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權丙鉉駐中대사 : 월간조선

權丙鉉(권병현) 駐中대사는 1998년 5월 초 北京(베이징)에 부임, 이제 2년을 넘기고 있다. 연초 외교통상부 장관이 전격 교체되고 주요국 대사가 경질되는 와중에서도 權대사는 李洪九(이홍구) 駐美대사와 함께 「재신임」을 받아, 연말까지는 무난히 재임할 것으로 보인다. 駐中 대사로서는 4대째인 權대사는 올 연말이면 3년 가까이 재직, 「長壽(장수) 대사」란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權대사는 부임 초기 경력면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외무부 아주국장과 외교정책실장, 미얀마 호주대사 등 정통 외교관 코스를 거쳤지만, 黃秉泰(황병태) 전 대사가 정치인 출신으로서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점과 자주 비교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北京의 기업인들 사이에서 權대사는 「일 많이 하는 대사」로 소문이 나있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의 訪中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한국 업체의 중국 CDMA(코드 분할 다중 접속방식 이동통신) 사업 진출이 사실상 확정되기까지 숨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우리 기업체가 중국과의 사업에서 「대사 얼굴」을 필요로 하는 자리면 마다않고 달려가곤 한다.

權대사는 「끝없는 일 만들기」로 대사관內에서 소문이 나 있다. 權대사의 지난 2년을 관찰해 보면, 한 가지 일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맹렬히 추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부임 초기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유난히 강조하더니, 지난해 臨政 80주년 기념식을 상해에서 성대하게 열었고, 올해는 중경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또 지난해 대사관內에다 「한중역사문화자료실」을 만들어 사라져가는 역사자료들을 수집중이다. IMF 직후 중국 관광객 유치가 국내경기 회복을 위한 중요한 과제로 설정되자, 權대사는 중국인 입국비자 간소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한국의 남대문시장이 중국인들로 뒤덮이는 데 일조를 했다.

兩國(양국) 관계에서 또하나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은 兩國 국방장관의 상호방문이다. 6ㆍ25 전쟁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두 나라 사이에 군사부문은 마지막 聖域(성역)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작년 말과 올 연초 사이 조성태 국방장관과 遲浩田(츠하오티엔) 중국 국방장관이 상호 방문함으로써, 兩國 군사교류의 물꼬가 터졌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것이 북한을 크게 자극, 최근 북한 노동당 총비서 金正日(김정일)의 중국대사관 방문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權대사의 對中(대중) 외교가 만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들에게 실망을 끼친 사례 중의 하나는 脫北者(탈북자) 문제이다. 올 연초 북한을 탈출해 러시아로 갔던 脫北者 7명이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사건은 우리 정부의 對중국 외교의 한계점을 노출시킨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에 외교통상부 장관의 친서까지 보냈지만, 중국은 사전에 한마디 통보도 없이 7인을 북한에 송환하는 「외교적 모욕」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이 사건은 權대사 한 사람만의 실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權대사 在任(재임)시절에 발생한 對中 외교의 오점임에는 틀림없다.

『領事업무 소홀로 납치사건 대처 미흡』

權대사는 올들어 조선족들에 의한 한국인 피납-피살 사건 등으로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올들어 납치 살인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는데도, 北京 주재 한국 대사관과 상해 청도 심양에 있는 총영사관은 서로 정보를 교류하지도 않고 非공개리에 대처하다 사건 해결과 예방에 큰 허점을 드러냈다. 특히 상해 金모씨 사건의 경우 채무관계가 얽혀 있었다고는 하지만 납치된 뒤 한 달 이상 실종되었는데도 중국측의 수사협조가 제대로 안된 데다, 權대사는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기까지 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駐中 한국대사관은 한동안 여론의 표적이 되었고, 청와대 국무총리실 등의 직무감사를 받기도 했다.

올들어 權대사의 생각을 지배하는 話頭(화두) 중 하나는 「북한 문제」인 것 같았다. 특히 金大中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모종의 역할이 아닌가 싶은데,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질문했지만 權대사는 말을 아끼는 듯했다. 權대사와의 인터뷰는 3월30일 이루어졌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4월8일 보충 질문을 했다.

―연초 집중 발생한 在中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중국을 여행하려는 한국인들의 걱정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 대사관의 영사업무와 범죄 예방활동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요.

『먼저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외교란 在外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인데, 결과적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을 못하고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려 대사로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개선할 점은 과감히 개선하겠습니다. 이번에 대사관 홈페이지에 「대사와의 직접 대화」란을 만들어 교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로 한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점은 외교에서 영사 업무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동안 다른 일에 너무 주력하다가 영사 업무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입니다. 제가 중국에 오고나서 대통령 방문과 韓中(한중)관계의 변화, 남북한 관계의 변화 등 정치 외교적인 일들이 많았습니다. 또 IMF 위기 직후에 왔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는 한국이 IMF를 극복하는 데 이곳 중국시장이 큰 역할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께서 고속전철과 CDMA, 원자로 등 兩國 산업협력분야의 숙제를 주셔서, 그동안 경제현안 해결에 주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韓中관계는 이미 중국 방문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在中 한국상공인회에 등록된 기업만 해도 2000개가 넘으며, 미등록 업체까지 치면 1만∼2만개에 달할 만큼 교류와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변화에 따라 영사업무도 그만큼 늘어나게 마련이며, 그에 상응하는 인력배치를 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으며, 게다가 IMF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사관 인력이 줄어들었습니다. 영사업무를 고의로 소홀히한 것은 아니지만 정무와 경제 문화 관광 등에 주력하다 보니, 각종 사건사고와 영사민원 업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된 점을 반성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영사업무를 맨앞에 두고 해결해 나갈 작정입니다』

『중국에 와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權대사는 이 문제에 대해 미리 답변을 생각한 듯,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사고의 원인을 생각하자면 대사관이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몫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교 이후 한국인 여행객들은 중국을 「편안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안이하게 함부로 행동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한자어가 낯설지 않고 조선족들이 있어서 언어상의 불편도 크게 없는 데다, 생활 수준이 낮다고 때로는 중국인들을 과소평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외국에 왔는데도 마치 국내에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어요. 노래방도 가고, 조선족 여성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말이죠. 중국의 치안상태가 유동인구의 증가로 한국만큼 좋다고 할 수는 없는데, 안이하게 생각하다 허를 찔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중국을 여행하는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 중국인이든 조선족이든 외국인이라는 관념을 뚜렷이 갖고 모든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줄 것을 당부드립니다』

―이번 사건들을 통해 조선족과 한국인의 관계가 무엇이냐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在外동포법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조선족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관계를 설정해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우리 정부에 「조선족 정책」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게 마련입니다. 조선족 문제에서 저는 음지보다 양지가 훨씬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韓中관계가 수교 7년 만에 이처럼 폭발적으로 발전한 것은 조선족이란 매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기업의 투자, 인적 교류, 관광 등이 이처럼 발전하는 데 조선족의 공헌이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이 많다 보면 그늘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우리 조선민족이 성취욕이 강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리가 되는 부분도 있지요. 조선족 역시 단시일내에 무언가를 이뤄보려고 한국 入國열이 대단합니다. 저는 이 문제도 조화롭게 보완하는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균형된 시각이라고 봅니다. 최근 발생한 사건 하나하나를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양쪽 다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하다가 분쟁이 생긴 데서 문제가 시작되는 거지요.

최근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조선족들의 조직적 범죄」로 알려진 데 대해 많은 조선족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문제점이 모두 노출된 마당에 서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가는 길이 너무 막혀 있습니다. 査證認證(사증 인증)제도를 폐지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비자를 얻는 데 무수한 난관이 있습니다. 한국에 한번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들다 보니 일단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고 불법체류를 하게 됩니다. 불법 체류자가 늘어나면 우리 정부는 입국을 더욱 규제하게 되고, 그것은 중국 현지에서 편법이 더욱 판치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이런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합니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큰 문을 열어줘야 합니다.

「在外동포법」에서도 在美교포와 중국 조선족 동포를 차별하고 있는데, 미국 동포들은 해방 이후 자기 살길을 모색하다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 조선족 중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예가 적지 않습니다. 또 국가가 백성을 제대로 관리 못해 떠난 사람들입니다. 지금과 같은 차별대우는 시정돼야 합니다』

『조선족 入國 문호 대폭 늘려야』

조선족 입국 문제와 관련, 정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견해를 갖게 마련인데, 權대사는 마치 「야당인사」처럼 말을 했다. 불법체류를 겁내지 말고 문호를 대폭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정부內에서 외교통상부와 법무부 간의 입장 차이를 반영하는 것 같았다. 權대사는 법무부에다 직격탄을 날렸다.

『그래서 건의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在外동포법에서 차별 부분을 시정하고 입국 문호를 대폭 열고, 조선족 지위 문제도 향상시켜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正義입니다. 둘째는 한국內에 취업하는 조선족들을 제대로 대접해서 고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임금을 제대로 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눌러앉아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정기간 취업을 합법적으로 보장하여 순환하도록 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연합회에서 하고 있는 산업연수제도는 개선할 점이 많습니다. 셋째로 복수査證제도는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한국을 자주 왕래하는 중국인들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한 제도인데, 지난해 발급된 건수는 겨우 26건에 불과합니다. 법무부가 이것을 묶어놔서, 한국에 가려는 중국인들을 막고 있습니다. 경제교류에도 좋지 않고 관광객 유치에도 불리해요. 중국인의 상당수는 복수査證을 가지고 한국에 마음놓고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조선족들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문제는 중국 정부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인데,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조선족의 지위를 높여준다면 중국 정부가 반발하지 않을까요.

『혈통주의에 따라 이중국적을 모두 부여한다면 중국 정부도 당연히 반발하겠지요. 하지만 그 점은 「1945년 이전」 조항으로 문제가 전부 해결되었습니다(참고: 작년 말 보완된 在外동포법은 정부 수립 이전에 중국땅으로 이주한 연로한 在中 동포 1세들에게 우리 국적 취득과 고국방문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에서 태어난 젊은 조선족들에게는 이중국적이 허용 안된다는 뜻이다). 중국도 이 조항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복수査證제도와 체류기간 연장만 과감히 풀어도 조선족 문제는 많이 해소된다는 점입니다』

이쯤에서 말머리를 중국 쪽으로 돌려야 할 것 같았다. 駐中 한국대사로서 이해하는 중국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江澤民은 獅子, 朱鎔基는 호랑이像』

―江澤民(장쩌민) 주석은 몇번이나 만나셨습니까. 인상은 어떻던가요.

『江주석은 단독으로 한 번, 여러 사람과 6∼7번 만났습니다. 그분은 「獅子(사자)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場內(장내)를 압도하는 굵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어요. 또한 서민적이고 인간적이면서 예술적 재능과 유머를 두루 갖춘 인물입니다. 1998년 金大中 대통령이 중국에 오셨을 때, 江주석은 만찬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나오자 노래를 따라 부르고 팔을 휘저으며 음악을 지휘하는 모습이 정열이 흘러넘쳐 보였습니다. 상대방을 흡인하는 힘이 있어요. 운동과 취미도 다양해서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골프 연습도 한다고 해요』

―다른 중국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평을 좀 해주시죠. 특히 朱鎔基 총리에 대해서.

『중국 지도자들에 대해 제가 평할 입장은 못되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소감을 말씀드리죠. 朱鎔基(주룽지) 총리는 「호랑이像」입니다. 의지가 대단히 강하고 지혜와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치밀하게 계획하는 인물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한 추진력과 장악력으로 국무원의 전체 관료들을 이끌어 나가는 「희대의 행정총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한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쩔쩔 맨다고 들었어요. 朱총리가 없었던들 鄧小平(등소평)이 마련한 개혁 개방의 설계를 시행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에요. 江주석이 국가의 총괄적 통치자라면, 朱총리는 江주석을 보완하는 살림살이 재상으로서, 두 사람의 「배합」이 잘 되었다고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鄧小平의 걸출한 용인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는 李瑞環(리뤠이환) 政協(정협)주석과 胡錦濤(후진타오) 국가 부주석, 曾慶紅(쩡칭훙) 당조직부장 등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도 차례로 말했다.

『李瑞環政協주석은 전형적인 서민적 지도자입니다. 서민의 어려움과 그늘진 곳을 감싸주면서 바로 옆에서 함께 가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보통사람의 표본이라고나 할까. 테니스를 좋아해요. 얼마 전 제가 미국 대사, 캐나다 대사 등과 함께 테니스를 한번 치자고 제의를 했더니, 그저께 연락이 왔어요. 「4월중에 한 번 치자」고.

胡錦濤 부주석은 잘 준비되고 잘 정돈된 차세대 지도자죠. 공청단과 당교(공산당 중앙당교), 공산당 조직 등을 이끌면서 착실히 권력의 계단을 밟아나가는 우등생 같은 인물이죠. 귀공자 같은 인상입니다. 최근 한국에 간 曾慶紅 부장(공산당 조직부장)은 욱일승천하는 기상입니다. 국가 지도자의 특급참모로서 몸가짐이 조용하고 차분하며 처신이 신중하여, 앞의 큰 것을 보고 웅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야심이 꽤 큰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큰 일을 할 것이 틀림없어요』

『江주석 후계자는 50代 지도자 중 나올 듯』

―江澤民 주석은 오는 2003년이면 권력을 물려줄 때가 되는데, 江주석의 후계구도는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그가 완전 은퇴할까요.

『대사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본다면, 毛澤東(모택동)과 鄧小平에 이어 제3대 지도자인 江澤民 주석은 「태종」이 되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창업주인 毛澤東과 개혁개방의 틀을 잡은 鄧小平에 이어,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역할을 스스로 자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뒤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 승계가 제도화되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가 그렇지 않아요? 제가 보기엔 鄧小平 모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있는 인물 중에서 태평성대를 계승할 수 있는 인물을 키워나가지 않겠나 싶어요. 그게 누구냐고 한다면, 50代 지도자들을 꼽을 수 있겠지요. 胡錦濤를 비롯해 溫家寶(원자바오) 吳邦國(우방궈) 부총리, 曾慶紅, 賈慶林(자칭린) 李長春(리창춘) 시장 등…』

―21세기 중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될까요.

『중국이 앞으로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중국의 시장경제는 이미 갈 데로 가고 있고, 사회주의적 요소 역시 거의 聖域이 없어졌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도 있잖아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변화시킨다는 것. 경제가 이렇게 변하는데 상부구조도 변하지 않겠어요. 변화는 필연적이라고 봅니다.

중산층이 폭발하고 있는데, 그들이 과연 빵만 먹고 살겠느냐는 겁니다. 그들 역시 앞으로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다양성을 추구할 겁니다. 아울러 국제화와 정보화 물결과 어우러져 중국 사회를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변화시킬 겁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급격한 것이 아니라 단계적이고 점진적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중국인들이 20세기 초에 공산당을 선택한 것은 역사적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청나라의 봉건주의와 국민당 정부의 부패하고 관료주의적인 민주주의는 善政(선정)에 실패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산당은 중국인들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7000만∼8000만명의 당원을 가진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통해 13억을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점점 한계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공산당과 국민과의 협상, 혹은 타협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싶어요. 거기에는 「實事求是(실사구시)」라는 중국 특유의 방식이 적용될 겁니다. 多黨주의로 가느냐 아니면 현재의 단일지도체제로 가느냐는 중국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중국 나름대로 특색 있는 제도를 모색하겠지요』

『중국은 지금 진시황 이래 가장 잘 통합돼 있어』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현재와 같은 중앙 집권적 정치체제는 효율성이 떨어져, 지방의 분권화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방의 학자들은 중국이 연방제 등의 형태로 분할될 수도 있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합니다.

『중국분할론은 서방에서 오래 전부터 노래하던 주제가 아닙니까. 광동성과 티베트가 어떻게 된다는 등… 하지만 그 예측은 맞지 않았습니다. 서방의 잣대를 가지고 중국을 본 것입니다. 중국은 진시황 이래 지금 최대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 통일체제를 굳히는 데 국가 최대의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對대만, 對위구르, 對티베트 정책으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요. 아울러 올해부터 본격화된 對서부개발정책으로도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경제 발전에 따라 현재와 같은 중앙집권적 체제가 비효율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는 大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代價(대가) 정도로 인식할 겁니다. 江주석이 동북에 있던 李長春을 광동성으로 보낸 것을 보세요. 바로 중앙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와 같은 군벌이 나타난다면 그 즉시 인사조치될 겁니다. 만약 국가의 통합문제가 위협받지 않는 상태에서 비효율에 의한 代價가 더 커질 때, 분권적 정책을 펴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가까운 장래는 아니고 시간이 좀더 지나야 되지 않겠어요』

―朱鎔基 정부가 국정 주요 목표로 들고나온 서부大개발사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 사업은 한국 경제와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십니까.

『사실 외국대사로는 처음으로 제가 작년에 민간 사절단을 이끌고 西安(서안)과 重慶(중경)을 방문해서 서부개발사업을 관찰하고 왔습니다. 서부大개발사업은 「대통합」을 위한 중국 국가전략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중국은 인구의 90% 이상인 漢族이 국토의 40% 가량을 점하고 있는 반면, 10%도 안되는 소수민족이 국토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漢族이 많이 살고 있는 동남지역은 급속히 발전한 반면, 소수민족이 사는 서북부 지역은 매우 낙후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富의 편차는 국가의 지상목표인 대통합에 위기를 몰고 올 수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남쪽의 富를 서북으로 옮기는 작업이 바로 서부대개발사업의 핵심입니다. 이는 鄧小平의 先富論(선부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서부大개발이 한국에 대해서 가지는 의미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修交(수교)가 늦었기 때문에 중국 진출도 후발이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후발주자의 불리함으로 인해 많은 역경과 代價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서부개발은 세계 모든 나라가 똑같은 스타트 라인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 기업들은 SOC(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사업과 서부자원개발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프런티어가 열리는 것이고, 우리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성급히 열매를 딸 것을 바라지 말고, 나무를 심는 자세로, 중국인과 한국인 특유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길게 바라보며 중국을 도와준다면 우리에게도 많은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을 도와줄 것은 과감하게 도와줄 생각입니다. 北京과 西安과 우루무치에 「韓中友誼林(우의림)」을 조성할 겁니다. 한국의 EDCF(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경제개발협력기금)자금 중 축적된 것 8000만∼9000만 달러를 서부에다 집중 투입할 계획입니다. 이런 뜻을 중국 국가발전계획위원회 曾培炎(쩡페이얜) 주임에게 통보했더니 높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友誼林 조성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 수백만 달러를 무상으로 원조할 생각입니다. 단기적 계산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호와 신뢰의 바탕 위에서 兩國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서부 어프로치(접근)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한국 內에는 중국의 21세기를 장밋빛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중국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패문제만 해도 중국 정부가 여간 골치를 앓는게 아니잖습니까.

『인터넷은 영어와 중국어로 兩分될 것』

『부패문제는 중국 시장경제의 발달과 함께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은 공산당 1黨 체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문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개인의 이기심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사회주의는 개인의 이기심을 버리고 公益을 우선하는 사회입니다. 중국은 아직도 사회주의의 틀을 유지하고 있고, 수많은 당원과 관료들에게 개인의 이익추구를 못하게 하니까 결국 부패라는 형태로 터져 나오는 겁니다.

서구 사회는 프로테스탄티즘이라든가 자본주의의 룰, 법치주의 같은 것으로 적절히 제어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사회주의의 정신은 약화되는데 개인의 이기심을 통제할 장치는 미처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중국도 하루속히 이런 자본주의의 룰을 만들고 도입해야 할 겁니다. 법제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국민들은 운동장 밖에서 놀게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중국의 법제화에 가장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세계의 현행 제도를 한꺼번에 중국에 도입하는 것이니까요』

―중국의 인터넷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중국의 정치민주화에도 큰 작용을 할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의 인터넷 인구가 작년에 1000만명에 육박해서 한국과 비슷해졌습니다. 올해중에는 2000만∼3000만명에 달할 전망입니다. 내년이면 한국은 포화상태에 도달하는 반면, 중국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에게 열려 있는 뉴 프런티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틀림없이 인터넷 분야에서 세계 양대시장의 하나로 발전할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인터넷 도메인은 영어와 중국어로 양분될 겁니다. 우리 벤처기업들은 중국과 호환성을 가지는 인터넷 사업의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중국과 같은 시스템으로 갈 수 있는 협력체제를 구축해야지요. 중국이 요즘 인터넷에 대해 이것저것 제한 조치를 취하는데, 사실은 인터넷이 갖는 민주화의 기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정보화시대에 통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 겁니다. 중국도 뭔가 변화가 있을 거예요』

―북한에 우리 大使가 없는 현실에서 어쩌면 駐中대사가 북한까지 포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 있으면 북한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접할 텐데, 현재의 북한을 어떻게 판단하시는지요.

『우선 북한의 식량난이 조금 완화됐다는 보도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또 에너지와 전력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행정과 통치면에서 정상적인 국가에는 미달되는 상태입니다. 金正日체제가 권력기반면에서 정착이 되었다고 하지만, 국가의 정상적인 통치와는 요원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다 보니 대외적 의존이 계속 필요한 것이죠. 중국도 있지만 결국은 한국 아닙니까. 한국 돈 가지고 수혈하는 셈이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지금 다른 수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재대로 가면 안된다는 것은 自明합니다. 金正日은 체제 걱정은 접어두고 국민을 먹여살리는 문제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金正日 체제가 안정된 위에서 뭔가를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궁극적인 통일을 얻는 길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비밀 접촉 전혀 모르고 있었다』

―최근 발표된 남북한 정상회담 합의에 대사께서는 어느 정도 관여하셨습니까.

『저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上海(상해)와 北京에서 이루어지는 비밀 회담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4월8일 北京 차이나월드 호텔에서 최종합의가 된 시점입니다. 다만 모든 남북관계가 주로 중국을 주무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끊임없이 북한측에 설득시키는 역할은 저의 몫이라고 보고, 그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金대통령의 제의는 진실한 것이다, 金大中이란 지도자는 믿어도 좋다는 점을 북한에 끊임없이 설득하고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는 보조적 역할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이번 합의과정에서 중국은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지난 98년 11월 金대통령께서 江澤民 주석을 만났을 때, 「나의 포용정책만이 남북한이 함께 살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유일한 정책이란 점을 북한이 납득하고 받아들이도록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다 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중국 역시 그것이 自國(자국)의 이익에 합치된다고 보고, 여러 지도자들이 직간접 채널로 북한이 한국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설득했다고 봅니다』

―이번 합의과정에 현대그룹이 개입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큰 작업이니만큼 뒤에서 조명도 비추고 효과도 넣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만, 그것을 가지고 역할을 했다고 자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3월 초 북한 金正日 총비서가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해 밤늦게까지 만찬과 술을 즐기며 돌아갔고, 이어 백남순 외무상이 중국과 동남아를 방문했습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탈리아와 修交했고 다른 서방국가와 修交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일련의 움직임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우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려는 목적이 있겠지요. 둘째 이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을 받으려는 것이겠구요. 셋째로 미국과 일본과의 벽을 뚫는데, 변죽을 두들겨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對日修交 협상도 해석에 따라서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으로서 시급히 필요한 것은 돈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한內 일본인처 문제에서 北이 자존심을 굽혀가며 양보를 한 것도, 돈이 당장 필요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脫北者 7人 사건 중국에 강력 항의』

―중국은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까.

『1998년 11월을 유심히 보세요. 그때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큰 틀이 정해졌습니다. 당시 중국은 첫째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는 것과 둘째 남북간이 대화와 교류를 통해 궁극적인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반대한다는 원칙을 표명했습니다. 그동안 內心으로 가지고 있던 정책을 마치 북한이 들으라는 듯이 공개 발표한 겁니다.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로 金대통령의 「陽光(양광)정책(중국은 햇볕정책을 이렇게 표현)」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脫北者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7인의 강제송환도 있었지만, 우리 정부의 脫北者 정책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 외교에서 가장 어렵고 아픈 부분입니다. 먼 훗날 북한 형제들이 「내가 가장 어렵고 배고플 때 형제로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대답을 어떻게 준비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날 때 金壽煥(김수환) 추기경께서 나에게 한 이 질문을 저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脫北者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옵션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韓中관계를 중시하느냐, 脫北者 당사자를 중시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에서 前者를 도외시하고 後者를 우선시할 때 순기능보다는 역기능만 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脫北者들을 보호하고 데려가겠다고 중국을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중국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은 그전까지 묵인하고 있는 부분까지도 조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脫北者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되면 될수록 중국과 북한은 단속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脫北者는 엄연히 우리의 동포이고 북한 정권이 그들을 수용할 능력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런 점을 북한과 중국에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는 없는 겁니까.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도 이들에 대해 난민으로 판정하지 않았습니까.

『脫北者 문제는 중국의 법률적 문제에 곧 봉착합니다. 중국은 이것이 중국과 북한 간의 법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양국간의 「의정서」에 따라 한국은 제3자라는 얘깁니다. 「난민」 지위는 UNHCR이 개입하지만 최종 판단은 주재국 정부(중국)가 하는 것입니다. 7人의 脫北者가 강제송환된 뒤, 우리는 가장 강한 톤으로 중국 외교부에 항의를 했습니다. 이 일이 발생한 뒤 저는 대단히 마음이 침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인도주의를 위해서 중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중국에 항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외교부 양문창 차관보에게 정색을 하고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저는 「脫北者 문제가 어떻게 북한과 중국만의 문제냐. 봐라. 한국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또 한국뿐 아니라 UNHCR도 관여돼 있다」며 몰아붙였습니다. 중국도 그토록 심각한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했습니다. 이 때문에 韓中관계가 약간의 경색기미를 보였지만, 중국도 다소 달라진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脫北者 문제에 대해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과도 얘기할 수 있다, 문제의 성격 자체가 한국이 얘기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중국이 납득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의 TMD 不參 선언은 적절』

―그렇다면 脫北者 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까.

『기본적 태도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고 약간의 의견접근은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內戰 때 현지 화교 여성들이 주민들로부터 강간 살해를 당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중국 정부는 自國民이 아닌데도 동포라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에 항의하고, 중국으로 피난처를 제공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1999년 초 北京의 주요 대학에는 인도네시아 출신 화교 여학생들이 크게 늘어난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이같은 조치는 脫北者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해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 화교 문제는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동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중국측도 그런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처리는 중국과 북한에 맡겨달라, 우리도 나름대로 하고 있다, 그런 입장입니다』

―지난호 月刊朝鮮 인터뷰에서 李洪九駐美대사는 한국 정부가 美日의 TMD (戰域미사일방어체계) 구축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것은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는데, 駐中 대사로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은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駐美대사의 생각에서 그런 관점이 있을 수 있다고 보겠지만, 한국의 전반적이고 균형된 시각에서 본다면, 저는 千容宅(천용택) 전 국방장관의 지적이 옳다고 봅니다. 千장관은 「한국은 휴전선에서 얼마 안되는 거리에 있어 방어체제 구축에 기술상의 문제가 있고, 작은 나라로서 엄청난 개발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경제성의 문제에서 볼 때 TMD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실정에 맞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우리 정부의 발표를 보고 뭔가 깊이 생각한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외교를 對美-對日 종속 내지 편향이라고 보던 시각에서 그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후 遲浩田(지호전) 국방장관의 訪韓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이 독자적인 국방정책을 결정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면 遲浩田 장관이 한국에 왔겠습니까. 미국과만 상대하면 되지. 외교 일선에 있는 저로서는 金大中 대통령의 이같은 국방정책이 중국의 對한국관에 새로운 판단자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 좋아지면 중국인 만나기 쉬워져

―한국과 한국경제를 보는 중국인들의 시각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IMF 직후 중국內에 한국을 깔보는 시각이 없지 않았는데….

『IMF 직후 江澤民 주석을 만났더니 금모으기 얘기를 하시면서, 「한국의 저력을 믿는다, 곧 극복될 거다, 그리고 중국도 협조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그것 봐라 잘됐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사람은 못 봤습니다. 중국은 한국이 경제위기에 빠진 것이 결코 自國에 유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기업에 수출금융을 지원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중국인들 얘기가 「한국 경제가 추락할 때 한번 놀라고, 단기간에 일어서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고 해요』

―本國의 부당한 지시나 훈령에 「노(No)」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지난해 국민회의 趙世衡(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의 무리한 訪中일정 요구에 대해 노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까(참고: 당시 국민회의는 일정이 빡빡한 江주석과의 면담을 강력 요구, 權대사가 어렵게 스케줄을 맞춰놓았으나, 趙대행의 갑작스런 訪中 취소로 중국측에 사과한 적이 있다).

『趙대행의 訪中 자체는 제가 본국 정부에 건의한 것입니다. 중국과 黨對黨(당대당) 교류가 너무 허술한 것 아니냐 해서. 그때 어려운 江주석과의 면담 일정은 물론 上海 시장 당서기와 지방 당서기 등과의 일정을 모두 잡아놓고, 전국에 갑호 비상령까지 내려 놓았었는데, 돌발사태가 발생했지요. 제가 중국 공산당에 가서 설명하고 해명했습니다. 중국도 나중에는 이해를 했습니다. 훈령은 일단 수용해서 열심히 뛰어야죠. 노(No)라고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지난번 南宮晳(남궁석) 특사 오실 때, 朱총리 면담을 요구해서, 「朱총리가 만날 입장이 아닐 것이다」고 말해준 적은 있습니다. 결국 吳邦國 부총리를 만났죠』

지난해 「外風」에 시달리기도

―최근에 만난 중국인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吳邦國 부총리, 중국공정원 송건 원장, 朱麗蘭(주리란) 과기부장, 吳基傳(오기전) 정보산업부장, 曾慶紅 당조직부장, 양문창 외교부 차관보, 이서환 정협주석 등입니다. 한 가지 느끼는 것은 한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중국인 만나기가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朱昌駿(주창준) 북한대사와 만나서 얘기한 적은 있습니까.

『개별적으로 만나지는 못했고, 공개석상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은 있지요』

―중국 친구는 몇명쯤 됩니까. 중국인과 사귀는 법을 소개해주시죠.

『연하장을 보내는 사람이 2000명쯤 되고, 그중 친구는 한 100명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인과 사귀려면 먼저 그들의 문화를 알고 예의를 갖춘 위에서, 적어도 세 번은 만나야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중국인에게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약속을 함부로 하지말고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權대사는 지난해 적지 않은 「外風」에 시달렸다. 집권 여당의 실세 한 명이 北京에 와서는 權대사의 면전에서 『4강 대사는 직업외교관보다는 정치인이 바람직하다』고 발언, 동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 그가 돌아간 뒤 다른 여당 원로 한명이 중국 대사로 올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이어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도 중국 대사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같은 소문과 관련해 특파원들이 사석에서 대사의 의중을 슬쩍 떠보자, 權대사는 『언제든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고향이 경남 하동인 權대사는 『나의 고향은 워낙 오지여서 개발이 안됐는데, 그것이 지금은 더 좋다』면서 『고향의 옛집을 수리해서 퇴직한 뒤 보낼 준비를 해두었으니, 나중에 섬진강의 재첩국과 토종 닭요리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