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로부터 지적받은 적 처음... 재판부의 소송 지휘권 흔들지 말라!” : 월간조선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 공판에서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겪었던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3월 20일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병모 국장은 석연치 않은 본인의 체포과정과, 한 달 동안 몸무게가 10kg이 빠질 정도의 강압적인 검찰 수사, 그로 인해 치과진료도 못 받아 어금니를 발치(拔齒)해야 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검찰 조사 당시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검찰이 원하는 대로 허위진술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검찰이 강압 수사를 벌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국장의 답변을 일축하는 모양새였다.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며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일부 재판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자 재판부는 ‘증인의 답변을 다 듣고 다음 질문을 이어가라’고 검찰 측에 경고하기도 했다.

검찰은 재판부의 재판 진행에 대해 지적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에 재판부는 “재판을 오래 하고 있는데 검사로부터 지적받은 적은 처음”이라며 검찰 주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함정수사’ 의혹 공방

이병모 국장은 영포빌딩 경비로부터 건네받은 장부를 파쇄 하여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에 긴급 체포됐다. 장부를 파쇄한 경위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 국장은 “경비 아저씨가 6시 이후 쯤에 사무실로 왔다”며 “기자가 와서 중요한 서류가 있는데 청계재단이나 다스 사무실에 갖다 주라고 했다면서 장부를 가져왔는데, 장부를 보니 겁이 나서 파쇄했다”고 답변했다.

문건이 파쇄된 뒤 해당 기자(모 방송국)가 찾아와 문건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이 국장이 이를 제시하지 못하자 문제의 기자가 이 국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고발하면서 긴급 체포된 것이다. 이후 이 국장은 본인의 혐의보다는 이 전 대통령의 혐의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변호인이 해당 장부의 사본을 보여주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파쇄한 장부를 제시한 적이 있냐”고 묻자 이 국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변호인은 “검찰이 증인이 파쇄한 장부의 사본(寫本)을 어떻게 확보한 것이냐”며 “파쇄 전에 검찰이 미리 장부의 사진을 찍어 두고, 이를 기자가 경비를 통해 증인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냐”고 묻자 이 국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변호인은 “증거인멸 혐의로 유죄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함정수사 의혹이 있는데 왜 항소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 국장은 “파쇄한 건 죄(罪)라고 생각했고, 변호사 비용이 부담됐으며, 재판부 나오고 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항소를 안했다”고 답변했다.

변호인 신문 과정에서 검찰은 “증인이 함정수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변호인이 함정수사를 전제해 묻고 있다”며 “재판부가 지난번에 (검사가) 잘못된 전제 하에 물은 것을 제지한 적이 있는데 그걸 지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가 “누구에게 지적하는 것이냐? 재판부에게 지적하는 것이냐?”고 묻자 검찰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재판부는 “검사로부터 지적받은 적은 처음”이라며 “재판부의 소송 지휘권을 흔들지 말라”고 검찰에 경고했다. 이어 “앞서 원세훈 국정원장 증인 신문 과정에서 그 때는 증인이 ‘A가 아니다’고 증언했는데, 검찰이 뒤 이은 질문에서 ‘증인은 A가 맞다고 답변했는데...’라며 신문을 이어가 이를 제지한 것”이라며 이날 내용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반대신문에서 이 국장에게 “기자나 검찰이 장부를 파쇄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냐”고 묻자 이 국장은 “그런 일은 없다”고 답변했다. 이 국장은 장부를 경비에게 건넨 기자를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고소 건은 계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강압수사 의혹과 허위진술 여부

변호인이 이병모 국장에게 “지난해 2월 집중적으로 조사를 받지 않았냐”며 “28일 중 20일을 조사받고, 설 연휴 마지막 날부터는 8일 동안 매일 조사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에 변호인이 “조사를 받고 새벽에 들어와 아침에 다시 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새벽에 들어온 날도 여러 번 있지 않냐”며 “그런 경우 수면시간은 얼마나 되냐”고 묻자, 이 국장은 “3시간 정도 된다”고 답변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진술을 할 수 있었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 국장은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했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반대신문에서 “증인이 늦게 돌아간 날은 다음날 오후에 소환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이 국장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어 검찰이 “조사과정에서 피곤하다고 하면 휴식시간을 주지 않았냐”며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부인하는 질문을 하자 이 국장은 “체포된 뒤 한 달 동안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며 “어금니가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해 정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국장은 “무엇보다도 너무 억울했다”고 말했다. 홍은프레닝 대표 김재정씨가 사망한 후 부인인 권영미씨가 대표가 되어 월급을 받아갔는데, 그 월급이 자신이 횡령한 것으로 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프레닝 대주주인 다스에서 ▲▲에게 40억 원을 빌려주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배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본인이 검찰 조사에서 김재정씨 소유의 재산이 이 전 대통령 소유라고 답변한 것은 “그저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검찰이 원하는 답변을 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반대신문에서 허위진술을 한 배경을 설명하려는 이 국장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렇게 진술했는지 아닌지만 대답하라”는 식의 질문을 이어갔다. 이에 재판부는 “증인의 답변을 모두 들은 후 다음 질문을 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3월 22일로 예정된 이 전 대통령의 다음 공판에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증인신문이 예정되어 있다. 김 전 기획관은 3월 19일 있었던 본인의 항소심 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아 22일 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기획관 측 변호인들조차 김 전 기획관과 연락이 안 돼 아들과 연락하고 있으며, 김 전 기획관은 거제도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요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