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故)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 사진=롯데재단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의 적장녀인 신영자(辛英子) 롯데재단 의장이 21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5세.
그는 1942년 10월 16일 경상남도 울산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아버지 신격호(辛格浩·1921~2020)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어머니 노순화(盧舜和·1922~1951)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신격호는 신영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며, 어머니가 29살의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 할아버지 신진수(辛鎭洙·1902~1973)의 손에 길러졌다.
이후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서 롯데를 창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딸을 찾았다는 일화는 재계에서 유명한 일화일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 의장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부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신 의장은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장오식(張五植)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지만 1979년 이혼했다.

지난 2024년,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과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묘소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롯데재단
신 의장이 경영 전선에 뛰어든 것은 1973년부터다. 그는 같은 해 호텔롯데에 입사하여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으며, 1979년에는 롯데백화점 설립에 참여했다. 신 명예회장이 장녀인 신 의장을 일찍부터 경영에 참여시켜 경영인으로서의 소양을 가르쳤다는 평가다.
이 당시 롯데백화점을 국내 최고의 백화점 반열에 올려 ‘유통업계의 대모’ ‘성공한 여성 CEO’라는 전설적인 명칭이 붙을 정도로 경영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다.
대한민국 최초로 ‘면세점’ 제도를 도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 결과 롯데면세점은 지금까지도 국내 대표 면세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2008년에는 사장으로 승진하여 롯데쇼핑과 롯데면세점 사장을 역임했고, 2013년까지는 롯데시네마 지방 점포 매점들을 위탁 운영하던 시네마통상 및 시네마푸드의 대주주로도 활동했다.
재계에서는 신 의장이 딸이라는 것을 안타까워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상전 신격호 展’ 특별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장혜선 이사장과 신영자 의장. 사진:롯데재단
전문 경영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0년대 중반기부터 위기를 맞았다. 롯데그룹이 경영권 문제로 흔들리고 2016년 7월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신 의장은 ‘억울하다’며 적극적으로 항소했지만 1심에서 징역 2년의 선고를 받고 실형을 살다가 상고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일련의 사건 이후 신 의장은 매스컴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신 의장은 장녀인 장혜선 롯데장학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의 ‘책임경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롯데재단의 의장에 이름을 올려 롯데재단이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참석하며 장 이사장이 재단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자 의장은 자녀들이 함께한 가운데 2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종했다. 장례는 장 이사장이 상주를 맡아 장례식장에서 ‘롯데재단장’으로 3일간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한남공원묘원이다.
글=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