위망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국회 예산 획득부터 어려울 것이라던 MD(Missile Defense)는 특별한 저항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시대 국제 안보환경의 특성은 이처럼 도저히 단순화시킬 수가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
더욱이 정보화 사회, 세계화 시대인 21세기는 이른바 강대국 위주의 제한 主權시대다. 힘이 없는 나라는 국가적 자존심은 커녕 자신의 주권조차도 제대로 지켜내기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세계의 갈등구조는 모두 동북아에 집중되고 있다. 그리고 동북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인 한반도, 특히 그 뇌관이랄 수 있는 북한이 있는 곳이다. 이 동북아의 갈등구조가 자칫 국제 정치적인 태풍을 몰아오고, 여기에 만에 하나 북한의 非이성적인 행동이 접합되면 이곳은 문자 그대로 「아마겟돈」(신약성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말로 인류 종말 시기에 선과 악의 최후의 결전장을 상징)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안보 상황下에서 한국이 21세기에 살아 남자면 과연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가?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절대로 전쟁은 막아야 한다. 그 외의 다양한 군사적 도발들도 막아야 한다. 그래야 경제도 살 수가 있고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역량도 길러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총체적 통일 안보태세와 역량을 再정비·강화하고 민족의 평화통일을 서둘러 완성해서 국가의 덩치부터 좀 키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대한민국이 국제안보환경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정말로 민족통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는 단순히 우리 민족의 염원이라는 감상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강대국 위주의 제한 主權시대에 한민족이 살아남으려면 그 길밖에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특히 이제 민족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의 궁극적 최종 목표라기보다는, 21세기 민족적 생존과 번영이라고 하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요, 새로운 시대 개척의 기반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온 세계가 경제와 문화, 삶의 질의 향상 등 새로운 가치를 향해 약진하고 있는데, 우리만 동족 간의 갈등과 분쟁, 안보상의 위협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는, 후일 통일이 되어도 민족이 세계사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 평화적으로 원만하게 달성되려면 북한이 같이 호응해 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북한 金正日이가 이 민족적 大義에 순순히 호응해 올 것 같지가 않다. 천상 金正日 체제가 자연스럽게 망하든지, 아니면 정말로 大悟覺醒(대오각성) 오늘의 경제위기를 신속히 연착륙하게 하고 南과 北이 진심으로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합심협력해 나가야 한다. 어느 것이 가능할 것인가?
북한체제의 운명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의 국가체제가 유지되려면 국민의 충성심, 효율적인 통치체제, 그리고 체제수호의 힘, 즉 군사력이라고 하는 3大 기본요소는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충성하고 싶어도 춥고 배고픈데 계속 충성심이 우러날 것 같지는 않고, 관료들은 지극히 부패해 있는데다가 사기마저 저하되어 있다.
단지 군사력만은,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만사 제쳐놓고 軍을 잘 모시다 보니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3大 요소 중에 하나만은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한계에 다다른 金正日의 입지
북한은 그 동안 강력한 정보통제로 주민의 눈과 귀를 막아 놓고 앞에서는 金日成의 카리스마로 끌고 나가면서, 軍이나 사회 안전부 같은 국가적 폭력장치로 뒤에서 두들겨 밀고 나가는 형태로, 말하자면 「테러의 恐怖」를 활용하여 통치해 왔다. 그런데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굶어 죽을 판이 되다 보니 그 국가 폭력장치의 칼날도 많이 무디어지고 효과도 뚝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게다가 金日成 주석이 죽은 지도 이미 7년이 지났다.
金正日도 「遺訓統治」라는 기묘한 방법으로 金日成의 카리스마를 활용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강성대국」이라는 걸 내세워서 자기 자신의 카리스마를 세우려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金日成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이렇게 살펴보면 북한은 이미 오래 전에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을 넘어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 동안 우리 정부가 대전략적 차원에서 조금만 더 지혜로운 통일 정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추진해 왔더라도 남북한 상황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오늘날 북한 체제의 존재는 그들 자신의 노력 못지 않게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던 한국의 정책적 태도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져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 북한 혼자만 고립된 채 언제까지나 시대에 뒤떨어진 삶을 살아 갈 수도 없을 것이고 그 거대한 러시아를 붕괴시킨 정보 사회화의 태풍이 중국의 미래까지도 의심하게 하고 있는데 하물며 북한의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하는 그런 말이다. 결국 시간이 문제일 뿐 북한이 現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는 한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으로 급격히 몰려가게 될 것임은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이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개혁·개방으로 나가 체제를 再정비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것은 가능할 것인가? 그 동안에도 북한은 이미 자본주의 바람은 막으면서 實利만 취한다는 부분적, 제한적 개혁·개방, 소위 방충망식 개방은 수차 시도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고 2000년 6월15일 남북 頂上회담에 대해서는 汎국민적인 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컸었다.
이 역시 현재로서의 결론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現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상당한 무리를 거듭하며 헌신적으로 공을 들여온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실험도 결국은 한국의 「평화정착을 위한 의지」와 북한의 「경제적 이익과 적화 통일을 위한 전략」 간의 만남이자 싸움이라는 남북대화의 전형적 기본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난 11월14일 끝나버린 것이다.
개방이 북한에 주는 부담
설사 다소 적극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유지해 나가려 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북한에서는 하나에서 열까지 金正日의 직접 지시나 결심이 있어야 된다는 데, 정작 金正日은 군사위원장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단순히 지배하고 있을 뿐 직접 관장하지는 않는다 하니, 그런 체제와 그런 자세로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또 하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원래 모든 독재체제는 통상 정보의 통제에 그 기반을 둔다. 强하고 경직된 보다 심한 독재일수록 더욱 더 철저하고 치밀한 정보의 통제가 필요하고 그 정보통제의 바탕 위에서만 독재체제가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의 정보 통제 체제에 타격을 주고 어쩌면 해체시킬지도 모르는 개혁·개방이 원천적으로 가능하냐 하는 의문인 것이다.
이에 대해 現정부는 북한은 변화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북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변화할 것이고 또 이미 변하고 있다고 확언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인사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다. 衣食住 등 일부 생활상의 변화가 있었고 생존 전략의 변화도 있었지만 통일을 바라보면서 평화의 정착을 기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변화는 전혀 없었다고 본다. 적어도 先軍政治, 군사제일주의의 포기나 對南 공작정치의 변화가 최소한의 요구인데 그런 차원에서는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북한은 일종의 神政國家인데 舊約의 세기였던 金日成 시대보다 新約의 시대인 金正日 때에 더욱 더 독재가 강화되고 사회체제가 改惡 惡化되었으니까 金正日이가 살아 있는 한은 북한의 체제 개선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의 식량문제도 「집단농」 체제를 「개인농」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당장 세 배 이상의 增産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온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북한 주민의 처참한 굶주림도 결국 북한 통치집단의 냉혹하고 非인간적인 「정책이 문제」임이 증명 된 셈이다.
개방을 해도 망하고 안 해도 망해
1994년 金日成이 죽고 「새로운 세대」인 金正日이 집권했으니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에 대해서는 金正日의 실질적인 집권이 1994년부터가 아니라 사실상 1974년부터이기 때문에 기대의 근거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고 본다. 黃長燁씨에 의하면 1974년부터 1985년경까지는 「金日成·金正日」의 2중 정권 시대였고 1985년부터 1994년까지는 「金正日·金日成」 2중 정권 시대였다고 한다.
결국 한국이 아무리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햇볕을 따뜻하게 비추어 주려 해도 북한은 이를 받아들일 의지가 없고 체제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렇게 변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본 공산당원이면서 북한문제 전문가로 이름을 얻고 있는 하기와라 료씨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고 있다. 『金正日은 눈(雪)사람이어서 아무리 집안에 난로를 따뜻하게 피우고 들어 오라 해도 들어 갈 수가 없는 사람이다』면서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3월8일 파월 美 국무장관도 의회에서 「북한은 개방을 안 하면 망하고 개방해도 망할 것」이라고 단정한 바 있는데 이런 경우 金正日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自明하다 하겠다.
그동안 정부는 現정책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북한의 도발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를 반문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이처럼 북한의 변화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이제 정부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문이 가능해 질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의 남북관계가 지속되어야 하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침략과 도발을 인내하고 끊임없이 일방적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가? 북한이 체제경쟁에 성공하여 적화 통일을 이룰 때까지인가. 아니면 저들이 마침내 충분한 戰力을 갖추어 전면 남침 도발을 감행할 때까지인가?』 하고 말이다.
실제로 남침 도발이라고 하는 마지막 가능성은 우리가 여전히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현상유지도, 개혁·개방도, 결국은 한계상황에 부딪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저들이 적화통일 하겠다고 몇 십년을 전쟁준비로 낮과 밤을 지새워 왔고 나름의 무력 역량도 쌓아놓았는데, 특히 바로 그것 때문에 이제 망할 판이 되어 버렸는데, 조용히 그냥 두손 들고 말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북한을 위험하고 불안스럽게 보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 사회가 과도히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하거나 독재국가라면, 또 이른바 聖戰文化가 지배한다든가 국제질서의 현상유지(status quo)에 대한 불만이 크다든가 하면 전쟁도발의 위험은 클 수밖에 없는데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지금까지 평화가 유지되어 온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더욱이 북한은 전반적으로 몇 가지 취약점은 있지만, 저들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어떠한 형태의 도발도 가능한 다양하고 강력한 군사적 도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더 큰 문제는 저들의 턱없는 자신감이다. 金正日 집단의 실제 내심은 알 수 없지만, 3일 作戰이니 5일, 7일 作戰이니 하면서 호언장담을 한다. 將·士兵들이나 북한주민들은, 그저 주한 미군이 마음에 좀 걸리지만 전쟁이 나면 문제없이 이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효율성
그렇다고 해서 포용정책, 햇볕정책의 아이디어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햇볕정책의 근본 목적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과 북이 화해 협력하여 21세기 한민족의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자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원래 우리 민족의 통일노력에는 몇 가지 大前提 조건,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또 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인류가 현재까지 찾아낸 최선의 체제라고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반드시 수호되고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 셋째 궁극적으로는 우리 민족의 번영과 복지의 확충에 기여하는 형태의 통일이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 세 가지 원칙에 충실하자면 우리의 통일은 勝者는 있어도 敗者는 없는, 설사 敗者가 있더라도 그 손실과 충격이 최소화되는 그런 통일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또 하나 以心傳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 있다. 통일 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원만하게 극복하려면 통일의 과정과 통일 후에도 강력한 힘이 뒷받침해 주는 질서가 유지·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적 무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통일이라야만 그 통일이 정치적으로 유효하고 역사적 영속성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전제下에서 보더라도 햇볕정책의 理想 그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前 駐韓 러시아 大使 아파나시에프는 필요하다면 햇볕을 두 배로 비춰 주라고 했는데 긴장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은 기본적으로 햇볕정책 추진의 길과 그 脈을 같이한다. 북한 통치 집단을 타도하려면 그 독재체제의 근본 바탕이 되고 있는 정보 통제체제를 해체시켜서 북한 주민의 汎국민적 각성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햇볕정책은 매우 효용성 있는 정책 수단이 될 것이다.
햇볕정책의 후유증
물론 이렇게 2중적인 접근이 쉽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2중성은 對北정책의 불가피한 본질이다. 오늘날 햇볕정책, 포용정책이 이렇게 결과되고 만 데는 바로 이러한 특성을 무시 한 데 일부 원인이 있다. 모든 남북관계에는 본질적으로 한 민족으로서의 상호 협력, 평화와 번영이라고 하는 민족적 大義와 자유민주주의 對 공산주의 체제 간의 이념 갈등 및 체제경쟁이라는 두 가지 특성이 동시에 혼재하고 있다. 이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現정부가 지나치게 人道主義的 차원에서만 북한을 보면서 북한의 선의에 기대하여 능력 이상으로 「지원」에만 관심을 기울인 때문이라는 논란이 있는 것이다.
한국은 그 동안 과거 金日成 시대의 상황 인식으로 金正日 시대의 對北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992년만 해도 남북 총리를 대표로 하는 하나의 라인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그 때는 북한 군부가 정무원의 일부였지만, 지금의 북한 군대는 오히려 그들이 나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정무원마저도 軍을 지원하는 외곽 조직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보는 특이한 의식 구조를 갖고 있다.
당연히 남북대화도 북한 군부를 계속 대화의 광장에 머물도록 해야 하고 대화의 방법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정무원과 인민 무력부 두 라인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헤아리면서 매우 다양하고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아쉽고 안타까운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남북 관계가 갖는 정치적 효과와 대통령 자신이 최고 전문가라고 믿는 자만심 때문에, 아니면 공명심 때문에 지나치게 頂上회담에 집착한 조급한 성과주의로 장기 안목下에 입체적으로 잘 통제되고 충분히 계획 검증된 정책의 추진이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가 하는 의문도 있다.
정부 일부 지도층이 독주하면서 국민적 공감대의 확보에 소홀하다 보니 자생적 정책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이 때문에 불필요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또 안보와 포용을 병행 추진한다던 정책의지와는 달리 국방태세와 국민의 안보 의지, 심지어 韓美 우호관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겨 놓았다는 일부의 주장도 그 중 하나다.
평화적인 것이든 전투적인 것이든 간에 모든 남북관계는 체제 경쟁과 연계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최소한의 상호주의는 반드시 지켜졌어야 했다.
북한 金正日 체제의 未來
어쨌든 이제 이 정부下에서의 햇볕정책에 의한 실험은 사실상 끝난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정부도 이보다 더 모험적이고 희생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 金正日 체제가 얻은 결과는 어떠한가? 그들이 살아 남았다는 사실, 특히 그 혹독한 식량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한 것만도 일단은 성공적이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정도의 성공만으로 그들의 미래까지 보장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장차 金正日 체제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가? 기본적으로 파월 국무장관의 예언이 가장 정확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시간이 앞당겨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매년 수만 혹은 수십만의 인민이 굶주림으로 죽거나 고통을 받고 인민대중이 노예가 되어 인간 이하의 동물적 생존에만 급급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런 정부나 체제 그리고 지도자는 이미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체제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로 상존하는 군사적 도발의 가능성을 비롯해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를 아마겟돈의 大재앙으로 몰고 갈 가능성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남북한의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남아 있는 유일한 길은 파월 국무장관의 예언이 하루라도 더 앞당겨지도록 하는 것뿐이다.
그것도 동북아의 그 극심한 갈등구조가 현실화되기 전에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유지되는 동안에 완성되어야 할 테니 서둘러야 한다. 사실 미국 부시 정부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한국 정부와 어느 정도 정서적 거리가 있다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라이스 안보보좌관에 의하면 『북한은 악의를 품고 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불투명한 집단』일 뿐이다. 럼스펠드는 1998년 美 국방대학원에서 『한반도에 대한 주요 전략 목표는 갈라진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이며, 그것도 북한은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정권인데다가 북한과 같은 체제가 核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항상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통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金正日 체제가 이른바 벼랑끝 전술(Brinkmanship)로 한국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냈고, 미국을 잘 다루고 외교를 잘하는 것처럼 말들 하지만 결국은 小貪大失(소탐대실)로 전술적으로는 승리했는지 모르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의 누적이었다.
오늘 북한의 모습이 내일 우리의 모습이 안 되도록 하려면
9·11테러 이후 미국 朝野의 북한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증가했다. 지난 11월26일 부시 대통령의 경고를 비롯해서, 최근 미국이 연일 북한의 WMD(대량 살상 무기)와 화학전, 생물학전 무기 개발을 문제 삼고 있고 11월29일에는 국무부 부대변인이 북한이 핵사찰에 당장 응할 것을 재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부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WMD와 이른바 깡패국가가 연계된 테러의 가능성을 미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중요한 위협요소의 하나로 간주해 왔는데, 9·11테러 참사는 온 미국 국민이 이같은 위협을 절감하게 하고 세계의 주요 강국들이 다 함께 공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사회는 지금 9·11 참사에 대한 대중적 복수의 열기와 유령처럼 떠다니는 죽음의 그림자 백색 탄저균 가루로 인한 공포가 한데 어울려 이런 위협에 관한 한 더 할 수 없이 격앙되어 있다. 북한은 부시 정부가 MD의 논리적 근거로 삼을 만큼 대표적인 WMD 위협 국가인 동시에 그 동안 즐겨 써 온 벼랑 끝 외교와 아웅산 폭파, KAL기 폭파사건, 그리고 오랫동안 국제 테러리스트에 대한 다양한 지원 등으로 일찍부터 지극히 위험하고 호전적인 테러 및 테러 지원국가로 낙인찍혀 있다.
이것이 부시 대통령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직접 사찰을 요구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의 하나다. 특히 WMD 문제에 관한 미국의 단호한 의지는 역대 어떤 정권에서든 다름이 없었다. 이른바 1994년 핵 위기 時 영변을 폭격하려 했던 미국 측 당사자는 클린턴 정부였음이 그 증거이다.
지금은 우리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이 매우 큰 시점이다. 그러나 미래는 기다리고 맞이하는 者의 것이 아니라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者의 것이다.
우리가 항상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피흘려 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 북한 주민의 저 비극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듯이 오늘 우리가 이 기회를 놓치고 또 한 세대를 보내버리면 북한 주민의 저 참상이 내일 우리의 아들 딸들의 모습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설사 어찌 어찌 해서 그러한 비극적 종말은 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세계사의 흐름에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더 『온 국민이 일치 단결하여 노력하면 5년 이내에 통일이 가능하다』던 피를 토하는 듯하던 黃長燁씨의 절규가 귓전을 때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