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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친문 네티즌으로부터 적폐로 몰린 오민석 부장판사가 9년 전 쓴 칼럼을 읽어보니

"비록 한참을 기다리더라도 나의 업무가 정확하게 처리된다면 적어도 신뢰감만은 가질 수 있다"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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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조선 캡처
① 2017년 2월 21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영장 기각.
검찰 구속영장 청구 이유: 2014년부터 청와대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 외교부 공무원들을 감찰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 자신의 비위를 감찰하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업무를 방해하고, 특별감찰관실을 사실상 해체하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
기각 이유: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疏明)이 부족하다.
 
② 2017년 9월 8일(새벽 2시30분)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 전·현직 간부인 노모씨와 박모씨에 대한 영장을 모두 기각.
검찰 구속영장 청구 이유: 노씨에겐 2012년 대선 때 선거 개입 댓글을 단 혐의, 박씨에겐 관련 증거를 은닉한 혐의.
기각 이유: 범죄 혐의는 소명되지만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③ 2017년 10월 20일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 영장 기각.
검찰 구속영장 청구 이유: 국가정보원법 위반, 명예훼손, 공갈 등 혐의.
기각 이유: 범죄 혐의는 소명되나 피의자의 신분과 지위, 수사진행 경과 등을 고려할 때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④ 2017년 12월 28일
조윤선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구속영장 기각.
검찰 구속영장 청구 이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검찰은 조 전 수석이 이병기 전 국정원장 시절 매달 국정원 특활비 500만 원씩 총 5000여만 원을 받았다고 보고 있으며, 청와대가 31개 보수단체에 총 35억 원이 지원될 수 있도록 이승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을 압박하는 데 관여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기각 이유: 수수된 금품의 뇌물성 등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수사 및 별건 재판의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5명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내린 이는 오민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다. 오 판사에 대해 친문(親文) 성향 네티즌들은 ‘적폐’ ‘우병우 사단’이라고 몰아붙이는 등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붓고 있다. 도를 넘는 욕설 댓글도 다수다. "오민석 너 개X아" 라는 댓글에는 7000명이 넘는 다른 네티즌들이 동조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것을 거론하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댓글도 있었다. 법조인 중 상당수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점을 감안하면 논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1969년생인 오 부장판사는 사법시험 36회, 연수원 26기로 서울지법에서 첫 임기를 시작했다.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으로 첫 부임지를 발령받은 경우 대체로 사법시험 성적이 높은 경우가 많다. 이후 서울지법 서부지원, 대전지법,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했다.
이후 오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민사정책심의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걸쳤다.
 
오 부장판사에 대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가 2008년 1월에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seoul.scourt.go.kr)에 쓴 '법원칼럼'(제목: 충실한 심리·신속 진행으로… 신뢰감·효율성 조화 이뤄야)을 접했다. 칼럼 내용대로라면 오 부장판사는 '신중함'을 최고로 치는 인물이다.
 
내용을 옮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재판도 시간의 제약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듣지도 않고 재판을 할 수는 없다. 사건 당사자에게 무한정 진술할 기회를 부여하다 보면 사건의 처리가 지연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이라는 원망을 살 수가 있다.
한편, 효율성을 중시해 사건의 결론에 영향이 없는 당사자의 진술을 제지하다 보면 졸속 재판이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 두 가지 비난을 모두 피해가며 이상적인 속도로 재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필자가 미국에서 우체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우편물을 들고 우체국으로 들어서자 출입문 바로 앞까지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모두 5개의 창구가 마련돼 있었으나 단 2개의 창구에서만 일이 처리되고 있었다. 우체국 직원은 긴 줄을 보고도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민원인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곳 사람들은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만큼 자신의 순서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참고 기다려 줄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 조금씩 서두르면 모두가 만족할 텐데.’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정신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후 우리나라에 돌아와 대형할인매장을 방문하게 됐다. 그곳 식당가에서 먹을 것을 사려고 줄을 섰다. 줄을 선 사람들은 정말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신속한 일 처리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필자의 차례가 돼 주문을 마치고 거스름돈을 받아드는 순간, 점원은 필자의 뒤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다음 분 뭐 드시겠어요?”라고 물었다. 필자가 거스름돈을 지갑에 넣기도 전에 볼 일을 다 봤으니 빨리 비키라는 식이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뒷사람의 반응이었다.

필자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은 지갑에 돈을 넣고 있는 필자의 옆으로 나서면서 주문을 시작했다. 필자는 확보된 기회를 빼앗기고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속도감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필자로부터 재판을 받았던 당사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신속한 재판과 귀담아 듣는 재판은 동시에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까?
 
신속한 재판이 어설픈 재판, 대충하는 재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식당 점원으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나서 다시 그 식당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 리가 없다. 비록 한참을 기다리더라도 나의 업무가 정확하게 처리된다면 적어도 신뢰감만은 가질 수 있다. 신속성은 제대로 된 재판이 겸비해야 할 모습의 하나에 불과하다. 신속성을 위해 ‘재판의 재판다움’이 희생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상담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체국 직원과 식당 점원 중 누구를 찾아갈 것인지 알기는 어렵지 않다. 재판을 받으러 오는 당사자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하지만 심리의 충실함에 소홀함이 없었다는 것만으로 박수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재판이다. 국민은 귀담아 듣는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판사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체국 직원과 식당 점원,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
 
오 부장판사가 이 칼럼을 쓸 때의 신념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간의 영장 기각 결정은 신중한 판단을 한 뒤 내렸을 것이다. 한 법조인은 "자신의 판단과 다르다고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고 나오는 친문 성향 네티즌의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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