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언더그라운드의 〈Sister Ray〉

[阿Q의 ‘비밥바룰라’] 앤디 워홀이 사랑한 1960년대말 실험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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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니코(가운데 여성)
 
196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선두주자로 꼽혔던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는 이미 오래 전 해체됐으나 팀이 사라진 후 오히려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버스가 떠난 후 손을 든 경우랄까.
그제야 팬들과 음악평론가, 후배 음악인들이 번뜩였던 실험적 음악성에 주목했고 2장의 초기 음반이 희귀 소장품 목록에 오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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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보컬이자 리더였던 루 리드(Lou Reed). 밴드 해체 후 솔로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보여준 진보적 색채의 음악은 1967년 발표된 첫 앨범 《Velvet Underground and Nico》에서 확인할 수 있다. 〈European Son〉 같은 곡에서 기차소리,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를 비롯한 음향효과는 60년대 음악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담한 실험적 사운드를 보여준다. (《월간팝송》 1986년 5월호 참조)
 
이전의 팝 음악에서 볼 수 없었던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이후 David Bowie, New York Dolls, Patti Smith, Mott The Hopple, Roxy Music, Sex Pistols, Cars 등 수많은 초기 펑크그룹, 한창 때의 펑크그룹, 후기 뉴 웨이브 그룹, 헤비메탈 그룹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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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로도 유명했던 니코(Nico)
유명한 에피소드는 첫 앨범(《Velvet Underground and Nico》)이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도움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워홀은 프로듀서로 음반제작에 직접 관여했다.
그들의 라이브 공연을 본 앤디 워홀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홀딱 반해버린 것이다. 워홀의 제안으로 독일출신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니코(Nico)가 1966년 앨범 녹음에 참가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니코는 1960년대 앤디 워홀이 구축한 예술인 집단인 ‘앤디 워홀 슈퍼스타(Andy Warhol Superstar)’에서 활동했다. 또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1960), 앤디 워홀의 《첼시 걸즈》(1966)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니코는 쉰 살이 되던 1988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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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워홀
첫 앨범은 절망적인 소재, 특히 죽음이나 모독에 관한 내용이 너무 많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밴드 리더인 루 리드(Lou Reed)가 니코를 위해 작곡했다는 〈Femme Fatale〉과 〈Sunday Morning〉을 담은 싱글과 니코가 부른 〈I'll Be Your Mirror〉가 발매됐으나 너무 앞선 음악성 때문인지 전혀 대중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음반 판매도 그닥이었다. (훗날 첫 앨범이 재평가를 받았으며 팀 해체 후 라이브 앨범과 각종 편집앨범, 해적음반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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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두번째 앨범 《White Light/White Heart》
어찌됐든 첫 앨범 발표 후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멤버들 간의 불화가 생겨 니코가 먼저 그룹을 떠나고 프로듀서 앤드 워홀과도 결별한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이들은 두 번째 앨범 《White Light/White Heart》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후에 헤비메탈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수록곡 중 〈Sister Ray〉는 이들의 최고 걸작의 하나로 꼽힌다.
 
〈Sister Ray〉은 소음이 가득한 록 잼(rock-jam) 연주가 들어있다. 중독성 있는 반복적 멜로디가 듣는 이의 뇌를 녹아내리게(?) 만들지만 이런 반복을 상쇄시킬 만한 매혹이 담겨 있다. 이런 피드백이 담긴 인디 사운드는 이후 인디록(indie rock), 펑크 메인 플레임(punk mainframe)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인디 밴드의 레퍼토리가 되고 있다.
 
이 노래는 단번에 레코딩을 하는 바람에 모든 실수와 의도하지 않은 면들이 모두 담겨 버렸다고 한다. 프로듀서 톰 윌슨(Tom Wilson)이 이들의 ‘혼란스런 소동’에 충격을 받고 음반작업 중간에 참여하게 된다. 문제는 노랫말이다. 복장 도착자로 추정되는 무리(Sister Ray)와 선원이 등장하고 과도한 약물과 난교, 방탕과 부패에 대한 얘기가 담겨 있다.
 
 
1973년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완전히 해산하고 만다. 팀의 주축이었던 루 리드가 탈퇴했기 때문이다. 루 리드는 이후 솔로로 활동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재평가 이후 루 리드에 대한 재평가 덕분이 아닐까.
 
1979년 미국 음악잡지 《빌보드》가 음악 평론가들의 투표로 선정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록 아티스트 20’에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포함하기도 했다. 이 순위에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같은 슈퍼스타 밴드들도 20위권에 들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성과다.
또 그들의 첫 앨범 《Velvet Underground and Nico》는 지난 2009년 미국 음악잡지《롤링 스톤》이 뽑은 ‘역대 최고의 앨범 500선’에서 13위를 기록, 놀라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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