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경기 양평군 강상면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안노선 종점 일대를 방문했다. 사진=뉴시스
17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감각과 경험으로 얻은 지식은 물론 1+1=2와 같은 수학법칙까지도 의심하고 검증해야 된다’고 했다. 이른바 방법론적 회의론이다.
적어도 앞선 중세엔 맞는 말일지 모른다. 어두웠던 ‘신의 지배’를 벗어나 과학 혁명을 맞이하기 위해선 미신과 우상을 깰 적절한 사조(思潮)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현대국가 행정에 있어서 이 ‘극단적 회의론’ 방식이 끼어들어선 곤란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데카르트의 이른바 방법론적 회의론은 현대 철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지만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1=2와 같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대상으로 까지 회의론으로 낑낑댈 만큼 인간사(人間事)와 나라살림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19세기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저술한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38 가지 기술>은 부도덕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가득 차있다. ‘전문지식이 부족한 청중들을 이용해 반박한다’,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재빨리 쟁점을 바꾼다’, ‘인신공격은 최후의 수단이다’와 같은 38가지 기술이 대부분 이런 낯부끄러운 ‘비기(秘技)’들이다.
젊은 시절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다가 내용의 천박하고 야비함에 읽다가 던져 버린 적이 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다음과 같은 주장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사악함이 없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정직하다면 우리는 모든 종류의 토론에서 단지 진실을 밝혀내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타고난 허영심에다 부정직함이 곁들여 있다. 자신들이 부당하고 틀렸음을 깨닫고도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기술을 익히고 알아야만 이들의 만행에 대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토론에선 이런 야비한 기술을 동원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서울 양평고속국도 사업이 발목 잡힌 상황에서 데카르트와 쇼펜하우어의 기술이 악용되고 있진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의 ‘모든 진실에 대한 의심’과 쇼펜하우어의 ‘오로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논쟁 기술’이 동원되고 있단 얘기다.
서울 양평고속도로 사업은 1조4000억원 예산이 들어간 국가 사업이자 양평군, 하남시, 서울시 등 수많은 지역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핵심적 사회 간접자본 투자였다. 그런 사업이 유튜브 ‘더탐사’의 이른바 ‘보도’와 이를 인용한 전(前) 야당 대표의 특혜 시비로 전부 중단되고 말았다. ‘더탐사’와 전직 야당 대표의 주장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친 노선이 정권이 바뀐 후 갑자기 변했고, 이것은 대통령 부인의 선산이 있는 지역에 분기점(JC)을 설치해서 특혜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과 국토교통부에서 공개한 그 동안의 모든 자료에 잘 나타나고 있다. 대안 노선(강하IC·강상분기점안)은 갑자기 대두된 것이 아니고 약 10여년전 민자 사업으로 검토되었을 때부터 원안(양서면 분기점안)과 대안노선(강하IC·강상분기점안) 등 여러 안(案)들이 제시됐다.
2021년 4월, 원안(原案)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친 후 양평 주민들이 나들목(IC)이 없어 대다수 양평 군민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며 강하IC 설치를 요청했다. 당시 민주당 소속 정동균 양평 군수와 민주당 여주양평 지역위원장은 당정협의회를 갖고, 강하IC 설치 요청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지난해 1월 국토부 타당성 평가지침에도 대안(강상면 분기점안) 검토 계획이 거론됐고, 타당성평가 용역업체도 선정됐다.
이 모두가 문재인 정부 때 이뤄진 것이다. 이후 타당성 평가를 거쳐 이 대안이 ‘양평 주민들의 민원 사항이었던 강하IC 설치가 가능하고, 교통 수요 흡수효과도 크며 환경영향평가에도 유리하다’고 보고가 올라간 건 원희룡 장관 취임 3일 만인 5월 19일이었다. 하지만 주민 설명회 등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해야 할 절차가 남은 상황에서 ‘더탐사’와 야당의 특혜시비로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원안에서 대안으로 갑자기 변경됐다’는 낭설은 여전하다. 원 장관은 그간의 모든 진행절차 문건을 공개하고 대안 검토 배경을 모두 설명했다. 그럼에도 ‘김건희 여사의 선산(先山)이 있는 지역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막무가내식(式) 주장이 등장하는 데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분기점(JC)은 나들목(IC)과 달리 땅값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대안이 교통 흡수효과가 월등히 높으며, 양서면 분기점안(案) 보다 강상면 분기점안이 양평군민 대다수의 바람이다. 환경보호에도 유리하다. 그래도 눈과 귀를 막고 ‘무조건 특혜다’고 주장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좀 더 솔직해져 보자. 원 장관 부임 3일 만에 강상면 분기점 대안을 보고했는데, 그렇다면 인수위에서 이미 김건희 여사 선산 땅의 존재를 알고 지가(地價) 상승 혜택을 주기 위해 대안으로 바꿨다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의 발목은 그만 잡도록 하자. 데카르트와 쇼펜하우어는 도서관 책장에 묵혀 놓고 오로지 백성을 생각한 우리 세종대왕과 목민심서 정약용을 우리 앞에 모셔오자.
우리는 그동안 천안함 폭침, 광우병, 사드 괴담이라는 농간(弄奸)에 시달렸다. 거짓말이 밝혀진 후, 당시 우리가 얼마나 선동에 취약했던가에 진저리를 치며 후회도 많이 했다. 선동한 당사자들은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다시는 이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야당도 이제 그만하고 나라를 위해, 그 지역의 발전과 고질적 교통적체 해소를 위해, 고속도로 사업이 조속히 시작 될 수 있도록 협조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