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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 2달...전투 훈련 흔적 없으면 간첩이 아닐까?

2013년 김정은이 南에 직파한 간첩은 일반인이었다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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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새벽 삼척항 방파제에 정박한 북한 목선에 타고 있던 북한 선원들을 상대로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이 입항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북한 선원 4명 가운데 2명은 본인 의사에 따라 3일 만에 북한으로 송환됐다고 정부는 밝혔다. /김경현씨 제공
이른바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 '두루뭉수리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던 이 사건이 일어난 지 2달이 넘었다.
 
목선에 탄 4명 중 2명만 남한에 남았다. 일부 선원이 전투복을 입고 있어 '간첩설' 등이 제기됐지만 국정원은 "몸집이나 체격, 어깨 근육의 발달 상태 등을 볼 때 낡은 전투복 상의를 입고 온 고령의 선원은 전투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으로 부터 보고를 받은 이혜훈 정보위원장의 이야기다.
 
"이 사람들의 근육은 전투 훈련을 받은 사람과 달랐다고 한다. 어부는 이두박근이 발달했지만, 전투 훈련을 받으면 어깨와 목 근육이 발달한다. 손에도 총을 잡거나, 로프나 암벽을 타야 되는 공작원의 특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온 4명은 이런 특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국정원에서는 여러 가지 과학 기법을 동원해 그들 진술의 신빙성을 파악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또 '목선'의 성능이 '간첩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를 댔다.
 
국정원의 설명이다.
 
"간첩이 활동하려면, 적발 즉시 도망가야 하기 때문에 통상 300마력 이상의 엔진이 2개 이상 필요하다. 그런데 이 선박은 28마력짜리 엔진이 1개 설치돼 있었고, 경운기 수준이다. 도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없는 배라는 뜻이다."
 
당시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넘어갔다.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시점인 만큼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침투하는 간첩은 두 부류다. 첫 번째가 국정원의 설명대로 잘 훈련된 요원들이다. 2010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죽이기 위해 보낸 암살조가 대표적이다.
 
군(軍) 정찰국 공작원인 동갑내기 김명호, 동명관은 최정예 엘리트 공작원이었다. 군 정찰국은 요인 암살, 테러를 담당하는 곳이다.  두 사람이 군 정찰국 공작원으로 선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7년 전인 1992년 9월이었다. 현재 두 사람의 나이가 45세 정도가 됐으니 10대 후반 때부터 ‘인간병기’로 키워진 것이다.
 
1995년 충남 부여에서 군경과 총격전 끝에 체포된 전직 무장공작원 김동식(가명)씨도 같은 케이스다.
 
김씨는 1990년 5월과 1995년 8월, 두 번 남파됐다. 처음 남파됐을 때 그는 당시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이었던 황인오와 대남공작을 총지휘하고 있던 남파공작원 이선실을 대동해 월북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공로로 공화국영웅 칭호도 받았다. 남한에 지하당조직(고첩망)을 구축해 혁명 기지를 만드는 것은 당시의 또 다른 남파 목적이었다. 이후 남파는 국내 운동권 인사 접촉 등을 통한 지하망 구축 임무를 수행 때문이었다.
 
남파 공작원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북한 '130 연락소' 출신인 김씨는 여전히 젓가락을 던져 나무로 된 과녁을 정확히 뚫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두 번째는 일반인이다. 기자는 2013년 김정은 지령을 받고 남한에 직파된 북한 공작원을 직접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함북 무산군 무산광산연합기업소에서 용해공으로 일했던 일반인이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총 세 차례(1998, 2000, 2001) 중국으로 탈북을 시도했지만 그 족족 공안에 적발돼 북한으로 강제 이송 당했다.
 
마지막 탈북 실패 후인 2002년 8월, 함북 온성군 보위부 구류장에 수용돼 조사를 받던 그에게 보위부 해외반탐처는 “보위부 공작원이 되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공작원 수칙을 배웠다.
 
휴대전화는 받는 데에만 사용하고, 보위부는 ‘큰 집’, 본인은 ‘소무’, 영사관은 ‘작은 집’ 등의 암호로 호칭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내용이 다였다. 중국에서 간첩활동을 하던 그는 작전을 위해 남한으로 왔다가 체포됐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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