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갈수록 투쟁의 戰意를 가다듬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의 건전한 의식을 파먹어 들어오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점잖게 吾不關焉하고 있을 것인가.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위험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駐韓미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북한
작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한 러시아 예비역 대장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소령 때 북한 주민들을 어지간히도 괴롭힌 「罪囚軍團(죄수군단)」으로 유명한 25군단 요원으로 북한에도 進駐(진주)했던 군사 전문가로서 러시아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 「왜 한국이 駐韓미군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북한이 두려우냐」 하는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도 덧붙였다.
필자는 연평 海戰(해전)의 사례를 들었다.
『연평 해전은 두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북한이 아직도 武力(무력) 도발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과, 막상 전투를 하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 분명한 현실을 외면하고 한국군보다는 미국군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6·25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그런 비극을 또 겪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패전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소중한 것이다. 결국 주한미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인 셈이다.
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東北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주변 각국이 駐韓미군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도 혹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심 생각은 다른 것 아닌가?』
주위에 있던 다른 러시아 장성들이 다 같이 웃어 논쟁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 駐韓미군의 존재를 중심으로 최근 韓美 국민간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다고 한다. 지난 5월23일 미국 星條紙(Stars and Stripes)는 한국에서의 「反美 편견」(Anti-American bias) 문제를 톱 기사로 다루었다. 우리 주변에도 극단적인 우려의 표현을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보스워스 미국 대사가 조선일보에 직접 기고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례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되 드문 일인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미군들이 갖는 회의와 배신감
그 원인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일부 국민은 韓美행정협정(SOFA)이 불만스럽고, 아무리 전쟁중이라 하지만 노근리에서의 미군 「만행」에 분노하며, 매향리에서의 일방적 피해를 참을 수 없어 한다. 전체적으로 강한 不信(불신)과 피해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면 駐韓 미국인들은 SOFA는 환경과 여건이 다른(대부분이 미국보다는 열악한) 해외 곳곳에 파견되는 自國(자국)의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안심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라고 말한다. 노근리 사건은 전쟁이라고 하는 특수 상황하에서의 일인데다가 아직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으며, 매향리 문제는 왜곡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본다. 특히 언론에서 진실을 왜곡, 허위 과장 보도를 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6월2일자 국방일보에 실린 어느 美 육군소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눈길을 끈다.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해 한 해에 50억 달러를 쓴다. 대부분의 주한 미군은 한국의 법을 잘 지키고 있고 미군이 한국인보다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군이 한국에서 살기에도 많은 고초가 있는데다가 환영받지도 못하고 있으니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도 한국인의 주한미군 철수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그 대신) 다시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처럼 우리가 그 위험한 땅에 가리라고 기대하지 마라. 노예로 살아 본 적도 없고 정복당한 적도 없는 사람들은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운동이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反美 편견」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만큼 6·25 동란 이래 미국의 대규모 원조와 지원에 대해 소박한 감사함을 품고 있고, 주한미군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서도 긍정하며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성장하고 국민의식이 성숙되면서, 특히 戰後(전후) 세대가 점차 사회의 주역이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져 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지난 5월30일 한겨레신문은 주한미군이 당장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32%,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철수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11%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 남북 頂上(정상)회담과 관련한 어느 TV토론에서는 모 목사와 교수 등 몇몇 토론자들이 주제와는 관련이 없는 駐韓미군 철수 문제를 들고 나와 끈질기게 주장하고, 그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교수는 토론 후 방청석에 있던 일부 학생 시위대에게 포위되어 30여 분간이나 승용차 안에서 곤욕을 치렀다는 말도 들린다.
우리 국민의 주한미군에 대한 이해도 많이 부족하다.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게 된 역사적 과정이나 주한미군의 순기능, 다양한 역할 그리고 그 필요성에 대한 이해나 관심을 외면한다.
그들은 한반도 분단은 물론 光州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과거의 수많은 가슴아픈 사건들, 일부 비리사건과 같은 우리 사회 자체의 어두운 문제들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책임을 찾는 데 적극적이다.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공헌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한국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의혹에는 귀를 곤두세우며 그것이 진실인 양 몰아세우려 드는 경향마저 있다.
이제는 우리도 모든 면에서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다. 자주독립국가의 국가적 자존심이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현대 국제사회의 냉정하고 냉엄한 국가관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림자는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역 마찰을 비롯한 정부간의 공식적 입장차이가 국민감정의 갈등으로 轉化(전화)되기도 하고, 노근리 매향리 문제와 같은 사건이나 일부 주한미군의 범죄와 같은 사회 문제들이 예상 외로 크게 국민 감정을 자극한다. 또 그것이 일부 배타적인 국민적 자존심과의 상승작용으로 이른바 反美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여기에 북한과 사실적 혹은 묵시적으로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세력들이 이러한 다양한 갈등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反美감정을 조직적으로 자극, 촉발 그리고 확대하고 있다.
최근의 노근리, 매향리 사건 등에서 드러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나름대로의 정황적 판단만으로 불필요한 갈등이 지나치게 증폭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러다가 후일 진실이야 어떻게 되었든 양국 국민간에 메울 수 없는 깊은 상처만 남기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미국인들을 당황케 한 反美시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韓美 관계가, 적어도 韓美 간의 공식적인 협조와 공조관계는 여전히 우호적이고 튼튼하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美 육군대학원 유학 시절인 1984년, 그해 LA올림픽에서 우리가 획득한 6개의 금메달이 당시 민주주의 후진국으로 낙인찍혔던 한국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는 것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국가를 보는 눈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88올림픽 때 우리 사회에서 까닭 없는 親蘇反美(친소반미) 바람이 불어 많은 시민들이 미국팀을 야유하고 소련팀을 응원하는 이변이 있었다. 당시 일부 미국 언론의 몰지각한 보도가 우리의 국민적 자존심을 자극하여 더 심화된 측면도 있는데, 어쨌든 그 전후 적지 않은 反美 시위가 많은 주한미군들을 당혹하게 하던 걸 기억한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주한 미군 부대 앞에서의 投石戰(투석전)도 있었다.
美 육군대학원 우리 동기생들이 전례없이 많이 한국 근무를 지원해서 마치 무슨 공로나 되는 양 보람과 기쁨으로 보고 있다가, 그들이 바로 어제까지도 살인적 物價高(물가고)에 고개를 내젓던 東京과 미국 본토로 그 가족들을 떠나보내고는 황당해 하는 표정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올림픽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도 냉정을 되찾고 그들 가족들도 일부는 다시 돌아왔지만 안타깝게도 이때의 충격은 오랫동안 화제가 되곤 했다.
21세기 통일의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은 韓美간의 긴밀한 우호와 공조 관계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고 소중한 때이다.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결정적 세력으로서 미군의 중요성은 아직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가 이제는 한반도 상에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분단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단순히 평화를 지키고 유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장하고 정착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 시점 한반도에는 분단 이래 최초이자 한반도 分斷史(분단사)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남북 대화가 진행중에 있다. 그럴수록 확고한 안보태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번에 남북 頂上회담을 전후하여 당장 군비통제(군축)부터 논의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옳은 의견이라고 할 수 없다. 남북 회담이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더라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일단은 軍의 경계 태세는 오히려 더 긴장되어야 하고 대비 역량도 더 강화 확장되어야 할지 모른다. 문자 그대로 튼튼한 안보와 포용정책의 「병행」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聯美·親러·得中·友日
앞으로 한반도 통일 과정에 있어서도 한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지원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이다. 통일 과정에 있을 수 있는 안보체제상의 동요나 다양한 안보상의 위협을 억제 또는 통제하거나, 막대한 통일비용을 비롯한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물론, 한국의 통일 문제는 동시에 국제 문제라는 국제정치적 차원에서도 미국의 협조와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聯美, 親러, 得中, 友日」이 주변 4강에 대한 우리 통일 외교의 전략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아무리 통일이 되고 통일 이후 국력이 강화되어도 짧은 시간 내에 우리가 하나의 독자적 세력으로 자주국방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 반면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이른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통과적 위치요, 완충지대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자주독립국가로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주변을 압도하거나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만큼 강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는 한 어떠한 세력과 적절한 상호 협조 및 동맹 관계로 제휴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안보상의 오랜 숙명인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자주국방이 가능한 나라는 슈퍼파워에 한정되어 있다.
이럴 때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전략적 제휴 파트너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 판단이다. 더욱이 우리는 주변의 모든 강대국들이 한국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있음을 확인한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이러한 韓美 안보협력체제의 상징이다. 주한미군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막강한 장비로 뒷받침되는 한반도 상의 강력한 전쟁 억제 戰力의 實體(실체)이다. 동시에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을 억제하고 東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均衡戰力(균형전력)인 동시에 한국의 안보비용을 절감하는 중요한 順(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여러 이유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상당 기간 韓美 우호 관계는 더욱 더 튼튼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마저도 그러한 인식하에 美日 안보협조체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뿐이 아니다. 유럽연합(EU)도 큰 차이가 없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나라들도 우리 못지않게 미국의 주도적 자세나 우월적 영향력의 행사에 대해서는 크든 작든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 거부감의 표현 방법은 지극히 조심스럽다. 작년 EU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을 방문했을 때에 그들이 미국의 주도적, 우월적 위치나 영향력은 심히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미국을 배제해도 좋을 만큼 군사적, 기술적인 역량이 미흡하니 어쩔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힘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이상 어느 정도의 불만은 참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곤혹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체념 섞인 말도 있었다.
元老와 사회지도층이 직접 나서야
결론은 自明(자명)하다. 우선, 최근의 여러 가지 갈등 요인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감정을 앞세워서 갈등부터 부추길 일이 아니라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냉정하고 진지하게 쌍방이 다 인정할 수 있는 진실을 확인하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명확한 진실을 근거로 해서 이성으로 따질 것은 따지고 이해할 것은 이해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원로와 지도층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새로운 시대의 미래를 내다보는 큰 안목을 갖게 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지혜롭게 행동하는 21세기型의 새로운 선진 민주 시민의식을 확고히 심어주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갈수록 투쟁의 戰意(전의)를 가다듬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 대중의 건전한 의식을 파먹어 들어오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점잖게 吾不關焉(오불관언)하고 있다가는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위험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6·25 전쟁 50주년을 맞아 잊어서는 안될 것 중의 하나는,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작은 난관이 두려워 스스로 주저하고 피 흘려 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북한 주민의 저 비극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단 한번의 慢心(만심)과 실패도 용납될 수 없는 큰 도전과 기회가 혼재하는, 모험과 실험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작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한 러시아 예비역 대장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소령 때 북한 주민들을 어지간히도 괴롭힌 「罪囚軍團(죄수군단)」으로 유명한 25군단 요원으로 북한에도 進駐(진주)했던 군사 전문가로서 러시아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 「왜 한국이 駐韓미군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북한이 두려우냐」 하는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도 덧붙였다.
필자는 연평 海戰(해전)의 사례를 들었다.
『연평 해전은 두 가지 사실을 증명한다. 북한이 아직도 武力(무력) 도발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과, 막상 전투를 하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 분명한 현실을 외면하고 한국군보다는 미국군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6·25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그런 비극을 또 겪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패전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소중한 것이다. 결국 주한미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인 셈이다.
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東北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주변 각국이 駐韓미군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도 혹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심 생각은 다른 것 아닌가?』
주위에 있던 다른 러시아 장성들이 다 같이 웃어 논쟁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 駐韓미군의 존재를 중심으로 최근 韓美 국민간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다고 한다. 지난 5월23일 미국 星條紙(Stars and Stripes)는 한국에서의 「反美 편견」(Anti-American bias) 문제를 톱 기사로 다루었다. 우리 주변에도 극단적인 우려의 표현을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보스워스 미국 대사가 조선일보에 직접 기고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례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되 드문 일인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미군들이 갖는 회의와 배신감
그 원인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일부 국민은 韓美행정협정(SOFA)이 불만스럽고, 아무리 전쟁중이라 하지만 노근리에서의 미군 「만행」에 분노하며, 매향리에서의 일방적 피해를 참을 수 없어 한다. 전체적으로 강한 不信(불신)과 피해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반면 駐韓 미국인들은 SOFA는 환경과 여건이 다른(대부분이 미국보다는 열악한) 해외 곳곳에 파견되는 自國(자국)의 젊은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안심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라고 말한다. 노근리 사건은 전쟁이라고 하는 특수 상황하에서의 일인데다가 아직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았으며, 매향리 문제는 왜곡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본다. 특히 언론에서 진실을 왜곡, 허위 과장 보도를 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6월2일자 국방일보에 실린 어느 美 육군소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눈길을 끈다.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해 한 해에 50억 달러를 쓴다. 대부분의 주한 미군은 한국의 법을 잘 지키고 있고 미군이 한국인보다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군이 한국에서 살기에도 많은 고초가 있는데다가 환영받지도 못하고 있으니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도 한국인의 주한미군 철수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그 대신) 다시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처럼 우리가 그 위험한 땅에 가리라고 기대하지 마라. 노예로 살아 본 적도 없고 정복당한 적도 없는 사람들은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운동이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反美 편견」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만큼 6·25 동란 이래 미국의 대규모 원조와 지원에 대해 소박한 감사함을 품고 있고, 주한미군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서도 긍정하며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성장하고 국민의식이 성숙되면서, 특히 戰後(전후) 세대가 점차 사회의 주역이 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져 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지난 5월30일 한겨레신문은 주한미군이 당장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32%,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철수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11%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 남북 頂上(정상)회담과 관련한 어느 TV토론에서는 모 목사와 교수 등 몇몇 토론자들이 주제와는 관련이 없는 駐韓미군 철수 문제를 들고 나와 끈질기게 주장하고, 그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교수는 토론 후 방청석에 있던 일부 학생 시위대에게 포위되어 30여 분간이나 승용차 안에서 곤욕을 치렀다는 말도 들린다.
우리 국민의 주한미군에 대한 이해도 많이 부족하다.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게 된 역사적 과정이나 주한미군의 순기능, 다양한 역할 그리고 그 필요성에 대한 이해나 관심을 외면한다.
그들은 한반도 분단은 물론 光州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과거의 수많은 가슴아픈 사건들, 일부 비리사건과 같은 우리 사회 자체의 어두운 문제들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책임을 찾는 데 적극적이다.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공헌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한국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의혹에는 귀를 곤두세우며 그것이 진실인 양 몰아세우려 드는 경향마저 있다.
이제는 우리도 모든 면에서 많이 성장하고 성숙했다. 자주독립국가의 국가적 자존심이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현대 국제사회의 냉정하고 냉엄한 국가관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림자는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역 마찰을 비롯한 정부간의 공식적 입장차이가 국민감정의 갈등으로 轉化(전화)되기도 하고, 노근리 매향리 문제와 같은 사건이나 일부 주한미군의 범죄와 같은 사회 문제들이 예상 외로 크게 국민 감정을 자극한다. 또 그것이 일부 배타적인 국민적 자존심과의 상승작용으로 이른바 反美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기도 한다.
여기에 북한과 사실적 혹은 묵시적으로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세력들이 이러한 다양한 갈등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反美감정을 조직적으로 자극, 촉발 그리고 확대하고 있다.
최근의 노근리, 매향리 사건 등에서 드러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나름대로의 정황적 판단만으로 불필요한 갈등이 지나치게 증폭되어 간다는 점이다. 이러다가 후일 진실이야 어떻게 되었든 양국 국민간에 메울 수 없는 깊은 상처만 남기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미국인들을 당황케 한 反美시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韓美 관계가, 적어도 韓美 간의 공식적인 협조와 공조관계는 여전히 우호적이고 튼튼하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美 육군대학원 유학 시절인 1984년, 그해 LA올림픽에서 우리가 획득한 6개의 금메달이 당시 민주주의 후진국으로 낙인찍혔던 한국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는 것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국가를 보는 눈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88올림픽 때 우리 사회에서 까닭 없는 親蘇反美(친소반미) 바람이 불어 많은 시민들이 미국팀을 야유하고 소련팀을 응원하는 이변이 있었다. 당시 일부 미국 언론의 몰지각한 보도가 우리의 국민적 자존심을 자극하여 더 심화된 측면도 있는데, 어쨌든 그 전후 적지 않은 反美 시위가 많은 주한미군들을 당혹하게 하던 걸 기억한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주한 미군 부대 앞에서의 投石戰(투석전)도 있었다.
美 육군대학원 우리 동기생들이 전례없이 많이 한국 근무를 지원해서 마치 무슨 공로나 되는 양 보람과 기쁨으로 보고 있다가, 그들이 바로 어제까지도 살인적 物價高(물가고)에 고개를 내젓던 東京과 미국 본토로 그 가족들을 떠나보내고는 황당해 하는 표정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올림픽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도 냉정을 되찾고 그들 가족들도 일부는 다시 돌아왔지만 안타깝게도 이때의 충격은 오랫동안 화제가 되곤 했다.
21세기 통일의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은 韓美간의 긴밀한 우호와 공조 관계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 있고 소중한 때이다.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결정적 세력으로서 미군의 중요성은 아직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가 이제는 한반도 상에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분단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단순히 평화를 지키고 유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장하고 정착시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 시점 한반도에는 분단 이래 최초이자 한반도 分斷史(분단사)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남북 대화가 진행중에 있다. 그럴수록 확고한 안보태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번에 남북 頂上회담을 전후하여 당장 군비통제(군축)부터 논의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옳은 의견이라고 할 수 없다. 남북 회담이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더라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일단은 軍의 경계 태세는 오히려 더 긴장되어야 하고 대비 역량도 더 강화 확장되어야 할지 모른다. 문자 그대로 튼튼한 안보와 포용정책의 「병행」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聯美·親러·得中·友日
앞으로 한반도 통일 과정에 있어서도 한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지원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이다. 통일 과정에 있을 수 있는 안보체제상의 동요나 다양한 안보상의 위협을 억제 또는 통제하거나, 막대한 통일비용을 비롯한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물론, 한국의 통일 문제는 동시에 국제 문제라는 국제정치적 차원에서도 미국의 협조와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聯美, 親러, 得中, 友日」이 주변 4강에 대한 우리 통일 외교의 전략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아무리 통일이 되고 통일 이후 국력이 강화되어도 짧은 시간 내에 우리가 하나의 독자적 세력으로 자주국방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 반면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이른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통과적 위치요, 완충지대라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자주독립국가로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주변을 압도하거나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만큼 강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는 한 어떠한 세력과 적절한 상호 협조 및 동맹 관계로 제휴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안보상의 오랜 숙명인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자주국방이 가능한 나라는 슈퍼파워에 한정되어 있다.
이럴 때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전략적 제휴 파트너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 판단이다. 더욱이 우리는 주변의 모든 강대국들이 한국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있음을 확인한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이러한 韓美 안보협력체제의 상징이다. 주한미군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막강한 장비로 뒷받침되는 한반도 상의 강력한 전쟁 억제 戰力의 實體(실체)이다. 동시에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을 억제하고 東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均衡戰力(균형전력)인 동시에 한국의 안보비용을 절감하는 중요한 順(순)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여러 이유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상당 기간 韓美 우호 관계는 더욱 더 튼튼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마저도 그러한 인식하에 美日 안보협조체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뿐이 아니다. 유럽연합(EU)도 큰 차이가 없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나라들도 우리 못지않게 미국의 주도적 자세나 우월적 영향력의 행사에 대해서는 크든 작든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 거부감의 표현 방법은 지극히 조심스럽다. 작년 EU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을 방문했을 때에 그들이 미국의 주도적, 우월적 위치나 영향력은 심히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미국을 배제해도 좋을 만큼 군사적, 기술적인 역량이 미흡하니 어쩔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힘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이상 어느 정도의 불만은 참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곤혹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체념 섞인 말도 있었다.
元老와 사회지도층이 직접 나서야
결론은 自明(자명)하다. 우선, 최근의 여러 가지 갈등 요인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감정을 앞세워서 갈등부터 부추길 일이 아니라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냉정하고 진지하게 쌍방이 다 인정할 수 있는 진실을 확인하는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명확한 진실을 근거로 해서 이성으로 따질 것은 따지고 이해할 것은 이해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원로와 지도층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새로운 시대의 미래를 내다보는 큰 안목을 갖게 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지혜롭게 행동하는 21세기型의 새로운 선진 민주 시민의식을 확고히 심어주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갈수록 투쟁의 戰意(전의)를 가다듬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 대중의 건전한 의식을 파먹어 들어오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점잖게 吾不關焉(오불관언)하고 있다가는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위험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가 6·25 전쟁 50주년을 맞아 잊어서는 안될 것 중의 하나는,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작은 난관이 두려워 스스로 주저하고 피 흘려 싸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북한 주민의 저 비극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단 한번의 慢心(만심)과 실패도 용납될 수 없는 큰 도전과 기회가 혼재하는, 모험과 실험의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