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반장’ 이낙연 총리의 ‘견제구’가 갖는 의미 : 월간조선

대통령제 하에서 국무총리직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하려는 말을 대신 읽는다는 뜻에서 ‘대독(代讀)총리’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위상은 남다르다. ‘책임총리’라는 타이틀뿐 아니라 차기 대권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함께 1~2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 역시 두텁다. 오는 10월 말이면 이낙연 총리의 임기는 2년 5개월에 접어든다. 이는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1988년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낙연 총리를 당의 간판으로 세우려 한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총선에서 역할 하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입장만 보인 상태다.

이런 남다른 위상 덕분일까. ‘군기반장’으로 불리는 이낙연 총리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 실세들이 ‘엇나갈’ 때마다 묘한 발언을 해왔다. 원론적인 입장 표명으로 들렸을 수 있으나, 또 다른 시각에서 봤을 때에는 일종의 ‘견제구’가 아니냐는 해석도 이어졌다.

가장 최근의 발언은 '조국 사태'와 관련한 것이다. 이낙연 총리는 조국 법무부 장관 각종 의혹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깊은 회의가 국민들 사이에 싹텄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은) 특히 가진 사람들이 제도를 자기의 기회로 활용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국회 대정부 질문이 이뤄지는 자리에서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는 국무위원 자격으로 조국 장관이 앉아 있었다. 이낙연 총리가 조국 장관 임명 반대 의견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는지에 대해 부인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이 총리가 조국 임명 반대 의사를 보였다는 우회적인 시인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

이낙연 총리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질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 해 10월, ‘문재인 정권 2인자’로 불리던 임종석 비서실장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 고지’를 시찰하자, 이 총리가 이에 ‘격노’했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는 게 보도의 요지였다. 당시 임종석 실장은 선글라스를 끼고 군(軍) 지휘관들의 의전을 받으며 전방을 시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총리실은 이 같은 보도를 즉각 부인했지만, ‘이낙연-임종석 갈등설’의 여진(餘震)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이 총리가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임 실장 견제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올해 초 손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재 무소속)의 ‘목포 부동산 매입’ ‘박물관 인사 외압’ 의혹이 불거졌을 때에도 이낙연 총리는 손 의원을 감싸는 듯한 민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한겨레》(1월 22일 자) 보도의 일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2일 손 의원 관련 의혹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고발도 됐으므로 잘못이 확인되면 법대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 참석해 이렇게 말한 뒤 “정부 여당이 국민 앞에서 겸허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함께 했으면 한다”며 민주당의 미온적 태도를 에둘러 비판했다.>

이러한 발언들을 이낙연 총리의 '자기 정치'로 단정할 순 없지만, 미묘한 시기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주간조선》(2019년 7월 29일 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낙연 총리는 이미 자신을 대권주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황교안 대표를 의식하는 듯한 이 총리의 일화를 전했다.

<기자가 이렇게 느낀 것은 7월 1일 있었던 만찬에서 이 총리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두 번 언급했을 때였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여야 대선주자 1위를 다투고 있는 사람들이며 전·현직 총리라는 인연을 갖고 있다. 기자가 주목한 이 총리의 언급은 우선 황 대표가 총리 시절 헬스기구를 들여놨던 총리공관 2층 방을 자신은 아내의 화실로 내줬다는 것이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총리 관저 내·외빈들을 모실 때 드는 비용에 대한 언급을 할 때였다. 이 총리는 “황 전 총리는 조찬이든 만찬이든 대부분 서울 특급호텔에서 케이터링 서비스를 불러다 손님을 대접했지만 나는 전속 요리사를 고용하면서 필요할 때만 외부 케이터링 서비스를 부른다”며 “오히려 전속 요리사를 고용하는 것이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며 비교우위를 자랑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이낙연 총리의 심중(心中)을 이렇게 분석했다.

“아마 현 정부 인사 중 이낙연 총리가 조국 사태를 가장 답답한 심정으로 보는 사람일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장 심각하게, 또 객관적으로 보고 있을 겁니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한 이 총리는 권력과 민심의 향배를 누구보다 잘 알죠.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이 ‘조국 비호 일변도’로 가니 답답할 수밖에요. 여권 차기 대권주자로도 거론되는데, 그에 따른 신경을 안 쓸 수 있을까요.”

능력 측면에서도 이 총리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 총리가 워낙 깐깐한 편이라 아래 사람들이 피곤해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철두철미하고 유능하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참고로 이 총리의 별명은 이낙연의 '이'와 '세밀하다'는 의미의 영단어 detail을 합쳐 '이테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세밀하게 업무를 본다는 뜻이다.

현 정부에서 벌어지는 각종 현안과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운명체’인 이낙연 총리와 모두 직결돼 있다. 조국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이테일' 이낙연 총리가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얽힌 실타래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정치인 이낙연’의 미래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