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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운동가 오종렬 사망... 일관된 反美, 국보법 철폐 주장해온 그의 어록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100만이 넘는데..." "김(일성) 주석 평화통일 위해 힘써와"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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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열린 '삼성비자금 진상규명을 위한 종교인ㆍ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종훈 신부가 오종렬(앞줄 오른쪽)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DB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 의장이 지난 7일 8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부고(訃告)를 다루면서 한 언론은 “한국 진보운동 최전선에서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자주 통일을 위해 애썼다”라고 썼다. 오종렬씨는 반(反)대한민국 노선을 걸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이다. 1965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 후 전남고교와 전남여고 교사를 거치며 1987년 말부터 전교조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활동에 깊숙이 간여했다. 2000년 8월 3일자 《경향신문》은 오종렬에 대해 “전교조 중앙본부가 결성되자 동료교사들에 의해 광주지회장에 추대됐고 특유의 인화력으로 단번에 조합원을 3,000여명까지 늘렸다”고 전했다.
 
그는 1989년 전교조 결성 주도 혐의로 해직됐고,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등 대표로 반미(反美)운동을 주도해왔다. 해직 중에도 그는 전교조 광주시지부장으로 활동했다. 오씨는 북한 김일성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하루 뒤인 1994년 7월 11일, 한 언론과 이런 인터뷰를 가졌다.
 
“김 주석이 자주(自主)와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왔던 것을 민족적 관점에서 평가한다… 남북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던 정신에 기초하여 자주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국내외 반통일세력의 준동을 막아야 한다.”
 
그는 2001년 9월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연방제 통일’을 결의하면서 “연방제가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결집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해설했다. 연방제 통일은 ‘자유민주적 질서에 기초한 통일’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헌법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며, 북한이 말하는 '고려연방제 통일'과 그 맥이 닿아있다는 게 정설이다.
 
‘군자산의 약속’이란, 충청북도 괴산군 군자산에 위치한 보람수련원에서 2001년 9월 22일~23일까지 개최된 ‘2001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에서 참석한 NL 계열 활동가들에 의해 채택된 선언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맞는 전국연합의 정치 조직방침에 대한 해설서’이며, 일반적으로 ‘9월 테제’ 혹은 해당 대회의 개최지 이름을 딴 ‘군자산의 약속’으로 통칭한다.
   
오씨는 반미 관련 시위를 위한 단체나 조직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2002년 여중생범대위(11월30일 조직. 대표 : 오종렬, 한상렬, 홍근수, 단병호, 천영세, 문정현), ▲2004년 탄핵무효범국민행동(3월12일 조직. 대표 : 오종렬, 이수호, 문규현, 박원순, 최열), ▲2005년 10월 反부시국민행동(상임대표 : 오종렬, 정광훈), 2005년 11월 전용철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문경식, 권영길), ▲2005년 평택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홍근수, 문정현, 문경식, 이정미), ▲2005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 오종렬, 정광훈, 문경식)등 대부분의 좌파성향 범대위의 대표로 참가했다. 또 ▲전국연합을 계승한 한국진보연대 1기 공동대표 및 ▲우리민족끼리연방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계승연대),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등의 간부를 맡아왔다.
 
그는 국가보안법 철폐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실제로 광주시의회의원 시절인 1994년 12월 30일에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었다. 2000년 7월 17일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출범 시에는 공동대표로 참가했고 2002년 11월 29일 좌파가 결집해 만든 소위 ‘국가보안법 장례위원회’ 구성 시에도 상임공동준비위원장으로 참가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정권의 대한민국 체제전복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다음은 여러 언론에 보도된 국보법과 관련한 그의 발언들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멸되었음을 선포한다. 국가보안법이 만들어낸 쇠고랑과 족쇄에 묶인 양심수를 전원 석방시키는 투쟁을 전개하려 한다. (2002년 12월1일 종묘공원, 국가보안법 장례식)
  
▲한나라당에게 국가보안법은 수구반동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마지막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과 이를 위해 민족의 미래, 국민복리, 조국통일을 유보시킬 수 없다는 점을 설득하고 호소할 것이나 안 된다면 국민이 힘으로 딛고 넘어 설 것이다. (2004년 9월 6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 기자회견)
   
▲56년 간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단 당하고 고문-치사를 겪고 의문사 당한 우리 동포가 1백만 명에 이른다. 우린 이 1백만 명의 하얀 뼛가루 위에 살고 있다… 오늘 우리는 민중의 삶을 옥죄이는 올무이자 악의 싹인 국가보안법을 잘라 내 조국강산에 위대한 통일조국의 탑을 쌓는다… 국가보안법을 쓰레기통에 담아 폐차장에 버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당당히 세워나가자. (2004년 12월1일 여의도 국회 앞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63인 삭발식)
  
▲이는 고난의 행군이 아니라 결사의 행군이다… 국가보안법 범죄집단 한나라당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무덤 속에 파묻고 열리우리당이 정신 차리도록 두들겨 패겠다. (2004년 12월 22일 여의도공원 농성장, 소위 비상시국회의 기자회견)
  
▲죄 없는 우리 국민을 목 매달아 죽이고 총으로 쏴 죽이고 고문해서 죽이고 암매장해서 죽이고, ‘빨갱이’로 덧씌워 사회적으로 매장한 게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이걸 없애고 새나라 새 일꾼들이 일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5년 1월24일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2월 투쟁선포 기자회견)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100만이 넘는데 앞으로 어둠의 역사가 지속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36일째 국가보안법 올무에 묶인 채 37일째 어둠과 맞서고 있는 평화작가 이시우의 석방에 동참해 달라…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물에 빠지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을 것. (2007년 5월26일 서울역 광장, 이시우 석방 촉구 결의대회)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12.08

조회 : 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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