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VH1 선정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31~40위)

[阿Q의 ‘비밥바 룰라’] 티나 터너, 건스 앤 로지스, 블랙 사바스, 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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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왼쪽부터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존 레넌, 링고 스타.

미국의 음악전문 채널 VH1(Video Hits One)이 2010년 9월 10일 위대한 아티스트 100명( 100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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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자면 "록(로큰롤) 시대에 위대한 100인 아티스트"(100 Greatest Artists of the Rock Era)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혹은 "지난 60년 동안 가장 위대한 팝 스타100인"(100 Greatest Pop stars of the Last 60 Years)
1998년 발표한 리스트를 업 데이트한 순위다. 비평가와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20년 가까이가 지난 순위지만, 당대 팝 아티스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어 즐겁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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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The Police 스팅의 본명은 고든 매튜 토마스 섬너(Gordon Matthe Thomas Sumner). 뉴웨이브 록 밴드 폴리스(the Police)에서 베이스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3인조 밴드 폴리스는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이어지다 스팅이 솔로 활동을 하면서 사라졌다. 지난 2003년 폴리스 일원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스팅은 솔로 뮤지션으로, 그리고 폴리스 멤버로 17개의 그래미상을 받았으며 가장 잘 팔리는 음악 아티스트 중 한 사람. (With the Police, Sting became one of the world's best-selling music artists.)
스팅을 떠올릴 때 폴리스 시절 부른 "Every Breath You Take"가 떠오른다. "Every Breath You Take"는 2019년 라디오 역사상 가장 많이 연주된 노래로 선정돼 BMI 어워드를 수상했다.
더 폴리스는 2007년 재결성, 스팅과 함께 2007~2008년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활동은 글쎄,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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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의 라이브 공연 모습이다.  2007~2008년 투어 모습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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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크스
 39 The Kinks 킨크스(Kinks)는 레이(Ray Davies)와 데이브(Dave Davies) 형제가 1964년 북런던의 머스웰힐에서 결성된 영국의 록 밴드. 196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록 밴드 중 하나(one of the most influential rock bands)다.

이 밴드는 영국의 리듬 앤 블루스와 머시비트(비틀스의 리버플 사운드)의 전성기에 등장했다. 그들의 음악은 리듬 앤 블루스, 아메리칸 로큰롤, 영국 음악당, 포크,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았다. "Waterloo Sunset", "Lola", "You Really Got Me" 등을 들어 보세요.

2018년 1월 베이시스트 짐 로드포드(Jim Rodford)가 76세의 일기로 사망했고 2019년 7월 키보디스트 이안 기븐스(Ian Gibbons)가 사망했다. 데이비스 형제는 최근 새로운 음악을 작업하고 있다고 밝혀 2020년 신작 앨범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브는 한 인터뷰에서 "So there's a lot to do(그러니,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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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
 38 Sly & The Family Stone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들이 모여 만든 레전드 밴드. 펑크, 소울, 록, 사이키델릭 음악의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93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 밴드의 프론트 맨은 슬라이 스톤(Sly Stone). 그는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에다 여러 악기를 다루는 만능 뮤지션이었다. 형제인 프레디 스톤(Freddie Stone. Guitarist), 누이인 로즈 스톤(Rose Stone. Keyboardist), 신시아 로빈슨(Cynthia Robinson. trumpeter), 그레그 에리코(Greg Errico. drummer), 제리 마티니(Jerry Martini. saxophonist), 레리 그레헴(Larry Graham. bassist) 등으로 라인업이 결성됐다.

활동 시기는 1966년부터 1983년. 다양한 이질적은 음악 장르를 합성해 당대 떠오르는 사이키델릭한 소울 사운드("psychedelic soul" sound) 영역을 개척했다.
빌보드 핫 100 히트곡인 "Dance to the Music"(1968), "Everyday People"(1968), "Thank You"(1969), "Stnad!"(1969) 등을 내놓았다.
1970년대 들어서는 《There's a Riot Goin' On》(1971), 《Fresh》(1973년) 같은 앨범을 통해 더 어둡고 덜 상업적인 펑크 사운드로 초기 사운드로 돌아가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조엘 셀빈(Joel Selvin)은 "슬라이 스톤 이전의 흑인 음악, 슬라이 스톤 이후의 흑인 음악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Sly & the Family Stone의 영향력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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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우드 맥의 전현 멤버들.

 37 Fleetwood Mac 발음하기 쉽지 않은 노장(老壯) 팝 밴드 플리트우드 맥은 여전히 전 세계를 돌며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플리트우드 맥처럼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밴드는 드물 것이라고. 드러머 믹 플리트우드(Mick Fleet-wood)와 베이시스트 존 맥비(John McVie)가 주축이 돼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무거운 블루스 록을 연주하던 이들은, 캘리포니아 출신 커플을 새 멤버로 영입하면서 비상(飛翔)하기 시작했다.

  기타리스트 린지 버킹엄(Lindsey Buckingham)과 여가수 스티비 닉스(Stevie Nicks)는 플리트우드 맥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곱슬머리에 눈이 크며 뭔가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던 버킹엄은 고교시절부터 사귀던 스티비 닉스와 앨범 한 장을 이미 발표한 상태였다. 당시 버킹엄의 기타연주는 왠지 멜랑콜리했고, 긴 옷을 항상 치렁치렁하게 입고 다녔던 스티비 닉스의 음색은 화려하면서도 감성이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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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루머스(Rumours》
한편, 키보드를 치던 크리스틴 퍼펙트(Christine Perfect)가 존 맥비와 결혼해 크리스틴 맥비가 됐다. 이렇게 라인업을 새로 짠 이 밴드는 런던을 떠나 캘리포니아를 터전으로 삼아 ‘LA 어덜트 록의 제왕’이 됐다.
  그러나 플리트우드 맥이 인기를 끌수록 웬일인지 두 커플의 갈등은 깊어졌다. 파경의 와중에 나온 앨범이 《루머스(Rumours》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갈등과 미움, 증오 속에서 걸작 음반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1977년에 발매됐으니 41년이 된 고전이다. 2018년에 발매 40주년을 맞아 특별제작한 음반이 나왔는데 35주년 때도 기념음반이 나왔다. 5년마다 뭘 기념할 게 또 있었을까. 그냥 세일즈용인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루머스》는 4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매혹적이다. 이 앨범에 깃든 마법 때문이리라. “깔끔하게 제작된 보석 같은 앨범”이라고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앨범 1001》은 적고 있다. 감성의 거친 면과 매끄러운 면이 어우러져 비할 데 없는 블록버스터가 됐다. 영국에서 발매된 음반판매량에서 역대 11위를 차지했고,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7위에 랭크됐다. 4000만장(미국에서 2000만장)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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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와 아내 린다
36 Paul McCartney
폴 매카트니의 1970년대를 요약하는 한 단어가 ‘고난’이라면, 또 다른 단어는 ‘탈출’이다.

사실상 폴은 1970년대를 비틀즈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며 보냈다. 그 과정에서 범법자이자 히피인 백만장자가 되었고, 스코틀랜드에 있는 농장으로 숨어들었다. 그 뒤에는 걸핏하면 멤버가 바뀌는 밴드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전 세계로 투어를 다녔다. 당시는 수없이 많은 마약 단속이 횡행했고, 성공적인 앨범, 판금 조치를 당한 앨범, 때로는 황당한 앨범들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매카트니에게는 불안하면서도 자유롭고, 때로는 두려웠던, 하지만 이제는 기억마저 많이 희미해진 시기였다. (톰 도일이 쓴 《폴 매카트니: 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 중에서)

폴은 1969년 3월 이스트먼-코닥 회사 사장의 딸이자 사진작가인 린다 이스트먼과 결혼했다. 비틀스 해산 후 폴과 린다는 윙즈(Wings)라는 밴드를 만들어 전 세계를 돌며 투어를 다녔다.
린다는 동물보호 운동가이자 채식주의자였으며 폴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98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 있는 농장에서 남편 매카트니와 자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폴 매카트니는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유방암 연구 재단을 설립했으며, 2000년 1월에는 린다가 치료를 받았던 투손과 뉴욕에 있는 병원에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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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케쉬. 1969년의 모습이다.
 
 35 Johnny Cash 1932년 2월 26일 생~ 2003년 9월 12일 몰.  미국의 가수, 작곡가, 음악가, 배우, 작가였다. 전 세계적으로 90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역대 최고의 음반 판매자 중 한 명. 아마도 최초의 국제적인 컨트리 스타. 로큰롤 음악의 초창기 스타일인 로커빌리(rockabilly) 스타였다. 로커빌리 스타로는 엘비스 프레슬리, 제리 리 루이스가 있다.

캐쉬의 많은 음악은 슬픔, 도덕적 고뇌, 그리고 구원의 주제를 담았다. 특히 경력의 후반기에 더욱 그러했다. 대표곡으로 "I Walk the Line" "Ring of Fire" "Get Rhythm" "Man in Black", "The Ballad Of Ira Hayes", "Don't Think Wwice, It's Alright", "It Ain's Me Baby"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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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 터너

 34 Tina Turner 티나 터너는 1939년 11월 26년생이다. 본명은 애니 매 티나 블록(Anna Mae 'Tina' Bullock)이다. 미국 테네시의 브라운스빌에서 태어나서 녹스빌에서 자랐고 지방교회의 성가대에서 노래했다.

2013년 스위스 국적을 획득했다. 젊은 시절에는 남편 아이크 터너(Ike Turner)와 함께 Ike and Tina Turner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1958년 결혼했고 "A Fool in Love", "I Idolize You", "It's Gonna Work Out Fire", "Poor Fool", "Tra La La La", "River Deep – Mountain High", "Proud Mary", "Nutbush City Limits"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 단짝은 1976년 결별했다. 이미 티나 터너는 1972년 첫번째 솔로 앨범을 녹음했었다.

티나 터너는 역사상 가장 잘 팔린 음반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2억 장 이상을 팔았다. 정열적인 스테이지 존재감, 파워풀한 보컬, 장수 커리어로 인기를 끌어왔다.
솔로로 활동하며 많은 히티곡을 냈는데 그중 "Better Be Good to Me" (1984), "Private Dancer" (1984), "What's Love Got to Do With It"(1984), "We Don't Need Another Hero (Thunderdome)" (1985), "Typical Male" (1986), and "I Don't Wanna Fight" (1993), (1993) 등이 있다.
많은 영화에 출연, 여배우로 명성을 쌓았으며 1993년 자신의 자전적 영화 <"What's Love Got to Do>에 출연했다. 1991년 아이크 터너와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3 Guns N’ Roses 건스 앤 로지스. 총과 장미. 악동 액슬 로즈(Axl Rose)는 한때 ‘할리우드 로즈(Hollywood Rose)’의 보컬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잘나가던 ‘LA 건스(LA Guns)’와 1985년 결합하면서 밴드 이름을 ‘총과 장미’로 정했다.
  얼마 후 ‘LA 건스’의 리더였던 트레이시 건스가 밴드를 탈퇴했지만 이름은 그대로 ‘건스 앤 로지스’였다. 뒤이어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본명은 Saul Hudson)가 가세하면서 전설은 시작된다.
  이들의 첫 앨범 《파괴욕망(Appetite for Destruction)》(1987)은 록 역사상 최고의 데뷔앨범으로 손꼽힌다. 147주(3년 3개월) 동안 빌보드 차트에서 떠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헤비메탈이 본 조비(Bon Jovi) 같은 ‘팝 메탈’로 쇠락해 갈 때 이들은 강력한 헤비메탈에 ‘날것’ 그대로의 호소력으로 팬심(心)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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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스 앤 로지스의 첫 앨범 《파괴욕망(Appetite for Destruction)》
특히 〈사랑스런 내 사람(Sweet Child O' Mine)〉의 인기는 1988년 강타한 허리케인이었다. 그해 8월 ‘몬스터즈 오브 록’에서 그들은 대선배 키스, 아이언 메이든, 데이비드 리 루스, 메가데스, 할로윈 등을 넉다운시켰다.
  이 공연 후 〈Sweet Child O' Mine〉은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 차트 1위(1988년 9월 10일)에 올랐다. 한 달도 안 돼 입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갑자기 전 세계가 건스 앤 로지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웰컴 투 더 정글(Welcome to the Jungle)〉, 〈파라다이스 시티(Paradise City)〉를 동반 히트시키며 1집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은 미국에서만 18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3300만 장이 팔려 나갔다(1년 전에 앨범이 발매됐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더블 앨범인 이들의 3집 《유즈 유어 일루전(Use your illusion) 1,2》(1991)은 건스 앤 로지스 최전성기의 마지막 리즈 시절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1집이 힘으로 승부하는 메탈로 채워졌다면 2집은 발라드, 펑크, 클래식이 골고루 섞여 있다. 음악적으로 훨씬 성숙해졌다고 할까.
앨범커버는 독특하다. 라파엘의 작품 〈아테네 학당의 사람들〉 중 ‘두 명’을 발취했다. 왜 이 두 명에 주목했을까. 혹시 액슬과 슬래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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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집 앨범《유즈 유어 일루전(Use your illusion) 1,2》

이 앨범 중 〈돈 크라이(Don't Cry)〉와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 밥 딜런의 곡을 커버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가 히트했다. 전자의 노래는 폭넓은 음역대를 막힘 없이 휘젓는 액슬의 보컬이 압권이고, 후자는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폭풍 기타연주가 압권이다.
 
전 세계 팝 보컬 중에서 액슬 로즈는 머라이어 캐리, 프린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톰 요크(라디오헤드의 리더싱어), 프레디 머큐리(그룹 퀸의 보컬리스트)와 함께, 아니 이들보다 가장 넓은 음역대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는 《허핑턴포스트 US》(2014년 5월 21일자)에 게재됐다.
 
  슬래시는 ‘깁슨 레스폴’ 기타를 애용한다. 영국의 전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처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정통파 기타 연주자로 불린다. 지난 2010년 영국의 BBC가 선정한 ‘최근 30년간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순위에서 레드 핫 칠리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출신의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11년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 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기타리스트에서 65위.

그러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다. 액슬과 슬래시는 시종 티격태격 불협화음을 냈고 결국 팀이 해체됐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액슬 로즈와 다른 멤버 간의 불화가 절정으로 치닫자 슬래시가 탈퇴하고 만다. 슬래시는 이후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액슬 로즈는 껍데기뿐인 건스 앤 로지스로 활동했다. 과거 리즈 시절의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액슬은 노쇠한 데다 뚱뚱해졌고 그 넓던 음역대의 목도 힘을 잃었다.
 
  건스 앤 로지스는 2011년 12월 로큰롤 명예의전당 헌액이 확정됐다. 이후 오리지널 멤버의 재결합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액슬 로즈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It was always looked at as a possibility, but it never seemed right or felt right)”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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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

 32 Black Sabbath 1970년에 나온 영국 하드록 밴드인 블랙 사바스의 데뷔앨범 《블랙 사바스》는 한국 나이로 올해 쉰이다. 으스스한 분위기, 어두운 내면이 묻어나올 것 같은 이 앨범은 커버 사진부터 음산하다.

  낡은 주택의 버려진 뒷마당 같은 곳에 선, 검은 옷에 산발을 하고 피부는 백지장처럼 흰 여성이 등장한다. 비극을 응시하는 마법사와 닮았다. (그러나 앨범 커버를 찍은 현장은 영국 템스 강가, 물레방아가 있는 아늑한 곳이다. 사진을 기이하게 연출했을 뿐이다.)

  어쨌든 이 앨범에 ‘세계 최초의 헤비메탈 앨범’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당대 신통치 않거나 볼품없는 음악들에 대한 만가(挽歌) 같은 느낌을 준다. 혹자는 이 음악들이 인간의 사악함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신(神) 아래 사악하지 않은 인간이 없다면 내면의 아픈 새끼손가락일 것이다. 그런데 발매일이 ‘13일의 금요일’(1970년 2월 13일)이어서 많은 이의 입방아에 올랐다.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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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사바스의 데뷔앨범 《블랙 사바스》
  첫 곡 ‘블랙 사바스’와 두 번째 곡 ‘더 위저드(The Wizard)’, 앨범 A면 네 번째 곡인 ‘N.I.B’에서 보여준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베이스)와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기타)의 격렬하면서도 육중한 기타 연주는 이전의 록 음악에서 들을 수 없었다. 또 오지 오즈본(Ozzy Osbourne·보컬)의 동물적인 외침도 ‘레어 스테이크’를 씹는 것처럼 날것으로 느껴진다.
 
  이들의 사운드가 음산하게 들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유리 지갑’ 때문이었다. 앨범 제작비가 없어 이틀 만에 뚝딱 만들었는데, 녹음 설정도 스튜디오가 아니라 라이브에 맞춰놓아야 했다. 기타리스트 토니의 말에 따르면, 1969년 10월 16일 단 하루 만에 거의 모든 녹음을 끝냈다. 녹음시간은 총 12시간. 이튿날 종소리나 천둥, 비 효과음을 추가한 것과 ‘N.I.B’에 더블 트랙(기타 솔로)을 추가한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당시 토니는 손을 다쳐버렸다. 부득이 기타 줄을 반음 낮춰 E 플랫으로 튜닝했는데 그 때문에 기타 사운드가 더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우연치고는 묘하다.
  이 앨범은, 어떤 행간(行間)이나 암시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공포와 어둠, 죽음 같은 것이 주제다. 지금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고 웃어넘기지만 1970년대 사람들에겐 이들의 퍼포먼스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첫 곡 ‘블랙 사바스’는 교회 종소리가 들리고 폭풍우와 함께 블루스풍의 록 음악이 시작된다. 무거운 느낌을 주는 반복적인 리듬과 오지(오즈본)의 날 선 음성이 들린다. 그 음성은 전체 6분20초나 되는 긴 곡에 1분24초쯤 시작된다. 전주(前奏)가 짧은 요즘 음악과 매우 다르다. 노랫말은 이렇다.
  “내 앞에 선, 저게 뭐야. 나를 가리키는 검은색 그림(Figure in black). 빨리 돌아서 뛰기 시작해! 내가 선택된 사람인지 알아봐. 오, 안 돼!”
  곡 후반부로 갈수록 기타는 빨라지고 요란한 드럼 비트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오지는 “오, 안 돼! 제발!”이라 외친다.
 
  두 번째 곡인 ‘더 위저드’는 하모니카 소리와 같은 오르간 소리가 들리다 육중한 기타와 드럼 비트가 오지의 목소리를 따라 울린다.
  “안개 낀 아침, 하늘의 구름들. 예고 없이 마법사가 자기 그림자를 드리우고 주문을 외며 옷을 펄럭이며 종을 울리지. 절대 말하지 마. 그냥 계속 걸어가. 마법이 펼쳐져.”
  이 곡은 소설 《더 호빗》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Gandalf)의 캐릭터에서 영감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세 번째 곡인 ‘비하인드 더 월 오브 슬립(Behind the wall of sleep)’은 동명의 단편소설(1919년 작)에 영감받아 작곡했다.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가 쓴 소설은 한 정신병원의 인턴 눈에 비친 살인범 조 슬레이터(Joe Slater)의 잔인한 행적을 그리고 있다.  
  블랙 사바스는 첫 앨범을 낸 바로 그해 발매한 두 번째 앨범 〈파라노이드(Paranoid)〉로 전설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들을 추종하는 수많은 밴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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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과 오노 요코
 31 John Lennon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존 레논을 이야기할 것이다. 존 레논은 전설의 4인조 그룹 비틀즈의 멤버로서 대중음악에 혁명을 가져왔고, 솔로 활동 중에는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대중의 잠든 의식을 깨우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한 그의 음악과 행적은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세대를 불문한 비틀매니아의 중심에는 바로 존 레논이 있는 것이다.

존의 음악 세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는 오노 요코를 향한 사랑과 세계 평화였다. 존은 요코의 예술과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노래, 아니면 요코를 향한 사랑에서 영감을 얻은 곡을 만들었다.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이 앨범 곳곳에 스며있었다. 존은 마지막 순간까지 요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마지막 앨범 《Double Fantasy》는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였다. 요코가 없었다면 존은 대중의 취향에 반하여 논란만 불러일으킬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존이 감동적인 노래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요코는 존의 삶과 작품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녀는 진정 존을 완벽하게 만든 ‘하늘의 반쪽’이었다. (존 블래니가 쓴 《존 레논 IN HIS LIF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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