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 전 대법원장 별세... 사법제도 개혁하고 사법부 독립성 확보한 인물

과거 <월간조선> 인터뷰 "사법의 자유는 언론이, 언론의 자유는 사법이 지켜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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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전 대법원장. 사진=조선DB

 


제12대 대법원장(1993~1999)을 지낸 윤관(87) 전 대법원장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고인은 193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고, 연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62년 광주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고 1986년 대법관이 됐으며, 1993년 대법원장에 취임해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6년간 사법부를 이끌었다.

대법원장 시절 사법 제도 개혁과 사법부 독립성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 불구속 재판 확대, 안기부 직원 법원출입금지, 특허-행정법원 신설 등 사법부에 큰 업적을 남겼다. 

37년 법관 생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오현 여사와 아들 윤준 광주고등법원장, 윤영신 에듀조선 대표(전 조선일보 부국장) 등 4남.

윤 전 대법원장은 생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례적으로 2001년 <월간조선>과 장시간의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인터뷰를 다시 소개한다.

 

01 2001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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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前 대법원장 특별 인터뷰

『대통령의 잦은 사면권 행사로 일부 법관들 自嘲』

정우상    imag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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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사법부가 아니므로 재판에 직접 간여할 수 없다』
●『사법의 자유는 언론이, 언론의 자유는 사법이 지켜주어야』
●『재판 가치가 있는 사건은 30% 정도… 국민이 법원을 한풀이用 장소로 이용해선 안 된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는 너무 성급. 지금도 인권침해 거의 없어』
●『시민운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입 무거운 대법원장의 이례적인 인터뷰
  우리나라 법관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 익숙하지 못하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판사 본연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이야기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려는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판사들이 너무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법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 윤관 전 대법원장
 
  8代 유태흥 前 대법원장 이래 13년 만에 임기를 다 채운 대법원장으로 기록된 尹官(윤관·65) 영산대학교 명예총장 겸 석좌교수 역시 언론과의 정식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대법원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제외하고는 언론 접촉을 피해왔던 것이다. 그런 그가 月刊朝鮮(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례적이면서도 의미 있다.
 
尹 前 원장은 대법원장 재임시절 맡았던 104번의 전원 합의체 사건 중 모두 46건에 대해 항소심 판결을 깼다. 그 중 일반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판결은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던 12·12-5·18사건과 全斗煥(전두환)-盧泰愚(노태우) 前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다. 전직 대통령 2명에게 유죄를 확정한 이 판결은 「성공한 쿠데타」, 「권력형 부정부패」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었다. 1995년 無노동 無임금 판결이나 1997년 국가보안법 기밀누설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판결도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퇴임 이후 법무법인 「화백」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영산대학교 명예총장일도 함께 보고 있다. 尹 前 원장은 재임시의 치적뿐 아니라 법관으로 말할 수 없었던 헌법재판소와의 관계, 사법개혁에 대한 그의 소신 그리고 최근에 일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와 시민단체의 운동방식 등에 대한 그의 신념을 月刊朝鮮에 담담히 털어놨다. 尹 前 원장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 행사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尹 前 원장과 月刊朝鮮 趙甲濟(조갑제) 편집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2월9일 오후 3시부터 3시간 동안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영산대학교 법무대학원 5층 명예 총장실에서 이뤄졌다.
 
 
  재임시절과 다를 바 없는 수도승 같은 생활
 
  ―대법원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신 지도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21세기의 시작이며 한국 근대 법조사가 100년을 넘긴 의미 있는 시점에서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세월이 무척 빠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법원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대법원장을 그만 두면 시골에 내려가서 유유자적하며 여생을 보낼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주위에서 만류하는 이가 많고 또 그렇게 세월을 보내기엔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아서 여러모로 생각 끝에 가까운 후배들이 견실하게 운영하는 법무법인 「화백」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경남 양산에 있는 영산대학교의 교육이념과 목표가 마음에 들어 그 학교의 명예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명예총장으로 계시는 영산대학교에는 어떤 인연으로 가시게 되었습니까.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후배법관의 모친께서 이사장으로 일하고 계신 인연도 있지만 그밖에도 이 학교의 교육이념과 교육방법이 제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21세기는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한 첨단 정보사회를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그러한 흐름을 적극 따르면서도 우리의 전통과 뿌리를 잃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학의 법률행정학부와 법무대학원은 수십명의 중견변호사를 주축으로 교수진을 확보하여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실무교육에 임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고 있는 획기적인 일이라 할 것입니다. 경영이나 호텔관련 학부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대기업의 전문경영인들을 겸임교수로 확보하여 현장에서의 살아 있는 지혜와 지식을 전수시키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대학이 우리의 전통문화, 나아가 동양문화의 유지, 전승에 관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전통과 뿌리를 지킨다는 데서 나아가 동양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하게 됨을 이 대학의 중요한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판사분들은 재판에 집중하다 보면 집에 일감을 싸가지고 오는 것은 물론이고, 등산을 하다가도 판결문의 구상이 떠오르면 갑자기 내려오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의 생활을 어떠신지요. 등산을 즐기신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在曹(재조) 때의 생활과 비슷합니다. 지금도 다른 외부사람들과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외식도 직장 외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밖에 하지 않습니다. 등산은 제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리산, 설악산 만도 수십 차례 오르내리는 등 전국의 산을 거의 올라 봤습니다. 나는 법관들에게 등산을 권유했습니다. 법관은 묵묵히 산에 오르다가도 재판에 대한 상념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근대사법 100주년, 20세기 마지막 대법원장
 
 
  ―원장님께서는 사법부가 고위법관의 재산공개, 정치판사 문제 등으로 매우 시끄러웠고 또 내부적으로도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거센 풍랑이 이는 시기에 대법원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내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할 당시에는 우리 사법부가 큰 충격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사법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냉철한 현실진단 위에서 사법의 참모습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내가 재임중이던 1995년에 우리는 근대사법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구한말 갑오경장 후에 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제정되어 사법부가 행정부로부터 독립되었는데 그로부터 100년이 된 것이죠. 이런 사법사적 의미 외에 이른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법치주의 정착을 최우선의 국정지표로 삼고 있었으므로 사법부의 독립을 위한 기반을 쌓을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 셈이었습니다』
 
  ―대법원장으로 발탁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문민정부 출범 직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모든 언론이 나를 유력한 초대국무총리 후보로 거론했고, 어느 신문은 국무총리로 확정되었다고 보도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은 당시 제가 국무총리 제의를 받은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93년 9월22일쯤이라고 기억되는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대통령께서 저녁에 초대하시니 극비리에 와달라는 전화가 집으로 왔습니다. 언뜻 대법원장으로 내정됐을 것 같은 예감도 들어서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金泳三(김영삼) 대통령을 처음 獨對(독대)하였는데 막걸리를 들면서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金대통령은 민주화투쟁 시절을 회고하면서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과 민주국가에 있어서 사법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 사법부를 잘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나는 사법부 발전을 위한 나름의 계획을 설명한 다음 사법부를 많이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대법원장 재임중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심지어 점심까지도 혼자 구내식당에서 날라 드실 정도로 생활하시어 「수도승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생활태도를 견지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내가 외부와 접촉을 되도록 피한 것은 판사임관 후부터 계속되었고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해결한 것도 오래된 버릇입니다. 이것은 제 천성과도 관계가 있는데 판사가 된 후로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입니다. 또 대법원장은 공식적인 경우 외에는 누구와 만나거나 외식할 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모처럼 외식이라도 하다보면 내가 말하기에 부적합한 담론이 오가는 바람에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어서 피곤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저는 공직생활 중 출근시간을 어기거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나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성실하게 봉사하는 것이 그 부족함을 메우는 길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 때문에 그런 생활양식을 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장님께서 그토록 오랜 공직생활을 하는 가운데 누구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나의 어머님이라고 주저 없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구한말에 名門家에서 태어나 엄격한 집안교육을 받고 자라신 덕으로 한글로 편지를 쓰시거나 바둑을 두시는 것 외에는 특별한 교육을 받으신 적은 없으셨지만 생각이 깊고 곧으셨으며 사리분별이 매우 뛰어나셨습니다.
 
  내가 광주에서의 판사시절에 너무도 생활이 어렵고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아 고민 끝에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사무실을 얻으러 다녔는데 어머님께서 어떻게 이를 아셨는지 (나중에 들은 바로는 구하려는 사무실 건물의 주인이 개업을 만류하라고 어머님께 귀띔해주었다고 함) 아침마다 자고 있는 내 머리맡에 앉으셔서 「나는 네가 훌륭한 판사로 지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설마 나라에서 판사를 굶어 죽게야 하겠느냐, 판사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거기에 약간의 여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또 공직자는 富보다는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 나는 네가 판사로서 귀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뿐 부자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변호사 개업을 만류하셨습니다』
 
 
  로스쿨 제도 도입 저지 秘話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판검사가 되고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게 되는 우리나라 법관 임용방식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변호사를 하다가 판사로 임용되는 개방형 임용방식 아닙니까. 원장께서는 미국식 로스쿨 제도 도입과 법조인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셨습니다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지요.
 
  『아시는 바와 같이 대법원장 취임 직후 정부에서 로스쿨(법학 대학원) 제도와 이를 통해 매년 2000여 명에 가까운 법조인 대량 배출을 들고 나왔습니다. 당시 법조비리 때문에 큰 몸살을 앓고 있던 터라 이에 대응할 기력마저 우리는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법원은 30여 명의 법관으로 기획단을 만들어 심층연구에 들어가는 한편 세계화 추진위원회의 무분별한 개혁작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내가 정부의 방침을 제어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은 정부의 개혁안이 너무 막연하고 사전준비가 없었음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로스쿨을 어디에 몇 개나 세울지, 교수는 어떻게 채용할 것인지, 그 많은 로스쿨 졸업생들을 정부나 기업체에 진출시킬 방안은 무엇인지 깊은 검토가 없는 상태였죠. 변호사가 많은 미국에서도 로스쿨 제도와 변호사의 대거 배출이 미국의 경쟁력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관점에서 비판이 있던 상태였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법원 행정처 간부들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면서 우리의 뜻이 반드시 관철될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한편으론 나는 법학교육과 법조인의 양성 배출은 우선 국가인력의 적정한 분배라는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변호사의 수가 많으면 그만큼 값싸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단정할 수 없음을 변호사가 많은 외국의 예에서 쉽게 알 수 있으며 변호사의 수가 많으면 저질의 법률봉사를 하게 되고 무리하게 사건을 만들게 되어 권리보호에도 소홀해질 뿐 아니라 사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번 이 문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충분한 연구와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의견을 결집하는 등 신중하게 다루어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당초에 정부는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늘려 그 중 적어도 30% 이상을 법조 이외의 분야, 즉 행정부나 기업체 등에 자리를 만들어 진출시키겠다고 하였지만, 사법부는 그 추이를 지켜보면서 연차적으로 증원하도록 고집하여 지금과 같이 증원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법시험 합격자가 법조 이외의 분야에 진출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로 극히 적습니다. 결국 합격자 중 법원, 검찰로 가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변호사를 개업하여 매년 변호사의 수는 증가하고 있고 지금의 형편으로는 개업변호사의 절반 가까이가 사무실 운영도 제대로 못하고 심지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당초 정부의 말대로 법과대학을 없애고 영미식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여 그 교육방식을 따르는 한 현재의 법과대학 교수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래서 대다수의 법과교수들이 로스쿨 제도의 도입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법조계가 우리나라의 광복과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정의를 위해 공헌한 역사적 사실에는 눈감은 채 부분적인 비리 등에 빗대어 법조전체를 개혁 또는 청산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면서 사법 내지 법조제도의 근간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할 것입니다』
 
 
  특허 법원·행정 법원 신설의 의미
 
 
  ―대법원장 재임중의 사법제도개혁 중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지요.
 
  『사법제도개혁은 내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여 그 구상을 밝힌 후 9개월 만에 입법작업까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법제도개혁의 틀이 짜여진 것을 보고 너무 졸속처리한 것이 아닌가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법제도의 개혁을 위한 사법부의 노력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9년에 대법원은 사법정책실을 두고 사법제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고 내가 대법원장에 취임할 당시에는 이미 10권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보고서가 나온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법제도발전위원회가 구성될 때는 국민의 시각에서 과연 어떤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옳은가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구체화된 단계에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사법제도 개혁은 내가 깃발을 들었을 뿐 실제로는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다듬어 온 결실입니다. 다행히 내가 오래 전부터 이 분야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그 연구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의 구상을 정리해온 것도 이 개혁작업을 추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법제도개혁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엇보다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위원들의 헌신적 노력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안으로는 최종영 행정처장(지금의 대법원장), 이용훈 행정처차장(그 뒤 대법관 역임)을 중심으로 한 행정처의 간부, 심의관 여러분의 활동 또한 실로 눈부셨으며 권성 수석연구실장(지금의 헌법재판관)을 비롯한 연구실의 법관, 직원 여러분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사법제도개혁 내용 중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몇가지 있던데, 아직도 일반국민들은 이에 관하여 깊은 이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선 법원조직 중 특허법원, 행정법원, 시·군법원이 새로 설립되었는데 이는 법원의 전문화와 국민에 대한 사법봉사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분쟁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는 전문법원의 확대와 법관의 전문화가 필수적입니다. 순수한 특허법원으로는 독일에 이어 우리가 세계에서 두 번째인데 기술심리관을 두어 법률과 기술의 조화를 이룬 것은 매우 특이한 제도로 평가됩니다.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재판하는 것은 우리의 국제적 신인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이 분야의 분쟁에 대한 사실심을 특허청의 심사에서 법원의 재판으로 옮김에 따라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도 더욱 두텁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행정법원을 설립하여 행정작용의 기준을 설정해 주고 불법, 부당한 행정처분으로부터 국민의 피해를 구제해줌과 더불어 지방법원에서 행정사건의 제1심을 맡도록 하여 행정사건을 3심 제도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도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시·군법원의 설립은 정말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명칭이나 업무범위는 다소 다르더라도 간이, 소액법원이 없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국민이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법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은 국민에 대한 사법적 봉사의 측면에서도 매우 긴요한 일이지만 나는 국민들로 하여금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자기를 구해줄 법관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그 지역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 법의 생활화에 튼튼한 밑거름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한 해에 구리시 인구만큼 구속되는 나라
 
 
  ―재임 중에 영장실질심사제도를 도입한 것은 피의자의 인권보장에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법관에 의한 영장주의, 적법절차주의, 무죄추정의원칙, 불구속재판의원칙 등을 형사사법의 지도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인신구속이 너무 지나쳐 다른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구속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1년에 14∼15만명, 그러니까 구리시의 인구만큼이 한 해에 구속되는 셈입니다. 더구나 피해회복의 수단, 보복감정의 충족 또는 수사편의를 위해 사람을 함부로 구속하여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명국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신구속제도를 개선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영장실질심사제도는 체포적부심, 기소前보석제도 등과 함께 구속 피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획기적인 장치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인권보장장치는 사법제도발전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대법원이 신중한 검토 끝에 마련하였고 정부(법무부)가 제안하여 국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따라서 이는 사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입법부가 뜻을 모아 일구어낸 인권보장의 금자탑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시행과정에서 다소 우여곡절이 있기는 하였으나 지금의 모습으로라도 순조롭게 정착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 후 수사기관에서 고문도 없어지고 피의자신문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사편의를 위하여 구속한다는 비난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영장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된 무렵 유엔 인권판무관이 우리나라에 온 일이 있었는데 일부러 나를 찾아와 대법원의 인권보장에 대한 갖가지 노력에 최대의 경의를 표했으며 우리 정부도 국제인권회의 때마다 영장실질심사제도를 비롯한 사법제도개혁을 인권보장의 표상으로 내세울 정도였습니다』
 
 
  법관은 올바른 법정관행을 정립해야
 
 
  ―아직도 우리나라 판사들은 법정에서 매우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여 국민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유난히 법관들에게 바람직한 법적관행을 강조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법관의 법정관행은 재판의 신뢰와 직결됩니다. 재판은 그 과정에서 설득력을 잃게 되면 그 결과도 의심받게 됩니다. 내가 지방법원판사로 근무할 때 우연히 법정관행에 관한 글을 읽은 일이 있었는데 그 글 가운데 영국 어느 판사의 법정진행이 얼마나 예의 바르고 의연하고 설득력이 있는지 그 판사의 재판진행을 본 당사자는 비록 그 재판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저런 판사가 내린 결론이 오죽하겠느냐고 믿고 그대로 승복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후 판사마다 다르게 진행되는 법정관행을 어떻게 표준화하여 올바른 법정관행을 지키게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방법원장 때에는 검찰과 변협의 의견을 듣고 법관회의를 통하여 이에 관한 지침서를 만들어 시행한 결과,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바도 있습니다.
 
  또 유도신문일변도의 신문방법을 법과 규칙에 따라 교호신문절차로 바꿨고, 모든 사건을 법정에서 녹음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법관들에게는 그 녹음한 테이프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가족들에게 가져가 내가 법정에서 이렇게 재판을 진행했다면서 이것을 들려주게 했지요 그랬더니 법관들의 법정관행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심지어 어떤 법관은 자기가 이런 식으로 재판을 진행한 줄을 몰랐다면서 무척 창피하다고까지 말하더군요』
 
  ―우리나라 법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가 자칭 시민단체라고 하는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입니다. 지난 4·13 총선 당시 낙천·낙선 운동도 한 예일 것입니다. 대통령도 이들을 비호하는 발언을 하고 검찰과 경찰도 단속을 못하고, 적법한 선관위와 불법적인 시민단체가 충돌하면 언론도 兩非論(양비론)을 펼치는 분위기였습니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유지되고 발전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요체인 공명선거는 바로 준법선거를 의미합니다. 법률이 시민단체로 하여금 낙천, 낙선운동을 못하게 하거나 법이 금지한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면 시민단체는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될 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을 당선시키지 말아야 하겠다는 목적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 하더라도 법이 금지하고 있는 방법으로 단체활동을 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시민단체의 위와 같은 행위에 대하여 경고하고 단속을 펼친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있고 만약 선거관리위원회가 시민단체의 위법을 묵인했다면 준법선거는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말 것입니다.
 
  나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있을 때 대통령선거를 관리한 일이 있었는데 경실련이 우리와 제휴하자고 제의해서 흔쾌히 받아들인 일이 있었습니다. 경실련은 엄정하게 중립을 지키면서 공명선거 캠페인, 정책대결, 지역감정 해소 등에 앞장서 주었으며 그 여파로 약 12개에 달하는 친여, 친야의 각종단체들이 선거에 중립을 지켜주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국가보안법의 개폐는 서두르면 안 된다』
 
 
  ―국가보안법의 개폐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법률의 폐지는 그 법률이 추구하는 목적이 달성되어 법률적 규제가 필요없게 되었거나, 그 목적을 포기해도 무방한 사회환경이 이루어졌을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보위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므로 그 법을 폐지하려면 무엇보다 폐지할 만한 사정의 변동이 있거나 폐지할 여건이 조성되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여야 합니다. 일부 조문의 개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이념과 체제를 달리한 채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의 개폐 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날에는 국가보안법이 정권의 유지와 인권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염려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남북頂上간의 6·15 선언으로 남북의 화해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下에서 국가보안법을 개폐하려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北은 적화통일을, 南은 흡수통일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면 그것은 쌍방의 체제를 존중하고 각기 그 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그 위험이 상존하는 한 이를 제거할 법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일찍이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헌법상의 領土高權(영토고권)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합헌임을 선언하고 그러면서도 탄력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로 국가보안법을 해석하고 있고, 정부도 시의적절하게 그 법을 운용하고 있으므로 이 법으로 인한 폐해는 거의 없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남북관계는 매우 가변적인 것이므로 이 법을 폐지한 뒤에 일어날 수 있는 사회혼란, 국가안위 등에 대하여도 깊은 고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헌법 재판소는 사법부가 아니므로 재판에 간여할 수 없다』
 
 
  ―원장께서는 재임 중 헌법재판소와의 불편한 관계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한 견해를 밝혀주시고 해결방안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몇 가지 사안에서 견해를 달리하여 서먹한 관계에 있을 때 헌법재판소가 변호사, 헌법학자, 언론인 등 각계의 인사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소집하고 유인물을 통하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와의 관계를 굳이 갈등이라고 표현을 하면서까지 그 해결방안을 모색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란 일이 있습니다. 국가기관끼리 또는 헌법기관끼리 구체적인 사안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인데 이를 감정싸움이나 갈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두 기관이나 국민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우리 대법원이 그와 같은 갈등의 요인을 제공했는가를 심각하게 반추해 보았습니다만 어떻든 兩기관의 견해가 오랫동안 대립되어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제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름대로의 견해를 간략하게 밝혀볼까 합니다. 헌법상, 헌법재판소는 사법부가 아니며 따라서 사법부의 상위기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법관의 신분도 분명히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정계, 학계, 언론계에서조차 이를 간과하고 헌법재판소를 사법부로, 헌법재판관을 법관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와같이 헌법재판소가 사법부의 상위기관이 아닌 바에야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독립을 어떤 이유나 명분으로라도 침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법부의 본질은 말할 것도 없이 법령의 해석권 다시 말하면 구체적 사건에서 「이것이 법이다」라고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데 있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인 법령해석권은 아무도 간섭하거나 제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법조문을 이렇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식의 변형결정은 법원의 법령해석권을 근거없이 제약하는 전형적인 예로서 실질적으로 사법권의 본질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나름대로 그 법률을 해석하는 데 그치는 것이지 그 법률해석을 법원으로 하여금 그대로 따르도록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변형결정은 그 결정에 의하여 당해 법조문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에 불구하고 그 법조문은 의연히 살아 있는 것이므로 이를 가리켜 위헌결정이라고 할 수 없고 따라서 변형결정의 형식으로는 법원을 기속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과 업무한계는 헌법과 법원조직법, 헌법재판소법에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兩 기관의 관계는 나라마다 다를 수 있는데, 적어도 우리나라의 관계법률은 나름대로 그 한계를 분명히 그어 놓고 있고 또 다른 해석을 할 여지가 없도록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과연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을 함부로 취소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법률상의 근거를 알지 못합니다. 설사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반하는 재판을 하였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이를 이유로 그 재판을 취소할 법률상의 근거는 없는 것입니다. 법원의 재판을 법원이 아닌 기관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취소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하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마저 해치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요사이 헌법재판소가 변형결정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입니다. 부디 새 진용을 갖춘 兩 기관이 이 문제를 하루빨리 정리하여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원장께서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에 사법부의 수장으로 일하셨는데 대통령의 사법觀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경험하고 느낀 대로 이 기회에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지금도 두 분 모두 사법부의 중요성과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매우 컸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선 金泳三 대통령이 나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기 전에 청와대에 초청한 일이 있었는데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솔직히 과거 야당시절에 민주화투쟁을 하면서 사법부에 섭섭한 일도 있었고 「사법부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한 일도 있었다고 회고하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의 역할을 여러 번 강조하였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탓할 뿐 법관들을 원망하지는 않지만 정말 지금부터라도 사법부가 새롭게 태어나 진정으로 국민의 편에서 일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그 방대한 사법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왜 이렇게 훌륭한 제도가 이제야 마련되었느냐고 하면서 전폭적으로 협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쿨 제도의 도입과 법조인구의 증가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내가 너댓 차례나 대통령을 만나 그 장단점을 이야기하고 준비없이 졸속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국정의 혼란만 초래한다고 말했더니 나중에는 대법원장과 법조계가 반대하면 절대 서두르지 않겠다고 확언까지 해 주었습니다.
 
  또 그 무렵 대법원 산하의 사법연수원을 교육부 또는 법무부로 이관하기로 대통령이 결심하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이른 새벽에 급히 대통령께 전화를 걸어 「군사정부에서도 대법원에 둔 사법연수원을 문민정부가 행정부로 가져가고 그나마 지금 世推委와 사법부 간에 법조개혁에 관하여 한참 의논중인데 상대방의 기관을 가져가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면 사법부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절대로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런 검토를 한 일은 있으나 지금 당장 국무총리에게 말하여 없던 일로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판과 관련하여 정보기관에서 법관을 비방한 일이 있었는데 그 정보책임자가 나에게도 직접 사과를 했지만 대통령도 그 책임자를 단호하게 꾸짖었다고 들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했을 때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습니다. 한마디로 金大中 대통령은 5·18 광주사태 때문에 내란음모죄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일이 있었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반대로 그 당시의 전직 대통령 두분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5·18 민주화운동 특례법이 제정됨에 따라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바 있어서 어떻게 보면 대법원이 비록 재판부의 구성은 달랐더라도 같은 사건을 두고 엇갈린 판결을 내린 결과가 되었고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대통령까지 되었기 때문에 사법부를 바라보는 감회는 남달랐을 것입니다. 나는 서두에 金대통령에게 이 사건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역정에서 수많은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게 된 일들을 회고하면서 그 때문에 대법원에 서운한 감정이 있더라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고 부디 잊어주셨으면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金대통령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 사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진정으로 법관은 억울한 사람과 국민의 편에 서서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법부가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해 더욱 정진해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나는 내친 김에 사법부의 독립은 대통령이 지켜주는 것이라는 것, 대통령이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고 사법부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창달을 위한 대통령의 업적 중 가장 빛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더욱 사법부를 이해하고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나는 특히 요즈음에 거론되고 있는 법학교육과 법조인의 양성, 법조인 수 등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법조는 국가사회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법치주의의 실현에 큰 축을 이루는 것이므로 법조 전반에 관한 개혁 과제는 비교법적인 연구와 우리 법조문화의 이해를 토대로 광범위한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신중히 결정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대통령은 이 부분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특히 망명중 미국에서 체류했던 생활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법조풍토가 다른 미국의 제도를 우리나라에 막바로 접목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뒤따른다는 견해도 밝혔습니다.
 
  나는 법치주의를 실현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국회에서의 올바른 법률의 제정, 행정부에서의 올바른 법의 집행, 그리고 사법부에서의 올바른 법의 적용이 그 요체임을 강조하면서 국회의원이 법률안의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에 수십개의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국민을 도외시한 행정편의 위주의 법집행이 자행되는 현실과 법관의 권위가 무너지고 판결을 경시하는 현실에 대하여 우려했고 대통령도 여러 사례를 들면서 전적으로 공감하였습니다.
 
  金대통령은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함께 차를 나눌 때는 영국의 예를 들면서 영국을 부흥하게 한 것은 종교인과 언론인 그리고 법관이었음을 상기시키고 법관이야말로 이 시대의 정의와 양심을 바로 세우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대통령은 법조의 부조리, 전관예우 등에 대하여도 많이 우려하였는데 그러면서도 비등한 여론에 의하여 사법부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나는 전관예우 문제는 전관이 없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전관을 없애려면 법관의 처우를 개선하고 법관이 자기가 하는 일에 긍지를 갖도록 하여 정년 때까지 법관직을 고수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대법원장을 퇴임하더라도 법관의 처우는 대폭 개선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대통령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고 경제가 살아나면 법관의 처우에 대하여 특단의 고려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였습니다. 나는 퇴임하면서도 사법부에 대한 협조를 거듭 부탁하면서 사법부의 현안이나 알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주 대법원장을 만나 의견을 듣는 것이 올바른 국가경영을 위해서도 필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나는 金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심오한 철학과 사법부에 대한 정연한 이해로 미루어 우리 사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독립이 보장되고 발전의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로 사법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고유의 권한인 사면권 행사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여 재임시절에는 끝내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것은 대통령이 법관의 재판에 간섭할 수 없듯이 사법부로서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존중하여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점에 관하여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권력분립에 대한 예외이고 그것은 행정권에 의하여 사법권의 효력을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가 있다 할 것입니다. 또 사면권 행사는 국민적 합의에 충실하여야 정당성이 확보될 것입니다. 나는 대법원장 시절에 歷代대통령의 빈번한 사면권에 대하여 일부 법관들 사이에 이렇게 되려면 무엇 때문에 재판을 하느냐, 누구는 인심 쓸 줄 몰라서 엄벌했느냐는 등의 자조 섞인 말들이 오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면권이 정치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부득이 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 위축되거나 소홀해지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며 그럴수록 법관은 사법권의 행사에 의연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번거로운 정치적, 사회적 변혁과 역사의 굴절 때문에 파생된 불화와 불평들을 이겨내고자 어쩔 수 없이 빈번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사면권을 행사한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때문에 일어나는 법경시, 재판에 대한 불신, 법치주의에 대한 회의 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이제는 깊이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광복 이후 관행처럼 계속해왔던 두 가지 일이 원장 재임 중에 사라졌습니다. 그 하나는 대법원장실을 비롯한 사법부의 주요 사무실에 걸어두었던 현직 대통령의 사진을 떼어낸 일과 대통령의 해외출입 때 대법원장이 공항에 나가서 환송, 영접하는 일이 없어진 것이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사법부 내외에서 꾸준히 논란이 되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는 대법원장 취임 후 곧바로 이 문제를 행정처에서 검토해 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정처 심의관들을 몇 가지 현안을 파악하고자 다른 나라 사법부를 순방하도록 한 일이 있었는데 그 편에 이 문제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외국에는 그런 예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문민정부이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견을 종합하여 청와대에 전달했더니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여러모로 검토 끝에 이 두 가지 문제에 관하여 우리의 의견을 수용해 주어 쉽게 결말이 났습니다. 사법부의 위상을 위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의 독립은 언론이, 언론의 독립은 사법이 보장』
 
 
  ―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여론, 이익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재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판사가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습니까.
 
  『언론의 영향을 안 받을 수도 없습니다. 개별 사건에서 판사도 영향을 받고, 대법원장도 받습니다. 로스쿨 도입 논의 때나 영장실질심사 도입,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때 언론이 법원에 미친 영향도 매우 컸습니다
 
  사법이 독립을 지키고, 언론이 자유를 누릴 때 민주주의는 발전합니다. 그리고 사법의 독립은 언론이, 언론의 자유는 사법이, 마지막으로 지켜줍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을 위해 위 두 분야의 역할과 기능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언론과 사법은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당당하게 正道를 걸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는 대법원장에 취임하여 곧바로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언론인 여러분에게 우리 사법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언론이 사법행정에 관한 분야를 비판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재판에 관한 보도, 논평은 신중을 기해 줄 것도 부탁했습니다.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이 함부로 예단하거나 추측함으로 말미암아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나의 바람은 처음에는 그런대로 이루어지는 듯했습니다. 사법부가 나름대로 사법제도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언론은 나와 우리 사법부에 기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론은 사법부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로스쿨제도의 도입, 사법시험 합격자의 수를 늘리는 문제로 정부와 사법부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고 있을때 언론은 별다른 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사법부를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였습니다.
 
  로스쿨제도를 무작정 도입하여야만 하는가, 사법시험합격자 수는 왜 늘려야 하며 그 적정수는 얼마인가 라는 사법부의 계속된 질문에 논리적으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로스쿨제도를 취재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의 기자가 미국에 가서 심층취재한 후 그것이 우리 풍토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도 이를 기사화하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영장실질심사제도,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지지하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몇 개의 사건을 문제삼아 그것이 잘못되었다느니 변호사와 결탁했다느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우리는 영장이 기각된 사건을 자체분석하고 그 결정에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에 15만명에게 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설사 10여 건의 영장기각에 문제가 있다 하여 어떻게 이를 「밥그릇싸움」, 「법조인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할 수 있었는지 정말 알 수 없는 의문에 휩싸였습니다.
 
  거기에 의정부와 대전에서 법조비리가 터졌을 때는 구체적인 내용은 뒤로한 채 마치 사법부 전체가 부정의 온상인 양 한 달 이상이나 연일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 때문에 명예가 더럽혀진 일부 유능한 법관들은 한을 품고 사법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와 같은 상황이 길어지자 시민운동을 빌미로 각계에서 사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법조계를 특권집단으로 몰아붙이면서 사법부의 무력화, 법조인의 폄하를 꾀하는 실로 개탄스런 움직임이 일게 된 것입니다.
 
  나는 각 언론사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한편 그 때문에 야기될 언론과 사법의 대립을 우려했습니다. 나는 법관들에게 여론으로부터 독립을 강조하면서 저간의 언론의 태도는 사법부를 아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고 의연하게 재판에 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세계 선진국에 유학하고 있는 수십명의 법관에게 그 나라의 언론이 사법부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사법관계기사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그에 관한 내용을 신문과 함께 보내주도록 하였습니다.
 
  내가 퇴임할 무렵까지 약 20여 권의 방대한 기사모음이 나왔고 이를 공보관실에 비치하여 기자들에게 참고토록 했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사법부, 재판, 법조계에 대하여 우리나라와 같이 함부로 다루는 외국의 신문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법관들의 언론에 대한 실망을 전하면서 사법과 언론의 좋지 않은 감정이 언론관계 재판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다른 기관과 시민들까지 사법부가 언론으로부터 이렇게 당할 때 다른 기관이나 일반시민은 어떠하겠는가, 사법부만이 잘못된 언론을 바로 잡고 언론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을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사법부를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언론으로부터의 피해를 보상받고자 하는 재판이 줄을 이었고 언론사에게 전례가 없는 무거운 책임을 묻는 재판이 잇달았습니다. 다행히 내가 대법원장을 퇴임할 무렵에는 언론도 자제하는 분위기였고 그런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언론에 의해 사법부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해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수십년 전의 일이지만 일본의 어느 최고재판소 장관이 재판에 대한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실망한 나머지 오죽했으면 법관들에게 신문을 보지 말라고 했다는 그말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사법이 언론의 횡포에 대하여 단호히 책임을 물으면서 언론으로 하여금 진정한 자유를 누리도록 지켜준 역사를 되뇌어 보았습니다』
 
 
  의정부·대전 법조 비리사건 뒷 이야기
 
 
  ―재임중에 고민하셨던 의정부, 대전법조비리 사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정말 이 사건은 우리 사법부와 법조계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너무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의정부와 대전에서 법관이 특정변호사로부터 명절 때의 떡값, 회식비, 금전대차, 해외여행경비 등의 명목으로 다소간의 금품을 받거나 향응을 받은 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사법부는 커다란 불신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 정도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으나 잘못된 오랜 관행을 이 사건으로 문제된 법관들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빗발치는 여론으로부터 어떻게 사법부의 혼란을 수습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명확한 해답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 크게 고민하였습니다.
 
  사실 위와 같은 부조리는 광복 후부터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이 법조 내부에 이어져온 관행이었고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도 판사가 변호사와 술을 마셨다고 하면 「잘했다. 친교가 있는 선후배 법조인끼리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푸는 거야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나, 법관이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오히려 문제지」하고 말씀하시면서 관대히 이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든 이 사건으로 많은 법관이 스스로 또는 징계를 받고 법원을 떠난 것에 대하여는 지금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징계 등 그 일을 담당했던 대법관들과 행정처 간부 그리고 인사담당관들의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던 것도 이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대법원장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고위 법관이 대전에서 근무할 때 고등학교 동문변호사가 그 지역 동문회 후원금으로 맡긴 얼마 되지 않은 돈을 최고참 선배의 입장에서 받아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큰 일인 양 신문에 대서특필되자 법원에 누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주위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친 채 법관직을 사임하면서 법관에게는 지갑도 칼도 없다는 말을 남기고 많은 선·후배 법관들의 아쉬움 속에 물러났지만 그만한 일로 장래의 사법부를 이끌어 갈 훌륭한 재목을 잃은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 때문에 적어도 두어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런 떡값 등 때문에 사건 자체를 그르친 법관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이 시대에 잘못된 관행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관행이 사건의 대가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부 보도된 것과는 달리 의정부에서 문제가 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은 그렇지 않은 다른 변호사보다도 성공률이 훨씬 낮았다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관예우에 대한 논란은 법조계에 너무도 큰 파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전관예우라는 말이 어떤 뜻으로 쓰여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만일 판사 또는 검사가 그 직을 거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변호사의 수임사건을 특별히 유리하게 취급해 준다는 뜻이라면 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전관 변호사가 맡은 사건이 결과적으로 다른 변호사보다 유리한 취급을 받았다 하여 이를 전관예우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법조비리로 한참 시끄러울 때 언론이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비교분석하면서 가령 구속영장, 적부심사, 보석, 판결 등에서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이 훨씬 유리하게 처리된 것을 들어 집단이기주의, 전관예우의 극치라고 논평한 기사를 많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상식 밖의 잘못된 시각인 것입니다.
 
  법관의 경우를 두고 말한다면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 더욱이 현직을 그만 둔 지 오래되지 않은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이 보다 유리하게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전문직인 변호사 그리고 재판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아는 최근에 개업한 변호사가 그 사건을 더욱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그 직업의 속성상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개업한 변호사는 재판부의 신뢰를 얻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사건은 아예 맡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맡은 사건일수록 성공률이 높다고 보야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이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소외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국선변호인을 더욱 확대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국선변호인에게 私選변호사만큼의 기대를 갖게 하는 것도 무리라 할 것입니다.
 
  법관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전관이라고 하여 달리 취급하는 것도 아닌데, 당사자는 전관이 현직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사건에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임하게 되는 것이고 그와 같은 선임관계는 시장원리에도 맞는다 할 것입니다. 자기 사건을 자기뜻대로 해결해 줄 변호사를 찾아 선임하는 것은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덮어두고 무분별하게 유전무죄, 무전유죄하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판결 가치 있는 재판은 30% 정도』
 
 
  ―법관의 이직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법관의 사기앙양책에 대해 생각하신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법관의 이직현상이 너무 두드러져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까닭을 첫째 과중한 업무, 둘째 낮은 처우, 셋째 권위의 추락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법관의 업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과중합니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법관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대법원장 재임중 가끔 서초동 법원주변을 지날 때마다 밤늦게 법원청사의 방마다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속에서 일하는 법관과 직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법관의 증원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또 법관이 증원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 잠정적인 해결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중견법관들에게 도대체 가지고 있는 사건 중 판결로 답해줄 만한 사건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면 대충 30% 내외에 불과하다고 대답합니다. 그 나머지는 되지도 않는 소송을 하거나 감정싸움이나 한풀이를 위해 또는 재판부를 속이려고 위증을 일삼는 사건 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판을 이용하는 국민의식이 올바르게 바뀌지 않는 한 사건의 증가세는 막을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분쟁이 있으면 동네 어른께 하소연하여 그 어른의 판단에 무조건 복종하였고 송사를 하면 백년의 원수로 생각하여 혼인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걸핏하면 재판으로 승패를 보려고 하고 자기는 제대로 주장을 펴거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그 소송에서 패하면 마치 재판부가 상대방과 결탁한 것으로 오해하고 재판을 불신하는 잘못된 풍토가 만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법관의 보수는 대폭 올려주어야 합니다. 법관의 보수는 그 직업의 속성상 그에 알맞은 처우를 해줘야 하고 또 법관의 처우가 다른 공무원보다 높은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관의 경우 초임 때는 다른 공무원이나 기업체보다 그 보수가 많은 것 같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우리 대법관의 약 8배를 받고 있고 법관도 15∼17년쯤 되면 내각의 장관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수준을 받게 되며 그때쯤이면 변호사의 평균수입을 웃돌게 됩니다. 거기에 법관 모두에게 아파트를 제공하고 관용차로 출퇴근을 시켜줄 정도입니다. 그래서 법관들은 평생을 천직으로 알고 정년까지 근무하게 되고 중도에 그만 두고 변호사를 개업하면 무언가 잘못이 있어서 법원을 떠난 것으로 알고 사건도 맡기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법관은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독립돼야』
 
 
  ―지금의 대법원이나 후배 대법관들과 판사들에게 특별히 하시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사법부는 높은 인품과 경륜을 겸비한 최종영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훌륭한 법관과 직원들이 함께 뭉쳐 튼튼한 사법부를 이룩하는 데 헌신하고 있으므로 내가 굳이 당부할 만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법원이 발전하는 사회현상을 따라잡지 못하면 퇴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점만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국민을 위해 효율적으로 봉사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쉴 새 없이 찾아서 움직여 줄 때 국민은 사법이 진정으로 자기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법관은 구체적 사건을 처리하고 해결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측면을 가지지만 그 사안의 해석에 필요한 법원칙을 탐색하고 확립시킨다는 점에서는 학문적이며 법의 이념을 체득하고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철학자로서의 면모도 갖습니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관의 독립요소 중 헌법과 법률은 그런대로 공부만 하면 쉽게 익힐 수 있어도 양심만은 공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법관의 내부적 독립을 언제나 강조해 왔습니다. 법관은 자기만이 갖고 있는 주관적 사상이나 인생관, 세계관, 법률감정, 신앙, 교육 등 자기를 형성하는 모든 요인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냉철한 비판자가 되어야 합니다.
 
  법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주관과 아집에 사로잡혀 오만해질 때는 어김없이 외부로부터의 불신과 간섭을 자초하게 되고 그것이 곧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관은 독립하여 심판하는 속성 때문에 매우 외로운 직업임에 틀림없습니다. 판단작용은 어느 한쪽을 이기고 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결론을 내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책임감과 번민이 뒤따르게 됩니다.
 
  생활이 다소 어렵고 일이 힘들다고 하여 법관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은 국민과 사회를 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질수록 자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일에 매달리는 법관을 국민은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법부를 지켜주는 것이 民主지키는 일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국민은 진정으로 사법부를 지켜주고 아껴주어야 합니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위해 그토록 싸워온 것도 바로 독립된 사법부, 튼튼한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당사자의 감정싸움이나, 재판지연을 위해 이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소송남발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소모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때문에 사회의 평화가 깨지고 非생산적인 일에 국력을 소비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분쟁을 미리 예방하고 부득이 한 경우에 한하여 정당한 방법으로 재판에 호소하는 풍토가 하루 빨리 자리잡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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