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6회] 1936년 잡지 <야담(野談)>에 실린 김동인의 역사소설 〈순진(純眞)〉 : 월간조선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인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다. 운현궁 노안당 현판. 정면 6칸과 측면 3칸의 몸채에 오돌방과 툇마루, 영화루가 있는 'ㅢ'자형 구조다.

☞5편 줄거리

춘보는 주막집 여주인의 청에 따라 죽은 손님의 장사를 대신 치렀다. 덕택에 저녁도 먹고 술잔 대접도 받았다.

죽은 이가 남긴 괴나리봇짐을 풀어보니 낯익은 무가 보였다. 수일 전 춘보 텃밭에서 담배를 베다가 뽑은 그 무였다. 게다가 자기가 맛보노라고 꺾었던 그 자리까지 그냥 있었다.

춘보 생각에, 이 무는 그냥 무가 아니라 무슨 값진 물건이 분명했다. 괴나리봇짐에 함께 든 편지를 보니 이 편지와 산삼(무)은 강원 감사가 운현대감, 즉 대원군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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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을 세운 알렌 박사가 직접 찍은 흥선대원군 사진.

(계속) “운현대감 집이 어디요?”

동대문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물어서 춘보가, 운현궁에 찾아 들은 것은 가을날도 캄캄하여서였다.

일(一)국의 섭정의 지위에 있는 운현은, 언제든 아랫사람들 저희끼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 뒤에는 장죽에 성천초를 피어 물고 후원을 한 바퀴 휙 돌아서는 발소리를 감초아 줄행랑으로 나가서 하인들이 저희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하였다.

이날도 담배를 붙여 물고, 후원을 한 바퀴 돌아 가지고 행낭으로 돌아가려니까, 대문에서 무엇이 왁자그르르 지껄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가만히 가서 내다보니까, 웬 헙수룩한 시골 사람이, 옆에 무슨 보퉁이 하나를 힘 있게 끼고, 머리가 산산이 헤어져서 버둥거리고, 하인들이 쭉 둘러서서 그 시골사람을 때리고 차고 하는 것이었다.

“아, 이거 운현대감 줄랴구 그래요.”

“이놈아. 대감께서 그런 더러운 물건을 달라시더냐. 썩 나가.”

“못나가요.”

때리거니 밀거니 버티거니, 야단이었다.

운현은 빨리 사랑으로 돌아왔다.

“이리 오너라.”

“네~이.”

등대하는 청지기에게,

“대문에서 무엇이 소란하니 무슨 일인지 알아봐라.”

“네~이. 이봐라.”

“네~이.”

“대문에서 무엇이 요란스러운지 대감께서 사실해 올리랍신다.”

“네~이.”

이윽고 회보는 왔다.

“웬 헙수룩한 시골사람이, 무슨 더러운 보자기를 대감께 올린다고 야단이올시다.”

“그래서.”

“그래서, 못 들어오게 하니까!”

말이 맺도록 기다리지 않았다. 운현은, 눈을 딱 바로 떴다.

“내게 가져온다는 물건을 너희가 가로 막어? 썩 들어 오래라.”

“네~이.”

이리 하여 춘보는 운현의 앞에 불리었다. 옷이 산산이 찢어지고 머리가 산산이 풀어진 춘보는 대청 앞에 섰다.

운현궁은 한국 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흥선군 이하응이 왕실집권을 실현시킨 산실이자 집권 이후 대원군의 위치에서 왕도정치로의 개혁의지를 단행한 곳이다. 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이기도 하다.

“그거 뭐냐.”

“나리마님이 운현대감이요?”

운현 이하 모두 고소하였다.

“그러나. 그게 뭐냐.”

“이거요.”

보퉁이 채 내미는 것을 하인이 받어서, 처지기에게 받쳤다. 청지기가 받어서 풀으며 거기에는 흙투성이 버선 한 켤레와 편지 한 장과, 팔쭉지 같은 산삼 세 개가 굴러 떨어졌다.

운현은 눈을 크게 하였다. 많은 산삼을 보고 먹고 하였지만 아직껏 이런 산삼을 본 일이 없었다.

“이게―.”

“희대의 신품이올시다.”

청지기도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함께 떨어진 편지를 보매, 강원 감사 모가 바치는 물건이었다.

잠시는 어리둥절히 그 희대의 신품만 굽어보았다. 그러나, 머리를 진정하고 생각하매, 강원감사가 저런 희대의 산삼을 보내는데 사람이 없어서 이 바보를 보냈겠으며, 궤짝 하나이 없어서 이런 잔품을 버선짝과 함께 보자기에 싸서 보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