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이 《병 속의 고양이》(시문학 간)다. 지난 1월 출간되었다. 제목만 봐도 ‘문제적 시집’임을 직감할 수 있다. 병 속에 고양이가 있을 수 없다. 고양이는 병 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병 속의 고양이는 죽은 존재와 마찬가지다. 병이라는 틀을 깨야 한다. 그런데 이 병이 '신세계'라면? 신세계라는 새로운 문명을 깨부셔야 한다. 문명을 거부하자는 것일까? 비극적 문명을 직시하자는 말일까.
시집 해설 제목이 <개성적인 작시술, 혹은 지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황치복 선생이 썼다. 그렇다면 시인의 ‘개성적인 작시술(作詩述)’이 무엇인지 한 발 더 다가서보자.
하늘에 나무를 심고 싶었어
둥근 눈의 식물이 자라나,
플레이아데스 신성을 향해 줄기를 뻗는 것을 그렸었지
살아 있다는 건,
전기로 피었다가 이끼로 말라가는 것
물 위에 나무를 심는다
둥둥 떠다니는 나무가 실뿌리를 내리면
따뜻한 전류가 흐르게 될까
기름기 가셔낸 하늘,
탄피 사라진 흰 모래밭
그 위를 맨발로 걷고 싶어
쇠공이 굴러가는 도시에 나무 엔진을 돌리고 싶어
푸른 잎새 속의 공포를 보여줄게
꿈이 바이러스를 뱉어낸다
심장의 제너레이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전류를
대기의 쟁반에 뿌린다
쇠붙이에 촘촘히 박히는 별의 못,
물빛에 젖는 부식토,
지구 식물의 삼바 춤과 살아 있는 악기들
이 지상에서는 언제쯤 연기가 그칠까
-김정범의 시 ‘꿈과 제너레이터’ 전문
어느 행성의 버려진 공포인가
푸르른 향기는 지워졌다
붉은 숲에 바람이 일고, 빛에 그을린 삭정이가 어지럽게 떨어진다 귀가 잘린 잿빛 고양이는 가시덤불에 몸을 숨기고, 굶주린 늑대의 꼬리에서 파란 가루가 번득인다
찢어진 눈으로 짐승을 쫓고 있는 팔 없는 인형,
하늘에서 녹슨 천사가 트럼펫을 들고
어둠을 벗기며 음관을 연다
하늘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갈라졌네
깨진 조각이 얼굴에 박히고 방열판이 녹아내렸네
허공에서 신의 말이 번쩍거렸네
램프의 빛을 따라 실험지가 흩날리고
해골 구름이 힙을 열었네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
유령마저 사라진 프리피야트,
차오르는 적막을 향해 트럼펫을 불고 있는
돌무덤 위의 녹슨 철상,
전율하는 몸의 가지를 타고 트럼펫 소리가 지구 위로 퍼진다
신생대의 박테리아가 유성에 섞여 쏟아져 내린다
-김정범의 시 ‘녹슨 천사의 트럼펫’ 일부
빙하의 물고기가 보인다
지폐보다 정밀하게 인쇄된 얼음 비닐,
파란빛이 고인 빙벽에는
이미 누군가 버린 산소가 맺혀 있다
(…)
꿀벌이 사라져버린 온실에
광기로 베어진 식물이 타오른다
수억 개의 검은 비닐이 꽂힌 빙하의 숨소리
(…)
빙하의 피가 파랗게 흘러나온다
-김정범의 시 ‘16mm, 빈티지 필름’ 일부
‘꿈과 제너레이터’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엽기적인 그림이 될 것이다. ‘하늘에 나무를 심고 싶’은 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 위에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플레이아데스의 신성’은 또 무언가. (신성[晨星]은 새벽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금성[金星] 혹은 샛별을 뜻한다.)
‘플레이아데스’ 성단(星團)은 인류 역사의 시초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지구탄생, 즉 천지창조 무렵의 하늘이 연상된다. 마지막 행 ‘이 지상에서는 언제쯤 연기가 그칠까’라는 대목을 떠올려 본다면, 무언가 어수선하고 탄생의 신비를 품고 있는 태초의 지구가 오버랩된다. 그런데 이 시의 의미, 시적 화자(話者)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언지 모호하다. (물론, 시에 무슨 의미가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시 ‘녹슨 천사의 트럼펫’도 지구 탄생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하늘에서 녹슨 천사가 트럼펫을 들고/ 어둠을 벗기며 음관을 연다// 하늘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갈라졌네’. 신이 지구를 창조했을 때의 광경이 연상된다. (‘허공에서 신의 말이 번쩍거렸네’) 그런데 화자는 천지창조를 ‘실험’이라 표현하며 ‘우리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라고 말한다. 천지창조가 잘못된 실험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유령마저 사라진 프리피야트’라는 구절에 눈길이 간다. 프리피야트는 우크라이나 북부의 도시로 체르노빌 근처에 있다. 한때 인구가 5만 명에 가까웠던 이 도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사람이 떠나가 유령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문학평론가 황치복은 작품해설에서 김정범의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지구촌의 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의식을 배경으로 지구행성의 차원에서 펼쳐진다.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무한한 시적 공간을 확장하고, 특히 현미경과 망원경의 관점을 조합함으로써 그 시적 공간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다.
이러한 비약과 도약, 혹은 정밀화와 초점화의 전략과 함께 콜라주라든가 몽타주, 그리고 포멀리즘(formalism, 형태주의) 등의 작시술을 통해서 시인은 자신이 지닌 지구 행성의 위기에 대한 페시미즘적(염세주의적) 세계관의 형상화를 위한 표현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상처와 폭력, 죽음과 파괴로 얼룩진 지구 행성의 현실을 낱낱이 폭로하고 그 묵시록적 비전을 암담한 어조로 제시한다.”
이런 김정범의 작시술은 일종의 ‘몽상의 산물’인데 꿈과 같은 비현실적 이미지가 이질적인 사물들과 함께 병치(倂置) 혹은 결합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황치복의 설명을 빌리자면, 예컨대 시 ‘꿈과 제너레이터’에서 보듯 실뿌리와 전류의 결합, 탄피와 모래밭, 그리고 나무와 엔진, 푸른 잎새와 공포 등으로 쉽사리 동질성을 찾기 어려운 사물과 이미지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서로 결합되어 있으며 병치되어 있다.
때로 말장난 같이 느껴지지만, 그리고 시를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파편화된 의미의 전개가 부자연스럽지 않다.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고뇌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시집 표제시 ‘병 속의 고양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00:00:00 밤이되자, 빨간고양이들이먹이를찾아 병속의신세계로모여든다
00:01:03 드보르작 교향곡연주가시작된다 두번째병을 여자가꺼내놓는다 코르크마개를빼자, 집나간아내의날카로운목소리가 병속에서들린다 붉은스테이크가처량하게꿈틀대고, 시계의초침에따라 고양이그림자가 위태롭게움직인다
릴리는운나쁘게화재로타버렸고 수잔은도망치다잡혔어요, 결국엔약을먹었죠 나는병속에숨어지내고있고, 머물수도돌아갈수도없어요
시스템은어디나같아요, 폐기처분될때까지유통되는소모품, 나도내일떠나야해요
00:12:56 병속매트릭스가찰랑거린다 고양이가비틀거린다 그는코르크마개를 테이블위로굴린다
탄성, 통통튀는나무세포, 솜털처럼가볍죠 수억개세포에 지구의평평한공기가담겨있어요 습기를두려워하지마세요 코르크는몰을빨아들이지않아요 만저봐요, 피부에담아있는공기
그는어미고양이처럼 여자의볼안한목댑미를 손으로잡아올린다 함께나가실거죠 여자가립스틱을꺼내 마른입술에바른다
00:29:55 문이열리고 딱딱한구듯발소리가들린다 파도가치며술잔이넘어진다 고양이무리가 테이블밑으로몸울숨긴다
오마이갓,이걸어쩌지, 오늘나오지않았어야했는데, 미안해요
여자의꼬리가흔들린다 거품부글대는술잔에 의심의눈빛이어른대고, 사각명찰이번득인다
Next, Tourist, Expired, Go there, Next
고양이의창백한눈알이 얼음주걱에실려 빈통으로떨어진다 적막한클라리넷이울리고 고양이몇마리가성자에간힌다 잘조직된병사처럼 포크와나이프가다시정렬한다 창백한여자가힘없이손을흔든다 그는지갑에서가족사진을꺼내 발기발기찢는다
00:39:23 엘리베이터가열리자, 그는비척거리며 알코올이섞인 소의사체를토한다 신세계의돈이쏟아져나온다 그는라이터를컨다 모욕감에불이붙고 손톱이길어진다 네온안에서고양이가발버둥친다 꺄아오옹! 앞발톱을열어벽을긁다가, 흰이빨을포악하게드러내며 고양이는공중으로뛰쳐나간다
뿌연스모그가깔린거리 병속의고양이, 간판불이꺼진다 차안에잠입한음악소리가 뼈대앙상한 화학공장의담벽을따라 부둣가로사라진다
00:55:34 신세계가증발한다
00:00:00 연주가다시시작된다 고양이는어디로갔을까
-김정범의 시 ‘병 속의 고양이’ 전문
문제작 ‘병 속의 고양이’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기저에 깔고 있는 산문시다. 4악장의 곡에 따라 서사적인 리듬을 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글을 붙여 쓰고 있지만 적절하게 띄어쓰기를 해서 음악성을 느낄 수 있다.
시제 혹은 시간표현의 모호성,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호소, 심리적 서술 중심, 모호함과 암시 등을 특징으로 한다.
고양이를 중심으로 일종의 부조리극이 연출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리한 극적 상황이 연출되고 낯선 세계에 던져진 이질감, 환상, 단절감이 드러난다.
이야기는 밤에 시작된다. 빨간 고양이가 병 속의 신세계로 모여든다. 곧이어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1악장(느리게-매우 빠르게)이 흐른다. 여자가 두 번째 병을 꺼내어 코르크마개를 빼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속에서 들리는데 그 목소리는 집나간 아내의 목소리다. 시계 초점에 따라 고양이 그림자가 위태롭다.
<신세계로부터>의 2악장(느리고 장중하게)과 함께 고양이의 비틀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왜 비틀거리는지 알 수 없지만 남자가 여자의 불안한 목덜미를 어미고양이의 목덜미를 잡듯 손으로 잡아 올린다.
<신세계로부터>의 3악장(매우 빠르게)이 이어지자마자 구둣발소리, 파도소리, 술잔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고양이 무리가 테이블 밑으로 숨는다. 얼마 후 고양이의 창백한 눈알이 빈통으로 떨어진다. 악기(클라리넷)가 울리고 고양이 몇 마리가 상자에 갖힌다. 그리고 힘 없이 손을 흔드는 창백한 여자가 보인다. 창백한 여자=상자에 갖힌 고양이가 등가적 존재로 보인다.
<신세계로부터>의 4악장(빠르고 정열적으로)이 시작되면서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남자가 소의 사체를 토하고, 신세계의 돈이 쏟아져 나온다는 설정이다. 돈=사체는 같은 의미망이다. 네온 안에서 고양이가 발버둥치며 앞발톱으로 벽을 긁다가 흰이빨을 드러낸 뒤 공중으로 도망친다.
도망쳤다는데 다음 문장이 '뿌연스모그가깔린거리 병속의 고양이'라고 적혀 있다. 의식의 흐름상 고양이가 병 밖으로 나왔다는 의미 같은데 모호하기만 하다.
그리고 '고양이가어디로갔을까'하고 묻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신세계 교향곡>이 흐르고 고양이가 병 속에 모이는 것으로 시작해 고양이가 뛰쳐나가면서 곡이 끝난다. 고양이는 불안한 인간 내면심리의 상징으로 보인다.
시의 앞뒤로 그림이 나오는데 앞쪽 그림은 병 속에 고양이가 있는 모습, 뒤쪽 그림은 고양이가 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다. 실제로 병 밖으로 나왔는지는 육안으로 알 수 없다. 병목현상처럼, 병의 주둥이에 고양이 목이 끼인 것 같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병 속의 고양이는 그럴 듯한 이야기 전개나 플롯이 없고 시작과 종말이 모호하며 꿈과 악몽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문득 시집 제목을 보니 마치 김성동(金聖東·1947~2022년)의 소설 《만다라》(1978)에 나오는 이 문장이 떠오른다.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다. 조그만 새 한 마리를 집어넣고 키웠지.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겠는데 그동안 커서 나오질 않는구먼…. 병을 깨트리지 않고는 도저히 꺼낼 재간이 없어. 그러나 병을 깨선 안 돼. 새를 다치게 해서두 물론 안 되구. 자,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이처럼 김정범의 시집 《병 속의 고양이》는 전체적으로 문명 비판의 시로 가득하다. 사적인 신변잡기나 리얼리즘적 사실에 기반한 역사적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모더니즘 시가 그렇듯 비논리의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드라이하고 단단하며 극적이기까지 하다. 세상을 질서정연한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부조리하고 극복할 대상으로 본다.
김정범 시인
충북 청주 출신의 김정범 시인은 2019년 한국NGO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풍향계 문학동인, 활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