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드러머 토니 케닝(Tony 'Reuben' Kenning)과 베이시스트 앤디 니콜스(Andy Nicholas), 보컬리스트 폴 홀랜드(Paul Holland)를 가입시켜 오토믹 메스(Atomic Mass)를 결성한 이들은 Thin Lizzy와 T-Rex의 영향을 받으면서 학교에서의 공연을 위주로 인기를 쌓아나갔으나 1976년 해산하고 말았다.
니콜라스와 홀랜드는 대학에 들어가고 새비지는 영국철도회사의 기술자로 들어갔다. 윌리스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 나갔으나 음악을 잊을 수 없어 1977년말 새비지, 케닝과 함께 다시 그룹을 만들었는데 당시 새로 가입한 인물이 바로 보컬 조 엘리어트(Joe Elliot)였다.
이들은 대학 클라스 메이트인 스티브 클라크(Steve Clark)를 기타리스트로 픽업, 본격적인 음악에 뛰어들었다. "Getcha Rocks Off"라는 EP를 발매했고 2만4000장을 판매했다. 이때 드러머인 토니 케닝이 탈퇴, 릭 알랜(Rick Allen)이 가입했다. 그가 바로 훗날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도 당당히 드러머로 재기한 이다. 데프 레퍼드는 201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월간팝송 1986년 4월호 참조)
32. The Doors 196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록그룹이며 흔히 ‘로큰롤의 바그너’로 불리기도 하는 ‘도어스’의 리드 싱어 짐 모리슨에 대한 열기는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을 줄 모른다. 매년 짐 모리슨의 기일이 되면 파리 페르 라셰즈 묘역에는 세계 각국, 각계각층 수 천 명의 군중이 운집한다. 그를 추모하고 그의 음악을 기리는 열성 팬들이다.
페르 라셰즈 묘역은 발자크, 아폴리네르, 모딜리아니, 쇼팽에서 이사도라 던컨, 에디트 피아프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의 거장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보면 다소 진부할 것도 같은 60년대의 록 가수, 27세의 나이로 자살한 한 젊은이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짐 모리슨은 골칫덩이 모습으로 등장했다. ‘The End’에서뿐 아니라 ‘People Are Strange’, ‘When the Music’s Over’, ‘Five to One’, ‘Peace Frog’ 등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곡들에서 모두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오이디푸스적 이미지를 넘어서 전형적인 자아도취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나르시스가 기대어 내려다보고 있는 연못(땀에 젖은 관객들의 얼굴)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열망하고 도취한 채 바라보았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존재 방식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에고를 지키려는 천성이 있고, 그러한 천성은 예술가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존재 방식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에고를 지키려는 천성이 있고, 그러한 천성은 예술가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월리스 파울리가 쓰고 이양준이 옮긴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참조)
![]() |
이 앨범에 실린 ‘Township Rebellion’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전쟁에 대항해 싸워라. 모든 규범을 엿먹여라."(《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참조)
![]() |
34. Alice in Chains 이 밴드의 두 번째 앨범 《Dirt》(1992) 역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에 들어 있다. 이들은 디스토션을 잔뜩 건 기타, 우울한 가사, 체크무늬 남방에 대한 선호 등으로 시애틀 씬의 전형이 되었다. 블랙 사바스를 참고한 사운드와 리드 싱어 레인 스타일리의 최면적인 멜로디로 주장한 ‘Dirt’는 그런지를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하는 데 기여했다.
밴드의 리드 싱어 스테일리(Layne STtaley)는 훗날 마약 중독으로 사망했다. 《Dirt》에는 그 징후들을 찾을 수 있다. ‘Junkhea’(우린 우리만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어. 마약상용자에서 중독자로, 마약중독자에서 인간쓰레기로), ‘Dirt’(내 입과 혀로 더럽고 날카로운 피스톨을 맛보고 싶다)에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참조)
35. Jane's Addiction 제인스 어딕션은 레드 제플린의 뒤를 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데뷔 때부터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MTV가 얼터너티브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너바나가 성공하는 길을 닦아 놓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들의 데뷔 앨범(1988)과 두번째 앨범(1990)이 모두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이를 증명한다어쨌든 싱어이자 작사가인 페리 파렐(Perry Farrell), 기타의 신 데이비 나바로(Dave Navarro), 드럼의 대가 스티븐 퍼킨스(Stephen Perkins)가 밴드의 사운드를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
얼터너티브 메탈의 개척자로 1990년대 얼터너티브 음악의 메인스티림이었다. 또한 펑크 메탈의 장르와도 관련이 깊다.
밴드의 활동시기가 순탄치 않았다. 1985~1992년, 1997년, 2001~2004년, 2008년~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밴드가 활동을 중단했을 때 페럴과 퍼킨스 등이 Porno for Pyros와 Deconstruction 같은 밴드를 만들었다.
밴드의 리드 싱어 스테일리(Layne STtaley)는 훗날 마약 중독으로 사망했다. 《Dirt》에는 그 징후들을 찾을 수 있다. ‘Junkhea’(우린 우리만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어. 마약상용자에서 중독자로, 마약중독자에서 인간쓰레기로), ‘Dirt’(내 입과 혀로 더럽고 날카로운 피스톨을 맛보고 싶다)에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참조)
35. Jane's Addiction 제인스 어딕션은 레드 제플린의 뒤를 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데뷔 때부터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MTV가 얼터너티브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너바나가 성공하는 길을 닦아 놓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들의 데뷔 앨범(1988)과 두번째 앨범(1990)이 모두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이를 증명한다어쨌든 싱어이자 작사가인 페리 파렐(Perry Farrell), 기타의 신 데이비 나바로(Dave Navarro), 드럼의 대가 스티븐 퍼킨스(Stephen Perkins)가 밴드의 사운드를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
얼터너티브 메탈의 개척자로 1990년대 얼터너티브 음악의 메인스티림이었다. 또한 펑크 메탈의 장르와도 관련이 깊다.
밴드의 활동시기가 순탄치 않았다. 1985~1992년, 1997년, 2001~2004년, 2008년~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밴드가 활동을 중단했을 때 페럴과 퍼킨스 등이 Porno for Pyros와 Deconstruction 같은 밴드를 만들었다.
36. Frank Zappa 메릴랜드주(州)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프랭크 빈센트 재파(Frank Vincent Zappa)이다.
1964년 머더스 오브 인벤션(Mothers of Invention)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그 이듬해에 데뷔 앨범 《Freak Out!》을 냈다. 이 앨범은 비틀스(the Beatles)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머더스의 세 번째 앨범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1967)의 음악은 비틀스의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미래상에 도전하여 기성 체제의 전체주의적 속물 근성과 '추악성'을 의도적으로 제시하였다. 이후 재즈와 록이 융합된 앨범 《Hot Rats》(1969)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1964년 머더스 오브 인벤션(Mothers of Invention)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그 이듬해에 데뷔 앨범 《Freak Out!》을 냈다. 이 앨범은 비틀스(the Beatles)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머더스의 세 번째 앨범 《We're Only in It for the Money》(1967)의 음악은 비틀스의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미래상에 도전하여 기성 체제의 전체주의적 속물 근성과 '추악성'을 의도적으로 제시하였다. 이후 재즈와 록이 융합된 앨범 《Hot Rats》(1969)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1970년대에는 관현악곡, 재즈, 자신의 기타 즉흥연주, 그리고 후기에 가서는 신시사이저나 시퀀서를 사용한 음악이 수록된 기악 앨범들을 내놓았으며 이와 함께 《Titties & Beer》(1978)와 《Jewish Princess》(1979) 등 록 경향을 띤 보컬 앨범도 나왔다.
1980년대에는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1982년 딸 문 유닛(Moon Unit)의 랩이 들어간 싱글 《Valley Girl》이 히트하였으며 1993년 암으로 사망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모음곡 《Yellow Shark》를 발표하여 진지한 작곡가로 인정받았다.
폭넓은 기술과 관심을 가진 록 시대의 재사로서, '고급'과 '저급' 문화의 장벽을 허문 포스트모더니스트로 평가된다. 사후에 그의 작품들이 프롬나드콘서트 축제 동안 런던의 로열앨버트홀에서 공연되었고, 1995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 |
37. The Yardbirds 월간팝송 1986년 4월호에 소개된 야드버즈의 기사다. 인용해 본다.
〈...모든 록그룹 중에서 선두적인 존재로 종종 인식되기도 하는 야드버즈는 '63년, 런던에서 결성되었는데 이 그룹을 거쳐간 인물들로는 제프 벡(Jeff Beck),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 지미 페이지(Jimmy Page) 등이 있다. 기타리스트 Chris Dreja, Anthony Topham (곧 클랩튼으로 바뀌었음), 드러머 짐 메카티(Jim McCarty), 보컬리스트 케이트 렐프(Keith Relf), 베이시스트 폴 사무웰 스미스(Paul Samwell-Smith).
창단된 야드버즈는 (처음엔 Most Blueswailing Yardbirds로 불렀음) 후에 헤비메틀 계열로 지칭된, 60년대말의 블루스/록/기타가 주축을 이루는 사운드를 기본적인 토대로 하였다. 어떤 시기에는벡, 클랩튼, 페이지가 함께 그룹에 재적해 연주하기도 했고 각각 개인이 연주하기도 했던 그들의 기타연주 기술은 현재까지 인식되어 온 모든 기타기술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여러 장 발표된 라이브와 스튜디오 앨범들은 세 기타리스트들의 절묘하고 다양한 콤비로 녹음되어있다. 그중 앨범 《For Your Love》와 타이틀곡은 1965년 영국과 미국에서 히트했다.
3년후 이들 그룹은 해체되고 클랩튼과 벡은 솔로로 전향해 전설적인 신화를 창조했으며 페이지는 뉴 야드버즈를 결성했다가 Led Zepplin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 그룹 역시 메틀계의 한 장을 장식한다....〉
3년후 이들 그룹은 해체되고 클랩튼과 벡은 솔로로 전향해 전설적인 신화를 창조했으며 페이지는 뉴 야드버즈를 결성했다가 Led Zepplin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 그룹 역시 메틀계의 한 장을 장식한다....〉
그런데 야드버즈가 지금도 존속해 있다. 오리지널 멤버는 드러머인 짐 메카티밖에 없지만 새로운 라인업으로 활동 중이다.
38. MC5 독특한 무대매너와 강렬한 사운드를 무기로 라이브에서 인기를 얻던 밴드. MC5는 Moter City Five. 거칠고 하드한 연주와 무대에서 미국 국기를 몸에 두르고 혁명적인 구호를 외쳐대는 해프닝적 무대 매너로 화제가 됐다.
1969년 《Kick Out The Jams》 앨범을 통해 데뷔. 싱클레어는 “혁명이 개개인의 껍질을 벗고 서로 서로의 팔에 안기도록 추진하는데 전적으로 바치는 것이듯 MC5는 전적으로 혁명에 바치는 그룹”이라고 강변했다. MC5의 양날개 '시끄러운 사운드'와 '혁명적 메시지'는 1970년대 말 지축을 흔들었던 펑크록 밴드들이 재발국하여 기본틀화했다. 특히 혁명성이 강했던 섹스 피스톨즈, 클래시 등 영국의 펑크 밴드들이 MC5의 정신4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 |
| 닐 영이 참여한 CSN&Y. Crosby, Stills, Nash & Young. |
39. Neil Young 《팝 아티스트 대사전》(세광음악출판사)에 소개된 닐 영에 대한 글이다.
〈...작곡가, 보컬리스트, 그리고 포크-록 시대의 웨스트코스트 밴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그룹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eld)에서 스테판 스틸스(Stephen Stills)와 쌍벽을 이루는 기타 연주를 함으로써 처음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았던 닐 영은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와 함께 녹음한 그의 두번째 솔로 앨범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세웠다.
영과 대니 휘튼(Danny Whitten) 사이의 열정적인 기타 연주 교환이 돋보이는 그 앨범은 고전인 ‘Down by the River’, ‘Cowgirl in the Sand’를 대표곡으로 한다. 닐 영이 크로스비(Crosby), 스틸스, 그리고 내쉬(Graham Nash) 등에게 그들의 순회공연을 빛내게 해준 연주 펀치를 가해주는 동안에 그들과 친분을 맺게 해줌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 크레이지 호스는 기타리스트인 닐스 로프그렌(Nils Lofgren)과 함께 우수한 데뷔 앨범을 녹음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그들을 개별적인 아티스트로 확립하는데는 실패했다. 희귀한 작곡가이며, 시적으로 아름다운 연가, 격렬한 내용이 담긴 곡, 사회 정치시적인 노래, 그리고 어떤 때는 고독하고 어떤 때는 연민에 잠기고 절망적인 듯한 영혼의 곡들의 제작자인 영은 앨범 《Harvesty》로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 앨범에서 ‘Heart of Gold’가 그에게 있어 유일한 주요(사실상 탑) 히트곡이었다. 유능한 리드 기타 주자로 인정된 닐 영은 이어서 형편없는 반응을 받은 영화 〈Journey Through the Past〉의 사운드 트랙과 불분명한 두 편의 앨범에 의하여 손상되고만 엉뚱한 활동을 개시했는데 영은 그 앨범들로 인하여 Buffalo Springfield와 CSN&Y이 주축이 된 70년대의 작곡가 겸 싱어 운동의 멤버들 중에서 가장 수수께끼와 같고 난해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4~75년의 폭넓은 순회공연을 위해 CSN&Y와 함께 재결합했기 때문에 거의 2년 가까이 닐 영은 《Tonight's the Night》의 발매를 연장했었다. 그 앨범은 어둡고 침울한 앨범으로, 크레이지 호스와 함께 녹음했다. 그런데 그들은 대니 휘튼과 순회공연을 위한 멤버인 브루스 베리의 약물 과용으로 인한 사망 때문에 복잡한 문제에 얽혀 있었으며, 그 사실은 표제곡에서 밝혀졌고 휘튼의 ‘Come On Baby, Let's Go Down-town’이 입증해 주었다. 앨범 《Long May You Run》과 1976년의 실패로 끝난 순회공연을 위해 스티폰 스틸스와 다시 일하게 되었던 닐 영은1978년의 ‘Comes a Time’과 뒤따르는 미국 순회공연을 계기로 궁극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회 공연은 어설픈 콘서어트 영화 〈Rust Never Sleeps〉와 앨범 《Live Rust》을 낳았으며, 둘 다 불길한 록의 성가 ‘My My, Hey, Hey(Out of the Blue), Hey Hey, My My(Into the Blue)>를 대표곡으로 하고 있다.....〉
영과 대니 휘튼(Danny Whitten) 사이의 열정적인 기타 연주 교환이 돋보이는 그 앨범은 고전인 ‘Down by the River’, ‘Cowgirl in the Sand’를 대표곡으로 한다. 닐 영이 크로스비(Crosby), 스틸스, 그리고 내쉬(Graham Nash) 등에게 그들의 순회공연을 빛내게 해준 연주 펀치를 가해주는 동안에 그들과 친분을 맺게 해줌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 크레이지 호스는 기타리스트인 닐스 로프그렌(Nils Lofgren)과 함께 우수한 데뷔 앨범을 녹음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그들을 개별적인 아티스트로 확립하는데는 실패했다. 희귀한 작곡가이며, 시적으로 아름다운 연가, 격렬한 내용이 담긴 곡, 사회 정치시적인 노래, 그리고 어떤 때는 고독하고 어떤 때는 연민에 잠기고 절망적인 듯한 영혼의 곡들의 제작자인 영은 앨범 《Harvesty》로 최대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 앨범에서 ‘Heart of Gold’가 그에게 있어 유일한 주요(사실상 탑) 히트곡이었다. 유능한 리드 기타 주자로 인정된 닐 영은 이어서 형편없는 반응을 받은 영화 〈Journey Through the Past〉의 사운드 트랙과 불분명한 두 편의 앨범에 의하여 손상되고만 엉뚱한 활동을 개시했는데 영은 그 앨범들로 인하여 Buffalo Springfield와 CSN&Y이 주축이 된 70년대의 작곡가 겸 싱어 운동의 멤버들 중에서 가장 수수께끼와 같고 난해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74~75년의 폭넓은 순회공연을 위해 CSN&Y와 함께 재결합했기 때문에 거의 2년 가까이 닐 영은 《Tonight's the Night》의 발매를 연장했었다. 그 앨범은 어둡고 침울한 앨범으로, 크레이지 호스와 함께 녹음했다. 그런데 그들은 대니 휘튼과 순회공연을 위한 멤버인 브루스 베리의 약물 과용으로 인한 사망 때문에 복잡한 문제에 얽혀 있었으며, 그 사실은 표제곡에서 밝혀졌고 휘튼의 ‘Come On Baby, Let's Go Down-town’이 입증해 주었다. 앨범 《Long May You Run》과 1976년의 실패로 끝난 순회공연을 위해 스티폰 스틸스와 다시 일하게 되었던 닐 영은1978년의 ‘Comes a Time’과 뒤따르는 미국 순회공연을 계기로 궁극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회 공연은 어설픈 콘서어트 영화 〈Rust Never Sleeps〉와 앨범 《Live Rust》을 낳았으며, 둘 다 불길한 록의 성가 ‘My My, Hey, Hey(Out of the Blue), Hey Hey, My My(Into the Blue)>를 대표곡으로 하고 있다.....〉
![]() |
미국 샌디에이고 출신 4인조 밴드로 딜레오(Robert DeLeo, Dean DeLeo) 형제와 리드 보컬 스캇 웨일런드(Scott Weiland), 드러머 에릭 크레츠(Eric Kretz)로 이뤄졌다. 스캇은 1992년에 탈퇴, 현재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이 참여하고 있다.
‘Plush’, ‘Interstate Love Song’에서 그들만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Interstate Love Song’은 빌보드 매거진의 모던 록 차트 정상을 15주간 지킨 곡이다. 이 곡은 2005년 Quintessence 출판사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에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