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변에 의해 축출되거나 암살된 러시아/소련 지도자들. 왼쪽부터 표트르3세, 파벨1세, 알렉산데르2세, 흐루쇼프.
린지 그레이엄 미국 연방상원의원은 지난 3월 3일 폭스뉴스에 출연,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러시아에서 누군가가 나서 이 남자를 죽여야 한다”면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선동했다. 그는 “러시아에 브루투스가 있느냐”“더 성공적인 슈타우펜베르크 대령(1944년 7월 히틀러를 폭살하려다가 실패한 독일군 장교)이 러시아 군부에 있는가”라고 물으면서“푸틴 대통령을 암살하게 된다면 당신은 조국과 세계를 위해 훌륭한 봉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 사람들밖에 없다”라며 “러시아 내부의 ‘반란’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결책”이라는 글을 올렸다.
당연히 러시아에서는 발끈했다. 세르게이 라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존 설리번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에게 전달한 항의서한을 통해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그레이엄 의원의 요구는 테러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역사를 보면 최고 지도자를 노린 각종 쿠데타, 암살 등이 적지 않았다.
1762년 6월, 러시아의 황실 근위대는 황제(차르) 표트르3세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표트르3세가 즉위한 지 불과 6개월 후였다. 당시 러시아는 프로이센과 전쟁 중이었는데, 표트르3세는 친(親)프로이센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나 군부의 반발을 사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생 수준의 지능 수준으로 이미 불신을 사고 있었다. 표트르3세는 황급히 해군기지로 도망쳤지만 해군 역시 그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귀족들이 찾아와 표트르3세에게 퇴위를 요구하자, 그는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황비가 예카테리나 2세로 즉위했다. 얼마 후 표트르 3세는 급사했다. 독살 당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근위대의 반란을 사주한 장본인은 예카테리나 2세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1796년 예카테리나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파벨1세는 즉위 4년 여 만인 1801년 4월 암살당했다. 그가 실력은 없으면서 전제군주의 면모를 보이면서 친독일적 행보를 취하는데 대해 불만을 품은 귀족들의 소행이었다. 그의 장남으로 그의 뒤를 이은 알렉산데르 1세와 차남 콘스탄틴 대공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1825년 알렉산데르1세가 급사한 후 그의 동생 니콜라이가 니콜라이 1세로 즉위했다. 그가 즉위하던 날, 프랑스혁명 이후 서구에 퍼진 자유주의 사조의 세례를 받은 일부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데카브리스트의 난’이다. 니콜라이 1세는 포병까지 동원해 반란을 진압했다. 즉위식날 그런 봉변을 겪은 니콜라이1세는 재위 기간 내내 극단적인 반동정치를 펼쳤다.
니콜라이 1세의 뒤를 이은 알렉산데르2세는 농노해방을 비롯해 국정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했으나 1881년 3월 ‘인민의 의지’ 당원들의 폭탄테러로 사망했다.
‘인민의 의지’ 당원들은 알렉산데르 2세의 아들 알렉산데르 3세의 암살도 획책했다. 1887년 알렉산데르 3세의 암살 모의범들이 체포되어 처형됐는데, 이들 가운데 알렉산데르 울리야노프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의 동생이 바로 30여년 뒤 볼셰비키혁명을 성공시킨 블라디미르 레닌이다.
알렉산데르 3세의 아들 니콜라이2세도 암살 위기를 넘겼다. 그는 황태자 시절이던 1891년 5월 일본 방문 중 교토 인근 오쓰에서 쓰다 산조라는 현직 경찰관이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퇴위, 이듬해 7월 볼셰비키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볼셰비키혁명 후 집권한 레닌이나 스탈린 등을 겨냥한 암살 미수 사건들은 여럿 있었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진 것이 없다.
소련 시절 정치적 암살 사건 가운데 유명한 것이 1934년 12월의 키로프 암살 사건이다. 소련공산당 레닌그라드당 서기로 인기가 높았고 스탈린과도 가까웠던 세르게이 키로프가 집무실에서 암살당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스탈린의 대숙청이 본격화되었다. 그를 죽인 것은 숙청극의 빌미를 만들려고 했던 스탈린과 비밀경찰(NKVD)라는 것이 통설이다.
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의 권력자가 됐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1964년 10월 공산당 내부의 궁정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당 제2서기 브레즈네프, 제1부총리 셸레핀, KGB 총책 세미차스트니 등이 쿠바 위기 대응 실패, 경제 실책 등을 이유로 작당해서 그에게 퇴진을 요구했고, 흐루쇼프는 이를 수용했다.
1991년 8월에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에 반발한 수구파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국방장관, KGB 의장, 부통령 등이 가담한 쿠데타였다. 쿠데타 세력은 모스크바에 군 병력을 진주시키고 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를 겁박해서 권력을 탈취하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대통령) 보리스 옐친 등이 앞장서서 시민들의 저항을 이끌자, 쿠데타는 사흘 만에 좌절되고 말았다. 그해 12월 소련은 붕괴했다.
이러한 역사를 보면 18세기 말 이래 러시아/소련의 지도자들 가운데 발 뻗고 잠을 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근위대나 귀족, 당 정치국 등 국가 상층부 내에서의 궁정쿠데타가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