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코소보 사태를 빌미로 세르비아를 80여 일간 공습한 적이 있다. 이후 경제제재를 받았음에도 세르비아인들은 자급자족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바로 세르비아가 가진 천혜의 환경 덕분이다. 세르비아는 내륙임에도 비옥한 토지와 많은 수량(水量), 그리고 풍부한 일조량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자라는 농작물은 맛이 매우 좋다. 토마토, 멜론, 오이, 수박, 파프리카는 크기도 크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낙농식품도 마찬가지다. 우유는 비린내 없이 깔끔하고, 버터는 느끼하기보다는 고소하다. 그런 유제품 덕에 빵과 치즈도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특히 세르비아식 크림치즈인 ‘카이막’은 일품이다. 카이막은 세르비아의 호텔 조식에 늘 나오는데, 새콤달콤하고 부드러워 빵에 발라 먹으면 그만이다. 빵뿐만 아니라 각종 요리에도 곁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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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오그라드 예술가의 거리. 사진=월간조선 |
7월 28일 저녁 7시쯤 베오그라드 시내 한쪽에 위치한 ‘예술가의 거리’를 방문했다. 서울의 삼청동, 인사동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파리나 프라하 등 다른 유럽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마침 이곳에서는 남녀 서너 명이 역할극을 하며 입담을 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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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바 엘레나의 메뉴판. 사진=월간조선 |
나는 ‘베샤노 로슈텔리’란 요리를 주문했다. 베샤노 로슈텔리는 세르비아 전통 음식이다. 쇠고기와 닭고기, 전통 소시지, 그리고 감자를 구워 그 위에 카이막을 얹어 내놓는다. 일종의 ‘모듬 숯불구이’인 셈이다. 이와 함께 ‘페체나 파프리라’도 주문했는데, 이 요리는 파프리카를 구워 마늘 간 것과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음식이다. 베샤노 로슈텔리와 페체나 파프리카, 그리고 카이막의 궁합은 나무랄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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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샤노 로슈텔리. 위에 얹어진 하얀 게 '카이막'이다. 사진=월간조선 |
'드바 엘레나'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분위기도 훌륭했다. 레스토랑 내부는 세월의 흔적과 전통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나무 벽은 오랜 세월을 지켜온 듯 반질반질했고, 벽에 붙어 있는 전등은 색이 바랬음에도 운치 있었다. 특히 중년 남성들과 노인으로 구성된 4중주 밴드는 분위기를 더욱 돋웠다. 이들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열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특히 첼로를 연주하는 노인은 영국의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를 빼다 박은 듯했다. 가장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그가 흥도 가장 넘쳐 보였다. 날것 그대로의 세르비아인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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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바 엘레나'의 내부. 사진=월간조선 |
술도 빼놓을 수 없다. 전날 점심을 함께한 일행이 ‘라키야’라는 세르비아 전통 술을 권했다. 라키야는 자두를 베이스로 빚은 과실주인데 도수가 45도에 달한다. 향이 좋아 냉큼 한 모금 들이켰는데,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 직전에 화이트 와인도 한 잔 마신 터라 독한 알코올 기운이 온몸을 감돌았다. 술기운은 술기운대로 오르고, 속은 속대로 쓰려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상당히 고생을 했다.
내가 만난 세르비아 여성 한 명은 “몸이 안 좋을 때 라키야를 한 잔 마시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순간 ‘감기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 한 숟갈 타 마시면 좋다’는 우리의 민간요법이 떠올랐다. 심지어 이 여성은 “임신부도 한 잔 정도 마시면 몸에 좋다”며 라키야 예찬론을 늘어놨다. 놀라웠지만,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저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베오그라드의 야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멀리 이국(異國)에서 온 이방인의 몸을 휘감은 불빛들. 그 잔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