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 운동권 임종석이 20여 년 전 감명깊게 읽은 책은 《동의보감》과 《성경》
⊙ 윤영찬, 언더서클 활동했지만 이른바 ‘빵잽이’는 아니었다
⊙ 하승창, 시민운동에 투신한 이유는 사회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접근방식에 이끌렸기 때문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별명은 ‘울트라 슈퍼 드라이’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천상 조직전문가
⊙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 전해철 의원, 20여 년 전 “언론개혁에 기여하고 싶다”고 주장
⊙ 안희정 충남도지사, 스스로를 ‘마담뚜’로 소개
⊙ 선정 인사 중에는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등 훗날 논란 중심에 선 인물도
⊙ 윤영찬, 언더서클 활동했지만 이른바 ‘빵잽이’는 아니었다
⊙ 하승창, 시민운동에 투신한 이유는 사회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접근방식에 이끌렸기 때문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별명은 ‘울트라 슈퍼 드라이’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천상 조직전문가
⊙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 전해철 의원, 20여 년 전 “언론개혁에 기여하고 싶다”고 주장
⊙ 안희정 충남도지사, 스스로를 ‘마담뚜’로 소개
⊙ 선정 인사 중에는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등 훗날 논란 중심에 선 인물도
◆전직 국회의원
책에서 소개한 1000명 중에는 전직 국회의원 수도 꽤 됐다. 책은 33세의 나이로 15대 국회에 입성한 김민석 전 의원(15·16대, 국민회의, 서울 영등포을)을 “진취적 현실주의자 21C형 전문가와 손잡다”라고 표현했다.
〈386세대 정치 진출자의 선두주자 김민석. 제도정치권에 진출한 이후 ‘진취적 현실주의자’의 길을 걸어온 그가 요즘 더욱 바빠졌다. 경제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21세기에 대비해 ‘21세기형 전문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자 전학련 의장으로서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복역 중 87년 말 감옥에서 후보 단일화 실패와 대선 패배를 접하고서부터다. (중략) 현실 정치를 바꾸지 않는 한 진정한 사회변혁은 요원하다는 자각을 한 것이다. 88년 2월, 2년 9개월 만에 출소한 그는 범민주 세력의 정치 진출을 모색하다 91년 민주당에 합류하게 된다. 92년 14대 총선에서 사지나 다름없는 영등포을구에 뛰어들어 당시 여당의 거물이었던 나웅배씨를 상대로 돌풍을 일으켰으나 결과는 285표 차의 석패였다. 그러나 패배했음에도 그의 가능성을 엿본 듯 기성 정치권은 그에게 줄곧 이런저런 기회를 제공해 주게 된다. 국민회의 의원/서울대 사회 82학번/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의장.〉
승승장구하던 김 전 의원은 16대 대선 때 정몽준 후보 지지로 방향을 선회, ‘철새’라는 비판을 받고, 추락했다. 이후 김 전 의원은 수차례 재기를 시도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공식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이다.
당시 최연소 비서관(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장성민 전 의원(16대, 새천년민주당, 서울 금천)은 자신의 성공비결의 하나를 “해외 신간서적 탐독”이라고 했다.
〈얼마 전 김 대통령이 장 실장을 가리켜 “잘 닦고 연마하면 21세기를 이끌어갈 ‘자질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총애 때문인지 그는 청와대 내에서 시기와 선망을 동시에 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학창시절 학생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서강대 대학원,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수료했고, 지금은 상황실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연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김 대통령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저서나 학문 조류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심을 끌 만한 해외 신간이 나오면 제일 먼저 구해 읽고 있다. 그는 “김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보다도 생각에서는 더 젊기 때문에 그분을 모시기 위해서는 새로운 흐름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항상 자신감에 찬 면모와 과도한 의욕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일도 많다. 서강대 정외 82학번.〉
16대 이후 연이어 국회 입성에 실패한 장 전 의원은 지난 19대 대선에 국민대통합당의 후보로 출마해 0.01%의 득표율을 올렸다.
김기식 전 의원, 차기 금융위원장 하마평
당시 참여연대 정책실장이었던 김기식 전 의원(19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4번)에 대한 기사는 길다. 그에 대해 알릴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94년 9월 10일 오후 2시. 서초구 변호사회관 5층 강당에서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새 장을 여는 뜻깊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훗날 경실련과 함께 시민운동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참여연대의 창립식이었다. (중략) 맨 앞줄에 나란히 앉아 남다른 감회로 행사를 지켜보는 세 사람이 있었다. 박원순 집행위 부위원장(현 사무처장), 조희연 사무처장(현 협동처장), 김기식 정책기획부장(현 정책실장)이었다. (중략) 김기식 정책실장. 그는 386세대 운동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고교 때 반정부시위 참여-대학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10여 차례의 연행과 두 번의 투옥-인천 지역에서 노동운동-현재 시민운동 활동가.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자마자 운동에 뛰어들어 16년간 한길을 걸어온 셈이다. 고교 3학년 때 연세대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던 그는 어느 날 광주항쟁과 관련된 대자보를 읽다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시위가 있을 때마다 대학생들 틈에 끼어 돌을 던졌다. 그해 입시에서는 당연히 낙방했고, 이듬해 서울대 인류학과에 입학했다.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선배를 찾아 자청해서 운동권이 되었고, 86년 8월 구국 학생연맹 사건으로 구속됐다. 12월 집행유예로 석방될 때까지 4개월간 서울구치소에 있으면서 건대 사건으로 들어온 학생들과 ‘빵투’를 벌이다 보안과에 끌려가서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때 항복을 하면서 자신의 운동성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하며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출소하면서 감상적인 학생운동을 접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중략) 언젠가 어느 선배가 김기식 실장에게 말했다. 너는 아직도 사양산업에 종사하고 있느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보십시오, 앞으로 운동은 가장 유망한 직종이 될 겁니다. 현실과 팽팽히 맞서면서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그는 천상 운동가다. “운동하는 삶이 초라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평생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모범이 집단적으로 나올 때 좋은 후배들이 운동에 평생을 걸 수 있지요. 저는 운동가로 아름답게 생을 마치고 싶어요.” 서울대 인류 85학번/구국 학생연맹 사건.〉
김 전 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선캠프 정책특보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차기 금융위원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김유정 전 의원(18대, 민주당, 비례대표 15번)은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자마자 야당 당직자로 정치권에 들어갔다. 청와대 행정관, 민주당 여성국장을 거쳐 18대 의원, 당 대변인을 지냈다. “여의도에서 청춘을 다 보냈죠. 남의 유세장은 수없이 다녔는데, 19·20대 공천을 못 받아 정작 내 유세는 못 했어요. 정치 참 비정하더라고요. 손학규 전 대표가 제게 ‘왜 당신은 안 되는 줄에만 서느냐’고 하더라고요. ‘내 소신입니다’라고 했죠.”
책은 ‘여성 정치 진출 적극적인 여성 당직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 전 의원을 이같이 소개했다.
〈당 출신으로 들어온 청와대 행정관 중 유일한 홍일점. 91년 졸업과 함께 일찍 정치권에 뛰어든 젊은 여성 당직자다. 야당시절 여성 당직자의 위상은 ‘야당 속의 야당’으로 상징되는데 그가 정치권에 입문할 당시 여성 당직자는 김현미, 조성은(여성 특별위 차별개선 담당관), 안상현(강원도 의원), 양경숙(서울시 의원)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신민당을 거쳐 민주당 정치연수원 부장과 여성위원회 부장을 역임하고 국민회의 지방자치국 부국장 대우를 지냈다. 현재 대통령 여성정책비서실 행정관으로 있는 그는 여성정책과 지방자치 쪽에 관심이 많다. 특히 여성의 정치 진출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이다. 대통령 여성정책비서실 행정관/이화여대 정외 87학번.〉
김 전 의원은 현재 국민의당 대변인이다.
김제남 전 의원(19대, 정의당, 비례대표 5번)은 녹색연합을 비롯해 ‘핵 없는 공동행동’ 등 좌파 환경운동을 해온 사람이다. 김 전 의원은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와의 인터뷰에서 “평화운동과 생명운동을 연결하는 교각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은 “평화운동과 생명운동을 연결하는 교각”이 되고자 한다. 그가 택한 환경운동이란 매개를 통해서. 녹색연합에서 그가 주력했던 미군기지 환경운동은 이 같은 맥락. 그의 또 다른 화두는 ‘풀뿌리 조직’을 통한 시민파워를 만드는 일이다. 덕성여대 사회과 83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87년 졸업하면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북부지역에서 간사를 맡았던 그는 88년 우리나라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사랑 청년회’란 청년 대중조직을 만든다. 환경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92년 ‘푸른한반도되찾기모임’이 창립되면서부터. 그는 이 청년 환경조직의 대표를 맡다가 94년 녹색연합배달연구소와 통합했다.〉
간첩 논란 있었던 이철우 전 의원
이 밖에 김형주(17대, 열린우리당, 서울 광진을), 박원석(19대, 정의당, 비례대표), 고진화(17대, 한나라당, 서울 영등포갑), 이광재(17·18대, 열린우리당,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이화영(17대, 열린우리당, 서울 중랑갑), 이상규(19대, 통합진보당, 서울 관악을), 이철우(17대, 열린우리당, 경기 포천·연천), 유기홍(17·19대, 열린우리당·민주통합당, 서울 관악갑), 강기정(17·18·19대, 민주당, 광주 북구갑) 전 의원의 이름이 있었다.
이들은 간단한 이력만 소개됐다.
〈▲김형주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외국어대 서반어과 83학번, 외국어대 정치학 박사 ▲박원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국장, 동국대 사회학과 88학번 ▲고진화 ‘한국과 세계’ 준비위원장, 성균관대 사회학과 82학번, 청년운동의 산증인, 96년 총선 패배 후 2년 동안 유학 ▲이광재 노무현 의원 보좌관, 연세대 화학공학과 83학번, 자치경영연구원 기획실장, 법학공부 중 ▲이화영 국민회의 이상수 의원 보좌관, 성균관대 사회학과 81학번, 90년대 노동문제에서 지방자치로 무게이동, 중랑구청장 준비 중 ▲이상규 구로사랑민주협의회 의장, 서울대 법학과 83학번, 한국민족민주청년단체연합 사무처장 ▲이철우 전대협 동우회 운영위원,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84학번, 전대협의장비서(87년), 동화 작가 ▲유기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화협) 사무처장, 서울대 국사학과 77학번,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서청협) 의장(93년), 한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의장(94~98년) ▲강기정 공동준비위원장, 전남대 전기공학과 82학번,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부의장(96~97년).〉
이광재 전 의원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왼팔은 안희정 충남도지사)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순하고 조용한 편이지만 ‘논리와 기획’이 강하다. 항시 책을 끼고 다니고 논쟁이 벌어지면 쉽게 굽히지 않는다. 가끔 고집스럽다는 얘기도 듣는다. 1988년 ‘국회의원 노무현’의 비서관으로 시작해 2년여를 빼고는 줄곧 노 전 대통령 옆에 있었다. 3당 합당 반대 논리를 만들었고, 2002년 대선 때는 화제를 모았던 TV 광고를 총괄했다.
이철우 전 의원은 간첩 논란이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지하조직인 ‘반미청년회’의 학생부 지도위원 자격으로 전대협 활동에 관여했다. 이 반미청년회의 조직국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였다. 이 전 의원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래 희망에 ‘유정회 국회의원’이라고 썼던 순진한 시골 청년이었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게 된 후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1992년 이선실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중부지역당 간첩사건’의 지역조직책으로 지목돼 4년의 실형을 살았다.
강기정 전 의원은 ‘몸싸움하는 의원’으로 유명하다. 서울남부지법은 국회 의사진행 방해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서 배제됐다. 2월 25일 이 소식을 접한 채 그는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의사 지연 연설)를 위해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5시간을 연설했다.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내려왔다. (계속)
글=최우석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글=최우석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