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2030 '장마당 세대' 마음 뒤흔드는 한국가요 : 월간조선

(왼쪽부터) 가수 이선희씨, 윤상씨, 조용필씨. 사진=조선DB

통일부는 4월 초 방북할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 참가자 명단을 20일 공개했다. 160여 명으로 구성된 남측 예술단에는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백지영, 정인, 서현, 알리와 레드벨벳 등이 포함됐다.

예술단은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동평양대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각 1회 공연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공연 날짜는 잠정적으로 4월 1일과 3일로 생각하고 있는데 변경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평양공연을 앞두고 북한 주민, 특히 젊은이들이 한국 가수와 가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최근 탈북한 북한 청년 10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북한의 2030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는 '장마당 세대'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무렵 태어나 1990년대 중반부터 후반 사이 최악의 기근에 시달렸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자라났다.

북한의 장마당.

고난의 행군을 통과하며 북한에서 배급제가 무너졌고 북한 주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시장 이른바 '장마당'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장마당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체제를 경험했고 장마당을 통해 한국 가요, 영화, 드라마 등을 접할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주로 중국에서 몰래 들여오는 CD, USB, MP3 플레이어, SD카드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하고 있다. 탈북 청년들에 따르면 CD 사용은 감소 추세이고 사용이 편하고 발각될 위험이 적은 USB, SD카드 등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노래·드라마 등을 시청하는 데 사용하는 기기인 노트텔. DVD, USB 내의 파일을 재생할 수 있다. photo SBS뉴스 캡처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2012년 탈북한 대학생 A(27)씨는 "예전에는 MP3 플레이어나 노트텔(DVD·USB 재생기기) 가격이 많이 비쌌는데 한국 민간단체들이 기기들을 북한 내부로 많이 들여보내면서 보급이 많이 됐고 판매가격도 떨어졌다"고 했다.

북한 청년들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탈북 청년들은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제국의 아이들, 동방신기, 티아라 등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2010년에 탈북한 대학생 B(27)씨는 "중국에서 들여온 CD에서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를 봤다. 당시에는 어떤 그룹인지 몰랐고 한국에 와서 소녀시대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2014년에 탈북한 대학생 C(22)씨는 "북한에서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제국의 아이들, 티아라 등 다양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젊은이들에게 어떤 한국 가요가 인기 있을까?

탈북 청년들은 대체로 아이돌 그룹의 최신 노래보다 안재욱의 ‘친구’,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김범수의 ‘보고 싶다’, 거북이의 ‘빙고’, 이선희의 ‘J에게’, 태진아의 ‘잘살거야’ 등 옛날 노래들을 선호했다. 가사가 좋고 서정적인 노래 또는 희망을 주는 밝은 느낌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는 랩이 섞여 있고 가사가 빨라 듣기 어려웠다고 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2016년에 탈북한 대학생 D(29)씨는 "드라마 OST를 통해 한국 노래를 많이 접했고,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안재욱과 이승철의 노래"라고 답했다.

배우 겸 가수 안재욱. 사진=조선DB

가수 이승철. 사진=조선DB

C씨와 같은 고향 출신으로 2013년 탈북한 대학생 E(24)씨는 거북이의 '빙고'를 즐겨 들었다고 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땅이 너무 좋아 이민 따위 생각 한 적도 없었고요'란 가사를 들으며 내가 사는 북한 땅은 너무 힘들어서 매일같이 떠나고 싶은데 남한 땅은 얼마나 좋으면 이런 노래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전씨는 "고등학생 시절 농촌동원을 나가면 감시가 없을 때를 틈 타 남한 노래를 틀어놓고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떼창을 부르며 놀기도 했다"고 말했다.

탈북 청년들이 동일하게 말했던 것은 한국 문화를 접하며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과 탈북하고자 하는 생각을 더 갖게 됐다는 것이다. 평안남도 순천 출신으로 2012년에 탈북한 대학생 F(25)씨는 이렇게 말했다.
"평남 순천은 공업도시로 북한에서 잘사는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한 문화를 접하며 한국이 훨씬 잘산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북한과 비교해 자유롭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라는 생각에 남한에 오고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2012년에 탈북한 대학생 G(27)씨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한국 방송을 들으며 남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국 가요 듣다 발각되면 사형에 처하기도...위험 무릅쓰고 듣는 이유는?

북한에서 한국 가요를 듣다가 발각되면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심한 경우 사형·무기징역에도 처하게 된다. 2010년 탈북한 H(29)씨는 "보통은 수용소 입소 및 강제노동으로 끝나지만 시범단속기간에 발각되면 사형·무기징역에 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5년 탈북한 I(29)씨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단속이 허술했는데 남한 문화의 유입이 많아지자 2000년대 후반부터 단속이 강화되었고 이후부터는 남한 노래를 매우 조심해서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중형을 선고받더라도 돈을 쓰게 되면 쉽게 풀려날 수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탈북 청년은 "남한 노래를 듣다가 발각됐지만 집안이 부유한 편에 속해 돈을 써서 바로 풀려날 수 있었다"고 했다. 다른 탈북 청년의 가족은 6개월간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역을 하다 가족들이 돈을 마련해 뒤늦게 풀려날 수 있었다. 탈북 청년들은 단속의 무서움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갈망이 더 커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가요를 듣고 있다.

본인은 한국가요 즐기고 주민은 처형하는 '내로남불' 김정은 정권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이 2월 8일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열려 북한곡 “반갑습니다“, 한국곡 ”j에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별, 당신은 모르실거야, 사랑의 미로, 다함께 차차차, 서인석의 홀로 아리랑“을 비롯한 서양 교향곡 다수를 메들리로 공연을 선보였다. 사진=조선DB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북한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비롯한 북한 고위급대표단과 함께 관람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똑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면 생전에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즐겨 불렀다는 김정일도 이선희의 'J에게' 등을 부른 삼지연 관현악단도, 그 공연을 본 김여정 등도 처벌 대상이다. 김정은 정권은 4월 평양공연에서 한국가요를 듣게 될 평양의 고위층부터 수용소에 보내야 할 것이다. 본인들은 한국가요 즐기고 주민들은 처형하는 김정은 정권, 북쪽에선 '반동분자 숙청' 남쪽에선 '적폐청산', 자신과 타인에게 다른 잣대 적용하는 '내로남불'이란 측면에선 남북이 이미 통일을 이룬 것 같다.

글=김성훈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