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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人物] 신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김한길

김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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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길 신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비서관(47)은 지난 3월4일 후원회 행사를 취소해야 했다. 후원회를 하는 김에 아들 어진이의 돌잔치까지 할 생각이었으나 하루 전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그를 정책기획수석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김수석은 3월4일 행사장 입구에 취소 입간판을 세우고, 비서진들은 입구에 서서 취소 사실을 모르고 온 후원자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김수석은 『대통령이 2일 임명 사실을 통보하면서 발표를 5일로 미루겠다고 배려했으나, 후원금을 걷고 다음날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사양했다』고 설명했다.
 
  김수석은 「金大中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1997년 大選(대선) 당시 金大中 후보의 TV대책팀장으로 TV토론을 총괄하면서 「미디어 선거」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김수석은 당시 金대통령의 본래 그대로의 모습을 유권자에게 알려, 金大中 후보의 이미지를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두었다.
 
  1996년 총선 때도 그는 전국구 후보로 選對委(선대위) 대변인을 맡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도 맡았다. 1998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는 高建(고건)서울시장과 林昌烈(임창렬) 경기지사의 TV토론을 지휘했다. 그의 정치생활은 이렇듯 홍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여서, 그의 이번 기용을 놓고도 국정홍보 기능 강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수석은 통일사회당을 이끌다 1994년 작고한 金哲(김철)씨의 아들로 195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건국대 정외과를 나와 美洲(미주) 한국일보 기자와 중앙일보 미주지사장을 지냈다. 1987년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서울올림픽 때 학술행사를 담당하면서 姜元龍(강원룡) 목사를 알았고, 이 인연으로 姜목사가 방송위원회 위원장으로 갈 때 함께 들어가 대변인, 기획실장, 사무총장 서리를 맡았다.
 
  소설가로 그의 경력은 1981년 문학사상에 중편 「바람과 박제」로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세상에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88년 출간한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라는 장편 소설이 히트하면서부터. 이어 1992년에 발표한 「여자의 남자」가 2백만 부나 팔리면서 유명 인사 대열에 올랐다. 1992년 大選 때는 국민당 부대변인과 鄭周永(정주영) 후보의 공보 특보를 지냈다. 이후 방송에 진출, 「김한길과 사람들」 「김한길 초대석」 등 방송 진행자로도 성공했다. 1995년에는 톱 탤런트인 최명길씨와 결혼해 다시 한번 세간에 화제를 뿌렸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정부의 중장기 정책을 입안하고 조정하는 게 주임무. 金重權(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은 金大中 대통령 취임 전 청와대 비서실 개편 방향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정책기획수석이 「수석 중의 수석」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런 자리에 김수석을 임명하자 의외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회의 일각에서는 朴智元(박지원) 공보수석 후임으로 「공보수석 수습」을 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金重權 비서실장은 김한길 수석 임명 배경에 대해 『정책 조정에는 경제 마인드보다 정치 감각이 필요하고, 또 아무리 잘된 정책이라도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홍보 전문가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金대통령의 한 핵심참모는 『김수석은 같이 일해보면 의외로 전략적인 기획능력을 갖고 있고, 대통령이 이 점을 높이 사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석은 임명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알맹이 없는 홍보는 사기』라며 『알맹이가 실하지 않고는 어떤 홍보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과의 TV대화 등을 준비할 때 의상, 분장, 제스처 등 형식에 들이는 시간은 5분도 채 안되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말할까 취사 선택하는 게 주된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많은 언론이 나를 홍보전문가라고 표현했는데, 실체는 보잘 것 없는데 포장만 잘하는 포장전문가라는 의미라면 사양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수석은 의정활동에서도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교육위에서 그는 영어 조기교육 문제점을 집중 다루었고, 1996년 국정감사 때 한국유권자운동연합이 발표한 의정활동 평가에서 교육위원회 1위에 뽑혔다. 작년에는 상임위 활동 참가 1백%를 기록,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처음 정치에 입문할 때 『정치인의 말에는 향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석이 그동안 이 원칙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판단하기 힘들지만, 그가 아직도 이 생각을 갖고 있다면 「향기 있는 정책기획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담배를 하루에 네 갑씩이나 피우는 골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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