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읽는 시집 ⑰] 십만 양병 밤 개구리 소리와 소쩍새 울음... 사윤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앵두가 쥐여준 씨앗 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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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자는 대구경북 출신의 시인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안다. 대구라는 거대한 분지(盆地), 팔공산 자락에 갇혀 뭉툭한 연필로 시를 눌러 쓰는 사람들. 그들은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슬픈 이야기를 슬프다고 울먹이지 않으면서 시를 쓴다. 그래서 무섭다. 시집 앵두가 쥐여준 씨앗 한 되(시인동네)의 해설을 쓴 장정일도 대구 생이다.

 

대구 시인들은 대개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사람 속을 파고든다. 피노키오의 코처럼 시를 읽을 때마다 서로 다른 감정이 한 마디씩 밤마다 자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윤수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한때의 장정일의 시를 읽을 때도 그랬다.

 

2.

 

시집 표사(表詞)에 적힌 문장을 읽고 다시 놀랐다.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가운데 몇 구절을 다시 필사한다.

피에르 마티외는 1610년 서판에 이렇게 썼다. 삶이란 여럿이 모여 노는 노름판이다. 노름꾼 넷이 보인다. 상석에 앉은 시간이 말한다. 패스! 사랑은 가진 돈을 몽땅 걸고 부들부들 떤다. 인간은 포커페이스를 짓고 있고, 죽음이 판돈을 몽땅 쓸어 담는다.”>

 

시인은 왜 하필 이 문장을 표사에 옮겨 적었을까. 왜 파스칼 키냐르와 피에르 마티외 같은 이름들을 불러냈을까. 단순한 교양의 과시처럼 읽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윤수는 이 오래된 문장을 빌려 자신의 시세계를 미리 암호처럼 흘려놓은 듯했다. 시간과 사랑과 인간과 죽음. 그의 시에도 결국 이 네 존재가 끊임없이 서로의 패를 훔쳐본다. 다만 시인은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 역시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3.

 

  현무암 담장 곁에 만발한 파도는 水國에서 水菊으로 건너온 유월이다 오면서 흩어지고 남은 꽃잎의 안팎을 누구의 눈매라고 해야 할까 수국은 나비의 씨앗까지 품고 있었는지 저리 흰나비 떼 피웠다 그리고도 오종종 쑤국쑤국 부풀어 제주어를 발음하고 저희들끼리 둥근 귓속말을 한다 꽃도 무거울 땐 휘어져, 흰 꽃숭어리들은 순한 개가 새끼를 낳은 거 같고 몽실몽실 흰둥이 열댓 마리쯤 낳은 거 같고 수국은 젖이 퉁퉁 불은 포유류 같다 다정히 안아보려 하자 나비 떼 화르르르 날아오르는데 내게 잠시 맺혔다 떠난 일들은 모두 水國에서 온 꿈결이라, 水菊은 질 때 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수국은 누구의 눈매라고 해야 할까전문

 

서시 수국은 누구의 눈매라고 해야 할까는 제목부터 독자를 붙든다. 사윤수는 수국(水國)’수국(水菊)’ 사이를 오가는 언어의 겹을 통해 독특한 상상력의 물길을 만든다. “현무암 담장 곁에 만발한 파도라는 표현에서 시작된 이미지는 꽃잎과 눈매, 씨앗 품은 나비, 흰나비 떼로 연쇄적으로 번져나간다.

 

특히 오종종 쑤국쑤국같은 표현은 낯설면서도 정겨운 제주 방언의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검색해보니 시인은 제주에서 잠시 살았다고 한다.) 꼭 특정 방언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원초적 숨결 같은 느낌이다. 단순한 의태어를 넘어, 수국 속에서 태어난 나비 떼의 날갯짓이나 꽃송이들이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는 소리처럼 들린다.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흰 꽃송이는 어느 순간 순한 개가 새끼를 낳은 거 같고”, “몽실몽실 흰둥이 열댓 마리쯤 낳은 거 같고”, 마침내 젖이 퉁퉁 불은 포유류로 이어진다. 식물과 동물, 꽃과 생명체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수국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된다.


인상적인 구절은 마지막에 있다. “내게 잠시 맺혔다 떠난 일들은 모두 水國에서 온 꿈결이라는 구절은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환기한다. 水菊이 질 때 거품처럼 사라진다는 표현은 결국 봄과 생명, 찬란한 순간이 지닌 소멸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피어나는 순간 가장 아름답고, 그래서 더 빨리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감각이다.

 

이 시는 수국이라는 익숙한 꽃을 전혀 다른 차원의 이미지로 다시 피워낸다. 언어의 음감과 의태어의 말맛, 동물적 생명감, 물의 이미지가 서로 겹치며 몽환적인 장면을 만든다. 수국 한 송이 안에 파도와 나비와 포유류의 숨결까지 밀어 넣는 상상력의 밀도가 인상적이다.

 

4.

 

동상 위로 비둘기들이 날아오른다

누가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

검은 안대를 씌워놓았나

 

  1547년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오른쪽 눈을 잃었고 메콩강에서 조난을 당해, 떠내려가는 애인을 붙잡지 못하고 자신의 원고를 한 손에 든 채 헤엄쳐 나온 포르투갈의 민족 시인 루이스 드 까몽이스

 

광장엔 저마다 않았거나 누웠거나

노래하며 춤추며 밤낮

시인의 영혼 아래 시끌벅적하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맥주집, 에그타르톡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고

여행객들이 북적이는 노천 커피숍엔

음유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태연히 앉아 있다, 그는

시는 더 카가울수록 더 진실하다고 썼다

 

나는 오로지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마지막 금붙이를 팔아 여기까지 왔다

 

유유한 테주강 바람 불어와

자카란다 꽃숭어리들이 허공에 나부끼는 리스보아의 유월

여기서부터 비애가 끝나고 자유가 시작된다

 

밤이 오면

격랑의 목청을 붐는

파두 라이브를 오래도록 들으리라

-‘까몽이스 광장-리스본 시편전문

 

검은 안대를 한 시인루이스 드 까몽이스(Luís de Camões)의 모습이 강렬하게 연상되는 시다. 독자는 시인과 함께 마치 리스본의 까몽이스 광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상 위로 비둘기들이 날아오른다 / 누가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 / 검은 안대를 씌워놓았나라는 첫 장면부터 독자를 광장 한복판으로 끌고간다.


특히 전투로 한쪽 눈을 잃고, 메콩강 조난 속에서 애인을 붙잡지 못한 채 원고를 한 손에 들고 헤엄쳐 나왔다는 대목은 강렬하다. 까몽이스가 실제 그런 삶을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는 마지막 금붙이까지 처분해 이 광장에 찾아왔다. 검은 안대에 감춰진 삶의 진실을 시적 행간으로 채워 넣으려 온 것이다. 사랑을 잃어도 끝내 원고를 놓지 않은 시인의 모습은 비극적이면서도 어딘가 숭고하게 느껴진다.

 

5.

 

시가 네 더운 이마를 짚어주네

시가 네 마른 입술을 적셔주네

 

바람 전 몸을 빌고 달빛 전 살을 빌어왔을 제

앵두가 쥐여준 슬픈 씨앗 한 되와

눈물 석 동이가 너의 시였지

 

파도 골짜기를 넘어 먼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못할 2월이 너의 시였지

 

강대나무 진대나무 숲을 지나

앞 강물 뒤 강물 나병들명 깨어진 무릎이

고래 핏물 같은 저 노을을 닮아 너의 시였지

 

걷다가 넘어진 길을 다 걸어

십만 양병 밤 개구리 소리와 소쩍새 울음에 젖는

귀 농사 삼백 섬이 이제 너의 시인가

-‘시가 너에게일부

 

  명사십리 백사장 A4 용지에 새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 있다 내가 썼지만 아무리 봐도 상형문자는 뜻이 없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나는 또 종이를 구긴다 하얗게 질리며 일그러지는 신음이 종이의 갈비뼈와 애간장에서 배어 나온다 쓰레기통에 획 던져 넣자 꿈틀거리는 저 흰 덩이, 경련한다 접질린 관절을 펴보려 안간힘을 뒤튼다 종이는 종이가 되기 전 나무 였을 때, 바람에 흔들리던 기억을 불러 제 몸을 마지막으로 흔들어보려는 걸까 자려고 어둠에 누웠는데 쓰레기통 속에서 종이가 한 번 더 뿌지직거린다 나는 겁이 많아 종이와 허공이 부딪치는 소리에도 놀란다 (아직도 종이의 맥박이 뛰고 있구나)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면, 구겨진 종이는 날개를 펴고 하얀 새가 되어 구만리 장천을 날아오르겠지 깃털 같은 문장 몇 개를 내게 뽑아 주고 떠가는 티 없이 하양고 부드러운, 우유처럼 깨끗한 너를,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까맣게 잊을 수 있겠는가

-‘종이의 노래전문

 

  파닥거리는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리고 박박 치대서 끓인 추어탕을 먹고 시를 쓰고, 부화한 지 석 달 된 병아리 통닭을 먹고 시를 쓰고, 꾸물거리는 미끄러운 대가리에 못을 박아 껍질을 벗겨 구운 장어를 먹고 시를 쓰고, 토막 난 채 아우성치며 기어 나오려는 산 낙지를 먹고 시를 쓰고, 수족관 뜰채에 잡혀 나올 때 바다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치다 바닥에 떨어 진 물고기 회를 먹고 시를 쓰고, 사육장 틀에 갇혀 초원을 모르는 가축들의 살점을 삶고 지지고 볶고 구워 먹고 시를 쓴다 나는 게장을 좋아 한다 발버둥 치는 게가 돌아눕지 못하도록 거꾸로 쟁이고 어둠 같은 간장을 들이부어 만든 간장게장 특히 알을 가득 품은 암꽃게장음, 내가 맛난 시를 쓰게 된다면 그건 게 덕분일까 제가 게거품을 물고 웃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초식동물을 닮은 시인들이 모여앉아 우물우물 시의 가시를 뱉어 낸다 왁자지껄한 주점 테이블 위에 시의 뼈다귀가 수북이 쌓인다

-‘식용의 시전문

 

시가 너에게’, ‘종이의 노래’, ‘식용의 시를 읽으며 어쩌면 이 시인은 처절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요란한 성격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쨌거나 사윤수의 시론(詩論) 혹은 시작(詩作) 방식은 재능이나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슬픔을 견디는 방식에 가까워 보인다.

 

시가 너에게에 담긴 앵두가 쥐여준 슬픈 씨앗 한 되눈물 석 동이같은 감각적인 문장을 거듭 소리내어 읽는다. 한 되와 석 동이가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다. 먼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못한 2, 깨어져 고래 핏물 같은 노을 닮은 무릎, 십만 양병 밤 개구리와 소쩍새 울음 같은 깊은 상실과 비애가 시인의 더운 이마를 짚고 마른 입술을 적셔주는데 바로 그때 한 마디 시가 탄생한다. 시인에게 시는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오래 삭은 슬픔의 부산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의 노래역시 시작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은 구겨진 종이의 신음까지 듣는다. 종이는 쓰레기통 속에서도 경련하고, 종이가 되기 전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의 기억을 끝내 놓지 못한다. 그 순간 시인은 기적을 꿈꾼다. 구겨진 종이가 하얀 새가 되어 날아오르기 전, 깃털 같은 문장 몇 개를 남겨주는 순간을 기다린다. 실패한 원고와 버려진 문장 속에서도 끝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흔적을 본다.

 

식용의 시는 더욱 노골적이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법한 장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소금을 뿌려 박박 치댄 미꾸라지, 부화한 지 석 달 된 병아리, 대가리에 못을 박아 껍질을 벗긴 장어, 몸부림치는 산낙지와 물고기 회, 초원을 모른 채 사육장에 갇혀 살다 식탁 위에 오른 가축들의 살점까지. 시인은 그것들을 먹어야 비로서 시가 나온다. 특히 어둠 같은 간장을 들이부어 만든암꽃게장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맛있는 시 역시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서 태어난다는 자각이 읽힌다. “맛난 시를 쓰게 된다면 그건 게 덕분이라는 고백은 우스운 듯하면서도 섬뜩하다.

 

6.

 

트렁크 끌고 강원도 골짜기에 왔다

여기서 잠복근무를 하면

시의 첩보원을 만날 수 있을까

 

주천강 지류가 소살소살 흘러가며 시를 쓰고

강가 돌들이 묵언수행 시를 쓰고

아직 해사한 청화쑥부쟁이가,

무성한 잎들이 찰랑찰랑한 산뽕나무가,

빈터에 무심히 놓인 책걸상들이 시를 쓰고

 

가문비나무가 시를 쓰고

두 나무에 매어놓은 느슨한 빨랫줄이

꼬대에 맺힌 씨앗과 늦가을 시들어가는 들풀이

잣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밤에는 고라니가

저마다 시를 쓰고 있네

 

나도 시 좀 써보려고

가문비나무 아래를 걷다가

강물 소리 들으며 돌에게 말을 걸다가

흔들 그네에 앉아 햇볕에 졸음 겨우니

내 시는 도통 입질을 하지 않네

 

미운 사랑 시의 간첩아

너는 어디에서 길을 잃고 배를 곯느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한 소솜 빗줄기가 지붕을 때리며 지나가는 밤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렸네

 

소리 소문 없이

새벽 물안개가 저리도 무정하게 지폈다

수묵의 시가 만 폭이다, 그런데

읽는 법을 모르겠네

앞이 캄캄하다고 해야 하나

너는 뼛속까지 하얀 짐승, 이라고 써야 하나

-‘한 소솜 빗줄기가 지붕을 때리며 지나가는 밤-예버덩 시편전문

 

한 소솜 빗줄기가 지붕을 때리며 지나가는 밤예버덩 시편역시 시작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이번에는 슬픔보다 시가 오지 않는 순간의 막막함에 더 가깝다. 재밌다.

 

시인은 트렁크를 끌고 강원도 골짜기로 들어간다. “시의 첩보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시는 정면으로 오는 존재가 아니라 잠복 끝에 겨우 접선할 수 있는 비밀 정보원처럼 그려진다. 시인은 주천강 지류와 강가 돌들, 청화쑥부쟁이와 산뽕나무, 가문비나무와 늦가을 들풀, 잣송이 떨어지는 소리와 밤 고라니까지 바라보며 시심이 오기를 기다린다. 자연은 이미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시를 쓰고 있다. “주천강 지류가 소살소살 흘러가며 시를 쓰고 / 강가 돌들이 묵언수행 시를 쓰고라는 구절에서는 세계 전체가 거대한 시의 현장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시인 자신은 시를 쓰지 못한다. “내 시는 도통 입질을 하지 않네.” 자연은 넘치도록 아름답고 시적 풍경은 사방에 가득한데, 정작 자기 문장만 오지 않는다. 시인은 강물 소리를 듣고 돌에게 말을 걸고 그네에 앉아 졸음까지 견뎌보지만 시는 끝내 잡히지 않는다.

 

결국 시인은 미운 사랑 시의 간첩아라고 중얼거린다. 시를 원망하면서도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시와의 관계가 거의 운명처럼 읽힌다.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다.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자 시인은 수묵의 시가 만 폭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시적 순간은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너무 거대하다. 자연의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시인은 오히려 말을 잃는다. “앞이 캄캄하다고 해야 하나 / 너는 뼛속까지 하얀 짐승, 이라고 써야 하나라는 마지막 구절은 특히 인상적이다.

 

여기서 뼛속까지 하얀 짐승은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다. 시인이 끝내 붙잡고 싶어 하는 시의 본체, 혹은 뮤즈 같은 존재에 가깝다. 짐승이라는 말에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과 두려움이 담겨 있고, “하얗다는 표현에는 새벽 물안개 같은 순백의 침묵과 신비가 스며 있다. 결국 시인은 자연 속에서 마주친 어떤 압도적인 시적 존재를 향해 겨우 저 한 문장을 더듬어 내놓는다. 아름답지만 가까이 갈수록 사라지는 존재, 끝내 완전히 붙잡히지 않는 시 자체를 말이다.

 

7.

 

언젠가 써둔 문장,

 

부처는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

부처는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

 

살도 뼈도 없는 문장이 느닷없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나는 지옥을 치르며

겨울이라는 질병을 앓는다

 

찬바람 속에 부처와 부처의 이모와 내가 서 있다

함께 아니어도 될 두 영혼이 불려 나와

같이 떨고 있다

 

부처는 이모이자 유모인 대애도 비구니의 장례를 손수 치렀다

장례를 치를 평상과 기름과 꽃과 향과 수레를 구해

교외의 화장터로 향하였고

찬다나 섶나무에 불을 붙여 이모를 화장했다

 

살가죽과 뼈가 맞붙은 겨울 들판

불씨 하나를 당기면 다 타버릴

풍경 위를 철새들이 날아간다

 

나는 다만, 아무 뜻 없이

부처는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 라고 썼고

그 문장에 기대어 견디는 나날이다

남의 이모 장례식을 핑계로 얼마나 울어서

상조 국밥에 콧물을 빠뜨리는 겨울날이다

-‘부처는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전문

 

사윤수의 부처는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를 읽으며 오래 슬펐다. 시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다 이해하지 못해도, 시인이 느끼는 슬픔만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전해진다.

 

시는 부처는 이모의 장례를 치르고라는 문장을 반복하며 시작한다. 설명도 해석도 없다. 그런데 그 단순한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시인은 살도 뼈도 없는 문장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그 문장 속에는 견디기 어려운 겨울의 감정이 들어 있다.

 

나는 지옥을 치르며 / 겨울이라는 질병을 앓는다는 구절은 특히 처절하다. 계절로서의 겨울이 아니라 사람 안에 오래 남아 있는 병 같은 시간이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까워져도 사람들은 여전히 긴 외투를 꺼내 입듯 저마다의 겨울을 견디며 살아간다. 뉴스에서는 오늘도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의 죽음과 불행이 흘러나온다.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슬픔이 전염된다. 이 시 역시 그렇다.

 

부처가 자신의 이모이자 유모였던 대애도 비구니의 장례를 손수 치렀다는 대목은 유난히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깨달음을 얻은 존재조차 결국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장례를 치러야 한다. 평상과 꽃과 향과 수레를 구하고, 화장터로 가서 불씨를 붙이는 장면은 성인의 일화라기보다 너무 평범한 인간의 애도처럼 읽힌다.

 

그래서 시 속에서는 부처와 부처의 이모와 시인, 그리고 독자까지 함께 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함께 아니어도 될 두 영혼이 불려 나와 / 같이 떨고 있다는 구절처럼, 원래 아무 상관없는 존재들이 슬픔 앞에서 잠시 연결된다. 시가 하는 일도 어쩌면 그것인지 모른다. 서로 무관한 사람들을 같은 슬픔 아래 잠시 세워두는 것.

 

마지막의 상조 국밥에 콧물을 빠뜨리는 겨울날이라는 표현은 우습고도 처연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오히려 더 슬프다.

 

8.

 

동사무소 직원이 봄까치꽃과 광대나물로 바뀌었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보니 쑥과 냉이가 동거인으로 얹혀 있고 가족관계 증명서 부모란엔 동백과 매화가 적혀 있다 초본이 궁금해 물 어보니 그건 청보리밭에 가서 떼보라고 한다 그동안 옮긴 주소가 갈래갈래 아지랑이 들길을 만들었구나 잃어버린 길, 안개가 되어 도망 다니던 길도 있었지 소득이 없는데 부채증명서에 담긴 저 빚은 뭘까 한 아름 넘치도록 안겨주는 봄빛일까 명자꽃 조팝꽃 문서가 눈앞에 쌓였다 봄 수주가 폭발하는 물량이다 나도 어서 푸른 여권으로 바꾸어야겠다 꽃마리와 손잡고 모란행 비행기를 타야지 아몬드꽃 피는 마을까지 날아가야지

-'봄의 증명서' 전문

 

시집의 맨 끝장에 있는 시다. 반발하는 자연의 봄 이야기를 동사무소 행정 언어들을 소재로 활용해 시를 썼다. 기발하고 신선한 감각이 즐겁게 한다. '소득은 없는데 부채증명서에 담긴 저 빚은 뭘까'에 답하고 싶다. 빚은 돈이 아니라 계절에 진 빚이다. 무상으로 받은 따사로온 봄빛이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이다.

 

봄 수주가 폭발하는 물량이라는 표현에서는 시인의 장난기와 생동감이 살아난다.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밀려드는 주문서이자 감당하기 어려운 생명의 물량 공세다. 결국 시인은 푸른 여권으로 바꾸어 모란행 비행기를 타겠다고 말한다. 봄바람에 실려 어딘가로 가다보면 아몬드꽃 피는 고소한 마을에 다다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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