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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자랑하는 '류경수 땅크사단', 실제 전과(戰果)는 엉터리

전술·전략에 무지(無知)했던 류경수는 김일성의 측근이자 김정일 남매의 보모였던 황순희의 남편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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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혁명열사릉에 세워진 류경수의 반신상.
북한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부대 중 하나가 ‘근위 류경수 105땅크사단'이다. 김정일·김정은이 새해 벽두마다 찾는 이 부대는 사실 전과가 거의 없는 허상인 부대다. 이 부대는 6·25전쟁 초 잠시 위세를 떨쳤을 뿐 고성·다부동 전투 등에서 대패(大敗)를 거듭했다.
 
'김일성의 측근' 류경수
 
류경수(1915~1958)의 본명은 류삼수이다. 김일성의 측근 중 한 명으로 북한의 전차부대 창시자이다. 류경수의 첫 부인은 김일성의 본처 김정숙의 여동생이라고 한다. 김정숙의 여동생은 류경수와 결혼한 뒤 얼마 안 돼 병사했다. 류경수는 김일성의 주선으로 만주 빨치산 동지이자 김일성유격대 간호원으로 활동하던 황순희와 재혼했다고 한다. 1919년생인 황순희는 현재 99세로 조선혁명박물관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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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의 황순희와 이야기를 나누는 김정은.
류경수의 후처 황순희는 김정일·김경희의 보모 역할 
 
류경수와 황순희 사이에서 태어난 류춘옥(노동당 국제부 과장 출신)은 김정일의 여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 '절친'이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광복 후 북한에 왔을 때, 김정일·경희 남매를 류춘옥 집에 맡겼다고 한다. 황순희는 당시 김정일 남매를 기르다시피 했다고 한다. 황순희는 김정일에게 반말이 가능한 유일한 인물인 것으로 전해진다. 류춘옥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남편 김창선은 중앙당 서기실장으로 김정은·김여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과장된 '류경수 땅크사단'의 전과(戰果)
 
류경수 땅크사단은 6·25전쟁 당시 가장 먼저 서울에 입성한 부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부대의 전공은 과장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류경수의 105전차 여단(1950년 7월 사단으로 승격)은 서울 점령 후 김일성의 특명으로 사단으로 격상되고 서울 여단이라는 명예 호칭도 받았다. 여단의 승승장구는 서울을 거쳐 오산에 처음 출동한 미군 스미스 기동 부대를 격파하는 데까지만 이어졌다. 이때까지가 류경수와 105전차 여단의 황금기였던 셈이다.
 
류경수의 연속적인 '판단 미스'
 
1950년 7월 18일 저녁 류경수 부대는 평택 남방에서 전차와 차량들을 길게 배열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이는 류경수의 판단 미숙이었다. 미 공군의 F-80이 류경수 부대의 전차들을 발견했고 불과 30분도 안 되어 미군 공군기들이 벌떼같이 날아와 105여단을 공격했다. 이 공습에서 류경수 부대는 전차 38량과 자주포 9량, 차량 118량을 잃는 대피해를 입었다.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질책과 해임이 뒤따라야 했지만 류경수의 위상은 끄떡없었다. 김일성은 중부전선에서 한국군 6사단의 선전으로 공세가 지지부진하자 사단장 이청송을 해임하고 군단장 김광협을 군단 참모장으로 강등시키는 인사 문책을 했지만, 류경수에 대해서는 그대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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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서울로 진격한 북한군 전차.
전략·전술(戰略·戰術)에 무지했던 류경수
 
류경수의 무지함과 미숙함은 더 공공연하게 노출되었다. 대전 이남부터 류경수 부대의 T-34 전차는 연속적으로 미군과 한국군의 먹이가 되었다. 이때부터 북한의 전차 부대는 초기에 얻었던 명성은 고사하고 오히려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1950년 8월 23일 다부동 전투에서 류경수는 13사단장이며 동료 빨치산이던 최용진과 함께 미군 부대를 상대로 야간 돌격을 했다가 전차 13량을 잃었다. 이보다 열흘 전, 경남 고성에서 그의 휘하 기계화 보병연대가 접근하는 미 해병 5연대를 피해서 뒤늦게 철수하다가 100여 량에 가까운 차량과 사이드카들이 미군에 의해 모조리 파괴되고 섬멸되었다.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을 때에도 전차 1개 연대를 파견했지만 이 역시 ‘류경수식’ 전술로 마구잡이로 대들다가 거의 전멸을 당했다.
 
"보병 분대장 같은 운용"
 
류경수의 전차 전술 전략은 독일이나 이스라엘 군이 구사했던 독창력 넘치고 대담한 전차 부대 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류경수가 구사하는 전술은 항상 동일했다고 한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보병과 함께 정면 돌파를 하는 단조로운 짓으로 일관했다. 미국 전사(戰史)에서도 그의 우직하고 단순한 전차 사용을 지적하는 글들이 많다. 대표적인 게 "보병 분대장 같은 운용을 했다"는 평가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2.12

조회 : 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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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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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8-02-12)   

    류춘옥은 2003년도에 죽었는데 무슨 소리야!!!! 궁금하면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보고 확인하든가!!!! 김창선과 후처 이광옥이 결혼했을때 1990년 2월이었으니 류춘옥과는 사별한게 아니라 이혼한거지!!!! 아무리 보수언론사래도 제대로 좀 써라!!!!

  • 박혜연 (2018-02-12)   

    월간좇선은 남의 가정사 흠집이나 내고 다니냐 하기야 친종북세력들도 이에못지않은 인간들 많지!!! 북괴고위층들도 사람인데 성범죄나 술주정 안부리는줄 아나보는데 단지 북은 우리나라처럼 유흥업소나 술집이 수도 평양시에서조차 몇몇 특수층들을 위한 시설외에는 거의없기때문에 그렇지 공산국가나 자유민주주의국가나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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